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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이론 사례(영문)
    Territorial dispute over Dokdo is a good example of the PD game. Two countries, Korea and Japan play main actors in this game. The thing that both countries care is ‘economic interest’ and they act according to it. Because Dokdo has abundant fishery resources, underground resources and many locational benefits, they want to take advantages of it. If both countries try to take it(DD), they have to spend additional defense budget and trade benefits will decrease because of the worsen relation between two. Therefore no one can touch the territory. If both cooperate and agree to use it together(CC), they can reduce the defense budget and develop the resources to use them more efficiently. By the way, if one country occupies the island and makes the other excluded from it, the occupying country can achieve the whole benefits. On the other hand, the other country will lose many things.이하생략
    사회과학| 2010.12.05| 1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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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쉰[아큐정전] 서평
    루쉰 [아큐정전]을 읽고...문학작품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작품의 뛰어난 상징성이나 독특하고 예술적인 표현을 기대한다. 그러나 오래동안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러니까 소위‘시대를 초월한’ 작품은 그러한 고고함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러한 작품이 오히려 미래적 가치를 오래 간직한다. 루쉰의 아큐정전은 문학계의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인정을 받았는데, 이는 단순히 희대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 낸 터닝포인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1920년 당시 중국에서 소설 아큐정전이 발표되었을 때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민중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해 엄청난 반응이 일었다. 당시의 기고만장하던 중국사람들, 시대에 대한 파악조차 못하고 있던 수많은 중국 사람들은 루쉰의 소설을 통해 자각을 경험하게 된다. 한번도 누구 앞에서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아큐정전을 읽고 나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신문학 운동가들은 문학을 통해서 계몽을 이루겠다는 뜻을 품고 작품활동에 임했다. 루쉰도 마찬가지로 원래 의사였지만 몸의 병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인들은 마음이 병들어있다고 생각하여 계몽문학운동에 동참한다. 그런 취지에서 당시 중국인들의 반응을 보면 루쉰의 의도대로 성공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큐정전은 이전 것들과 무엇이 어떻게 달랐기에 이러한 역사적인 문학적 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인지 내재적, 외재적인 측면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통시적인 관점에서 감상해보도록 한다.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우수점으로는 단연 문체의 간결화를 빼놓을 수 없다. 9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글을 읽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고 오히려 당대의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친숙하고 평이한 글이다. 또 문장이 불필요하게 길지도 않다. 이는 당시 전개하던 백화운동과 관계가 깊다. 이전 귀족 등 소수만의 문학이 어렵고 만연체로 쓰여진 것에 반발하여, 문언을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구현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소설 ‘아큐정전’에 대해서는 특별하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농담을 하거나 풍자를 하는 재치나 글솜씨가 이전문학과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이다.루쉰의 이 작품에서의 또다른 촌철살인은 극과 인물의 구성방식이다. 이 작품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시작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허술함의 분위기는 서문에서의 소설을 잡문처럼 쓰는 작가의 태도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자기의 구상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듯하다. 이것은 결국 아Q라는 사람에 대한 불완전성, 모호함을 높여준다. 또 이는 아큐정전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반어적 효과를 배가시켜준다. 소제목도 그렇듯 아Q는 계속 반복되는 사태를 맡게 된다. 항상 부정적 인물에 의해 당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구조는 종반까지 계속되는데 아Q의 어리석음과 이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계속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마련된 것이다.이제는 반대로 사상적, 현실반영적인 측면에서 아큐정전을 재분석해보자면 첫째로는 근대적 국가 및 국민의 출현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아편전쟁이후 계속 되는 내우외환 속에서도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충만해있었다. 따라서 서양사상에 대한 배척도 또한 높았다.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는 듯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겉으로만의 변화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없었다. 근대적 시민국가의 성립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모두가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화민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군벌세력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고 다시 또하나의 왕으로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변화는 상층 소수의 권력다툼에 의한 변화였지 실제로 민중의 삶에는 아무런 인지를 할 수가 없었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앞에서도 여전히 무력함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큐정전은 이러한 당시 중국의 분위기를 담고 있으며 작가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의 발전은 없을 것임을 우회적으로 꼬집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마루오 츠네끼가 아Q의 이름에 관한 연구성과를 냈는데, 아Q의 Q는 鬼를 의미하고 이는 곳 근대적 국민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중국국민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루쉰의 본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설득력이 있게 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큐정전의 핵심인 어중간한 반근대국가 국민의 설움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일 것이다.다음으로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것은 중국인들의 비뚤어진 자아상이다. 아Q라는 전혀 ‘정전’이 지어질 만한 인물이 아닌 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건 의미심장한 은유가 숨어져있다. 20세기의 근대적인 인물의 모습과는 다른 우매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기회주의적 캐릭터이다. 당시 아큐정전은 그야말로 암울한 현실에 대한 통쾌한 패러디였음과 동시에 안타까움 그리고 시대적 사명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아Q는 사실 특정한 직업도 없이 날품팔이나 하는 막노동자다. 반복되며 남에게 지거나 얻어맞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이겨낼 수 있는 노하우 ‘정신승리법’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승리법’이라는 것은 설령 자기가 맞거나 패배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속으로 상대방을 깔보며 무시함으로써 심리적 대리만족을 얻는 자기기만의 수법 중 하나이다. 수천년간 중국인들은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으로 나라를 이어왔다. 따라서 이제 와서 자신의 몰락과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나라와 교류를 한다거나 서양의 하찮은 문물따위를 그들의 입장에서는 수용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막다른 길목에 서게 된 그들의 선택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과거의 영화를 상기한 채 살아가는 것이었다.사실 중국의 소설 아큐정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중국사회만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루쉰은 아Q를 통해서 보여주는 일련의 사실들이 인간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고 다른 사례에서도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발표된 많은 연구자료들은 아Q의 인간상과 타 인물 or국가와의 비교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아큐정전은 보편적인 인류가치와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소설 내의 여러 인물과 사건들은 보편적 사회의 인간들에게 발견될 수 있는 어두움이고 그것을 극대화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Q의 이야기’,‘중국인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내 주변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조리돌림은 확대시켜보면 인간의 본연적인 무력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조리돌림 당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잡힌지도 모른 채 단순히 ’즉자적 존재‘로서 그를 비판하고, 역사적인 책임의식으로부터 회피하려는 모습은 대중들의 두려움과 나서기 꺼려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이러한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은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는 있으나 역시나 마찬가지로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직접 나서지 못하는 한심한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작가나 투쟁가들의 공감, 자각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소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독후감/창작| 2010.12.05| 4페이지| 1,000원| 조회(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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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서평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독후감 레포트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이야기 한다. 즉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자 근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죽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선거제도가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른나라에서는 피흘려 얻어낸 민주주의 곧 선거권을 우리는 비교적 쉽게 얻어 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중한 가치를 몰라보고 너무나 더럽혔고 왜곡해온 사례가 많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우리의 선거역사를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으로 치부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머리말에서부터 이러한 관점만이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즉 선거는 우리나라에 사실은 굉장히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 책에서 권력자들이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이용하였는지, 또 이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올바른 선거정치를 실현하기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저자가 말하는 대로 선거가 역사의 흐름에서 역할을 한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고, 현재의 선거정치와 전망을 관찰하고 끝을 맺으려고 한다.우리나라에서 ‘선거’라는 제도가 들어온다는 것은 매우 낯설고 인지하기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에 앞서 우리에게 정치인이란 대표자의 개념보다는 통치자이자 주권자의 의미가 강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위정자는 왕후장상의 씨를 가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러한 인식은 많이 깨지게 되었지만 선거나 의회제도의 모습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했던 것이다. 해방직후 치러진 5.10선거의 경우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선거였지만, 그것이 우리의 손이 아니라 외세에게 인위적으로 그것도 한반도의 허리를 뚝 잘라 반쪽자리 선거가 되어버렸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꽤 오랜기간 임시정부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공화정과 선거에 관한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우리 힘으로 우리 민의를 반영하기위한 선거가 아니라 외세들의 세싸움에 임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고자 하는 목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의 정권과 치리가 정당성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93년 대선에 이르기 까지 한번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없었다는 사실은 지난 역사간 권력자들의 목표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선거가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이 교체될 수 없다는 것은 선거의 존재가치가 無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경우는 우매한 민중들이 선거가 뭔지는 알겠냐고 생각이나 한 듯 노골적인 부정을 저질렀다. 1952년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제2대 국회의원의 구성이 자신에게 반대되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을 우려해서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고 개헌안을 내놓았다. 국회 표결에서 부결이 되자 이 대통령은 계엄령을 내리고 국회의원들을 협박해 결국 기립표결로 개헌을 시켰다. 사실 직선제라는 것이 저자도 언급을 했듯이 굉장히 오묘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직접선거가 훨씬 민주적이고 개방적이어 보여 사실 처음에는 이게 왜 잘못인가를 헛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 점을 역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선거제도라는 것이 꼭 절대적으로 옳고 좋은 것만은 없겠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 기도 하다. 이승만은 이후 또 다시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사사오입개헌이라는 것을 단행한다. 정족수 미달을 반올림으로 가결시킬 수 있는 이 획기적인 상상력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비웃을 만한 일일 것이다. 이로 인해 대선 출마권을 얻은 이승만은 온갖 흑색비방과 관권개입으로 또다시 당선된다. 이 후에도 4.19혁명이라는 격변 야기한 3.15 부정선거에서는 4할사전투표, 3인조선거 등 유세기간, 개표중, 개표후 모두에서 여러방법으로 자신의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승만 이후의 선거에서는 부정을 저질러도 교묘하기라도 했지만, 선심성 공약들이 많이 나왔다. 공장을 지어주거나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약속을 공공연하게 국무위원들이 해버리는 것이다. 또한 막걸리를 돌리고 고무신을 사주는 데에 더해 단체로 관광을 시켜주는 등의 관행이 이 선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공약는 관권을 가지고 있는 여당후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므로 거의 야당은 사퇴를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지금에 와서야 저러한 공약들에 대하여 조소하며 넘길 수 있지만 선거가 돈과 관권으로 인해 무너지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1972년의 유신헌법의 제정은 대한민국의 정치역사상 가장 침울한 시기라고 많은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 민주주의의 형식적인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아 거의 대통령이 왕과 같이 군림할 수 있는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는 사실 유신체제 당시에 선거제도가 존재했다고 이야기하기가 부끄럽다. 초헌법적인 대통령의 권력으로 인해 이 당시의 민주주의 체제는 거의 마비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나마 남아있던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국민들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표자가 아니라 대통령의 결정 앞에 무능한 초라한 직종 하나를 만드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뒤를 이은 또다른 군부출신의 전두환은 개헌을 통해 유신체제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7년 단임의 대통령제와 전국구에 제1당에게 3분의 2를 몰아주는 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버렸다. 전두환은 한편으로는 지지를 얻기 위한 유화국면을 펼치고 한편으로는 반대하는 인사를 숱하게 억압했다. 전두환은 자신의 임기가 다 되자 자신의 후계자인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하여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헌법을 이용한 것이다.이렇게 권력자들은 자신이 유리하게 정권을 연장, 이양할 수 있게 정치제도를 이용했다. 이때까지 총 8차례의 개헌과정이 모두 권력자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의적이고 부정적인 개헌이었고 또 대부분 선거제도와 밀접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 국민들이 원하고 동의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형식적으로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선거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다수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기 때문에 더없이 좋은 체제유지 수단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고 변형을 시키더라도 선거를 폐지할 수가 없었고,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 것이다.이러한 권력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또한 많은 수의 세력들이 반대편에 항상 존재해왔다. 한쪽에서는 야당 혹은 야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들이 존재해왔고 그들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또 그 최소한의 권한으로 정치의 중심에서 항거했다. 또 다른 세력으로는 사회의 가장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 민중 세력이 존재해왔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파악,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항상 거대한 잠재력으로 독재권력에게 위협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 세력들이 언제나 일관되게 독재자들에게 항거하거나 자신의 잠재적 힘을 발휘해 왔던 것은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 앞의 초라함에 쉽게 좌절 포기하였던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선거,민주주의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유지시키게 한 것은 독재자의 부정에 더해 저항세력의 부진함까지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은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 어두웠던 시절 썩은 권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야권세력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처럼 그 당시 진보세력(지금의 진보와는 차원이 다른)들은 공공의 적을 두고 힘을 합쳐 싸우지 않고 분열된 독자노선을 구축해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의 요구에 힘입어 조봉암은 진보당 독자후보 출마로 자신의 주장을 알릴 수 있었지만, 민주당 신익희 후보와 단일화 하배의 역사를 되풀이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정점을 찍은 것은 양김인 김대중-김영삼의 문제이다. 당시 야당계열 인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사쿠라 즉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소신보다는 출세의 욕구가 강한 사람들, 또는 독재권력 앞에 순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김대중과 김영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특히 김영삼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명구를 남기고서는 박대통령을 만난 후 태도가 돌변하여 욕을 많이 듣기도 했다. 이보다 더 유명한 사건은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다 잡아놓은 승기를 버린 역사적 죄인이 된 것이다.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에 맞선 야권단일화 후보를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를 무시한 채 김대중은 ‘4자 필승론’을 주장하며 팽팽히 내세웠다. 이로 인해 그들은 노태우에게 표가 밀려 아쉽게도 정권을 교체하지 못했다. 노태우가 6.29선언을 한 이유도 이러한 두 인물이 분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행한 전략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 쯤되면 이 문제는 간과하기에는 우리역사에서 차지한 비중이 적지 않은 것이다.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우매한 민중, 아둔한 대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민심이 갈대와 같고 정치인의 속임수에 잘 꾀어 넘어가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논쟁이 많은 생각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역사상 선거를 통해 결정적 한방을 날려주어야 할 때 민심은 이에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56년 이승만의 갖가지 더러운 추태를 본 국민들에게 ‘못살겠다,갈아보자’라는 구호는 굉장히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표는 과반수를 넘었다. 그러한 변화의 분위기가 표심으로 직결되지 못한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표는 조직하기 나름이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인식을 머리 속에 박아놓은 듯하다. 67년의 대선에서는 박정희의 실정으로 많은 지탄과 시위에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선에 성공한다. 그 이유는 경제적인 상황때문이다. 박대통령의 이야기었다.
    독후감/창작| 2010.12.05| 7페이지| 1,500원| 조회(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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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서 낙타상자를 읽고 평가A좋아요
    중국현대문학사 기말 레포트-라오서 ‘낙타샹즈’ 독후감-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걷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 중에서도 행상, 노숙자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분들은 무슨 계기로 인해 저렇게 고된 삶을 살고 계실까’이다.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향해 노력도 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다가 가난을 자초한 실패자들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분들의 가난과 고달픔은 개인의 책임과 나태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학에서는 전자를 기능론적 인식, 후자를 갈등론적 인식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사회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정치, 문화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분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른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라오서의 소설 ‘낙타샹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 또한 가난하고 불행한 하층인생이다. 마지막에서 주인공 샹즈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이란 하지 않고 유흥으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한다. 기능론자들은 현재 그의 불행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의 태도에 대해 맹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의 전문을 통해 그러한 논리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샹즈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였다. 농촌에서 파산한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건전한 생각을 가졌고, 인력거 끄는 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인력거를 끌고 베이핑 거리를 휘젓는 꿈을 꾸면서 매일매일을 살아갔다.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모은 돈 96원으로 인력거를 샀지만 그의 꿈은 사회현실로 인하여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군벌간 전쟁이라는 사회적 현실로 부당하게 인력거를 빼앗겼고, 인력거를 구하기 위해 가까스로 모은 돈을 형사에게 또다시 빼앗기고, 여자의 꾀임에 넘어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자신의 부인과 사랑했던 사람이 모두 비극적 죽음을 맞는 등 그에게 오는 시련은 비단 하나의 성장통이 아니었다.전형적인 소설 혹은 수필의 전개과정은 대개 기능론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어려운 역경을 맞아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는 이러한 레퍼토리를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 포장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소설 ‘낙타샹즈’의 결론은 달랐다. 주인공은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기능론적 가정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시련은 그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좌절하고 결국 파멸로 이르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리얼리즘 소설의 장르로 당시 현실을 반영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인식에 대해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의 길을 알려준다는 의미를 더한다.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사회는 단순히 노력해도 시련과 역경을 이기지 못할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겠냐는 필연성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현실과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주인공의 성격은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입체적으로 변한다. 군벌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저지르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고 이로 인해 성실한 샹즈에게 좌절의 신호탄이 발사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탄 부패한 관료의 수탈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성실하게 돈을 모으던 샹즈의 의욕마저 빼앗아 버렸다. 돈밖에 모르는 물질주의적인 세태는 샹즈의 중요한 주변인물들(후니우, 샤오푸즈)로 하여금 마지막 보루이던 심리적인 안식처마저 빼앗아 버렸다. 소설 속에서 인력거는 샹즈에게는 자신의 밥벌이이자 모든 것이었다. 이런 인력거를 3번이나 자신의 의지와는 다름없이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상의 세 번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이유를 하나둘씩 상실해간 것이다. 그는 사회의 모순적 구조로 인해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던져지게 된 것이다.이러한 구조적 실패는 특히 사회 내의 소외계층에게 빈번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샹즈와 같은 육체노동자는 자신의 노력과 노동강도와는 상관없이 홀대를 받고 지위상승의 기회가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눈여겨 봐야할 집단은 여성하층민의 경우이다. 그들은 인습의 굴레까지 덧씌워져 실패가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후니우는 인력거 사업주의 딸로 소설 속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그녀 또한 사회 구조로 인한 피해자이다. 속물적인 인물인 후니우는 대리점을 물려받기 위해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며 각고의 노력을 펼치지만 그녀의 ‘도박’은 실패하고 말았다. 남성우위의 가부장제와 그녀의 인생의 파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샹즈가 사랑했던 샤오푸즈의 인생은 더욱 모질다. 그녀는 난폭하고 비인간적인 아버지 얼치앙즈의 밑에서 돈벌이 수단으로서 남성들에게 팔려다니고 성노리개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었다. 얼치앙즈는 딸을 판 돈으로 술로 탕진하고 그녀를 물건이상의 취급을 하지 않는 등 남존여비사상의 극단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모친은 남편 얼치앙즈에게 맞아서 죽게 된다. 이와 같이 구조의 모순과 전통적 인습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개인의 책임을 묻는 기능론적 인식이 통할리가 만무하다.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개인의 노력과 책임을 묻는 그들의 논리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이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샹즈의 개인주의를 신랄하게 지탄하고 있다. 여기서의 개인주의는 소극적 의미에서 자기자신 밖에 모르는 생각을 규정하고 있지만,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소설 전체를 바라보자면 개인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한다는 의미의 개인주의(기능론적 인식)를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개인의 잘못도 아니었고, 개인의 예상과 능력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 대안책을 암시해 두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망나니처럼 변해버린 샹즈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며 반면교사로 삼던 동료 인력거꾼의 모습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이는 샹즈의 비극성을 더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렇게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모두가 같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0.12.05| 4페이지| 1,000원| 조회(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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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크의 자연론(영문)
    John Locke assumes that people were property owners in primitive ages. The assumption is the first and main factor, which links the other assumptions to make sense of the theory. Locke believed that God allowed people to own whatever he want by labor within his capability. But what if we ignore the assumption?Let us imagine primitive life without any property concept. They need to get some natural things to live. But there is no rule to own something and they don’t know what belonging means. So they just get whatever they want to live. If they face someone who wants what they got, they would defend them and fight against the enemies. But people’s right and desire are not confined to ‘natural right to use force to protect property’. They are supposed to have ‘natural right for anything’ because there are no rules of ownership and they just want and need the property at any cost. ‘Social justice’ that repress violation cannot work or even not exist. We cannot say it is even a little bit ‘civil’.The Locke’s reason why we need state is also changed. He thought that not every people would violate in primitive times, so some parts of people would fight against them or endure their violation. But without property ownership, all the people must violate and it is natural because they don’t know the ‘social justice’ . They need state in order to escape from the chaos that everything is possible with no rule. The state of nature makes people’s life almost impossible.Locke argued that the state should be just like guardian. It cannot interfere in people’s life. People are protected by public force to keep their property well. In our new theory ,though, the state does not stay in protecting them. It goes beyond just passive state, it has to control individual’s life and their rights. It should make them agree with the intended ‘social justice’ and give up their natural rights. This might go into dictatorship. But going back to the state of nature make it worse.This new theorization is similar to Hobbes’s idea. Difference in the beginning assumption makes the whole direction of the theory. Locke thought that there exists natural laws that convince people the concepts of ownership, while Hobbes considered the state of nature as unending struggles and chaos. Even though Locke did not fully explain the first assumption, it still effective in that it tells the right against the oppressive government.
    사회과학| 2010.12.05| 1페이지| 1,000원| 조회(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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