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인 사라폴리는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다이앤 폴리)의 복잡한 결혼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생겨난 자신의 탄생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씨가 다른 3남매와 다이앤의 옛 연인, 남편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친부라고 생각했던 마이클이 생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덮어둘법한 이야기를 독특한 유머와 재치, 진정한 사랑으로 서술하여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사건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다이앤 폴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밝혀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입을 거친 말들은 내뱉는 순간 화자의 주관을 담기 때문에 이미 진실성을 잃고 만다. 주인공 사라폴리의 생부인 해리 걸킨은 딸이 아닌 감독으로서의 사라 폴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술이 가진 결정적 기능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타인을 통해 그려진 다큐멘터리는 이미 예술적 가치를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을 제공할 유일한 당사자(어머니)가 부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변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계속 추적해간다. 그녀의 씨 다른 오빠 마크 폴리가 그녀에게 이 영화의 주제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Memory(추억)"이라고 답한다. 추억이란 것도 개인의 감정이 담긴 기억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이 영화를 완벽한 진실만을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녀는 주관이 개입되는 불완전한 진실일지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 후에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갈구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규명이 아닌 사실 인지 후에 남겨진 그녀의 삶에 관한 것이 아닐까?두 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전개방식이 매우 참신하고 매끄럽다는 점이다. 극은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시작해 ‘출생의 비밀’로 갈등에 치닫고, 키워준 아버지 ‘마이클 폴리와 사라 폴리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화제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맥이 끊이지 않고 거부감 없이 진행된다. 대게 영화가 하나의 화제를 가지고도 매끄럽지 못한 전개를 해나가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감독의 남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간간이 과거에 촬영한 홈 비디오 화면과 배우를 기용해 새로 촬영한 재연화면이 인터뷰자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며 화제를 제시한다. 또한 ‘마이클 폴리’의 내레이션과 내레이션을 녹음하는 장면이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대변해주면서 관객이 납득할만한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준다. 인터뷰만으로 극을 꾸며낸다는 참신함과 배우가 아닌 사건에 관련된 실재하는 일반인들이 보여주는 인터뷰과정에서의 자연스러움이 화면에 그대로 노출됨으로써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위트 있게 풀어낸다.
"Ich bin stark, Ich bin schoen, Ich bin klug, Ich liebe und ich werde geliebt"주인공 파니는 자기최면을 건다. 그녀는 죽음을 동경하는 29살 노처녀이다. 두 번의 연애에 실패하고 결혼을 갈망하지만 딱히 인생에 남자가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녀는 현대인병을 톡톡히 앓고 있다. 인생이 허무하고 소통의 부재로 자기소외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오르페오를 만나 진정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세상 밖으로 손을 내밀게 된다.이 영화의 공간 활용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 바로 파니의 집이다. 파니가 사는 아파트는 현대인의 온상을 담고 있는 정신병원과 같다. 남자를 사랑하는 흑인 점성술사 오르페오, 여자 없이 잠 못드는 슈티커, 신들린 아줌마, 과한 고양이 애호가, 그런 애호가를 매일 지탄하는 아저씨 어디하나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현대인이 정신병 하나씩은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는 ‘소통의 장’이 된다. 파니가 외부로 노출되는 다리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엘리베이터이다. 좀처럼 자기세상에서 잘 나오지 않는 그녀가 오르페오를 만나고 잠시 운명이라 착각했던 슈티커, 새롭게 시작될 연인을 만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자기소외를 겪는 현대인이 타인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치유의 기회를 마련하는 공간으로서 큰 의미가 있는 매개 공간이다. 한편, 죽음을 동경하는 파니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바로 ‘관’이다. 관은 그녀가 세상과 쌓은 가장 최후의 방어선이 아닌가 싶다. 오르페오를 만나 자신을 사랑하고 베푸는 법을 배우면서 그 관은 서서히 허물어져간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공간의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라는 작은 사회 속에 각기 방에 갇혀 자기소외에 치닫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엘리베이터라는 만남의 공간에서 치유 받아 관이라는 마음의 벽을 허무는 상징적인 공간설정이 돋보인다.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은 결말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사랑’보다는 ‘현대인’이라는 초점에 맞춰 생각했다. 현대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지 않는다. 사회가 만든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오르페오는 과감히 사회가 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자기 삶을 산다. 보다 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파니 또한 성숙해지도록 유도한다. 영화 중후반부까지 만해도 그녀는 곧 자기 삶을 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오르페오의 예언대로 숫자23과 관련된 남자를 만난다. 영화에 제시 되지는 않았지만 끝내 파니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현대사회의 틀에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결혼도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이다. 영화 초반부에 그녀는 ‘남자는 필요치 않다. 결혼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마지막에 등장한 그 남자도 결혼을 위한 남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단지 그녀가 변화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의 방에 아파트 주민을 초대해 함께 차를 마시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철저히 혼자였던 공간에 타인을 초대하고 끝내는 관까지 창밖으로 내던지며 새로 태어난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오르페오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가 주는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진정한 본인의 삶을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