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사 ‘이다’에 대하여목 차1. 서론2. 본론2.1 ‘이다’의 의미2.2 ‘이다’의 통사구조2.3 ‘이다’의 서술격 조사설2.4 ‘이다’의 용언설(=지정사설)2.5 ‘이다’의 접사설3. 결론1. 서론초등학교 시절 읽기, 쓰기, 듣기?말하기를 배우다 중학교로 진학하면 세 가지를 통합한 국어를 배우게 된다. 단순한 문장 만들기 혹은 읽기 등이 아닌 국어 본연의 학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품사를 배울 때 보통 8품사를 배웠다.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용언(동사, 형용사), 관계언(조사), 수식언(관형사, 부사), 독립언(감탄사)로 나눠진다. 그렇게 배워온 품사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 배움안에서 ‘이다’는 서술격조사였기에 지금까지도 서술격조사로 기억하고 공부해왔다. 그런데 대학을 오고 나니 새로운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다’에 대한 다양한 가설로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것이다.흔히 서술격 조사로 평가되고 있는 ‘이다’는 국어에서 그 범주적 성격 자체가 끝끝내 논의의 대상이 되는 어휘다. ‘이다’가 이끄는 문장들이 구조적으로 동질적이지 않다는 현실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명사의 서술어를 구성하는 ‘이다’의 문법적 지위에 대한 논쟁은 국어학 초기 단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아 왔다. 초기 논쟁은 이른바 용언설(=계사설, 지정사설)) 과 서술격 조사설로 압축된다. 그리고 후기 논쟁에서는 접사설이 새롭게 등장하여서 삼파전의 양상을 보여왔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학교문법에서는 ‘이다’를 서술격 조사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 인해 조사설이 우세하였으나, 생성문법의 도입 이후에는 두가지의 이론으로 양분화 되었고, 지금은 접사설까지 3가지로 나뉘게 된 것이다.이러한 ‘이다’의 논의는 형태론을 중요시하는 후기 생성문법의 전개로 ‘이다’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양상을 갖게 되었다. 1985년 고창수 교수는 접사 체계를 통사적 접사와 어휘적 접사를 양분하여, ‘이다’의 ‘이’가 통사적 접사로서의 용언화(동사화)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내’는 NP2 ‘심판’보다 넓다. 이때의 ‘이다’는 ‘내’가 ‘심판’의 범주에 포함되는 요소라고 ‘지정’해 주는 의미를 갖는다. (2나)의 경우는 더욱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나)의 NP1 ‘호박꽃’은 NP2의 ‘꽃’의 한 종류로서 그 들은 하위어와 상위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NP2의 외연이 NP1의 외연보다 넓음을 알 수 있다.이제 NP2가 개체성 명사가 아니고 속성적 명사인 경우를 보면(3) 가. 이 방이 엉망이다.나. 건강이 제일이다.(3)에서 각각의 NP2 ‘엉망’과 ‘제일’은, 개체성 명사가 아닌 속성적 명사로서 외연의 크기를 갖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NP1 과 NP2의 외연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이때 ‘이다’는 NP2가 NP1 에 대하여 ‘특성이나 성질을 부여하거나 또는 지정’하는 의미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이와 같이 볼 때, ‘이다’는 NP1 과 NP2의 의미적 관계에 의해서 ‘동일’, ‘포함’, ‘속성 지정’의 의미를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일’, ‘지정’ 그리고 ‘속성 지정’의 의미들은 서로 구분되어 ‘이다’의 어휘 내항에 의미적 자질로 기록되어야 할 만큼 크고 뚜렷한 의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의미들 사이에서 상호간의 연관성을 추출할 수 있고 또 ‘동일’d도 넓은 의미에서는 ‘지정’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4) ‘이다’의 의미NP2가 NP1의 특성을 짖어하여 서로 일치함을 의미한다.(4)의 의미 특성을 갖는 ‘이다’는 두 명사항 사이에 성립하는 ‘동일성 지정’의 관계를 표시해 주기 위한 형식적인 용언이 된다. 그리고 ‘이다’의 이와 같은 의미적 불완전성이 ‘이다’를 타어휘에 의존적이도록 만들고, ‘이다’는 이러한 의존성의 해소를 위해 표면구조에서는 언제나 둘째 명사항 또는 다른 어휘와 결합하여 서술어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서 본 ‘이다’는 명확하게 ‘용언’ 혹은 ‘서술어 조사’ 등 그 분류가 서술어구를 형성함을 보여준다.2.3 ‘이다’의 서술격 조사설지금부터 ‘이다’ 구성의 ‘이’를 ‘-이-’나 ‘이-’ 또는 ‘-이’로 나누어 표시하기로 한다. 그 이유는 그 표기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이-’의 표시는 용언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고, ‘-이’의 표시는 서술격 조사를 의미하는 경우를 가리키고, ‘-이-’는 체언을 용언화하는 파생접사로서 파악하는 입장을 말하기 때문이다.)논의에 핵심을 위해서 우선 ‘-이’가 서술격조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이러한 주장의핵심은 ‘이다’의 구성 ‘-이’를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주격조사 ‘이/가’와 같은 거승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만약 여기서 ‘-이’가 서술격 조사로서 주격조사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면, 몇 가지 문법적인 현상들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문법적 현상들을 점검해보면서 진위여부를 밝혀보자.첫째, 주격조사 ‘이/가’는 선행명사의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교체되는 변이형태인데 반해, ‘이다’의 구성 ‘이’는 ‘-이’로만 변형없이 수행된다.(5) 가. 교수님이 너를 부르셔.나. 교수가 너를 보자셔.다. 영희는 선생님이다.라. 영희는 교수이다.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5가,나)의 주격조사는 선행명사가 모음으로 끝나면 ‘가’를 자음으로 끝나면 ‘이’를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다.라)는 어말음이 어느 것이든 관계없이 수행된다.둘째, ‘이다’의 구성의 ‘-이’가 서술격 조사라면, 왜 동일 부륭를 형성하는 격조사류 다음 선어말어미와 문말어미 ‘-다’가 붙지 못하는가.(6) 가. 철수는 훌륭한 학생이었다.나. 내가 꽃을 준 것은 민수에게었다.다. 내가 영희를 처음 본 것은 그 애 집에서었다.라. 민수가 좋아하는 사람은 영희를었다.위의 예문을 보면 (6가)의 경우 이 서술격조사가 붙은 명사구 [훌륭한 학생]에 선어말 어미 ‘-었-’과 문말어미 ‘-다’가 통사적으로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올바른 한국 문법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용 어미가 붙을 수 있는 용언 어간 상당의 요소가 어미에 선행해 주어야 하고 그것이 ‘이-’라는 것이다.용언설은 ‘이다’ 구성의 논쟁사에서 커다란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지정사나 잡음씨라는 별도의 범주로 규정한 것은 아마도 ‘이-’가 다른 동사나 형용사와는 달리 다양한 통사적 기능 요소와 결합하는 어휘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목정수(2003)는 ‘이다’가 ‘기능동사’라고 주장하였다. 즉 특정 동사로 집어 말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다’의 동사성(=용언성)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품사는 동사라는 것이다. 그 동사라는 선을 유지함녓, 하위적으로 통사 ? 의미적인 차원에서 기능에 입각하여 분류하자면, ‘이다’는 본동사가 아닌 ‘기능동사’로 규정한다는 것이다.)둘째, 의미적인 차원에서 비자립적인 양상을 보이고, 어휘적 차원의 사실적 의미가 딱히 잡히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이다’는 기능동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술구조의 의미적 중심은 ‘이다’에 선행하는 요소(명사, 형용사, 부사, 조사구, 활용형)의 성격에 따라 다른 성분들의 논항 관계가 좌우되는 것이기에 ‘이다’ 구성의 전체적인 문장 구조는 바로 의미의 핵인 ‘이다’의 선행 요소에 달려있게 된다.(9) 가. 철수는 학생이다.나. 철수가 초콜릿을 준 것은 바로 영희에게였다.다. 철수가 때린 것은 막대기로였다.라. 그가 성공한 것은 노력을 통해서였다.위 예시 (9가)는 ‘학생’이란 명사가 홀로 나와 있고, (9나,다)는 ‘영희에게’, ‘막대기로’ 라는 소위 부사어인 통사적 기능의 어구가 보인다. 그리고 (9라)는 동사어간 ‘통하-’에 소위 전성어미 ‘아, 게, 지, 고’ 중의 하나인 ‘아’가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 ‘서’가 붙은 것이다. 언뜻 보면, ‘이다’ 구성의 ‘이-’앞에 이질적인 요소가 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9가)의 문장을 보면 ‘학생’이라는 명사만이 나타나 있지만, 이는 ‘보어’라고 명)분명 용언설이 한국어의 동사구 확장구조에 부합하고 언어직관에 부합하지만, 반대 입장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입자이다.2.5 ‘이다’의 접사설.논쟁의 후반기쯤 등장한 접사설 중 ‘파생접사설’을 이야기해보자.초기 논쟁에서 ‘이’가 파생접사로 다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구조주의적 형태론의 입장에서 ‘이’의 파생성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2) 가. 철수는 착한 학생이다.나. 철수는 열심히 공부한다.(12가)에서 ‘이’가 단순한 의미의 파생접사라면 ‘착한’과 같은 관형어를 단순히 허용할 수 없으며, 이는 (12나)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형태론과 통사론의 공조를 모색하는 후기 생성문법 관점에서는 ‘이’가 ‘착한 학생’과 같은 구절적 단위에 접미 된 파생접사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엉망이다’, ‘속삭이다’는 어휘부의 항목으로 등재될 수 있는 것으로, 단어 형성규칙의 견지에서도 ‘이’의 파생접사적 지위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른바 조사설이 그것이다. 단어 범주의 하나로서 조사라는 품사는 대체로 형태론적인 특성만을 바탕으로 비슷한 무리들을 뭉뚱그려 넣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이’를 넓은 의미의 접사로서 간주하려는 풀이법은 사실은 오랫동안 학교문법의 지배적인 견해가 되어 왔다. 이른바 조사설이 바로 그것이다.(11) 최 영수는 최 길수의 아들이다.위의 (11)에서 ‘최 길수의’가 ‘아들’을 수식하는가 아니면 ‘아들이’를 수식하는가, 또는 ‘아들이다’를 수식하는가? 사실상 학교문법에서는 이 물음에 답해줄 수 없다. 또, 학교문법에서는 이럴 때 이 문장의 서술어는 ‘최 길수의 아들이다’ 밖에 있을 수 없다고 그친다. 조사설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이다’ 앞에서 ‘이다’에 의해 서술되는 성분은 단어 단위뿐만 아니라 구 단위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개념으로 접사에 포섭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어’로서, ‘조사’라는 임시방편적인 이름이 고안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를 단어로 보면서도 방금 예에서 ‘이다’ 자체가 서른다.
모더니즘현대문학의 여러 경향 중에서 특별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유파.1. 모더니즘의 역사적 전개모더니즘은 부르주아적 근대성이 병폐적 모순을 드러낸 일정한 단계에 나타났다. 이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에 근거한 예술적 관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더니즘이 재현원리 대신에 새로운 미학적 혁신의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총체적 현실인식이 가능했던 19세기(리얼리즘 시대)와는 달리 세기말의 자본주의의 외적팽창은 내적균열을 초래하여 현실의 파편화와 사물화 현상을 낳았다. 단편적 삶은 매개로 총체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모더니즘이 재현원리 대신에 다양한 미학적 혁신에 경도하게 만들었다.※입체파 : 전통적인 원근화법을 무시한 대신 단편화된 대상을 여러 면에서 바라보고 종합하는 혼합된 구성방식 사용.미래파 : 구문이 파괴되고 문장이 해체된 자유어의 사용을 주장. 이성에의 반항을 따르면 서도 비합리성 속에서 새로운 인간적 열정을 찾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파괴와 폭 력을 우상화하는 데로 나아감.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성행)표현주의 :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의 재현원리 대신에 추상적인 내면적 표현을 지향하는 것. 표현주의의 작가 - 도스토예프스키 (독일에서 성행)※ 다다이즘 : 입체파와 미래파의 파괴지적인 정신을 이어받아 탄생. 과학적 진보와 합리성 이라는 부르주아 근대성 이념에 회의가 일면서 다다이즘은 그에 근거한 예술 적 관습을 철저히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감.▷ 우연기법 : 신문을 오려서 바닥에 떨어진 단어들을 아무렇게나 배열.▷ 충격수법 : 기존의 브르주아적 가치체계에 도전하는 반항적 예술.2. 모더니즘의 미학적 원리모더니즘의 미학적 특징 중의 하나는 여러 예술적 방법 중 유달리 다양한 형식과 기법들로 나타난다는 점. 형식주의 속에는 오히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는 잠재력이 내재되어있다. 모더니즘은 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예술적 관습을 파괴하기 때문. 재현원리를 거부함으로써 자본주의 모순(사물화, 소외)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배재한다. 모더니즘은 재현원리를 거부하는 대신에 현실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자기인식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모더니즘의 격정적이고 환상적인 형상속에는 자신을 소외시킨 현실에 대한 반항이 포함. 모더니즘에서는 인물, 플롯, 정서표현등의 내적형식보다 은유, 상징 등의 기법이나 언어 그자체가 강조된다.3. 우리문학과 모더니즘※ 우리문학 모더니즘의 역사적 근거와 특수성우리문학에서 모더니즘의 출현은 1930년대의 자본주의적 도시화 현상과 연관되어있다.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집합적 소비수단과 재생산 수단을 도시로 집중시키는 양상을 낳고 근대화라는 환상은 기법적 실험과 세련성을 추구하는 도시세대의 문학을 낳게된다. 그리고 그 도시세대를 주축으로 결성된 구인회(1933)는 모더니즘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우리 모더니즘 역시 도시에 집중된 전체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항의를 포함하고 있었다. 더욱이 우리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과 결부되어 한결 복합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 문학 모더니즘의 특수성30년대 후반의 리얼리즘의 쇠퇴는 일제의 파시즘적 탄압에 의해 강제로 빚어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모더니즘의 등장이 리얼리즘의 대체가 될 수 없었다. 모더니즘은 우리 사회의 중층적인 구조 (식민지 반봉건 사회 - 독점 자본주의)의 한 부분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리얼리즘과 병존하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병존현상이 매우 뚜렷한 것이 우리 문학사의 특수성이다. 우리 모더니즘 소설에서는 현실의 상실로 모순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내면적 미궁이 그려지지만 다른 한편 심리적 폐쇄회로의 요인으로서 현실적 삶의 파탄이 암시되고 있다. 서구 모더니즘과 구분되는 우리 모더니즘의 특수성은 리얼리즘의 파편화가 모더니즘 형식의 부분적 요인으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리얼리즘▷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태도.1. 리얼리즘의 역사적 전개▷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달.▷ 현실적과 의 예술적 방법을 포함한다.▷ 등을 근본원리로 하는 점에서 근대의 현실주의와 상응.2.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 현실에 대한 인식기능이 다른 예술적 요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리얼리즘자연주의현실올바른 전망을 가지고 활력적으로 그림비관적이고 우울하게 묘사.묘사역동적 묘사객관주의적 묘사(내적 초점화 혹은 인물시점서술)3.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비판적 리얼리즘사회주의 리얼리즘전망유토피아적 전망(막연한)낙관적 전망(구체적)근거점자본주의내부의 근대성의 원칙에 의거해 비판자본주의 외부인 사회주의 내부에전망에 의해 비판.내용사회모순의 문제제기.으로 가는 내용 및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형식의 비판적 의식을 매개로 현실인식.식민지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그에 투쟁하는 긍정적 주인공들의 형상화근대성자본주의적 근대성사회주의적 근대성4. 리얼리즘의 미학적 원리(1) 형상적 인식▷ 형상화를 통해 삶의 인식에 이르게 되는 과정.구체적 삶에 대한 ▷ 환유가 두드러지는 문맥 ▷ 서사적 유형 선호.(2)인식론 미학 by 루카치미학적으로 개별성(현상)과 보편성(본질)을 통일시키는 방법.현실의 모든 측면의 연관성, 즉 모든 매개과정과 연개과정.현상과 본질의 통일, 혹은 개별과 보편의 통일로서 설명.현실을 올바르게 형상화하기 위한 선택 및 구성의 원리.(3)가치론 미학객관현실의 의 측면과 함께 미적 주체의 가치평가적 측면 강조.5. 우리문학과 리얼리즘.시대비판적 리얼리즘사회주의 리얼리즘특징1920년대현진건「운수좋은 날」, 염상섭「삼대」등조명희「낙동강」등총체적 인식능력과사회운동의 역동성과 비례1930년대 후반채만식의 풍자소설,김유정의 해학소설 등이기영「고향」한설야「황혼」등다양한 리얼리즘 형식이 창조된 시기. 카프탄압해방기황순원「학」.이범선「오발탄」등이근영 「고구마」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시 창된 시점.60년대전관용 「꺼삐딴 리」,윤흥길「장마」등주인공의 자기인식이나관념적 사유를 통해 현실세계의 모순을 일정하게 드러냄.70년대황석영 「삼포가는 길」 조세희「난?쏘?공」등비판적 리얼리즘의 전성기, 모순된 삶의 다양한 현상을 그리는데 주력.80년대이후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정화진 「쇳물처럼」안재성 「파업」 등80년대 사회운동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다시 출현. 90년대 리얼리즘의 침체기.모더니즘▷ 현대문학의 여러 경향 중에서 특별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유파.1. 모더니즘의 역사적 전개▷ 모더니즘은 부르주아적 근대성이 병폐적 모순을 드러낸 일정한 단계에 나타남.▷ 자본주의적 근대성에 근거한 예술적 관습에 대한 저항.※ 모더니즘이 재현원리 대신에 새로운 미학적 혁신의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총체적 현실인식이 가능했던 19세기(리얼리즘 시대)와는 달리 세기말의 자본주의의 외적 팽창은 내적균열을 초래하여 현실의 파편화와 사물화 현상을 낳음.▷ 단편적 삶을 매개로 총체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모더니즘이 재현원리 대신에 다양한 미 학적 혁신에 경도하게 만듦.2. 모더니즘의 미학적 원리▷ 유달리 다양한 형식과 기법들로 나타남.▷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는 잠재력이 내재 -모더니즘은 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 하는 예술적 관습을 파괴하기 때문.▷ 재현원리를 거부함으로써 자본주의 모순(사물화, 소외)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배재.▷ 현실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자기인식적으로 드러냄.▷ 모더니즘의 격정적, 환상적인 형상 속에는 자신을 소외시킨 현실에 대한 반항이 포함.▷ 모더니즘에서는 인물, 플롯, 정서표현 등의 내적형식보다 은유, 상징 등의 기법이나 언어 그 자체가 강조.3. 우리문학과 모더니즘※ 우리문학 모더니즘의 역사적 근거와 특수성▷ 우리문학에서 모더니즘의 출현은 1930년대의 자본주의적 도시화 현상과 연관.▷ 도시화, 근대화라는 환상은 기법적 실험과 세련성을 추구하는 도시세대의 문학을 낳음.▷ 도시세대를 주축으로 결성된 구인회(1933)는 모더니즘 문학의 모태.▷ 우리 모더니즘 역시 도시에 집중된 전체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항의를 포함.▷ 우리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과 결부되어 한결 복합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남.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본 만화가 있었다. 그 만화의 제목은 ‘은하철도 999’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앞선 안목으로 그려진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기계인간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계인간이 되려고 모험을 떠나는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먼 미래. 기계인간 즉 사이보그 혹은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세상이 배경인 만화는 벌써 28년 전에 제작되었다. 어려서는 단순한 SF공상만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막연한 상상은 아니다. 벌써 21세기의 지금,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미래는 그 만화가 같은 모양이 되려는 듯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이번에 읽은 ‘내가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라는 책에서도 위의 만화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했다. 보통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던 사이보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에 대해서 이다.우선 사이보그란 특수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몸의 일부를 개조한 인간을 말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이 갖는 학습, 추리, 적응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또는 그것을 연구하는 컴퓨터 공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안드로이드란 로봇 중에도 우수한 전자두뇌와 인공피부까지 갖추어 외관상 인간과 똑같아 보일 정도로 발달한 로봇을 말한다. 이처럼 막연히 알고 있던 말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한결 이야기를 이해하고 이야기하기가 쉬워졌다.‘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에 저자 케빈 워릭은 인공지능과 제어 그리고 로봇학을 연구하고 있는 영국 대학교수이다. 다른 어떤 것 보다 사이보그가 미래사회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케빈 교수는 직접 자신의 몸에 신경계를 작용하는 기계를 장착하면서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가 되었다. 교수의 몸에 들어간 기계는 신경계에 장착되어서 움직이는 대로 기계를 움직이는 장치이다. 이 장치를 부인의 몸에도 장착하여 교수가 행동하는 것을 부인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 장치를 통해서 손, 발이 절단된 사람에게 신경계의 배열을 미리 입력한 인조기계를 장착하여 생활을 유지시킬 수 도 있고, 조이스틱조차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장착하면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줄 수 도 있다. 그리고 다리가 여섯인 걸어다니는 로봇, 일곱난장이 로봇등 케빈 교수의 연구결과는 많이 이슈를 낳았다. 이 로봇들 또한 우리 생활 속에서 많은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인공지능은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만화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이야기들이 정말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2050년이 되면 1초에 100조 개의 지시를 처리하는 로봇“두뇌”가 인간의 지능과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라는 책의 구절을 읽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을 예견한 글인 것이다. 컴퓨터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서 인공지능도 그의 한 부분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두뇌보다 수준이 낮다. 그리고 로봇(인공지능)의 움직임은 곤충수준이다. 하지만 지능은 우리 선조들의 진화 속도보다 약 1000만 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즉 50년 뒤에는 우리와 같은 수준에 도달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태어 인공지능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가능성은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해주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지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품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창작품에게 너무 많은 능력을 주고 말았다. 어쩌면 이제는 인간은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머리 안에 인공지능 칩(바이오 칩)을 넣어서 생활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두뇌인지 기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지금은 아직 신경계부분에 대한 연구 결과만 드러났을 뿐이다. 어느 정도로 인공지능이 발전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저자는 이야기의 끝 부분에 윤리적, 도덕적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한다. 본인이 동물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연구를 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서 일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염려되는 인간에 대한 문제에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옛날부터 과학자들은 종교에 의해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 인간의 영역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요즘은 언론과 사회에 의한 탄압을 받는다. 인권과 윤리적 문제라는 타이틀 앞에서 말이다. 나 또한 발전하는 과학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얼마 전에 언론에서 ‘귀차니즘’이라는 신종어를 소개했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생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와 함께 소개된 것이 센서로 움직이는 청소기였다. 스스로 쓰레기를 감지하고 청소를 하고, 배터리가 부족할 때에는 혼자서 충전까지 하는 놀라운 청소기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염려의 목소리도 컸다. 사람들이 기계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퇴보의 길로 빠지면 어떻게 하냐는 의견이었다. 게로 폰 뵘이라는 저널리스트는 기계(로봇)에 의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시대를 고도로 기술화된 석기 시대라고 표현했다. 즉 반드시 필요한 일 이외에는 기계가 하면서 인간은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시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발전한 사이보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위에서도 말했듯이 사이보그란 인간의 몸 안에 기계를 장착하는 것이다.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혁신적이고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기계이긴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대신해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없었던 사람이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된다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따른 문제점이 따른다는 것이다. 맨 처음으로 저자도 걱정했던 감염의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아도 일정기간 몸에 거부반응이 있는지 지켜본다. 그런데 사람의 장기도 아닌 쇳덩어리, 실리콘, 유리를 몸 안에 넣는 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식장치의 장착으로 인한 질병발생과 제3의 질병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기계탑재 로 인해서 우리의 생활의 변화도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 로봇 등 다른 기기와 연결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폐단도 무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뇌에 기기를 달아 자신이 조정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과연 기계를 장착한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이다. 인간의 역할이 아닌 기계를 통한 역할 등을 과연 인간이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기억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칩을 이식했다고 하자. 그럼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이 기억하는 기억은 그 사람의 기억일까? 아니면 이식된 기계의 기억일까?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정의도 흐릿해진다. 기계가 장착된 사이보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어쩌면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서 미래형 인간 혹은 20세기 이전 인간형이라는 신종어가 생겨날 지도 모르겠다.미래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15년 전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이라는 기계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통화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지구 60억 인구는 하나로 연결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과학의 발전이고 결과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는 일어나고 있다. 어느새 사람이 살면서 기기에 의지하는 정도가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미래의 사회에는 어떨까? 영화에서처럼 안드로이드가 청소도 해주고 공부도 가르치고 대신 일을 해거나 사람들이 사이보그가 되어서 간단하고 빠르게 수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도 있다. 그것도 힘들다면 간단하게 작은 기기를 가지고 많은 업무와 연락을 처리 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일들도 있다.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하면 너무나도 힘든 일을 기계가 척척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기계는 단순 작업밖에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세하고 정밀한 일까지 로봇이 해내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기계는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두려움도 가져다주고 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2030년 양자 컴퓨터는 아마 현재의 데스크탑 컴퓨터와는 달리 커피잔 모양일 겁니다. 액체 상태의 분자가 연산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이 일상화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한계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一)一. 과거의시가과거 우리사회에 노래라는 형식으로 된 문학이 있었다하면 대개 세 가지가 있다.첫째는 중국을 순전히 모방한 한시이다. 둘째는 형식은 다르나 내용으로는 역시 중국을 모방한 시조이다. 셋째는 그래도 국민적 정조를 여간 나타낸 민요와 동요이다. 그 세 가지 중에 필자의 의견으로는 셋째 것이 가장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二. 신시의선구근래에 와서 새로운 풍물이 수입되며 문체가 한문의 전제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신체시(신시)가 생겨났다. 그러면 신시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는 역사적으로 관찰할 때 명백해 진다. 신시의 기원을 말하라면 ?찬미가?를 들 수 있다. ?찬미가?는 예수교인들이 예배 보러 모일 때에 부르기 위하여 서양곡조에 맞춰서 조선말로 쓴 노래이다. 이것이 신시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우리글로 우리말로 쓴 노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오늘에 이르러서 ?찬미가?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 어사의 문예적가치가 너무도 낮은 것을 누구나 보지 않을 수 없다. ?찬미가?다음으로 신시의 형식을 가졌다 할 것이 소년잡지 등에 난 칠오조(七五調)의 신체시와 갑오이후에 유행한 창가라고 볼 수 있다. 형식상으로 ?찬미가?와 창가와 일본신체시를 모방한 조선 신체시가 조선의 한시, 시조, 민요와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신시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三. 자유시의 첫 작자오늘 일컫는 신시는 멀리 일본 동경에서 그 요람을 발견하였다. 당시 (1917년경)동경유학생기관잡지 ?학지광(學之光)?있으며 창작시를 발표한 류암 김여제군이 신시의 첫 작가라고 본다. ?만만파 파식적(萬萬派派息笛)?은 내용(정조, 사상, 감정)이 새롭고 형식에 이르러서도 격을 파한 자유시였다.四. ?창조?와 및 그 이후1919년 봄에 동인문예 잡지?창조?가 동경서 창간되었다. 그 창간호(1919년 2월)에 필자가 ?불놀이?이하 4편인가를 시험으로 발표하였다. 동시에 경도에서 발간한 기독교학생회지 ?학우?라는 잡지에 ?에튜우드?라고 제하고 역시 시험적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작품들의 내용은 불란서 및 일본 현대작가의 영향을 받아 외래적 기분에 만하였고 그 형식도 격을 깨뜨린 자유시의 형식이었다.자유시라고 말하면 자연스러운 리듬에 맞춰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말로 시험할 때 자유시의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은 시대의 영향도 있었지만 과거의 조선말 시가의 형식으로 말하면 시조, 민요든 운다는 법은 없었고 다만 글자수효가 일정한 규율을 따를 뿐이었다. 민요의 형식 중 8?8조가 가장 많았으나 단조로웠다. 그래서 일본 시가 형식인 7?5조와 5.7조를 시험해 보았으나 새로운 시를 짓기에는 합당한 재료가 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발표된 몇 편에 시험적 작품이 동기가 되어 각처에서 비슷한 형식으로 작품이 발표 되었다.五. 자유시의 앞길의 두 가지문제초창시대에 있는 우리는 기성한 시대의 세력을 가진 것이 없고 일반 독서계급의 빠른 감상력을 가짐도 없으며 시가의 형식도 없이 다만 빈손으로 새로운 문학의 창조를 꾀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민족적 정조와 사상을 바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이며 둘째는 조선말의 미와 힘을 새로 찾아내고 지어내는 것이다.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二)六. 신시의내용신시운동의 내용은 ?민족적 정서와 사상을 바로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적 표현에 내용과 형식은 논하지 못할 물건이다. 특히 형식을 극단적으로 파괴하려는 운동(다다이즘운동)이 형식에 치우치는 타락적 경향에 대한 반동, 자극제는 될지언정 얼마나 오랜 예술적 생명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프랑스의 자유시가 시가상에 상당한 지위를 차지한다면 그 형식이 파괴적임보다 내용의 영원성에 의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신시도 시 속에 실린 사상과 정서의 독창적이고 아님에 그 생명이 달라진다. 그러면 우리 신시의 내용은 과연 어떻게 생명 있는 내용이 될까.첫째, 개성에 충실함이다. 이는 개성의 표현이 없는 예술품은 생명을 유지한 예가 없음을 보여 준다. 둘째, 조선 사람의 개성에 충실함이다. 조선 사람됨의 개성의 표현은 인간의 공통성을 무시하거나 인류애를 무시하는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다. 어느 나라이건 문화가 크게 발달되면 역사상에 언제든지 한번은 모방시대를 지나지 않는 나라가 없다. 그러므로 외국문화 모방이 조선 문화상에 새 기원을 짓는 첫 거름을 의심할 수 없다. 이제부터 나아갈 우리의 길은 외국문화의 전제에서 벗어나서 국민적 독창문학을 건설함에 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발족됨이 한시, 시조가 아닌 민요와 동요라 함은 나의 전부터 주장한 바이다. 조선말로 쓴 노래가 조선 사람의 가슴에 먼저 울리기 전에 예술적 가치가 생길 것이다.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三)신시와 우리말신시운동 중 큰 목표는 우리말의 미를 표현 하는 것이다. 국민문학이란 국민적 사상을 담은 문학이란것 외에 국민적 언어의 미를 가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쳐 조선말의 진정한 미라 할까. 첫째, 외국어의 직역은 결코 조선말이 될 수 없다. 둘째, 고어의 부활이 조선말이 될 수 없다. 한때는 순전한 조선말이었고 그 시대의 조선 사람의 가슴에 고상한 정서를 일으키는 말이라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는 이상 현대조선말의 진정한 미라고 할 수 없다. 여기 조선말이라 한 것은 순전히 조선어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어근은 어디서 왔던지 현재 우리 감각에 반향을 일으킬만한 생명이 있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창작하는 것이 시인, 감상하고 소개하는 것이 비평가의 직무이다. 조선의 신시운동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민요를 기초삼아 나아가야 된다. 이것은 어느 나라 문학사를 보더라도 증명할 수 있다.조선의 신시운동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민요를 기초삼고 나아가야 된다. 그러한 경향을 다소간이라도 보인 작가를 꼽자면「백조」에 노작군, 이전「창조」지금「령대」에 김억, 김소월 두 군, 「금성」에 손진태, 백기만 두 군 같은 이를 들 수 있다.이상은 신시운동의 목표가 조선적 사상 정서의 표현과 조선적 언어의 미를 발견하는 데 있다 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우리의 나아갈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국민문학의 창성, 고로 좋은 세계문화의 공헌이라 하겠다.-주요한,『朝鮮文壇』(創刊號~3號 1924)-朱耀翰(1900~1979)호 송아(頌兒). 평남 평양(平壤) 출생. 초등학교 졸업 후 도일, 메이지학 원[明治學院] 중등부와 도쿄[東京] 제1고등학교를 거쳐 3 ·1운동 후 상 하이[上海]로 망명, 후장[?江]대학을 졸업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사 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을 지냈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실업계에 투신 하여 화신상회(和信商會) 중역으로 있었다. 8 ·15광복 후에는 흥사단(興 士團)에 관계하는 한편 언론계에 진출하여 정치 ·경제부문의 논평을 많이 썼다. 국회의원을 거쳐 4 ·19혁명 후 장면 내각 때는 부흥부장관 ·상공부장관을 역임했고 5 ·16군사정변 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