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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으로 돌아서다. 『청록집』 청록파의 형성과 청록파 시인들의 시 세계
    자연으로 돌아서다. 『청록집』- 청록파의 형성과 청록파 시인들의 시 세계 -Ⅰ. 머리말Ⅱ. 청록파(자연파)의 형성과 의의Ⅲ. 박목월의 시 세계Ⅳ. 박두진의 시 세계Ⅴ. 조지훈의 시 세계Ⅰ. 머리말일반적으로 문학 연구는 두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하나는 작품 하나만을 분석하는 방법, 또 하나는 문학사적 측면에서의 분석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개별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이 이뤄질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해당 시기의 주가 되는 문학 경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그를 통해 해당 시기의 문학이 이전의 문학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또 그 인과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의 ‘의의’를 찾아낼 수 있다.물론 위의 관점도 특수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한국 문학의 ‘암흑기’라 칭하는 30년대 후반부터 해방기까지 시기의 연구를 진행할 때, 작품의 개체수가 너무 적고, 그 적은 수의 작품들도 해당 시기를 대표할만한 특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에 문학사적 측면의 연구를 진행하기 곤란하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맹점을 풀어줄 작은 빛이 있으니, 바로 1946년 『청록집』의 발간이다.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이 세 문인이 함께 뜻을 모아 발간한 『청록집』은 해방 이후 발간된 시집이긴 하지만 작품에 실린 세 문인의 시는 대부분이 일제 말에 쓰인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발간년도만으로 『청록집』이 해방 이후의 문학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즉, 『청록집』은 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이전까지의 문학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때문에 『청록집』에 대한 연구는 암흑기 이전, 30년대의 시적 경향과 연관 지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본 글도 위의 관점에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또한 본 글은 『청록집』이 갖는 문학사적 측면의 의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청록집』에 실린 각각 작품에 대한 분석은 다분히 총괄적이며, 문인들의 시 세계 또한 『청록집』의 시 작품에 한정되어 있음을 밝힌다.Ⅱ. 청록파(자연파)의 형성과 의의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청록파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총 세 문인으로 이뤄진다. 청록‘파’라는 이름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은 동일한 문학적 세계관을 가져 함께 문학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발간을 했기 때문에 편의상 이들을 청록파라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시의 소재를 ‘자연’에서 주로 찾았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자연파라 부르기도 한다.이 세 문인이 뜻을 모아 『청록집』을 발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모두 일제 말기 문예종합지였던 『문장』의 추천제로 등단을 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 추천제를 통한 등단은 한 번의 추천만으로는 불가능했고, 또 시 부분에서의 추천자는 당시 시문학에서 최고봉인 정지용이었다는 점에서, 청록파의 문학적 능력은 이미 등단 때부터 상당하였음을 반증한다. 세 명 모두 같은 시기에, 같은 경로로 등단을 하였다는 점으로 이들이 당시 서로 간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였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게 한다.또한 청록파가 30년대 후반 등단을 했다는 것으로 이미 이전부터 각자 문예 활동을 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 30년대 중반까지 한국 문학은 프로 문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시기이다. 프로 문학은 정치적, 이념적인 사상을 담아 민중을 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프로문학의 경향에 반발을 한 문인들은 이미 생명파시인 등 여럿이 있었고, 이는 한창 문예활동을 시작하던 청록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이들은 등단 후 작품 활동을 할 때에도 프로문학과 같은 형식을 반대하였다. 또한 청록파는 일제 말의 극심한 혼동을 겪는 이들이다. 일제의 탄압은 날로 심해져 문학에서의 암흑기를 겪도록 하고, 혼란한 사회 속에서 좌우 이념의 대립도 상당했다.결국 이들은 프로문학을 통한 ‘문학의 정치주의에 대한 혐오’, 일제 말 ‘현실 사회의 타락’, 그리고 이념 대립이 야기하는 ‘정치적인 갈등’ 등으로 현실 문제에서 등을 돌리게 된다. 때문에 작품 활동에서의 소재 선정도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 현실 사회 속에서 찾지 않고, 좀 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순수성’을 띠는 소재인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정리하자면, 청록파 세 문인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문학계에 등단을 하였다는 점에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고, 혼란한 사회 속에서 시적 경향이 ‘순수문학’ 쪽으로 기울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때문에 세 시인은 해방 후 뜻을 모아 함께 시집을 발간할 수 있었다.또한 『청록집』은 문학의 암흑기에 국문 문학에 대한 주체성을 잃지 않고 일제 몰래 쓴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게다가 순수문학의 입장에서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은, 이전까지는 없던 새로운 경향이었다.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 독립된 의미와 정서를 가지고 표현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점을 보이는 청록파이지만, 사실 파고 들어가면 각자의 시적인 개성이 상당히 뚜렷하다.Ⅲ. 박목월의 시 세계박목월은 청록파 세 명의 문인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또 가장 서정적인 시인이다. 이는 정지용이 문장의 추천제에서 목월을 추천할 때, 추천사로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는 지금 읽어도 좋려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이하 생략)’이라 이야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또한 박목월은 ‘자연’을 다룸에 있어서 지극히 향토적이며 순수한 자연을 소재로 하여, 향수나 애상적인 정서를 정제된 한글로 형상화를 시킨다. 여기에는 일제 말기의 극심한 탄압 상황에서도 조선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지키려는 자주적인 의식을 찾을 수 있다.머언 산 청운사(靑雲寺)낡은 기와집산(山)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릎나무속잎피는 열두구비를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 박목월 「청(靑)노루」 전문박목월의 「청(靑)노루」 라는 시이다. 『청록집』이 바로 이 시의 제목을 따서 만든 것이라 한다. 때문에 『청록집』에 실린 목월의 시 중 단연 대표작이라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이 시에서 목월의 당시 시 세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이 시는 굉장히 청렴하고, 또 속세에 물들지 않은 지극히 향토적인 자연을 보여준다. 시어의 선택도 청렴하고 깨끗한 자연을 묘사하기 적합하다. 목월은 이 시를 통해 현실 사회와는 다른, 목월 상상 속의 자연을 제시하며 평화를 그려내고 있다.Ⅳ. 박두진의 시 세계박두진은 내적으로 다른 청록파에 비해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을 가진 기독교 신자라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그는 일본의 침략주의를 배격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박애주의를 지향하는 문예 활동을 보인다. 또한 시대적으로 프로 문학에 반하는 순수 문학 운동이 전개되었고, 박두진 역시 그랬다. 전쟁이 아닌 평화와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신, 그리고 순수 문학의 지향은 그를 자연스럽게 ‘자연’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위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 신자인 박두진은 작품에 종교적 신앙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때문에 그는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그를 통해 평화, 사랑, 평등, 혹은 자유 등을 나타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는 목월과는 다르게 율격에 있어서도 정형적이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내재율을 채택한다.또한 그는 모더니즘에 강하게 반발한다. 생명이 없는 것, 혹은 도시적이거나 인공적인 것, 그리고 혹은 비생명적인 메커니즘을 지향하는 모더니즘과는 반대되는 생명과 자연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모더니즘뿐만 아니라 20년대에 유행하던 문인들의 병적인 낭만주의에 대한 집착에도 반발하였다고 한다.『청록집』에 실린 박두진의 작품 중 하나로 「향현」이 있다. 박두진만의 독자적인 산문율격이 눈에 띠는 이 작품은, 일제 말 당시 우리 민족의 너무나도 고요했던 저항력을 산으로 묘사해 그려내었다. 아래 작품을 살펴보자.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山)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산, 산, 산들! 누거 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직하매.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박두진 「향현」 전문화자는 산의 침묵을 너무나도 지루하게 여기고 있는데, 여기서의 산의 침묵은 일제 말 당시 저항적 면모를 보이지 못한 민족들을 의미한다. 또한 조선의 혁명적인 면모를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지배계급의 불평등함과 약육강식의 원리를 부정한다. 그리고 자연을 소재로 삼아 평화와 이상을 노래한다. 박두진은 이 시를 통해 당시의 무기력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던 시적 사조를 반발하려 했다고 밝히며, 때문에 작품 안에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한다.
    인문/어학| 2013.08.12| 5페이지| 2,0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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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분석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하여Ⅰ. 머리말문학사적 관점에서 최근 국문학의 뜨거운 감자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짚어낼 수는 없지만, 그 중에 ‘디아스포라 문학’이 포함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실제로 90년대 이전까지는 잠잠하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논의가, 9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 집단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현상으로, 대중들은 ‘디아스포라 문학’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때문에 최근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중요성에 대한 점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하지만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총체적인 이론 정립은 물론, 개념정의에 있어서도 아직 100% 확실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의 의견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중들이 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 예상된다.여기서 본 글이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밝힌다. 때문에 본 글은 디아스포라 문학을 심층적으로 깊게 분석하기 보다는 보다 이해가 쉬운 방면에서의 분석을 진행하였다.그리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이론 정립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은 이미 이야기를 한 부분이다. 하지만 글의 논리 전개를 위해서는 하나의 일관적인 방향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필자 나름대로 개념을 정의하였음을 밝힌다. 때문에 이 정의는 현상과 논의에 대해 완벽히 수렴되는 측면이 부족할 수 있다.또한 본 글은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문학 작품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문학사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때문에 본 글의 내용적 측면에서 디아스포라 문학 작품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있다. 독자는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논의와 인과 관계, 그리고 대략적인 문학적 양상을 다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줬으면 한다.Ⅱ. 디아스포라 문학은 무엇인가?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Diaspora(이하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디아스포라는 로마 시대에 로마인들에게 박해를 받은 유대인들이 반강제적으로 예루살렘 지역을 떠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후에 ‘타 지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해당 지역에 자리 잡고 그들의 문화와 그 지역의 문화를 융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현상‘ 그 자체를 일컬어 ‘디아스포라’라고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이렇게 단어의 개념이 확대됨에 따라, 정확한 의미나 개념 정의가 흐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피난민이라는 단어와 동격인 의미를 보이기도 하고, 이주민의 모국의 문화와 그 지역의 문화가 융합하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반강제적으로 모국을 떠나는 피난민과 그 상황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게 되었다.필자는 각각의 견해를 모두 존중하지만 불가피하게도 일관된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개념정의가 필요하기에, 디아스포라를 ‘모국을 떠난 피난민, 혹은 이주민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여 모국의 문화와 해당 지역의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문화를 영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조금은 포괄적인 개념정의를 하도록 하겠다. 이는 되도록 많은 부분의 논의를 수렴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위의 정의를 따르면 우선 디아스포라 문학은 타 지역에서 나름의 문화를 영유하며 살아가는 이가 써낸 문학작품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이라는 전제를 도입하면, 한국 땅을 떠난 이주민이 타 지역에서 한국의 문화와 그 지역의 문화를 융합한 새로운 문화 속에 살아가며 느낀 점을 문학 작품화한 것을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비소로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 정의를 마쳤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살펴보아야 할까. 바로 최근 문학계에서 이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이 왜 논의가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그 점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국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자.Ⅲ.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논의우선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왜 최근에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항상 논의의 핵심에는 그 논의가 일어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일단 가장 단편적인 이유는 바로 디아스포라인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통상부 2009년 통계에 의하면 재외 한인은 680만 명을 넘어섰고, 국내 거주 외국인은 87만 명을 넘어선 상태이다. 때문에 디아스포라인의 문화는 더 이상 소수의 문화라 볼 수 없고, 보편적인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단순히 디아스포라인의 수가 늘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디아스포라인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고,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특히 한국 디아스포라인의 사회적 활동은 다른 나라의 디아스포라인에 비해 뛰어나다.이러한 국면에서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일어날만한 가장 원초적인 논의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이 국문학의 범주에 속하느냐에 대한 논의이다. 이 논의는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한국어를 모어로 하면서도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 살면서, 그 나라의 말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면, 그 작품은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에 대한 논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리하기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를 국문학의 범주로 봐야하는가에 대해서 찬성의 입장과 반대의 입장이 나눠지는 경우가 있다.우선 찬성의 입장에서는 디아스포라 문학 작가는 본질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이들은 최근의 언어 중심의 귀속주의에 대한 반발을 하며, 언어나 그 문학 작품의 주제와 상관없이 작품을 집필한 이는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인물로는 문학평론가 홍기삼이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서종택 등이 있다.반대의 입장 또한 논리가 만만치 않다.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김윤식은 이광수의 “어느 나라의 문학이라 함에는 그 나라의 문으로 쓰이기를 기초조건으로 삼는 것이다.”라는 귀속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그는 “영어로 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면 번역 문학이 아니겠는가. 반대로 한국어로 쓴 것을 영역한 것이라면 영문학일 터이다.”라고 이야기한다.사실 본 글에서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논하는 것은 오만일 것이다. 다만 두 견해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할 수 있으니, 이는 그저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국문학의 범주’에 관한 논의는 사실 국문학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지는 국면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측면이 있다.보다 최근의 경향은 ‘디아스포라 문학을 국문학의 범주로 보자’라는 찬성 쪽의 입장으로 기울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는 문학의 경계를 국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살펴 민족문학에서의 관점, 혹은 디아스포라 문학을 하나의 장르화의 측면으로 바라보는 등의 개방적인 입장에서 비롯되었다.Ⅳ.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의 양상1.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 문학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다룰 때에 제일 첫 과제는 바로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이는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발생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일제 식민시대 상황’과 가장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일제 식민 시대에 조선 농민층은 몰락을 겪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이들이 생긴다. 그리고 1939년부터 일제의 강제 연행이 가속화되었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규모가 늘어나게 된다. 일제 이후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한민족들은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바로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이다.그리고 현재는 100만이 넘는 거대한 규모를 보이고, 또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시점이다. 때문에 현재의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살펴볼 때, 그들의 이동시기, 원인은 각자 굉장히 다양한 국면을 보이며, 이들의 디아스포라 문학 활동에 있어서도 세대나 개별 작가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아래의 내용은 정은경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나온 분석법을 따랐음을 밝힌다.1세대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일제 당시 일보에서 일어나는 조선인에 대한 수탈과 핍박의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현실 속에서 조선인들은 그에 저항하는 ‘민족적’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민족적 작품을 쓴 재일 한국인 작가들은 나중에 친일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2세대는 1세대의 ‘정치 지향적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이어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방인’의 입장인 한국인의 차별받는 현실과 그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는 작품도 다수 보인다. 이는 1세대의 문학이 한국 문학과 별 다른 양상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면모라 이야기할 수 있다.그리고 3세대에 이르러서는 문학의 주제나 문제의식이 점차 개인화된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이라는 입장 때문에, 완벽한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겪는 개인의 언어적, 혹은 문화적 차별과 혼란에 관한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세대를 거듭할수록 민족의식은 줄어들고, 반면 이중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점차 본격화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13.08.12| 5페이지| 2,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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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깊은 집을 통하여 본 한국 성장소설의 특징 - 독일 교양소설과 비교하여
    을 통하여 본 한국 성장소설의 특징- 독일 교양소설과 비교하여목차Ⅰ. 머리말Ⅱ. 사회와의 화해 도모, 교양소설Ⅲ. 한국적 성장소설 Ⅳ. ‘화해’의 교양소설, ‘타협’의 한국 성장소설Ⅴ. 맺음말참고문헌Ⅰ. 머리말장르의 개념과 그 범주를 설정하는 작업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각각의 장르가 그 특징이나 성격이 유사한 경우, 두 장르 간의 차이점을 도출해서 두 장르를 구분하는 작업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바로 위의 경우가 문학 중 성장소설에 해당한다. 그런데 더군다나 국내의 경우 성장소설의 연구가 일찍부터 활발히 논의되어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연구도 심도 있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때문에 서양에서 논의되어온 ‘성장소설’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빌려와 우리나라의 경우에 적용하곤 하였는데, 소설에서의 장르라는 것이 탄생하고 발전함에 있어서 해당 사회의 사회상과 역사상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양의 개념을 국내 문학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한 예로 서양에서의 성장소설 또한 그 소설이 쓰인 나라의 사회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독일의 경우는 교양에 초점이 맞춰져 ‘교양소설’이라 불리고, 프랑스의 경우는 ‘형성소설’이라 불린다. 위의 각각의 장르는 ‘성장’을 다루면서도 그 특징이나 양상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 명칭 또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사실 한국의 성장소설도 마찬가지이다. 7,80년대부터 그 개체가 많아진 국내의 성장소설을 살펴보았을 때, 한국의 특수한 사회상과 역사에 따라 한국 성장소설만의 일련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위 독일의 교양소설과 프랑스의 형성소설과 같이, 국내의 성장소설은 한국만의 독특한 성장소설을 형성한 것이다.때문에 본 글은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만의 성장소설의 특징을 알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한국의 대표적 성장소설인 김원일의 을 선정하여, 작품 내에서 나타나는 성장에 대해 분석을 하고 그를 토대로 서구의 교양소설과의 차이점을 이끌어내도록 하한다는 입장임을 밝힌다. 또한 본 글의 논의를 김원일의 을 중심으로 진행할 것인데, 하나의 작품의 특성을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이해하기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점에서는 오류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두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을 ‘한국의 성장소설’의 대표 격으로 살펴보겠다.또한 교양소설의 이론에 대해서는 철저히 기존의 권위 있는 연구의 내용에 기대도록 한다. 또한 교양소설의 범주는 독일의 교양소설로 한정하도록 한다. 그 이유라면 필자는 위에서 밝혔듯이 성장소설이라는 큰 범주 아래에 하위 장르로 교양소설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며, 그것이 바로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교양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글의 방향은 모두 밝혔고, 다음 장에서 독일의 교양소설이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Ⅱ. 사회와의 화해 도모, 교양소설19세기 유럽은 식민지 정책과 정치적 분위기가 안정화의 측면을 보이는 시대이다. 때문에 중산층이 부를 축적하고 시민사회가 안정화의 국면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그때까지도 연맹국가가 서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등의 불안한 사회상을 보인다. 그리고 점점 개인주의 사상이 퍼지기 시작하며, 불안한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진 독일 청년들은 조금씩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이러한 사회상을 가진 당시 독일에서는 미완의 인격체인 당대 청년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소설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교양소설’이다. 즉 사회에 반감을 가진 독일의 청년들이 국가에서 요구하는 하나이 완성된 인격체가 되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부하는 현상을 변화시키고자 함이 바로 교양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겠다.때문에 교양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성장의 과정은 사회화의 과정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교양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은 교양을 쌓으며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깨닫고,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회와 ‘화해’를 하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인 성장에 도달하는 것이다.이런 구조를 가진 교양소설의 주인공은 을 긍정적인 성장모델로 삼고, 그를 따르며 사회에 적응한다.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이 긍정적 성장모델을 통해 사회화를 한다는 점은 또한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던 사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이라는 것에서 교양소설의 한계점이 드러난다.Ⅲ. 한국적 성장소설 - 교양소설과의 차이한국적 성장소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김원일의 은 6.25 전쟁 이후의 비참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소년 ‘길남’을 주인공으로 하여 효과적으로 잘 드러낸 소설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길남은 위채와 아래채로 나눠진 집에서 여섯 가정이 다닥다닥 모여 살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이 집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은 한국 전쟁에 대한 각기 다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데, 위채의 사람들은 전쟁 이후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는 ‘정신적 궁핍’ 상태를 보이고 아래채의 사람들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물질적 궁핍’ 상태를 보인다. 은 이러한 배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을 하는 길남을 그려낸다.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적 성장소설에서는 보편적으로 ‘아버지 부재’ 모티프가 작용된다. 그리고 이 점은 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길남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만 성장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작품 속에서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식들을 키우는 상황에서 오는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오는 무거운 책임감을 집안의 장남인 길남에게도 똑같이 요구한다. 길남의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삶’이 곧 세상의 온갖 핍박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고, 그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길남아, 내 말 잘 듣거라. 니는 인자 애비 읎는 이 집안의 장자다. 가난하다는 기 무신 죈지, 그 하나 이유로 이 세상이 그런 사람한테 얼매나 야박하게 대하는지 니도 알제? 난리 겪으며 배를 철철 굶을 때, 니가 아무리 어렸기로서니계산임이 분명했다.그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길남의 어머니는 길남에게 장남의 역할을 강조하고, 아버지가 없는 현실에서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요하게 된다. ‘아버지 부재’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삶의 궁핍함을 어머니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음을 알고, 길남을 통해 채우려는 것이다. 때문에 길남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신문을 팔며 생계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길남의 입장에서는 학교도 못 다니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부당할 수밖에 없다. 또래 아이들과 같은 ‘일반적인 성숙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길남에게 있어서, 책임감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충분한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신문을 팔지 몬하겠거덩 그 돈으로 차비해서 다시 진영으로 내려가 술집 중노미가 되든 장돌뱅이가 되든 니 마음대로 해라." 어머니의 아귀찬 마지막 말을 떠올리자, 나는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길거리나 어슬렁거리다 돌아가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저녁밥을 굶기고, 어쩌면 방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내쫓을는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자식에게만은 엄격하고 냉정한 분이셨다.길남의 어머니가 매몰차게 한 말 때문에 길남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어머니에 의한 길남의 ‘강제적인 사회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사회화의 과정들은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과 현실 도피 욕구를 생겨나게 한다. 하지만 길남이 행할 수 있는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해야 가출 정도 밖에 없다. 때문에 길남은 매일 가출을 꿈꾸지만, 매번 수동적인 태도로 어머니의 뜻을 따르고 만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길남은 가출을 결심하게 되어 집을 나선다. 현실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는 길남에 대한 사회화의 강요가 그를 강제적으로 사회와 ‘타협’하도록 하였다고 볼 수 있다.“길남아, 길남아”나는 눈을 떴다. 옆에 있던 거지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내 앞에 고.”어머니는 그 말만 하곤 앞장을 섰다. 어머니는 손에 쥔 손수건으로 물코를 팽 풀더니 눈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어머니를 뒤따라 역 광장으로 나섰다. 어슴새벽으로 건물 위 하늘이 희부옇게 터오고 있었다. 나는 팔려가는 처량한 망아지 꼴이었고, 선례누나를 따라 대구로 올 때의 마음이 그랬다. 아니, 나는 나쁜 일을 한 뒤 숨어 다니다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가출한 길남을 데리러 온 어머니의 눈에 고이는 눈물을 본 길남은 마치 나쁜 일을 한 뒤 숨어 다니다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는 길남이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가 강요한 사회화의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때문에 길남이 행한 가출은 성장기 청소년이 보일 수 있는 ‘정당한 반항’이 아닌, 가정을 책임져야할 장남의 ‘철없는 행동’으로 변하고 만다. 가출이라는 큰 사건을 계기로, 계속해서 거부하던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결국 받아들이고야마는 이 지점은 길남의 어쩔 수 없는 사회와의 ‘타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Ⅳ. ‘화해’의 교양소설, ‘타협’의 한국 성장소설지금까지는 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장소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위의 내용과 2장에서 다룬 교양소설의 특징을 토대로, 독일의 교양소설과 한국의 성장소설의 차이점을 비교분석하겠다.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독일의 교양소설에는 주인공을 이끄는 긍정적 성장모델이 존재하는데 반해, 에는 길남을 이끄는 긍정적 성장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에게 일련의 성숙의 과정을 무시한 채, 무리한 사회화를 강요하는 인물이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실제로 한국 전쟁 이후는 당대의 청년들에게 있어서 사회를 이끄는 뚜렷한 이념이나 따를 수 있는 인물이 없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의 작가 김원일은 이러한 지점을 아버지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아버지 부재’ 모티프로 나타낸 것이다.결국 독일의 교양소설과 한국의 성장소설은 혼란스러운 사회가 배경이 되었다는 지점만 같을 뿐이다. 때문에 뚜렷한 이념이나 성장모델이 존재했던 독일의 된다.
    인문/어학| 2013.08.12| 5페이지| 2,000원| 조회(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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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영웅담 Viva La Vida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제출일 : 2013년 6월 20일 Viva La Vida!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이 글은 대학교 선배가 약 두 시간 동안 나에게 쉼 없이 풀어놓은 말을 더듬더듬 기억이 나는 대로 옮겨 적어낸 글이다. 때문에 구간마다 엉성하고 빈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하고 읽는 게 좋다. 물론 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크게 어려운 내용의 글은 아니다. 읽으며 피식 거릴 수도 있고 진위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선배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추천해준 노래를 듣고 나서 문득 떠올랐다’라고. 그 노래가 바로 Viva La Vida. 영국밴드 Coldplay의 4집 타이틀곡이다.야, 존나 웃기겠지만 난 씨발 진지하거든. 아 역시 넌 음악을 해서 그런지 감각이 남다르다, 새끼야. 어떻게 이런 음악을 딱 추천해줬냐. 야, 사실 나 처음 이 노래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거든? 걍 영국은 고귀한 새끼들이 사는 나라라서 팝도 이렇게 고귀하고 고급스러운가보다, 하면서 들었지. 그런대로 들을 만 했어. 경쾌했어. 근데 너가 가사를 좀 집중해서 들어보라길래, 내가 또 영어를 쫌 하잖냐. 국문과 주제에 영어는 또 좀 해요. 그래서 가사에 집중을 탁~ 했더니, 와! 이건 내 이야기인거여. 뭐? 임마? 이게 나폴레옹 이야기라는 건 알아, 짜식아. 근데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랑 딱 맞는다는 거지. 웃지 말고 좀 들어봐.때는 바야흐로 성님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고등학교 1, 2학년 때란 말이다. 딱 봐도 너 내가 그때 공부 안 했을 것 같지? 그래, 임마. 눈썰미 좋은 새끼야. 공부 안했어. 난 학교도 상업고라서 야자도 안 했지, 애들 반이 점심시간 이후에 사라지는 그런 이상한 학교였어. 물론 그 반에 나도 껴있었지. 딱~ 차지하고. 서버를 통합하고! 이게 리니지의 매력이거든. 그래서 이건 사람 대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 혈맹 대 혈맹의 게임이라는 거야.그래서 형도 초반에 딱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좋은 걸로 맞추면서 딱 봤지. 어디 혈맹으로 들어갈까? 아 근데 성에 차는 혈맹이 없는 거야. 꼴사나운 게 리니지1에서 넘어온 혈맹들이 여기서도 고대~로 혈맹을 만들어서 빅브라더 놀이를 할까 말까 간을 볼까 말까 눈치를 보고 있는 거 아니여. 그래서 ‘아! 난 안되겠다.’ 하고 내가 따로 혈맹을 만들었다는 거 아녀. 그게 바로 캬 정열의 붉은 색, ‘붉은혁명’이라고 한때 바츠 서버 돌풍의 핵심이었다는 거 아니냐.근데 빅브라더 놀이가 뭐냐고? 왜 그런 거 있잖냐. 리니지는 특히 혈맹이 중요하잖아. 그리고 이 혈맹이 성을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잖냐. 근데 성의 특권이 뭐냐면 바로 그 성이 있는 마을 상점 세금을 매길 수가 있어요. 그니까 오렌성의 빨간 물약이 원래 정가로는 50원이다, 하면 우리가 세금을 50%로 해놓으면 75원에 사야 되는 거야. 그리고 그중에 25원은 우리 혈맹이 먹는 거야. 이거 완전 독재에 착취지. 근데 이걸 왜 하냐고? 왜긴 왜야 돈을 많이 벌면 이걸로 현질 하는 새끼들한테 팔 수 있거든. 너 게임이라고 무시할 게 못 된다. 성 하나 있으면 들어오는 현금이 얼만 줄 아냐? 너가 생각하는 거 보다 훨씬 어마어마해, 새끼야. 그래서 형도 돈 많이 벌었어. 아무튼 그래서 혈맹 하나가 서버를 탁~ 먹어버리면 성도 많이 가져서 세율도 올리고, 또 반동분자가 자랄 싹 자체를 딱 짜르는 거야. 보통 그렇게 성을 먹을 정도로 큰 길드면 고렙이 많을 거 아냐? 그래서 그 고렙들이 고렙사냥터를 장악을 하는 거야. 우리 혈맹이 아닌 새끼들이 오면 다 죽여 버리는 거야. 사냥을 못하게. 그럼 다른 고랩들이 더 못 클 거 아니야? 그런 식으로 견제를 하는 거야. 당연히 유저들을 많이 죽이면 페널티가 있지. 그런데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혈맹에서 다 뒤를 봐주니까. 그신의기사단이랑 위너스랑 고렙 몇몇이 양심에 찔리는 거야. 그래서 이 몇몇이 딱 나왔네? 그래서 내가 그때 그걸 딱 보고 ‘아, 그래 얘네다.’해가지고 얘네랑 같이 혈맹을 만든 게 붉은혁명이야. 라 레지스탕스 임마, 프랑스 임마. 다 형이 고딩 때 이걸 다 알았단 거 아냐. 형이 책도 좀 보고 체 게바라도 읽고 아주 그랬어요. 질풍이 노도였던 시기였어요.그래서 우리는 일단 모토 자체가 반DK였지. 근데 우리가 수적으로 딸리니까 우린 또 레지스탕스아녀. 게릴라였어. 서너 명이서 몰려다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DK 한 두 명만 골라서 죽이는 거야. 이러면서 아템 떨군 거 줍고 팔고 하면서 세력을 유지했던 거야. 또 우리가 다들 고렙에 약간 독립적이고 그런 애들이다 보니까 컨트롤을 잘해서 잘 죽지도 않아. 그래서 DK애들이 우리를 사실 존나 싫어했어. 현피 뜨자는 얘기도 존나 많았어. 근데 내가 미쳤어? 우리가 10명이면 걔네는 100명이라고. 아 난 그래서 무서웠어, 김구 선생님의 맘이 이해가 갔다니까? 아 웃지 말고, 새끼야. 그래서 난 내 친구들한테 리니지 한다는 얘기도 안했어. 거기에 DK 새끼들 있으면 어쩔 거야? 나 진짜 골목에서 벽돌 맞을 수도 있었다니까? 아주 난 내 신분이 철저히 비밀이었어. 외로운 싸움이었어. 하지만 난 꿋꿋이 해냈지. 왜냐면 난 라 레지스탕스, 붉은혁명의 아들이었으니까. 자랑스러웠으니까.근데 외로웠을 것 같은 싸움이 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 DK연맹이 하도 통제를 많이 하니까 다른 유저들이 빡이 치는 거야. 그래서 지들끼리 혈맹을 만들었네? 그게 바츠연합이야. DK연맹에 대항해서 바츠서버에 자유를 가져오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 난 정말 뭔가 전쟁터에 있는 듯한 그런 엄숙함과 비장함을 느꼈다니까? 우리도 거기 들어갔냐고? 미쳤냐? 거기는 거의 쪼랩들밖에 없었어. 그냥 평민에 시민인거지. 얘네들이 그냥 불만이 좀 있다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뭔가 좀 해보겠다고 혈맹도 만들고 한 건데 이게 맘대로 되겠냐고. 우리는 거야. 근데 바츠연합이랑 우리가 볼 때 DK가 아덴성까지 먹으면 그냥 이 게임은 끝난 거 같은 거야. 바츠서버는 걍 DK가 독재하고 우리는 뭐 손가락이나 빨아야겠는 거야. 그래서 바츠연합이랑 우리랑 계획을 했지. DK가 아덴성 공략을 할 때 DK 후미를 쳐서 저지해보자, 한 거지. 그래서 한 7번? 그정도 우리가 막았던 거 같아. 근데 DK가 진짜 애새끼들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한 50명, 100명으로 하다가 우리가 자꾸만 뒤에서 공격해서 방해하니까 나중에는 막 200명, 300명씩 성 하나 먹겠다고 오는 거야. 우리는 렙도 딸렸는데 이제 쪽수에서도 밀려서 ‘아, 안되겠다.’ 싶었던 거지.근데 내가 딱 상황을 딱 보니까 DK연맹 애들이 우리를 너무 의식해서 다 아덴성으로 모인거야. 다른 자기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성에는 아무도 없을 거 같은 거야. 그래서 내가 ‘우리 얘네가 아덴성 치는 거 막지만 말고 다른 빈 성 뺏자!’ 해가지고 오렌성을 쳤지. 야, 너 내가 당구할 때도 봤지. 허를 찌르는 그 무시무시한 전략 봤지. 내 전략이 딱 통한 거야. 바츠연합이랑 우리 붉은혁명이랑 다 오렌성으로 갔는데 진짜 DK 수비하는 애들이 몇 명 없는 거야. 또 붉은혁명 엘리트집단이 가볍게 톡톡 두드려서 성문이 쫙~ 열리고 바츠서버 최초로 DK가 아닌 다른 혈맹이 성을 차지했다는 거 아녀. 아덴성으로 몰렸던 DK애들이 다 같이 ‘아 조때따! 오렌성 되찾자!’이래서 뒤늦게 오는데, 오렌성이랑 아덴성이랑 거리가 또 존나 멀어요. 얘네가 오다가 죽고 오다가 죽고 오다가 지치고 이러는 거야. 그래서 걍 포기하더라고. 물론 아덴성은 DK가 먹었는데 아무튼 우리도 성을 하나 차지했으니까. 오히려 더 나은 거지. 그래서 내가 딱 고1짜리 코찔찔이가 성에서 딱 선포를 하는 거지. 오늘은 ‘바츠 해방의 날이다! 오렌성 세율은 우리 붉은혁명이 차지하고 있는 한 0%다!’ 그래서 중립이었던 다른 유저들도 다 오렌성으로 몰리고 바츠연합도 더 커지고 진짜 이 날은 와, 잊지 못한다. 근데 그러다가게 일어나 버린 거야.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우리를 분열하기 위한 전략일 거다, 라는 생각이었지. 쑈하는 줄 알았어. 근데 진짜로 DK연맹 애들이 제네시스 혈맹이 가지고 있는 오렌성으로 공선전을 걸대? 이게 공성전을 미리 며칠 전에 예약을 해놓는 거란 말이야. 그럼 그 날 딱 붙는 거야. 왜냐면 게임이니까 막 학생이랑 회사원이랑 다들 시간이 안 맞으면 안 되니까 주요전력이 딱 나올 수 있는 날을 골라서 공성을 걸어야 되니까. 아무튼 제네시스는 똥줄이 타는 거야. DK연맹에서 서열 2위였어도 연맹 전체를 상대하기는 벅 차는 거지. 성도 하나밖에 없고, 쪽수도 딸리고. 그래서 얘네가 바츠연합이랑 우리한테 손을 뻗는 거야. 원래 연맹 내에서도 제네시스가 가장 자존심이 쎄고 DK이름으로 하는 악행에 불만이 제일 많았대. 이걸 어떻게 아냐면 우리 혈맹이 자체가 DK연맹 만들어질 때 불만 품은 애들이 나온 거라서 아직도 제네시스 애들이랑 교류가 좀 있었나봐. 그래서 제네시스가 치는 헬프를 우리는 좋다, 하고 받은 거지. 바츠연합에 제네시스도 들어오게 된 거야. 바츠연합의 힘이 커진거지. 그래서 오렌성을 또 지켰어요. 아 이때 우리가 진짜 신컨 장난 아니었다. ‘오렌성 방어전 공신은 갑이 붉은혁명 을이 제네시스였다.’라는 평을 누군가가 내렸다지.그렇게 우리도 나름의 연합이 갖춰진 거야. 우리는 이 기세를 몰아서 DK가 차지하고 있는 다른 성들도 다 빼앗아서 이번 기회에 DK의 독재에서 해방을 해야겠는 거야. 사실 우리 붉은혁명도 쪽수가 딸려서 그랬지, 이제 DK랑 대놓고 맞짱을 떠도 이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해볼 만한 거야. 그래서 거의 양대국의 전쟁처럼 한 6개월을 싸웠어. 아무래도 초반에는 고렙도 많고 성도 많은 DK가 유리했지. 근데 이게 여론을 존나 타대? 그때 리니지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었거든. 여기에서 바츠연합 애들이 여론몰이를 존나 하는 거야. DK의 만행들, 온라인 게임의 부조리, 막 이러면서 DK를 완전 나쁜 놈으로 몰아가니까 진짜 조용하게 게임만 하던 애들도.
    인문/어학| 2013.08.12| 6페이지| 2,000원| 조회(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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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막장 드라마 강릉매화타령 분석
    조선후기 막장 드라마 - 당대 문화상을 바라보는 창문판소리의 12마당 중 전해지지 않는 7마당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고, 이문성의 (2012)는 이를 복원해내는 과정으로 얻은 실한 결과물이다. 판소리가 크게 흥했던 18세기 이후 19세기에 널리 불린 은 20세기에 이르러 이에 대한 향유가 점차 줄었고, 본 책에서는 음탕지정의 내용으로 조선후기 변화하는 시대와 향유층의 정서, 기호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부족함을 이유로 꼽는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지는 5마당 가운데 하나인 는 이와 달리 성적인 여인에서 성스러운 여인까지 이미지를 넘나드는 성춘향(成春香)과 색남(色男)에서 정남(貞男)까지 이미지를 오가는 이몽룡(李夢龍)에서 볼 수 있는 개방적인 인물 형상화, 그네를 타던 춘향을 품에 품고 하늘에 오르는 꿈속의 용처럼, 이몽룡은 춘향의 신분과 처지를 상승시키고 개선시키는 등의 풍성하고 다양한 내용으로 작품의 생명력이 현 시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밝힌다.이 이와 같이 향유하는 자가 없어 자연스럽게 사라진 마당이기에 자칫 이를 최대한 본디의 모습으로 ‘재현 혹은 복원’을 하기 위한 작업과 그에 따른 결과물에 어떠한 가치나 의미부여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하며 그 명맥이 이어지는 5마당에 비해 남은 7마당이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절하한다거나, 전하여 내려오는 5마당의 보존만으로 이내 만족해버림에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과거를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들 역시 역사의 흐름 속의 일부라는 사실은 명백하고,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과정과 다져온 토대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기반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감에는 ‘전해졌으면 더욱 좋았을 법한’ 혹은 ‘역사 속에서 잊혔지만 좀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새롭게 복원하면 좋을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현재의 우리들의 올바른 삶이다.그러한 측면에서 은 시대가 선택하지 않은 마당이상을 바라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음은 분명하다. 때문에 본 글은 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당대 문화상을 작품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에서 제시하려 한다. 첫 번째는 내적인 측면으로 작품을 이끄는 큰 맥락의 이야기에서만이 아니라 곳곳에 자리한 세부 내용과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당대의 문화상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해당 작품이 널리 향유되었던 19세기와 그 이후 점차 쇠퇴하여 원 마당의 기록까지 남지 않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알 수 있는 문화상이다. 본 글은 이를 통해 당대의 문화상을 살피고 이렇게 고증된 문화상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제시하려 한다.작품 내적인 측면의 문화상을 살펴보기 앞서 의 저자가 밝혀낸 당대의 문화상을 간략하게나마 그 내용을 짚어보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 글에서 굳이 심도 있게 다루지 않겠다. 여기에는 ‘설화 속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름 명명과 당 시대의 미인상의 상징이 매화였다는 점을 통해 당대 사람들이 은유의 방식을 널리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하나의 사물이나 자연물이 무엇으로 상징되곤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는 부분’ 그리고 ‘매화라는 기생은 중요한 인물임에도 작품 내에서 수동적 역할에 그친다는 점을 통해 당대의 남성과 여성의 사회에서의 위치와 역할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는 부분’ 등이 있다. 위에서 밝혔듯 본 글에서는 이와 더불어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상을 찾아보도록 하겠다.문화상을 살펴볼 때 주목하여야 할 점은 이야기의 구성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누구인가이다. 작품의 전개는 골생원이 매화를 통해 여색을 밝히며 끝내 타락해버린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으로 이뤄지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사건을 마련하는 인물이 바로 골생원의 벗인 강릉사또라는 부분은 참 재미있는 특징이다. 이 강릉사또가 친구인 골생원의 재주와 문필을 사랑하여 그에 대한 보답과 우정의 표현으로 ‘매화’라는 기생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여색을 지나치게 탐매화가 죽었다는 거짓을 아무도 골생원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함과 후반부 골생원이 가짜 혼백이 되어 발가벗은 채로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을 온 백성이 모두 모른 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강릉사또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그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장치로서의 인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 시대에 한 고을의 사또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볼 수 있는가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의 역할을 한다.“골생원을 보거든 매화가 골생원을 기다리다가 상사병에 걸려서 죽었노라 말하라. 만약 매화가 거짓으로 죽었노라고 골생원에게 알리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목숨을 부지 못할 것이니라.”골생원의 거동 보소. 홀딱 벗어 벌거숭이 꼴이니 속에 든 것이 다 들어나는구나. 어허, 골생원의 토산불알이 가관이구나! 허나 강릉 사람들이 벌거숭이 골생원을 못 본 듯이 행동을 하는지라. 이미 강릉 관아에서 ‘못 본 척하라’는 엄명이 있었으니 어느 누가 골생원을 보고서 감히 아는 체를 하랴.위는 고을에서의 사또의 영향력이 지대하였음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을의 사또라는 직위는 나라의 정책에 따른 어명이 아닌 개인적인 명도 고을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 있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로서 ‘사형’까지 내릴 수 있는 절대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불합리한 명일지라도 어길 수 없었다는 점에서 당 시대의 백성들, 현시대의 국민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이 사또를 얼마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였는지 또한 알 수 있다. 더불어 사또가 아닌 왕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감정이 더욱 더 극심하였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당시의 지배계층에 의해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억압받아왔는가를 살펴볼 수도 있다.골생원이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여색의 대상인 매화를 통해서도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매화는 당 시대가 계급 사회라는 측면으로 살펴볼 때에 그 중에서도 상당히 천한 신분인 기생이다. 하지만 매화의 언어사용은 그러한 천한 신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기생들이 뛰어난 수사(修辭)살려두고는 못 가오. 나도 가세. 나도 가세.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듯 임을 따라서 나도 가세. 저승길이라도 함께 가세.”“(생략) 서방님은 올라가서 과거하시고 어여쁜 금의화동을 앞에 늘어세우고 한양 큰길을 누비며 호사하실 제, 소녀 같은 미천한 것이야 손톱만치나 생각할꼬. 애고애고 설움이야, 진시황이 이별 글자를 불사르면 이별 글자 없을 것을 원수 년의 글자 이별, 내 설움을 이리 할꼬. 우리 처음 언약할 제, 돌이라도 망주석이 되어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어도 이별 없이 함께 하자 하더니. 이별이란 말이 웬 말인고? 서방님 가신 후에 뉘를 믿고 살꼬. 임 그리워 어이 살꼬.”이를 통해서 당대의 기생들은 비록 신분은 천했지만 양반집 자제와의 대화에서 그 수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어사용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통해서 비롯된다. 여기에는 자연적이 아닌 어떠한 교육이나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음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기생의 이러한 면모를 작품 속에서 그대로 드러냄은 당 시대에 판소리를 향유하던 계층에서만은 적어도 기생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적 감성과 어휘력 등이 있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황진이와 이난향 등의 인물들이 존재와 그에 대한 여러 사료들을 통해 기생들의 이러한 능력을 충분히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당 시대의 백성들 역시 기생이 천한 신분이기는 하나 적어도 학문과 배움에 있어서도 가장 천한 계층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작품 내적인 측면에서 알 수 있는 문화상의 마지막으로는 바로 골생원과 한양 장터의 여리꾼 아이들의 대화를 통한 당 시대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위상의 차이이다. 골생원이 찾은 장터에서 여리꾼은 골생원에게 ‘이리로 가시오, 저리로 가시오’ 등 명령의 어법을 사용하며 골생원의 구매를 부추긴다. 그리고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골생원의 대답성’이 상당히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때문에 이는 개연성의 문제를 드러내면서까지 골생원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이야기 구성의 장치라기보다는 실제로 당 시대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위상이 현 시대와는 상당히 달랐다고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는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매자의 위상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당 시대는 엇비슷하거나 평등한 수준에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작품 외적인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문화상은 바로 이 19세기까지는 널리 향유되다가 20세기에 그 명맥이 끊겼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위에서 밝혔듯 당 시대는 한 고을의 사또라는 직위에 오른 이가 내키는 대로 엄명을 내리고 백성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고, 백성들은 이를 몹시도 두려워했다. 때문에 백성들의 불만과 억울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을 것이고, 이러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날로 발전하였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수단이 바로 판소리와 같은 마당가이고, 날로 늘어가는 억울함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해학과 풍자를 극단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림과 호색적인 내용을 통해 감추고 부끄럽게 여기던 ‘성적’인 부분까지 공공연하게 드러냄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는 건 그저 하나의 추측에만 머무르지 않음은 자명하다. 이렇게 당 시대에 정치적인 면에서 억울함과 두려움이 극심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의 내용, 실제로 판소리가 18~19세기에 가장 흥하였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풍자와 해학과 성적 묘사가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는 이 19세기까지 널리 향유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이다.또한 20세기가 되며 작품의 명맥이 흐려졌다는 사실을 통해 19세기의 정치적 현실이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변모를 보이게 되고, 또한 백성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존재함을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인 이 갑작스부이다.
    인문/어학| 2013.08.12| 5페이지| 2,000원| 조회(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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