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한국교회사 및 성결교회사독서보고서과 정담당교수박명수학 번제 출 일이 름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재형성1. 도서해제허명섭, 부천: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2009.2. 저자소개저자 허명섭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겸임교수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으며, 시흥 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중이다. 현대기독교 역사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한국성결교회백년사(2007, 공저), 성결교회신학용어사전(2005, 공저), 동양선교회 창립자 찰스 카우만(2008, 공역) 등의 집필에 참여하였으며, 서울신학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신학대학교(성결대, 한세대, 나사렛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3. 내용요약가. 일제강점기의 한국교회일제는 한국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서구열강들이 한국에서 갖고 있던 기존의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외국의 선교사들에게는 종교 및 신앙의 자유를 약속하며 회유하였다. 하지만 한국을 강점한 후 일제는 태도를 바꾸어 서구와 연계된 기독교에 대해서도 강력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기독교 규제는 교육분야에서 1915년 3월 24일 공포된 개정사립학교규칙이다. 이는 모든 학교 교과목에서 성서를 배제하고 5년 내 일본어 학습을 의무화하고 총독부가 제정한 교과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과 일정한 교원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선교에 대한 규제로 포교규칙을 세워 한국교회의 포교활동을 직접관리하겠다는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기독교계 학교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통치 방법론으로 변화되는데 이는 식민지 내부의 종종적, 계층적, 종교적 대립을 이용하여 그 민족의 통일과 민족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분열정책이었다.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일제는 3.1운동 이후 한국통치 방법을 분할통치로 전환한 것이다.3.1운동 이후 일제의 정책변화로 한국교회는 어느정도 혜택을 입었으나 이것이 기독교 통제 및 규제라는 일제의 기본방침이 바뀌었음을 기독교의 수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 일제는 국내 교파들간의 합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종교에 대한 외적 통제일 뿐 아니라 변질을 강요하는 가혹한 것이었다.나.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사회인식8?15해방은 민족사적인 사건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국제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이 민족은 그 학정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해방과 함께 닫혔던 교회의 문들이 활짝 열리면서 조국재건의 기치가 드높이 울려 퍼졌다. 일제 35년의 악몽의 역사를 지나온 한국교회는 이제 해방을 맞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민족의 선구적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 한국교회는 조국의 재건이 기독교 정신에 근거해야 한다는 생각하에 건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건국의 문제는 당시 한국교회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해방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제 잔재의 청산과 함께 새로운 건국의 문제였다. 당시 한반도는 미소군정에 의한 분할점령, 그리고 이어지는 신탁통치논쟁등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해방후 한국교회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건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한국교회의 주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였는데 특히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로 대체로 한국교회는 일제시대에 정교분리를 지향했지만 다수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일제의 정책선전 도구로 이용되면서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밀착되었다.해방을 맞아 북한의 정치 및 종교집단들 가운데 가장 신속한 반응을 보였던 대상이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북은 한국기독교의 중심지로서 해방 이전부터 막대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며, 역량을 갖춘 사회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내었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정치와 정도를 선명히 드러내주는 것은 기독교사회민주당 기독교자유당 등과 같은 기독교 정당 결성이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정당은 이북, 특히 서북지역을 기반으로 삼고 해방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기독교인들이 정치에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 자료에 의하면 해방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세워진 2000교회 중 90%이상이 피난민의 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교회로 수많은 월남 피난민 신자들이 몰려왔다.다. 미군정과 한국교회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패전은 민족해방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따라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수립하는데 아무런 유예기간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적 현실에서 보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한반도는 연합국이 인정하는 정통성 있는 정부가 없는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다.이렇게 시작된 미군정의 대한정책(對韓政策)은 본국 정부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미군정은 해방 이후 한국교회 구조의 재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미군정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이 초대교회에 미쳤던 영향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에 우호적인 미군정이 수립되면서 한국교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경계와 감시 그리도 핍박과 강탈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미군정 하에서 한국교회는 거의 국교 수준에 이를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아졌으며, 정부당국의 각종 지원과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되었다.미군정의 종교정책은 반공과 서구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이라는 기본정책의 틀속에서 시행되었다. 남한에서 실시된 미군정의 주요 정책들은 많은 경우 미태평양방면군 총사령부의 대일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미군정의 종교정책은 대체로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옹호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 당시 기독교의 노선이 미군정의 그것과 잘 맞았던 결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기독교적 요소들 또한 미군정기에 서구식 관습이나 문화가 국내에 그대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었다.미군정은 기독교에 우호적으로 종전 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영향으로 대체로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다. 이는 해방이후 미군정기와 제 1공화국에서 있었던 한국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서 평가하려는 경향이 짙다. 그결과 정교 유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이때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 민족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건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사회의 기틀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할 수 있었다.라. 해방 이후 해외선교부의 입국과 활동1945년 8월 15일 한국의 전역에서 울린 자유와 해방의 노래에는 불협화음이 섞여 있었다. 이 음을 분별하여 시대의 의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교회 안팎에서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거센 폭풍이 일어났으며, 한국교회의 평화와 통일은 끝장이 나는 듯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교회에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이 선교사들의 입국과 활동이었다. 해방직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외국교회와 각종 해외단체들이 보내준 인적, 재정적 지원은 한국교회의 회생에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더라면 고사 직전까지 갔던 한국교회의 회생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정치, 사회적으로 극히 불안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입국한 선교사들의 희생적 봉사가 있었기에 한국교회의 회생이 그렇게 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선교사들이 해방이후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컸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한국교회 구조변화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마. 한국교회의 분열과 재한선교사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수많은 분열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어느특정 교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교파를 초월하여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만큼 해방 이후 한국사회 및 한국교회의 정서가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분열의 배경에는 친일청산의 문제, 신학노선의 차이, 이데롤로기 문제, 선교보조금 문제, 한국교회와 재한 선교부와의 갈등 등 여러요인이 복합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주도권 다툼의 문제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로 교회의 분열은 부정적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교회의 분열은 개체교회이든 교지고 있던 갈등과 문제의 표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교파란 국가와는 관계없이 다양한 종교집단이 자신의 주장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사람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파제도는 종교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따라 교파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서로 다른 종교적 욕구{또는 표현)가 분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물론 한국교회의 분열이 여러 부정적인 결과들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교회분열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시도를 통해 모든 교회분열을 정당화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회분열은 단순히 기득권 다툼의 관점에서만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표출된 현상적 사건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개인의 다양한 종교적 욕구가 반영되었다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바. 제1공화국과 한국전쟁 그리고 한국교회해방 후 한국교회는 정부당국과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한국교회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가장 뛰어난 적응력을 보였다.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한국교회는 타종교에 비해 그러한 체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두가지 이유에서 이승만 박사를 지지했다. 하나는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전도의 길을 열어 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철저한 반공산주의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국가의 기독교화’와 ‘종교의 자유확보’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 1공화국 하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렸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정부당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해방후 기독교는 타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때로 한국교회와 정부당국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먼저 주일행사의 문제 였는데, 단정 수립이후 국가고시, 입시, 선거를 비롯 각종행사가 주일에 실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뿐 아니라 각종고시나 입시가다.
과 목신약개론독서보고서과 정담당교수배종수학 번제 출 일이 름요한복음의 삼위일체 하나님1. 도서해제배종수, [서울신학대학교] 부천: 도서출판 세복, 2007.2. 저자소개저자 배종수교수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B.A과정 후 웨스턴 복음주의 신학교(M.Div) 와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M.A 과정을 바쳤고, 아세아 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약학 Ph. D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성경영감론에 대한 소고 외 다수의 논문을 집필하였으며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역처장, 대학원장, 교무처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3. 본문요약이 책에서는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말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말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다. 존재론적 삼위는 본질적 한 분 하나님이다. 존재성과 본질성으로 삼위와 일체를 설명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설명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해를 바로잡아준다."삼위가 한 하나님이심은 삼위가 상호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위의 상호내주의 원인은 첫째, 삼위의 무한은 일체의 근거이다. 둘째, 삼위가 동일본질을 공유하므로 상호내주한다. 삼위가 일체인 증거들을 살펴보자. 첫째, 삼위가 한 하나님이심은 여호와 자신이 “나 여호와” 표현한다. 우리는 여호와란 표현처럼 복수가 전혀 없다는 것이 증거이다. 둘째, 삼위가 각각 전지하심으로 비밀 없이 상호이해하고 이해되고, 또 상호내주하여 각 위격 안에서 숨김없이 다 상호통찰하고 상호통찰됨으로 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셋째, 성경이 하나님은 삼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보좌를 한 개로 계시함은 삼위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넷째, 삼위가 한 하나님이심을 여호와가 자기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증거한다. 다섯째, 삼위가 한 하나님이심을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의 이름이 증거한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가. 제 1 장 서론 : 삼위일체 하나님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이다. 파송자 여호와, 성부는 우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부와 성자는 동일본질을 공유하시므로, 둘 다 그의 본질적 속성들에 있어서 동일하시며 존엄에 있어서도 동등하시다. 그렇지 않다면 열등한 어떤 위격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성부는 성자보다 크신 분이다. 예수님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본성이 아버지보다 열등하다거나 작다는 말씀이 아니다. 성자가 그렇게 말씀하심은 그의 기원과 출생의 기원이 성부이고 그의 영광과 생명의 기원이 성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것에 근거하여 자신을 낮춘 성육신과 관련이 된다. 즉 그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발적 행위이었다.성부는 성령의 기원이지만 성령을 낳지 아니했으므로 성령의 아버지는 아니다. 성령 역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 아들의 기원이 아버지이듯이 성령의 기원도 아버지이다. 그러나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방식은 성부로부터 출생이 아니라 발출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성부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오시기 때문이다.성부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성부는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함으로 무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어느 위격이든지 그의 신적 충만함을 볼 수 없다. 그를 보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는 무한하고 광대하시므로, 유한한 인간은 그를 볼 수 없다.성부는 영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 영들 중에 하나인 한 영이 아니다. 그는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럼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무한한 영이며 무한히 순수한 영이시다.성부는 살아계신다. 성부께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은 그의 필연적 속성으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존하시는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생명의 원천”으로 성부의 생명 소유를 표현한다. 생명은 성부의 필연적 본질적 속성이다. 그는 생명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본래부터 생명을 필연적으를 믿는 자들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의 자녀들로 낳는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즉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영적인 세계에 속하였기 때문에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육의 사람에서 영적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성부는 영원히 사는 생명의 양식으로서 성자 예수를 세상에 주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세상에 주시는 데 그 떡은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며 그 자신이 그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광야시대의 만나는 참 떡이 아니었다. 참 떡은 생명의 떡인 예수님 자신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것이 그의 살을 먹고 그가 주는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그를 영접하는 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성부가 주시는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성부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의 장소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고정된 어떤 장소에서만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장소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계시므로 어디에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받으시는 분이고 또 이런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히 자존으로 존재하시는 “그 말씀”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말씀은 역시 자존으로 존재하시던 성부이신 그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의 시기에 홀로 계셨으나 고독한 존재가 아니고 성부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홀로 계셨다. 그는 아버지와만 함께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과도 함께 홀로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말씀 하나님은 성부 “그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에 동참하시므로 성부보다 열등한 하나님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보다 나은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의 삼위는 동등하며 한 분 하나님이시므로 또한 세 분 하나님들이 아니다.예수님은 “말씀”으로서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언한다. 말씀이 말하는 자를 나타내듯이 그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자라면, 그 말씀이 창조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은 당연하다.예수님은 “말씀”으로서 생명과 사람의 빛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의 빛이시다. 그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빛은 생명을 전달하는 빛이다. 그래서 그는 생명의 빛이다.성자 예수는 성육하신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이신 말씀이 우리와 같이 순수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말씀 하나님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일시적인 방문을 의미하지 않고 인류의 역사 속에 인간으로 들어오심으로 영원히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이다.성자 예수님의 인성은 사랑과 똑같은 완전한 인성이다. 성자 예수님의 인성은 실제적이고 영원하다. 성자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공존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그는 완전한 두 본성을 가지고 계신다. 성자 예수의 인성은 보편적이지 개성적이 아니다. 성자 예수의 인성과 신성은 한 위격 안에서 통일성을 이룬다. 그 말씀은 성육신함으로써 인격을 획득한 것와 우리의 구원이신 메시야로서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그리고 유일한 생명이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천명하신 것이다. 자기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여호와의 구원의 유일성은 모든 구원의 근원자로서 성부 여호와게 돌려진다. 구약의 구원자이신 여호와는 신약에서 예수 이름 안에서 제2위하나님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의미에 의해 계시되고 있다. 성자 예수님만이 하늘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그 유일한 길이다. 성자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 유일한 진리이다. 성자 예수만이 성부의 영생을 전해 주시는 그 유일한 생명이다.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예수님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는 여호와 메시야로서 참 포도나무라는 의미이다. 에고 에이미 메시야는 참 포도나무 자체이다. 예수님이 자신이 포도나무라고 할 때 자신이 포도나무와 그 안에 붙어 있는 가지들을 구분하지 않는 전체를 의미한 말로 말씀하셨다. 이 참 포도나무 비유는 연합을 의미한다.우리는 주님과 연합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과 연합함이 열매를 맺는 것보다 먼저이다. 이 연합이 없이는 열매도 없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되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와 제자가 연합해야 열매를 맺는다.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과 성도 그리고 성도의 상호연합이란 제자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그와 연합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주님과 연합한다.참 포도나무와 가지가 생명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부분을 해석한다면 참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흘러들어 가는 이 포도나무의 진액에 의한 생명의 연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성.
과 목독서보고서과 정담당교수학 번제 출 일이 름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1. 도서해제주승민, [서울신학대학교] 부천: 킹덤북스, 2009.2. 저자소개저자 주승민교수는 서울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리스 아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를 수득했다.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1993년부터 1996년까지 평택대학교에서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평택대학교에서는 교목으로 봉사했으며 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학생처장, 평생교육원 원장, 신학전문대학원 원장, 도서관장, 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사회봉사 활동으로는 대한민국 신지식인 자문위원, 재단법인 우촌 초등학교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3. 내용요약가.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출생 그리고 유년시절문준경 전도사가 출생한 때와 장소는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씨의 3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수곡리는 몇 가호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할아버지가 진사였기에 양반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 유년시절을 보냈고 남다른 재질과 총명스러움과 재덕까지 겸비하여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억압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향학열은 높았지만 전근대적인 남녀관, 그리고 교육제도 등이 불충분한 속에서 17세에 결혼할 때 까지 충분한 교육적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채 이땅의 여성으로 태어난 죄 아닌 죄의 결과를 짊어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서당 교육과 근대식 교육의 전환점에서 어렸을때부터 노래부르며 춤추며 즐기는“산다이”놀이 문화에 익숙하여 훗날 찬양을 통한 복음 전파가 익숙해졌다.나. 쓰라린 결혼생활과 일그러진 가정1908년 3월 17세에 결혼하여 1931년 40세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청강생으로 입학하기 까지 20여년간의 결혼생활은 시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심의 며느리이자 한많은 여인이란 칭호를 듣기 합당한 기구한 운명의 삶이었다.남편과는 믿음안에서 사는 신앙의 가정이 아니었기에 녀가 기독교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인간성 내부에 흐르는 윤리성을 지닌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 훗날 그녀가 신학을 연구하고 성공적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준비되도록 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녀의 삶이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다.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적 멘토들 그리고 그녀의 회심신앙의 여정, 순교의 여정을 살펴보면 멘토링의 원리는 배제할 수 없는데 문준경 전도사도 올곧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이 신앙의 멘토는 하나님 다음으로 너무나 중요하다.첫 번째는 신앙의 첫 출발지인 목포 북교동 교회의 이성봉 목사님이며, 두 번째는 전도사의 직분으로 목포에 들어와 목포 성결교회를 설립한 장석초 목사이고, 세 번째는 2대 교역자로 김응조 목사가 1929년 목표로 부임해 왔는데 이때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은 일대전기를 맞는다.그녀는 회심 이후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고향에 먼저 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안군 수곡리 친정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녀는 오물을 뒤집어 쓰는 곤경을 치르면서도 집안 전도를 쉬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북교동 교회 집사 입명을 받고 1928년에는 압해도 교회를 중심해 전도하고 목포의 한 지역을 맡아 개인전도와 축호전도에 힘썼다. 또한 그녀의 영성이나 실천면에서 당시 같은 교단에서 섬기던 이 중 큰 교회 청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다 포기하고 섬 선교의 전문가로 발돋움 함에는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 사역자였는가 가늠케 하고 결국 그녀의 회심이 철두철미 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라. 문준경 전도사의 신학수업과 그녀의 신학생 시절예수그리스도를 애타게 사모하던 문준경전도사는 찬양하고 기도하던 중 “너는 내 것이라”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을 듣게 되고, 남편도 버리고 하잘 것 없는 본인의 처지에 감사하는 그녀의 기도와 찬양은 늘 혼이 담겨 있었다.40세의 만학도에 6년간 신학을 공부하며 3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3곳의 기도처를 세웠다. 경성성서학원 입학시 기혼자는 불가하다는 결정으로 청강생신분으로 입학하지만 이성봉 목사의 적극적인 추회에 전도여행을 온 양석봉 전도사가 문전도사와 합류 하여 이판일 장로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데 주초(금연)문제, 제사문제를 모두 끊고 그의 동생 이판성 집사를 비롯해 온 가족이 결단하고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 부흥이 활발히 전개 되었다.이판일 장로는 철저한 주일성수 신자로 거듭나 올곧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졌고 훗날 같은 날 순교의 제단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남겼다.그리고 문준경 전도사가 개척했던 임자 진리교회는 이봉성 목사를 교회의 전도인으로 세워두고 1933년 증도 성결교회를 시작한다. 증도에서 그녀는 비애의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교회 개척장소를 물색하던 중 시숙인 정영범과 대화 끝에 효부의 역할을 잘 감당한 감동적 모습을 보게된 정영범이 결신하여 문준경 전도사 보다 앞장서서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부지까지 마련해 주는 등 증도를 천국의 섬, 천사의 섬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그 지역을 변화시켰다. 그녀는 찬양 사역이라는 전도 전략을 통해 사람을 모으고 말씀을 증거했으며 가련한 처지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축귀 사역을 함으로 온전케 변화시켜 주었다.고 김준곤 목사님은 문준경 전도사의 증인이다. 그녀의 사택을“목민센터”라 칭하는데 선포, 가르침, 치료를 운집해 공동체 생활을 통해 치유를 체험하기 위해 종합 목민센터라 칭했으며 “대리거지”라는 별명은 전인 사역을 꿈꾸는 그녀에게 가련한 처지의 가정이나 개인을 위해 좀 여유있는 집에 찾아가 먹을 양식을 대리로 구걸하는 등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또한 일본의 악랄함이 극에 달하던 시절 아이를 출산해 보지 못한 그녀지만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였으며 고독한 사람의 처지의 사람을 위해 편지쓰기를 아끼지 않았다.이런 그녀는 1950년 10월 5일에 공산당에 의해 해변가에서 순교 당하고 시신을 가매장 후 추후 1951년에 정식장례식을 하는데 김구 선생님의 장례보다 많은 이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바. 문준경 전도사의 영광스런 순교역사의 분깃점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전 인생을 통해 순교자의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다.문준경 전도사는 원래 천성이 고운지라 남에게 해를 가한 일이 별로 없고 천부적인 낙천성과 호기심으로 자신의 발전에 주력하는 성격이 강했다. 또한 복음 진수에 충실해 육신을 쳐서 주님의 뜻에 복종하려는 사역자였다. 그녀의 순교의 순간은 어쩌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찰나적 사건이 아니라 마지막 종지부를 통해 주의 제단에 드려지는 그 순간까지 연속 선상을 이룬 생애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죽으면서도 온천하보다 귀중한 한 목숨을 구체적으로 건지는 사역자의 이상을 달성했다.그녀는 순교의 현장에서도 백정희 전도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녀의 진술에 의하면 “씨암탉(문준경)은 총알이 아깝다”고 말하면서 문준경 전도사를 죽창으로 찌르고 톱으로 잘라서 죽게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백정희 전도사도 순교의 현장에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사랑에 빚진 자로 삶가운데 순교자적 삶을 살게 되었다.사.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이후에 일어난 일들문준경 전도사의 사역은 1931년에 시작해 1950년 10월 5일에 마감하기까지 20년간의 사역에 비하면 열매는 매우 괄목할만 했다.그녀는 신학교 재학시절 교회를 세군데나 개척해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했다. 임자 진리교회(1931년), 증동리 성결교회(1933년), 그리고 대초리 성결교회(1935년)가 대표적 예이다.경성성서학원 입학 후 처녀 목회지로 임자 진리교회에 복음을 전하는 그녀는 이판일, 이판성 형제를 신앙으로 인도하고 임자 진리교회의 48명의 순교의 열매가 맺히게 했던 기폭제 역할을 형성했다. 이것은 성결교회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후 재원도 기도처, 방축리, 우전리 기도처를 지금의 자립교회로 성장하게 만들었다.증동리 교회는 임자 진리교회의 지교회로 건축에 대한 교역자와 성도들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협력을 이끌어 교역자의 리더십을 따라 전 교인이 협력하는 사랑이 동반된 성공적인 교회상 구현을 만들었다. 이 증동리 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되는데 대표는데 교회 부흥을 위해 찬양사역을 중요 전략으로 사용하여 크게 영향력을 끼쳤다.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건축에 내어놓을 뿐 아니라 신자들이 마련해 준 자신의 수의 까지도 팔아 헌금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 전체를 드린 산 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녀의 노력으로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는 1945년 11월 9일 75명의 사람들이 모여 삼천만 구령운동을 전개하는데 결의하게 하고, 1947년 복음 전도대는 대장 이성봉 목사, 부대장 최창도 목사를 중심해 전국을 순회하며 교회 재건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했다.결국 그녀의 영향력은 지금도 살아 있어 신안군 증도섬은 술집과 풍어제가 없고 무당이 없는 천국의 섬으로 변하게 되었고 현재 순교의 섬 증도는 “금연의 섬”으로 지정되어 있다.4. 감상 / 느낀점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8년간의 장교생활을 마무리 하며 큰 맘먹고 제주도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느꼇던 한 가지는 어디를 가도 교회의 모습이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였다. 도심지역도 그랬지만 부락이 형성된 외곽지역 마을은 더더욱이 찾아 볼 수 없는 교회 모습에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궁금해 졌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섬지방의 원시적 문화 속에서 문준경 전도사 같은 성결교회의 걸출한 인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정말 역사의 획을 긋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철저한 그녀의 회심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녀가 만난 하나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불사르리라 다짐하지만 말뿐인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뜨겁게 불타오르는 구령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또 그를 위해 목숨까지 불사르리라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 각오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신앙은 삶으로 나타난다. 실천이 없는 기독교인들의 작금의 현실에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의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주었다.
Ⅰ. 서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 자신에게도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첫째는 그분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둘째는 그분이 하니님의 아들로 실증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분에게는 이제부터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다.인류에게도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의미는 인간이 그토록 괴로워하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것이 죄의 필연적인 결과인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될 수 있다는 복된 소식이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간에게도 죽음을 넘어 부활의 소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부활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주님이 이처럼 부활의 공동체를 만나서 부탁하신 말씀을 지상명령이라 부른다. 그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 복된 소식,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전도라는 재생산과 제자화라는 번식을 통해서이다.본서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 다섯 곳을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출애굽기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면서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Ⅱ. 본론1. 너희를 보내노라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40일 동안 나타나셨다. 부활하셔서 이 땅에 계신 동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전과 같은 분이었으나, 사역의 방식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셨다.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제자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함이다. 둘째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셋째 이유는 그들에게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승계시키기 위함이었다.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초석을 놓으셨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그 후 승천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대신해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줄 매개자들이 필요했다. 매개자들은 바로 제자들이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 의미는 첫째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통하여 주님의 사역이 제자들의 사역으로 승계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은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세상의 구원이라는 사명과 사역이 성령의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세상을 구원하는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지상명령의 마지막 결론은 용서의 사역이다. 죄의식의 문제와 심판의 문제를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해결하셨다. 본래 죄의 용서는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는 전권이었다. 제자들에게 죄인을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세는 죄의 용서를 선포할 수 있는 권세였다. 구속을 통한 구원을 수용하면 용서를 받는다. 계시와 구속을 거부하면 영원한 심판을 자취하는 것이다. 그 수용방법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이다. 제자들은 용서와 심판의 메시지를 주님으로부터 전수받았으므로 선포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그들에게 위임된 명령과 권세를 잃는 것이다.”제자들이 할 일은 지상명령에 오직 순종하는 것이다. 지상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제자들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진 교회에게도 주어진 명령이다. 이 지상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지배를 받아야 한다.2. 복음을 전파하라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실 때까지 제자들을 열 번이나 만나 주셨다. 열 번 중 다섯 번은 마지막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지상명령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이다. 이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음도 없었고 마음도 완악한 제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세계 복음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이처럼 믿음도 없고 마음도 완악한 사람들에게 맡기셨을까? 그 이유는 첫째, 주님은 처음부터 그들 동일한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다. 문제들을 해결한 제자들은 그들이 경험한 이처럼 놀라운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복음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일으킨다. 부정적인 반응이든지 적극적이든지 둘 중 하나다. 마가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믿는 사람은 세례를 통해서 신앙고백을 하고, 믿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자들의 결단과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지상명령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제자들이 할 일은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주님 자신이 그들을 통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셨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일어날 수 있는 증거, 기적이다. 즉, 기적은 복음을 확증해 주는 성령의 역사이다. 주님은 마가를 통하여 능력 있는 복음 전파를 위한 네 가지의 기적을 열거하셨다. 축귀, 방언, 해독 및 신유가 그것이다.마가복음은 복음으로 시작하고 복음으로 끝을 맺는 복음서다. 그 복음이 제자들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목숨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영혼들이 변화하는 기적이 크다 할 수 있겠다.3. 제자를 삼아라마태복음은 복음전도의 방법을 강조한다. 그 방법의 핵심은 “제자를 삼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지일관 제자훈련을 통한 세계 복음화를 고수하셨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주신 지상명령은 권위, 명령 및 약속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주님이 가지신 권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다. 이는 우주적 권위이다. 이런 권세를 가진 분이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시다.지상명령에서 주요한 핵심은 “제자를 삼아라”이다. 이 단어만 유일하게 본동사이다. 다른 세 명령형 분사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는 것을 제자삼는 방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자”란 예수님을 주인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부하신 모든 것이다. 목적은 첫째 종적으로 주님을 닮기 위한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다. 가르침은 언제나 횡적 사역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이 명령에는 약속이 따른다. 첫째 약속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말이다. 시대가 끝나는 날까지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둘째 약속은 “너희와 항사 함께 있으리라”로 주님이 친히 임재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 후 제자들과 간헐적으로 함께 하셨다. 겨우 40일이었다. 대신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다른 보혜사,” 곧 성령이 그들에게 강림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의 지혜와 방법으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약속하셨다. 주님의 제자들은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셨고, 따라서 그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다.이러한 제자화의 운동이 지상명령에 보다 더 부합되고 일치되게 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제언이 있다. 첫째로 우리 한국 교회는 제자훈련을 교실에 국한시키는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 한국 교회는 전도 없는 제자훈련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 한국 교회는 삶의 변화를 수반하지 못하는 제자훈련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 한국 교회는 조직과 제도를 의지하는 제자훈련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다시 무릎을 꿇고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주님 앞에 울부짖어야 할 것이다.4. 기다리라지상명령은 부활의 첫 장면과 승천 장면 사시에 삽입되어 있다. 이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사십 일 동안 그 몸을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복음은 지상명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신 것은 복음의 내용과 그 복음을 전할 때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즉 내용과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지상명령은 내용이 성경에 근거한다. 주님은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은 이 지상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능력은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히 그리고 힘 있게 전파할 수 있게 하였다. 죄 용서를 위한 회개를 전파할 수 있게 하였다. 궁극적으로 회개를 유발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죄인들의 눈을 열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앞에 나아와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영접하게 하신다. 그때 성령은 영적으로 죽은 영혼을 영적으로 살리어 거듭나게 하신다. 어떻게 하면 제자들은 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기다렸다, 오순절날 기도하며 기다리던 때에 제자들 위에 성령이 바람 같이 그리고 불 같이 강림하셨다.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 죽음을 감수하셨다. 죄인의 구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선포하기 위하여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 살아나셨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류의 구원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사역을 우주적으로 전해야 할 사람들은 그분이 주시는 죄의 용서를 경험해야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생명을 걸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증인이 된다. 그들이 이처럼 증거할 때 그들에게 임하신 성령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의 증거를 듣고 보는 사람들 안에서 회개와 죄의 용서를 이루시는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증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5. 내 증인이 되리라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자 왜 40일씩이나 이 세상에 더 머무셨을까? 첫째 목적은 그분이 공생애 기간 중 선언하신 모든 주장들을 재확인하시기 위해서였다. 둘째 목적은 그분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시기 위해서였다. 지상명령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때, 하나님 나라의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