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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개론 기말시험
    1.선사시대의 4대 사건을 논하시오(창조,타락,홍수,바벨탑)-창조: 아름다운 세상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창1-2장)창조 이전 상태는 혼돈이었다(창 1:2). 그러나 창조된 세계는 완벽한 아름다움과 질서 그 자체였으며, 이런 세상의 관리자로 인간이 창조되었다(창1:26-28).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은 왕 같은 존재로 인간이 지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모든 인간은 왕처럼 존귀하고 이 자연을 다스리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지어졌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 그러나 군림이 아닌 돌봄이었으니(창2:15), 창조된 세상은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사 11:6-9)-타락:죄와 고통이 세상에 들어옴(창세기3-4장)뱀의 모양으로 나타난 사탄의 꾀임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었고(창3:5), 이것이 타락의 철걸음이었다. 결국 범죄함으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파괴되고(창3:12)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망가지게 되었다(창3:17-18). 죄는 점점 자라나 살인과 복수, 전쟁으로 커가고(창4:14,23) 땅은 황폐해져 갔다. '사망'이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인간을 짖누르기 시작한 것이다.-홍수:점점 심해지는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창6-10장)인간은 죄악 가운데 점점 악하여지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 하시는 데까지 이르렀 다(창6:5-6). 그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이것은 창조의 역행, 즉 창조의 포기이신 것이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온통 물 뿐인 가운데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공간인 노아의 방주만 떠다니고 있었고, 그 속에만 생명이 있을 뿐이었다. 노아와 그 가족 8명만 남겨두신 것은 그들로부터 죄없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겠다는 의도셨는데 홍수 후 하나님께서 확인하신 것은 역시 그들도 죄로 감염되었다는 사실이었다(창8:21).-바벨탑: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죄성이 실물로 드러난 사건(창세기11장)홍수 후 다시 늘어난 인간은 그들의 유치한 문명과 기술.C. 140의 나이에 그의 아들 이삭이 장가드는 모습을 보았다.(25:20). 그리고 1990 B.C. 17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창세기25:7)-이삭은 아브라함의 하나님나라 믿음을 이어받아 일생동안 누구와도 전쟁이나 싸움을 안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았던 믿음의 계승자로 2065. B.C. 사라를 통해 태어났다.(창세기21:2) 2025 B.C. 40의 나이에 리브가와 결혼을 하고(창세기25:20), 2005 B.C. 60의 나이에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창세기 25:24). 1928 B.C. 137세에는 야곱에게 속고(창세기27:1), 1885 B.C.180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창세기35:28)-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나라 믿음을 계승했으나 이삭의 정직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양보와 비폭력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거짓과 속임수도 마음껏 쓰면서 소신껏 고집껏 살았던 사람으로. 고생을 엄청 많이 하고 생애 끝에 결국 회개. 조용한 여생을 마쳤다. 그는 2005 B.C.에 태어나,(창세기 25:24), 1928 B.C. 77세에 축복을 도적질 했다.(창세기28:2). 1921 B.C. 그의 나이 84세에 장자 르우벤이 태어났으며(창세기29:32), 1908 B.C. 97세에 벧엘로 돌아왔다(창세기35:1). 1875 B.C. 130세에는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건너갔으며(창세기46:5), 1858 14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창세기47:28)-요셉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나라 믿음과 섬김의 삶을 계승하여 당시 이집트의 곡창지대를 잘 관리한 총리가 되어 당대의 세계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했다. 요셉 시대에 세계 역사와 문화의 주도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완전히 교체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는 조상들의 하나님나라 비젼을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반드시 나중에 이집트를 떠날 때 자기 시신을 갖고 가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는 1914 B.C. 라헬을 통해 태어 났으나(창세기(30:22), 1897 B.C문이다(마태복음 6:19 - 25).제3계명-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범해지는 각종의 불의를 금한다.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고 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제4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 이 계명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한 것 (출애급기 20:9)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일하는 자에게는 안식이 주어져야 함을 뜻하며, 인간이 힘써 일한 뒤에는 일에서 놓여나 쉼을 얻어야 하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힘을 얻으며 가정을 돌볼 여유를 갖게함을 말한다.인간에 대한 계명제5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계명은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란 약속을 지닌 계명으로 조상의 은덕을 잊지 말 것과 좋은 전통을 존중할 것을 명하고 있다.제6계명-살인하지 말지니라. 살인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권리를 파괴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나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 22)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미움이나 욕설, 경멸은 살인과 같음을 말하고 있다. 요컨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비하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제7계명- 간음하지 말찌니라. 이것은 성을 농락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더불어성차별은 인정 할 수 없으며 각 성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될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제8계명-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유권을 행사할 것을 말하고 있다.제9계명-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거짓말 대신 정직과 진실성을 지닐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모든 백성이 태평성대하고 주변 모든 나라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먼 나라에서 조공을 들고 행렬이 멈추지 않는 최고의 전성기가 된다. 주변 나라들이 바친 조공으로 받은 아내가 700명 첩이300명 이것은 솔로몬의 비참한 마지막 종말로 이어진다. 이방 종교 신앙을 가지고 온 아내와 첩들의 형향으로 우상숭배에 빠져 후대에 튼튼한 왕권을 물려주지 못하고 두지파 유다 왕국과 10지파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초래한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잠언과 전도서와 같은 그의 탁월한 지혜는 후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5.예언자들(아모스,호세아,이사야,예레미아)의 사상을 약술하세요-아모스(정의):부와 향락 가운데 사라진 사회 정의와 신앙.-호세아(사랑):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음행이다. 그러나 그런 음녀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계속 사랑하신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이사야(메시야):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은 장면(사6장)에 이사야서의 모든 메시지가 요약 되어 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이다. 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용서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 사랑의 절정이 메시아의 오심이며, 그래서 이사야서는 온통 메시아에 대한 언약으로 꽉 차있다.-예레미야(새 언약):예루살렘은 멸망할 것이며, 이것은 유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오면, 하나님이 그들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6.기독교의 역사관 종말관을 마가복음 1장 15절 중심으로 도표를 이용하여 설명하시오-“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구약성서 하나님 나라(오는 세대)아브라함 < >영원탄생 십자가와 부활 (D-day) 재림(V-day)α ∨ Ω(창조) 이 세대 (악과 고난의 세상) (심판)(시작) (종말)이것은 기독교의 역사관과 종말관의 구원론의 구조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을 결정적으로 이겼다. 그것이 d- 있다.요한복음: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세 복음서에 빠진 것을 요한이 보충한 복음서로 주후 80-90년으로 추측되며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 독자들은 세계적이며,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는 독수리(=신성, 인성)가 있다.8.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설명하세요-십자가 죽음: 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 죽음 안으로 가시다.인간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은 다 사망의 세력들이다. 불안, 염려, 분노, 굶주림, 병드는 것, 실패, 고독 등등. 수없이 몰려오고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인생들, 이들을 보면서 주님은 이 사망의 그림자를 인간에게서 걷어내야 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냥은 되지 않는다. 중심까지 죄로 물들어서 철저하게 타락한 인간이 뒤집어 쓰고 있는 '죄의 삯은 사망' 이라는 저주의 굴레를 풀지 않고는 절대 안된다. 누군가 죄 없는자가 대신 죽을 수 밖에, 그래서 공생애 후기부터 십자가를 묵상하기 시작하셨고 결국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부활: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첫열매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의 결론이요, 마무리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위대한 것은 그 죽음 뒤에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수난예고 때마다 언제나 십자가의 죽음 뒤에 나왔다. 주님의 부활은 영, 혼, 육의 완전한 부활이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8번이나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과 사람들을 향한 '복수혈전'이 아니라, '샬롬'의 메시지를, 죽음의 포위망이 무너지고 그 사이로 하늘의 평강이 오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였다.9.로마서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구원사상을 약술하세요-로마서는 로마의 신도 앞으로 보낸 편지이지만 그 내용은 인류의 구원이다.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단언.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즉, 로마서를 비롯한 그의 서신들에 나타나 있는 그의 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문이다.
    인문/어학| 2011.08.05| 6페이지| 2,0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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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개론(책요약3)
    1. 민주주의와 기독교1) 민주주의의 역사적 배경① 민주주의의 의미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인민의 인민을 위한 정치를 의미한다. 즉, 국민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을 정하고, 정책을 결정하여 나라를 다스려 가는 제도로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의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생각 할 경우에는 소련과 같은 동유럽이 주장하는 것도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란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는 것인데, 동유럽적인 이해에서 자신들의 정치체제는 참된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같은 이해가 타당한 것인가 아닌가에 관해서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② 의회 정치를 향한 길인민에 의한 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외래자와 노예에게는 참정권은 주지 않고, 자유민과의 평등한 권리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가 출현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민주주의의 발달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영국을 살펴보면, 영국의 실지왕은 사죄의 증표로 영국을 교황에게 내미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다. 그 후에도 국왕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폭정을 일삼자 마그나 카르타를 앞세워 왕에게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로 마그나 카르타는 국왕에 대해 귀족 계급의 권리를 주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에드워드 1세때, 의회 정치의 전통이 확립하게 되면서 귀족과 성직자만으로 대표되고 있던 국민은 이제야 말로 중산 계급에 의해서도 대표되게 되었다. 의회는 국왕의 위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들고 그 시정을 조건으로 과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 지위를 굳건히 해 나가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 3세 때에는 의회의 형식도 보다 근대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렇게 확립된 의회 정치는 절대 왕조 아래에서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전제적이라고 생각되는 국왕의 행위도 형식적으로는 의회에 의해 승인되고 입법화 되게 되었던 것이와 피조물로서의 관계에 대한 강한 의식이었다. 유일의 절대 신에 대한 신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절대자의 피조물 으로써만 존재하기 때문에 국왕도, 거지도 하나님의 앞에는 평등하다는 의식은, 전제주의를 타파하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써 작용하게 되었다.③ 계약민주주의의 정신적 기반을 구성하는 세 번째 요소인 계약사상은 히브리·기독교의 전통에서 생겨난 것으로 퓨리턴들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러나 로크와 루소의 계약개념은 퓨리턴의 영향 보다 후커의 자연법 해석에서 많은 시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으며, 후커의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인 백성이 계약을 맺고 서로 계약 이행의 의무를 맡았듯이, 통치자와 피통치자도 계약에 의해 맺어져 서로 계약을 이행할 의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며, 여기서 한 발 나아가 통치자에 대한 반항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이 로크와 루소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길러낸 정신적 기반은 뛰어난 히브리·기독교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이념은 그 정신적 기반으로부터 떼어 냈을 때 많은 모습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민주주의의 문제점현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있어 서구형 민주주의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아본다.① 계몽주의자의 환상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자유와 평등으로 이것의 모순을 만들어 낸 첫 번째 원인은 계몽주의자의 환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봉건 사회에서 개인을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뜻하는 자유와 법 앞에서의 평등한 참정권을 의미하는 평등에 있어, 자유는 자유방임의 자유와 혼동되는, 평등은 백인만의 평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모순이 발생되었다. 서구형 민주주의의 이 같은 모순은 민주주의가 그 정신적 기반으로부터 불거진 결과로 생겼다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이라는 이념을 그 근저로부터 떠받치고 있던 기독교적인 신관, 인간관. 세계관을 잃었을 때 이 이념 자체가 삐뚤어져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합리적 사이의 넘기 힘든 골을 만들었다는데 새 자본주의 경제가 낳은 결함이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② 자본주의 정신과 프로테스탄트 윤리기독교와 이같이 발흥한 근대 자본주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하나는 해방설이다. 해방설에 따르면 금융을 얕보고 이자를 금지한 중세 기독교 교회의 영향 하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할 여유가 없지만, 중세 교회의 권위를 실추시킨 종교개혁은 부정적·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금전을 얻을 수 있는 행복추구로 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이 중세적인 금욕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두 번째 견해는 금욕설로 이에 따르면 칼빈의 이중 예정설이 만들어낸 엄격한 퓨리턴 윤리는 새로운 직업관과 어울려 간접적으로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금욕적인, 반영리적인 윤리는 중산층 생산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영리를 만들어 내는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상 기술한 두 가지 설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기독교가 설령 간접적이라 해도 자본주의의 발흥에 관계가 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서구근대에서 이루어진 영리를 위한 조직화가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서구인이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히브리·기독교적인 전통에 의해 길러진 자연과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 태도가 여기에서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③ 산업혁명에서 제국주의로자본주의는 인구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에 의해 수공업을 대신한 기계에 의한 생산이 발달됨에 따라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은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 빈부격차를 커지게 하였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의 협동을 끊고, 정부에 의한 모든 간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자유방임경제 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는 정치적 자유의 근원이 된 계몽주의가 만들어 낸 것으로 합리주의적이지만 개인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영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그가 내 놓은 사회개량책 역시 자본가의 탐욕을 생각했을 때 우애와 협동정신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비현실적 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주류를 형성 하는데는 이르지 못했다.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결속시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길러낸 것은 마르크스의 과학적인 사회주의였다.②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의 이론지금까지의 사회주의는 유토피아로, 사회 개량의 참된 추진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칼마르크스는 과학적인 근거. 역사적 유물론, 가치론 등을 토대로 사회주의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먼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살펴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 해석(=모든 존재는 자기와 모순·대립하는 것을 가지는데 존재(정)을 부정하면 다른 존재(반)이 들어난다는 것)을 빌려, 절대 정신 대신에 생산력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본 것으로 문화, 종교, 법률이란 이 법칙에 따라 진화·발전하는 상부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유물론이 갖고 있던 결함은 이런 변증법에 의해 극복된다고 생각했다.또한 마르크스는 노동을 가치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가치론을 주장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는 상품인 노동자를 생산에 종사시킴으로써 노동자에게 지불한 이상의 가치를 재생산하게 된다. 이것은 잉여가치로 자본가의 이윤으로 착취 될 뿐 노동자는 그 몫을 받지 못하고 한결같이 빈곤화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따라서 양쪽 계급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 바로 가치론인 것이다. 이러한 유물사관과 가치론을 발판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역사는 옛날부터 계급 투쟁의 역사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반)에 비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공헌하고 또한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갖게 된다’는 이상을 목표로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 되었을 때, 비로소 필요악인 권력조직(국가)이 저절로 소멸될 수 있다고 한 체념의 마음과 방임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 태도를 만들어낸 역동적이고 직선적인 역사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3. 현대사상과 기독교1) 현대 사상① 실증주의실증주의 창시자 프랑스인 꽁트에 의하면 모든 경험은 실증적·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되며,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역사를 세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 단계는 세계의 모든 사상을 초자연적인 신에 의해 설명하려는 신학적인 단계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적인 단계로 신 대신 철학적인 개념과 원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단계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실증적인 단계로서 실증적·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로서 지금의 인류가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실증주의적인 입장에서 과학을 보면, 단순 보편적인 것에서 점점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고 마지막에 사회학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불어 모두 실증될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배척, 신 없는 종교 인도교를 통해 사랑을 원리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며 진보를 목표로 인간성을 존중하도록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② 진화론실증주의 그 이상으로 기독교 교회에 큰 충격을 준 다윈의 진화론을 살펴보면, 자연계의 생물은 생존을 위해 심한 경쟁을 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격자는 멸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 진화론을 인류에 적용. 인류도 본질적으로는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서로 다른 것은 단지 정도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류도 자연도태에 의해 진화한 것이며, 인간만에게만 주어진 희생(이성, 도덕 감정)도 자연적인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신앙의 입장은 뒤흔든 것으로 기독교가 자기만의 신앙 입장을 확립할 필요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진화론은 19세기 자본주의가 내세운 자유 경쟁을 지지하고 생존 경쟁에 이긴 백인종에 의한 유색인종의 억압을 정당화 하다.
    인문/어학| 2011.08.05| 7페이지| 1,000원| 조회(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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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개론(책요약2)
    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서구세계로의 기독교의 발전에 의해 하나가 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재 분리시켰다. 즉. 르네상스는 교회에 의해 왜곡된 헬레니즘 회복을, 종교개혁은 헤브라이즘의 라틴화로부터의 구출을 도모했다.1) 르네상스① 발단이탈리아 제도시가 지중해를 무대로 무역을 번창시켜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제3계급이 대두되었다. 이 제3계급의 대두는 전통적인 중세의 봉건체제를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이 체제가 특히 약한 이탈리아에서는 근대로의 이행이 되었다. 즉, 상인의 대두로 내세보다 현세로의 관심이 대두되었으며, 개인의 자각에 의해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사회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근대로의 이행의 기회가 찾아온 이탈리아 제도시는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쇠퇴와 그리스인 학자의 이주로 고대 헬레니즘 문화의 재이식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리하여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② 이탈리아 문예 부흥통일 언어에 의해 문학을 이탈리아로 만들어내는데 힘썼던 사람은 단테, 페트라루카, 보카치오 세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은 정치력에 의해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통일된 국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③ 인문주의인문주의자란 세련된 문학 형식에 의해 표현되는 정신 활동을 추구했던 사람들로, 신앙에 있어서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중세인과는 달리 내세나 영적 생활에서가 아니라 현세의 세속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또, 인문학자는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문학으로부터 중세에서는 볼 수 없던 인간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취하여, 새로운 문학과 철학의 창조에 힘썼으며, 중세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정신을 육성하여 위대한 정신 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④ 그림·조각문학과 고전의 연구에서 분명해진 개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경향은 그림이나 조각에서도 강하게 등장했다. 중세의 화가나 조각가는 주로 교회의 감독하에 종교적인 그림이나 조각의 제작에 전념하는 무명의 직인에 지나지 않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와 조각가는 전통이나 제도단적인“ 개혁운동으로 단정지었다.① 로마교회의 쇠퇴와 추락16세기 종교개혁의 원인은 중세 로마 교회의 쇠퇴와 타락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의해 높아진 교황권은 보니파티우스 8세에 이르러 극한에 달한듯 보였으나, 보니파티우스가 프랑스 왕 필립 4세와 영국왕 에드워드 1세와의 세력 다툼에서 패한 후, 중세 교황권의 위세도 사그라져 가게 되었다. 여기에 더불어 아비뇽 유수 시대에 계속 된 교회의 대분열은 교회 전반의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교회는 중세의 강고한 통솔을 상실함으로써 성직자와 신도의 도덕 수준이 저해되고, 두 교황청의 과도한 경비 요구로 일반 대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② 비판 정신의 발흥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선 대중의 비판 정신이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이때 발흥된 비판 정신은 원시 신앙을 토대로 한 성서 해석을 강조함으로써 후대의 루터에게 강력한 무기를 전하게 되었다. 또한 또 다른 과세의 형태로 일반대중을 압박하던 교황과 교황청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만은 성직자의 부패 타락으로 극에 달하여 때마침 생겨난 국민 의식과 이어져 엄청난 비판 세력이 되었다. 이런 국민 의식은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했던 큰 요인이자, 국민 국가의 대두를 가능하게 했던 새로운 종교 의식과 국민 의식의 탄생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③ 선구자의 영향종교개혁을 성공시킨 세 번째 요인은 선구적적인 개혁자의 영향을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부패·타락을 비판한 자는 적지 않았지만, 이단적인 형태(교회 외적인)로 개혁아닌 개혁을 외친 자는 선구자적인 개혁자들이다.3) 마르틴 루터① 「오직 신앙에 의한 의인」독일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루터는, 중세 로마 교회가 전한 모든 구원 수단을 누구보다 열심히 시도했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 당시 큰 이슈가 되었던 면죄부 발매 문제는 “오직 신앙”이라는 새로운 확신을 얻은 루터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위로 비춰졌다. 루터의 “95개조의 질문조항”은 교회로부터 이반했던 것이 아니라 면죄부에 대한 자하자 제후에게 농민을 탄압하도록 호소했다. 또한 루터의 교회의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루터의 보수적 경향을 알 수 있다.④ 루터의 문화적 공헌루터의 문화적 공헌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성서의 번역과 성가의 자국어화였다. 기존의 성서와 성가는 라틴어로만 시행되었는데, 루터의 이런 공헌은 일반 신도들도 성서의 뜻을 이해하고 자국어의 말로 찬양하는 “자국어 예배”를 확립하는데 있어 초석을 다졌다.4) 요한 칼빈① 개혁자 칼빈(1509-1564)칼빈의 종교 개혁으로의 길은 루터만큼의 극적인 것은 없었지만 보다 철저 했다. 칼빈은 제네바의 파렐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네바에 이르러 교회의 개혁을 착수했다. 제네바 시민은 칼빈의 너무나 엄격한 규제에 따르지 못하고 쫓아내 버렸지만 후에 무조건 칼빈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칼빈은 죽을 때까지 제네바에 머물러 참된 지배자로 군림하고 일종의 신정정치를 굳건히 세워 제네바를 유럽 제1의 도덕적인 도시로 변화시켰다.② 신중심적인 절대주의와 「이중 예정설」칼빈은 루터와 같이 독창적인 사상가는 아니였지만 논리적인 귀결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신앙이라는 루터의 주장을 철저히 하여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린다.”라는 궁극점에 이르게 된다. 즉, 하나님 앞에 인간은 절대 무력한 존재이며, 오직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었다. 이 하나님 중심적인 절대주의에 의해 루터의 “신앙 만에 의한 의인”을 철저히 한 것이 그의 이중 예정설이다. 누가 구원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포함되지 않는지를 하나님께서 미리 결정 했다는 것이 칼빈이 주장하는 이중 예정설의 골자이다.③ 칼빈주의와 초기 자본주의의 발흥칼빈의 가르침은 제네바로부터 유럽 각지에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특히 주로 중산층의 생산업자들이 이러한 칼빈의 주장을 열렬히 받아들였는데, 그들은 칼빈이 주장한 금욕 생활을 통해 자신들의 직업에서 적극적인 의의를 발견했다. 따라서 이 같은 적극적은 금욕 생활은 저절로 자본의 축적을 최초로 도시 중산계층의 대두를 본 이탈리아의 경우는 보다 유난한 길을 걸었지만, 교황이 세속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고, 개혁 운동 자체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와의 화해를 둘러싸고 분열 소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개혁 교황인 바울스3세의 등장으로 보다 적극적인 개혁 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② 예수회의 창설카톨릭 교회에서도 대항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 중 참된 추진자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에 의해 창설된 예수회였다. 예수회는 교육에 의한 교회 내부에서의 개혁, 새롭게 발견된 이교 세계로의 포교 , 이단의 박멸을 내걸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래 수도회와는 달리 세속세계로 뛰어 들고 엄격한 규율 아래 반동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활약을 하게 된다.③ 트렌트 공의회대항 종교개혁을 공식 입장에서 추진한 것이 바로 트렌트 공의회이었다. 트렌트 공의회에는 여러 파벌들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혼란과 격론의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 교황파의 승리로 프로테스탄트 제교회의 재분열과 달리 교회의 일치를 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반면 전통으로의 고집과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은 로마 교회의 경직화를 가져왔다. 트렌트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수세적인 입장을 공세적인 입장으로 바꾸어 이후 로마 교회는 이단 심판소와 금서 목록을 무기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이단 추방을, 나중에는 프랑스를 다시 한 번 카톨릭 국가로 바꾸고 신대륙에서도 거점을 세우는데 성공한다.④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해외 선교로마 교회의 해외 선교에 제일 먼저 앞장 섰던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해외 탐험에 있어서 교황에게서 발견지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자국의 영토로 하는 허가를 얻었다. 반동 종교개혁의 추진력이 된 예수회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탐험대와 함께, 다수의 선교사를 해외로 보내면서 엄청난 포교 활동을 개시했던 것이다. 이런 로마 교회의 포교 활동은 본래 목적인 동양이 아닌 중남미에서 항시 왕위에 오르고, 이와 함께 주교제가 부활하였지만, 이미 절대 군주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때 이후 칼빈주의적인 교회 제도를 희망하는 자는 영국 성공회의 틀 밖으로 나와 각각의 교회를 조직하게 되었다.② 신세계 진출영국에 관한 한 일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교의 퓨리턴화는 실패로 끝났다. 실제로 퓨리터니즘이 승리하게 된 것은 대륙에서였다. 스페인-포르투갈의 쇠퇴 이후 주도권을 잡은 영국은 맹렬한 식민지 쟁탈에서 승리하여 사상 최대의 식민지 제국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대영 제국의 출현이 기독교 세계의 확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것을 두말할 나위도 없다.3. 이성의 시대와 기독교서구의 문화와 사상에서는 일반적이고 이교적, 세속적으로 비춰지는 르네상스조차, 여전히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었던 것은 사실이다. 서구인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것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거처 자연과학의 발흥과 그에 따른 이성 지상주의였다. 기독교도 이 사고방식의 변화에 대해 이신론과 경건주의라 것으로 대응을 하게 된다.1) 자연 과학의 발달자연 과학은 근대 서구의 독점물은 결코 아니였으나, 현대 세계의 과학적인 성격이 근대 서구가 낳은 과학과 기술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학과 기술의 특별한 발전은 서구인의 사고방식의 모체가 되었던 종교적인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서구 근세의 경우 자연과학의 대두에는, 기독교적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크게 공헌하고 있었다.① 새로운 자연 해석의 확립천문학 영역에서 개시 되었던 자연의 수수께끼에 대한 도전은 1300년간 굳게 믿어온 천동설을 뒤흔들 지동설을 발표한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 천체 운행의 법칙을 확립했던 케플러, 그리고 망원경을 이용해 지동설을 확인한 갈릴레오, 마지막으로 “만유인력설”을 확립하고 자연의 양적·기계적 해석을 완성시켜 자연 해석에 결정론을 가져온 뉴턴까지 계속되었다. 이들로 인해 후에 “자연 법칙에 모순되는 것으로서의 기적의 부정”으로의 길을 준비 할 수 있게 되었다.였다
    인문/어학| 2011.08.05| 7페이지| 1,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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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활동 일일계획안(부채만들기)
    활동명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릴 부채 만들기활동목표? 소근육의 발달을 돕고 구성능력을 기른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조형 활동을 통해 창의적으로 표현해본다.대상연령만5세활동자료부챗살, 부채용 모양종이(하트, 네모, 동그라미, 오각형 등), 꾸미기 재료(모양 색종이, 잡지, 스팽글, 스티커 등), 목공용 풀, 사인펜, 색연필사전활동◎ 활동 전날에 목요일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교사: 목요일이 무슨 날이라고 했죠?유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요.교사: 그렇죠. 목요일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치원에 오시는 날이에요.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유치원에 오셨을 때 선물로 무엇을 드리면 좋아하실까요?유아: 꽃이요. 편지요. 부채요.교사: 맞아요. 그런 것들을 드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참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모두 만들 수는 없으니 하나만 골라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어떤 계절이 오는지 알고 있어요?유아: 여름이요.교사: 맞아요. 이제 곧 여름이 되고, 날씨가 더워지죠? 더울 때 시원한 바람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유아: 선풍기요. 에어컨이요. 부채요.교사: 그래요, 시원한 바람을 만들 수 있는 것에는 이렇게 다양한 것이 있네요. 그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부채를 만들어 만들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선물로 드리기로 해요.유아: 네./ 좋아요활동내용(탐색 및 방법)도입(동기유발)◎ 당일-실내 집단 활동 시간① 전날 이야기 했던 것을 다시 이야기 한다.교사: 목요일이 어떤 날이라고했죠?유아: 할아버지 할머니 오시는 날이요.교사: 맞아요. 그래서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어떤 선물을 드리기로 했나요?유아: 부채요.교사: 그래요. 모두 잘 기억하고 있네요. 그럼 지금부터 부채를 만들어 보도록할게요.유아: 네.【미술활동 계획안】② 어떤 재료가 있는지 탐색한다.교사: 부채용 종이에는 이렇게 동그라미, 네모, 하트 모양이 있어요. 어떤 모양 종이로 부채를 만들고 싶나요?유아: 하트요. 오각형이요. 동그라미요.교사: 그래요. 여기 여러 가지 모양의 모양 종이를 고르고, 여러 재료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우리 모두 멋있게 부채를 만들어 보도록 해요.유아: 네.전개(탐색 및 표현활동)③ 활동방법에 따라 부채를 만든다.㉠ 원하는 모양의 부채모양 종이를 고른다.교사: ○○이는 하트 모양종이를 골랐군요.○○: 네. 저는 하트 모양을 좋아해서 하트 모양으로 골랐어요.교사: ◇◇이는 무슨 모양을 하고 싶어요?◇◇: 저는 무슨 모양을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교사: 그럼 친구들이 하는 것도 보고, 모양도 다시 살펴보면서 생각해보도록해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부채모양 종이를 꾸민다.교사: ◇◇이는 예쁜 꽃 모양 종이를 많이 사용했네요. 무엇을 꾸민 거에요?◇◇: 이거는 할머니 하고, 아빠하고, 엄마하고 공원에 갔었을 때 본 나무랑, 꽃이에요. 정말 예뻤어요.교사: ◇◇이가 공원의 꽃들과 나무들을 그린 것을 보니까 할머니랑 공원에서 갔었던 것이 정말 재밌었나 봐요.◇◇: 네. 할머니가 나무이름도 알려주시고 재밌었어요.○○: 선생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기 서서 계시는 걸 그리고 싶은데 여기에 너무 많이 붙여서 불편해서 못 그리겠어요.교사: 그러면 ○○이가 종이에 그려서 다른 종이에 그리고 오려서 붙이면 불편하지 않을거에요. ○○이가 할머니네 집의 기와까지 자세하게 잘 그렸구나.㉢ 꾸민 부채용 종이를 부챗살에 붙인다.교사: 다 꾸미면 부챗살에 부채모양 종이를 붙일거에요. 붙일 때 본드랑 글루건을 사용하는데 여러분 혼자 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이 도와 줄거에요. 다 꾸미면 이리오세요.마무리활동(감사,평가)④ 부채를 완성한 유아는 자리를 정리정돈 한다.교사: 다 만든 친구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다른 영역에 가서 활동해도 좋아요유아: 네◎ 당일-회상하기 시간①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느낌을 이야기한다.교사: 오늘 할아버지·할머니 오시는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나요?유아: 부채요교사: 그럼, 우리 반 친구들이 얼마나 멋있게 만들었는지 한번 볼까요?유아: 네교사: 와, ◇◇이는 부채에 꽃 모양 종이를 붙이고, 뿅뿅이로 이렇게 꾸몄네요. 어떤 느낌이 들죠?유아: 예뻐요./ 진짜 꽃 같아요.교사: 그래요 꽃 가운데도 하트로 이렇게 예쁘게 꾸몄내요. 그리고 ○○의 부채도 한번 볼까요? 여러 모양 종이를 붙였군요. ○○이는 어떤 그림을 그린 걸까요?유아: 집이요. 사람이요교사: 우리 ○○이에게 직접 물어볼까요? ○○아 무엇을 그린 거니?○○: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네 집을 그린거에요.교사: 그렇구나. 모두들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멋지고 예쁜 부채를 만들었네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받으시면 정말 좋아하실 거에요. 잘 보관해 두었다가 목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직접 선물해 드리도록 해요.
    인문/어학| 2011.08.05| 3페이지| 1,000원| 조회(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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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개론(책요약1)
    1. 기독교의 성립1) 예수 그리스도기독교는 A.D. 1년 전후라는 역사의 한 시기에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현대인과 더불어 예수와 동시대에 산 사람들 조차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단지 예수와 관련하여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증거인 교회의 성립과 그 표현 밖에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교회의 선포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세상적인 정치·군사적인 지도자를 구세주라 여겼던 유대인에게 고난의 종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해 고통 받고 최후에 죽임을 당하는 예수. 육체로부터 영혼을 해방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는 그리스인에게 육체를 갖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한 예수. 즉, 그리스인에게는 미련한, 유대인에게는 거리낌이 된 이 예수를 신약성서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이런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의문에도 개의치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로 예수는 하나님의 진정한 계몽자이며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사실여부를 조사 할 수는 없다. 단지 예수부활을 믿는 증인들의 말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뿐이다. 여기서 증인인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그들 증거의 진실성을 뒷받침 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설립과 그 현존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런 결말은 잊어버리는 것인 것처럼 예수가 붙잡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이제껏 예수를 따라온 사람들이 멀리 도망쳤다. 그런 그들이 왜 필사적으로 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 이름 외에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게 되었을까? 또 밀의 종교들 중에 왜 이 기독교 교회가 최우의 승리를 쟁취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다.2) 예수의 가르침동양에서 종교는 ‘가르침’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성립시킨 것 사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버지 하나님.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주기도를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된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인간의 아버지 이며, 이 하늘의 아버지는 요구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고 예수는 가르쳤다. 물론.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이미지로 가르친 것은 예수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표현이 아닌, 유일신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종교적 특성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선교 활동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언으로 시작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에 의해 지켜질 때 출현하는 것이란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지켜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완전하게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다. 후에 이 하나님의 나라는 유토피아 혹은 계급 없는 사회로 표현되지만 여전히 기독교적인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까지나 위에서 내리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사랑. 산상수훈 속에서 예수가 새롭게 가르친 원칙은 인과응보의 원칙을 뛰어넘는 사랑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예수가 십자가 위의 죽음에 의해 나타냈듯이 자신을 부정하는 곳에서 부여하는 사랑인 것이지 자기 긍정적인 사랑이어서는 안되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역사와 자연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초월한 사랑의 세계로, 사랑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세계라는 사실을 예수는 가르쳤다.3) 원시교회의 성립과 이교 세계 진출① 교회의 성립과 발전예수가 시작한 운동은 그가 죽음에서 소생했다는 제자들의 확신을 바탕으로 계속되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사마리아 등으활을 증거한 사도들이 죽어감으로써 기독교가 그리스 ·로마 세계에 진출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원시 교회가 성서로 가졌던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서가 그 하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죽어감에 따라, 새롭게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왜곡된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구약성서에 대하여 신약성서가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사도계승을 토대로 한 성직 제도를 성립함으로써 후세에 성체를 바르게 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성직제도의 성립과 함께 올바른 신앙고백이 중요시 된 결과 생겨난 것이 신경이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체계화는 변증가들에 의해 신학용어가 결정됨으로 시작되었으며, 증세기에 신학이 학문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③ 교회의 박해와 로마의 개종지중해 세계에 교회가 진출하고 신도 수가 증가함에 따라 유대교와의 차이가 분명해 지고 그로 인해 온갖 종교의 평화 공존을 허가할 만큼 관용적인 로마제국 내에서도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절대 유일의 구원주라 믿는 그리스도인은 로마 국가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거나 로마의 신들이나 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했고. 그로인해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국가가 금지하는 종교로 간주하여 기독교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는 트라야누스 황제때부터 시작 되었으며 이는 교회당을 파괴하고 그리스인을 노예로 삶거나 죽음으로 까지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소멸되지 않았다. 마침내 A.D.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무력도 정치적 영향력도 갖지 않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무찌른 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의한 것이며, 그들의 신앙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셈이다. 이리하여 교회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역사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2. 비잔틴 문명과 라틴 문명1) 지중해 세계의 이분화기독교가 300년에 걸친 박해 후에 가까스로 공인되어 유일한 종교로 확립되는 그 때, 지국과 그리스 ·로마 문명을 두 개로 분단해 버린 셈이 되었다. 하나였던 지중해 세계는 이로써 로마시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로 이분되고 각각 독자적인 역사를 밟게 되었다.2) 동방 교회와 비잔틴문명① 황제교황주의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로마 제국의 새로운 정신적 지주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황제는 교회의 수장, 보호자로써 국가의 권력아래 기독교를 끊임없이 감독하였고, 교회는 국가 목적 달성에 협력해야 했다. 이 같이 동방에서는 이 후 오랫동안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황제교황주의이며, 이는 계속되었다.② 동방교회의 성격동방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문화적 창조력을 상실 당했다. 따라서 교회의 관심은 자연히 지상에서 천상으로, 자연계가 아니라 초자연계로 향하게 되었다. 즉,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처럼 세속주의에 흔들리는 일은 없었지만, 선교 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신학논쟁에 집중한 결과 사색적인 신학자를 배출 할 수 있었다.③ 그리스 문명의 상속자로서의 동방교회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에 의해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산은 동방의 국가와 교회에 의해 계승 되었다. 물론 그리스 유산은 교회에 의해 계승되고 보존되는 과정에서 기독교화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적 입장에서 말하면 왜곡 되어졌다 할 수 있으나 동방 교회가 그리스 문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르네상스도 어쩔 수 없었음에 틀림없다.3) 서방교회와 라틴 문명서방교회는 동방교회와 국가가 안정을 탐했던 것과는 반대로 고투와 혼란, 파괴와 재건, 절망과 승리로 물들인 파란만장한 역사를 전개했다.① 게르만족 대이동과 로마의 멸망로마제국의 방위를 위해 주변 민족으로부터 모인 용병은 로마 제국의 군사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자마자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영원한 도시 로마는 야만족에 의해 유린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결국 약탈당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에서 그리스·로마의로마 주교는 전체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교황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세속 국가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동방에서는 국가에 의한 교회의 지배=황제교황주의가 서방에서는 교회에 의한 국가의 지배=교황주의가 확립되었다.③ 로마문명의 계승자로서의 서방 교회고대 문명의 유산을 야만족의 파괴에서 구원한 교회는 당시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써 문명의 유지에 힘썼다. 동방 교회와는 달리 지배적인 서방교회는 로마 문명의 유산을 보다 자유롭게 번역시켜 왜곡 되어졌다 할 수 있으나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전 문명은 야만족에 의해 파괴되고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서방교회의 신학은 보다 법적이고 현실적이었다 할 수 있다.4) 아우구스티누스와 고대 세계의 종말① 아우구스티누스와 그 시대격동적인 시기에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라 불리는 기독교의 이단에 빠졌지만 곧 회심을하고 사제가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이단과 사교에 대해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주교로서 삶을 살았다. 그의 삶 중에 만년에는 로마의 멸망이 선조 전래의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응보라는 이교도들의 비난에 대답하기 위함으로써 사상 최초의 역사철학서 신의 도성을 기록하였다.②「신의 도성」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성과 지상의 나라로 구별하고 이 두 나라의 개념으로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에 로마의 멸망은 이교의 신들을 내버려뒀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인이 진실된 하나님을 모른채 그 신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아구스티누스의 역사관은 원시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강한 대망을 청산해 버리고, 정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정적인 세계관이 역동적인 역사관을 추구하는 역사에는 부합하지는 않으나 카톨릭 교회의 기초를 부동의 것으로 하고 파국 후에 올 재건때를 준비하여 중세 서구 세계가 나아갈 길은 펼쳤다는 점에서 그의 공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3. 기독교 세계와 아랍 세계1) 중세 라틴 문명의 개화① 기독교 중세의 전개와 그 의의기독교 문
    인문/어학| 2011.08.05| 5페이지| 1,000원| 조회(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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