제3장 교육과정 이론의 변천제1절 교과중심 교육과정최초의 전문적인 교육과정 연구가 시작된던 20세기 초 이전의 모든 교육과정을 지칭한다. 1920년경 탄생한 경험주임 교육과정이 그 이전의 교육과정을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대표적인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 이론으로서, 7자유과를 가르칠 것을 제안하며, 교육의 목적을 정신의 도야로 바라본다. 또한 정신도야에 대한 근거는 형식도야 이론에 있다.1.형식도야 이론교과중심 교육과정은 형식도야 이론에 기초한다. 형식도야 이론은 19세기의 능력심리학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정신은 지각, 기억, 추리, 상상, 감정, 의지 등과 같이 뚜렷이 구분되는 6가지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 능력들은 마음의 근육인 심근이라 할 수 있으며, 형식도야에서 형식이란 심근을 뜻하는 것이며, 형식의 도야란 즉, 6가지 심근의 연마를 뜻한다. 능력연마설이라고 불리며 교과 중심 교육과정은 이 심근의 연마를 교육목적으로 한다. 형식의 도야는 전통적인 인문교과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교육목적이다. 형식도야 이론은 연습과 훈련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바라본다.2. 7자유과형식도야를 목적으로 하는 교과중심 교육과정이 특별히 도야의 가치가 큰 교과를 가르칠 것을 제안하였는데, 형식을 도야하는 데 있어서 도야의 가치가 큰 교과로 7자유과를 들고 있다. 7자유과란 교과의 전형으로서 문법, 수사학, 논리학, 대수, 기하, 천문학, 음악등이다.이들 과목은 우리의 심근을 도야하는 데 도야의 가치가 매우 높다.3.형식도야 이론에 대한 비판형식의 도야(인간의 기본정신능력)는 특수한 지식이나 기술의 연마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전이가 보다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를 중시하는 실험심리학의 발달은 혀익도야 이론이 주장하는 전이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는가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결과에서 형식도야 이론이 주장하는 능력의 전이를 부정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만, 손다이 사회적 기능 등을 중심으로 가르칠 것을 주장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이들가운데 어떤 것을 특별히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활동분석중심 교육과정, 사회기능중심교육과정, 청년욕구중심 교육과정, 항상적 생활장면중심 교육과정 네 가지 교육과정 이론으로 나타냈다. 이들은 각각 성인들의 활동, 사회적 기능, 청소년의 필요와 흥미, 항상적 생활장면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생활적응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생활적응 교육이란 모든 청소년들로 하여금 스스로 만족스럽게 민주적으로 생활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사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교육을 의미한다.1)활동분석중심 교육과정19세기 말부터 1910년대까지 일어난 각종 새로운 교육연구와 듀이의 경험론, 학교 인구의 증가와 중등학제의 개혁 등을 배경으로 생겨났다.이 교육과정은 인간의 생활 경험과 활동에 기초하는 이론으로서 1910년대 말에 생겨나 1920년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활동분석중심 교육과정은 가장 바람직한 수준에서의 인간의 생활 활동을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삼는다. 학습자로 하여금 미래에 훌륭한 성인이 되어 그들의 활동을 잘 수행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인의 양성을 중심으로 한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보비트와 차터스(W. W. Charters)등이 있다. 1920년대의 활동분석중심 교육과정의 아이디어는 최초의 교육과정저서라고 할 수 있는 보비트의 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교육과정의 과학적 운동을 통해 성인이 어떤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직접 조사하여 성인이 생활 활동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고자 하였다.*성인의 10가지 영역(교육을 통해 아동이 성인이 되기 전에 배워야 할 영역)①언어활동②건강활동③시민활동④사교활동⑤여가활동⑥지적활동⑦종교활동⑧결혼과 자녀교육의 양친활동⑨비전문적 또는 비직업적인 실제적 활동⑩직업활동①모든 성인 생활을 검토, 중요한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성인의 10가지다시 상세히 열거하였다.①개인생활 관련된 필요-개인건강, 자기확신, 바람직한 세계관, 생활철학등과 관련된 것②사회 내의 직접적 인간관계관련-가정생활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 동성 및 이성 친구와의 관계③사회시민 관계에 관련된 필요-활동에 대한 책임있는 참여, 사회적 인정과 관련된 것④경제관계에 관련된 필요-직업선택과 준비에관한 것, 물품의 현명한 선택과 이용등4)항상적 생활장면중심 교육과정스트라트메이어(F.B,Stratemeyer)를 중심으로 한 콜롬비아대학의 교육과정 연구팀이 탄생시켰다. 항상적 생활사태란 학습자의 경험 배경이나 성장 단계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이 당면하게 될 공통적인 생활사태를 말한다. 이 교육과정은 기존 여러 경험중심 교육과정안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려하여 이들 모두의 주장을 집약한 것으로서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대표하는 가장 포괄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트메이어 등이 제시한 항상적 생활사태는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구분된다. ①환경적 요인 및 세력들을 다루는 능력의 성장을 요구하는 사태②사회적 참여의 성장을 요구하는 사태, ③개인 능력의 성장을 요구하는 사태3.경험중심 교육과정의 공헌과 비판1)공헌경험중심 교육과정이 교육과정 분야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은 교육과정 연구를 전문적인 연구 분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들이 전문적인 교육과정 연구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다음과 같다.①직접적인 조사 방법-교육과정의 과학적 연구(성인의 필요, 청소년의 필요, 흥미등을 직접조사)②다양한 형태의 교육과정 조직 유형을 개발-예:8년연구의 중핵교육과정, 현재의 통합교육과정에 영향줌)2)비판지나치게 학습자의 흥미, 필요만을 중요시하고 체계적인 지식교육에 소홀히 하였다.-수학, 과학 등흥미자체를 교육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문제 사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어야 했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기초가 된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의 지적인 자율성을 보장하여 지성의 해방 및 이를 통한 사회적 진보를 꾀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체계적인 학습한다는 것은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의 구조에 대한 예로서는 모든 방정식 풀이에 적용되는 기본원리인 교환법칙, 결합법칙, 배분법칙등이 있다.2)일반적 전이지식의 구조를 가르쳤을 때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일반적 전이라고 한다. 즉, 낱낱의 개별적인 현상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원리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일반적 전이가 가능하다. 일반적 전이는 특수적 전이와 구분된다. 특수한 전이란 기술교과의 지식에서 보통 이루어지는데, 원래 배운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에다 학습의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학습의 결과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반적 전이가 있는데, 일반적 전이란 원리와 태도의 전이를 뜻한다. 일반적 전이는 지식의 구조를 배움으로써 가능하다. 지식의 구조는 일반적 전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을 갖는다.3)지식의 구조가 갖는 4가지 이점?교과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기억하기가 쉽다.?기본적인 원리나 개념에 대한 지식의 구조이해는 일반적 전이를 가능하게 한다.?고등 지식과 초보 지식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4)발견학습지식의 구조를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발견학습의 방법이 제안된다. 발견학습은 특수한 명제에서 일반적 명제를 학습자 스스로가 발견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발견하기 바라는 원리를 교사가 문제 상황으로 제시하고, 그 상황에서 학습자 스스로 원리를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학습을 해야하는 이유는 학교가 지식의 폭발로 모든 지식을 다 가르칠 수 없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고, 문화 전달의 기능 외에 문화 창조 및 인간형성의 기능을 달성하기 위함이기도 하다.5)나선형 교육과정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지식의 구조를 발견학습의 방법으로 가르칠 것과 함께 그것을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브루너는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근거하여‘어떤 교과든지 지적으로 올바른간다운 삶의 형식은 7가지 지식의 형식을 내면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교육이라고 하는 개념은 그것이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미 그것 안에 포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육의 개념 에는 규범적, 인지적, 과정적의 3가지 측면이 있고, 그것을 통해 교육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윤리학과 교육』에서 교육의 개념을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교육의 규범적, 인지적, 과정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교육의 규범적 기준은 교육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관한 것이며, 교육의 인지적 기준은 교육받은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교육의 과정적 기준은 방법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규범적 기준이란 교육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상태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적 기준이란 교육이 가치 있는 것을 실현한다고 했을 때, 그 구체적인 내용, 예를 들면 지적 능력의 개발 또는 인격의 도야등을 명시하는 것이다. 교육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의 지식과 모종의 개념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념구조란 잡다한 사실들만을 수집하고 있다기보다 사실을 전체적으로 조직하는 원리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유사하게 화이트헤어(A.N.Whitehead)는 교육받은 사람의 지식은 무기력한 지식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세 번째 과정적 기준이란 교육방법에 관한 기준으로서 교육은 그 방법이 도덕적으로 온당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의식이나 자발성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교육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제4절 인간중심 교육과정학습자의 흥미나 필요를 강조하면서 생활적응 교육을 목적으로 하였던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체계적인 지식 교육을 소흘히 하였고, 그 결과 지식 중심의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지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두어 전인으로서의 인간교육에는 소흘하였다. 1970년대 들어 전인적 측면에 관심을 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인간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이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정의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지적 측면을 함께 발
제 2장 그리스 교육과 사상1. 교육의 공통성‘교육’ : 그 시대의 삶의 내용, 미래의 계획 수립, 이상 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며, 언제 어디서나 지식과 생활양식, 가치관, 태도 등에 관해 이루어졌다. 교육의 공통성은 항상 상과 벌이 존재, 아동에게 중요한 것 가르치지 않음, 지배계층에 의해 조정, 듣기, 보기, 하기의 과정을 통해 모든 문화에서 동일하게 학습되었다는 것이다.2. 그리스시대 교육1)그리스의 사회와 문화BC 1200년경 서구문화의 근원. 촌락중심의 씨족공동체사회→소도시국가 형태 폴리스형성.(대표도시:아테네, 스파르타)그리스는 서양문화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역사적으로 교육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특징 :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시민공동체 문화가 발달한 나라,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 분야에서 수월성 (개성, 장점→다분법적사고→지덕체강조)을 갖는다고 하는 인간중심문화가 발달한 도시국가였다.2)스파르타의 교육국가 이념 : 군국주의 건설과 완성→교육목적: 인내심 있는 용감한 병사 양성/교육목표: 호전시민양성교육특징 : 정신적 교양경시, 극기와 인내심, 힘, 용기 인적자원형성에 초점맞춤. 어린이=국가의 중요한 재산.리쿠르구스(Lycurgus)법에 따라 국가통제가 결혼의 간섭부터 시작됨. 30세 때 국가에 의해 결혼.유능한 군인이 교육을 담당⇒⇒⇒철저한 군국주의 독재사회 교육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3)아테네의 교육아테네 인구 : 자유민, 노예, 외국인으로 구성, 귀족제→펠로포네스 전쟁→직접민주제(민주적성향↑).교육특징 : 7세전까지 가정교육, 7세 이후 파이다고고스라는 교양과 지적능력을 갖춘 선생님이 교육담당.수월성 주장→다분법적 사고. 교육목적 : 과학과 인문과학 배양최고의 교육목적 : 폭넓은 교양교육을 갖춘 대중연설가, 지적으로 자유로운 자유 시민 양성3. 그리스의 교육사상그리스교육의 성격:합리주의(자유로운 탐구가능) / 중시:신체적 우수성, 지적 탁월성의 조화로운 발달그리스교육의 목적:심신이 조화롭게 발달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활 기법을 가르쳤다는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와 고르기아스(Gorgias), 음절의 수와 리듬, 운율을 강조한 히피아스(Hippias), 어원과 동의어, 언어의 정확성을 강조한 프로디고스(prodicos)가 있다.※변질⇒개인주의적 성향(입신양명)↑, 주관주의, 상대주의(절대적 진리의 보편타당성을 부정)2)소크라테스의 교육과 사상-생애서구 인간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역사상 최초의 전문 직업 교육자이면서 진리의 보편타당성을 전한 인물이다. 그의 출연으로 인해 이전의 자연현상논의에서 인간생활의 성격과 행위를 분석하는 데로 철학의 초점이 옮겨졌다. 후에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하여 불경죄로 기소되었다.-소크라테스의 교육사상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플라톤의『대화편』등에 의해 전해진다. 소피스트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 라는 극도의 개인주의에 반대하여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라는 한마디로 인간의 무지함을 자각하면서 진리는 절대적이며 보편타당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또한 분석과 비교 등의 방법론을 제시하여 지식과 덕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라고 보고 ‘지덕합일’을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식을 실천하는데 2가지 방법론(반어법, 산파법)을 제시하였다.①반어법 (반어법 최초 등장한 문헌: 플라톤의 『menon』)모순 없는 사고, 논리학을 통해 소피스트들의 무지함을 자각하기 위해 만든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이다.*구성 : P의 주장→P의 주장과 반대되는 Q, R제시→Q, R이 모순됨을 인정받음 : 모순발견→무지지각②산파법 (기존지식→새로운 지식을 얻도록 돕는 방법/ 참된 지식:인간의 무의식 상태에서 끌어내는 일)소크라테스의 인간관 : 이미 영혼은 감각적 지식(잠재적 개념, 지식)을 가지고 있다-영혼윤회설영혼윤회설에 따라 이미 가지고 있던 개념, 지식을 출발점으로 하여 깊은 사유를 통해 논리적인 참된 지식을 형성하는 것을 ‘산파법’이라고 한다.3)플라톤(Platon)의 교육과 사상-생애소크라리를 탐구하는 삶을 주장하였다.즉, 플라톤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진선미의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데아의 실현에 두고, 이를 위해 인간을 도덕적으로 인도하고 유능한 철인(哲人)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보았다.②회상설(상기설)플라톤은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태어난 후 여러 가지 경험으로 정신이 육체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고 완전한 이상(이데아)에 대한 지식은 무의식 속에 억압되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그러한 것을 의식 속으로 재생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회상설인데 형상을 추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회상에 의해 형상을 인식하게 되고, 영혼이 형상을 회상하기 시작하여 학습자 스스로 사고과정을 일깨워 잠재의식을 깨우면서 탐구, 발견,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을 플라톤은 회상설이라고 하였다.③철인교육사상(철학자교육사상)『국가론』에서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교육이다.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할 때 비로소 이상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면서 철학자를 선발하고 양성하여 국가를 통치해야한다고 보았다.*삼분법에 의한 계층 구조화.시민을 통치자(이성), 생산자(욕정), 군인(위계)으로 나눔으로써 올바른 사회의 구조를 규정하려 하였다.이성은 절제, 용기, 지혜가 욕정은 절제의 덕이, 위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보고 각각의 역할이 잘 분담될 때 이상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플라톤이 제시한 탐구학습학습자 스스로 문제를 탐구하여 해결하고 배우는 학습을 말한다.탐구학습과정 : 문제제기→가설설정→실험설계 및 조사설계→자료수집→가설검증→문제해결이때 교수자는 상담자, 촉진자, 탐구방향조정자, 강화제시자일 뿐이다.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교육과 사상-생애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서 서양지성사의 방향과 내용에 큰 영향준 인물이다.-아르스토텔레스의 교육사상그는 논증적, 분석적이면서 현상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고 경험적, 현실적인 것을 중심으로 사색하였다. 또한 사물의 본질은 개개 사물에 내재하며 사물을 떠난 본질은 있을 수 없다는 실체론을 주장하신을 중시하였으며, 교육목적, 내용, 방법(교권주의)까지 신 중심이었다.②고대 그리스교육사상:인문주의기초 이성도야중시,주지주의↔중세교육사상:아동의 종교적 정서도야가 목표, 주정주의2)기독교 교육기관기독교는 그 사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기관을 문답학교(catechumenal school), 고급문답학교(교원양성기관), 본산학교(cathedral school,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함, 스콜라철학의 온상지)로 크게 정비하였다.3. 수도원주의와 스콜라철학1)수도원주의(육욕, 현세, 향락 등을 거부, 수도원에 고립되어 영적정신의 안정된 생활을 도모하는 종교운동)수도원주의를 발전, 실천에 옮긴 이태리의 성 베네딕트에 의해 최초의 수도원이 몬테카시노 산 정상에 세워졌다. 그는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을 규제한 계율 73가지를 만들었으며, 그 수도원은 다음의 3대 서약을 갖는다.①순결(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애정을 단념) ②청렴or빈곤의 이상(물질적 이해관계를 초월) ③복종(정치로부터의 초월)이후 유럽에서 많은 수도원 창설⇒고대 학문, 문화를 보존하는 중심역할과 수도원 사상을 배양, 전파시킴.2)스콜라철학과 교육스콜라철학이란? : 중세 기독교 교리를 진리로 삼고 그것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아르스토텔레스 철학을 결합시켜 교리를 정당화한 것, 목적은 신앙과 이성의 결합. 14세기 힘을 잃음.등장배경 : 가톨릭의 중세사상 지배 but, 십자군 원정실패+동서 문화 교류=기독교를 더 이상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함⇒기독교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할 필요에서 스콜라철학이 등장.4. 기사도 교육1)기사교육의 특성봉건제도의 성립→“중세의 꽃”이라 불리는 기사계급(knight)출현→기사계급의 특유 생활방식 기사도(chivalry) 확립.기사정신 : 신(기독교 신사로서)과 왕(봉건군주의 전사로서)과 부인(존중)에 대한 봉사를 중요시 여김.기사가 약속한 3가지 맹세 : 신앙의 서약(교회), 충의의 서약(봉건군주), 의협의 서약(부인)2)기사교육 단계와 내용기사교육을 위한 형파리대학(교수중심/신학), 사렐노대학(학생중심/의학)*중세 대학의 3대 특권 : ?교수와 학생의 병역, 부역 및 세금 면제 ?대학구성원의 범죄에 대한 자체 내의 재판권 ?학위수여 권리2)시민교육 발달(대학의 발달→시민교육 발달)상공업, 도시발달→재력&부력을 갖은 제 3계급, 신흥계급 형성→새로운 형태의 교육형성필요→시민, 도시학교 등장상류계층을 위한 시민학교 : 영국의 문법학교(grammer school), 공립학교(public school), 독일의 라틴어학교(Latin Schule)제 5장 문예부흥과 교육1. 문예부흥과 인문주의어원: 비잔틴문화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자연의 근원으로 복귀하려는 것으로서 리나스시타(renascita,재생)에서 유래.인간의 발견, 인간의 재생, 인간생명의 재탄생, 인간성의 발견은 중세 기독교의 고정적 문화형태에 대한 근대적인 문화형태의 반항운동으로서 나타났다. 그것은 “보다 신적인 문학”으로서의 중세신학 대신에 “보다 인간적인 문학”을 애호하는 휴머니스트에 의해서 인도되었다. 이로써 르네상스는 인문주의를 표출하였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근본사상은 인문주의(인본, 인간주의)이다.(인간=소우주, 다방면 존재로 바라봄.)2. 인문주의 교육(문예부흥 근본사상 : 인문주의, ∴문예부흥의 교육=인문주의 교육)1)인문주의 교육의 내용-인문주의 교육의 3가지 형태①자유교육-순수한 인문주의 교육(초현실적, 초자연적, 기독교적 이념과 사상과 목전의 직접적 실리주의에 반대)인문주의 본래 뜻에 따라 교육을 교양교육, 지적 자유로움을 증진시키기 위한 지·덕·체의 통합교육이라고 보았다. 덕과 지를 달성케 하는 자유과를 배움으로서 선천적 능력을 계발, 단련, 발달시키는 자유교육을 주장하였다.②고전 중심의 교육인문주의 본래 뜻에 따른 인문주의 교육 목적=풍부한 인간적 교양, 수단=고전문학의 학습→but, 교육에선 적용X→문예부흥의 성격상의 변화→고전문학(새로운 정신, 생활의 필수적 수단으로 행해짐)의 학습 자체가 목적이 됨.∴고어와 고전문학을 주요 관심사로 삼
< 댄스테라피(무용요법, 무용치료)의 선구자들>댄스테라피(무용요법, 무용치료)의 선구자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론적인 배경과 치유방법을 사용하였다.?1. 마리안 체이스(1896~1970)?로드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마리안 체이스는 20세에 미술학교에 진학하였는데, 다이빙 사고로 등과 허리를 다쳐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그녀의 등과 허리의 힘을 기르게 하기 위해 무용을 권유하였고, 그 후 미술과는 다른 창작예술인 무용에 전념하였으며 이것이 그녀에게는 '의사소통의 진정한 의미'가 되었다. 체이스는 20대 후반에 뉴욕의 데니숀 무용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여기서 그녀는 마사 그레이엄과 도리스 험프리에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후 마리안 체이스는 데니숀 무용학교에서 교사와 안무가로 함께 연구를 했는데 1920~1940년 초까지는 현대무용을 가르쳤다.그녀는 인격이 여러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고 강조한 설리번(sulivan)의 정신의학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춤의 상호작용 측면을 치료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924년 성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춤은 의사소통이며 집단 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체험이 신체 의식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주고 정신적인 면에서 치료에 효과를 준다고 하였다.또한 1946년부터는 정신치료 시설의 하나인 체스넛 로지에서 25년간 댄스테라피스트로 근무했는데, 이곳은 라이히만이 정신병 환자들과 함께 전통적인 심리분석 실습을 연구하면서 혁신적으로 정신치료작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였다.1960년대 초에는 뉴욕의 음악학교에서 댄스테라피스트를 위한 최초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1966년 미국 댄스테라피협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게 된다.2. 트루디 슈프(1904~1999)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다가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과 치유작업을 하던 트루디 슈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용수이자 팬터마임 예술가로서 인간의 표현에 대한 깊은 이해력과 훌륭한 유머감각을 정신치료 병동에서 활용하였다. 1930년대 스위스 취리히대학 정신과 병원의 주임교수인 브로이에르는 무용가이며 연극인이고 팬터마임을 하던 트루디 슈프에게 환자들을 위해 무용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트루디 슈프는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케르뮤셀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집단치료와 개인치료를 하게 된다. 케르뮤셀은 트루디의 팬터마임 공연을 보면서 인간행동의 본능적인 파악이 어떻게 정신치료에 이용되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치료의 새로운 길을 찾기위해 트루디를 불러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나서, 병원 환자들의 심리치료를 맡긴다.트루디는 이곳에서 개인치료의 첫 번째 내담자인 마리라는 신체건강한 흑인을 만나게 된다. 트루디는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마리의 곁에서 보조를 맞추며 똑같이 걷고 움직였다. 2주가 지난 후 마리의 움직임에 트루디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을 때, 마리가 손을 뻗어 잠깐 동안이었지만 트루디의 손을 잡았다. 이런 한 달간의 움직임 소통을 통해, 거의 말도 없이 늘 분노에 찬 움직임을 하던 마리는 트루디에게 자신의 세계를 열고 가슴을 내어 주게 된다. 이것은 움직임을 통한 무의식적인 의사소통과 개입에 의한 한 달의 작업으로 다른 사람이 비로소 마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경험을 보여 주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 후 마리는 집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집단에서의 작업은 참여자들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그에 따라 반응하는데, 이런 집단 작업을 하면서 삶의 상황이 표현되고 소속감과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을 통해 자신만이 그 문제를 혼자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혼자만의 고치에서 벗어나 성장으로 발을 떼는 것이다.3. 메리 화이트하우스(1911~1979)댄스테라피스트인 메리 화이트하우스는 미국 서부 해안에서 활동하면서 정상적인 신경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즉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과의 개인치료와 집단치료를 했는데 주로 무의식적인 것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1950년대 작업을 시작했던 그녀는 어느 날 마리안 체이스의 댄스테라피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이 기사를 통해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그녀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다른 사람들도 무용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수준으로 다가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화이트하우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무용을 배우는 제자들과 주로 작업을 하였다. 제자들과 작업을 할 때는 무의식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지만, 병원에서는 내담자들의 허약한 에고(ego) 구조 때문에 감정적인 지지와 좀 더 구조화된 형태의 표면적인 움직임을 강조하였다.
《춘향전》의 장르전환에 대한 고찰-영화와 무용을 중심으로-목차Ⅰ. 서론Ⅱ. 본론1. 《춘향전》개요2. 영화와 춘향전1) 한국 영화사에서의 《춘향전》2) 영화 (2010, 김대우)3. 무용과 춘향전1) 한국의 무용사에서의 《춘향전》2) 무용 (2008, 국립무용단)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동정호 칠백 리 달빛 아래 무산같이 높은 사랑…당나라 명황제가 양귀비 만난 사랑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예쁘고 고운사랑…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이것은 판소리계 소설《춘향전》에 실린 일부분으로,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나누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성춘향과 이몽룡이 오월 단오일에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신분적 차별과 이별, 그리고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여 극적으로 행복을 얻게 된다는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야기인 춘향이야기는 조선후기 판소리에서 판소리계 소설로 정착되어 텍스트화 되기에 이른다.영원한 사랑의 고전《춘향전》은 우리 전통예술사에 360년이란 궤적을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가 깊은 춘향전은 근대의 시기에 들어와서 판소리라는 장르적 울타리를 넘어서 소설로, 창극으로, 연극과 영화로, 방송 드라마와 오페라, 무용 등의 근대 예술의 형태로 빈번하게 재창작되어 왔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다양한 문화예술장르에서 이루어진 수백 번의 리바이벌들 중에서, 영화와 무용 장르로 전환된 사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춘향전》개요춘향은 단연 한국고전을 대표하는 여인이다. 판소리 춘향가를 비롯하여 소설 《춘향전》은 물론이고, 한시며 잡가에서도 춘향주제는 줄곧 차용되어왔다. 이후 신소설 )나 같은 시기 창극에서도 재창작되었다. 사정은 현대에 이르러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소설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코미디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의 전 영역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향적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자.2. 영화와 춘향전1) 한국 영화사에서의 《춘향전》한국 영화사에서 춘향전은 총 17차례 영화화되었다. 단일한 작품으로는 가장 많이 영화로 제작되었던 것이고, 그 시기는 1923년부터 2000년까지 80여 년에 달하며, 한국 영화사의 의미심장한 궤적들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춘향전이 처음 영화화 된 것은 (1923, 하야카와 고슈{조천고주(早川孤舟)}이었고, 최초의 발성영화도 (1934, 이명우)이었으며, 한국 전쟁 후 피폐해진 영화산업을 부흥시킬 계기를 마련한 것도 (1955, 이규환)이었다. 최초의 칼라 시네마스코프를 실험한 것도 (1961)에서였으며, 최초의 “70미리 대형 색채영화가 될 뻔한 작품도 역시(1967, 김수용)이었다. 최초로 판소리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한국 영화의 오랜 숙원이었다고 일컬어지는 ‘칸느’ 영화제 입성의 발판을 마련한 (2000, 임권택)에 이르면, 가히 한국 영화사에서 ‘춘향’은 여러 의미에서 ‘노다지’ 역할을 해왔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은밀한 色(색), 농익은 해학, 과감한 상상으로 ‘몽룡이 아닌 방자가 춘향을 품다’라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춘향전》 캐릭터들을 새롭게 뒤집은 영화 (2010, 김대우)이 개봉하였다.이처럼, 《춘향전》은 한국 영화사와 그 맥을 함께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사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꾸준히 재탄생된 ‘춘향 이야기’는 아마도 영화감독이 영화제작과 연출에 있어서 어느 쪽에 포인트를 두느냐와 극적 구성과 배우들의 흡인력, 시각 이미지와 소리에 등에 따라 그 흥행이 결정되었을 것이다.그럼 지금부터는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중, 최근에 개봉되어 개봉 열흘 만에 ‘140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순풍을 타고 있는 영화 (2010, 김대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2) 영화 (2010, 김대우)2010년에 개봉된 영화 은 고전 '춘향전'의 미담을 뒤집은 사극영화로 춘향을 사랑한 방자, 출세 지향가 이몽룡, 사랑과 일 모두 성취하려는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다음은 기존의 ‘춘향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주 등장인물들의 역할 및 특징이다.성춘향양반의 서녀(庶女)로서 기생 신분으로 태어난다. 관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 면성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서 일부종사(一夫從事)를 바라고 이를 성취한다. 그리고 끝내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어 정절의 여인으로서 보다 높은 신분으로 올라서게 된다.특히, 일부종사를 외치는 정절의 여인으로 대표되는 성춘향의 특징은 변학도의 수청요구 거절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절개를 지킨다 함을 본받고자 하는데, 여러 차레 분부가 이러하오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정절이 있는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못하오니 처분대로 하시오…」)이몽룡명문 가문의 자제로 봄날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춘향과의 신분적 차이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로, 춘향을 위하여 암행어사 출도를 하면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투쟁을 한다. 춘향의 신분 상승에 도움을 주면서 서민과 양반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이몽룡의 풍채에 대해 《춘향전》의 이몽룡이 나귀를 타고 봄 경치를 즐기기 위해 광한루에 간다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잘 묘사되어 있다.「…이도령이 나귀 타러 나오는 모습을 보자. 옥같이 깨끗한 얼굴, 신선 같은 풍모에, 숱이 많고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변학도부패한 지방 수령의 전형으로, 어떤 인물보다도 「춘향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방해하고 일방적으로 춘향에게 수청을 요구하였다가 거절당하자, 무력으로 춘향을 이기려고 하는 전형적인 악인이다.월매퇴기로서, 딸인 춘향을 볼모로 하여 양반에 빌붙어 살려는 기생어멈의 전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방자와 향단이각각 이몽룡과 춘향의 하인들이다. 춘향과 이몽룡을 맺어주는 역할을 한다.)이와 같은 ‘춘향 이야기’에서의 등장인물의 역할 및 특징이 영화 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다르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3. 무용과 춘향전1) 한국의 무용사에서의 《춘향전》판소리계 소설인《춘향전》의 ‘춘향 이야기’는 앞서 살펴보았던 영화장르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용장르에서도 활발하게 재탄생되어왔다. 그럼, 지금부터 무용사에서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창작된 무용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춘향 이야기’는 “Mr.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2개의 작품이 창작되었다.먼저 첫 번째로, 200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정재만(60) 숙명여대 교수가 무용인생 45주년을 맞아 기존 고전 《춘향전》을 종전의 흐름과는 완전히 바꿔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고전 해학 무용극 을 창작하였었고), 두 번째로, 춘향을 지고지순한 전통적인 여성상이 아닌,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무용극, 이 창작되었었다. 2008년 정재만에 의하여 창작된 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이 작품은 기존의 전통 춘향전이 가진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 현대의 사회상 혹은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재해석되어 재구성된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2010년 4월에는 인천시립무용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춘향전에 우리 전통 무용을 입힌 '(안무·홍경희, 연출·최성신)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0년 6월에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퓨전 무용극 춘향전 가 옥포대첩기념공원 특설무대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이 시대 청소년의 시선과 사고방식과 문화로는 이해되지 않는 생각과 이질감을 찾고 신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사랑과 문화,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고민들을 춘향전에 등장하는 청년기의 인물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마이웨이로 설정하고 구성, 안무했다.이 외에도 다양한 무용단체들에 의해 사설공연 등에서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한 춤이 추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널리 추어지고 있는 춤으로는 를 들 수 있다. 는 춘향이와 이도령이 등장하여 사랑을 나누는 뜌엣 춤이다. 이 작품은 승무, 태평무, 살풀이와 함께 정말 수많은 무용단체들수호, 그리고 현재 배 정혜와 같이 무용계의 쟁쟁한 인재들이 거쳐지나간 자리이다.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국립무용단이 명실 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단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그럼 지금부터 국립무용단에 의해 창작된 의 창작과정 및 역사와 고전 《춘향전》과 을 비교하면서 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우선, 의 창작과정과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최고의 무용단이라 할 수 있는 국립무용단에 의해 2008년 공연된 은 사실은 2008년에 처음 탄생된 것이 아니다. 무용작품은 2006년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사업의 주 사업으로 선정되어 2008년 까지 총 3년에 걸쳐 수정되고 보완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은 2001년에 선보였던 과 2002년에 ‘춘향전’을 원전으로 하여 무대에 올렸던 을 보완하여 2006년,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작품으로 선보인다는 전제하여 국가브랜드 작품으로 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2008년, ‘춘향’이라는 한국의 대표 캐릭터를 한국 춤으로 표현, 세계적인 보편성을 이끌어 내고 검증 받겠다는 각오로 국립무용단 50여년 역사에 걸맞은 고정 레퍼토리화 작업의 결실을 내어놓게 된 것이다. 2001년 공연된 에서는 4명의 춘향이 등장하여 마음속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한다. ‘춘향전’의 현대적인 재해석인 셈이다. 한편, 2002년 발표한 은 원작의 전개나 고전적 춤사위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은 퓨전 춤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명의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2007년에 다시 공연하였다. 2008년에 선보인 은 세 번째 으로 2007년판의 업그레이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온 은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춤 레퍼토리를 만들고자하는 국립무용단의 의지와 국립극장의 국가브랜드사업의 취지하에 창작되어졌다.두 번째, 《춘향전》과 을 비교하여 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의 내용은 고전《춘향전》의 젊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전《춘향전》은 사랑과 절개, 당대 제도적 모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