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서론‘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나쁜 짓을 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두고 이런 말을 사용한다.그렇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인간다운 사람인가? 악이 존재하지 않고, 선함과 옳은 것만 존재하는 세상은 인간다운 세상인가? 물론 윤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다움의 조건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와 영화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그리고 ’블레이드러너(blade runner)'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다움에 대한 고찰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이 하나의 소설과 두 영화에서 보여지고 있는,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영화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인류는 3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난다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을 인간의 감정에서 찾고, 감정을 없애기로 한다.인류는 감정을 말살시키는 약물인 프로지움을 개발하고, 감정을 유발하는 미술, 음악감상등을 금지한다. 그리고 감정유발자(감정을 느끼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들을 처단하는 클레릭이라는 요원을 양성하여,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를 그린 영화다.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악도없도 전쟁도 없는세상,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막연히 피어오르는 지금같은 시기에, 이러한 세상은 언뜻, 유토피아로 느껴질 수도 있다.하지만 이러한 세상이 정말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대사 곳곳에서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던지고 있다.1) Without it - Without love, without anger, without sorrow - breath is just a clock ticking. (사랑,분노,슬픔이 없다면, 숨쉬는 것은 시계가 째깍거리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 감정유발자를 처단하는 클레릭인 프레스턴에게 감정유발자인 메리가 하는 말이다. 사실 오래전에 본 영화이고,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여러번 보았지만, 대사에 대해서 생각해본 것은 처음인데, 나는 이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 대사를 통해 나는 감정(사랑,분노,슬픔)은 숨쉬고 살아가는 인간을 단순히 숨쉬는 존재에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해주는 필요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anger(분노)’라는 단어이다. 이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감정중에서도 분노는, 특히 제거해야할 감정이고, 악이다. 왜냐하면 인류를 파멸에 몰아넣을 수 있는 전쟁을 일으키는 가장 나쁜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노조차도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필요한 감정중의 하나라고 이 대사는 말한다. 이것을 ‘필요악’이라고 설명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하는 것 , 그것은 바로 감정(분노마저도 포함하는)이라는 것이다.2) Wait. Look at me. Look at me. I'm life. I live, I breathe...I feel - ‘기다려, 날봐.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다고, 난 숨을 쉬고, 느낄 수 있어.’ - 이 영화의 마지막부분에서 사회를 바꾸고자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사회 통치자인 ‘father’를 처단하는 프레스턴에게 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의 수장인 본인은 감정을 느끼다니...결국 그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었다. ‘감정이 없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이 영화는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1시간30분이 넘는 영화, 화려한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 영화이지만, 난 이 영화의 핵심이 이 두 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이 영화의 주제인 것 같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서 말하는 인간다움꽤 오래된 영화이고, 이번에 처음 본 영화인데, 내용자체는 단순했다. 식민행성에서 탈출하여 인간을 죽이고 우주선을 탈취하여 지구로 잠입한, 로이를 비롯한 6명의 복제인간(Replicant)을 블레이드 러너(데커드)가 은퇴(retirement)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는데, 복제인간을 죽인다고(kill)표현하지 않고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다. 이 영화도 역시 대사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인간다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1) More human than human is our motto(‘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이것이 우리의 모토이다.) - 데커드는 6명의 복제인간을 추적하기위해 복제인간을 만드는 회사인 타이렐 사를 방문하는데 여기서 복제인간인 레이첼을 만난다. 보이트-캄프검사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도 실제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레이첼을 보고 감탄하는 데커드에게 타이렐이 하는 말이다. 여기서 인간답게 라는 기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여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의 말미에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이 보였다.6명의 복제인간들은 거의 모든 것이 인간과 똑같지만, 수명이 4년밖에 되지 않는다. 로이로 대표되는 복제인간들은 4년밖에 되지않는 수명으로 인해 빨리 다가오는 죽음에 공포심을 느낀다.수명을 늘리기 위해 자신을 만든 타이렐을 찾아가는 로이, 그리고 로이를 빼고 다른 5명의 복제인간들을 모두 은퇴(retirement) 시킨 데커드, 수명을 늘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로이는 타이렐을 죽이고, 데커드과 결투를 벌인다. 전투용 복제인간을 로이를 데커드가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 결국 데커드는 로이에게 쫓기며 높은 건물의 난간에 메달리는 상황이 된다. 로이가 손에 힘이 빠져 추락하려는 그 때, 로이는 손을 내밀어 데커드를 구해준다. 그리고는 All those mon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 장면은 정말 가슴깊이 남는 장면이었다. 정말 슬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려는 데커드를 살려주는 장면에서는 ‘아, 이것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복제인간이 더 인간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복제인간에게 인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걸리버여행기 소감문‘해변가에 大자로 누워서 묶어있는 거인과 아주 작은 난쟁이들’,그리고 ‘걸면걸리는 걸리버 핸드폰’이라는 초등학교시절 봤던 핸드폰 광고,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모든 배경지식이었다. ‘뭐라도 좀 알아야 생각을 하면서 읽기 좋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려는 찰나, 책의 앞부분에 걸리버 여행기에 간단한 설명이 있어, 그 설명을 바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 책을 잡자마자 느낀것은 여러가지 자세한 수치적 표현들을 통하여, 때로는 이 글이 사실을 바탕으로 쓴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제1부 소인국편전체적으로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때, 이 글이 동화를 넘어서서 당시의 시대, 특히 영국 왕궁과 정치를 풍자한 작품이라는 책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이를 참고로 읽었다.소인국편 에서는 릴리퍼트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사회,법률,관습등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영국의 현실과 비교하도록 한 것 같다.1부에서 릴리퍼트제국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릴리퍼트 제국은 법을 매우 중시하고, 도덕, 그리고 정직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 함으로써 매우 훌륭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괴상한 놀이를 통해서 공직에 취임할 자격을 얻거나 재주를 부려서 황제의 신임을 받는모습, 괴이한 매장풍습등, 상식 밖의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릴리퍼트제국의 좋은면을 통해서 영국과 비교하여 영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릴리퍼트제국의 비상식적인 모습들은 영국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비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또, 좋은 면으로 보여지던 제국의 황제가 이웃 나라를 완전히 식민지화 하려는 움직임을 걸리버가 반대하는 장면에서는 이 글의 저자인 조나단 스위프트가 영국의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1부에서 걸리버를 모함하여 죽이려하는 플림나프라는 인물이 있는데, 실제로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로버트 월폴경을 빗대어 쓴 인물이라고 한다.이 책이 쓰여진 18세기 당시 영국에서는 당파싸움이 치열했다고 하는데, 제국내에서 '굽이 높은가 굽이 낮은가'에 대한 논쟁으로 당파를 나누는 모습, '계란의 넓은쪽을 깨먹느냐, 좁은쪽을 깨먹느냐'로 이웃나라와 피터 지게 싸우는 모습등,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편 가르는 모습은 편가르기에대한 비웃음으로 보인다.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정당을 나눠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동인과 서인 모두 왜구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가 서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동인의 모습,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당파싸움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서양 구분없이 항상 있는 것 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얼마전 생을 마감한 황장엽씨가 생전에, '이 좁은 나라에 진보,보수가 어디있나'라고 한탄했다고 하는 기사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의견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정치인들이 좀더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서, 때로는 서민생활안정과 같이 화합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과감한 화합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제2부 대인국편-내 머리속에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편이 전부였는데 2부 대인국편 부터는 정말 내가 몰랐던 걸리버 여행기의 내용이었다.1부의 소인국에서는 걸리버가 거인이었지만, 이제 반대로 걸리버가 소인의 입장이 되어서 거인의 나라인 브롭딩나그에 도착한다. 2부의 앞부분은 걸리버를 돈벌이로 이용하며 착취하는 주인을 통해 왕궁으로 가게되는 장면을 주로 보여준다. 왕궁으로 도착해서 걸리버 에게 우호적인 글룸달클리치와 왕비로 인해 비교적 편한 생활을 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왕비도, 글룸달클리치도 아니고, 이 거인들의 나라의 왕이다.거인들의 나라에서 왕은 매우 현명하고 재능있는 즉, 만능인 국왕으로 비춰진다. 이 왕을 통해 소인국들의 나라인 영국의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걸리버는 왕과의 대화를 통해 영국에 대하여 극도의 칭찬을 늘어놓지만, 결국 왕에게 비춰지는 인간이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대자연이 지상에 기어다니도록 만든, 지겹고도 작은 벌레들로 구성된 가장 해로운 인종' 정말 충격적인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아웅다웅 살고있는 세계도 우리보다 더 큰 시야를 가지고있는 누군가가 바라볼때, 그렇게 추한 세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아쉽게도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는 나에게 이러한 질문만 던져주고 아쉽게도 답은 주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정답이 있는 질문일까?또 걸리버는 왕에게 잘 보이려고 화약 제조법을 알려주지만, 왕은 이에대해서,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기계라고 묘사함으로써,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170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의 이 구절은, 현대에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하지만, 나는 정말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일까? 내 나라, 내 땅에서 나에게 피해를 주는 전쟁은 반대하지만, 국익을위해 해외에 우리나라 군대를 파병하고, 다른나라의 전쟁에 참전하는것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의견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들에게도 전쟁이라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일텐데...돕는다는 명분으로 그곳으로 파병된 우리나라 군인도 어떤의미에서 보면 평화를 해치는 침략자가 될 수도있지 않을까? 책을읽다보니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듯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역시 난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정말 위선적인 생각을 가졌다는것은 확실해졌고, 정말 부끄럽다.- 제3부 하늘을 나는 섬나라 편(라퓨타)중학교1학년 무렵 천공의 성 라퓨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 것이 기억난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서양에서도 성공한 이유가 서양인들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걸리버 여행기 같은 글들을 많이 참고로 해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3부에 나오는 인물은은 대체로 특이한 인상착의를 가지고있다. 한쪽으로 기운 머리, 이상한 눈, 천문학적인 장식, 악기들, 그리고 항상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방광으로 때려주어야만 정신을 차리는 형태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통 생각이 수학과 음악 속에 갇혀있고 이 이외의 것들은 무시한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걸리버는 무시당하고 경멸당한다.이 나라의 학자들은 많은 것을 연구하는데, 하나같이 실현 불가능한 어렵고 내가 느끼기에는 이상한 것들만 연구한다. 예를 들면,오이에서 햇빛을 뽑아내는 연구, 똥으로 음식을 복원하는 연구, 공기를 고체로 만드는 연구 등, 정말 실현 불가능 한 것들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글을 쓴 18세기는 수학과 과학에대한 신뢰가 대단했던 시대라고 한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엉뚱해 보이고 이상해보이는 연구를 비웃는 식의 글을 씀으로써 이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사고를 드러낸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실현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도전이 이 책에서는 우습게 씌여졌지만,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도전이 지금의 우리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수학과 과학의 법칙들은 없는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자연에 있는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도전과 발견들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리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의식이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따라가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을 하기는 하지만, 과학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과학자들의 도전이 지금은 쓸모없고 가치없는 것처럼 보여고 먼 훗날에 위대한 것으로 판명될 수 도 있지 않은가?3부에서 또 하나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스트룰드부르그 즉, 불멸의 인간의 관한 것이었다.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불로장생에 대한꿈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걸리버도 불멸의 인간을 동경한다. 하지만 곧 불멸의 인간의 추한 모습을 보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이 내용을 통해서 스위프트는 불로장생의 꿈에대한 덧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같다. 하지만 인간이 불로장생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있을까? 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는 무서운 현실에 대한 무서움에서 인간이 벗어날 순 없을 것 같고, 미련이 많은 인간이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순간에도 난 이 세상의 기억을 가지고 내가 생전에 함께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후 세계가 있음을 바라고 있다. 이러한 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기대같은 것들이 종교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닐까?
날개-호밀밭의 파수꾼 소감문-■ 이야기1 - ‘너네 집 몇 평짜리 아파트야?’, ‘너희 아버지 연봉이 얼마야?’ 20살이 넘은 우리도 서로 민망해서 잘 묻지 않는 이런 질문들... 최근 몇몇 초등학교의 교실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이 서로 오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의 대답들이 친구를 사귀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즉, 우리 아버지는 연봉이 높고, 우리집은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까 비슷한 위치에 있는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맞는 친구, 나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연봉과, 집등 이러한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 친구를 사귀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야기2 -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청춘스케치(Reality Bites)라는 90년대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극중 인물인, 레이나, 트로이, 마이클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에 담아낸 기록영화 이다. 이 영화는 대학을 갓 졸업한 청춘들(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나름의 인생관이 있는)이 꿈을 안고 사회에 나왔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는 내용을 담아냄으로써, 이 시대의 20대, 즉,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이 든 다. 20세기 말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21세기가 시작 된 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사회에 막 발을 내딛는, 그리고 내딛을 나에게도 생각과 공감을 던져 준 영화였다.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거라 생각하는 주인공들과 같이, 나도 20살이 되어 대학교에 오면, 많은 것이 변할 줄 알았다. 대학에 왜 진학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남들이 다 가니까 점수에 맞춰서 왔다. 동시에, ‘더 넓은 세상인 대학에 가면 무언가가 보이겠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내 미래에 대한 확실을 찾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도 했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대학생활을 성실히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처음 한학기만 새내기의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즐겁게 했지, 한 학기가 지나서 2학기가 되자, 매일 같은자리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안주로 술을 마지며 같은 얘기를 하고, 때 되면 시험보고, 공부하고...술 마시는 것만 빼면, 반복되는 일상은 고등학교 때와 다르지 않았으며, 무료했다. 내가 기대했던 더 넓은 세상은 보이지 않았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학점을 잘 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자격증도 따야한다는 것이 내 눈앞에 보인 미래였다. 학점과 자격증의 목적은 좋은 직장이었고, 좋은 직장의 목적은 풍요로운 삶과 돈이었다. 너무 허무했다. 난 평생 이러한 가치들의 노예야 되어서 살아야 하는가...이러한 생각속에 허무함이 찾아왔고, 내가 살아가는데 의미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허무함 속에서 찾아온 방황과 고민, 1학년2학기의 어느날 부터 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아무 목적지 없이 버스에 타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정처 없이 시내를 몇시간이고 걷기도했다. 또, 취미삼아 치던 드럼을 연습실에 틀어박혀 몇 시간씩, 팔이 아프도록 치면서 시간을 보내기까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하고 진지한, 그리고 아픈 고민이었다.시간이 지나서 이러한 고민들은 잠시 접어두고 군대에 다녀왔다. 군대에 다녀온 지금, 과거에 했던 고민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지는 못했다. 여전히 이곳의 생활은 반복적이고, 앞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고민은 접어두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있다. 지금도 막막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무언가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날개가 필요한 세상과 호밀밭의 파수꾼세상이 너무 오염됐다. 물질 만능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가치관과, 세속적인 가치에 너무 찌들어 버린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문제가 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상황 속에서 어린 청소년들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 들이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 또, 너무 많은 가치들이 세상을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고, 정체성의 혼란까지 느끼게 된다.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이 체포되던 순간에 들고 있었다는 책으로 유명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역시 오염된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홀든은 지겹지만 세상의 가치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자의식이 강한 소년이다. 명문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세상의 가치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같은 행동을 하며, 네 번이나 퇴학을 당한다.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청소년들도 홀든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청소년들은 학교생활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간혹, 자신도 어른들 만큼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서, 일탈을 저지르기도 한다. 소설 속의 홀든처럼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시는 등, 흉내만 내는 것이다. 조금 소극적인 청소년들은 혼자만의 고민에 휩싸인다. 이들의 행동은 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이 순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혼란스럽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가치관들을 따르도록 강요받기 때문에,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치관과의 혼란을 느낀다. 순수함과 때묻은 가치의 대결이 청소년의 내면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