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문화에 대한 고찰우리나라 학교문화에 대해 고민해보기에 앞서 먼저 학교문화란 무엇인가부터 말해야 할 듯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학교문화”라는 말을 쓸 때는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적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학교특유의 문화현상을 학교문화라는 말로써 지칭하는 듯하다. 군대에는 군대의 문화가 있고 감옥에도 감옥의 문화가 있고 또 각 지역마다 지역문화가 있듯이 학교에는 학교의 문화가 있다.문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창조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게 문화이니,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이 만나고 또 그 학생들과 교사가 만나는 학교는 그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며 ‘문화’를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 학교문화의 특징적인 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 예비교사의 입장에서는 그 안에 갇힌 우리 학생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만 한다. 한국 교육이 대학 진학을 위해서 개인의 재능과 성격, 특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성적 위주의 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은폐할래야 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본인은 딱히 공부에 취미와 욕심을 가진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립 중학교에서 공립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기위해, 그리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지내며 오직 대학만을 생각하며 그 작은 울타리에 갇혀 사는 동안 나의 정신과 몸은 오직 성적에 목을 매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성적이나 공부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자율과 방목에 나를 맡기셨지만 학령기부터는 부모님보다 학교에서 항상 만나 함께 생활하는 또래의 영향이 무엇보다 강력하다. 나 또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과 마치 인생의 목표가 대학진학인 듯이 우리의 시야를 좁혔던 선생님과 그 학교라는 곳에서 점점 그렇게 변해버렸다.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6시 반에 일어나 급식을 먹고 학교에 가서 0교시부터 정규수업을 마치고,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고 다시 12시까지 혹은 2시까지 기숙사 독서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물론 공부가 싫었는데 강제로 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선생님을 잘 따르는 편이었고 그 과목자체가 흥미로워서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학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직 대학입시가 사는 길인 듯 여겨졌다. 마치 성냥곽 같은 학교의 환경은 주위에 온통 그것들뿐이었다. 아직 1학년이라 수능이 어떤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는데 벌써 반마다 게시판에 성적별로 등급이 나눠진 대학이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고, 정기적으로 모의고사를 치고 나서는 성적 상담을 통해 내가 가고 싶은 대학보다는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과 과를 정하기 바쁘다. 고3 교실이 있는 층의 복도 중앙에는 수능 디데이를 알리는 커다란 전자시계가 24시간 내내 눈을 부릅뜨고 있고 각 반마다 학기 초에 정해서 걸어두는 학급목표에는 ‘잠은 무덤에 가서 자자’등 한시라도 긴장을 놓지 않고 공부하기 위한 자극으로 가득했다. 오로지 목표는 좋은 대학 입학뿐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개성을 살릴 수 있단 말인가.수능이 치뤄지던 날, 옆 학교에서 언어영역이 끝난 후 학교 옆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우리나라 학교가 얼마나 학업성취에만 열을 올리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있던 기숙사에서는 방의 침대에서부터 독서실 자리 순서, 하다못해 신발장까지 성적순이었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면 학기마다 바뀌던 그 순서들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모른다. 친구가 친구가 아니다. 교육의 목표는 그게 아님에도 실제로 학교에서는 이기심과 배타심이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경험을 되새겨 가며 살펴본 입시위주의 우리나라 학교문화를 보니, 어떻게해서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생태학점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생태학점 관점은 아동을 둘러싸고 있는 직접적 환경으로부터 아동이 살고 있는 문화적 환경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그 본질은 상호작용이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기 마련인 것이다.학교의 역할을 지나치게 부정적이게 보는 관점일 수 있으나, 나는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는 지금의 입시위주의 학교문화가 가장 지배적이라 여기며 이는 하루빨리 바뀌어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국어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취미로써의 책이든 공부를 위한 책이든 고등학교 때 나는 그 시간도 아깝게 여겨지기도 했다. 고3 3월에 첫 모의고사를 치고 그 성적으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서 나는 아마 살면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봤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선생님의 의도는 나를 자극주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이 안돼서 내가 가고 싶었던(사실 그건 약간의 적성을 고려한, 적당한 대학의 적당한 학과였다.) 곳에 진학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오직 대학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학생에게 얼마나 큰 좌절을 안겨주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후 나는 힘들게만 느껴진 고3 생활을 지속하다 결국 그 해 여름에 크게 앓았고 그때 내 인생의 회의감을 느꼈다. 대체 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없는 형편에 특강비까지 쏟아부으며 한참 열을 올렸던 수리영역을 포기하고(다시 찾은 내 적성에 맞는 대학은 이 영역을 보지 않았다.) 뒤늦게 되찾은 내 적성을 살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혼자서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해서 어렵사리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 결국엔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그때의 내 행동은 몇몇 선생님들에게는 입시에 찌든 학생의 도피행각쯤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고 그런 시선 속에서 나도 가끔 사실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굳건히 내 전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내 선택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그때 딱히 입시에서 벗어난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개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고 결국은 성취해냈다는 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모른다.나는 그때 학교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게 되었는데, 만약 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한 교육과정이 존재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을 한다고 해서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받고 선생님들이 더 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신 듯 느껴지는 것이 당시의 나에겐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일 중의 하나였다. 나를 격려해주시던 몇몇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완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좋은 대학이 아니면 소용없다는 식의 그런 상황들은 학생의 개성과 성격, 특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오직 입시만을 중요시하는 학교문화가 단적으로 보였다. 학교의 역할을 사회화와 선발배치의 기능으로 보는 교육사회학의 기능이론이 있다. 학교가 정말 이 기능을 수행한다면 지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는 인지적 측면이 강조되는 부분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기술적 요소가 강조되는 부분도 있고 인화, 감성적 요소가 강조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인지적 성취기준의 잣대로 측정되는 기존의 교육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교육은 지덕체를 고루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교육은 지식만을 강조하고 있다. 창의력이나 비판력을 기르고 대학 입시에서도 그러한 측면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학원에 가서 그것을 암기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입시에 찌든 학교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떤 것일까.교육의 방향에는 정해진 것은 없지만 지덕체를 조화롭게 기르기 위해 인간의 가치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해 주는 심성교육과 지성교육의 조화를 추구하여 건전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교육과정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작게는 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줌으로써 학생들이 개성을 살리고 지덕체를 고루 기를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
행동수정핵심용어 정리제4장 핵심용어?핵심용어정의예강화어떤 행동을 더 많이, 더 오래 하게 하기 위해 그 행동을 하고 있을 때나 직후에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초점은 행동을 ‘증가’시키기 위해 한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것을 ‘제공’할 수도 있고 싫어하는 것을 ‘제거’해 줄 수도 있다.공부를 하고 있는 영희에게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었더니, 영희는 그 후에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공부라는 행동을 증가시키기위해 칭찬을 사용하였다.결과앞의 행동이나 사건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모든 행동?사건시험기간에 놀았더니,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다.조작적 행동자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행동으로, 행동 뒤에 따르는 결과에 따라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 학생에게 초콜릿을 주었더니,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발표를 하는 것은 학생 스스로 하는 행동이고, 초콜릿이라는 결과에 의해 발표하는 행동이 증가하게 되었다.강화인어떤 행동을 증가시키는 원인 또는 결과영희가 공부할 때마다 선생님이 칭찬을 해준다. 그 결과, 영희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한다.→강화인 : 칭찬공부를 한 결과 칭찬을 받게 되었고, 칭찬이 원인이 되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정적 강화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나 그 직후에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하여 그 행동을 ‘앞으로도 더 많이’ 하도록 하는 것?성적장학금을 받은 아이에게 용돈을 주었다.?조르고 떼쓰는 아이에게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었더니, 매번 떼쓰고 조르기 시작한다.부적 강화‘부적(negative)’의 뜻은 ‘제거’한다는 의미로, 부적강화는 어떤 행동을 할 때 혹은 직후에 자극을 ‘없애주거나 감소’시켜 줌으로써 그 행동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대부분 싫어하는 자극을 제거해준다.?성적이 올라간 학생은 청소를 면제해 주었다.?시험이 있는 날 배가 아프다고 말하고 양호실에 갔다. 그 후 배가 아프다고 하는 행동이 증가하였다.자극어떠한 반응(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모든 것?인사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었더니 인사를 더 잘하게 되었다.정적 강화인행동을 증가시키기 위해 제공되는 자극으로좋아하는 것들이다.“매일 한 시간씩 공부하면 용돈을 올려 줄게”→공부하는 행동을 하게 하기 위해 용돈이라는 정적 강화인을 사용하였다.혐오 자극싫어해서 없애거나 감소시키길 원하는 것으로 사람마다 다르다지각하면 화장실 청소를 시킴으로써 지각을 줄일 수 있다.프리맥 원리정적강화의 한 방법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행동을 덜 좋아하는 또는 싫어하는 행동을 하게 하기 위한 자극으로 사용하는 것.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덜 좋아하는 또는 싫어하는 행동이 먼저 일어나게 해야 한다.?“숙제를 다 하면 TV봐도 돼”?“(쓴)약을 먹으면 사탕을 줄께”도피행동도피행동과 회피행동은 모두 부적강화의 형태이다. 도피행동은 싫어하는 자극이나 상황을 당하고 나서 불쾌감을 느끼고 이를 피하기 위한 행동.?추위를 느끼고 두꺼운 옷을 입는다.?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공포감을 느끼고 얼른 내려온다.회피행동회피행동은 이미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일찌감치 피하는 것으로 싫어하는 자극이 발생할 것을 알고 미리미리 피하므로 상대적으로 없애기 힘들다.?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행동무조건 강화인경험하거나 배우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강화인으로 우리의 기본 욕구와 관련된 것이다.?물, 음식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정적강화인이 된다.?불이나 추위, 더위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으로, 부적강화에 쓰일 수 있다.조건 강화인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강화시킬수 있는 힘이 없었으나 이미 알고 있는 다른 강화인과 함께 사용함으로써 또 다른 강화인이 되는 것?대표적으로 돈은 종이에 불과하나 우리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강화인이 되었다. 돈으로는 다른 가치 있는 물건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토큰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 토큰이나 스티커를 주어 정해진 양을 모으면 그것으로 다른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함으로써 바람직한 행동의 증가를 유도 하는 것착한 일을 할 때마다 스티커를 주고, 5개를 모으면 TV시청을, 7개를 모으면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다.교환 강화인토큰을 다른 것으로 교환하였을 때 그것을 교환 강화인이라고 한다.위의 예에서 TV시청이나 컴퓨터 게임은 교환 강화인이 된다.일반화된조건강화인가치를 알고 있음으로써 누구나 선호하여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강화인?돈이 대표적이다.?교환할 수 있는 토큰도 일반화된 조건강화인이 될 수 있다.반응자극을 받음으로써 변화되는 상태나 행동?학생이 착한 일을 하면 선생님은 칭찬을 한다.→학생의 입장에서 행동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은 칭찬이 되고 선생님의 칭찬의 결과, 착한 일을 하는 횟수가 증가하게 된다.→착한 일을 하는 횟수가 증가하는 것은 또한 칭찬에 대한 반응이다.유관성어떤 행동에 일관된 결과를 줌으로써 행동과 그 결과 간의 상관성을 높이는 것. 즉, 반복된 결과를 말한다.과제를 해올 때마다 칭찬하는 것이 가끔 칭찬하는 것보다 더 강화가 잘 될 것이다.유인력상대적으로 더 필요로하고 더 좋아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강화인을 사용하는 것더운 날에는 따뜻한 물보다 시원한 물이 더 효과적인 강화인이 된다. 즉 유인력이 더 큰 물건과 그러한 상황에서 강화인을 사용해야 한다.박탈유인력의 한 형태로, 박탈은(deprivation)은 부족, 결핍한 상태에 있을 때 강화인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뜻한다.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강화인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효과가 클 것이다.포만말 그대로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배가 부른 사람에게는 음식이 효과적인 강화인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즉 박탈의 상태에 있을 때등, 유인력이 큰 상황을 고려해야한다는 의미이다.강화계획행동을 하였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그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발표할 때마다 사탕을 줄 것인지 가끔씩 강화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연속적 강화계획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매번 강화하는 것지각을 하지 않을 때마다 초콜릿을 주어 강화한다.간헐적 강화계획바람직한 행동을 하는데 매번 강화하지 않고 가끔씩 강화하는 것으로 규칙적으로 할 수도 있고 비규칙적으로 할 수도 있다.발표를 하기 위해 손을 들면 가끔씩 지명되는 경우습득새로운 행동을 배워서 익히는 것으로 처음에 더 빨리 습득되게 하기 위해서는 연속적 강화계획이 적합하다.지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제시간에 올 때마다 매번 초콜릿을 주면 초기에 이 행동이 정착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유지시간이 지나도 어떤 행동을 계속 하는 것으로 학습자가 언제 강화인을 줄지 알고 있는 강화보다는 비규칙적인 강화가 효과적이다.로또나 슬롯머신은 언제 될지 모르는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오랫동안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보통 바람직한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를 계획한다.고정간격간격은 시간을 뜻하며, 고정간격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마다(그 시간이 되어서만) 강화하는 것이다.?자율학습 시간에 30분마다 감독 선생님이 돌아다닌다.→단점은 시간을 알기 때문에 그때만 공부하는 척을 할 수 있다.고정비율비율은 행동의 횟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정비율은 일정한 횟수의 행동을 채울 때마다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발표를 3번 하면 가산점10점을 준다.→단점은 일단 점수를 얻어 강화 받고는 쉬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변동간격시간을 달리하며 강화하는 것수시로 쪽지시험을 치는 경우변동비율비율, 즉 횟수를 달리하여 강화하는 것. 언제 강화를 줄지 알 수 없으므로 강화 계획 중에서 행동 유지율이 가장 높다.?낚시나 로또, 슬롯머신 등의 도박이 대표적 예이다.?매력적인 강화인일수록 더욱더 행동 유지율이 높아진다.동시강화계획동시에 일어나는 일 중에서 더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강화가 주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같은 시급이라면 더 쉬운 아르바이트 일을 선택한다.행동 효과결과를 얻는데 효과가 있는 행동이 증가하고 효과가 없는 행동은 감소한다는 것조용히 손을 들고 발표하는 학생에게만 발표를 시켜준다면 큰소리로 시끄럽게 말하는 행동은 감소할 것이다.제5장 핵심용어소거강화를 함으로써 유지되어 온 행동에 더 이상 강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점차 행동이 감소하여 결국 더 이상 그 행동이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소란스럽게 구는 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관심을 주는 교사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하자, 소란스럽게 구는 행동이 점차 감소하다 결국 하지 않게 되는 경우소거 저항어떤 행동을 소거시키기 위해 강화를 멈췄는데도 계속 그 행동을 하는 것.
로바스에 대한 재고어떤 의미가 있는가자폐아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종종 대립되는 것 같다. 간혹 그런 이미지는 강렬하고 종종 자멸적인 행동들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때론 강한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고려하는 어려운 도전을 하는 개개인의 놀랄만한 기술과 성취 때문이다. 지폐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흔한 신념(관습)은 더 생산적인 삶을 이끄는 어떤 개개인을 도와주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족, 친구, 전문가에게는 도전과 장애물이 남아있다.과거 30년 동안, 자폐아에 초점을 맞춘 무수한 중재가 있었다. 그 중재는 대체로 의학적, 심리학적, 행동의 세가지 영역("camps")에서 였다. 이러한 유형의 모든 중재는 각각의 지지자와 반대자가 있기 마련이다. 중재의 한 범주는 행동 수정(modification;변경,변화,완화)이다.비록 장애아동의 교육과 치료에 행동적 원리의 적용이 어렵고 새롭다 하더라도, 1993년 ?Let Me Hear Your Voice?책의 출판은 행동 수정 더 명확히는 일찍이 자폐아에 대한 교육과 치료에서 선두가 되었듯이 행동 치료를 진척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은 “그 선두가 남긴 의미는 무언인가?”이다. 답은 명백하다. ?Let Me Hear Your Voice?책의 출판은 어린 자폐아동에게 행동수정의 기술 적용 환경에 대한 희망과 논쟁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촉매역할을 했다.?Let Me Hear Your Voice?를 둘러싼 논쟁은 자폐아의 삶과 관련된 많은 이질적인 것들, 자폐로부터의 회복의 개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Let Me Hear Your Voice?는 Maurice 가족과 그들의 두 자폐아이의 치료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아이의 치료를 위한Maurice 가족의 희망은 UCLA대학의 교수 Ivar Lovaas에 의해 발표된 “어린 자폐아동의 행동 치료와 일반교육, 지적 기능”이라는 1987년 기사의 발견이었다. 그 기사는 진학 전 자폐아동의 강력한 행동 중재의 성과에 대해 설명한다.그 기사와 다음의 글에서 Lovaas는 최근 만들어진 조기 중재를 따르는 세 그룹에 대해서 설명한다: (1)중재를 함으로써 더 이상 자폐의 특징을 보이지 않는, 회복 가능한 그룹, (2)여전히 자폐의 행동 특성을 보이지만 상당한 진척을 보이는 중간그룹, (3)중재의 효과(이익)를 본 작은 그룹. Maurice 가족은, 자폐 결손의 회복을 설명하고 또 Ivar Lovaas의 1981년 책, ?Teaching Developmentally Disabled Children: The Me Book?에서 설명하는 원리에 기초한 행동 수정 치료의 특징을 반영한 강력한 가정 치료 프로그램(home-based therapy program)을 확립하는 1987년의 연구 ‘주제의 47%(9/19)’에 초점을 맞춘다. Maurice 가족은 두 아이의 비슷한 회복 상태의 성취를 보고한다.behavior modification을 행동수정으로 번역하면 됩니다.로바스는 자신의 중재프로그램의 효과를 바탕으로 세그룹으로 분류했습니다.1. 더이상 자폐증상을 보이지 않는 회복 그룹2. 여전히 자폐증상을 보이지만 어느정도 혜택을 본 그룹3. 로바스프로그램에서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 소그룹"The Me Book"은 첫번째 그룹을 중심으로 쓰여진 책입니다.The Me Book1981년 Ivar Lovaas에 의해 출판된 책, ?Teaching Developmentally Disabled Children: The Me Book?은 자폐아동의 강력한 행동 치료를 위한 가장 중요한(첫 번째) 근거이다. 그 책은 행동 치료의 중요한 세부 원리를 설명해주는 훈련 지도서이다. 그 지도서는 7개의 구성 단위로 되어있다: (1)기초 정보, (2)학습을 위한 준비, (3)초기 언어와 매치의 모방, (4)기본 자조 기술, (5)중간 언어, (6)진전된 언어, (7)아동의 세계의 확장. 5개의 비디오테이프가 그 지도서를 보충한다.
Lovaas 프로그램Lovaas는 자폐아를 다룬 안정되고 가정에 기초한 치료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 치료는 3살 6개월 정도에 도달하기 전에 일주일에 30~40시간 사이로 첫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는 보통 2년 동안 일주일에 5-7회 하루에 4-6시간 1:1치료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요소들 모두는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더욱이 가족의 선호에 따라 변할 것이다. 대표적인 교육수업은 보도에 따르면 2-3시간(쉬는 시간을 포함해서)정도 계속된다. 특정한 교육적 과제는2-5분정도 시간이 주어지고 뒤이어 1-2분의 짧은 쉬는 시간이 있다. 각각의 교육 시간의 끝에 아이는 일반적으로 15-20분이 과자를 먹거나 자유롭게 놀거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훈련되지 않은 일상적인 것들과 활동에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Lovaas 프로그램은 자발적인 조절방식에 기초한다. 개별적인 실험교육 형식은 모델을 포함하고 3가지 기초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1)차별적인 자극물(자극)을 보여주는 것 (즉, 요청 또는 요구)(2)응답(다음의 요청 또는 요구에 응답하는 것)(3)강화된 자극물을 보여주는 것, 맞게 행동하면 이 프로그램에선 상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아니야”라고 말한다. 모든 교육 상황은 이 세 가지 단계의 모델을 따르고 간단한 행동을 좀 더 종합적인 행동의 연속으로 만들도록 시도한다.아이들에게 “짝 맞추기”를 가르치는 수업의 설명은 이러한 접근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물건을 동일한 물건과 짝 맞추기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있는 책상에 컵을 배열한다. 그런 다음 선생님은 두 번째 동일한 컵을 아이에게 건네고 “동일한 것을 집어와”라고 지시한다. 만약 아이가 컵의 짝을 잘 맞춘다면 선생님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음식, 칭찬, 포옹 또는 이런 것들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만약 아이가 자극에 응답을 잘 하지 못한 경우에 그는 물리적(육체적)으로 응답을 하도록 도움 받을 것이고 그다음 칭찬을 받을 것이다. 물리적(육체적)격려는 아이가 꾸준히 말로 하는 요청에 잘 응답 할 때까지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서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 과제를 숙달하는 데 있어, 두 번째 한 쌍의 물건(예를 들면, 두 개의 숟가락)이 소개된다. 다음 아이에게 테이블 위에 있던 두 번째 물건을 짝 맞추기 하도록 요구한다. 이리하여 물건들 두 짝 사이의 차이점을 배우기 시작한다. 격려, 물리적 격려 줄어들기 그리고 칭찬과 같은 응답의 유형은 아이가 꾸준히 두 쌍의 물건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때까지 이용된다. 아이가 이 기술을 숙달 했을 때, 새로운 물건들이 소개된다. 아이가 물건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무작위로 건네진다 그리고 아이는 실수하지 않도록 선생님의 신호에 의해서 지도받아 진다. 짝 맞추기 훈련은 아이가 많은 가능한 특징(예를 들면 색, 크기, 모양)의 물건들 중에서 차이를 구분할 때까지 계속 된다. 교육은 표현언어와 수용언어, 말을 사용하지 않는 흉내, 사회적 언어, 놀이, 스스로 터득한 기술들과 같은 12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현명한 방법을 따른다.격렬한 행동에 대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치료 팀”의 설립을 필요로 한다. 최소 3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일주일에 총 30-40시간정도를 할애 할 수 있는 치료팀이 소개 받아진다. UCLA에 Behavioral Treatment of Children(아동행동교정소)교정소는 “피라미드 같은”피라미드의 형식을 기초로 대학생들이 있는 직원 조직을 사용하고 직접 치료 경험을 제공한다. 더 경험이 풍부한 치료사들과 심리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들을 감독한다. 치료 경험들은 학생들의 집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주중 팀 회의와 목적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어떤 치료를 할지 결정하는 것에 엄격한 초점이 맞추어 진다. UCLA로부터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받지 않는 개개인을 위하여, Lovaas Training은 네트웍을 통해서 Lovaas방식으로 훈련된 상담자와 가족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졌다. 이러한 상담 서비스를 받는 가족들은 잘 해결되길 기대하고 대부분의 많은 경우엔 치료팀의 노력을 상담 후원으로 이끌어 나간다. 가족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을 보수가 있거나 봉사활동으로 모집하는 것을 신뢰한다. 한 가지 Lovaas방식의 근본적 전제는 동기가 부여되고 신뢰할 수 있는 개인만이 감독 하에 있다면 성공적으로 치료 프로그램을 이행 할 수 있게 훈련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탑(塔)시대별 탑의 특징1.탑(塔)의 의미와 변천탑은 탑파(塔婆)를 줄인 말로 원래는 범어(梵語 ; Sanskrit)의 'Stupa' 또는 파리어(巴梨語 ; Pali)의 'Thup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탑파는 불교가 발생하기 전부터 고대 인도에서 '무덤'의 뜻으로, 즉 사람이 죽고나면 화장(火葬)을 한 후 흙과 돌로 돔(Dome)과 원분(圓墳)을 만든 것을 가리켰다. 이러한 탑파는 불교발생과 더불어 교주인 석가모니가 입멸(入滅, 涅槃)하자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당시의 사회 장속(葬俗)에 따라 다비(茶毘 ; 火葬)하였고, 다비 후 그 유골인 사리(舍利)를 봉안하면서 불교적인 조형물이 되었다.그러므로 탑파의 의미는 '신골(身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올린 불신골(佛身骨, 眞身舍利)을 봉안하는 묘(墓)'라는 뜻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백년이 지나서 대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Maurya)왕조의 아육왕(阿育王 ; Asoka, 272∼232 B.C.)은 불사리를 봉안한 8개의 탑을 발굴하여 다시 8만 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따라서 불탑의 성격은 처음에는 불신골을 모신 무덤이었으나 점차 불교의 거룩한 가르침을 뚜렷이 표시함으로써 그 믿음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한 기념물로 바뀌어 갔다고 볼 수 있다.중국에서는 후한 명제때(57∼75년)인 1세기경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탑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당시의 불탑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운강석굴 등에 새겨진 모습을 보면 초기의 탑들은 목조에 의한 다층누각(多層樓閣)형식이었으며, 꼭대기에는 인도탑형식이 그대로 축소된 상륜부가 얹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조시대에 이르면 중국탑의 양식이 정립되는데, 숭악사8각15층전탑(嵩岳寺八角十五層塼塔 ; 523년 건립)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후 주로 8각형의 전탑이 중국탑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우리나라에서도 중국으로부터 형태는 대부분 방형으로 네모난 지대석 위에 놓여 있고. 그 위로 갑석을 얹어 놓은 것이 일반적이다.(2)탑신부탑의 기단부 위에 놓이는 탑의 몸체인데, 옥개석과 옥신석이 합쳐진 것이다. 탑의 층수를 헤아릴 때 탑신부의 옥개석과 옥신석의 수를 보고 3층, 5층 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복발형의 모양이었으나 차츰 탑신이 홀수로 구성되면서 중층탑으로 변하게 되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물의 지붕과 같은 형태로 주로 4단 또는 5단의 역계단식 받침으로 되어 있고 처마 끝부분에는 풍탁을 달았다.(3)상륜부탑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는 장식물로 그 모양은 인도 초기 탑 형태가 소형화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방형의 노반에 복발과 양화를 얹고 그 위에 찰주를 세운뒤 9개의 보륜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보개와 수연을 붙이고 맨 꼭대기에는 용차와 보주의 2단으로 된 구형을 놓았다.3. 탑의 종류탑은 형태에 따라 전형석탑, 복발형탑, 보협인탑, 오륜탑, 4사자석탑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전석탑, 금은탑, 청석탑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1)목 탑우리나라의 불교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처럼, 비록 탑파 형식에 있어 인도 탑파의 형식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원형은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인도와는 달리 기존의 건물을 사원으로 삼으면서 여러 층의 높은 목조탑이 건립되었으며, 따라서 평면은 원형이 아닌 방형이 되다.목조탑은 사각형의 터를 고르고 그 위에 기둥이 될 초석을 가지런히 배치한 후 정 가운데에 심초석을 돋우고 그 위에 큰 기둥을 세워 층별로 다층의 건축물을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목조탑은 이미 중국 북위시대 석굴에서 벽화나 조각으로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에 건립된 탑은 목조건축 양식의 탑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목조탑은 그 재료가 나무이므로 불에 타기 쉬워서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쳤던 우리나라의 경우 모두 타버리고 고대에 만들어졌던 목탑의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그러나 식을 오늘에까지 전해주고 있는 귀중한 성보이다.(2)전 탑전탑은 벽돌로 만든 탑으로, 탑을 건립하기에 앞서 인공을 가하여 벽돌을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수고가 많이 들고 작업에 어려움이 많아 전국적으로 파급되지 못한 채 지역에 따라 조성 되었는데, 특히 안동지방에 집중되어 있다.따라서 전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말하자면 대개 신라의 전탑 형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고려시대의 전탑은 원형이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의 모전탑의 형식으로 미루어 신라시대의 전탑형식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전탑은 안동 지역의 신세동 7층 전탑과 동부동 5층 전탑, 조탑동 5층 전탑, 금계동 전탑과 고려 시대의 여주 신륵사 다층 전탑 등이 있다.(3)모전석탑모전석탑은 전탑과는 달리 돌을 다듬어 벽돌 모양으로 만든 다음 이를 쌓아 올려 탑을 조성한 것이다. 모전석탑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 모전 석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석재를 벽돌형으로 잘라서 축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석탑과 같이 석괴(石塊)를 층층으로 쌓되 기단과 낙수면에서 신라 전탑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전자의 대표는 경주 분황사 석탑이고 후자의 것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동의 5층석탑인데, 이 두가지 형식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것은 기단이 단층이라는 것인데, 이 점 역시 전탑의 형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탑을 보고 벽돌을 구워서 조성하지 않고 석재를 잘라서 축조한 것에서 우리민족의 탑재 선택의 특이성을 엿볼 수 있다.(4)석 탑우리나라에는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석탑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화강암이 풍부하였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화강암 자체가 다른 어떤 암석보다 채석과 치석을 하기에 손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전란으로 목조나 토제, 금속제 같은 것은 불에 타버리고 파괴되어 때로는 그 흔적이 없어져 버리는 것에 비해 석조물이라는 점에서 화재에도 잘 견디고 내구성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수를 그대로 보존형식이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전탑에서는 목탑의 흔적이 또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석탑의 최초의 건립은 백제에서였고 그 양식은 당시 유행하였던 목탑을 본뜬 것이었으므로 한국 석탑의 연원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4. 탑(塔)의 시대적 변천Ⅰ. 삼국시대1. 고구려의 탑고구려의 탑으로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탑사에 8각7층석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평양 청암리 금강사지, 대동군 상오리사지 등에는 8각의 목탑지가 남아 있는 점으로 볼 때 주로 평면 8각의 탑들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구려의 양식은 이후 이 지역의 고려시대 석탑에 계승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평양 영명사 8각5층석탑, 대동 광법사 8각5층석탑, 대동 율리사지 8각5층석탑, 평창 월정사 8각9층석탑, 김제 금산사 6각다층석탑(이상 고려)이 있으며, 묘향산 보현사 8각13층석탑, 남양주 수종사 8각5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이상 조선)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2. 백제의 탑백제에서도 처음에는 목탑이 건립되었으나 남아있는 것은 없고, 부여 군수리사지, 부여 금강사지, 익산 제석사지 등에 탑지만이 남아 있는데, 평면 방형인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백제탑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이 탑을 보완하여 백제식의 석탑양식을 완성한 정림사지석탑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탑들은 목탑의 각 부재에서의 여러 양식을 목재 대신에 석재로서 충실히 구현한 석탑으로서 그 특징을 보면, 기단이 얕은 단층기단이고, 옥개석의 폭은 비교적 얇고 넓으며, 네 귀에서 반전하고, 내림마루를 각출했다. 아울러 각 부의 구조는 목조건축의 가구법을 따라 많은 돌을 썼으며, 우주에는 배흘림이 나타난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있어서는 1면 3칸의 건물형식을 취하였는데 중간칸은 개방되어 내부로 통하게 되어 있고, 내부에서 교차되는 중심에는 거대한 찰주석이 있는 점은 목탑의 형식을 매우 충실히 표현한 것이다. 남아있지 않고, 황룡사9층목탑의 탑지만이 남아 있다. 석탑으로서는 모전석탑인 분황사탑만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신라의 석탑이 백제와는 달리 전탑을 모방하면서 출발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Ⅱ. 통일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우리나라 석탑은 하나의 형식으로 집약·정돈되는데 이러한 양식의 가장 시원적인 석탑은 감은사지 3층석탑(682년)과 고선사지 3층석탑(686년 이전)으로, 이 탑의 양식은 이후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각 부의 구성이 백제탑과 같이 많은 석재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에서의 구조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기가 내려옴에 따라 초기적인 가구가 점차 희박해져서 석재의 수가 줄어들며 형식도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괴체성(塊體性)의 경향은 다시 기단부터 탑신부를 구분할 필요없이 석탑 전체에 영향을 미치어 앞선 시대의 복잡한 가구양식이 간략화되었으며, 기단과 탑신부의 균형도 높고 큰 기단과 방대한 탑신부가 시대가 내려오면서 거의 비슷한 크기로 되어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원적인 양식에서 변화하여 우리나라 석탑의 가장 일반적인 양식, 즉 전형양식의 전형이 나타난다.통일신라시대의 조탑 활동은 그 성대인 8세기 중엽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며, 전형양식이 완성되어 정형화된 석탑이 나타난다. 감은사지 3층석탑이나 고선사지 3층석탑과 같은 시원적인 신라양식의 전형이 완성되어 정형화한 것으로, 여러 개의 석재가 생략되어 괴체(塊體)의 옥신과 옥개를 이루게 되었고, 하층기단 면석의 탱주가 3주에서 2주로 줄어든 점이 현저하게 눈에 띤다.9세기에 들어오면 8세기 중엽에 이루어진 신라석탑의 전형적 정형은 차차 변형되어감을 볼 수 있다. 9세기 후반에 이르러 위에서 본 석탑보다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면에서도 더욱 큰 변화를 보이는 석탑들이 나타난다.신라 하대에 이르면 또 하나의 변형된 형식으로 단층기단이 출현하는데, 기단부의 구조가 2중기단이라는 기본형에서 벗어나 단층기단 위에 바로 탑신부를 받고 있는 형식이다. 이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