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부제: 가짜 천사, 천사를 유혹하다.세상엔 다양한 인간들이 산다. 아니,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해보곤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로의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도 같고, 아니면 그 반대로 상처만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여기, “ 베를린 천사의 시 ” 라는 이 영화는 이러한 의문을 천사라는 인간과는 다른 또 다른 존재를 대입해서 이러한 생각을 풀어나간다.영화 속에서, 천사들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을 위로한다. 다만, 그 위로가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인간들은 그들을 느낄 수 없다. 몇몇의 순수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영화는 사람과 천사라는 두 존재를 등장시켜, 각각의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그 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된 천사 다미엘의 선택이다.두 명의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여느 천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세상을 떠돌며 그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을 위로한다. 두 천사는 곳곳에 박혀있는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지만, 둘은 그에 따른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다미엘은 영화속에서 마리온이라는 인간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인간이 되기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다미엘은 단지 그녀와의 사랑만을 느끼고 싶어서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을까?영화 속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결코 완벽히 행복하지도, 완벽히 우울하지도 않는 일상속의 사람들이다. 영원함을 누릴 수도 없고, 완벽함도 못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미엘은 어째서 인간이 되기를 결심한 것일까.영화는 시종일관 흑백화면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다미엘이 사람이 되었을 때, 컬러화면으로 돌아온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천사들은 인간의 생각을 읽고,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을 느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영화는 이러한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 흑백화면으로 대신 말한다.영화 속 다미엘은 말한다. “ 영원보다 지금이란 말을 더 느끼고 싶다. ”도대체 다미엘은 모든 인간들의 고통을 다 알면서도, 왜 인간이 되고 싶어한 것일까.다미엘과 달리 천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카시엘은, 다미엘 못지 않게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자살을 할지 고민하는 남자에게 카시엘은 아무런 힘도 못되고, 단지 아무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을 뿐이다. 결국, 남자가 자살하자, 카시엘은 비명을 지른다. 어쩌면, 카시엘은 다미엘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은 천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시엘은 인간이 되질 원하지 않는다. 카미엘은 그들의 고통을 자신처럼 아파하고, 그들을 감싸고 싶어서, 천사로 남은 것은 아닐까. 카미엘은 자신을 찾기 보다, 그들을 위로하길 원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알지 못할지라도.반면, 다미엘은 자신이란 존재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지지리 궁상맞은 인간들의 삶에서, 다미엘은 그들을 위로하고, 방관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인간들의 삶이 그래서 평생을 자신이 무엇인가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그는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결국, 이렇게 두 천사는 엇갈리고, 다미엘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카시엘은 천사로 남게 된다.이 두 천사의 선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는 명쾌한 답을 주지도 않고, 명쾌한 해피엔딩도 아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다미엘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영화는 딱 부러지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곱씹어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