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주식’이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서 확연히 기억되는 순간이 두 번 있습니다. 첫 째는 성공적이셨던 아버지의 사업이, 아버지의 주식투자 실패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을 통해 처음 ‘주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고등학교 때 학교 동아리에서 주식에 대해 연구하고, 제가 직접 주식을 투자해서 원금을 뛰어넘는 수익을 얻게 되어 그것을 통해 ‘주식’에 흥미를 가지고 저의 꿈을 직접적으로 정한 계기가 된 때입니다.저는 평소에 조용하다, 또는 낯을 가린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태도가 저의 ‘신중함’이라는 성격을 잘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떠한 것을 선택하거나 실행할 때 그 대상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람을 사귈 때도 첫인상으로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 대상을 직접 겪어보고 판단을 내립니다. 물론 이것이 ‘사람을 너무 가린다.’라고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신중함 이라는 태도가 주식을 매매하고, 정확한 사고를 하는 데 있어 엄청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것에 노력과 성실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일을 합니다. 중학교 때 저의 수학 선생님의 ‘어떠한 것이던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조언을 삶의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중함’이라는 성격이 단지 느긋하고 태만한 성격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풀어주고, 단순히 말만 한다. 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한다고 생각합니다.제 삶에서 ‘대학 입시’라는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던 사건은 두 번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고 저는 제 꿈이 되어버린 ‘펀드매니저’로서의 길에 맞는 학과로의 선택이 아닌 단순히 학교와 학과의 이름만 보고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망했던 그 대학에서는 합격증을 받았지만 저는 제 꿈을 위해서 다시 한번 입시라는 산을 넘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저의 목표와, 처음 마음 먹었던 생각과는 달리 재수를 했으면서도 꿈과는 오히려 더욱 멀어지는 학과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실망한 저에게 부모님은 실망하지 말라고, 네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결국 이루게 되어있다면서 길은 돌아가는 길도 있다고 위로해주시면서 저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님의 뒷밭여주심이 제가 그런 상황에서 제 꿈을 위해 다시 달릴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제 꿈과 상관이 없는 학과에 왔지만 저는 제 꿈을 위해 관련된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경영, 경제학과의 학생들이 만든 창업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증권 관련 동아리에 들어 공모전에 나갔고, 여러 증권회사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모의주식 투자 대회에서도 참가해 입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꿈을 위한 노력을 기반으로 저는 금융관련 학과로 전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과에서 또한 우수한 학점관리와 더불어서 학교에 재학 중 두 곳의 증권회사에서 인턴 직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며 장래 ‘펀드 매니저’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저는 고객과 기업에게 맞춤화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안목과 설득력을 갖춘 현명한 펀드매니저가 목표입니다. 두 곳의 증권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펀드매니저의 분석보고서와 그들의 주식 운용을 검토하며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재학시절 투자분석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발히 활동하며 목표주가를 산정해내고 동아리 회원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우면서 또 얼마나 즐거운지 깨달았습니다. 투자매력도를 설명하기 위해 기업의 경쟁사, 영업상태, 재무 상태를 비롯한 관련 거시지표와 경제의 흐름, 새로운 이슈 그리고 CEO의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인 정보를 정리하고 논리와 핵심을 살려 분석해야 하는 매주 정기 활동을 통해 금융인으로 초석을 다지고 있습니다. 입사 후 업무의 기본기가 되는 전문지식과 자질을 함양하며 정확한 금융 노하우를 습득할 것입니다. 이후 외부 투자주체들에게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 매력으로도 신뢰받을 수 있도록 정진하여 한 섹터의 현명한 애널리스트로서 명성을 쌓을 것입니다.
자신의 병고를 시에 담아 품다 시인 ‘한하운’20130421 이기용보리피리 / 시인 한하운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피 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때 그리워피 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인환(人環)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피 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畿山河)눈물의 언덕을 지나피 ㅡㄹ 닐니리.위의 작품은 시인 한하운의 대표작인 ‘보리피리’라는 작품이다. 나병 환자였던 그가 세상에 가진 외로움, 그리고 그의 어릴 적의 그리움을 함축하고 있는 이 시는 나병환자로써 세상의 손가락질 때문에 걸인으로써 살아갔던 그가 명동에서 생계의 수단으로 팔던 시를 본 주변 문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시인으로써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과거에 지었던 시로 인해서 세상의 오해를 받았을 때 지었던 시이다. 비유나 상징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이 시를 보았을 때 편하게 해석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일부러 어려운 문장 같은 구절을 넣은 시가 아닌 자신이 처해 있는 ‘문둥병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비애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 해석은 시에 있는 시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인환, 즉 사람들이 있는 인간 세계와 인간사가 그리움을 시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의 인간세상의 그리움과, ‘외적 사람들과의 어울림’ 이라는 것을 찾고자 함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방랑의 기산하’라는 문장에서 자신이 방랑한 기간이 몇 년이냐고 스스로 되묻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방랑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그 방랑의 기간이 눈물의 언덕이었음을 시어를 통해서 읽어 볼 수 있는 작품 이었다.실제로 나는 문둥병자들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모두다 소록도라는 섬에 격리되어 살아가고 그 섬에서 문둥병이 낫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그러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하운 시인은 문둥병자였지만 소록도에서 단지 2/3일간의 짧은 밤만 보내셨다고 한다.전라도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시인 한하운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天安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西山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千里 먼 全羅道길위 시는 한하운 시인이 쓴 전라도길-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작품의 시이다. 위에 적어 놓았다 시피 한하운 시인은 소록도에서 살지 않은 시인이었다. 단지 소록도라는 곳에 2/3일 간의 여정으로 다녀온 것에 대한 시이지만 위 2연의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같은 시구를 보아 위의 보리피리처럼 세상에 거부당한 그가 소록도에서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또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위 시의 제목인 전라도 길은 시인이 직접 걸어본 길이 아닌 시인의 애인이었던 R이라는 여성이 가보고 시인에게 전해준 배경에 대한 감상 등을 듣고 묘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묘사한 전라도 길은 전라도 길이라는 단지 지형 묘사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있는 고된 여정, 3연에 보이는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와 같은 억센 환경을 살아가고, 신을 벗으면 발가락이 하나씩 사라지는 그러한 충격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지만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있는, 가도 가도 천리 길이고 먼 전라도 길이 새삼 눈에 보이며 험난한 삶을 살았구나가 다시 느껴지는 시구였다.자화상 /시인 한하운한 번도 웃어 본일이 없다한 번도 울어 본일이 없다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그러한 슬픔에 굳어 버린 나의 얼굴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한 때 나의 푸른 이마 밑검은 눈썹 언저리에 배워 본 덧없음을 이어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 머리에찔름찔름 다섯 자보다 좀 더 큰 키로 나는 섰다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고 그가 말하는 시구와 웃음도, 울음도 웃음도 아닌 슬픔에 굳어버린 얼굴, 그리고 웃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지에 대한 시구들을 통해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병한 문둥병으로 인한 그의 삶을 단면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발병 이후로 한하운은 한 번도 웃어본 일도, 울어본 일도 없다. 웃음과 울음은 같은 통로 안에서 울부짖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웃을 수 없다면 울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소망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했고 느낄 때에는 웃음과 울음은 처음부터 차단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시구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이 체념과 우울은 절망의 다른 얼굴이다. 그는 이 절망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읽고 규정한다. 하지만 절망가운데서 그는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며 웃음과 울음을 대상화하여 그 환상성을 간파하고 있다. 비록 불임의 절망감에 허덕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문학에 대한 열정은 성한 사람 이상임을 엿볼 수 있다.
현대소설작법 요약과 감상제 1장이 책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저자가 그의 수십 년 간의 강의노트를 요약하고 다듬어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을 쓰는 방식과 소설론에 대한 것을 논한 책 이다.1. 소설이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첫 장에서 부터 먼저 자신의 책을 토대로 구성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는 소설이 여타의 서적과 다른 점은 인물이 등장하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은 지식을 전달하거나 서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 이다. 소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열린 양식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뿌리는 서사가 지니고 있는 풀어내는 듯한 이야기성인데, 그러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창작과 관련되어 있다.2. 글쓰기는 독창적이라는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자기만의 독특한 체험을 소재로 삼는 것이 그러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체험 외에도 남보다 심오하고 남다른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설에는 등장인물, 구성, 주제, 배경, 서술자 및 시점 등 다른 종류로 엇나가지 않도록 하는 기본요소가 있다.3. 소설에 관해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개념적인 접근으로, 첫 번째, 소설은 일정한 분량의 원고 안에 이야기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는 서사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소설은 있었던 사실을 서사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꾸며낸 이야기로 허구성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소설의 이야기는 독자의 이성적 판단에 호응할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한다.4. 소설의 이야기는 인간에 관한 것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 의식을 다룬 소설일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반영하고 인간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소설 속의 인물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여주고 그의 인간과 또는 세계관을 나타내게 된다.5. 5장에서 저자는 소설가의 길에는 밝은 빛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쓰는 것 자우리가 밝히려는 뜻밖의 진리를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여덟 번째, 소설가는 자신의 견해가 건전하고 자신의 수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확신, 또는 그것을 갖는 용기인 대담성을 가져야 한다. 성공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소설을 쓰는 작업을 할 때 격리 시키며 적절한 계획을 세우며 현실을 무시해야만 한다.7. 소설의 구조는 형식과 내용으로 양분화 되지 않는다. 하나의 문학작품은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고 형식이 내용을 제한하면서 서로 얽혀 전체가 되는 것이다. 내용은 소설 집필이전에 마련되어야 할 것들로 수집된 여러 정보들을 의미한다. 언어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줄거리를 만들어놓고 개별사건들과 인물의 성격을 고심해야한다. 서술자가 서술하는 태도, 즉 어조 또한 미적 형식을 이루는 때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구성요소들은 서로 의존적이며 보완적이다.제 2장1. 모티프란 무엇인가는 모티프의 개념에 대해 논하고 있다.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개념을 정의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 책은 모티브의 용어를 3가지로 축약하고 있는데, 되풀이 되는 이미지와 어휘의 반복, 단순한 사건의 연속, 특별한 인상을 부여하는 형상적 특질이며, 세 가지 외에도 후대에 전송되어 살아날 수 있는 것으로 불리고 있다. 모티프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가족, 이중인격, 거울, 광기, 권태, 공산주의, 실종 등이 있고, 이러한 모티프는 소설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또한, 인물들의 성격적 특징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2. 소재의 개념은 소재의 개념과 모티프와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재는 쉽게 말하면 이야깃거리인데, 등장인물과 깊은 관련을 맺을 뿐만 아니라 다분히 사건적 요소를 지니며, 일반적으로 얻은 어떤 소재를 가지고 모티프를 설정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3. 자료 수집의 중요성에서는 자료의 중요성과 그 기능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보면 만약 상상력만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나타나는 소설은 인물의 외면과 내면의 성격을 동시에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소설이 현실 세계에 대한 모방이라고 말하나, 소설의 세계는 사실에 근거를 둔 실제 세계와는 다른 허구의 세계이다. 또한, 등장인물의 개념에서는 카실의 소설 인물에 관한 설명도 한다.2. 인물의 유형하지만 실제 소설을 쓰는 사람 자신이 인물의 성격을 창조, 부각 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편형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이 존재한다. 이러한 인물의 성격을 변하게 하는 요인은 내면적 갈등이거나 환경의 변화이거나 주어진 운명에 의해서다. 또한 입체적 인물은 늘 갈등과 긴장 속에 있고 역동적이다. 그 갈등과 긴장은 시간에 따라 새로운 것으로 변질하며 인물의 행동 또한 그것을 구체화한다. 그러나 어느 소설이 평면적 또는 전형적 인물을 다루었다고 해서 덜 훌륭하고 입체적 또는 개성적 인물을 다루었다고 해서 더 훌륭하다는 기준은 없다.3. 인물 제시의 방법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행위와 사건들을 어떤 위치에 배열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으면서 끝까지 읽혀야 한다. 시작은 자연발생적이고 제멋대로 서술자의 자의에 따라 서술되는 특징을 갖는다. 서술자는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을 기록한다. 중간은 이러한 구조의 형태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완전무결한 전체인 것처럼 이미 말했고 행동했으며 느낀 것의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 끝은 단순히 주인공의 초기의 희망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이행되고 실천된 결과에 불과하다.4.인물을 형상화 하는 방법소설의 시작은 서술자의 자의와 그것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 생겨난다. 개인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에 집중된다. 이에 비해 어떤 소설들은 한 행위자가 아니라 두 행위자, 또는 그 이상의 행위자들이 각자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을 서술하기도 한다. 그러한 소설들의 시작은명했다. 장편소설의 경우, 분규는 발단의 끝에서부터 절정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대분규와 그 사이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분규로 나누어볼 수 있다.2. 시작 중간 끝의 두 유형상승 행동이 최고점에 다다르는 부분, 또는 감정 반응이 최고조에 오르는 순간이 바로 절정이다. 절정은 행동의 역전이 이루어지는 부분인 동시에 상승 행동과 하강 행동으로 변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 과정이 지나면 하강 행동인 대단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단편소설에서는 대단원을 생략한 채 절정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둘 일이다. 의도의 반전은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인식은 무지했던 것으로부터 깨달음으로의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발견의 형식이다. 첫째부터 셋째까지가 주로 사건을 위주로 해결한 것이라면 마지막 것은 주로 인물의 깨달음을 위주로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플롯의 전개방법플롯을 전개함에 있어서 다음으로 고려할 점은 각 부분의 양적 비율이다. 발단 부분에서 인물, 배경, 상황의 윤곽을 충분히 제시 했는가, 이 부분에서 불필요하고도 산만한 내용이 끼어들지는 않았는가. 분규 부분에서 사건 전개에 필요 없는 소재나 에피소드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지나 않았는가, 이 부분이 사건 발전의 상승 행동이라는 본질을 명확하게 이행하고 있는가. 절정 부분에서는 상승 행동에서 하강 행동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대단원은 소설 전체의 마무리라는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는가. 대단원의 기능과 상관없는 소재나 에피소드가 도입 되었거나, 상관있는 소재나 에피소드라 하더라도 너무 확대하여 글 전체의 의미를 흐리게 하지는 않았나. 이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확인하면서 쓰는 사람 자신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나도록 각 부분의 양적 비율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4. 행위 및 플롯의 순서소설 쓰는 사람이 연대기적 시간순서로 사건들을 배열하든 플롯의 시간순서로 사건들을 배열하든 소설 안의 사건들은 소설의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공간을 초월한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느 각도에서든 대상을 조망할 수 있고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도 독자에게 알릴 수 있다. 이러한 전지적 시점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무제한적으로 알고 있으며 스스로를 공공연하게 독자 앞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소설가들이 점차 시점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 이후, 소설가로서의 전지는 소설가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독자의 감정이입이 방해 받을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필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인물을 안다는 것이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현대 소설가들은 전지적 시점의 사용을 기피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소설가들은 작품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서술자를 내세우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을 구사한 중립적 전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이다.3.위에서 말한 중립적 전지란, 소설가가 필자로서의 전지에서 객관화로 가는 것이다. 이 시점은 소설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고 서술자는 모든 등장인물의 내면과 과거를 알고 그것들에 관해 서술할 수 있지만 소설가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4. 물론, 목격자로서의 나 에서 서술자는 물론 나다. 그렇기 때문에 서술자는 나에 관해서만은 전지적으로 알기는 하지만 나가 목격한 대상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알 뿐 그 외의 대상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시점은 중립적 전지에 비해 능력적으로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는 해도, 보다 객관화의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5. 서술자가 쓰는 주인공으로서의 나에 대한시점은 목격자로서의 나 시점보다 그 시계의 범위가 더욱 제한적이다. 이 시점은 주인공인 나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만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나가 존재하는 곳에서만 말할 수 있고 나이외의 인물의 내면 정보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히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이 풍성하고 주관적이며 종종 내면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인다.6. 또 다른 시점 중 하나는 3인칭있다.
시학 내용 정리본 시학이라는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에 관한 학문적 이론을 보여준다. 현 요약하려는 제 1~12장의 기본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책 전체의 기초적 베이스로 잡고 있는 ‘모방론’이 중심의 내용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을 기초로 각각 수단, 대상, 방식에 따라서 서사시, 비극, 희극이 갈라져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인은 모방을 통해 대상을 좋거나, 보통, 혹은 나쁘게 평가하는 방식과 대상에 따라 희극과 비극으로 구분하는 ‘모방기술자’라고 줄여 쓴다.그런 시인의 시는 사람의 본성에 기원한 두 가지의 원인인 모방적 행동성향과, 모든 사람들은모방적 사물에 즐거움을 얻는다는 이론에 기인하고 있는데 우리 사람은 본성에 따라 행동하기때문에 시는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며 즉흥적인 노래라고 볼 수 있음을 시학은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시는 시인 그 자체의 성격이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고 경박한 시인은 단장운율의 형식을 참고한 욕설의 방식으로, 고상한 시인은 그자체의 고상한 방식에 따라 서사시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욕설의 방식과 서사시가 나아가서 각각 희극과 비극으로 되어 진다. 라고 시학에서 밝히고 있다. 욕설이 희극이 되고 서사시가 비극이 되는 형식이고 또한 후장에 추가될 내용에 따라 그는 희극보다는 비극을 ‘위엄이 있다’라고 말하며 12장까지의 과정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희극과 비극이라는 분야를 5장에서 자세히 다루는데 희극을 일종의 결함이며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희극보다는 비극에 우월함을 다루고, 서사시와 비극이 운율과 모방과 도덕적으로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등한 관계라고 의견을 밝히며, 비극이 서사시에서 따르고 있음을 밝혀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본 저서의 6장에서 그는 비극이 가진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의 우울함을 풀 수 있다’는 유명한 표현단어인 ‘카타르시스’를 정의하여 비극에 관한 그의 생각을 더욱 강화하였고, 또한 그러한 비극이 한 장르로 성립되려면 전체적으로6가지 구성요소가 필요함을 말한다. 그것은 플롯, 성격, 언어, 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노래 등 인데, 특히 시학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행동과 삶의 모방인 비극의 특성에 맞게 하기위한 조직 즉 플롯이다. 즉 행동을 드러내기 위한 사건과 플롯이 비극의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는 또한 그러한 플롯의 원칙을 정의하고 통일성이 필요함을 밝히는데, 그는 잘 짜인 플롯은 인의 시점에서 끝나거나 시작하는 것이 아닌 처음, 중간, 끝의 설정에 따른 인과율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질서 있는 조직도와 적당한 크기를 가짐으로써 플롯으로 말미암아 비극작품의 적절한 크기를 사건의 개연적 또는 필연적으로 연결하는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은 통일성에 관한 설명에서 그는 플롯은 하나의 행동에 관한 모방이므로 플롯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단일한 행동을 모방해야 한다라고 밝히는데, 그 모든 부분이 긴밀하게 짜여잇음, 즉 마치 탑의 다리와 같은, 한 개가 없어지면 무너지듯.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제 10장에서 플롯의 단순성과 복합성의 나눔을 뒤바뀜과 깨달음의 유무로 구별함으로써 플롯의 구조를 설명한다.이상의 논의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일이 실제의 일이 아닌 일어날 수 있고 개연성이나 필연성을 갖춘 일을 정의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시는 개연과 필연을 갖는 보편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가 행동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가 되고 꼭 개연성과 필연성을 부가적으로 소유하는 뒤바뀜과 결합하여 가장 효과적인 깨달음을 표현한다고 시학에서는 말하고 있다. 즉 플롯 구성에서 핵심인 깨달음과 뒤바뀜과 개연, 필연성이야말로 시학에서 그가 12장까지의 강조하는 것이다.본 13~26장은 그 전장의 모방론에 이어 전체적으로 비극적 성격의 극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글을 써 내려 가고 있다.그가 이번 장에서 말한 것은 플롯의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비극의 구조와 가장 인상적인 비극의 요소를 가장 앞에 두었는데, 그가 설명하는 비극적 요소의 핵심은 선과 악함의 여부에 따른 핵심적 요소의 구별이 아닌, 극단적 인물들의 중간쯤에 위치한 사람들이 나오는 극이었다. 또한 기질과 행위의 악함 때문에 전개되는 극이 아닌 그 사람의 착오 때문에 전개되는 극을 우수한 비극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것을 통한 두려움과 연민을 보는 이가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비극이라고 보았다. 그는 14장에서 또한 두려움과 연민이 내적 조직 자체에서도 생길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직접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결말에 이르러서 두려움과 연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야 함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그가 최고로 친 작품사이의 관계는 혈육관계나 친구사이의 고통스러운 관계이다. 그리고 행위자가 자신의 주관으로 일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위에 언급 된 것처럼 행위자가 몰라서 저지르고는 나중에야 진실을 알게 되어 독자가 두려움과 연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5장에서 그는 비극에서 사용하는 비극적 인물의 성격구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크게 4가지의 목표를 잡고 있는데, 도덕적으로 선량하고 일관된 성격을 끝까지 가진 존재여야 한다. 라고 말한다. 또한 사건들의 연결도 플롯 자체에서 생겨나야하며 비합리적인, 특히 초자연적인 요소가 개입 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극을 지적하는 것에서 넘어서 그는 시인에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시인이 시의 기술에 반드시 끼어들게 마련인 판단의 오류 경계도 말하고 있다. 16장은 앞에서 말한 깨달음의 성질을 넘어 수법을 말하고 있다. 그는 발견의 종류 중 가장 비예술적인 발명이 표지에 의한 발명이라고 적고 있다. 그에 반해 급전의 장면에 이루어지는 발견은 가장 좋은 발명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시인은 플롯을 구성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함에 있어서는 되도록 실제장면을 눈앞에 그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되도록 작중 인물의 제스처를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글이든 대체적인 윤곽을 잡고 그것에 삽화를 삽입하여, 인물에 대한 묘사를 늘여놓아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그의 핵심 말이다. 또한 그는 18장에서 모든 비극이 시초부터 운명이 전환되는 것이 일어나는 시점까지 마지막까지인 해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비극은 급전과 발전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비극과 파토스적 비극과 성격비극, 단순한 비극인 네 가지 종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또한 서사시적 구성을 토대로 비극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그는 19장부터는 극의 특성 설명을 넘어서 언어적 측면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사고력에 대한 본질적으로 수사학의 주제이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극적 행동에서는 명백한 진술이 그런 효과를 내게 된다. 이런 논의는 시가 아닌 다른 연구 과제로 그는 넘겼다. 또한 그는 언어적 표현과, 요소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언어 표현을 8가지의 범주로 나누는데, 여러 가지 세밀한 논의를 운율론에서 주로 하고, 여러 가지 다른 특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명사는 단일한 범주와 이중적 범주로 가를 수 있다. 후자는 의미 있는 요소와 의미 없는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과, 단지 의미 있는 요소들만 포함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은유는 한 사실에서 다른 사실로, 즉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유로 간다는 것이 핵심의 언어이고 특히 유추에 의한 은유가 첨가 되기도 한다, 또한 유추 중에는 개념 하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은유는 사용될 수 있다. 또한 22장에서 그는 언어 표현의 우수성은 진부하지 않으면서 명확한 데 있다고 말한다. 또한 평범함을 피하고 웅장한 인상을 주려면 낯선 말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연장, 축약, 변경에 의한 낱말들의 사용은 평범함을 피하고 명확성을 기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합성어와 외래어를 포함하여 앞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를 모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은유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상으로 그는 비극과 행동을 통한 모방에 대한 논의를 끝냈다. 24장에서 그는 운문으로 된 이야기 혁신의 시적 모방, 즉 서사시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그 플롯이 극적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또한 처음 중간 끝이 있어 통일되고 완전한 행동에 관한 것이어서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단일해야 한다. 그는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는 시를 지으면서도 전쟁 전부를 다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서사시는 비극과 같이 단순한 서사시, 복합적 서사시, 성격 서사시, 고통의 서사시 등의 유형을 가져야한다. 서사시는 플롯의 길이와 운율에서 비극과 다르다. 처음과 끝을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6보격 운율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건 경험상 서사시에 잘 어울린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4보격이나 3보격의 추가적인 예를 들었다. 언어 표현은 행동이 정지 상태에 있든가 성격 묘사나 사고력의 제시가 없는 부분에서는 강렬하게 쓰여야 함을 24장에서 작가는 쓰고 있다. 그는 25장에서 시인은 모방 기술자 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재확인 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시비의 기준은 정치학 등의 학술이나 기술의 기준들과 같지 않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의 경우는 시 자체의 필요조건들 때문이라든가, 또한 그것이 실제보다 더 훌륭하다든가, 또는 사람들의 통념이 그러하다든가 등등을 지적하여 답변할 수 있다. 그것에 추가로 그는 시인들에 대한 비난을 다섯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또한 그는 마지막 장인 26장에서 비극은 목적을 이루는 것에서 서사시보다 우월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