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가우디 (1852.06.25 ~ 1926.06.10)Antoni GaudiAntoni Gaudi1. 스페인유럽 서남부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입헌군주국. 정식 명칭은 스페인왕국(Kingdom of Spain)으로, 에스파냐(Reino de España) 또는 이베리아(Iberia, 에스파냐의 옛이름)라고도 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4,964㎞. 면적은 50만 4,782㎢이며 인구는 4,049만 1,052명(2008년), 수도는 마드리드(Madrid). 종족구성은 라틴계 스페인인, 이베리아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으로, 언어는 스페인어가 통용되며, 전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 기후는 여름이 덥고 겨울이 약간 추운 온대성. 농업이 주된 산업이며 올리브·보리·포도 등 재배. 석탄·철광석·아연 등 광물자원 풍부. 그 밖에 관광산업이 스페인경제의 주요 수입원. 낮은 물가와 투우 · 플라밍고 및 이슬람교유적 등에 끌려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많이 오고 있음.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639달러.빨강 · 노랑 · 빨강의 배치 노랑은 빨강의 2배 크기이며, 노랑에 문장(紋章) 노랑은 국토를, 빨강은 국토를 지킨 피를 상징현대 건축의 거장 안토니오 가우디(A.Gaudi)의 환상적인 건축물은 스페인의 건축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비약시켰음. 회화의 경우, 엘 그레코의 종교화에서 나타나듯 강한 종교성이 특성. 벨라스케스(Velazquez)와 고야(F.Goya)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스페인의 근대회화를 개척함과 동시 유럽의 화단을 리드해 갔으며, 현대의 피카소(P.Picasso), 미로(J.Miro) 등은 색채의 조화, 강렬한 감정표현이라는 현대회화의 유니크한 한 영역을 구축. '빛과 어둠(sol y sombra), 그것이 스페인이다.'라고 표현되듯이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요소에 바탕을 갖고 있는 강렬한 태양과 깊은 어둠, 쾌활과 우울, 무정부주의와 권위주의, 돈키호테의 우울한 얼굴과 카르멘 (Carmen)의 야성, 돈 후안(D.Juan)의 색정과 그레코의 천상희구 등 대립과 모순Casa de los Botines 1892~1893)보데가스 구엘/주조장 (Bodegas Guell 1895~1901)깔벳 저택(Casa Calvet 1898~1900)구엘성지 성당/납골당 (Cripta de Colonia Guell 1898~1917)벨레스구아르드 저택 (Bellesguard 1900~1909)구엘 공원 (Parque Guell 1901~1914)밀라레스문(Puerta Miralles 1901~1914)마요르카 대성당 조명등바뜨요 저택(Casa Batllo 1904~1906)사그라다 파밀리아 학교/성가족성당 학교(1909)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1882~1926)1800年 (11)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스페인지도/Map of Spain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바르셀로나 지도/Map of Barcelona (上)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바르셀로나 지도/Map of Barcelona (下)가우디의 초창기 건축 양식에 속하는 작품 엘 카프리쵸(EL Capricho/스페인어로 '변덕'이라는 뜻)는 독신자를 위한 주택 1883년부터 1885년에 걸쳐 꼬미야스(Comilas/Santander)에 세워 짐. 침실, 응접실, 식당, 화장실이 원룸의 방 형태 반 지하에는 여러 개의 보조방과 식당 위치 똑같은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전혀 없음. 건물의 뾰족한 탑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되어 있으며, 독수리가 내려와 앉아 있는 듯한 모습 주 출입구의 기둥들은 잘 세공처리 된 돌로 되어 있고, 외벽은 벽돌과 해바라기 문양이 들어간 타일(여기서는 도자기에 더 가깝다)로 가로방향으로 질서 정연 하게 쌓았으며, 창문부분의 타일장식은 매우 화려함. 지붕은 나무로 된 구조체(우리나라의 서까래와 비슷함)에 의해 2개의 경사면으로 이루어짐. 지붕의 색은 아랍 풍의 유약을 바른 푸른색의 구운 기와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평평한 시멘트 제품으로 교체 정면은 위 아래로 길게 된 직사각형 격자 현관 위에 원통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테레사 수녀원 학교(Colegio Teresiano1888~1889)화재로 인해 소실된 빨라시오 에삐스꼬빨 데 아스또르가(Palacio episcopal de astorga)를 재건축 → 가우디에게 설계 의뢰 건물의 설계는 아스또르가 주교의 마음에 들었지만 미니스테리오 데 그라시아스 이 후스띠시아(법무부)의 비용으로 건설하는 까닭에 산 페르난도(San Fernando)아카데미의 심의 후 2번의 설계변경 넓은 응접실, 성좌가 있는 장소, 대 연회장, 필요한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보급소 등이 있는 구조 성당의 기하학적 기법이나 비에르소신Bierzo의 화강석 등으로 외부를 마감했으나 자재의 성질이 투박한 점, 히메네스 데 하무 스 지방의 빨간 색깔의 타일을 사용하여 만든 홍예문 틀, 카딸루냐 지방의 건축기법으로 만든 막힌 둥근 천정, 긴 홍예석으로 되어 있는 현관의 대형 아치,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설계도에 나타난 매우 특이한 형태의 이 주교관을 설계 나무골조 위에 석판으로 된 지붕과 그 밖의 구조물들을 이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고딕양식의 건출물로 완성 신 고딕 양식건물에서 볼 수 있는 탑, 뾰족한 아치형 창문, 네 개로 나누어진 둥근 천정 비에르소신 화강암, 천정은 고딕식, 가까운 히메네스 데 하무스에서 만든 유리재질의 붉은 타일 사용 레온 지방의 풍경과 조화가 잘 되는 건물 → 지중해 특유의 강렬한 열정 로마인들이 아스또르가 지방을 지나다니던 길과 중세시대 산티아고 성인이 지나가던 행로를 기념하기 위한 중요한 길 박물관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아스또르가 주교관(Palacio Episcopal de Astorga 1889~1893)평면도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아스또르가 주교관(Palacio Episcopal de Astorga 1889~1893)구엘의 고객인 직물 상인 시몬 페르난데스(Simon Fermandez)와 마리아노 안드레스(Don Mariano Andres)의 계획에 의해 레온 지방에 산 마르셀로 광장(P 경의적이면서도 순박하며 합리적인 그의 작품은 모든 건축가들에게 찬사를 받음 자연을 인간이 현명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으며, 평범하면서도 즉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디자인함으로써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통제기하학과의 결합을 통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건축물을 만들어 냄 세밀한 관찰력과 상상력, 뛰어난 창의력은 가우디가 가지고 있는 끊임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구엘성지 성당/납골당 (Cripta de Colonia Guell 1898~1917)배치도평면도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구엘성지 성당/납골당 (Cripta de Colonia Guell 1898~1917)콜로세오라(Collserola)산 중턱에 자리잡은 벨레스구아르드 저택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 피게라스(Figueras) 가족은 가우디에게 저택의 건축 요청 (마르티 1세(Marti)를 기념) 부지 옆에는 중세시대의 성터가 남아 있으며, 마르티 1세는 이 주위가 농장일때 본인이 묵을 수 있는 농가 별장 건축 (현재 공터) 저택 지붕 위에 깃발을 달 수 있는 높은 탑 탑의 맨 윗부분에 나선체의 탑신과 그 위에 왕관을 올려 놓고, 까딸루냐기 상징색의 십자가 형태 사방이 뚫려 있으며 앞마당 넓은 정원은 약 400평 규모 (현재 정원 일부분을 수영장으로) 창고와 작은 방이 있는 층, 귀족들이 거처하는 층과 2개의 다락방 외관의 모습은 정방형, 각 면은 동서남북으로 향하고 있으며, 사각형의 부지와도 일치 테라스가 있는 다락방은 조그만 기둥을 가진 회랑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또 다른 다락방 외벽은 벽돌과 노란색의 돌, 푸른 빛이 도는 돌과 조화롭게 섞임 내부는 이와는 반대로 벽과 천정이 전체적으로 흰색 톤 (기둥, 아치, 거실 등 여러 형태에서도 사용, 석고로 두껍게 칠) 마감부분이 둥글며 굴곡이 있는 형태 창문은 끝이 뾰족한 아치모양의 배꼽창 (내부의 여러 기둥에서부터 외부 벽에 이르기까지 연속성) 정문의 아치, 벽체의 기둥, 상인방, 창문과빛이 들어오는 방들) 기둥과 아치는 돌을 캐내는 '채석장(La Pedrera)'을 연상시킨다 하여 바르셀로나에서는 이 건물을 까사 밀라라기 보다는 페드레라(La Pedrera/채석장) 돌들은 가라프와 빌라함까 지방의 돌을 사용, 건축양식은 마요르까와 페라데스 지방의 영향 건물 내부에는 계단용과 엘리베이터 벽만 있으며 버팀목은 철 도리와 압연한 작은 도리 둥근 천정은 카탈루냐 방식으로 돌기둥과 벽돌, 빛이 바랜 듯이 보이는 철 구조물이 지탱 상부 층에는 수직의 곡선 아치가 있는 넓은 방 배치 → 이 부분은 기복이 심한 두 면과 합쳐져 높이가 서로 다른 면이 생기면서 옥상에 큰 계단이 있는 것 같이 보임 건물 장식(decoration)은 이보 파스꾸알(Lvo Pascual)과 협력하여 환관이나 앞마당에 벽화 문의 격자창이나 지하 창고의 창문, 특히 발코니의 난간을 만들기 위해 바디아(Badia)지방의 우수한 철 주물 장인들에게 부탁 옥상에는 대리석과 타일, 깨진 병 조각 등으로 장식 밀라 부부가 살고 있던 2층 기둥과 맨 위층 돌출부에 각종 디자인과 감동적인 비문과 성모 마리아의 기도문 사단 면의 벽 위에는 소유주의 수호성인 로사리오의 동정녀 성모마리아상을 설계하였으며, 성 미카엘(San Migrel)과 성 가브리엘(San Gabriel) 대천사들의 동상을 계획했으나 실행되지는 못함 건물 위 사단 면에 성모 마리아상을 배치했는데., 이를 싫어하는 소유주들과의 마찰 밀라 저택은 돌을 구조적으로 사용한 점과 정교한 가공법을 채택한 점에서 옛날 건물의 성격 옥상의 환기구와 굴뚝들은 전체적인 구조가 매우 화려함 실내의 칸막이 벽으로 된 아치와 덮여져 있는 표면 구조 등은 완벽한 벽돌 기법 적용 1984년 유네스코(UNESCO)는 밀라 저택(Casa Mila)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까사 밀라(Casa Mila 1906~1910)단면도평면도5.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 까사 밀라(Casa Mila 1906~1910)투상도정면도5. 안토니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