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개론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보는 학문적 근거와,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교수-학습적 전략자기주도 학습은 1960년대 Bandura의 자기 통제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어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 정의되어왔다. 여러 학자들은 자기주도 학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자신의 학습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목표를 설정하 여 효율적 학습전략을 사용, 학습결과를 스스로 평가해 나가는 과정(Knowles, 1972)▶학업성취를 위해 학습자 스스로가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하고 체계적으로 점검하는 적 극적 학습활동.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실행한 후, 자기강화를 도모하여 결과에 대한 자기평가 및 학업성취를 이루는 과정(Bandura, 1986; Zimmerman & Schunk, 1989; Ashman & Conway, 1997).▶학교에서의 학업성취에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Pintrich, Ke Groor, 1990).1. 학생의 인지를 계획 점검 그리고 조절하기위한 상위 인지적 전력2. 과제에 대한 학생의 노력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요인3. 학습자가 학습하고 기억하며,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전략요인▶학습자가 다른 사람의 지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통제, 관리에 의하여 학습에 임 하는 일련의 초인지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과정(Long, 1992).▶내적인 책임, 외적인 통제 그리고 과제에 대한 동기 등 세 가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Garrison, 1997).▶학습자가 자신의 학습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초인지적, 동기적, 행동적으로 자신의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Zimmerman, 2000).▶학습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지식, 기술 향상 및 성취감, 개인적 발달을 이루는 것 (Gibbons, 2002).간단히 말해 자기주도 학습이란, 학습을 함에 있어 그 계획에서부터 실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스스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학습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이러한 자기주도 학습을 가능하다고 보는 데에는 몇 가지 가정이 선행된다. 먼저, 인간 성숙의 본질적 요소로서, 학습자가 자기주도적이 되기 위한 능력, 혹은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둘째로는, 학습자들의 다양한 경험이 다른 전문적 지식 자원들과 더불어 학습의 풍부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세 번째, 각 개인 마다 서로 다른 학습준비도 유형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각자가 직면한 생활과업을 수행하거나 생활상의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학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넷째로, 학습자가 과업중심적(task-centered), 문제 중심적(problem centered)이라 보고, 학습경험이 과업 수행(task-accomplishing) 내지는 문제해결 학습과제(problem solving learning project)로서 조직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마지막으로, 학습자는 자존(self-esteem)에 대한 욕구, 성취에 대한 갈망, 성장에 대한 충동, 성취에 대한 만족, 호기심과 같은 내적 자극(internal incentive)에 의해 동기부여 받는다고 가정한다.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주도 학습은 목표지향성과 자기효능감, 학습동기이론 등으로 뒷받침 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자기주도 학습전략과 함께 자기주도 학습의 구성요소가 되는 개념들이기도 하다.먼저, 목표지향성이란 학습자가 학습상황에 따라 특정한 성취목표를 지향함을 의미(Elliot & Dweck, 1988; Nicholls, Patrashnick & Nolen, 1985) 하는 것으로, 이러한 성취목표가 그 목표를 성취해 가는 과정에 관련된 제반 활동들을 이해하고 접근, 반응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자기효능감은 구체적인 학습상황이 요구하는 행동들을 조직하고 수행하는 학습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 기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행동의 선택과 노력의 양, 지속의 정도, 성취도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Bandura, 1986).동기는 Hayamiju(1997)에 의해 내재적 동기, 외재적 동기, 내사적 동기, 동일시적 동기로 구분되었는데, 내재적 동기와 동일시적 동기가 자기주도 학습에서 말하는 동기에 비교적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상이나 타인의 기대를 의미하는 외재적, 내사적 동기와는 달리 내재적 동기는 개인의 흥미, 즐거움, 관심을 의미한다. 학습에 대해 내재적으로 동기화 된 경우, 과업 자체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외재적 보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에 참여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동일시적 동기는 좋은 직업이나 진학 등과 같이 자신이 원하는 이유를 위해 학습을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결정이 비교적 강하게 작용하며 수행과정에 자기조절과 통제가 강하게 작용될 수 있게 한다.이와 같은 가정 및 이론들로 볼 때, 자기주도 학습의 실행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뒷받침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이상적이고 성공적으로 실행하느냐에 있다. 자기주도 학습을 목표로 했던 7차 교육과정이 이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교육 방식에 대한 반성과, 자기주도 학습과 기존 교육과의 차이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소 보완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교육학에서, 진보주의자들은 기존의 교사, 교과 중심이 아닌 아동의 흥미와 필요를 교육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들은 교사의 역할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아동이 모든 교육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자기주도 학습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역할성에 대한 인식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수능형 교과와 그것을 주입하는 교사의 역할에 변화가 필요하다. 학생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찾도록 하고, 원하는 지식 및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공간적, 재정적, 기능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학교와 교사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한 학습이니만큼 내재적 동기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충분한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자기주도 학습을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독후감책 : 에밀 - 장 자크 루소제목 : 모순과 공감맨 처음 ‘에밀’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책 제목이 아닌 저자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루소와 그의 저서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면, ‘에밀’이라는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 ‘에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목만으로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에밀’은 루소의 교육관 및 정치관을 전반적으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루소는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을 가상의 인물인 ‘에밀’이라는 학생에게 적용하여, 다양한 상황에서 ‘에밀’이 보이게 될 행동과 그 원인, 그리고 교육이 ‘에밀’에게 미치게 될 영향 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이러한 구체성은 ‘에밀’이라고 하는 인물을 구상하는 데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루소는 ‘온대 기후에서 생활하며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평범하고 건강한 프랑스인 아이’를 가장 이상적인 학생, ‘에밀’로 구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법 하다고 여겨질 만한 기후나 인종까지, 그는 나름의 이유를 들어 학생 선택의 요건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정 지역이나 인종에 대해 그들이 선천적으로 다른 지역, 인종에 비해 우월한 것처럼 이야기한 부분들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루소의 논리에는 그 나름의 원칙이 담겨있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다소 긴장된 상태로 책을 읽지 않으면, 어느새 루소의 논리에 동화되어 그의 생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상태가 되곤 하였다.그는 ‘가난한 사람은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라고하며 부유한 집안의 ‘에밀’을 학생으로 선택했다. 이 구절은 순간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교사가 학생의 조건을 일일이 따져 학생을 선택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으며, 재산의 정도가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루소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바로 다음 구절이 이러한 나의 잘못된 오해를 해소시키고,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가난이라는 상태 자체가 그를 교육시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상황이 학습자에게 주는 교육적 영향에 비해 부자가 행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며,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보다는 부유한 학생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는 학생은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 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루소가 학습자가 처해있는 환경의 영향력을 매우 크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교육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건들이, 학습자에게는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써 작용하여, 단순히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교육으로써 학습자에게 작용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루소가 말하는 학생 선택은, 조건을 따져 자신에게 이가 되는 학생만을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말로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누구인지 교사로서 고민하는 과정이었으리라 본다. 누구에게 더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루소의 생각에까지 100%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교사로서 이러한 과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있어서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분위기의 문장이 나로 하여금 강한 비판과 다양한 생각을 하게했고, 바로 뒤에서는 나름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강한 주장을 나타나 그것을 수긍하게끔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교육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여야만 했던 것이 작은 이유였고, 바로 뒤에 등장하는 긍정적인 주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 큰 이유였다. 책을 통해 루소라는 선생님에게 교육학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는 듯 한 기분이다.이처럼 학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그 환경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고려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루소는 환경의 영향력을 강하게 평가했으며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본인의 개인적 상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루소는 ‘에밀’에게 부정적인 외부 환경 요소가 최소한으로 작용하길 바랐다. 오직 한명의 교사 밑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성장하길 원했고 그 과정에서 교사는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정원사’의 역할에 머물러야 함을 이야기 했다. 이러한 교사의 역할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중요하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었다. 어른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고 오로지 감각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아기이지만, 그러한 감각에 주어지는 영향들이 아기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아기와 유모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고 그럴듯하여, 후에 육아를 하는데 참고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루소는 아기를 싸매놓는 배내옷부터 지적했다. 배내옷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모의 편의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했다. 팔다리가 꽁꽁 묶여 있는 아기의 마음이 어떨까…. 오늘날 교육 현실과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과외, 학원과 같은 곳에 아이를 귀속시킨다. 아이를 위한 투자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어쩌면 맞벌이로 정신없는 자신들이 아이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아이를 조기교육이라는 배내옷으로 감싸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휴대폰을 걸어주고 수시로 아이의 위치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그 때문인지 요즘 아이들은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요’라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꺼린다. 부모님들에게는 더없이 착한 아이겠지만 그런 아이가 성장해서 어떤 성인이 될지는 심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에밀’의 몸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이리저리 풀어놓고 얼음물에 아기의 몸을 담그라고 하는 루소의 극단적인 예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위와 같은 오늘날 교육의 모습을 보면 ‘자연에 맡기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에밀’에 담긴 루소의 생각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책의 곳곳에 이해하기 힘든 모순점들이 여럿 있었다. 루소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학자,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도 루소 이론의 이러한 모순점들은 계속해서 화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점은 통제라고 하는 것(환경격리)도 하나의 간섭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문명의 지배나 간섭 등을 최소화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를 위해 아이에게 처방하게 되는 격리나 차단 역시 또 하나의 지배, 간섭이 될 수 있다. 사회와 문명을 악으로 규정하고 아이를 그로부터 완전히 차단한 뒤, 교사가 선한 것, 좋은 것으로 규정한 것만을 가르치는 것은 완전한 교육이라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교사 역시 사회와 문명의 일원으로서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할 터인데, 한 사람이 규정한 것만을 배워나가는 것은 루소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한 가지 더 의아한 점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루소가, 교사의 역할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중요함을 이야기 했다는 점이었다. 아이 혹은 학생과 절대 떨어지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자연스럽다고 하는 말과는 너무 다른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 아이가 통제를 겪지 않고 최대한 스스로의 감각을 통해 경험을 하고, 그 안에서 배움을 얻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과는 너무 상이하여 어떤 것이 진정한 루소의 교육론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1. 염색체 ⅱ. 자손은 왜 부모와 닮을까 ? 고등학교 생물 2- Ⅲ. 생물의 연속성전 유염색체 : 유전정보를 포함 염색 분체 상염색체 : 암수 공통 성염색체 : 성을 결정 상동염색체 : 엄마꺼 , 아빠꺼 염색 분체오 . 늘 . 은 . 유전자 – 형질 유전자 – 염색체 연관 연관군유전자는 ? 생물의 형질 을 결정하는 요인형질 ?염색체 염색 분체 염색 분체 세포 분열 中연관같은 염색체 상에 있는 유전자들끼리 세포 분열시 행동을 같이하는 것 연관 ?YyWw YyWw yyww yyww 9 : 3 : 3 : 1 멘델의 독립의 법칙 * 노랑 몸 - 하얀 눈 * 검은 몸 - 붉은 눈 왜 없을까 ???YyWw YyWw yyww yyww W Y w y 모양 색연관 같은 염색체 상에 있는 유전자들끼리 세포 분열시 행동을 같이하는 것 연관군 한 염색체에 연관되어있는 유전자 군 눈 몸정리 유전자 연관 , 연관군 염색체정리 사람의 체세포 염색체 수는 2n=46 이다 .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에 있어 유전자의 “ 연관군 ” 은 몇 개이겠는가 ?과제 X, Y 성염색체 상의 유전자로 인해 나타나는 유전병의 특징 대해 조사Bye~{nameOfApplication=Show}
단원명: [고등학교 3학년 생물2] Ⅰ.염색체 - 2.자손은 왜 부모를 닮을까?단원 설정 이유: 1. 생물을 배우지 않는 타과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한 주제가 유전인 것 같아서 선택.2. 지난 생물 수업과의 연계도 고려하여 관련 주제를 선택함.단원목표: 1. 세포 주기와 세포 분열을 염색체의 행동과 연계시켜 알 수 있다.2. 연관과 교차를 바탕으로 염색체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3. 핵산의 구성 성분과 DNA의 구조 및 복제 과정을 알 수 있다.4. 유전 정보의 저장과 발현 및 그 조절을 알 수 있다.5. 생명의 기원을 바탕으로 생물 진화의 여러 증거를 조사하여 설명할 수 있다.6. 진화 괒어에 대한 여러 학설을 알 수 있다.단원 지도계획:차시학습내용학습자료비고1염색체ppt2체세포분열ppt, 체세포 분열 동영상3생식세포분열ppt, 생식세포 분열 동영상4연관과 교차ppt본시본시 학습지도 목표: 1. 연관과 교차에 대해 안다.2. 연관과 교차를 바탕으로 염색체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본시 학습지도 계획:단계교수학습 활동시간자료 및 유의점도입▶가벼운 인사로 수업 시작.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함.▶‘제시카-크리스탈’, ‘산다라박-천둥’ 연예인 형제자매 사진을 보여주며 우월한 유전자 농담을 던짐. 유전이라는 주제로 내용 이끌어감.▶지난 수업에서 배운 내용 복습- 염색체가 무엇인지, 그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이야기(염색체 구조 이미지 첨부)▶오늘 배울 내용을 키워드를 이용하여 간단히 정리(학습목표를 이 안에 포함시켜 이야기)
교육철학영화 ‘굿 윌 헌팅’ 감상 후기영화 ‘굿 윌 헌팅’을 보고 두 교수의 교육철학적 입장을 분석함과 동시에 본인은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밖의 교육적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다룰 것‘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이다. 교육철학은 이 질문을 바탕으로 교육 전반에 대해서는 물론, 그 교육을 이루는 학생, 교사, 학교, 교과와 그 밖에 다양한 요소들, 그리고 그 요소들 간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한다. 이번에 교생실습을 나가게 된 나에게는 그 중에서도 특히 ‘교사’의 의미에 대한 것이 가장 와닿는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진정한 교사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내가 본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에는 바로 그 교사에 대한 고찰이 잘 담겨있다. 교사의 역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윌 헌팅이라는 학생과 두 명의 교수 사이의 관계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 영화가 ‘교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안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동안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려는 고민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한 대학의 평범한 청소부로 일하던 윌은 어느 날 램보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과제로 내준 수학 문제를 풀게 된다. 그 과제는 세계에서도 몇 명밖에 풀 수 없었던 증명 문제였지만 윌은 너무나도 쉽게 그 문제의 답을 적어 내려간다. 이러한 윌의 천재성을 발견한 램보 교수는 윌을 자신의 곁에 두고, 보다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한다. 덕분에 윌은 감옥에 갈 위기도 넘기고, 보다 나은 직장과 쾌적한 삶을 얻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된다.하지만 윌은 그러한 기회들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주위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어릴 적 고아로 자라고, 알코올 중독자인 양부에게 학대를 당했던 기억이 윌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램보 교수는 이러한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정신치료를 부탁하지만, 모두 윌의 천재성에 모욕만 당하고내린다.적어놓고 보니 굉장히 간단한 내용 같지만, 실제 2시간이라는 영화 안에서 윌과 램보 교수, 션 교수 세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갈등들이 오고간다.특히 램보 교수와 션 교수 사이의 갈등은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이들의 견해 차이는 윌과의 만남 이전부터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것 같다. 램보 교수는 재능을 가진 학생이 그 재능을 썩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는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학생이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잠재력을 이끌어 내어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게 당장은 학생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길로 학생을 이끄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청소부이던 윌의 재능을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윌을 데려다가 더 어려운 문제들을 경험하게 하고 기업의 면접 자리까지 알아봐주면서 그의 앞길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윌이 자신이 만들어 준 길을 걸으려 하지 않자, 그를 더욱 압박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가 말하는 올바른 선택은 곧 교사인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이다. 윌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반면 션 교수는 이러한 램보 교수에 대해 압박, 간섭이라는 평을 내린다. 윌을 더 이상 압박 하지 말라며, 윌이 마음을 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함을 주장한다. 션 교수 역시 램보 교수와 마찬가지로 윌의 재능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는 있다. 다만, 그러한 재능을 사용하고 안하고는 교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닌, 결국 학생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 션 교수의 방침이었다. 램보 교수처럼 어려운 문제들과 좋은 직장을 윌에게 직접 가져다 주는 대신, ‘네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거듭 던진다. 학생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치기’여서가 아니라, 윌의 대답이 정말로 윌 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윌의 대답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을 피하고 답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뿐, 진실된 대답이 아니었다. 션 교수는 그러한 윌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램보 교수는 학생의 지도자, 션 교수는 학생의 안내자로 교사의 역할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윌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시켜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램보 교수는 그것을 지나쳐 윌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신의 선택을 그에게 강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강요는 윌에게 효과가 없었다. 만약 윌이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션 교수가 예로 들었던 테러범의 예처럼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션 교수는 윌이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했다. 윌이 세상의 많은 지식을 통달하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션 교수는 윌에게 이러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만약 션 교수가 아니었다면 윌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자신의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채로 말이다.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교사는 그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잠재력을 깨우쳐주기 이전에, 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의지는 무시한 채 그 능력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를 만드는 것이지,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학생의 잠재력 발굴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램보 교수가 윌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청소부로 살게 철학은 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차이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램보 교수는 윌을 ‘우수한 학생’으로만 보았을 뿐 한 명의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램보 교수와 윌이 칠판에 함께 수학 문제를 풀며 웃고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보고 그 둘의 관계가 괜찮은 사제 관계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램보 교수가 윌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장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수학 문제에 대한 것, 진로에 대한 것만 이야기 했을 뿐 자라온 환경이나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대화하지 않았다. 윌의 마음이 굳게 닫혀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램보 교수는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윌의 행동을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해결을 맡겼다. 스스로 윌의 마음을 열어보려고는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은 공통된 지식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는 두 지식인이었을 뿐 친구는 아니었다.반면, 션 교수는 지식적인 것들 보다는 윌의 상황이나 감정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생이기 이전에 한명의 인간으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의 관계를 맺고자 한 것이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학생의 인성과 정신적 성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사라 할 수 있다. 윌을 바꾸어 놓은 션 교수의 모습처럼 말이다. 나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램보 교수처럼 ‘가르치는 사람 vs 배우는 사람’의 상하관계로 학생에게 다가간다면 그 관계 그대로 지식을 주고 받는 관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션 교수 그리했던 것처럼, ‘인간 vs 인간’이라고 하는 수평의 관계에서 학생에게 다가간다면, 인간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의 수만큼 학생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다.인간으로서 학생을 대한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학생의 상황과 감정들을 알 던지곤 했다. 이처럼 션 교수가 대답만 하는 식의 대화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태도에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션 교수는 사적인 질문에까지 꿋꿋이 정성껏 대답을 한다. 때로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여기서 내가 본 것은 윌에 대한 션 교수의 믿음이었다.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리라는 강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윌은 자신을 기다려 준 션 교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램보 교수와 그가 부른 전문가들은 이루어내지 못한 일이었다.실제 교사에게도 이와 같이 신뢰를 가지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학생을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의 시작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학생이 무언가 부족할 수도 있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일삼을 수도 있다. 그러한 학생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학생도 교사에게 믿음을 가지고 다가오게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램보 교수와 션 교수는 학생의 행복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 램보 교수는 부와 명성을, 션 교수는 개인의 의지를 행복으로 규정했다. 단순히 두 교수의 인생관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차이는 졸업을 앞둔 나 자신에게도 큰 의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미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때문에 교사는 학생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원하는 것,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알아야 그것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먼저 램보 교수는 윌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를 통해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이 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램보 교수의 ‘교사로서의 역할’이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