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속예능국어국문학과 20120051 박효선I. 민속악과 민속무용1. 민속악2. 민속무용II. 민속극1. 하회별신굿탈놀이2. 산대도감계통극3. 북청사자놀음III. 민속공예I. 민속악과 민속무용1. 민속악현존하는 한국의 전통음악은 크게 아악과 민속악으로 나눌 수 있다. 아악은 정악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정한 음악이라는 뜻이다. 관협합주나 관악합주 등 대규모의 악기 편성으로 연주되는 합주가 주류이고, 가무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한편 민족 고유의 음악인 민속악은 조선 순조 이후에 발생하여 발달된 민간에서 전해 오는 음악으로 서민적이고, 한국적인 토속음악이다. 민속악에는 대규모 합주가 없고, 다만 합주라 할 만한 것으로 남도의 시나위 정도가 있다. 시나위는 무계 음악이며 피리, 대금, 해금, 장구, 징, 북 등으로 편성되고, 각 악기가 불협화음의 연속으로 지속되는 데 더욱 묘미가 있다고 한다. 민속악의 종류에는 판소리, 잡가, 민요, 농악 등을 들 수 있다.잡가와 민요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과 서서 부르는 입창이 있다. 창은 판소리나 잡가 따위를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다. 민요로는 전라도의 , 경상도의 , 강원도의 등 각 지방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 잡가나 민요는 고장마다 독특한 형식과 특색을 지니고 있다. “경상도는 꿋꿋하고 위압적이고, 전라도는 일반적으로 소리가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억양이 분명하다. 서울 지방은 맑고 깨끗하고, 경쾌한 맛이 있는가 하면서도 지방은 어딘지 모르게 촉박하고 탄식하는 듯한 상심섞인 느낌을 준다.”(1) 농악농촌에서 집단노동이나 명절 때 흥을 돋우기 위해서 연주되는 음악을 농악이라 한다. 풍물·두레·풍장·굿이라고도 하고,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각종 명절이나 동제·걸립굿·두레굿과 같은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농기를 앞세우고 상쇠의 인도에 따라 행진하는 농악의 흥겨운 가락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이르기까지의 모의농작을 12거리로 보여주는 두레의 농악은 그대로 풍년을 기원하는 예축행사이다. 또 추수를 감사하는 축원무악으로서 제의에서 예술로의 전이를 알려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농악대를 ‘굿패’라 하고, 농악을 치며 도는 것을 ‘굿한다’, '굿친다‘라고 한다. 이를 구경하는 것을 ’굿본다‘라고 한다.농악은 흔히 정월 ‘매구굿’을 비롯하여 5~6월 제초기에 노동을 독려하는 지심놀이, 7월 백주에는 그해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에 태우고 그 뒤로 농악대가 따르는 소타는 놀이 등으로 펼쳐진다. 8월 추석에는 각처에서 씨름과 농악 대회가 벌어지고, 10월 상달에는 당산나무에 금줄을 매고 그 앞에서 농악을 치는 당산굿이 있다. 섣달에는 각 사찰에서 마을 농악대를 불러 절굿을 치기도 한다. 농악은 예로부터 12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리는 농악을 구성하는 음악의 기본 악장을 말하는 것이다. 거리는 다시 가락으로 분립되고, 1차가 대개 3가락인데 이로써 농악은 12차 36가락이라고 일러 온다. 거리의 변화는 상쇠가 지휘하고, 부쇠 이하 대원들은 이에 따르며 진법은 이 거리 안에 들어 있다.(2) 판소리판소리는 원래 제의에서 발생하였다가 그 후 오락으로 전용되어 농어촌의 대중을 전설 등을 주제로 한 소리로써 즐겁게 하였다. ‘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판소리는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口演)된다. 판소리는 지식층의 문화와 서민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대 8시간 동안 연행되는 동안 남성, 또는 여성 소리꾼은한 수련을 거친다.소리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 엇모리 등 창의 완급과 장단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근원설화의 바탕 위에 여러 가요는 하나의 핵을 이루는 마디소리로 응집되어 한 마당의 판소리를 이룬다.판소리 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보적인 인물로는 신재효가 있다. 신재효는 판소리 이론가 및 평론가로서의 업적을 남겼다. 를 통해 판소리 창자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 4대 법례를 제시하였다. 광대(배우)의 외모를 포함한 인간(인물치레)과 더불어 스피치와 문학(사설), 음악(득음), 연기(너름새)를 판소리 극예술의 4대 기본 요소로 말하고 있다.또한 신재효는 열두 마당을 , , , , , 여섯 마당으로 재정리하였다.〈춘향가>,〈심청가>,〈박타령〉에 대한 개작은 전반적으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전아한 한문투의 문장을 많이 수용한 편이다. 그래서 판소리가 본래 갖고 있던 서민층의 발랄한 현실 인식이 다소 약화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토별가〉에는 용궁에서 벌어지는 벼슬아치들 사이의 다툼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신재효가 아전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현실 인식이 부각된다. 〈변강쇠타령〉은 유랑민의 비참한 생활과 남녀 관계의 비속한 거동이 농도 짙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는 소리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춘향가〉를 남창, 여창, 동창에 따라 배역 분창 형태로 나누었다. 판소리의 서사시적 구성을 완전히 극복하고, 이것이 민족 오페라인 창극으로 발전할 것을 예견하였다. 나아가 과거 남자만 광대를 할 수 있다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최초의 여자 광대 채선을 양성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판소리에서 창극으로의 이행은 단절이 아닌 주체적인 연맥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2. 민속무용궁중무는 궁중을 중심으로 발전·계승되는 춤이다. 궁중무라는 개념은 왕권정치의 체제가 성립한 삼국시대 이후 나라의 각종 행사나 의식, 궁중의 연례 등에 춤이 쓰이면서부터 틀이 잡혀가기 시작하였 하는 대사와 노래가 곁들인다. 즉 가무 부분과 연극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II. 민속극민속극이란 민속 집단 생활의 전반에 걸친 민족의 기반적 생활 양태를 연극적으로 표현, 형상화환 것이다. 민속극은 농경의례나 장례의식 등 각종 원시 종교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풍농·풍어제(동제)와 상제례 등에서 발생되어 예능으로 발전한 연극 양식을 그러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즉, 가면극을 위시하여 민속인형극·그림자극·판소리 등이 그러한 민속극에 속한다.현재 남한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민속극으로는 산대도감계통극에 속하는 경기도 지방의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를 비롯하여 가면극인 황해도 봉산·강령,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 등이 있다. 1. 하회별신굿탈놀이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탈춤이다. 동민들의 무병과 안녕을 위해 마을의 서낭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동제였다. 10년에 한번씩 지내는 별신제 도는 도신제가 있었다. 10년에 한 번씩 또는 신탁에 따라 임시로 거행되는 하회별신굿 준비는 음력 12월 말부터 시작한다. 산주는 먼저 부정이 없는 목수를 골라 뗏재에서 서낭대와 내림대를 마련한다.탈놀이의 첫 마당은 ‘주지놀음’이다. 주지는 호랑이를 잡아먹는 무서운 귀신이라고 하지만 사자를 말한다. 붉은 보자기로 전신을 가리고 주지머리를 손에 든 광대 두 사람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사방을 휘저으며 돌아다닌다. 둘째 마당은 무녀가 주연하는 삼석놀이 있다. 토끼같이 귀가 있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주지와 섬석놀음은 서막이고, 셋째 마당은 파계승놀이인데 셋째 마당부터 본 막이 시작된다 할 수 있다. 넷째 마당은 양반과 선비놀음이다. 부네가 등장하여 춤을 추며 유혹하면 양반과 선비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벌어진다. 다섯째 마당은 살림살이 놀이로 할미가 서민생활의 고달픔을 베틀가에 얹어 노래한다. 여섯째 마당은 살생 마당으로 백정이 나와 소를 잡고, 껍질을 벗기는 시늉을 하며 염통과 쇠불알을 관중에게 사라고 한다. 일곱째 마당은 환자놀이로면 으레 양주별산대놀이를 가리킬 만큼 유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주별산대놀이는 4월 초파일, 5월 단오, 8월 추석에 주로 연회되고, 대소명절 외에 한천 기우제 때도 연희되었다. 제대로의 격식대로 하면 놀이 전고사에는 제주와 떡, 삼색 과일 외에 쇠머리나 돼지다리 등 푸짐한 제물이 올라야 하고, 그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아야 놀이가 시작되었다.양주별산대놀이는 한국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주가 되고, 노래가 딸는 가무 부분과 거기에 몸짓과 사설 즉 대사가 따르는 연극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사는 특징 없는 일상 회화조의 대사이다. 노래는 장단을 청하는 짤막한 불림과 그 밖에 매화가, 백구사, 국문 뒤풀이, 무가 등으로 가짓수가 많지 못하다. 덕담 외에는 첫 허두만 조금 부르다가 곧 재담이나 춤으로 바꾸어 버리며 동작의 하나의 전기 역할을 한다.양주별산대놀이의 내용은 조선조 서민 문학의 특성이기도 한 파계승, 몰락한 양반, 무당, 사당,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현실을 폭로하거나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에 따라 크게 파계승놀이와 양반 놀이, 서민 생활상을 보여 주는 놀이로 나눌 수 있다. ① 벽사의 의식무와 무제 ② 파계승에 대한 풍자 ③ 양반에 대한 모욕 ④ 남녀의 대립과 갈등 ⑤ 서민생활의 곤궁상 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특권 계급과 그 형식적인 도덕에 대한 일종의 저항 정신을 구체적으로 연출하고 있다.(2) 봉산탈춤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 분포하는 탈춤 중의 하나이다. 옛날 5일장이 서던 대부분의 장터에서는 탈꾼들을 초빙하여 1년에 한번씩 놀았다고 한다. 거의 황해도 전역에서 놀았으며 그 중 봉산탈춤이 대표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 일제시대에 들어와서라고 한다. 봉산탈춤이 분포하는 지역으로 주요 읍이나 장터에서 성행되었다 한다. 황해도의 주요 읍들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고, 소도시로서 탈춤 공연을 뒷바라지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갖춘 결과였다 할 수
한국의 민속문학I. 사설II. 민요III. 설화IV. 무가V. 속담과 수수께끼VI. 구비문학의 전통국어국문학과 20120051 박효선I. 사설1. 구비문학의 개념과 종류구비문학은 문자 기술이 없던 태초에 발생하여 문자 기술이 발생한 이후에도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문학이다. 한마디로 문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지금까지 전해 오는 문학이다. 성격상 구전문학, 유동문학, 변화문학, 표박문학, 민속문학 등으로 불리는데 문자에 의존하는 문학과 대칭되며 서로 다양한 상관성을 갖는다. 따라서 기록문학만을 문학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구비문학은 많은 민중이 비교적 긴 세월 동안 향유했던 것으로 기록문학의 바탕이며 나아가 기록문학은 이 바탕없이는 성립되기 어려웠다.구비문학은 음성언어를 통하여 전승된다. 종류에는 산문체인 민담, 전설, 구전신화, 속담, 수수께끼가 있고, 운문체인 민요, 무가, 판소리 등이 있다. 음성에는 변화가 있고, 몸짓이나 표정이 따르기 때문에 구비문학은 음악(민요)과 연극(민속극, 판소리), 종교적 구성 요소(무가, 신화)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구비문학은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종교의 한 기반 또는 측면으로도 다각적인 기능을 하였다.2. 구비문학과 기록문학구비문학은 민중문학으로 뿌리를 내렸다가 점차 기록문학으로 정착하면서 기반을 이루었다. 구비문학은 작자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났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민중의 문학이라 할만하며 민중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민중은 양반, 유식층의 기록문학 창작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양반은 등한시하기는 해도 구비문학 창작에 참여하였다. 문자 기술의 시대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는 구비문학 외에 한국 한문학과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국어로 된 문학도 생겼다. 기록문학 중에서는 한자문학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훈민정음 반포 이후 조선시대 말기까지 여전하였다. 이것은 구비문학의 기록, 정착, 발전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II. 민요1. 민요의 개념민요는 문학과 음악적인 기능요에는 노동요 외에도 의식요(지신밟기, 상여메기, 달구질노래), 유희요(강강술래, 줄다리기노래, 그네노래, 군사놀이) 등이 있다.3. 민요의 역사와 자료민요는 분화되지 않은 종합예술체이며 그 기원 문제는 곧 예술 기원론에 속하지만 리듬(음악)-동작(무용)-문구(문학)의 순으로 전후계기된 것으로 추단된다. 민요라 할 것으로는 고조선의 , 고구려의 , 백제의 , 신라의 , , , , 등이 이두 문자로 현전하고 있다.한국 민요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1) 부요의 질적 양적 우세. 특히 시집살이의 고뇌, 모녀애연가의 정, 동녀요의 순정미들은 높은 시정신이 깃든 것으로 기록문학 중 다수의 규수 작가들의 전작품보다 훨씬 우수하다. (2) 사회적 불만을 풍자, 야유한 해학성 (3) 풍류성(부요의 꽃노래, 남요의 취락가 이외 여러 수의 달노래 등) 높은 전작품보다 훨씬 우수하였다. (4) 유교 윤리의 침윤성 (5) 남녀 상하간의 순종성 (6) 무상, 향락적 경향(불교의 무승과 가렴 악정에서 온 찰라적 향락주의 (6) 무상, 향락적 성격에서 온 찰라적 향락주의, 일제하 퇴폐적인 근대요 (7) 상활고 등을 들 수 있다.4. 민요의 분류* 시대별 분류: 고대요, 근대요 또는 왕조별* 곡조별 분류: 타령, 자장가* 기능별 분류: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 가창방식별 분류: 선후창, 교환창, 독창* 내용별 분류: 연정, 해학, 도덕, 비분* 장르별 분류: 서정요, 서사요, 희곡요* 운율별 분류: 4,4조 4,3조 4,5조III. 설화1. 설화의 본질과 분류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 등 셋으로 나눈다. 구비문학의 대표적인 산문체 형식인 이들 세 장르는 설화라는 동일 범주 속에서 상호 공통성은 물론 이질성을 아울러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하는 가운데 그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다.(1) 전승집단의 주관으로 신화는 전적으로 숭엄한 사실이고, 전설도 모두 사실로 믿어지나 민담은 애초부터 사실 여부는 관계없이 오로지 흥미의 많고 적음이 문제된다. 그러나 현대인의 과학적 시조신화들이 신화들이 의미하는 것은 주몽신화와 반대로 대체로 신앙행위의 반영이다. 박혁거세와 기알지는 씨조신, 왕가조신, 국조신 등의 성격을 띤다. 골, 막이는 영남 지방에 현전하는 마을 수호신이고, 촌락 시조신이며 공동체의 창선이디. 또 영남 지방의 조상단지는 조상신의 혼려을 모시는 용기로서 현재도 단지나 항아리, 바구니 등 민속적인 그릇들을 사용하는가 하면 김알지신화의 황금궤가 왕가다운 용기 또는 신화적 반영이었다.(2) 구전신화1) 천지창조설화제주의 거신 선문데할망은 치마폭에 흙을 퍼 담아 갖다 부어 제주도를 만든 창조신이다. 이때 마지막에 부은 것이 한라산이며 나르다 조금씩 흘린 것이 이곳저곳에 많은 오름들이다. 그녀는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바다에 잠기는 다리로 물장난을 했다. 가파도와 성산 일출봉에 한 발씩 디디고 빨래도 했다는 짧은 설화 토막들이 많이 전한다.2) 홍수설화흔히 천지개벽신화, 인류 시조신화 다음으로 서열지어지는 홍수설화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신화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홍수설화의 일반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태초에 대홍수가 있었다. (2) 그 원인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다. (3) 특별히 선정된 자만 배에 타서 난을 면하고, 나머지는 모두 몰사한다. (4) 난을 면한 자는 후에 인류의 시조가 된다.3. 전설(1) 전설의 자료와 분류전설은 성격상 문헌으로도 구전으로도 많이 전한다. 옛 문헌에 기록됨으로써 오늘날 전설 전승의 유동, 변화의 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전설은 대체로 지역, 내용, 대상물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구 목적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전설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대상물이기 때문에 연구를 위한 제1차적 분류는 역시 대상물별 분류라 할 수 있다.(2) 전설의 형식과 사찰연기담전설은 형식이 없다. 무형식이 그 형식성이다. 민담은 수동미 형식을 고수한다. "옛날에.."로 시작, 모티브 하나만 건너뛰어도 듣는 사람이 불평한다. 전설이 길어지는 것은 유식한 은 한 개의 구성요소로도 이루어지는데 이때 유형과 모티브는 동일물이 된다. 모티브는 전세계가 유사하므로 국제적인 상관관계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 구성요소는 신화, 전설이나 다른 민담과도 영향을 주고 받는 기본 단위로서 더 이상 세분할 수 없다고 했다.(3) 민담의 형식민담의 까다로운 형식들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가진다. "한 옛적에", "호라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하는 것은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화자와 청자가 더불어 즐거운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서두가 없는 것은 민담이 아니며 이것은 시대나 장소를 무한대로 넓혀서 증거 제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민담이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사실이 아니라는 본질을 인식시키기도 한다. 말하자면 민담의 흥미성, 비사실성, 환상 세계에의 서곡을 이룬다. 더욱이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등의 표현으로 그 효과를 배가시킨다. 민담의 내용은 대부분 선악 이원론을 이루며 대립과 반복이 진행된다. 선악은 대개 서민과 양반 또는 인간과 괴물의 대립이 많지만 계모와 전처 딸 또는 같은 두 형제, 두 소년, 두 노인 등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악이 실패한 것을 선이 성공시키고 행복을 얻는다거나 선이 행복을 얻은 방법을 악이 되풀이하다가 파멸하는 등의 반복이 많다. 삼형제, 세 딸에게 차례로 반복 문답한다는 등의 되풀이도 많고, 주인공 혼자만의 고난과 행운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이러한 선악의 대립은 결국 선의 승리로 돌아가고, 선한 주인공은 부를 성취한다. 아무리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 해도 선의 승리는 민담의 신앙이자 강한 도덕적 요구이며 기조이다. 민담은 흔한 소재로 젊은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그들의 이상은 행복한 결혼과 부의 성취로 그려진다. 이것은 민중이 품었던 소원이요, 이상이다. 민담에서 모든 정의, 진실, 순결은 선이고 그 반대는 모두 악이며 선은 많은 고난을 겪지만 언제나 과감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법이다. 민담의 결말은 흔히 "아들 딸 낳고 잘 살았해서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설화 모티브만 삽입하면 그대로 신화가 될 수 있는 것들로서 다시말해 화룡에 점정만을 남겨 둔 상태이다.3. 서사무가서사무가는 무가에 어떤 설화 줄거리가 삽입되어 서사성을 띤 무가를 가리키는 말로서 광복 후부터 사용해 왔다. 문헌신화는 제2차적 신화인데 반해 서사무가는 기능이 생동하는 제1차적인 신화이다. 현재 한국 서사무가는 그 성격으로 보아서 당신본풀이, 조상신본풀이, 일반신본풀이 등 세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1) 당신본풀이당신본풀이는 일정 촌락의 일정 당에서 일정 제일에 당맨심방에 의해서 구송되는 당신의 근본을 풀이한 서사무가이다. 당신본풀이는 제차에 따라 대체로 신맞이-추물공연-본풀이-비념(축원)-점(신의청문)의 순서에 속한다. 즉 제상을 차려 신을 모시고 나면 제물대접을 하고, 본풀이로써 찬양하여 기분 좋게 해드린 다음 축원을 올리고 신의청문으로 운수를 점친다. 1~2쪽 이내의 단편인 당신본풀이의 구성요소로는 (1) 신명 제시 (2) 신의 출처와 좌정 경위 (3) 신의 역할 (4) 제일 제시 (5) 마을 내 단골 성씨명 (6) 축원사 한두 줄을 갖춘다.(2) 조상신본풀이조상신본풀이는 개별 가정제에서 구송된다는 점에서 당신본풀이와는 다르고, 일반본풀이와 유사하나 이것처럼 어느 심방이나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골심방만이 알고 있는 단골가정의 가업수호신, 조상신의 내력담이다.(3) 일반신본풀이와 본토 서사무가의 공통성일반신본풀이는 언제든, 어느 집이든, 어느 심방이든, 가정굿에서 가창하는 본풀이다. 당신본풀이나 조상신본풀이와 달라서 이것을 암송하지 못하면 제주도에서는 어디를 가든 심방을 할 수 없다. 제주도의 심방이면 누구나 300여 쪽 분량의 일반신본풀이 구송을 할 수 있다. 일반 신본풀이는 당신본풀이나 조상신본풀이와 달리 본토에도 많이 남아 전하며 공통 조형 전승이 대부분 일부가 제주도에서의 변화된 부분이거나 제주도 내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다.(4) 서사무가의 기능본풀이는 제의의 한 요소로서 종교적 기능, 원초 과
한국의 민속신앙국어국문학과 20120051 박효선I. 민간신앙이란?II. 무속III. 가신신앙IV. 동제V. 끝맺음I. 민간신앙이란?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이다. 민간신앙은 태초부터 인간 본연의 종교적 욕구에서 자연 발생한 자연종교성을 가지며 계시, 교조, 교리 등이 없고, 교단 또한 조직적이지 않다. 또한 나라에 따라서는 국가종고로 승화되기도 한다. 인도의 힌두고, 일본의 신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유대교 또한 민간신앙에서 성장하였다.조선시대에 들어 유교를 구시로 삼으면서 불교와 민속종료들을 철저히 억압하였으며 유교제례만을 적극 장려하였다. 따라서 민간신앙은 서민층으로 침잠할 수 밖에 없었고, 더이상의 내용적인 발전이나 사회적인 기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오늘날의 민속종교는 서민층의 수요에 부응해서 더구나 그것을 미신시하는 표층사회로부터 배척되고 위축되면서도 연면히 이어온 존재이다.우리나라 민간신앙의 특징은 크게 여섯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 매우 다양하다는 다신론적인 특징이 있다. 신앙의 대상으로는 천신·산신 등에서부터 사령 등의 귀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즉, 주로 산이나 바다·우물·들 등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령을 비롯하여 동식물의 영혼, 집안의 여러 곳에도 모두 개개의 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둘째, 민간신앙은 개인 신앙이라기보다는 생활공동체의 신앙이라는 점이다. 가정의 신앙이거나 마을 전체의 신앙이지 어느 개인을 위한 개인 단위의 신앙이 아니다. 개인이 병이 나서 굿을 하는 경우에도 집 전체, 가족 전체를 위한 굿을 하게 되고, 동제의 경우에도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셋째, 다른 외래종교와 부단한 습합을 통해서 상호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민간신앙은 다른 종교로부터 많은 경멸이나 차별을 받았지만 다른 종교로부터 형식을 체계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교와의 습합으로서, 서로의 빈번한 교류에 의하여 무불습합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다. 무속은 민간층의 종교의식이 집약된 것으로 한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생활을 통하여 생리화한 산 종교현상이라 볼 수 있다.무당은 무속의례를 주관하는 사제자로서, 인간과 신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소임을 직업적으로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당은 강신체험 유무에 따라 강신무와 세습무로 구분된다. 신이 내려 무업에 입문한 경우를 강신무라 하며, 집안 대대로 무업을 계승하는 경우는 세습무라 이른다. 성남지역에서는 이주정책으로 인해 한때는 강신무와 세습무가 모두 활동하였으나, 현재는 강신무만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한국 무속은 샤머니즘 분포권에 속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란 말로 불리고 있다. 무속은 크게는 민간신앙·민속종교·고유신앙·토속종교·향토신앙·민중신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보다 좁은 의미에서는 무당과 관계된 한국의 전래신앙을 말한다. 이를 ‘무교’라고도 한다.2. 무속의 역사무속은 고려시대 이후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 더욱 억압되었지만 시들 줄 모르고 성장하였다. 물론 그것은 민중의 종교적인 욕구와 수요에 의했던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조는 유교제례로 남성 위주의 부가게 혈연제의만을 존중했기 때문에 여성의 종교나 지연적인 촌락제의는 별도로 존속할 수 밖에 없었다. 양반층 여성들은 제물 준비와 손님 치르기에 골몰했고, 제사에는 아예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욱 서민, 부녀층과의 인연을 멀리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은 산 속으로 쫓겨가 있던 불교나 무속적인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조선시대 유교정책은 여성 교육을 소홀히 하며 여성의 종교생활을 억압하였다. 결과적으로 무속은 현실적 기복성에만 치중하면서 저질화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유교정책은 무속을 억압했지만 실질적으로 무속의 저질화를 초래하는 한편 무속을 조장한 셈이다.3. 무속의 유형과 분포무격의 명칭은 ‘무당’이지만 이 말에는 천대의식이 내포되어 있어 직접 본인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는 곳은 없다. 제3자들끼리의 대화에서는 흔히무가 있다. 기본은 앉은굿을 하는 ‘법사’와 ‘점장이’로 충청도형의줄를 형성한다.점장이들이 하는 일은 (1) 자제들 학업과 남편의 무사고, 관재 구설수 소멸을 기원하는 불공 (2) 점을 친 결과 불운이 계속되면 산중의 적당한 장소에서 치성을 드리는 산제 (4) 운수업자 부인들이 한밤중에 마닌을 모셔다가 큰길가에서 많이 하는 무사고 기원의 거리제 (5) 안택, 병경, 신굿 등에 가서 공수 등등 다양하다.법사도 강신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들은 경문을 공부하고 외어야 하는 학습무이기도 하다. 조직과 운영의 주류 세력은 법사들이지만 그 수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날 주도권은 여자 점장이들이 쥐고 있다. 그 까닭은 민간신앙업의 고객은 대부분 부녀층으로 같은 여성인 점장이들을 먼저 찾아가기 때문이다. 더러 불공을 크게 하면 법사를 불러 송경을 시키거나 어쩌다 외뢰자가 독경을 시키면 비로소 추천받는 법사가 일을 맡기도 한다. 점점 지방의 법사 수는 차츰 줄면서 농업 등의 부업을 가지고, 점장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법사가 하는 일은 (1) 책에 의존하여 육갑, 육쾌, 당사주, 주역 등 점을 보거나 (2) 사주, 궁합, 관상 (3) 독경으로 정초에 안택경을 읽거나 질병시에 병겨을 하고 (4) 가옥 신축시에는 성주받이 (5) 만신 불공 때는 반주를 하고 (6) 여의치 못한 일이 계속될 때 산제 (7) 교통사고 사망시나 익사시에는 넋받이 (8) 정신질환자를 위해 미친경 (9) 운수업자의 무사고를 위해 거리제 (10)신굿(입무제) 등을 한다. 이것은 모두 좌경을 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앉은굿이라고 한다.② 전라도의 단골전라도에서는 무당을 단골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단골 무당의 약칭이다. 단골이란 거의 ‘천민’의 대명사로 가계세습이기 때문에 혈통이 따로 있다고 여겨 천시는 더욱 심하다. 단골 가문은 고향을 등지거나 단골끼리 결혼을 하여 단골 가문의 여자는 고부간 입무계승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싫으면 기생이 되어야 하는 숙명이었다.③ 제주도의 심방일반적으로 심방이라 가족의 번창을 돕고 액운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들이다. 가신은 집 곳곳에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행운을 준다고 믿는다. 본질적으로는 가신신앙이나 동제 모두 무속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무당은 도회지에 많이 몰려 있고, 농촌에는 드물다. 그래서 농촌의 경우 가신신앙과 관련된 각종 행사는 으레 주부들의 일로 되어 버렸다. 가신의 종류와 기능은 다음과 같다.(1) 조령조령(안방신)을 안방 시렁 위에 모신다는 점은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조상단지 안에는 보리, 쌀을 봄, 가을로 갈아 넣고 한지로 덮어서 묶은 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점 또한 전국적으로 동일하다. 조상단지의 쌀은 햇곡식이 나올 때마다 갈아주는데 이 쌀은 반드시 가족들만 먹음으로써 혈연을 보호하는 성격이 강조된다. 조상단지 안의 쌀의 상태 즉 붇는다든가 줄어든다든가 좀이 생긴다든가 등으로 길흉을 예점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다.(2) 성주성주는 가택신 또는 대주의 수호신으로서 여러 가지 중 주요 신이다. 성주는 집 전체를 수호하는 동시에 가장을 보호하는 신이다. 주로 장손 집에 모시는 조상단지와는 달리 차남이하도 모실 수 있으므로 흔하게 볼 수 있다. 성주를 마루에 모시는 것은 전국적으로 공통적이다. 마루는 넓을 경우 혼례나 기제사가 베풀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므로 그 어원으로도 신성한 제의처로 간주된다. 성주는 영남, 호남지방의 경우 성주독이라 하여 보리나 쌀을 넣어 마루 한 구석에 봉안해 둔다. 호남, 중부 지방에서는 마루방 천자의 중보와 마룻대 사이 대공에 한지를 접어 붙이기도 한다. 이외 한지 속에 동전을 넣기도 하며 한지 위에 쌀알들을 적셔 붙이기도 하였다.성주를 처음 모시는 때는 낙성이나 이사한 후이며 재앙이 생겨서 모시는 수도 있다. 매년 10월 농사일이 끝나고 성줏굿, 성주풀이를 하는데 이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풍속인 듯 하다. 오늘날에도 상달에는 주부들이 가무 입장이 되어서 고사를 하고, 고사떡을 이웃에 돌린다. 뿐만 아니라 어느신의 부정을 정화하기 위함이다. 신체는 종지에 담긴 물이며, 부뚜막 위에 모시는데 아침마다 물을 갈아준다. 불은 모든 부정을 가시어 신성하게 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며 또한 며느리가 불씨를 꺼트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가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체로 한국 주부들은 남자들의 일을 기원하고, 아들을 위한 기원을 하였다.(4) 터주와 업경기도 지방의 농가 뒤꼍에는 터주와 업(집안의 재물에 대한 운수를 관장하는 신)을 상징하는 짚가리가 두 개 나란히 놓이는 경우가 있다. 터주는 집터의 신으로 흔히 단지에 쌀이나 천을 넣고, 주저리 덮어 장독대 옆이나 뒤꼍에 모신다. 10월에 농사를 마치고 먼저 성주를 모시고, 뒤에 터주를 모시기 때문에 터주거리를 뒷전풀이라 한다. 오늘날 보통 뒷전은 기타 잡신들을 풀어먹이는 굿의 마무리로 행해진다.장독대 옆에 대를 만들어 매일 또는 매7일 주부들이 목욕 재계한 후 정화수를 떠넣고,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예가 영남, 호남에서 많이 나타난다. 단지에 벼를 넣어 주로 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신들의 무고를 기원하는데 모두 주부들이 행하는 일이였다.업은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신체는 뱀이나 족제비가 보편적이고, 두꺼비 ·사람도 업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다. 곳간 안 단지의 쌀, 뒤란의 짚주저리, 장작더미 속에 업이 깃든다고 믿는다.(5) 측신, 문신, 기타시골에서는 특히 밤에 뒷간 출입을 할 때 헛기침을 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 두고 노크 대신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예전에 뒷간을 될 수 있는 한 안채나 사랑채와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고 하였다. 따라서 늦은 밤에 이곳을 드나들 때는 무서움에 움츠러들었고, 이 무서움증이 뒷간신 관념으로 굳어졌다.반면 제주도에서는 문신을 모셨는데 집안의 재산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특별한 사물을 설치하거나 문 앞에서 여러 가지 제의 행위를 벌였다. 문전본풀이는 제주도 무당굿에서 심방이 문신을 노래하는 서사무가이다.IV. 동제1. 동제의 성격과 기능한국의 여러 종교현상 중.
한국의 세시풍속 조사국어국문학과 20120051 박효선1. 세시풍속의 의의2. 동절의 세시풍속3. 춘절의 세시풍속4. 하절의 세시풍속5. 추동절의 세시풍속6. 끝맺음, 느낀점1. 세시풍속 의의세시풍속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여 행하는 특수한 생활행위로 주기전승의 의례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이며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이다. 세시풍속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로 구분되어 있으며 집단적 또는 공통적으로 집집마다 촌락마다 또는 민족적으로 관행에 따라 전승되는 의식, 의례행사와 놀이이다.우리나라는 대체로 계절에 따라 명절의 행사 내용이 결정되었으며 또한 월령에 의하여 달마다의 행사로 세분되었다. 월령은 예로부터 농업 생산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절 행사는 농작의 개시, 파종, 제초, 수확, 저장 등 생산활동의 계절에 따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주로 생산력에 따른 행사와 신앙의례 행사가 위주였다.2. 동절의 세시풍속(1) 설날 - 음력 1월 1일세시일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일손을 놓고 새 옷,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에게 세배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아침 일찍 집집마다 세찬과 세주를 사당에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정조차례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첫 행사이다. 설날은 본래 제사에 참가하는 날로 설빔, 즉 세장을 하고 “조심하고 삼가며” 1년 농사와 관계있는 여러 가지 축원을 하는 날이었다.설날의 절식으로 일반적인 것은 떡국이다. 조상에게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며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한다. 또한 세주로 마시는 초백주와 도소주는 정초에 마시면 괴질을 물리치고, 한 해 동안 나쁜 기운을 없애며 오래살 수 있다고 한다. 세주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상류층에서 유행한 듯하다. 초백주는 후추 일곱 개와 동쪽으로 향한 측백나무의 잎 일곱 개를 한 병 술에 담가 우려낸 것이다. 제석에 담가 정초에 이 크고, 뜻이 깊은 날이기 때문에 “대보름”이라고 특별히 일컫는다. 설에는 주로 개인적인 의례로 개인의 건강이나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속신들이 행해지는 게 대부분이라면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공동의 기원인 풍년을 기원하는 속신 형태가 많다. 초하루부터 대보름가지 연초 보름 동안은 평일의 노동을 쉬고 한 해를 위한 신성한 제사에 참가하는 기간으로 특별한 전승행사를 갖는다.조선시대 설날에는 임금이 십장생을 그린 세화를 반사하였다. 세화는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임금에게 바치고, 사대부들 간에 서로 선물하였다. 세화는 여러 관가나 척리의 문짝에 모두 붙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도 벽에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쳤다. 세화는 중국의 세시풍속을 상류층에서 먼저 받아들인 후 점차 민간에까지 파급되었다. 호랑이의 용맹한 힘을 빌려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고 하였다.정초나 대보름에 행하는 동제에서는 제관집과 신역 입구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산속의 금줄은 한이레, 삼칠일이 지나서야 거두는 것이 보통인데 그동안 잡기의 출입은 물론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표지가 된다. 금줄은 아이가 갓 태어난 집이라는 표지로도 치는데 아들을 낳으면 붉은 고추와 숯을 금줄에 꽂고, 딸을 낳았으면 숯과 백지를 금줄에 늘어뜨렸다.오늘날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한국의 세시풍속으로는 복조리가 있다.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복조리를 사들여 붉은 실로 매어서 벽 위에 걸어 둔다. 복조리나 갈퀴를 사서 문 위나 벽에 걸어 두는 것을 그 해의 복을 긁어모아 건진다는 뜻이다.대보름날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는 것을 달맞이라 한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은 한 해 운이 좋아서 총각은 장가를 가게 되고, 결혼한 남자는 아들을 얻게 된다고 한다. 점세적 세시풍속은 곡물이나 천체 등 자연현상을 이용한 직접적인 것과 각종 모의전의 승부나 횃불놀이 등에 이한 간접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인 점세는 월점, 목영점년, 달불음에 내려와서 15일부터 2일 사이에 도로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여 기간 정화수를 떠 놓고, 바람이 순조로워 농사가 잘 되고 평안하기를 빈다. 2월 경칩에는 호남과 영남 여러 지방에서 몸에 좋다고 하여 개구리나 비단 개구리, 두꺼비의 알을 먹곤한다.3. 춘절의 세시풍속(1) 3월의 삼짇날 - 음력 3월 3일3월 3일에는 “강남 갔던 제비 오는 날”이라고 한다. 즉 9월 9일에 제비는 강남으로 떠났다가 3월 상사일에 다시 옛 주인 집으로 찾아든다. 상사일, 삼질, 삼제라고도 하며 여자의 날이라고 한다. 이때 나비도 새로 나오는데 만일 흰 나비를 보면 그해 상복을 입게 된다 하고,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보면 그해 운이 대통이고, 몸이 건강하다고 한다. 양의 수가 겹치는 삼짇날은 파릇파릇한 풀이 돋고, 꽃들이 피어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래서 이날은 봄에 걸맞는 모든 놀이와 풍속이 집중되어 있다.부녀자들은 진달래꽃과(화전)을 산과 들에 나가 지져 먹고, 봄놀이를 하며 화면, 수면을 시식으로 먹는다. 또한 물맞이를 하거나 머리카락이 길어진다 하여 머리를 감는다. 이날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산소에 가고, 아이들에게는 새 옷을 입히는 등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보낸다. 산과 들에 푸르고, 붉은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삼짇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놀러가는데 이를 화류놀이라 한다. 지방에 따라 화전놀이, 꽃놀이라 하며 대개 늙은이는 늙은이들끼리,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무리를 지어 가서 화전을 비롯한 음식을 먹고 하루를 즐긴다. 또한 충청도 진천 지방의 풍속으로 3월 3일부터 4월 8일 사이에 아이를 낳지 못한 부인들이 무당을 데리고 우담에 가서 삼신당에게 아들 낳기를 빌었다.(2) 욕불일 - 4월 8일4월 8일은 초파일(욕불일) 즉 석가모니 탄신일로 현재도 이날이 되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관등놀이를 한다. 관등놀이는 초파일을 맞이하여 벌이던 등 놀이의 총칭이다. 지금도 4월 초파일이 되면 관등놀이는 각 사찰을 중심으로 성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도 하고, 음식을 차려 창포 못이나 기타 물가에 가서 물맞이도 한다. 단옷날은 만병이 통치된다고 하여 백 가지 풀을 뜯어 먹고,각종 약초를 캐기도 한다. 시식으로는 쑥떡을 먹고, 임금은 쑥호랑이를 각신들에게 하사하였다.또 다른 행사로 임금은 부채를 각 궁에 속한 하인과 재상, 시종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나 통제사는 명절에 올리는 부채를 바쳤고,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친지들에게도 선사하였다.4. 하절의 세시풍속(1) 유도와 복날 - 음력 6월우리나라 풍속에서는 6월 15일을 유두일이라 한다. 이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가서 머리를 감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씻어버린다. 또 이날 호남과 영남 여러 곳에서는 논이나 밭에 가서 용신제, 농신제를 지낸다. 찰떡을 하여 물꼬나 둑 밑에 한 덩이씩 놓는데 이는 물이 새지 말고, 농사가 잘 되라는 기원이다. 6월에는 복날 즉 초복, 중복, 말복 등 3복이 있다. 초복이 든 날로부터 10일이 지나면 중복이고, 중복에서 또 10일이 지나면 말복이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이라고 한다. 말복 바로 전 입추가 들기 마련인데 이때가 되면 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더위도 한 고비 지난다. 농촌에서는 복날이면 복놀이를 하는 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어른들은 산이나 들로 찾아 들어가 쾌음하며 하루를 천렵으로 보내거나 개장을 먹는다.(2) 칠석 - 음력 7월 7일7월 7일은 농가에서는 으레 비가 오는 날로 전해져 헤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하늘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만나고 싶어 애태우다가 1년에 한번, 칠석날에 만나게 된다. 이날은 이들의 만남을 위하여 지상의 모든 까막까치가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다. 이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고, 이튿날 아침에 내리는 비는 만나자 이별해야 하는 작별의 눈물이라고도 한다.만일 칠석날에 비가잡았다.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명절이다. 중원은 1년을 이분할 때 한 해 후반의 시작이기도 하여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므로 상원과 대응되는 행사들이 반복하여 거행된다. 어느덧 보리농사가 끝나고 올벼 차례로 보리 수확 감사와 함께 가을 추수의 풍작을 예축하는 행사들이 집중 거행되는데 추석 무렵 지내는 가을제 이전 마지막 하제일이다.충청도의 풍속으로 이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리에 나가 마시고 먹는 것을 낙으로 삼고, 씨름놀이도 하는데 이것을 호미씻기라 한다. 또한 7월 보름에 마을마다 농부들이 시냇가나 산기슭, 나무 밑에 함께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는데 이것은 한 해 농사를 다 지었다는 일종의 피로연 같은 것이다. 또 이날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삿갓 씌워 황소에 태워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이때 집 주인들은 주식을 내어 잘 대접한다.또한 각 마을의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모여 함께 일단이 된 사람의 집을 순서대로 돌며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삼을 삼는데 이것을 두레삼이라 한다. 부인네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들을 만나고 싶을 때 농한기인 이즈음에 서로 연락하여 만날 날짜와 시각을 정해 제각기 음식이나 선물을 마련하여 두 집의 중간 지점쯤 되는 시냇가나 또는 산고개 같은 데서 서로 만났는데 이것은 중로보기라 한다.(4) 추석 - 음력 8월 15일추석은 정월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과 함께 보름명절이다. 정월대보름과 추석은 가장 큰 명절로 수확기가 시작되는 시기의 보름명절이어서 중요시 된다. 추석은 그동안 농사를 잘 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이며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이다. 아울러 한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로서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보름의 만월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하여 풍요다산을 상징하여 대단히 중시된다. 추석은 만월이 뜨는 보름날이다. 만월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알이 꽉 찬 모습이다. 그래서 추석을 달의 명절이라 한다문이다.
감상과 작품론국어국문학과 20120051 박효선1. 머리말2. 꿈과 환상의 문학3. 의 의미4. 의 주제5. 17세기 소설사와 의 가치6. 의 문학사적 의의7. 의 문학적 의의8. 양소유 그 화려한 삶의 비밀9. 작품 의의10. 결론11. 감상문1. 머리말지금 세상에서 소설은 상당한 고급문화로 대접을 받고 있지만 17~18세기 조선시대 소설은 고급문화는커녕 오히려 천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소설이란 것은 대개 쓸데없는 이야기로 거짓을 꾸미며, 귀신과 꿈 따위를 이야기하니 짓거나 읽을 만한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당시 최고의 지위를 누렸던 사대부인 김만중이 이란 소설을 창작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김만중은 새로운 문화의 영역에 대한 감각이 남달리 뛰어났던 사람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잠재된 욕망구조, 특히 애정 욕구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작품이다. 어린 독자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다. 단언하건대 은 우리 소설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작품임과 동시에 우리 소설사의 꽃을 피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이다.은 17세기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이 쓴 한글 소설이다. 유배지에서 쓴 소설로, 아들을 걱정하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에서 구(九)는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키고, 운(雲)은 인간의 삶을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즉 구운몽은 아홉 구름의 꿈, 아홉 사람이 꾼 꿈이라는 의미이다. 은 소설에 비판적이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서도 폭 넓은 공감을 얻었으며,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한글이 지어진지 240여 년 만에 그 문자로 씌여진 본격적인 소설로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2. 꿈과 환상의 문학, 구운몽흔히 을 최고의 '꿈의 문학'이라고 말한다. 이때 '꿈의 문학'이란 말은 작품의 내용이 꿈의 형태로 제양소유의 서사 외에 꿈 밖의 세계로 설정된 성진의 서사 역시 꿈과 환상의 요소를 짙게 지니고 있다. 꿈으로 설정된 양소유의 삶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현실로 설정된 성진의 삶이 오히려 환상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어느 한쪽은 꿈이고 어느 한쪽은 꿈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관계로 작품의 서사가 배치되어 있다. 작가 자신이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이러한 의미 구조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은 성진의 삶으로부터 출발한다. 성진은 천하의 명산 가운데 하나인 남악 형산의 연화봉 아래에 도승 육관 대사가 연 도량에서 불도를 닦는 어린 승려였다. 육관 대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성장해 가던 그의 삶에 어느 날 커다란 파문이 인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동정호 용왕의 잔치에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백옥교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팔 선녀를 만난 것이 사단이었다. 그 순간 성진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세속적 욕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갈등과 번민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는 육관 대사에 의해 연화도량에서 추방되어 속세, 곧 '인간 세상'으로 환생하게 된다.초월계의 존재였던 성진이 환생하여 양소유라는 인물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런즉 양소유는 현실적 인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초월적 존재인 성진의 내면적 욕망과 이상을 담지한 인물이다. 그 욕망과 이상을 한껏 펼쳐 나가는 것이 곧 양소유의 삶이 된다. 원본양소유의 삶은 말 그대로 '꿈처럼' 펼쳐진다. 그가 시골 처사의 만년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승승장구 속에 욕망과 이상을 성취하며 천하의 주인공이 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꿈처럼 호사롭다. 특히 그가 여덟 여인과 결연하는 과정은 가히 '환상적'이다. 당대 최고의 재자(才子)가 최고의 가인(佳人)들과 맺는 인연이 하나같이 기이하고 절묘하다.이러한 호사로운 인연이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여덟 번이다. 애써 고민하고 분투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 저절로 일이 풀린다. 실로 여덟 여인은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양소유에게 다가온다. 스스로 유모를 보내 청자조차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꿈같은 승승장구였다. 그가 벼슬길에서 맞이한 딱 한 번의 시련, 곧 난양 공주와의 혼인을 사양하다가 옥에 갇힌 일 또한 그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식과 같은 것이었다.3. 의 의미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이는 주제나 사상의 다양함은 물론 조선 시대에 쓰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자신이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김만중은 양소유라는 인물을 통해, 부귀공명과 절세미인들을 부인으로 두고 싶은 양반들의 욕망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절제하는 교육을 받았던 사대부의 억압된 욕망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양반 사회의 이상을 반영한 양반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은 소설적인 재미 또한 뛰어나다. 팔선녀가 환생한 여덟 여인들을 서로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로 묘사했으며, 양소유가 이들과 만났다 이별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꾸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남녀 간의 사랑을 우아하고 품위 있는 문체로 묘사한 것도 그 어느 고전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점이다.은 다채로운 구조와 사실적인 경향으로 조선 후기 소설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만중은 과 《사씨남정기》를 당시 양반들이 천대하던 한글로 지었다. 우리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 김만중은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미를 살려 인물, 심리, 장면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로써 양반 계층이 향유하던 문학이 평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지면서 한글 소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은 양반 문학에서 평민 문학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놓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4. 의 주제팔선녀를 만난 뒤 성진은 산속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적막한 삶보다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성진은 양소유로 인간 세상에 환생해 부귀영화를 누에 숨겨진 주제는 '욕망과 집착을 버려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5. 17세기 소설사와 의 가치은 다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1687년(숙종 13년)에서 1689년(숙종 15년) 사이에 창작된 작품이다. 이 시기는 우리 소설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최초의 국문소설이라고 하는 『홍길동전』이 이미 이 이전에 창작되었다고는 하지만 17세기 중반까지 우리소설사에서 국문소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17세기는 그 이전 소설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향후 펼쳐질 다양한 소설 양식들이 한꺼번에 시험되었던 시기였다. 특히 한문소설과 국문소설이 양립하면서 다음 시기 소설의 주도권을 위한 경쟁이 있었다.은 『최척전』과 같은 17세기 한문 전기소설의 전통을 어느 정도 계승하면서도 이들이 미처 가지지 못했던 소설적 흥미를 배가시킨 작품이다.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를 주요한 사건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문소설과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완전히 딴 판이다.에서는 양소유의 화려한 애정 행각이 낭만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성진이 꿈을 깬 후 양소유로서 살았던 삶을 부정하는 대목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의 내용은 대부분 양소유의 삶에 치중하고 있다.에서 양소유가 보여주는 영웅적 능력과, 이로 인한 삶에 대한 당당함은 당시 한문 소설과의 큰 차이이다. 을 읽는 독자는 양소유와 같은 삶을 동경했을 것이고, 적어도 소설을 읽는 동안은 자신이 그러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대리만족을 맛보았을 것이다.당시 대부분의 독자는 심오한 교훈이나 사상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지는 않았다. 게다가 소설 읽기에 더 열광적이었던 부류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 이들은 소설을 통해 약간의 교훈과 더불어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흥미를 얻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시기의 대다수 독자는 소설에서 고뇌에 찬 지식인을 발견하고 그 고뇌에 자신이 동참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고뇌의로소 에서 고소설의 면목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셋째, 은 우리나라의 몽자 소설의 효시를 이룬다.넷째, 작자 김만중의 탁월한 창조적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7. 의 문학적 가치첫째, 문장표현이 능숙하다.둘째, 많은 복선의 설정으로 우연적인 사건이 아닌 필연적 사건의 전개로 치밀한 구성을 보인다.셋째, 표현된 문장이 고아하다.넷째, 시대적 관례를 초월하였다.다섯째, 정욕의 에로틱한 구조를 정화시켜 작품 심층에 승화시켜 놓았다.여섯째, 죽음이란 공포로부터 독자들의 희열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일곱째, 사건묘사가 치밀하고 리얼하다.여덟째, 감동적이다.8. 양소유, 그 화려한 삶의 비밀양소유의 삶은 한 마디로 애정 행각의 연속이다. 2명의 처와 6명의 첩을 얻기까지 모두 8명의 여성들과 각기 다른 연애를 한다. 성진이 애초에 만났던 8명 선녀와의 인연을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또한 불교적 세계관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을 읽는 독자라면 양소유의 애정 행각에서 그러한 불교적 의미보다는 화려한 연애 그 자체만을 감지할 것이다.이와 같은 양소유의 당당함과 화려한 애정 행각 뒤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 사대부의 욕망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은 모든 사대부가 염원했던 희망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향한 남성적 욕구의 무한한 표출 또한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언제나 잠재되어 있었던 욕망이었을 것이다.은 불제자 성진의 꿈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린 소설이다. 성진이 꿈속에서 양소유라는 이상적인 남성이 되어 화려한 일생을 살다가, 꿈에서 깨어 다시 불제자로 돌아간다는 액자적인 환몽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의 주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은 전체적으로 유불선(儒彿仙) 삼교(三敎)를 두루 수용하고 있다. 불제자 성진을 통하여 불교를, 작품의 대부분에 그려진 양소유의 삶을 통해서는 유교와 도교를 보여준다. 작품에서 도교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추구라는 측면보다는 쾌락 추구의 측면이 강조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욕망 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