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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의 사생활> 감상문
    - -, 하나님의 걸작품에 눈뜨다제1부. 나는 누구인가A. 요 약나를 진정으로 나답게하는 감정과 생각은 바로 머리 중 가장 중요한 곳인 '뇌'에서 이루어진다. 뇌 속에는 무려 1,000억개의 뉴런이 만들어져 있으며, 학습하면서 변화하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런 사람의 뇌는 여덟 부분 - 대뇌, 소뇌, 뇌간, 대뇌피질,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전두엽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전두엽의 활성화 때문이다.이러한 뇌는 5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뇌는 자신에게 특별한 것에 집중하고, 소리를 잘 기억한다. 또한 뇌는 이야기과 기분 좋은 생각을 좋아하며, 진화한다.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변화하며 뇌 발달에 적합한 자극을 주어야만 좋은 쪽으로 발달할 수 있다.성장과정에서의 뇌의 발달을 살펴보면, 갓 태어난 0세의 아이는 피부로 전달되는 정보는 뇌의 발달 중 감정, 정서의 발달에 중요하기 때문에, 피부가 제2의 뇌라고 볼 수 있다. 만 1-2세가 되면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이 골고루 발달하며 운동능력이 발달한다. 만 3-6세가 되면 대뇌피질의 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로 아이의 언어발달이 급격해지게 된다. 만 7-12세가 되면 아이는 분류, 보존, 서열 등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12-17세가 되면 뇌는 이전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연결을 만들어 두었다가, 그 가운데 이제 필요하지 않은 상당부분을 제거해 버린다. 이 시기를 '정체감의 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면 자신의 능력이나 역할, 책임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며 이후 잘 적응해나갈 수 있게 된다.아이가 스스로 뇌를 잘 이용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부모는 공부는 스스로 하고 싶을 때 즐겁게 하도록 하며, 아이들을 잘 재워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하며 마지막으로 아이를 명랑하게 키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B. 느낀 점 & 다짐‘내도로 질적인 변화를 하기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학령기 동안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신경회로나 신경세포는 전두엽이 왕성하게 발달되는 시기, 즉 청소년기에 다 솎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 토대가 되는 것은 초등학교 시기의 경험이라는 점이 눈에 띠었다. 이러한 초등학교 시기에는 수학이나 영어, 국어 등 학습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과 사회적 규약을 가르쳐주는 시기로 삼아야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기초가 쌓일 수 있다고 주장은, 청소년 사역에만 맞추었던 초점을 유초등 사역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동기를 주었다. 앞으로는 유초등 사역도 살피며, 청소년들을 바라볼 때 아이들의 어린 시기를 분석하는 살피는 분석력 또한 갖추도록 노력해야겠다.C. 기독교 교육적 관점약 450만년 전에 우리는 원숭이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의 확연한 차이는 인간이 가진 창의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에게 창의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원숭이와 다름없는 유인원으로 지구상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책의 내용이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에 근거한 것을 보여준다. 이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물질적, 정신적 존재로만 보는 한계가 있다.제2부. 남과 여, 그들의 차이A. 요 약지금까지 많은 교육학자들은 아이가 여자 혹은 남자로서의 특성을 갖는 것은 사회학습관점과 행동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하지만 성적 발달에 대한, 최근의 경향은 그렇지 않다. 성적발달이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나 차이, 자신의 성에 대한 지각변화에 대한 인식발달을 의미한다. 처음 태어날 때는 아이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가 아이는 3세정도가 지나면서 신체적인 차이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며, 6~7세 정도에 성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진다.이 때 자기 인식의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다. 남녀의 뇌는 처음부터 다르지만, 이 시기에는 남자의 뇌, 여자의 뇌로서의 특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렇듯 남녀가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한 증거로 약지가 긴경을 제공받는다. 게다가 부모가 아이게 기대하는 능력은 대부분 여아의 발달단계에 맞춰져 있고, 학습과정 또한 그렇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 비해 못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남자아이의 발달을 종합해볼 때 여아에 비해 최소 1년에서 6년까지 늦을 수 있음을 지적하면 단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B. 느낀 점 & 다짐막연하게만 느꼈던 남녀 성차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사실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손가락의 길이를 통해 남·여성적 뇌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왼손은 약지가 길고, 오른손은 검지가 길어 독특한 17%에 속하는데 남·여성적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평소 생각과 맞아서 놀랍다. 그리고 실제로 주위 20명 정도의 손과 행동 성향을 확인해본 결과 책에 나타난 사실과 일치한 것을 보며 작은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세밀함을 느꼈다.C. 기독교 교육적 관점책에 보면 단성교육에 대해 나온다. 단성교육이란 양성교육의 반대 개념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발달 특성이나 시기에 따라 구분해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며, 남녀분리교육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실제로 어떻게 기독교 교육에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제3부. 다중지능, 나만의 프로파일을 찾아서A. 요 약다중지능이론 이란 인간의 지능은 언어, 음악,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친화 지능과 같이 독립되어있지만 상호관련 있는 8개의지능으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가드너에 의한 다중지능의 발견은 신경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신경과학을 통해 인간의 두뇌는 영역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우리의 의지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강점지능이 생겨나게 되는 데 각각의 지능은 서로 대비되는 특징끼리 묶어 다시 세 종류의 지능군으로 나뉜다. 첫째로 어떤 학습을 더 좋아하는가를 구분한 계열선호별 지능군이 있다. 언어영역 학습을 더 좋아하는 언어지능과 수리영역학습지능 등이 속한다. 가드너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나의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지능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다중지능과 관련하여, 자폐아임에도 어떤 한 분야, 또는 몇몇 분야에서 특별한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라 부른다. 이는 각각의 지능이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이다. 이때 강점인 부분을 자극하면 폭발적으로 능력이 증가하는 반면, 약점인 부분은 계속 남아 핸디캡이 될 수 있다.아이는 선천적으로 강점지능과 약점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가드너는 사람에 따라 지능의 향상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선천적인 두뇌의 능력차이가 있기보다는 두뇌계발 활동에 대한 흥미도나 적극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교육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세계곳곳의 학교에서도 적용되어 아이들의 학습성취도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다중지능을 이용한 수업방법에는 프로젝트 수업, 파드 수업, 플로 수업 등이 있다.부모가 아이의 강점지능을 알고 있다면 아이의 교육을 계획할 때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다. 그러한 노력으로 첫째,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아이가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셋째,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뚜렷해야 한다는 점이다.B. 느낀 점 & 다짐다중지능 이론은 천재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과 적절한 자극을 제공하고 아이의 능력을 믿어주며 북돋아준다면, 누구나 최고의 지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론은 능력에는 우열이 나뉜 것이 아니며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는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예전 검사에서 높게 나왔던 인간친화기능과 자기이해기능을 좀 더 발전시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로 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C.을 기독교 교육에 적용하여, 한달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연구하다보면, 실제적인 신앙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제4부. 도덕성, 작지만 위대한 출발A. 요 약도덕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이제껏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지만 시대에 따라 연구 분야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어 왔다. 근래에 와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하는 능력 등을 더해 감정이입이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행동까지 도덕성의 개념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도덕적 행동을 판단하고 이끌어내는 '정서'와 '인지'는 연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발달한다.도덕성은 일상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난다. 도덕성은 보상과 칭찬이 주어졌을 때, 권위에 의해서 비도덕적인 행동에 복종해야할 상황에 이르렀을 때 위험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도덕성에 대한 의지와 용기는 단번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하여야 한다.만 3,4세 이후 아이의 자아개념이나 정서, 인지발달 등 도덕성의 기초가 되는 요소들이 발달했다면, 만 6~7세 무렵에는 좀 더 본격적인 도덕성 발달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6-10세 아동은 '타율적 도덕성'을 갖는데, 이 시기 아이들은 규칙을 우리가 복종해야 할 권위적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변경될 수 없으며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10,11세 이후가 되면 아이는 도덕성의 두 번째 단계인 '자율적 도덕성'을 갖게 된다. 즉 하나의 규칙이 어떤 사정에 의해서나 사회 구성원의 동의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기다. 그리고 피아제가 도덕성의 발달을 타율과 자율 두 가지로 구분했다면, 콜버그는 비교적 단순했던 피아제의 도덕성 발달 이론을 좀 더 세분화해 6단계로 나눈다.이러한 발달된 도덕성이 경쟁력이라는 것은 '마시멜로'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자신의 만족을 늦출 줄 아는 아동들이 장래 학업성적도.
    독후감/창작| 2013.04.26| 6페이지| 1,000원| 조회(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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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라클 워커> 영화감상문
    - 기적 같은 믿음이 기적을 만들다교사는 촉진자, 튜터(tutor), 지도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교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중 하나가 ‘헌신’이다.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교사가 아무리 많은 지식과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한한 권능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향한 마음을 계시지 않았다면 위대한 교사로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에 나오는 앤 샐리번 선생님의 모습에서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 영화를 보기 전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의 위대함에만 감탄을 했는데, 영화를 본 후엔 앨 샐리번 선생님의 위대한 열정에 감동을 받게 되었다.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우는 교사로서의 열정은 그녀의 상처로부터 나온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보호시설에서 죽어가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 나약함과 죄책감, 그리고 수술로 약간의 시력은 회복하였지만 여전히 눈의 불편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아픔, 고통이 승화되어 헬렌 켈러를 향한 사명이 된 것이다. 위의 대사에서 헬렌 켈러를 향한 그녀의 사명을 엿볼 수 있었다.“우린 모든 것에 빛을 비춰서 이름을 붙이지 이름이란 빛으로 5천년 전도 볼 수 있어 그래서 영혼은 무덤을 모른단다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세상의 모든 걸 잠시 우리 것이 되는 모든 걸”헬렌 켈러의 변화는 샐리번 선생님의 단순한 열심만으론 가능하진 않았다. 지혜서인 잠언에서‘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 24장 6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하나의 전략과 방향, 일관된 교육 방법이 있었다. 삼중고를 껶는 헬렌 켈러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감각기관 뿐이었다. 샐리번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알려주고 주위 모든 것의 이름을 알려주려고 애를 썼다. 수십 번, 수백 번, 끊임없이, 그리고 수없이 반복시키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헬렌 켈러는 깨닫지 못한다. 수많은 반복 끝에 마침내 헬렌 켈러는 'water'이라는 이름과 실체를 깨닫게 된다. 기호에서의 기표와 기의를 일치시킨 것이다. 경험주의와 귀납법으로 표현되는 대응이론(correspondence theory), 즉 실물교수법(object lesson)에 대한 기적 같은 믿음이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4.26| 1페이지| 1,000원| 조회(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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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질서> 독후감
    1) 파스칼과 기독교철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1장, 9장 참조)2) ‘마음의 질서’란 무엇인가? (6장 참조)1) 파스칼과 기독교철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1장, 9장 참조)파스칼을 기독교 철학과 관련시키는 문제는 ‘기독교 철학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과 함께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파스칼의 철학을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해석해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철학의 의미를 규명하기 전에 먼저 파스칼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39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간 파스칼. 그의 삶 가운데 논의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시기다. 23세 되던 해 처음으로 회심을 경험한 그는 1654년, 31세가 되던 해에 성령 체험을 통해 결정적 회심의 밤을 맞이한다. 첫 번째 회심이 초자연적 진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표면적, 이성적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결정적 회심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사랑의 증인이 되게 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철학은 단순히 사변적 이론에 머문 것이 아니라 마음 또는 사랑의 철학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파스칼은 회심 이후, 자신의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열망을 갖고 변증론을 계획한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자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다가, 1662년 8월 19일 세상을 떠났다.파스칼은 전통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에 대한 비판자였으며 필요에 따라 방법론적으로 철학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추상적 논리나 개념의 놀이에 머물지 않고 사실, 곧 살아있는 변증법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았다는 것이 다른 철학자들과 구별된다. 이것이 바로 파스칼의 철학을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무엇보다도 파스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를 꼽는다면 단연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가 이론적 철학자였다면 파스칼은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세계관, 인간관, 신관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파스칼이 데카르트의 이론을 거론하는 텍스트들은 언제나 비판적이다. 파스칼의 데카르트 비판의 특성은 철학 자체의 틀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시도한다는 데 있다.파스칼을 진정한 기독교 철학자로 부를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 기독교 철학이란 무엇인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철학은 본질적으로 사유의 대상이 인간 세계 전체, 즉 종교적 신앙이 갖는 포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기독교 철학이 인격적 하나님과는 무관한 이성, 정신, 의식, 물질, 감정 등을 종교적 전제로 삼는다고 한다면 기독교 철학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고 철학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 철학의 준거점 또는 전제는 인간 지식 일반도 아니고 이 피조세계 안의 그 어떤 것도 아니며, 초월적이고 불변하신 전지하신 하나님이다. 이러한 종교적 전제는 성경과 신앙적, 신학적 해석이라는 ‘전통’에 근거하며 파스칼은 이 전통을 근간으로 해서, 이성의 자율성, 철학의 중립성을 내세우는 비기독교 철학을 비판했을 뿐만이 아니라 인간, 신, 세계, 인식, 존재, 정의, 가치, 행복 등의 철학적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주도하는 요소, 즉 정통에 대한 파스칼의 태도와 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의 핵심적인 사상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으며, 아울러 칼뱅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전통이 그의 철학적 작업을 구성하는 골격이 된다. 무엇보다도 사유의 근거로서 성경을 최우선에 놓고 단순한 책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자연과 성경에 담겨진 신적 계시의 이해는 초자연적 은총을 전제하며 그것은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경의 기록 목적은 이런 사랑의 회복, 곧 회심에 있으며 이것이 또한 변증의 목적이기도 하다. 파스칼이 ‘마음(사랑)의 질서’를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스칼의 철학을 마음의 철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파스칼의 철학에서 마음의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과 더불어 제기되는 것이 신앙과 이성의 관계성 문제다. 파스칼은 이성에 대한 신앙의 절대성과 우위성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르고, 데카르트,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성은 모든 사유의 토대 또는 원리, 전제가 되는 신앙 위에서만 그 의미와 역할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신앙과 이성의 통일성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들처럼 철학은 성경 계시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는 철학이어야만 진정한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파스칼의 기본 입장이다.파스칼은 회심 이후에 줄곧 하나만을 생각한 철학자였다. 그것은 ‘진정한 회심’, 곧 ‘마음’의 변화다. 그는 철학을 논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목표는 기독교 변증에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담론은 체계적, 이론적, 개념적이라기보다는 수사학적, 실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기독교 철학은 ‘마음의 질서’ 속에 있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을 전제로 하여 철학 자체도 상대화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성경이 보여주는 마음의 질서 속에서만 인간 또는 인간 공동체는 진정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 오늘날 파스칼 철학의 의의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정리하자면, 파스칼은 전통 개혁주의자들처럼 삼위 하나님과 그의 계시에 대한 신앙의 전제 아래 육체와 정신의 질서 안에 있는 자율성의 철학을 비판하고, 마음(아가페)의 질서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회심의 자리로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자했던 실천적인 기독교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파스칼을 하나님의 증인이자 변호사라고 본다면, 기독교 철학은 수단이자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찬양, 목회, 연구, 섬김 등의 모습을 통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파스칼은 기독교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독교 철학 속에 담긴 하나님을 증거하는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증인으로,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바울의 고백처럼 녹슬어지기보단 닳아 없어지려 노력한 파스칼의 모습은 귀한 도전이 된다. 또한 말씀의 이해는 하나님의 사랑, 은총에 기초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성경에 대해 많이 알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성경 내용을 인간의 철학으로 곡해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 해석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 더욱더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를 깨닫고 적용시키기를 소망한다.2) ‘마음의 질서’란 무엇인가? (6장 참조)파스칼은 마음을 인식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파스칼의 마음의 개념은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며, 따라서 새 마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마음을 뜻한다. 파스칼은 사변적 이성의 절대성, 중립성, 무제한성을 근간으로 하는 합리주의를 비판하지 않고는 사람들을 참된 진리로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비판함과 동시에 그 대안으로 마음의 인식을 제시함으로써 변증적 목적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마음은 본래 초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마음에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접촉점과 가능한 내재성이 발견된다. 파스칼이 말하는 사랑의 질서란 초자연적 은총에 의하여 변화된 새 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질서는 정신의 질서로는 설명되거나 증명될 수 없다. 즉 파스칼은 마음의 질서, 곧 사랑의 질서와 정신의 질서 사이의 불연속성이 있음을 보여준다.파스칼의 변증적 목적은 새 마음, 곧 회심에 있다. 회심이란 보편적 존재 앞에서의 자기 부정, 그리고 신적 사랑의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제의 회복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서 무화는 자신의 내적 존재의 부정뿐만이 아니라 외적 대상들에 대한 부정을 뜻하는데, 회심과 무화는 서로 대립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과정에 있어서 동일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사랑의 순수성의 관념에, 다른 하나는 죄인된 인간의 조건에 연결된 것이다. 이처럼 회심은 자기 자신과 세속적 대상에 대한 자기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파스칼은 이 자기 부정이 기독교의 본질적 속성이요, 참된 영성이라고 보고 있다. 요컨대, 진정한 회심은 죄로 인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갈 수 없는 무력한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 타락의 결과인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부정하며, 신적 사랑의 계시이며 중보자인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이 문제를 좀 더 깊게 살펴보면 회심은 자기 부정과 더불어 참된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회심, 곧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은 이중성을 갖는다. 하나는 자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기 본래의 실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실존에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오며, 신 인식의 문제에 관하여 진정한 하나님 인식은 사랑을 통한 회심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또한 파스칼은 마음의 변화, 즉 회심과 관련하여 표징, 상징의 개념을 언급한다. 파스칼의 해석 방식에 따르면, 이것은 육체의 질서에서 사랑의 질서에로의 전환이다. 표징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은 표징을 풀어 낼 ‘해석의 열쇠’를 찾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 열쇠를 마음의 질서, 곧 사랑의 질서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할례의 표징은 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실적’ 의미와 함께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실적 의미란 사랑을 통한 거듭난 마음의 변화를 말하며 할례는 하나님과 그의 언약의 백성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회복을 뜻한다.
    독후감/창작| 2013.04.05| 4페이지| 1,000원| 조회(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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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홍우, 교육의 개념 - 요약 서술
    정리‘교육은 ..... 이다’라는 평서문은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의문문을 가장한 이론적 문장이다. 이는 ‘교육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인가’라는 실제적 문장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 말 속에 현재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세 가지 개념에는 각기 다른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고, 세 가지 개념은 교육의 총체가 아닌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종합하여 보다 완전한 정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모하다.정범모 교수의 공학적 개념에는 교육이 가져야 할 행동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정의가 나온다. 인간행동, 변화, 계획이라는 세 가지 요소 중에 계획, 즉 교육 프로그램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이에 의한 변화가 실지로 관찰되면 교육이고, 그렇지 않으면 교육이 아니다. 이는 ‘교육은 게릴라건 성자건 간에 의도하는 바를 달성하는 데에 유효하고 강력해야 한다’는 말에 잘 나타나있다.교육과 공학은 ‘의도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공학은 목적이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반면, 교육은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도 가능하고 교육활동 자체가 교육의 목적을 정립해나가는 일이다.공학적 개념에서는 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이는 가치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교육 내용적으로 하는 지식을, 교육 방법적으로 설득을 위한 교육(교화)를 강조하는 정교수의 개념은 유용한 외적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피터즈의 문제의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성년식 개념은 사람들이 당장의 실제적인 효과에 사로잡혀서 교육의 의미를 오직 실제적 효과와 관련하여 파악하려고 하고, 가치문제를 배제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는 문제의식이 들어있다. 그렇기에 「윤리학과 교육」에서 피터츠는 보는 지식과 이해를 위한 교육(수업)을 통한 내적, 인격적인 변화를 강조하며, 교육을 ‘문명된 삶의 형식에로의 성년식’, '지식의 형식', '교과'라고 정의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육은 그 개념 안에 붙박혀 있는 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치 있는 활동 또는 사고와 행동의 양식으로 사람들을 입문시키는 성년식이다.여기서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교육은 규범적 기준으로서 가치 있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인지적 기준, 교육 내용으로서 가치 있는 것은 학습자의 지적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며, 과정적 기준, 교육 방법으로서 안목은 저절로 바뀌지 않기에 의식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이 때 교육은 곧 내재적 가치를 지닌 ‘삶의 역사’이고, 교과가 자신의 동기에 맞지 않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인간으로 형성해 준 삶의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며, 인간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잠식하는 가장 위험한 지적 오류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공경이라는 관습을 파괴하여 언어의 혼란을 초래한 바벨탑 사건과 같은 의미이다.이와 관련하여 전통 가정교육의 방법적 원리 중 하나인 족보는 개인적 정체의 사회적 기반을 잘 나타내주는 상징이다. 교육의 혜택을 누린 자의 키가 커 보이는 것은 오직 산꼭대기에 서 있기 때문이며, 그 산을 떠나서는 그는 왜소한 난장이에 불과하다. 전통적 자아관인 '외부 지향적 자아'는 교과를 배움으로써 인류의 총체적 경험으로 확대된다.지식과 이해를 교육의 핵심으로 한 피터즈의 개념은 두 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피터즈는 교육을 성격상 학교교육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점에서 교육의 개념을 부당하게 ‘좁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맥락으로서의 특정 사회를 염두에 두지 않아 너무 ‘넓다’는 비판도 가능하다.이에 대한 대안으로 뒤르껭의 사회화 개념을 들 수 있다. 이 개념을 선명하게 예시하는 한 가지 보기는 언어가 사회구조를 영속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언어사회화 이론’이다. '언어사회화'는 사실상 그것은 사회화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사회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과가 성년식 개념에서 교육의 '매체'인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 언어는 사회화 개념에서의 교육의 '매체'가 된다. '언어사회화'(즉, 언어에 의하여 설명되는 사회화)는 형식 교육(formal education)을 받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며, 학교교육과 무관하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인간 행동의 변화를 위한 계획적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볼 수도 없고, 아이를 지식의 형식에 입문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이는 비형식 교육(nonformal education)으로, 교육의 성격을 학교 교육에만 한정하는 성년식 개념과는 다른 사회화 개념의 대표적인 예이다.「교육과 사회학」에서 뒤르껭은 교육을 ‘어린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 사회화’라고 정의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기적, 반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으로 하여금 집단적 의식을 내면화하도록 함으로써 그를 사회적 존재로 형성하는 과정’이다. 집단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내용의 총체이며, 따라서 교육을 통하여 개인이 습득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집단적 의식이라는 정신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사회가 관념적, 추상적인 실체라는 뜻인가? 집단적 의식 자체는 관념이지만, 그것은 관념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례, 풍습, 행동 양식 등 사회제도 - 즉, 일체의 삶의 현실 - 와 관련하여 그것의 정신적 바탕으로 작용한다. 집단적 의식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개인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자유로운 발달을 이룩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을 전수받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하는 일이다. 여기서 개인과 사회는 사실상 구분되지 않지만 개념상 구분되며, 심리적 의미의 동기와 제도적 의미의 이유가 일치될 때, 사회화가 잘 된 것이다.또한 우리 사회가 강하고 원색적인 '발가벗은' 언어를 구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것은 반드시 '언어의 사회화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부모나 기성세대 전체가 그 능력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과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히 '문화의 붕괴'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번스타인의 이론을 그 한 부분으로 하는 '언어사회학'에 관한 최근의 관심은 이 면에서의 교육학적 관심이 절실하고 유용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뒤르껭의 사회화 개념에는 한 사회의 동질성의 기초가 되는 정신적 요소가 올바르게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않는 데 대하여 우려를 표시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정리하자면, 공학적 개념은 '행동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성년식 개념은 '교과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회화 개념은 '한 사회에서의 삶은 어떤 집단거 의식를 반영하는가?'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참고로 피터츠와 뒤르껭의 개념은 유사점이 있다. 둘 다 '교육이란 인간을 기르는 일'이라는 정의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피터츠의 성년식 개념은 아동이 지식의 형식, 문명에 의해 성인이 되는 것이고, 뒤르껭의 사회화 개념은 개인이 집단 의식, 사회 제도에 의해 사회가 되는 것으로 되는 것으로서, ‘교과의 가치를 알고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 '사회의 공통된 표준을 내면화한 사람'이라는 각기 다른 목표와 교육 내용을 가지고 있다.마지막 5장인 은 끝이 아닌 시작을 요청한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눈을 통해 교육이라는 양상을 바라보라는 요청이다. 에서 장님은 지력에 있어서 불완전한 인간, 코끼리는 총체적 세계이다. 그렇기에 장님이 만지는 세계는 양상화된 세계이다. 결국 교육의 전체는 각각의 개념체계에 의하여, 그 개념체계가 다루는 측면 또는 '양상'에 의하여 양상화된 상태로 우리에게 알려진다.교육의 정의가 규정하려고 하는 대상이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논의해보면, 세계는 우리의 생각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것이며, 세계는 그 속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간이 세계를 반드시 배우도록 보장한다. 따라서 교육은 세계 속에서 태어난 개인으로 하여금 그 세계를 배우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이러한 세계를 배우는 일은 개인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그에 앞서 세계를 배운 다른 사람의 지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한 한 개인의 생각에 세계가 들어와서 그를 형성해 주고 있는 상태는 전체 세계와 구분하여 '자아'로 부르며, 자아의 크기, 위대성은 그것이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세계의 크기와 위대성에 비례한다.세 가지 교육의 개념은 각각 그 나름으로 '개인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전달되는 과정의 한 측면을 드러내며, 자신보다 큰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곧 교육받은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때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정의를 내렸던 교육은 삶 그 자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교육학| 2011.01.13| 4페이지| 1,000원| 조회(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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