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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채 레포트 색이란? 색의 특징, 혼합, 색채론
    지난 여름, 쇼핑을 하던 중에 너무 예쁜 와인 색의 바지를 보고는 주저없이 바로 구입을 했다. 집에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바지를 꺼내보니 이게 웬걸.아까 본 바지의 그 고급스럽던 색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촌스럽기까지 한 것이 아닌가! 그때 딱 생각난 것이 그 매장의 조명이었다. 바지를 구입했던 SHOP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상품이 있는 곳엔 노란빛을 띄는 조명들이 비추고 있었는데 이 조명과 분위기로 인해 형광등이나, 태양광 밑에서 보던 색과는 다른 색이였던 것이다.이처럼 옷을 구입하거나, 화장품 등등 일명 조명빨에 속은 경험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다. 색과 빛이 관련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관련이 있길래 우리의 눈을 이렇게 의심케 하는 것일까?색 [ color ]◎색이란?먼저, 색이란 매우 감각적인 요인으로 인간은 색채 속에서 색채와 더불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순간뿐만 아니라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색채를 느끼고 색채를 보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색채는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모든 사물을 느끼도록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또 색채는 즐거움이나 슬픔등과 같은 감정이나 정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마치 눈으로 보는 음악처럼 우리의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면서 모든 대상을 다양한 시각적 경험으로 이끌어 간다. 이와 같이 색채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이 경험하는 사물들은 모두 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물체의 색은 색채로서 지각되기 이전에는 물리적인 빛의 상태에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물체의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물체가 빛을 받으면 표면에서 일정한 파장의 빛만을 반사 도는 투과하고 나머지는 흡수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정한 파장에 대한 반사 또는 투과 비율의 차이에 다라 사람의 눈에는 물체의 색이 각각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물체의 색은 태양광을 비추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이 생활 주변에서 물체를 본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상태로, 태양광 아닌 인공 광원에 의해 물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내 경험처럼 조명광에 의해 물체의 색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색의 지각 과정색을 지각하는 과정은, 광원으로부터 방사되어진 빛에 의해 색이 각각 다르게 결정괴고나면 이 물체의 색은 눈으로 들어와 망막을 자극하여 신경 흥분이 일어나고, 다시 제 1시중추에 전달되어 순응, 잔상, 대비 등과 같은 조건 반사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반응은 대뇌의 감각령으로 전달되어 비로소 색을 의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대뇌 연합령으로 전달 되어진 자극은 그 사람의 경험이나 의식 등과 같은 정신 활동에 따라 색을 의식하고 인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광원 에너지와 방출로부터 시작된 생리학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통하여 색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색채의 특징◎색의 3속성1. 빛의 파장 자체를 나타내는 색상 (Hue)색상이란 스펙트럼이나 무지개에서 볼 수 있는 빨강, 주황, 노랑 등과 같은 색 기미를 말하는 것으로, 물체의 표면에서 선택적으로 반사되는 색 파장의 변화에 따라 무수히 많은 고리 형태의 색상환이 된다.2. 밝고 어두운 정도를 나타내는 명도 (Value)물체의 표면이 모든 빛을 반사하면 흰색으로 보이면서 밝다고 느끼게 되고, 모든 빛을 흡수하면 검은색으로 보이면서 어둡다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빛이 반사되는 양에 따라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느끼는 것이 명도차이이다.3. 색 파장의 순수한 정도를 나타내는 채도(Chroma)채도는 색의 탁하고 선명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색상의 포함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색 파장이 얼마나 강하고 약한가를 느끼는 것으로, 여러 가지 색 파장이 물체의 표면에서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양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말에 진한 색과 연한 색, 흐린 색과 맑은 색 등은 모두 채도를 가르키는 말이다.◎색채의 혼합1. 가법 혼색빛의 색을 서로 더해서 점점 밝아지는 원리를 이용한 혼색으로,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인 색광을 혼합함으로써 색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색을 혼색해서 생긴 색은 혼합하기 이전의 명도보다 높아진다.2. 감법 혼색색을 더할수록 밝기가 감소하는 원리를 이용한 혼색으로, 마젠타(magenta), 노랑(yellow), 시안(cyan)을 혼합하는 것이다. 혼합색은 혼합하기 이전의 명도보다 낮아진다.3. 중간 혼색3-1병치혼색 실제로 색을 섞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밀하게 가깝게 놓아서 혼색되어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어 점묘화법, 모자이크 등이 있다.3-2연속혼색 색광을 빨리 교대하면서 계시적으로 혼색되어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팽이나 바람개비 등의 회전 원판이 그 예이다.색채조화론◎오스트발트의 색채 조화론“조화는 질서와 같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그는 두 가지 이상의 색들을 속성의 차이가 구별되도록 질서 잇게 배열시키면 쾌감이 생겨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쾌감을 일으키는 색의 배색이 곧 조화색이라고 하였다.◎먼셀의 색채 조화론
    예체능| 2015.03.11| 4페이지| 1,000원| 조회(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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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모더니즘 페미니즘
    포스트 모더니즘페미니즘1. 페미니즘[feminism](1) 페미니즘의 정의페미니즘은 성차(gender)에 기인하는 불평등과 억압을 고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은 오랜 세월동안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되어온 여성의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고 여성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나아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편협된 사회가치나 개념을 부각시켜 바로잡아 올바른 사회를 확립해 가는데 그 목표가 있다. 사회변화와 학문의 조류에 따라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다양화하고 있고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페미니즘의 차이는 여성해발의 방법에 있고 더 나아가 여성이 갖는 남성과의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다. 이 모든 페미니즘들은 모두 여성해방이 궁극적으로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한다는 신념을 공유한다.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는 여성과 여성적인 것을 나타내는 female이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어 여성중심적, 여성성지향으로 여성존중의식을 내포하고 있다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은 과거의 인본주의적 페미니즘(제1기 : 19C말 ~ 20C초)과 후기 페미니즘 (제2기 : 1960년대 ~ 현재)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2) 페미니즘의 시대적 배경- 성평등을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 서구의 경우는 계몽주의와 자유쥬의사상, 막스주의의 보급과 이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 19세기 후반의 노에페지운동과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 1960년대의 인권운동이었다.?제1기 (19C 말 ~ 20C 초) : 전통적으로 억압되어온 여성의 성은 계몽주의와 시민혁명, 산업혁명,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새롭게 인식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낭만적 개인주의 사상 앞에 여성과 남성은 인간 본성의 고유함을 공유하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지각과 함께, 부계사회에서의 성적 불평등을 극복하고 여성의 인간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제2기 (1960년대 ~ 현재) : 1960년대에 이르러 여성노동인구의 증가, 중산층 여성들의 자문화적 신화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혼란이 야기되면서, 기존의 성에 대해 관습과 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여성운동도 혼란기의 여러 사회운동의 하나로 다시 활발해졌다.- 이러한 사회구조로 여러 사상이 대두- 유럽에 산업구조의 변화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던 시기에 자유주 의페미니즘, 자본주의 제도에서 지배계급인 남성들에 착취당한다는 마르크 스주의 페미니즘,가부장제의 성차별에서도 기인한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이 대두 하게되었다.2. 포스트 모던 페미니즘가장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일한 요소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구조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접근을 비판하고 여성이라는 범주가 남성과 대비되는 이원화된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해체'를 강조한다. 여성의 보편적 특성은 없으며, 지위 경제조건, 정치상황,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맥락에서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론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중화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성성, 여성범주의 해체 전략이 종국에 가서는 여성집단을 부정하게 될 때 여성문제 해결의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3. 출현 배경페미니즘은 성차(gender)에 기인하는 불평등과 억압을 고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사회변화와 학문의 조류에 따라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다양화하고 있고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페미니즘의 차이는 여성해방의 방법에 있고 더 나아가 여성이 갖는 남성과의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다. 이 모든 페미니즘들은 모두 여성 해방이 궁극적으로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한다는 신념을 공유한다.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는 여성과 여성적인 것을 나타내는 female이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어 여성 중심적, 여성 성 지향으로 여성존중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인류 사회가 역사 발전 이래 남성 중심적으로만 조명되어 왔기 때문에로 궁극적으로는 남녀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페미니즘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 종교, 매체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발생론적 차원에서 볼 때,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원주의적인 해석과 시각이 요구된다.페미니즘은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되어 온 여성의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고 여성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나아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편협된 사회가치나 개념을 부각시켜 바로 잡아 올바른 사회를 확립해 가는데 그 목표가 있다.페미니즘은 소위 페미니즘의 제2차 물결이라고 부르는 1960년대 말 이후에 나타난 여성해방 운동으로, 성(gender)의 불평등에 도전하는 정치적, 문화적, 지적 변혁 운동을 의미한다.1960년대먼저 서구 특히 페미니즘 운동이 가장 거세게 일었고 미국 여성들이 개인적이고 내밀한 자신들의 사적 체험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차별적인 억압 구조물을 토로해 내면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슬로건을 높이 치켜든 시기는, 밖으로는 제3세계 민족주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내적으로는 흑인, 여성, 동성애 등 소수 집단들의 권리가 폭발적으로 주창되던 1960년대 후반이다. 이러한 페미니즘의 물결은 서구 특히 미국 사회의 일상적 삶뿐만이 아니라 학계에도 세찬 변화를 몰고 왔다.1970년대1970년대 페미니즘의 학문적, 정치적 논쟁과 실천의 중심과제는 ‘보편적 시민으로서의 개인’과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개인’이 겪는 사회 문화적, 경제적 차별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1080년대여성들이 어떻게 남성과 같은 시민적 법적 평등권을 획득하느냐하는 문제와 남성과 여성이 갖는 본질적 다름(예를 들어 모성, 자연 친수성 등)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말들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여성과 남성의 다름, 여성간의 다름의 문제를 1990년대에 들어‘어떻게 다름을 인식하고 또 서로 관즘 내에서 큰 쟁점이 되고 있다.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의 페미니즘은 독자적인 여성 인식에 기반해 있었다기보다는 여성의 사회 참여 혹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진보의 한 흐름으로 사회 운동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지식인 사회나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에서 페미니즘이란 말이 사용되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1990년대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싼 쟁점들은 공사 영역에서 남녀가 차별되고 있기 때문에 평등에 입각한 권리가 여성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 사회를 다르게 경험하는 여성들의 개인적 경험들을 정치화시켜 우리 문화의 성의 정치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페미니즘 역사에서 이러한 쟁점은 오래된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고전적인 주장이 이제서야 여성들에 의해서 구체적인 실천의 장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불리하고 부당하게 적용된 사회 경제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반응으로 그리고 성차별 현실을 읽어내는 의식 운동으로 발전되어 왔다.이러한 페미니즘의 현재 양상은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다양화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동시에 어떻게 여성들이 일상적 관계망 속에 문화화되어 있는 기존의 가부장제 권력 장치와 단절을 하는 정치적 성찰을 함께 할 공간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이미지와 미디어 시대의 페미니즘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어떻게 가야 하는 가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쟁점인가를 한 마디로 지적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변혁시키고자 혹은 비판하고자 하는 가부장적 현실이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그 실체가 분절되어 있고 또 그 분절된 현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서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4. 페미니즘 미술(1) 페미니즘 미술의 정의페미니즘미술은 미술의 역사를 통하여 미술사적으로 여성들의 위치를 결정지었던 이데올로기 및 구조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여성과 미술사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권력체제를 유지시켜주는 미술과 여성에 대한 정의를 탐구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여성작가일 필요는 없다.페미니즘미술은 여성주의미술과 여성적인 미술로 구분할 수 있다. 여성주의미술은 의식적 차원에서 여성성을 강조하고 여성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반해, 여성적인 미술은 여성적 감수성을 무의식적으로 표출시키면서 여성주의를 부르짖기 보다는 작업으로 성에 대한 인식을 표명하고 여성으로 그린다는 실존적 행위를 통해 페미니즘에 동참하는 것이다. 광의의 시각에서 볼 때 여성적인 미술은 페미니즘미술에 포괄될 수 있겠다.(3) 페미니즘의 조형성페미니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개념의 문제는 페미니즘 미술가들에 의해 재조명 되고 있다.(1) 작품의 주제로서의 여성 이미지의 변화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경우 지금까지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수동적이며, 에로틱한 대상, 고통받는 희생물, 혹은 이상화된 성녀등으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여성 미술가들은 여러가지 여성역할 모델이나 여주인공, 그리고 숭배나 영감의 다른 이미지로 여성이미지를 묘사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을 묘사하는 경우에도(기존 질서에 대한 피해의식의 보상적 형태라고도 볼 수 있으나) 여성 앞에서 포즈를 취한 수동적인 남성 누두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적인 여성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으며, 남성=강건,용감이라는 식의 표현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관점에서 따론 약하게 때론 순진무구하게 떄론 에로틱하게 남성을 표현한다.(2) 문양과 장식운동미술 표현에 있어서 여성 미술가들은 수예,자수,매듭,직조물,구슬,레이스,퀼트등 모든 종류의 장식물들을 그들의 작품속에 적용하기 시작,1960년대의 미니멀 나으 위시로 한 차갑고 절제된 예술형태를 거부하고 풍요로운 장식성의 추상적 스타일을 소개하였다.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패턴과 장식운동 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70년대부터 남성과 여성미술가 모두가 발전시켜, 여성들은 고급미술과 저급 수공품 사이의 구분을 없애면서 서다.
    예체능| 2015.03.11| 6페이지| 1,500원| 조회(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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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사] 서양 중세문화의 형성과 특징 기독교미술,비잔틴미술,로마네스크미술,고딕미술
    서양 중세문화 [ 5C-16C ]종교의 지배중세시대엔 유난토록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이 많이 설립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회화, 건축, 조각 등 모든 사상이나 예술에는 그 시대의 시대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 등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중세시대 당시엔 지금과 같이 회화나 미술, 조각 등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더욱 컸다. 당시의 특징적인 회화는 모두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반하여 상당히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된 회화 작품이 주로 성당안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그림을 그리던 당시 시대 상황은 어떠했을까.311년(혹 325년, 책에 따라 다르게 표기되어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교회를 국가의 지주로 삼는 일이 일어난다. 이는 로마인들이 야만인들이라 칭했던 타민족들의 신앙인 것이다. 로마 제국의 동방의 잔재인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이 번창하는 동안 서로마 제국은 붕괴되었으며, 이렇게 붕괴된 서로마 제국의 주들이 서로 흩어져 프랑크, 서고트, 부르군트, 앵글로 색슨, 롬바르디아 등 호전적인 야만왕국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이어지는 400년경부터 1400년경에 이르는 천년의 시대를 역사가들은 중세 또는 암흑시대라고 불렀다. 이 초기 기독교 시대를 뒤이은 시대, 즉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의 시대가 왜 암흑시대라는 명예스럽지 않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일까. 앞서 간략히 말한 바와 같이 당대의 상황이 민족의 대이동과 전쟁, 봉기로 점철된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암흑 상태에 빠져서 그들을 인도할만한 지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하여, 또 한편으로는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유럽의 제국들이 대략 형태를 갖추고 생겨나기 이전의 혼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수세기 동안 중세는 ‘공허한 삶, 끔찍한 암흑시대’이며 단순히 고대와 근대 사이에 낀 공백 기간일 뿐되는 성지순례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이로 인해 연대성을 이루어 내어 민족단위의 힘을 발생시켜 세력을 넓히고 자주성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장소로서 성당의 설립이 시급했고, 중세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선 글보다는 그림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했으므로 성당은 웅장해졌고 , 교회 안 벽화와 그림들은 성경의 내용을 사실적이면서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글을 모르는 문맹인도 그림을 보면 성경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그 찬란함에 자신도 모르게 경외감이 생길 수 있도록 한 의도이다. 최초의 성당은 로마의 공회당 바실리카의 형태를 빌려 제작되는데, 현재엔 그러한 성당은 남아있지 않다.초기 기독교 미술종교의 강화로 성당은 점차 늘어났고 그 형태나 회화에서 우리는 더 가깝게 시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중세엔 콘스탄티노플의 찬란한 비잔틴 궁전에서 장대한 고딕 대성당들까지 중세 미술과 건축에는 빛나는 업적이 많이 있다. 특히 중세에는 서구 문화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변했다. 먼저 문화적 주도권이 지중해 연안에서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북유럽으로 옯겨 갔으며, 기독교가 이교도와 야만족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현세에서 내세로 옮겨 가고, 육체를 미의 대상에서 타락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기독교가 내세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지상의 물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그 대신 중세 미술가들은 영혼의 표현에 치중했는데, 특히 새로운 신자들에게 교회의 교리를 전달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분위기 속에 이 시기 미술은 종교의 시녀가 되었다. 신학자들은 신자들이 물질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결과 매혹적인 모자이크와 회화, 조각품이 만들어졌다.건축에서 신성에 대한 지향은 더욱 밝고 가벼운 건물 형태로 나타났다. 육중하고 거대한 로마 건축은 서서히 사라지고, 내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미술에서 중시했던 인간의 이상과 육체미, 힘과 아름다움의 조화보다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 참뜻과 행적 등을 표현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후 기독교가 국교로 승인된 후에는 미술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계기를 맞게 되어 앞서 말한바와 같이 고도의 기능을 갖춘 건축가들이 거대한 성당이나 수도원을 여러 곳에 세웠다. 또한 교회 벽면과 천장을 장식하기 위한 회화가 발달했고, 특히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불에 구운 색유리를 재료로 쓴 초기 벽면 모자이크가 전문가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비잔틴 미술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후 이 도시가 튀르크족에게 멸망한 1453년까지 지속됐던 지중해 동부 지방의 예술을 편히 비잔틴 미술이라 일컫는다.로마가 야만족에게 멸망해 잿더미에 파묻혀 잇는 동안 비잔티움은 화려한 색채와 장식이 특징인 동방 그리스 취향의 초기 기독교 미술을 발전시켰으며 문명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비잔틴 미술과 건축의 복잡한 형식으로부터 오늘날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의미의 ‘비잔틴’ 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두드러지게 당시엔 모자이크가 많이 발달되었는데, 모자이크는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의 강령을 널리 유포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그 주제는 대부분 종교와 관련이 있었고, 예수는 전지전능의 지배자나 설교자로 표현되었다. 당시의 모자이크는 반짝이는 황금 배경과 후광에 둘러싸인 성자들을 화려하고 장대하게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이후 726년, 성상금지령이 발단이 되어 약 1세기 동안 성상파괴 논쟁으로 인해 비잔틴 회화와 모자이크 발달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제2의 황금시대를 맞게된다. 모자이크는 채색된 돌이나 유리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소묘법에서 로마의 전통을 따르기는 했지만 비잔틴의 모자이크는 로마의 모자이크와는 다르다. 그 특징은 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모자이크 외에 성상화 역시 비잔틴 예술에서 상당한 영역을 차지한다. 성상화는 자그마한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인데 에 걸맞는 장대한 교회인 하기아 소피아라는 건물을 설립한다. 하기아 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로, 카라칼라 목욕탕같은 로마 건물의 거대한 스케일과 동방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융합시킨 건물이다. 축구장의 3배가 넘는 크기의 이 건물은 로마의 직사각형 바실리카 위에 거대한 돔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비잔틴 건축공학의 승리인 삼각 궁륭 덕분에 이와 같은 위업이 가능했는데, 이처럼 4개의 아치가 정사각형 모양을 형성해 돔을 지탱하는 구조는 처음 시도된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구조로 인해 드높이 놓여 있는 돔과 함께 내부가 넓고 확 트인 느낌을 준다. 또 40여 개의 창문이 돔의 하단을 둘러싸고 분포해 있어서 마치 후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야심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건축물로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로마네스크 미술비잔틴 미술에 이어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두꺼운 벽과 아치가 있는 고대 로마의 석조 건축과 닮았다는 데서 로마네스크가 유래한다. 이 명칭은 ‘로마와 같은’이라는 뜻으로 19세기에 고안된 말이다. 로마네스크 건축 중 가장 큰 특징은 궁륭이다. 궁륭의 기본 구조는 아치와 버팀기둥 체계다. 버팀기둥은 자유롭게 서 있는 단단한 석조 지탱물로 입구가 바깥쪽으로 퍼져있는 작은 창문들이 달린 두껍고 매끈한 석조벽 등을 받친다. 궁륭을 이루게 되는 아치는 일련의 쐐기 모양 벽돌로 이루어진 구조 전체이다. 아치는 단순한 상인방보다 더 넓은 입구에 걸칠 수 있기 때문에 건축가는 궁륭 구조 안에서 지탱물들을 더욱 적게 쓸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점으로는 내화성이 있다. 이전엔 교회 건축은 대부분 목조 지붕이었으나 화재로 인해 목조 지붕 교회를 무너뜨린 수많은 화재기록이 많았다. 이후 고대 로마의 건축가들은 이전 궁륭의 단점을 보완한 교차 궁륭을 발전시키게 되었고 더욱 개방된 이 형태는 건물 안으로 더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해주면서 호평을 받았다. 대부분의 로마네스크 교회에 쓰였으며 시각적으로 이 궁륭들 집중된 조각들에는 천국의 왕관을 쓰고 승천하는 그리스도와 죄인의 영혼을 게걸스럽게 먹고있는 요괴들과 악마가 죄인의 육신을 꼬챙이로 꿰고 있는 최후의 심판 장면 등 주로 신,구약의 교훈적인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로 하여금 종교적 믿음을 강화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로마네스크 화가는 당시의 조각가처럼 줄거리의 내용을 간결하게하여 이야기해주는데 아주 뛰어났다. 그리하여 도구의 기본적 소지나 자연환경 등은 고려하지 않고 벽면이거나, 양피지의 면이거나, 시가에서 문자와 단어를 쓰듯이 회화의 운율에 따라서, 혹은 기하학적 구도의 원칙에 따라 인물이나 그외 여러 형상을 꾸며 맞추어 나가는 것에 능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당시의 수도사와 수녀들이 수사본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삽화예술을, 넓은 의미에서는 서구 문명 전체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을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성스러운 내용이 아름다운 외면을 통해 드러나도록 했으며, 표지는 금박을 입혀 값진 보석으로 장식했다.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될 때까지 이 수사본은 종교적인 가르침뿐 아니라 고전 문학을 기록한 유일한 형태의 책이었다.고딕미술점차 변화하는 중세 미술의 꽃은 바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아닐까 싶다. 이 당시의 건축가들은 세계 건축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이 솟구친 내부를 가진 복잡한 구조물들을 건설했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늑골 궁륭과 부연 부벽이라는 외부 버팀목을 발명한 덕분이었다. 이러한 구조물 덕분에 건축가들은 작은 창문만이 달린 육중한 벽 대신,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한 창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오게 해 내부를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고딕 성당의 발전사를 보면 암흑시대라 불리우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계속해서 빛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 결국 벽면은 종교적인 교훈을 담은 커다란 채색 유리로 조립된 창살과 같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격자 문양과 더불어 위로 상승하려는 듯한 수직성 또한 고.
    예체능| 2015.03.11| 7페이지| 2,0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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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추상표현주의 배경 종류 작가 의의.
    추상표현주의[1]미국의 추상표현주의미국 추상표현주의 배경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가치를 뒤엎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미술화단에서도 1920년경부터 1940년대 초까지 크게 발전되었던 기하학적 추상형태에 대한 탐구가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주춤해진다. 미술가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오차 없는 계산에 의한 미술작품 창조에 회의를 느꼈으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오히려 더 기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예견할 수 없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내면의 자발성과 본능의 폭발적 힘에 의한 감정의 분출이 만들어 내는 우연적 효과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풍요로운 본능적 감정이 만들어 내는 불확실한 형태 체계는 신체의 폭발적 행위에 의해 분출되는 표현적 추상의 조형적 언어로 표현된다.또한, 미국이 1920년대 말~ 30년대에 경제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을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만 명의 화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미술지원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연방 정부의 관료 해리 홉킨스는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미국 재무성은 토마스 하트 벤튼, 존 스튜어트 커리, 벤샨, 이사무노구치, 아쉴 고르키, 잭슨 폴록 같은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작가를 포함해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매주 23달러 86센트의 돈을 지급했다. 1935~43년, 이 프로그램이 실시되는 동안 대부분 젊고 무명이었던 화가들은 두 달 간격으로 한 점의 작품씩 국가에 제출했는데 통틀어 10만 점의 회화와 8천점의 조각, 공공건물에 4천점이 넘는 벽화가 그려졌다. 여기에서 많은 실업자와 같은 처지의 화가들은 벽화를 그리면서 기존의 유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업용 페인트를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추상표현주의의 색면추상이나, 액션페인팅이 등장하게 된다.유럽미술가들은 세계 제 2차 대전의 발발로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뉴욕으로 이동하게 되자 미국이 국제적 관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됨을 알게 되고 많이 망명을 왔다. 독일의의 형식주의 이론은 먼저, 정치나 사회와 분리된 미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연상하게 되면 안 된다. 미술의 가치는 붓을 사용했는지, 무슨 종류의 선과 색을 사용했는지 등과 같이 작품 자체의 매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화면의 평면성과 매체(물질성)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추상미술만이 지속적인 가치를 갖는다.그린버그는 화가가 작품의 내용이나 의도를 관객에게 쉽게 알게 끔 알려주거나 암시하는 것은 키치 미술이라고 하면서, 아무런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 관객들이 나름대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고급 미술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기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추상미술의 특징 중에서 형식적인 부분만 수용하면서 미국만의 색다른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대한 캔버스를 미국의 넓은 영토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고, 인디언 부족미술의 영향, 초현실주의에서 사용한 자동기술법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동기술법은 화가가 어떠한 의도가 나타나지 않게 하면서도 물감의 성질이 극대화되는 매체를 활용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허용한 것이다.추상 표현주의는 결국, 맨 처음 정부의 지원과 클레멘트 그린버그 외 미국만의 예술을 찾고자 했던 화가들의 노력으로 으로 말미암아 뉴욕파의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은 결실을 맺었고 전위 회화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추상표현주의의 종류1) 액션페인팅액션 페인팅이란 힘과 에너지와 물질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결합하고, 순간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난 우연성의 효과를 새로운 미의식으로 발전시킨 표현 방식이다. 주로 드리핑(Dripping), 타시즘(Tachisme), 컬리그래피(Calligraphy)와 같은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신들의 회화세계를 구축해 나갔다.액션페인팅 계열의 추상표현주의는 전후 유렵과 미국을 전쟁의 회오리로 몰아넣은 일련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특히, 전쟁의 참혹한 비정함과 파괴적인 정서는 액고 있으며, 특히 폴록의 회화에서는 핵폭탄과 같은 에너지의 분출을 엿볼 수 있고, 인간을 갈가리 찢어서 표현하는 쿠닝의 회화에서는 그러한 에너지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는 인간의 처참한 일면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전쟁의 참상에 대한 표현은 앵포르멜 회화에서의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뒤의 불안정하고 우울한 사회분위기가 감수성이 예민한 화가들의 정서 속에 깊이 스며들어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액션페인팅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우연의 효과를 사용하는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식을 적용한 경향이다. 인간이 그리고자 하는 차분한 정서로서는 이러한 표현법을 사용하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드로잉을 해앟거나 우연을 가장한 또 다른 표현을 갈구했던 자세와 교감을 이룩하고 있다. 액션 페인팅은 일련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구가했던 이상주의적인 미학에서 탈피하여 현실에의 복귀를 선언한 것이기도 하고, 비극적인 일면이 드러나 있는 공포와 전율을 담고 있어서 현실의 수용이기도 하며, 그냥 단순히 외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의 ‘참여’이기도 하다.이러한 액션페인팅은 새로운 미술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서 이를 개척한 폴록, 쿠닝, 고르키, 로드코 등은 미국의 새로운 미술가로 평가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예술이 혁명적 예술은 아니었다. 다만 전쟁 이후에 발생했던 우울한 분위기를 반영하였다는 점과 핵에너지와 같은 폭발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흐름은 근대미술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전통’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러한 양식이 유럽의 전통적인 상아탑과 같은 회화를 겨냥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이룩한 미학이라는 것을 암시한다.이러한 액션 페인팅에서 또 중요한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공헌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개척한 자동기술법은 무의식에 기대어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20세기 전기의 초현실주의 추상회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내용이었다. 그들은 무의식적을 행하는 표현, 즉 우연적인 효와 무관계회화의 경향에 근거하였으나 또한 구체적인 물질을 묘사하려 하지 않았다. 색면구성 회화는 화면의 전면 구성을 통한 회화 본래의 평면성에 주의를 기울였고 극도로 단순화한 형태를 추구하였다. 즉 3차원적 공간감이 주는 착시 효과를 거부하고, 캔버스를 2차원 평면으로 바라보며 물감을 넓게 펴발라 캔버스 전체를 색채로 뒤덮는다. 이때 캔버스는 물감이 칠해지는 바탕이 아니라 안료와 함께 일체화 되는 것이다. 때문에 캔버스는 거대한 규모로 확대되고, 순수한 색과 면의 추상이 주는 새로운 효과를 거두었다. 궁극적으로 순수한 시각의 미술을 추구한 것이다.보통으로 많은 사람들이 색면추상의 경향을 고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갱이 타이티 섬에서 이룩한 스타일은 편편한 2차원적인 화면이었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들은 대단히 함축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전경과 후경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다만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색면을 구축하기 위한 조형요소로서 사용되었다. 회화가 지닐 수 있는 풍요로움이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인물의 형태나 외형사의 비례는 그의 작품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는 타이티의 여인들이 열대의 해안가에서 뛰어 노는 원초적인 장면에 매료되었으며, 그들이 지니고 있는 때묻지 않은 싱그러운 정서와, 원시의 태양 빛에 노출되어 거무튀튀한 살갗의 색채를 보고 매료되었으며, 즉각적으로 이러한 색채를 그리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회화의 화풍에서 색채우위의 이념을 살리기로 마음먹고, 인체를 감싸고 있는 나무나 땅, 그림자 등의 모든 요소들을 원생적인 색채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초기의 야수파 화풍을 이룩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마티스의 회화에서 구축하고 있는 색채우위의 특징이 그것이다. 그의 회화는 거의 2차원 평면에 머물러 있으며,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물이나 소품,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사물이나 창문에 이르기까지도 2차원적인 화 방식을 또다른 유형의 회화로 개척한 것이기도 하다.색면추상, 액션페인팅, 그리고 서체추상 이 세가지 유형이 모두 반기하학적이다. 색면추상의 경우 색면을 사용하거나 그 테두리를 자유스럽게 열어 놓고 있어서, 매우 경쾌하며 부드러운 속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동기술법의 완성에 가까운 액션페인팅의 경우 시각적인 에너지가 증폭되고, 드리핑에 의해서 드러나는 자율적인 리듬감과 색채의 혼합의 표현성이 매우 자극적이다. 이에 비해 서체추상의 경우는 매우 날렵하고 거세며, 자동기술법에 가까운 특성을 담고 있어서 그림이 지니고 있는 표면의 느낌보다는 힘찬 필치가 주는 에너지에 관찰자의 시각을 더욱 쏠리게 한다.작가 마크 토비는 동양권의 미술에 심오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작가로, 실제로 그는 동양을 순회하며 서체법을 연구하여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그림 속에 은연중에 동양 철학이 스며들게 되었다.추상표현주의 작품이 대부분 에너지가 풍부한 경향인데 반해 서체추상작가들의 작품은 물안개와 같은 고요함을 보여준다.[2]유럽의 추상표현주의 - 앵포르멜앵포르멜의 역사적 배경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의 표현주의나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 추상의 차가운 면에 대응하여 추상의 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1951년 프랑스의 평론가 타피에가 이를 앵포르멜이라고 칭했다. 정해진 형상을 부정하고 일그러진 형상과 질감의 효과를 살려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하였으며, 이후 국제적인 예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앵포르멜의 특징앵포르멜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응하여 유럽이 내세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장 포트리에, 볼스, 장 뒤비페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이러한 방식들은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과 같이 암울하고 냉소적인 일면을 담고 있다.액션페인팅과의 명확한 차이점이 있다면 액션페인팅은 표현의 제스처를 강조하지만 앵포르멜은 마티에르를 매우 중시한다.
    예체능| 2012.12.08| 8페이지| 1,500원| 조회(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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