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다문화사회의 통합정책비교1. 서론1-1) 주제선정이유이전까지 종교적, 사회적 분쟁이 없었던 ‘평화의 나라’이자 ‘안전한 사회’의 상징이었던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테러를 다룬 영상을 보았다. 이 테러는 9.11 테러와 빈 라덴 사망 이후 벌어졌던 테러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테러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이민자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시민으로부터 일어난 참사였다. 포용력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툴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조차 이민자 그룹이 일으킨 소요사태를 겪고 있다. 사실 민족국가든 다인종 국가이든 간에 문화적 배경이 상이한 인종들이 하나의 가치아래 완벽하게 통합한다는 것은 정치적 제도나 문화적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완벽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인용1]. “이민자 유입은 반이민 정치집단을 꼬드기는 정치적 반동은 말할 것도 없이 일자리, 주택, 서비스 등의 주요한 경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많은 수의 이민자, 난민, 정치적 망명자를 받아들인 독일이 전형적으로 이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중략) 그 밖에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 정치적 관용을 비롯하여 이민자의 경제적 혜택, 시민권 문제에 걸쳐 우려가 제기되기는 마찬가지다.”따라서 우리는 일찍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유럽의 근대국가들을 대상으로 이민자 어떤 통합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통합정책에 따라 통합정도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인용2]. 실제로 민족국가(nation-state)를 요구하는 국가는 유럽에 거의 없다. 유럽의 국가는 자국의 영토 내에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인종집단과 결합되어 있거나 아니면 이런 인종 집단 중 하나가 자국의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확산되어 있어서 타국에게는 소수 문제를, 자국에게는 긴장을 발생시키고 있다.[인용3]. 유럽 주요국 이주민 현황위 표는 유럽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다문화 사회화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요에 부응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지원하고 있는지를 측정한 노동시장 통합 지표, 이민자들의 취업 허가상태 유지의 용이 정도를 측정한 고용 안정성, 그리고 이민자들이 근로자로서 갖는 권리로 측정한다.두 번째 MIPEX 측정 영역은 가족재결합이고, 적격성과 획득 조건, 신분 보장 및 관련 권리의 4개 하위 차원으로 측정된다. 이민자들이 친인척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는지에 관한 적격성, 이민자들의 가족과 함께 생활할 권리가 조건이나 테스트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지의 획득 조건, 이민자들이 가족과 함께 정착할 권리를 정부가 보장해주는지,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이 그 후원자들과 동일 한 권리를 갖는지 등을 가족 재결합에서 측정한다. MIPEX의 세 번째 영역인 장기거주에서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독일과 포르투갈이 높은 점수를 받은 가운데, 이민자들이 장기거주자 가 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 제한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도록 강요받는 정도, 장기 거주 자가 얼마나 쉽게 그 허가증을 상실할 수 있는지의 정도, 그리고 장기 거주자들이 많은 생활 영역에서 국적자와 동일한 권리를 갖는지를 측정한다. 네 번째 영역은 이민자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지수이다. 여기에서는 선거권, 정치적 자유, 자문기구, 실행정책을 측정하며 다섯 번째 영역은 국적 접근성이고, 벨기에와 캐나다의 점수가 높았다.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받기 위해 걸리는 시간 과 제한적 요건을 강요받는 정도, 그리고 국적 유지의 용이성 및 이중 국적의 허용 등으로 측정된다. 마지막으로 차별철폐 조치에서는 어떤 영역에서 차별금지법이 실행되고 있는지,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으로 측정된다.다문화사회를 통합하는 유형구분은 학자들마다 상이하나, 다문화주의 유형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캐슬과 밀러의 차별배제모형, 동화모형, 다문화모형을 인용하기로 한다. 캐슬 각 유형의 대표 국가로는 독일(차별배제모형), 프랑스(동화모형), 스웨덴(다문화모형)을 선정하였다.2. 본론1) 다문화주의 유형각 나라의 통합정책을 별배제모형/동화모형/다문화모형-다문화주의의 대표국가인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다문화 사회형성배경과 주요통합 정책을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각 나라의 주요통합정책을 정리하여 표로 제시하였다.A. 독일[인용10]. 독일의 경우 1950년대 전후 복구를 위해 대량의 노동수요가 발생하였고, 고도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공업 부문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1955년부터 이웃 나라에서 ‘초청 노동자'를 유입하였다. 독일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임시 고용된 후 본국으로 귀환하는 존재로 간주하여 이민자에게는 거주와 노동통제를 목표로 한 제한된 기간 동안의 거주허가와 노동허가만을 부여하였으며, 이러한 허가도 상당수의 경우 특정지역과 직종에 국한되도록 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의 정착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가족 재결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외국인 노동자는 거주 및 노동허가를 박탈당할 수 있었으며 추방까지도 가능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 재결합에 대한 규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다른 노동력 수입국가와의 경쟁구도 하에서 1960년대에 보다 유연해졌고, 1973년 외국인 노동자 고용 중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1975년 이민자 수가 증가한 것은 독일에 정착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을 초청하면서 본격화된 가족재결합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1970년대 독일은 외국인 노동자의 정착과 가족 재결합으로 영국 및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국가로 변모하였고, 터키 출신을 포함한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유럽 국가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독일정부는 이민자들에 대한 통합정책 보다는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의 정착에 대한 통제와 본국 귀환을 추구하였다. 특히 과거 독일의 학교교육은 차별적 배제를 체계화한 대표적 예로, 1970년대 많은 이민자 자녀들이 독일학교에 입학하자 교육당국은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의 일시적 통합조처와 본국 귀환준비를 독려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하며 이민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국민학급, 준비학급, 모국어 학급'으체 단위보다는 개별적인 이민자만이 국적취득을 통해 정부가 제공하는 정상적인 서비스와 제도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귀화를 통해 이주민의 프랑스 시민으로서의 변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학교교육도 통일성을 강조하면서 이주민들의 인종적 또는 종교적 정향을 고려하지 않고 평등성만을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을 기초로 1976년 이전까지 프랑스 학교에서는 외국인의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2006년 기준으로 430만 명의 이민자가 프랑스 인구의 7%를 차지하였고, 그중에서도 이슬람 이민자의 수는 400만 명을 넘어 이민자 통합정책의 성패여부가 앞으로의 국가 발전에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전의 프랑스 정부는 동화정책의 원칙에 따라 종교와 공공생활의 분리를 이민자들이 수용하고 내재화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이슬람 종교의 공식적인 인정과 확산을 억제하고, 이민자들의 언어 문제도 공식적인 제도들을 통해 다루어지지 않도록 규제함으로써 언어가 개별적인 이민자들의 사생활의 한 부분에만 국한되도록 규제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공화주의 통합모델에 대한 변화 요구가 증가하면서 프랑스 사회 내 무슬림 이민자들의 통합에 대한 유용성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문제해결을 시도하게 되었고, 이주민을 프랑스 시민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정책과 프랑스 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 정책과 제도화가 병용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또한, 2003년 '유입통합계약' 으로 프랑스 내의 외국인은 프랑스어 강좌를 자발적으로 최대 500시간 동안 듣고 한 나절의 시민교육과 사회·직업적 지원에 대한 통합교육을 받게 되었다. 2001년과 2003년 부처 간 통합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사회통합프로그램법이 실시되어 자발성에서 강제성을 갖춘 방식으로 변화하였으며, 2006년 외국인 이민동화법이 상·하원을 통과하였다.[인용13] 프랑스의 주요 통합정책C. 스웨덴[인용14] 스웨덴은 1950년대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대규모 유입을 경험했다. 1970년대 경기 침체와 함께 다른 유의 원칙은 이주민과 그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그리고 내국인들 사이에 원만한 의사소통 메커니즘을 확보한다는 것이다.이로써 타문화에 대한 배타성을 넘어 포용과 관용을 통해 차이를 이해하고, 문화 간 격차를 줄여나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스웨덴의 평등주의 이념은 소수민족의 배제를 용인하지 않았다.이러한 이념적인 확고함은 1986년 인종차별 금지법실시와 1994년 개정 인종차별 금지법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인종차별에 대한 옴부즈맨이 생겨나면서 인종차별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게 된다.[인용15] 스웨덴의 주요 통합정책3) 각 나라의 정책효과A 노동시장접근성노동시장 접근성은 하위지수에서 접근성(Access), 일반적지원(Access to general support), 계획적지원(Targeted support), 노동자의 권리(Workers' rights)로 평가가 이루어 졌다.[인용16] 노동시장 접근전반적으로 다문화모형인 스웨덴이 모든 하위지수에서 100%를 달성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차별배제모형인 독일이 전 분야에서 프랑스보다 높은 수치를 달성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동화모형인 프랑스가 독일, 스웨덴과 비교했을 때 노동시장접근성에서 낮은 수치를 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인용17] 동화모형 국가인 프랑스는 이주민의 노동시장 접근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선별적 이주를 고려하겠다는 정부 정책과는 달리, 자민족 중심적인 동화모형에 기초하여 노동시장 접근이 어려운 것을 볼 수 있다.독일은 이주 노동자의 귀환을 장려하고, 국가가 이주노동자를 제도로써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획적지원에서 높게 평가 되었다.B. 정치참여정치참여는 하위지수에서 선거권(Electoral rights), 정치적 자유(Political liberties), 자문기구활용(Consultative bodies), 그리고 정치적수행(Implementation Policies)으로 평가가 이루어 졌다.[인용18] 정치적 참여2010년 기준으로 조사된 이 자료는 선거권
한반도 통일 국가건설 전략- 독일, 예멘, 베트남 및키프로스 사례를 중심으로목차I. 서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1II. 국가통합에 대한 기존 연구와 한계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2III. 기존 분단국가 사례 분석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41. 기존 분단국가의 통일 방안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42. 기존 분단국가 통일 정책의 시사점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7IV. 통일국가 모델 제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91. 키프로스 개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92. 통일 협상의 주요 쟁점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11V.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키프로스 통일 모델____________________________p15VI. 결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16참고문헌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19I. 서론과거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며,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휴전 이래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 내에서 체제 경쟁을 하고, 갈등을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으나 냉전이 종식된 이후 남한은 압도적인 경제 성장을 지속하여 세계 어느 나라와도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서부터 나타나는 통일이라는 목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접근하는데, 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간의 논쟁의 적절한 방식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존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는 다음의 14가지 항목을 안전공도체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요소로 지적하였다: ① 주요가치의 일치(공통의 언어, 관습, 문화의 측면에서), ② 상호반응(상호간의 연락과 인적, 물적 교류), ③ 독특한 생활 양식, ④ 핵심지역의 통합능력, ⑤ 경제성장의 우위, ⑥ 공동경제보상의 기대, ⑦ 상호교류범위의 확대, ⑧ 엘리트의 확대, ⑨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개방, ⑩ 대중동원의 확대, ⑪ 민족상잔에 대한 염증, ⑫ 외부의 군사위협, ⑬ 강력한 경제적 유대, ⑭ 민족과 언어의 동화작용. 도이치는 이상의 14가지 요소 중에서 핵심적 가치의 일치와 집단들간의 상호교류를 가장 중요한 통합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그런데 유럽공동체와 같이 유럽국가들간의 통합에 관한 연구가 남북한의 경우에 적용가능한가에 대해서 연구자들간에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남북한을 개별적인 국가로 보기에는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질적이고 또한 분단 이전에 오랜 기간 동안 통일된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사회통합 문제는 통일 이전보다는 통일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유럽국가들간의 정치통합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충분한 선례가 되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통합조건 또는 통합요인 역시 남북한 사회통합에 적용하기 위해서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선별 수용해야 할 것이다. 통합이론에서 제시하는 통합조건들은 경험적으로 검증된 사항들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연구가설들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에 근거해 한반도의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제이콥과 터니, 도이치의 통합조건들 중에 한반도 상황에 부합되는 조건들이 몇 개나 되는가를 따져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건들의 상대적 중요도를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인 사고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1990년 완전한 합병통일을 선포한다. 이 기간 동안 통일논의는 공전을 거듭하였지만 남예멘에 대한 소련의 개입 철회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간섭 배제, 예멘의 석유개발에 따른 경제번영에 대한 기대가 통일 협상을 이루어냈다.남북예멘은 1990년 합병통일이 선포된 이후 30개월의 과도기가 종료되는 1992년 이전에 선거를 통하여 신정부를 출범하기로 합의하였지만 정치적 불안으로 총선은 1993년에 실시되었으며 총선결과에서 총의석의 1/5밖에 차지하지 못한 남예멘 정치인들이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면서 남북 예멘 정치인들 간의 견해차가 커지고 대립이 심화되었다. 주변 아랍국들의 중재로 1994년 2월에 쿠웨이트에서 화해협정을 체결하면서 재분단의 위기는 종식된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같은 해 4월 북예멘 수도 지점의 합동군사기지에서 남북예멘 군대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충돌로 800여명이 사망하면서 내전이 본격화되었고 북예멘은 남예멘 지역을 공격하여 1994년 7월 7일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함락시키면서 예멘이 무력으로 재통일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예멘 남부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 22년 만에 재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예멘의 통일은 1차 통일에서 남북예멘 정부가 합의에 의해 통합절차를 수립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국력에 따라 권력을 나누어 가면서 합의점을 찾아냈다는 특징이 있지만 실제로는 북예멘이 남예멘을 흡수통합 했다고 여겨진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통합예멘의 국회의원, 각료 등에서 북예멘인의 수가 우세했으며 대통령을 북예멘에서, 총리를 남예멘에서 맡았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남예멘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북예멘의 시장경제 원리가 남예멘의 사회주의체제를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념적으로도 역시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북예멘이 사회주의체제인 남예멘을 흡수 통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예멘의 불완전한 합의통일은 분단으로 인한 이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내전으로 다시 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3). 독일의 통일과 것을 시사하고 있다. 독일 통일 이후의 과제들이 보여주듯이 궁극적인 통일은 경제, 사회, 군사, 체제 등의 모든 부문의 통합으로서, 상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의식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과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베트남식 무력 통일은 분단을 빨리 극복하고 통일 후 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으나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극히 비인도적인 통일방법이다. 독일식 흡수통일은 평화적으로 달성되면서 통일 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통치 방법 면에서 무력통일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독일의 흡수통일은 서독의 절대적 국력 우위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달성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면에서 서독보다 훨씬 많은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는 남한으로서는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통일방식이다.남북한이 합의에 의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한다면 한반도 통일은 예멘의 통일방식과 유사한 것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예멘의 합의 통일이 기대했던 바와 같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내전을 겪고 무력통일로 귀착되었다는 점이다. 예멘의 경험은 합의 통일이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 보다 더 순탄하게 발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바, 우리는 분단을 극복 뒤에 찾아올 한반도에 대해 어떤 통일국가를 이룩해야할 지 그 모델을 키프로스 사례를 통하여 찾아보고자 한다.IV. 새로운 통일 국가 건설 방안 제시1. 키프로스 개요키프로스는 한반도와 같이 지정학적 요인으로 주변 강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 역사는 로마, 아랍, 영국, 터키 등에 의한 점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키프로스에는 그리스계 주민이 주로 거주하다가 1571년 오스만 제국이 키프로스를 점령하면서부터 터키계 키프로스 주민의 키프로스 정착이 시작되었다. 그 후 1878년 오스만 제국과 영국 사이의 조약으로 영국에 임대되었고 1923년에 이르러 로잔협정에 의해 키프로스성 주가 그 주민들의 거주와 이동의 자유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따라 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터키계 측에게 있어서의 2개 지역 공동통치의 내용이었다.국제연합 사무총장의 통일방안은 이 쟁점에 대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공동국가(common state)’와 ‘구성국가(component state)’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결국, 양측의 의견을 절충하여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즉 통일헌법에서 국가명을 ‘키프로스 연방공화국(The United Cyprus Republic, 약칭은 Cyprus)’로 규정하고,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와 ‘두개의 헌법적 구성 주들(two constituent states)’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연방정부와 그 구성 주들 사이의 법적 지위와 관계는 스위스의 경우를 모델로 하여 키프로스 연방공화국이 연방정부로서 단일의 국제법적 주체성과 주권을 가지며, 각 구성 주들은 연방정부에 이양되지 않은 모든 국가권력을 독립적 주권을 가지고 행사하며, 키프로스 헌법에 따라 자신들의 고유한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구성 주들은 통일국가인 키프로스 연방공화국으로부터 이탈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벨기에의 경우를 모델로 하여 연방 법률과 구성 주 법률 사이에는 어떠한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이를 명문화하였다.다음으로 쟁점이 된 사항은 북 키프로스로부터 추방된 그리스계 난민 및 북 키프로스로 이주한 터키 이주민 문제이다. 1974년 터키의 군사작전 시 남 키프로스로 이주해 온 그리스계 피난민이 약 20만 명에 달한다. 반대로 1974년 터키의 군사작전 이래 북 키프로스로 이주한 터키 국민이 약 16만 명에 달하고 있다. 여기서 통일 시 추방된 그리스계 난민의 북 키프로스 원거주지 복귀와 북 키프로스로 이주한 터키인의 터키로의 추방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지 않을 수 없다.남 키프로스는 남 키프로스로 이주해다.
세계화와 아랍의 민주항쟁- 세계화가 아랍의 민주항쟁을 불러왔다 -목 차1. 주제 선정 p12. 아랍 민주항쟁 p13. 아랍의 특수성 p21. 경제의 세계화 p42. 정치의 세계화 p113. 정보통신의 세계화 p161. 요약 및 정리 p222. 연구 한계 및 고찰 p22참고문헌1. 주제 선정(1) 주제 선정세계화가 아랍의 민주항쟁을 불러왔다.중동과 북아메리카지역의 민주화 운동 발생 국가지금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계속되는 민주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씨는 아랍 전 지역으로 번졌고 각 국가별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아랍 세계의 혁명 이후 약 3년이 지난 지금 단 하나의 나라도 안정되고 평화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못했다. 가장 희망이 있던 튀니지, 리비아, 예멘은 지금 투쟁 중이며 혼란스런 민주주의 실험을 겪던 이집트는 대통령이 구금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리아는 피의 내전을 겪는 중이다.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투쟁은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높은 청년실업률과 고물가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존의 몸부림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유토피아적 투쟁인가. 우리는 아랍민주항쟁의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 민주항쟁이 발발하게 된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해보고자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됐다.2. 아랍 민주항쟁 소개2010년 12월 튀니지 중부 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공권력의 모욕적 횡포에 맞서 분신으로 항거한 26세의 대학 중퇴 과일노점상 모함메드 부아지지의 사망사건은 중동 아랍민주화 혁명 및 민주화 나비효과의 시발점이 되었다. 가난과 차별, 신분 상승의 기회가 거의 없고 이를 호소할 곳도 꽉 막힌 “봉쇄된사회“의 민중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분신자살이었다.부아지지가 지핀 민주화 불길은 폭풍속의 산불처럼 중동 전역으로 활활 타올랐다. 2011년 이집트, 알제리, 예멘, 요르단, 리비아, 바레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지 못할 때 사회 구성원들이 일으키는 단기간의 급격한 변화”를 혁명으로 정의내리도록 하겠다.두 번째로는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기술과 지식의 발전으로 인하여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고, 이를 통하여 세계의 상호연결성이 증가되는 과정이다. 나아가서 세계화는 사회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기적 과정으로서 정치적, 문화적 부분에서 세계가 불균등하게 상호연관성과 동질화가 증가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세계화를 “기술과 지식이 발전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세계의 상호연결성이 증가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보도록 하겠다.민주항쟁 규모는 내부 혼란, 내전, 소규모 시위, 대규모 시위, 시위 및 내각 교체, 혁명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연구에선 ‘혁명’으로까지 발전한 국가들 중 비교적 초기(2010년말-2011년초)에 발생한 국가, 민주항쟁의 경과 정도를 고려하여 튀니지와 이집트 두 국가를 선정하였다.1. 경제의 세계화(1) 아랍의 신자유주의 세계화1950년대와 60년대에 반제자주를 주창하면서 이집트 등에서 성립한 나세르체제는 제국주의가 강요한 냉전질서를 거부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면서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추구하는 체제였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구도인 냉전질서를 거부하며 아랍국가의 단결과 통일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이 지속되면서 이에 굴복, 결국 제국주의 냉전질서로 편입하게 된다.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전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발생하게 되었고, 석유 자원에 의존하던 선진국들은 유가 상승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내부적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구조적 실업이 만연되어 재정적자가 고착화되었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대적 과잉 자본이 거대한 규모로 축적되었다. 축적된 자본의 투자처, 제조업에서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관심이 후진국의 경제개발 욕구와 맞물리게 된다.그러던 중 1980년대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국가에서 외채 위기를 맞게 된다. IMF와 세계은행은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투기성 금융자본들이 한 국가로부터 일시에 대규모로 빠져나가게 되면, 환율이 급등하게 되고 이자율이 급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게 되고, 부실화된 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실업이 만연하게 된다. 경제적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기업 간에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부적으로 구조조정, 임금삭감,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을 실시하게 된다. 또한 금융 자유화로 인해 세계금융자본의 투기성 투자가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등 불안정성을 띠게 된다. 세계화는 이와 같은 영향을 끼치면서 실업을 양산하고 있다.이처럼 세계화가 고용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관련된 것은 상품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 정보의 세계화일 뿐이며 노동의 세계화는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학자들이 주장한 모든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에서 유독 노동의 이동이 빠져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각국의 노동이동 제한(특히 선진국으로의 취업이동제한)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이 자유화되고 있는데 비해, 노동의 자유화가 완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뒤에서 다루겠지만 실업률 중에서도 특히 청년실업률이 더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정책을 통해서,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기존의 인사부서 중심의 대규모 채용방식에서 각 실무부서 중심의 소수 수시 채용으로 채용방식이 변화했다. 즉, 세계화라는 배경 속에서 무한 경쟁 체제 속에 편입된 기업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경영전략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청년층이 아닌, 실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경력자들을 채용하게 되는 것이다.세계화 진전에 따라 자국 내 주력 산무기화를 방지하기 위해 중동지역의 안정을 모색하는 방안으로 중동에 개입하였다.냉전의 종식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어 큰 변수였던 소련이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은 중동의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등과 같은 대량파괴 무기의 개발을 금지하여 미국의 국익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으려 하였다. 냉전 이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럽과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국제 사회에서 부상하는 등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었다. ‘소련’이라는 가장 큰 적국이 사라지고, 일본과 유럽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는 등 새로운 국제질서를 맞이하여 탈냉전 시대 때 미국의 중동정책은 냉전시대보다 전략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9·11테러 이후 냉전과 탈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반미노선을 갖고 있던 세력들이 국제적으로 테러주의를 전파시켰다. 상대적으로 중동에서의 미국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미국 및 서방국가와 이집트·튀니지의 관계미국정부는 이집트에 1979년부터 매년 평균 13억 달러의 군사원조와 평균 8억 1500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집트 대통령을 독재자가 아니라고 옹호하며 이집트와 우방임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았다.프랑스는 1956년까지 보호령이던 튀니지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챙겨왔으며 벤 알리의 23년간의 장기집권 기간 동안 프랑스 기업들은 튀니지에서 안전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와 서방은 튀니지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튀니지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와 긴밀한 경제 및 외교적 관계를 맺었다. 이것이 튀니지가 독재정치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유럽과 잘 지내올 수 있었던 이유다. 튀니지를 방문한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여러 방면에서 튀니지는 다른 수많은 나라들에 비해 앞서 있다.”고 하며 튀니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튀니지와 미국은 인적, 군사, 경제적인 부문에서 활발하게 교류한다. 2002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인 테닛과 2003년 말에는 콜린 파월 국무 부패, 자유의 억압 등과 같은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음에도 묵인하다가 정치의 세계화로 민주주의를 학습하여 민주주의의 도구를 배운 이후 혁명이 촉발되었다. 그러므로 이집트와 튀니지의 내부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의 세계화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이집트와 튀니지에서의 혁명을 발발시키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 튀니지에 개입하고 있는 국제기구 목록 이집트에 개입하고 있는 국제기구 목록3. 정보통신의 세계화아랍 민주화 혁명은 ‘SNS 혁명’ 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무선통신등의 정보통신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친 혁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SNS’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의 발달이 아랍 민주화 혁명 과정에 있어 직접적, 간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1) 이집트, 튀니지의 정보통신 발달 정도아랍 지역의 이동통신 보급률은 96.7%로서 세계 평균인 86.%보다도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급속한 무선 통신 성장률을 보이는 것 또한 특징인데, 이것은 이라크전 등을 통한 통신 기지 및 설비의 파괴와 유선 통신 인프라 형성 정도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유선 통신의 대체 수단으로서 무선통신이 빠른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간 모바일 접속률 성장률 아랍 국가의 유선 및 이동전화 보극률 비교 (2011)또한 대부분의 아랍 정권이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위성 TV도입을 허용함으로써, 영화, 음악 등의 엔터테인먼트로 대표되는 서구적 사고방식과 문화는 아랍 무슬림들, 특히 젊은층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2) 민주화 혁명과 정보통신의 발달① 청년층의 증가와 무선통신의 발달튀니지의 무선통신 보급률은 매우 높은 편인데, 2009년 CIA의 조사에 따르면 튀니지의 전체 인구 1059만명 가운데 975만여 대의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이용률의 경우도 매우 높아 전체 인구의 40%인 350만 명이 인터넷 이용자이며, 인구의 20%인 약 200만 명이 페이스북 이용되었다.
United States of Europe이 될 수 있을까- ‘유럽을 생각한다’ 서평 -유럽은 오랜 반목과 갈등, 화해의 역사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공유해왔다. 그리고 1950년대, 유럽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종결하고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의 시대를 열고자하는 희망으로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전 유럽의 평화 정착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유럽연합‘이라는 국가 연합체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유럽 연합의 형성은 유럽대륙의 강대국 사이에 경제적 연결고리를 만들고 공동 운명체를 만듦으로써 유럽에서 다시는 세계대전과 같은 엄청난 전쟁과 편 가르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유럽을 생각한다’ 의 저자 에드가 모랭은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유럽은 공동운명체 의식을 형성해왔다고 말한다. 나아가 범유럽 차원에서 지식인 중심의 건전한 비판과 견제세력을 통해 유럽의 각 국가들이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운명공동체의식’을 형성하여 결국엔 공생의 길을 찾아 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유럽을 위협하고 있는 경제위기상황을 보며 에드가 모랭이 주장한 ‘운명공동체의식’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유로존의 위기는 과연 정치적 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긴 과정의 문제일 뿐인가. 정치적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물론 오랜 기간 동안 공동 운명체 인식을 형성해 온 유럽연합은 지금의 위기를 더 큰 통합을 위한 시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유럽이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경제통합을 시도하고 유로화란 단일통화까지 도입한 것은 결국 '하나의 유럽을 위한 하나의 통화'란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1,2차 대전을 겪은 뒤 유럽 대륙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유럽의 부흥을 위해선 각국이 서로 손을 꼭 맞잡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존 회원국들이 만약 모두 같은 운명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회원국들은 지금 가장 힘들어 하는 그리스, 스페인을 위해 팔 걷고 나서야할 때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부유한 경제대국인 독일은 추가적 기금 조성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보수 집권당은 그리스와 같은 유로존 회원국 정부들은 자국의 국가부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독일이 남부유럽을 제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비교적 잘사는 북유럽사람들은 남유럽사람들을 고생이 싫은 베짱이로 바라보기도 한다. 베짱이는 개미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그리스의 돕는 다해도 몇 년이 흐른 뒤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 문제는 유럽이 진정 운명을 공유하는 공동체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국가와 인종을 넘어선 ‘유럽의 운명공동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재차 생각해 보게 된다.
‘유러피언 드림’의 부상? 몰락?- 제러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 을 읽고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고조된 개인주의로 공동체는 피폐화 되며, 편중된 지식자본에 의해 발생한 사회 양극화 현상, 그리고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는 사회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와 같이 도덕과 행복, 그리고 자유와 같은 기존의 가치가 급속하게 변질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가 기댈 곳은 과연 어디일까. 사회적 병폐현상을 해결해줄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이 미래에 등장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안고 있는 필자였기 때문에, 미래학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유러피언드림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에 대한 대안으로 제러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을 제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미국의 독선과 일방적인 패권주의에 반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제러미 리프킨이 제시한 방대한 통계자료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보다 공동체의 관계를 중시하고, 동화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며,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주장하는 유럽사회야 말로 새로운 비전이라 하는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에 오늘날의 유럽 현실을 보았을 때 쉽게 동의가 가진 않았다. 지속가능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유럽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위기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스페인은 부도 위기에 빠져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전 세계를 경제위기의 도가니 속에 빠뜨릴 것처럼 위협하고 있다. 톨레랑스의 나라로 불리던 프랑스는 치솟는 실업률, 몰려드는 불법 이민자, 심화되는 양극화 등에 시달리며 톨레랑스의 가치를 내던지고 있는 현실이며, 나아가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이민자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어느 누구라도 받아준 넉넉한 품을 가졌던 프랑스가 이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며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나라가 됐다. 평등과 연대 같은 진보의 가치를 그토록 강조하는데도 북유럽부터 인종혐오와 극단주의 정당이 출몰하고, 잘사는 북유럽과 못사는 남유럽의 갈등이 심해지며, 불타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사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판이한 국가들이 정치·경제 통합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유럽의 경우 공용어만 해도 23개다. 중세 이래 남유럽과 북유럽은 이질감을 드러내며 서로를 폄하해왔고 골 깊던 갈등은 위기 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부국과 빈국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적대감 역시 팽배해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리적으론 합쳐졌지만 화학적 결합까진 역부족인 모양이다. 때문에 ‘유럽의 꿈’은 빨리 깨어나야 할 백일몽과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아가 국지적인 측면에서도 유럽 국가들을 살펴보면 성장과 상관없이 복지만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높은 실업률에 심화되는 양극화로 사회 전체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 청년 실업은 늘어나는데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해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러피언 드림’을 읽는 도중에 저출산, 양극화, 비정규직화, 환경파괴, 사교육팽창, 도심난개발 등의 우리사회 주요 의제에 대해 유럽 각국은 어떤 해법을 제시해가고 있는지 , 정말 유럽은 미국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련한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또한 ‘유러피언 드림’이 과연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리프킨도 인정하는 바이이지만, 유러피언 드림에서 제시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권이 포함하고 있는 기본권의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이것이 유럽대륙을 넘어 다른 지역, 국가들로 확산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러피언 드림은 보편적 인권을 주창하며 전 세계 인류에게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더 이상 지역적 측면에서 해결 될 수 없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유러피언 드림은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의 정치, 종교적 이념을 반영했듯이, 마찬가지로 그 작용범위가 발상지역인 유럽대륙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국경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의 확대과정에 있어서 전파지역의 환경과 역사에 따라 유럽적 이념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보편성을 얻는데 영향을 미칠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