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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ASEAN FTA의 성과와 문제점
    한-ASEAN FTA의 성과와 문제점●목차●Ⅰ. 서론1. ASEAN의 정의2. FTA란 무엇인가?Ⅱ. 본론1. 협상의 진행 및 경과2. 한-ASEAN FTA 추진현황3. ASEAN의 성과4. 문제점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늦게 FTA 추진을 시작하였다. 04년 4월 1일 발효된 한-칠레FTA를 시작으로 하여 현재까지 총 7개의 FTA를 체결하였고, 싱가포르, EFTA, 아세안 등과의 FTA가 발효 중이다. 본 레포트는 그중 한-ASEAN FTA에 주목하고자 한다.아세안은 우리나라가 거대 경제권과 맺은 첫 번째 FTA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세안은 총 5억의 인구를 지닌 거대시장으로서 한국 대외 총교역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제 3국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로서 중요성을 가지던 아세안 시장이 국내 구매력 증가로 인한 수출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다.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신흥시장이자 우리의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 지역이기도 한 아세안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와 대화관계를 유지하고 지난 97년 이래 매년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중요한 외교 파트너이다.아세안 국가들은 EU형 경제공동체 추진을 가속화 하고 있다. 이미 아세한 자유무역지대(AFTA) 추진을 통해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선발 6개의 국가들은 2010년까지 관세를 철폐하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후발 4개국은 2015년까지 동참하기로 하였다.2015년 단일시장-단일 생산기반 형태로 경제통합을 이룰 경우 EU와 같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아직 선발국과 후발국간에 경제격차가 심하지만 경제통합만 원만히 이루어진다면 아세한 국민들의 구매력도 그만큼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현재 동남아는 한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 동남아의 자원&?시장성&?노동력이라는 상호호혜적인 경제협력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외교적 지위향상 등한다.조직은 회원국들이 화합하는 정상회담, 회원국 외무장관으로 구성되는 각료회의, 주최국의 외무장관과 해당국 회원국 대사로 구성되는 상입위원회, 전문위원회 그리고 각국의 국내 사무국 등으로 구성된다. 당초에는 경제·문화 등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을 주로 하였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닉슨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지역 이탈과 중국·미국 간의 접근으로 아시아지역에 긴장완화의 조짐을 보이자 동남아시아에 있어서의 대국 간의 힘의 균형을 노리고 1971년 ‘동남아시아 중립화 선언’을 채택하였다. 1972년 각료회의에서는 정치문제에 대하여도 협력하기로 합의하였고, 1976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지역발전과 안전보장이 강조되었다.이러한 움직임은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의 캄보디아문제, 중국-베트남전쟁, 난민문제 등 일련의 주변 사태에서 연유된 것으로 중립화보다는 안전보장기구화 내지는 군사기구화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곧 ASEAN의 SEATO(동남아시아조약기구)화를 꾀하는 것이며, 1993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각료회의의 ‘다국간 지역안전보장기관(가칭 ASEAN 지역포럼:ARF)' 설치에 관한 공동성명서 발표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한편 본래의 목적인 경제협력 측면에서는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는 경쟁 관계에 있는 회원국들 사이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보고서를 발행하고 한 달에 2번 《아세안 뉴스레터(ASEAN Newsletter》를 간행한다. 사무국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있다.2. FTA란 무엇인가?자유무역협정(FTA : free trade agreement)은 특정국가간에 배타적인 무역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으로서 가장 느슨한 형태의 지역경제통합이며, 지역무역협정(RTA : regional trade agreement)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Ⅱ. 본론1. 협상의 진행 및 경과한? ASEAN FTA에 대한 논의는 2003년 10월 8일 한? ASEAN 정상회의에서 FTA를 포함한 포괄적 경제협력강화 방안ASEAN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위탁하여 동 FTA가 한국에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손익을 살펴보는 작업을 수행하였다.한? ASEAN FTA 추진 타당성에 대한 전문가 그룹의 공동연구가 FTA 추진을 양측 정상들에게 건의를 하여서, 2004년 11월 30일 개최된 한? ASEAN 정상회의에서 양측 정상들은 2년내 타결을 목표로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였다.한? ASEAN FTA 제1차 협상은 2005년 2월 23~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홍중기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수석대표로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관계부터 및 민간 자문위원이 참석하였고 ASEAN은 데이비드 친(David Chin) 싱가포르 통상 산업부 국장을 수석대표로 하여 ASEAN 10개 회원국 대표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이후 서울과 ASEAN 회원국을 오가며 진행된 회의에서 양측은 한? ASEAN 포괄적 경제협력에 관한 기본협정문과 상품협정문에 관한 토의를 계속하였다.2005년 12월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한? ASEAN 통상장관 회의에서 한국과 ASEAN 9개국(태국을 제외)은 한? ASEAN FTA의 상품자유화 방식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였다. 한? ASEAN FTA의 핵심내용인 상품자유화 방식에 대한 합의는 한? ASEAN FTA의 타결을 위한 중대한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2005년 12월 13일 한? ASEAN 정상회의에서 한구과 ASEAN 10개 회원국 정상들은 및 에 서명 하였다.상품 자유화방식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진 후 2006년에 개최된 9차 협상부터는 품목별 양허안과 원산지 규정 중 잔여쟁점 그리고 개성공단 생산제품에 대한 한? ASEAN FTA 특혜관세부여 문제 등 상품협정 최종타결을 위한 협상이 전개 되었으며 동시에 서비스 및 투자협정에 대한 협상도 개시되었다. 2006년 4월 캄보디아프놈펜에서 열린 제1차 한? ASEAN FTA 협상에서 상품 양허안과 원산지규정을 포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차이나리스크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중국에의 과도한 집중이 국내경제의 위험도를 제고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고 위험의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수출시장의 다변화와 함께 투자지역의 다변화도 필요한 실정이다.또한, 말래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동남아 인근 연안은 주요 자원의 공급루트로서 안보적인 측면에서 ASEAN과의 우호협력관계는 필수적이다. 우리와 EU간 교역, 아·중동으로 부터의 자원 수입 등이 동남아 해안을 거치는 등 ASEAN은 우리의 석유자원 공급루트에 위치해 있으므로 안정적인 수송망 확보를 위해 ASEAN과의 우호협력관계의 유지 및 강화가 필요하다.한-ASEAN FTA는 2005년 2월 협상을 개시하여 2005년 12월에 기본협정을 체결하고 현재 상품부문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 한국은 2006년 4월까지 상품협정을 체결하여 2006년 말까지 발효시기고 서비스·투자 등 기타 분야에 대한 협상도 2006년 말까지 종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2.ASEAN의 성과ⅰ) 아세안의 정치 협력 - ARF 중심으로동남아시아의 아세안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정치안보협력에 있어서 역외국가들에 대한 그들의 발언권과 협상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비록 강대국에 분류되는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세안 국가들은 탈냉전이후의 불안전한 세계질서 속에서 지역협력체로서 정치안보적 지렛대의 역할을 강화 도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세안 회원국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한 목소리를 낼 때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1994년 7월 방콕에서 발족되었던 아세안지역포럼(ASEAN Rigional Forum : ARF)내에서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ARF의 출범에 있어서 아세안의 태도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진 필리핀 내 미군기지의 철수, 소련연방의 붕괴와 중국의 대아시아 외교공세, 불투명한 미일관계전망, 그리고 아태지역에서 미국또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한반도 문제, 캄보디아 평화정착 문제, 비핵확산 문제 등 주요 이슈들을 공식 논의함으로서 유용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아세안과의 관계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지역안보 협력 면에서 크게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ⅱ) 아세안의 경제 협력 - AFTA 중심으로대외적 측면에서 볼 때 아세안의 경제협력은 국제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관련하여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제적 침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구조는 취약해서 역외 선진국들에 대한 경제적 종속의 문제를 갖고 있어 지역경제협력은 이러한 취약성과 종속의 경제적 손실을 줄여주고 선진국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교섭능력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아세안이 창설되기 이전의 동남아 경제는 지역 내 상호간의 협력보다는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과 개별적으로 연결 관계를 맺고 있음으로써 선진국에 천연자원 및 농산물을 제공하는 일차상품의 공급지였다. 이러한 경제의 취약성을 극복하려 아세안 국가들은 역내 경제협력을 도모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ⅲ)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효과FTA의 회원국, 역외국, 전세계 경제에 대한 효과를 각각 살펴보면 회원국에는 긍정적이나 영외국에는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전세계에 대한 영향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효과는 크게 정태적 효과와 동태적 효과로 나누어지며 정태적 효과는 ‘무역창출효과’와 ‘무역전환효과’로 나누어서 설명될 수 있다. ‘무역창출효과’는 관세가 철폐되어 수입품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국산품이 가격이 낮은 수입품으로 대체되면서 소비와 생산이 증가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FTA는 역내국에는 특혜무역협정인 반면 역외국에게는 ‘차별무역협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태적 효과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FTA를 체결하면 기본적으로 있고
    경영/경제| 2013.04.05| 8페이지| 1,500원| 조회(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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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기반 경제
    서론? 지식기반 경제의 개념직접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배포하는 산업에 기반을 둔 경제로, 산업 전반에 걸쳐 지식을 생산?분재?이용함으로써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를 창출하여 고용을 확대하는 원동력이 되는 경제이다.? 지식기반 경제의 특징지식이 가치창출에 있어서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어 경제활동의 투입 구조를 지식중심으로 바꾸게 되고, 산업구조가 지식산업 중심으로 변화 되었다.①경제활동의 지식 집약화지식이 가치창출에 있어서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어 경제활동의 투입 구조를 지식중심으로 바꾸게 되고, 산업구조가 지식산업중심으로 변화 되었다.②지식의 성장과 지식?정보의 공유 활성화아날로그 방식의 시간적?공간적?물리적 제약을 해소하고, 사이버 공간이라는 무한대의 새로운 제약활동의 공간이 제공되고 있으며, 지식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③지식활동의 디지털화지식과 정보의 활용이 광범위해짐에 따라 전통적 제조 생산품이 무형의 서비스 상품화 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유형 상품의 무형상품화는 새로운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④사회노동 주체의 변화산업구조가 지식집약, 기술 집약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신노동자의 지위와 영향력이 상승하고 있다. 3차 산업의 취업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육체노동자들이 정신노동자로 변화하고 있다.본론1.지식기반경제 전의 노사관계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낮은 원가를 실현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했고 대량생산을 위해 단순작업의 반복노동 체제가 요구되었고, 이에 적합한 조직은 반복노동에 숙달된 노동력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였다. 노사 양측은 기득권을 지키거나 이익을 확장하기 위한 경직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했다.2.지식기반경제가 도래하기까지 노사관계의 갈등근로자들은 노동력의 대체를 위한 설비자동화와 노동 강도를 강화하려는 관리자들의 시도에 조직적인 저항을 보이기 시작했고 작업현장의 경직성이 강화되었으며 90년대 중반,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의 조건이 발전되었고 한편, 선진국 경쟁자들의 견제가 강화되고, ‘넛 크래커’ 상황이 전개되었다. 노사관계 시스템은 IMF경제 도래와 더불어 급격한 재구조화를 요구하는 분기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3.21세기 노사관계 환경①정보화 세계로 인한 무한경쟁 시대의 도래WTO체제의 등장으로 국경없는 무한경쟁 시대가 개막했고 이에따라라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환경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②지식기반경제의 본격화더 많은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 경제를 지배하는 시기가 도래되었다.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기업을 지배하는 경영 메카니즘이 확립될 것으로 보인다.4.노사관계 모델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모델이 요구되는 이유는①환경적 측면에서 볼때 시장 환경에 불확실성 증대와 같은 시장 환경의 변화로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부터 품질 효율 혁신 중심의 고성과 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요구됨에 따라 고기능, 고지식 노동력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한다.②조직적 측면에서 지식의 양과 질 공유와 활용능력이 생존능력 핵심이 되어 양적 확장만을 기하던 투입중심 성장이 지식노동력의 축적과 활용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높은 수준의 지식공유가 높은 경쟁력이 된다.
    경영/경제| 2013.04.05| 2페이지| 1,000원| 조회(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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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인의 의식과 관념과 나의 생각
    중국인의 의식과 관념ⅰ. 서론 - 중국인의 이해ⅱ,ⅲ. 본론 - 중국인의 관념, 중국인의 의식ⅳ. 결론 - 나의 생각ⅰ. 중국인의 이해1. 중국인의 민족성한 민족의 민족성을 이야기 할 때 단적으로 이렇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중국인의 민족성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잘못되면 몇 가지 것을 가지고 전체적인 것인 양 하는 잘못을 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인 한족(漢族)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본다.(1) 우월감우월감이란 대체로 중국민족이 다른 민족을 깔보는 경향을 말한다.전통적으로 중국을 지배해온 사상적 토대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이다. 중화사상의 본질은 중국, 또는 중국인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 중화사상속에는 중국인의 자만심 혹은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우월감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으며 주로 중국 정부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다.(2) 인내심중국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유럽 전체면적과 같은 큰 대륙에 사는 자연 환경과 많은 인구의 영향, 그리고 오랜 역사 만큼이나 많은 끊임없이 계속됐던 변동과 전쟁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게 되어 어떤 민족보다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3) 무관심중국인들은 인내심이 강하지만 무관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볼 때 중국인들은 정치문제에 잘못 참여하여 자신들의 목숨, 재산, 가족들이 희생되거나 자신들의 당파를 몰락시키는 것을 겪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관심이 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소리도 많지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극도로 혼란한 시대가 많았던 역사를 지닌 중국인들이 정치와 사회문제에 무관심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려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4) 향락성중국인들은 내세를 믿지 않는 도교(道敎)와 무관심으로 인해 향락성이 생겨 현세를 즐겁게 지내려는 향락주의 경향이 상당히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중국인은 실질적인 것을 좋아하고, 실용주의를 추구한다. 특히 종교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돈을 벌게 해 준다면 아침엔 교회에 가고, 낮엔 회교사원에 가며, 저녁엔 절에 갈수도 있는 것이다.ⅱ. 중국인의 관념1. 中華思想의 자부심중화사상은 「중화민족 우월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예부터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다. 즉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는 나라로서 바로 이러한 정치문화의 중심인 중국을 천자가 통치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중화라 부르고 주변의 異민족들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구분하여 열등한 민족으로 간주해 왔으며, 이러한 주변국들에 대해 종주권을 행사해왔다. 중국의 이민족에 대한 우월감은 물리적인 힘보다는 문화적인 힘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과의 접촉 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에 기초한 문화적 우월감이며, 이러한 자부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2. 인내심중국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유럽 전체면적과 같은 큰 대륙에 사는 자연 환경과 많은 인구의 영향, 그리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끊임없이 계속됐던 변동과 전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게 되어 어떤 민족보다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본래 중국인은 근면하고 끈질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변의 상황,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자신의 노력과 인내심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기차역에서 수일을 지내면서 기차표를 구입하고, 수십 시간씩 딱딱한 의자에 앉아 이동해도 불평 한마디 없다. 필자가 장강 삼협을 유람할 때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보통 여객선을 이용했는데 젊은 부인이 서너 살의 어린애와 갓난 애기를 동반하고 좌석도 없이 쇠갑판에서 3일 동안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가련한 생각과 놀라움이 동시에 생겼다. 은행 직원들의 불친절함 및 느슨한 근무 강도에도 아무 표정 없이 받아들이며 상점 점원이 거스름돈을 던질 때, 당어서는 안된다. 체면과 연관되는 것으로 사양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에게 선물을 주거나 식사초대를 하게 되면 처음에는 반드시 거절한다. 한 번에 응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서너 번 권해야 한다. 중국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꾸안시(關係)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인맥이자 빽의 개념이다. 보통 모든 일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이 꾸안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던지 간에 중국인은 제일 먼저 關係를찾으려고 한다.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자기가 가지고 있는關係를 모두 동원해서 자기 일에 필요한 關係를 잡으려 한다. 만일 그렇게 해서도 關係를 잡지 못하면 자신은 그 일을추진할 능력이 없다고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들에게 關係는 모든 일의 시작이고 끝이기도 하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랜 가난과 낮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 대하여 일상적인 체면 이상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중국인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선물 이상의 금전을 함부로 주는 것은 큰 실례이다. 상대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라면 문화와 문화대국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므로 자존심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4. 만만디(漫漫地: 천천히)일반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아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표정만 없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도 무표정의 습관이 배어 있다. 중국인은 일을 할 때 언제나 여유있게 하며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일을 조급하게 빨리 하려 하면 결국에는 손해본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뜻도 있다. 그런 무표정과 만만디로 처음에는 답답하고 불편하나, 어쨌든 빨리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최대한의 이익이 생길 때까지 끈기있게 뜸을 들이며 기다리는 것이 중국인의 스타일이다. 그러나 금전이 본인과 관련된 경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이나 인허가를 빨리 성사시키려고 한다. 또한, 중국인들 중에는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보다 몇 배나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5. 철저한 개인주의최 사업상 만나는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는 것은 가장 쉽게 접근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수단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담배를 권하면 금방 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손님에게 전할 때 던지기도 하므로 당황하지 말 것.6. 법이나 규정에 대한 의식이 희박대도시의 육고 밑으로 사람들은 당당하게 걸어다니며, 신호가 무엇인지 생각없이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에는 수많은 인파의 자전거들이 차도로 다니며 교통경찰은 아예 포기하고 한쪽이 그냥 서 있다. 법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 오늘날 중국에는 환경이나 질서에 대한 개념과 죄의식이 희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법의식은 중국인 특유의 '나 하나만 괜찮으면 된다'라는 이기주의와도 결부되어 있다. 시장에서 저울 속이는 상인, 가짜 돈, 가짜 약, 가짜 골동품 등의 제현상이 변화의 과도기에 생기는 현상일지 모르지만 준법 정신이 희박하다. 중국인이 질서의식이 없다는 것은 실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곳도 있지만 좌우측 통행 구분없이 통행하고 신호등에 관계없이 통과하는 차량, 복잡한 버스 내에서 흡연, 기차표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새치기 등의 현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7.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는 아량이 없다.오늘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인성의 파괴를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 예의가 없음을 지나쳐 야만스러운 상태에까지 이르도록 한 근본원인은 문화대혁명이다. 상점, 길거리, 가정, 심지어는 학교에서도 예의는 볼 수가 없다. 沒(有)辦法(메이요우빤파).중국인의 특성 중 하나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원인이제3자에게 혹은 제3자의 무엇에게 있지, 결코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열심히 둘러댄다. 하다못해 제도나날씨 탓이라고 핑계를 대지, 본인에게 원인이 있다고 절대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셰셰(고맙다)”라는 여간해서 하지 않으며 “뙤부치(미안하다)”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부 고급호텔이나 음식점을했다면 그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하고야 마는 보복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11. 서비스 정신처음 중국에 온 사람은 상점의 서비스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영상점인 경우는 더하다. 이는 물론 판매실적과 자신의 봉급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따른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유도 있다. 중국에서는 돈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왕”이 되지는 않는다. 돈을 주는 입장인가 받는 입장인가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중국의 서비스 정신은 公에 가까울수록 나빠지고 私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즉 꽌시가 형성되어 있으면 그만큼 서비스 질도 좋아진다.12. 실질적인 것을 좋아한다중국인은 외적인 환경이나 외모를 우리보다는 덜 중시하며, 실력과 실용을 중요시한다. 실제로 출장 상담시 공장장이나, 총경리의 차림새는 일반 공인(工人)과 다를 바가 없다. 고위급 회담시 점퍼차림의 고위급 관리를 종종 TV에서 목격할 수가 있다.유능한 대학생이 70세 노인을 구해내고 죽은 사건에 대해 앞으로 국가에 공헌할 젊은이가 효용가치가 없는 노인을 살려낼 필요가 있는가 하고 논쟁을 벌이는 중국인, 중국인은 결과를 보고 판단을 한다. 공개처형시 소요되는 총알 경비도 사형수 가족 혹은 본인부담(1발에 RMB8원)으로 하는 중국, 필요없는 사형수를 위해 국가예산을 낭비할 수 없다는 현실주의에 강한 중국인이다.13. 외관상 만민평등이다모택동의 '여성이 사회의 반을 감당한다' 라는 말처럼 중국은 남녀평등사회로 거의 대부분의 여자가 직업을 갖고 있다. 여자 고위관료 및 공장장, 총경리가 상당히 많으며, 가사노동, 자녀교육을 남녀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요리하고, 자전거 타고 시장보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직장 어느 업종에서도 남녀의 비율을 대체로 반반이며 건설회사나 부동산개발회사 사장을 여성이 담당하는 경우 흔하다. 중국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익이 기타 아시아(특히 일본, 한국) 국가들 보다는 상당히 확보된 상태를 인정하나 아직까지도 대남주의자(大男主義者)가 많으며, 그래서 실.
    경영/경제| 2013.04.05| 8페이지| 1,500원| 조회(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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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통상정책 변화
    중국의 통상정책 변화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적으로 무역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중국 무역도 영향을 받고 있으며, 세계경기 불황에 따른 중국기업의 도산 및 경영 악화로 인해 중국 내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확산됨에 따라 한·중간 무역마찰 증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음은 중국 통상정책의 변화대하여 알아보자.중국은 WTO가입 이후 무역관리 제도 및 정책을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도록 개혁해오고 있다. 또한 중국이 세계교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지고 무역수지 흑자규모도 커지면서 중국에 대한 선진국의 통상규제도 강화되고 있다.주요 무역관련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중국의 가공무역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중국의 수출이 크게 확대되었으나 가공무역에 의한 저부가가치산업 위주의 수출 급증에 따른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부터의 통상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수출입 관련 제세금이 대외무역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수출을 조절하는 정책수단으로서 관세 이외에도 수출에 대한 환급제도와 수출세 등을 이용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미, 유럽, 아프리카의 29개국 및 지역과 12개의 FTA를 진행 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FTA를 활용하여 대외개방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FTA의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①해외 에너지·원자재 확보2.무역마찰회피3.시장경제지위 승인유도4.산업경쟁력 제고5.미국의 통상압력에의 대응6.서부대개발 및 동북진흥의 촉진7.해외 화교와의 연계 강화8.중국기업의 해외진출 촉진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외교,안보적 이익의 관점에서 중국이 중시하는 요인으로는 지역 리더십 강화, 대미 견제와 차별화 등을 들 수 있다.주요국의 대중 통상정책에 있어서 공통점은 다자간 무역체제를 통한 대중 통상정책의 구현 및 국가별 경제대화채널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는 두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WTO를 통해 중국의 시장개방 지속 및 세계경제에 통합시켜 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국가별로 대중 통상정책 전개를 위한 경제대화채널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 미국·EU의 대중 통상정책의 특징은 첫째, 미국,EU는 자국의 시장규모가 커서 중국에 대해 적극적인 통상정책 구상이 가능한 외교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 둘째, 미국·EU는 WTO를 활용한 다자간 접근을 대중통상정책의 근간으로 삼고있다. 셋째, 미국·EU는 양국간 통상문제 해결을 위해 통상부처간의 정기적인 대화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다음의 호주·스위스·캐나다의 통상정책을 살펴보면 첫째,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 미국·EU와 같이 쌍무적 통상압력 등과 같은 정책수단 구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중국시장 진출 및 시장 선점을 위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고 중국과의 FTA를 추진 중이다. 셋째, 양자간 통상문제 해결을 위하여 양국간에 기체결된 무역협정에 따라 정기적인 대화채널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고 있다. 넷째, 인권문제 등 비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2007년 4월 원자바오 총리의 일본방문 이후 양국간의 외교관계 회복이 향후 통상관계의 심화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 지금까지의 소극적 대중 통상정책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대응으로 전환 중이다. 한국의 대중국 교역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의 감소보다 수입의 감소폭이 큰데 기인하고 있다. 한·중 교역구조의 특징으로는 중간재 중심의 교역구조, 중국 내 한국계 기업에 대한 수출비중이 높은 구조, 가공무역에 의한 수출비중이 높은 구조가 있다.
    경영/경제| 2013.04.05| 3페이지| 1,000원| 조회(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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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농민혁전의 경제사적연구
    동학농민혁전의 경제사적연구●목차●Ⅰ. 서론Ⅱ. 본론1. 1894년의 상황2. 갑오농민전쟁을 바라보는 좌 ? 우파의 시각3. 4월 혁명 이전4. 4월혁명 이후5. 남은과제Ⅲ.결론Ⅰ. 서론1894년 농민봉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유학자 매천 황현은 이를 ‘비란(匪亂)’, ‘역모(逆謀)’라 하였고, 농민군에 대해서는 ‘동비(東匪)’, ‘적(賊)’, ‘사란작적자(思亂作賊者)’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황현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1894년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대다수 농민들은 농민봉기를 정당한 행위로 인식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제대로 표출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같은 사건을 ‘농민전쟁’, ‘농민혁명’이라 부르고 “우리 역사상 최고 최대의 반봉건 ? 반외세 항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한 역사적 사건에 주어질 수 있는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100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의 시간이 흐른데 비해 한 사건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이처럼 극단적으로 변화했다.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인식변화는 어느 한 순간에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는 여러 방향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다. 100년 동안 진행된 사회변화와 궤적을 같이 하며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조금씩 바뀌어왔고, 그 결과 ‘동비(東匪)의 란(亂)’이 ‘농민혁명’으로, 역적이 혁명가로, 지역사에서 전체사로, 야사(野史)에서 정사(正史)로 바뀌었다.농민혁명에 대한 100년간의 인식 변화과정은 시기, 주제, 주체, 분야, 용어 등 다양한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년대기적(年代記的) 정리를 중심으로 하여 변화과정과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다. 즉 각 시기별로 농민혁명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또 인식의 변화를 불러온 요인과 변화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그 시기의 상징적인 요소를 토대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현재 우리는 농민혁명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향에서 어떤 노 일본군과 함께,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깃발을 들고 재차 봉기한 농민군을 토벌하고, 그리하여 농민군이 완전히 진압된 1896년, 개화파내각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표면적인 분리와 대립에도 불구하고, 개화파와 농민군은 당대 조선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연합의 가능성이 열려있었지만 객관적 조건의 악화 속에 결국, 근대로 가는 ‘위로부터의 코스’와 ‘아래로부터의 코스’를 각기 대표하는 두 세력이 상잔(相殘)의 길로 들어서면서, 희망의 불씨는 함께 사그라졌다.한국근대사의 한 결절점이 된 농민군의 봉기와 그 좌절은 한편, 동아시아 근대사의 한 획기로 되었다. 농민전쟁을 발단으로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유구한 중화체제의 마지막 구현자, 청제국이 서구제국주의의 후원 아래 그 대리자로서 도전한 유신일본(維新日本)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아편전쟁(阿片戰爭, 1840) 이후 ‘외기(外氣)에 쏘인 미이라’처럼 급속히 조락하기 시작한 중화체제는 마침내 붕괴하였다. 조선은 이로써 중화체제의 바깥으로 탈각하였다. 이 간난한 위기를 창조적 기회로 바꿀 농민군과 개화파, 두 주체가 공멸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화는 이때 이미 거의 결정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개화파와 농민군의 상호위상은, 16세기 독일농민전쟁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토마스 뮌쩌(Thomas Munzer)의 관계와 견줄 수 있다. 일찍이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농민군의 옹호에서 적대적 태도로 변모한 루터가 ‘부르주아개혁가’(the burgher reformer)라면, 농민군의 지도자 뮌쩌는 ‘민중혁명가’(the plebeian revolutionary)였던 것이다. 그런데 뮌쩌의 농민군이 압살되었던 것이 독일의 후진성을 야기했던 한 빌미가 되었던 것처럼, 갑오농민전쟁의 참담한 결말은 한국근대사의 결정적 굴절을 초래하였던 것이다.2. 갑오농민전쟁을 바라보는 좌 ? 우파의 시각우리는 오랫동안 1894년을 갑오경장의 해로만 기억하였다. 청일전쟁을 야기하여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후손에 가까웠다는 것을 반증하는 바이니, 좌파 역시 근본적으로는 서구적 근대주의담론의 한 연장선 위에 존재하였던 것이다.물론 아주 적막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상기(金庠基)는 엄격한 실증으로 이 사건의 전모를 복원한 『동학과 동학란』(1931)으로 이 주제에 관한 한, 한 획을 그었고 맑스주의 경제사학자 전석담(全錫淡) 또한 이 사건에 주목하였다. 그런데 전자는 농민군 흥기의 원인으로 ‘미신적 신념’을 과대 강조하였다. 물론 “통솔자의 도중(徒衆)을 고무하려는 고심에서 나”왔다는 점을 섬세히 살피고 있음에도 그 강조는 그의 시각이 어디까지나 실증파의 테두리 안에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엥겔스의 종교외피설에 입각한 후자는 좌파로서는 드물게도 이 사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실패의 원인을 “지도하는 전위가 진정한 혁명적 당으로서 나서지 못”한 농민적 낙후성에 돌리는 교조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3. 4월 혁명 이전갑오농민전쟁에 대한 높지 않은 일반적 인식 때문에, 4월혁명(1960) 이전의 한국문학에서 농민군의 목소리는 거의 철저한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농민군의 봉기와 좌절을 추념하여 농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불려진 『파랑새』를 비롯한 몇 개의 민요만 전승되었을 뿐, 시단은 적막강산이었다. 월북 시조 시인 조운(曺雲)의 『古阜 斗星山』(1947)은 유일한 예외가 아니었을까?두성산 이언마는 녹두집이 그 어덴고뒤염진 늙은이 대답은 하지 않고고개를 배트소롬하고 묻는 나만 보누나솔잎 댓잎 푸릇푸릇 봄철만 여기고서일나서 패했다고 설거운 노라마라오늘은 백만농군이 죄다 琫準이로다2연으로 이루어진 이 연시조에서 1연이 현실이라면 2연은 꿈이다. 그런데 1연이 2연을 압도한다. 이 시조가 창작된 해방 직후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도 늙은 농군은, 녹두의 집을 묻는 ‘나’에게 일말의 경계를 풀지 않는다. 이 시조는 해방이 되었어도 녹두장군으로 대표되는 농민군이 여전히 금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을 우울하게 증언하는 한 시대의 예리한 틈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조는, 2연에서 강력히교제(金敎濟)의 『현미경』(1912)은 대표적 작품들이다. 폭도로나마 흔적을 남겼던 농민군은 그 이후 오히려 더욱 적막해지는데, 농민군으로 처형당한 아버지가 유령처럼 등장하는 희곡『산돼지』(1926)의 김우진(金祐鎭)과, 희곡『제향날』(1937) ? 장편 『玉娘祠』(1948)를 통해 갑오농민전쟁을 3.1운동과 그 이후의 사회주의운동의 선구로 조정하는 계보학을 정립하려고 한 채만식(蔡萬植)의 작업이 더욱 빛난다. 이와 함께 3.1운동 이후 일제와의 일정한 타협 위에 운동성의 새로운 확보에 주력한 천도교 신파의 농민전쟁 재평가 과정에서 출현한 구전설화의 채록들이 값지다.4월혁명 이전의 한국문학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농민전쟁과 거의 무관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야기되었을까? 우선 일제의 혹독한 검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원인을 모두 검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또한 서구적 근대주의담론에 지핀 한국근대문학의 이식적 성격과 일정하게 호응할 것이다.4. 4월혁명 이후이 점에서 농민전쟁에서 직접 취재한 신동엽(申東曄)의 서사시『금강』(錦江, 1967)은 획기적이다.우리들은 하늘을 봤다1960년 4월歷史를 짓눌던, 검은 구름짱을 찢고永遠의 얼굴을 보았다잠깐 빛났던,당신의 얼굴은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하늘 물 한아름 떠다,1919년 우리는우리 얼굴을 닦아 놓았다.1894년쯤엔,돌에도 나무등걸에도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갑오농민전쟁 - 3.1운동 - 사회주의운동을 하나의 계선으로 파악한 채만식을 이어, 그는 농민전쟁 - 3.1운동 - 4월혁명을 하나의 역동선(力動線)으로 파악한다. 이 계보학에서 보이듯, 그는 갑오농민군을 4월혁명의 순결한 근원으로 재창안함으로써 4월혁명을 배반한 5.16쿠테타세력, 그 새로운 근대주의를 극복한 굳건한 터전을 세웠던 것이다. 이로써 근대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침묵당한 유령들이 지각을 뚫고 융기하였다. 이 서사시의 출현을 계기로 비로소 근대주의의 환상을 거절한 민족문학 · 민중문학의 흐름이 70년대 林巨正, 1928~1940)에서 정립한 의적소설(義賊小說)모형을 넘어서 우리 역사소설의 새 영역을 개척한 후자는, 임술민란(壬戌民亂, 1862)과 연관지어 중세사회의 기축인 농민들을 서사의 축으로 삼아 갑오농민전쟁을 파악해간 역작이다. 월북과 숙청 그리고 복권의 이력 끝에 병마 속에서 완성된 이 탁월한 장편은 그럼에도 북접(北接)을 비판하면서 동학과 농민군을 되도록 분리해서 파악한 편향이 문제고, 농민전쟁의 주무대인 전라도 지역에 대한 접근불가능성과 구술 또는 대필에 의존한 작가의 불운한 상황(3부는 부인 장영희에 의해 완성되었다) 탓에,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점이 안타깝다. 풍부한 답사경험을 통해 동학과 농민군의 관계를 균형적으로 포착하면서 농민군의 동향을 농민적 생활감각에 밀착하여 아래로부터 형상화한 전자는 『임꺽정』모형을 숙고하면서 이 전쟁의 실상에 독자적으로 육박해간 업적이다. 예컨대 두레에 기초한 농민군 조직에 주목, 말썽많은 전주화약(全州和約, 1894년 5월)을 모내기 철을 앞둔 농민적 심성과 연관하여 해명한 점은 특히 돋보인다. 기존의 논의에서는 농민군이 관군과 화해하여 서울로 진격할 기회를 놓친 것이 농민군 패배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터다. 그런데 사건의 장려성에 압도, 소설이 역사를 뒤쫓아가는 강사적(講史的) 경향이 문제거니와, 지배계급의 국내적 ? 국제적 그물망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여 다소 단순한 인민주의적 경향이 노정된 게 한계다.5. 남은 과제우리는 그 동안 남북접 갈등문제에서 남접(南接)만을 높이고 북접을 부정함으로써 최제우(崔濟愚) ? 최시형(崔時亨) ? 손병희(孫秉熙)로 이어지는 동학교단 지도부의 사상적 ? 조직적 역할을 과소평가하였다. 이 문제를 온당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뒤늦게 동학교단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천도교측의 동학 혁명론도 편향이지만, 무엇보다 엥겔스의 농민전쟁론, 즉 근대 이전의 계급투쟁은 흔히 종교적 외피를 둘러쓰고 출현한다는 명제를 고지식하게 적용하는 교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앞.
    경영/경제| 2013.04.05| 8페이지| 1,000원| 조회(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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