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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 속의 한시, 여류시편 중심
    생활 속의 한시-----------------여류시편 중심으로들어가며한시의 아름다움-임을 그리며-벽지의 쓸쓸함-사랑이야기나오며들어가며현대인들이 한시를 접하는 일은 드물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서구 문예에 더욱 친숙하며 우리 전통의 꽃과 같은 한시를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바쁜 삶을 잠시 뒤로하고 마음을 열어 한시를 들여다보면, 한시가 요즘의 시와 전혀 다르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시와 한시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바로 형식에 있다. 한시는 5·7언 절구나 율시로 글자 수를 맞추어야하는 제한이 있다. 또한 그 압운의 절묘성과 평측 구분에서, 시를 짓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시는 함축성이 현대시보다 더 뛰어나며, 시구는 때때로 모호하다. 따라서 한시를 읽을 때 독자의 많은 고민을 요구한다. 이는 바꾸어서 말하면, 작가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갔을 때 얻게 되는 쾌락이 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본문은 우리 조상의 한시 중 당시 생활을 밀접하게 반영하는 시, 또 여류시 6수를 골라서, 한시의 함축성, 모호성 그리고 시대상을 보여주고자 한다.임을 그리며낭군에게 전해 묻노니올해는 돌아 오실지요?강가에 봄풀 푸를 때첩의 애간장 끊어진답니다.임이 수레바퀴라면이 몸은 길의 먼지.가까이 오셨다 곧 멀어지니바라만 볼 뿐 친할 순 없군요.??曲 成侃爲報郎君到 今年歸不歸江頭春草綠 是妾斷腸時郎如車下穀 妾似路中塵相近仍相遠 看看不得親이 시는 成侃이 《眞逸遺稿》에 로 실린 12수 중 첫째, 넷째 수이다. 成侃은 조선 초기 擬古詩를 잘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이 시는 그의 擬古樂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첫째 시는 仄起式이며 마지막의 “歸”와 “時”가 압운을 이룬다. 두 번째 시는 平起式이며 “塵”과 “親”이 압운을 이룬다. 이 시는 여인이 낭군을 기다리는 간절한 내용이 닮긴 시이다. 현대사회와 달리 통신수단이 열악했을 당시에, 여인이 낭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20글자로 함축해서 한 시를 짓고, 그 속에 모든 마음이 담겨져 있는 시는 과연 아름답다. 처의 애절한 마음은 현대 사회에서 보고 싶고 궁금하면 바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21세기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벽지의 쓸쓸함가난한 집 처녀외진 땅이라 사람 오는 일 적고,산이 깊어서 속사가 드물다.집이 가난해 구기의 술도 없으니잘 손(중매)이 밤에 그냥 돌아간다.貧女吟 金林碧堂僻地人來少 山深俗事稀家貧無斗酒 宿客夜還歸이 시는 가난한 처녀가 외진 곳에서 느꼈을 외로움을 묘사했다. 이 시를 『한국 산시선』에 수록한 역자는 마지막 구에 나온 숙객을 중매로 번역하였으나 이는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시에서는 중매라는 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역자가 생각했을 때 깊은 산에 찾아오는 중매쟁이가 없어서 처녀가 쓸쓸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꼭 중매쟁이가 아니더라도 벽지에서 결혼잔치나 행사 등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가난하기 때문에 찾는 이가 없다고 보인다. 직접적으로 “貧”자를 시에 넣어 가난함을 보여줬는데, “稀”자와 “無”자에서도 쓸쓸한 여운이 짙게 나타난다. 우리사회에서도 산간도서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고독을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도시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만큼의 문화생활을 못 누리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본 시가 더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 이유이다.고향에 돌아와마을은 쓸쓸하고 사람들은 많이 바뀌고담장은 기울고 집은 무너지며 풀은 반은 거칠어진다.오직 문 앞에 돌샘물이 있어의연해 옛날의 달과 시원함이 바뀌지 않았다.初歸故園 崔惟淸里閭蕭索人多換墻屋傾頹草半荒唯有門前石井水依然不改舊甘凉이 시도 위의 《貧女吟》와 같이 시골의 쓸쓸함을 묘사한다. 대표적으로 “蕭索”, “傾頹”, “荒”에서 피폐해진 고향모습이 나타나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들은 다 바뀌어 있고 집은 황폐해있다. 세월의 흔적이다. 오로지 변하지 않은 것은 시인과 시인의 집 앞에 있는 우물인데, 그 우물 또한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느낌을 준다. 시인이 우물 앞에 앉아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마 고향이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은 이따금씩 고향에 내려가면 같은 생각을 한번쯤 했을 것이다. 옛 벗은 다 뿔뿔이 흩어져 고향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발전이 없는 동네는 대도시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 때 밀려오는 쓸쓸함은 이 시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란 바로 이러한 “공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사랑이야기왈가닥 처녀연잎은 제멋대로고 연밥은 많은데연꽃 서로 사이에서 여랑이 노래를 부르더니다음에는 횡당입구에서 짝하자고 약속한지라힘들게 배를 움직여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次大同江韻 李達蓮葉參差蓮子多蓮花相間女郞歌來時約伴橫堂口辛苦移舟逆上波여랑이 사랑을 따라 힘겹게 배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이야기이다. 이 당시에는 여자가 연꽃 밭에서 공개적으로 노래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여랑은 사랑하는 자와 약속한 장소로 가기 위해서 물결을 거슬러 가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여자는 현대적 시각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대장부처럼 다가가는 사람을 현대사회의 신여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역자는 “次大同江韻”이라는 대동강의 운을 빌리다라는 뜻의 딱딱한 제목을 “왈가닥 처녀”로 번역한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여성상이 얼마큼 허용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당시 여성은 조신하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이와 같은 여자도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그네를 뛰다가잘못하여 머리의 금비녀를 떨어뜨렸는데유랑이 주워 웃으며 서로에게 자랑한다.부끄러움 머금고 유랑의 사는 곳을 은근히 물었더니푸른 버들이 발처럼 늘어진 곳의 몇째 집이라 했다.?韆曲 林悌誤落云?金鳳釵遊郞拾取笑相誇含羞暗問郞居住
    인문/어학| 2015.01.27| 4페이지| 1,0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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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시의 아름다움, 이옥의 시 중심
    한시의 아름다움----------------- 이옥의 시 중심으로들어가며한시의 아름다움-조선 시-사회상 반영-사랑이야기나오며참고문헌이옥은 주관적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조선시대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적 성향이 稗史小品體였다는 이유로 과거에 나아갈 수 없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시인들은 문체를 바꾸려고 시도하였으나 이옥은 끝까지 자신의 문체를 고집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만이 남성이 출세하는 유일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이옥은 자신의 문체 때문에 끝까지 과거에 급제할 수 없었다. 의지를 굽히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이루어 왔기에 후세에 결국 한국 한시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다.이옥의 한시는 전통적인 한시의 5언의 형식은 지키면서, 俚語를 통해 딱딱하지 않게 조선시대 한양에 사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옥은 여성의 입장에서 사회를 보여주었는데, 그 내용으로 간주했을 때, 어쩌면 단지 그들의 삶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과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옥의 시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했기에 참된 시라고 부를 수 있으며, 민요적 성격을 보이고,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묘사했다는 세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첫째, 조선 시이옥의 시는 조선 시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한자를 빌어서 글을 적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과거라는 제도를 통해 관리가 되려면 한시를 지을 줄 알아야했고, 당시 남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따라서 중국 문학이 후에 시를 짓거나 문서를 작성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또 그 때 사람들은 중국 서적을 읽기도 했는데, 이 때 들어온 당풍, 송풍 시는 조선에서 큰 유행을 이룬 적이 있으며 많은 조선 시인이 이런 양식을 흉내 내어 시를 지었다. 그러나 이옥의 시는 당시 사람들의 시와 다르다. 그는 ‘현재 조선 사람들이 쓰는 말’이었던 俚語를 자신의 글이었던 한자로 표현하였다. 이옥은 이어가 더 시대상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언어라고 생각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옥이 하려고 한 당대의 문학은 필요한 경우 속담, 민요, 방언 등의 사용을 금하지 않았다. 본 시집에는 민요뿐만 아니라 차자표기법도 많이 쓰였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 “謂君似羅海”가 있다. 본 문의 似羅海는 사나이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한자의 뜻으로 보자면 ‘마치 넓은 바다’와 같아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설명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뒤의 내용 “女子是託身”으로 미루어 보아 “사나해”, 즉 사나이로 음차해서 해석하는 것이 더 문맥과 잘 어울린다. 또 탕조에 나오는 시 가운데 “新着加里麻”의 가리마도 머리 위에 덮어쓰는 천인데, 우리말을 한자의 음을 빌어서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옥은 당시 사람들의 생동적인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정겨운 소재와 단어를 통해서 보여주었다.둘째, 사회상 반영이옥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개성 있고 재치 있게 묘사했다. 이옥은 한양의 네 가지 다른 배경 속 여성의 이야기를 , , , 로 나누어서 묘사했다. 다른 부분에 등장하는 여성은 각각 사대부 집안의 여인, 중인 집안의 여인, 기생, 여염집 여인이다. 다른 신분을 가진 여인은 각자 다른 문장으로 묘사되어있다. 사대부 집안의 여인은 시댁의 이야기와 친정을 그리워하며 절제된 마음이 주가 된다. 그들은 조신하게 을 읽고 계집종도 거느리고 있다. 또 시에서는 옥동자, 옥비녀, 풀빛 비단 상사단과 같은 사치스러운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이에 비해 중인 집안의 여인을 묘사한 에는 상당히 직접적인 표현이 나온다. 자신이 입은 치마, 연화봉 무늬 수놓은 치마, 봉선화 손톱 등과 같은 소재가 등장하며, 사대부의 아내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로운 삶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설적인 정도는 에 못 미친다. 에서는 기생집에 다녀온 남편, 가난한 삶 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에는 방탕한 생활을 원망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아전, 군졸, 역관, 난봉꾼 등등의 아내가 힘들고 외롭다는 모습을 원망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이옥이 당시 다른 배경 속 여성의 삶을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마음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군졸, 역관의 아내들은 홀로 집에 앉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간혹 집에 돌아왔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 짧고, 심지어 기생집에 드나드는 남편도 있었다. 그녀들은 마음속에 한이 맺혔을 것이고, 이옥은 이러한 점을 잘 포착하여 시를 지었다.셋째, 사랑 이야기이옥은 시를 작가가 짓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에 의해서 자연히 지어질 뿐이라 하여, 시가 자연발생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작자는 천지만물의 性, 象, 色, 聲에 의해서 감동된 바를 그대로 쓰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왜 이옥에 시 속에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담긴지 알 수 있다. 이옥의 시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내용이 많은데, 이 사랑이 바로 천지만물의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또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또 그리움, 질투, 원망, 원한도 포함된 것이다. 그리워서 언제 만나나하고 기다리는 아내, 옥비녀를 훔쳐간 남편에 대한 질투, 달이 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남편에게 맞아서 시아버지에게 둘러댈 핑계를 찾고 있는 아내 등 다양한 형태의 감정으로서 시속에 나타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어도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는 변하지 않았기에, 21세기의 독자를 이런 내용을 통해 옛 시인과 소통할 수 있게 한다.나오며이옥의 시는 이어를 넣은 한시이다. 이 시들을 중국 시와 비교했을 때 문장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우며, 시 속에는 한자에서 음을 빌어 사용된 단어가 등장한다. 따라서 이옥의 시는 “조선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소재와 내용은 다른 배경 속 여인의 삶을 네 개의 調를 통해서 묘사했으며,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사랑 이야기들을 통해 표출했다. 이와 같이 우리 문화와 더 밀접 되어 있는 소재와 언어의 사용이 중국 시와는 구별되는 점이며, 여기서 바로 한국 한시의 아름다움이 완성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더 많은 한시의 해석을 통해 한국 문학의 미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참고문헌이옥, 『문무자 이옥 시집』, 허경진 옮김, 평민사,
    인문/어학| 2015.01.27| 3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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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재기이』 독후감
    『추재기이』 독후감『추재기이』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한양의 신분이 낮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던 이야기들만을 모아 놓은 책인데, 이것을 현대 사회에 비추어보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 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추재기이』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신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고, 내용의 주제 또한 일상생활에서 따왔으며 그 사람들의 심리묘사도 다루고 있다. 이는 현대판 다큐멘터리와 유사성을 지닌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점입가경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흥미로운 주제 외에도 칠언시를 풀이해놓은 해석이 현대 독자도 읽기가 편한 문체로 적혀있는 점과, 각 이야기 끝에 첨부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연 설명이 없었다면 일반 독자들은 친근하게 다가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본 독후감은 『추재기이』 중 독자의 흥미를 유발했던 각 요소들을 정리하여 나름대로의 감상을 적어보도록 한다.첫째, 이야기의 신빙성이다. 사람들은 기이한 이야기에 귀 기우리려 한다. 그러나 기이함만을 내세워 허구를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더욱 즐겁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의 신화적 요소가 필요하지만 보다 신빙성 있는 현실 요소를 넣어야한다. 『추재기이』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아우르고 있다.본문에는 항상 등장인물이 “어디 사람이다”라는 구문이 거의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등장한다. 책 속에 등장한 유생은 남양 사람이고, 소금장수 거사는 호남 사람, 밭을 개간한 종은 덕천 사람이다. 이와 같이 정확한 지명을 제시하거나, 출신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사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따라서 필자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출생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고 추측해보았다. 또한 이처럼 출생지의 제시는 이야기의 신빙성 장치를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출생지를 통해 어느 곳에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라고 여기게 되며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밤마을 김 아무개”라는 제목과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는 “간 곳을 모른다.”, “물고기가 되었다”로 끝나 신비감과 여운을 남겨주고 끝나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둘째, 이야기의 내용이다. 『추재기이』의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삶을 반영했다. 그 시대에는 장애인이 기이한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보았다. 본문에는 많은 장애인이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절름발이”, “벙어리” 등 단어를 언급해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손가락이 모두 붙어 걸을 수가 없다” 또는 “다리 하나를 절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기이하다고 언급하면 많은 인권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지만 당시에는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추재기이』의 주제 중 가난, 권선징악, 공부, 술 등이 자주 출현한다. 가난하지만 책을 소중히 여겨 끝내 팔지는 않았다거나,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술을 사마셨다, 또는 어느 부인이 효부, 열부라서 살인을 해도 살려두었다 등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는 스토리 외에도 주변 배경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원숭이 구경시키는 사람, 해금을 키면서 쌀을 구걸하는 사람, 담뱃가게 전기수 등 직업의 묘사는 그 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직종을 현대 사회와 비교해 볼 수는 있다. 원숭이 구경 시키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애견카페의 풍경과 비슷할 것이다. 강아지를 보여주고 강아지와 놀게 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현재도 존재한다. 또 해금을 키며 구걸하는 사람은 홍대 신촌 거리에 기타를 매고 팁을 받는 사람과 같다. 이런 길거리 공연 가수들은 가끔 캐스팅이 되어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한다. 또 담뱃가게 전기수는 거의 비슷한 업종이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인터넷 작가는 이들과 비슷한 일을 다른 공간에서 할 뿐이다. 인터넷의 게시판은 담뱃가게와 비슷한 공간을 이루고 전기수의 이야기는 인터넷 소설과 같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추재기이』의 또 다른 매력이다.셋째, 다른 가치관이다.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추재기이』 속 인물의 가치관은 다양하다. 돈을 추구해서 도둑질을 하기도 하고 스님의 시줏돈을 빼앗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물론 정 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인물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소나무를 사랑한 노인을 들 수 있다. 이 노인은 재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희귀한 소나무를 찾는 일을 좋아한다. 또 공공이라는 자는 일해서 번 돈 중 두 푼이 넘는 돈은 다 버렸다. 두 푼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살 수 있는 돈이기에 나머지 돈은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독후감/창작| 2015.01.27| 2페이지| 1,000원|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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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과 중국사회 한국교민 사이의 갈등 문제, 이중언어 중심
    조선족과 중국사회 한국교민 사이의 갈등 문제--이중언어 중심으로목차Ⅰ들어가며⑴조선족 이주배경⑵이중언어 사용자 인구분포 및 사용현황Ⅱ이중언어 사용자의 문제점과 구체적 예시⑴동업자 사기.⑵통역의 자의적 해석⑶그릇된 한국문화 전파⑷탈북자 고발자와 한인교회 집단 간의 갈등⑸해결방안Ⅲ나가며참고문헌Ⅰ들어가며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여겼다. 단지 우리 동포일 것이다, 조상은 한국인이라고 여기며 그들이 이룬 자치적 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1991년 한중수교가 맺어지고, 1998년 금융위기의 피해로 중국으로 이주하는 한국인이 대폭으로 상승하면서 조선족과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서로 “우리말”을 하는 “동포”로 생각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향수를 달래다가, 어떠한 이유로 차츰 한인과 마찰이 생기면서 이제는 심지어 한인사회에서는 “조선족 주의보”, “조선족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깊어졌다. 본문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배경과 원인을 역사 문화적 배경, 이중언어와 연관 지어 설명한 후, 해결방안을 제시하도록 한다.본론에 앞서, 용어상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본문에서의 “조선족”은 중국 동북지구에서 온 중국 국적 자에 국한해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하고 “조선 사람”, “조선인”은 국적이 불분명하거나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 1세대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한다. 또 조선족의 언어는 현대 한국어와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국어”라고 지칭한다. 마지막으로 “이중언어 사용자”는 언어 수준을 크게 고려하지 않으며, 수동적 능력, 즉 읽기와 듣기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까지도 포함한다.⑴조선족 이주배경먼저 조선족의 이중언어 사용이 시작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역사상 한반도에서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해 점차 형성된 민족이다. 전쟁, 굶주림, 봉건사회 폭정, 일본침략 등의 이유로 대량의 조선 사람이 중국 국경을 넘어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족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이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어(漢語) 및 한국어 이중언어 사용자의 수가 보존되고 있다.⑵이중언어 사용자 인구분포 및 사용현황조선족의 이중언어 사용과 인구분포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중국에는 대략 200만의 조선족이 있는데 대부분은 중국 동북 삼성, 즉 헤이룽장 성, 지린 성, 랴오닝 성에 거주하고 있다. 그 중 지린 성에는 62.5%, 헤이룽장 성 24.4%, 랴오닝 성 11.2%, 내몽고자치구 1%의 비율로 거주하고 있으며, 이외에는 베이징, 허베이, 톈진, 상하이 등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2000년도 이후에는 동북에 밀집되어 거주하던 조선족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타 지역 거주 비율이 거의 두 배로 올랐다고 한다.이들의 이중언어 구사능력은 천차만별이다. 보통 조선족 학교에서 초, 중등 교육을 받은 조선족을 이중언어 사용자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이들의 언어 실력을 살펴보면, 조선족 학교에서 초등학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이중언어 자의 한어 능력은 HSK(한어수평고시, 이하 생략) 4급으로 초급을 겨우 넘은 정도이며, 한국어 수준 역시 초등학교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실제로 연변 출신 변 모 (42세) 씨와 그의 전 부인 김희모 (3?세) 씨는 한어 또는 한국어 수준 모두가 초급 수준이라서 둘을 섞어서 사용하는 “제3의 언어”를 지어내서 쓰고 있었다.중등교육을 받은 이중언어자의 한어는 평균 HSK 6.5 급으로 중급 수준이며, 한국어 능력 또한 중등교육을 받은 정도로 구사한다. 대부분의 중국 사회에서 한인들과 접촉하며 근무하는 조선족들은 이 정도의 언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접촉면이 많이 생김에 따라 언어 실력이 향상되기도 한다.고등교육 이수자의 경우 한어 능력이 중고급 수준인 HSK 7~8급에 해당하며 한국어 또한 비슷하게 구사한다. 하지만 보통 한족 학교에서 중,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은 수동적 언어 사용능력만 갖추고 있을 뿐 말을 잘하지는 못한다. 또한, 이중언어 사용자에서 단일언어 사용자로 전환(shift)된 경우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 조선족은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체성 혼란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그들의 고충이 보인다. 현재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족과 지리적으로 섞여 살지만, 조선족들의 동질적 민족의식을 가지고 그들끼리 교류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한족과의 사회적인 접촉은 거의 없다. 반대로 한족들에게 조선족은 소수민족일 뿐이다. 즉 한족과의 동질성, 나아가서 중국인과의 동질성은 많이 느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한국어를 이용해 직업이나 고용에서 대부분 조선족은 조선족과 교류하거나 그곳에 와 있는 한국인들을 상대한다. 그리고 그들이 구사하는 한국어는 방언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대충 수긍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한 예시로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 여는 한국 식당을 들 수가 있다. 만약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된다면, 차라리 연변 요리라고 적어야 할 것을, 거의 모든 식당은 “조선 요리”가 아닌 “한국 요리”라고 간판에 붙여 놓는다.그렇다고 조선족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대부분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조선족”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인다. 그 이유는 조선족이라는 용어가 조선족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인들이 조선족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불법 근로자로 취업하고 있는 막노동꾼, 식당 아줌마를 연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을 “교포”라고 부르길 원한다. 조선족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조차도 인정하지 못하는 면에서 비추어 볼 때, 조선족의 자주적인 정체성이 있다고 표현할 수 없다.이제 조선족 반쪽언어 사용 문제와 정체성 문제가 중국사회의 한인들과 어떻게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되는지, 그 관계를 규정하도록 한다. 우선, 조선족과 한인들의 대표적 사회 갈등 네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⑴동업자 사기90년도 이후 한국 사람의 중국 이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주재원이나 공식적으로 취직한 것통 국장님 몫도 챙기고, 또 처리를 해주는 조선족에게도 조금씩 떼어줬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처리가 끝나면 새로운 마찰이 시작한다. 처음에는 감사 기간에만 사장 행세를 하던 조선족 직원이, 사장님이 없을 때마다 자신이 “라오반”(사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종업원들은 자연스럽게 사장이 두 명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인 “김 사장”, 조선족 “최 사장”으로 부른다. 시간이 흘러 사업도 자리가 잡히고, 한국 “김 사장”도 “경리”가 “최 사장”으로 불리는 게 익숙해질 때면, “최 사장”이 “김 사장”을 쫓아낸다. 이유인즉슨, 조선족 “최 사장” 이름으로 낸 가게이고, 모든 허가증이 다 자기 이름으로 돼 있으니 자기가 사장이라는 것이다. “김 사장”은 대처할 방법이 없다. 불법 체류자 신분, 한어도 유창하지 못할뿐더러 법적으로 “최 사장”을 고발해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뺏기는 한국인 “김 사장”은 중국에 너무나 많다. 그리고 사건이 소문을 타 조선족과의 분쟁이 심화한다.⑵통역의 자의적 해석앞서 소개했듯이 조선족 “경리”가 사업체에서 통역 일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통역은 두 언어의 처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가 들어가게 된다. 억양, 어투, 어휘, 감정, 심지어는 통역자의 이익까지도 관여될 수 있는데, 조선족 “경리” 통역의 한계점이 바로 이 이익이다. 여기서 한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 사장에게 조선족 통역은 그야말로 쥐약이 될 수가 있다. 통역이 잘 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을뿐더러, 그 통역 내용에 조선족의 의견이 개입되었거나,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내용도 있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예를 들면 경리의 불찰로 어떤 손님이 외상을 하게 되었는데, 사장이 지적하자 경리는 자신의 불찰이 탄로 날 까봐 “오전에 온 손님이 두고 간 물건이 있는데 어디다 둔 지 모르겠다.”는 횡설수설로 통역해버리는 경우이다.이보다 더 심할 때는 통역하면서 알게 된 사업정보를 제삼자에게 유출하는 경우이다. 한국인 사장들은 사업 계획을 경리와 한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또 조선족들의 음식은 현재 한국 음식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조선족이 한국 식당을 여는 것 자체가 음식 문화를 변질시킬 수 있다. 한류열풍이 불면서, 중국 청년들이 한국 식당을 가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들은 한국 식당에 오면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들, 즉 떡볶이, 김밥, 김치찌개 등을 주로 주문했다. 이때 우연히 조선족이 하는 “한국 요리” 집을 들어가면 이 메뉴들이 드라마 속 음식과 상이하게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윈난성 쿤밍시 소재 조선족이 운영하는 아모 식당에서는, 냉면에는 고춧가루가 들어 있었고, 김치찌개에 당근이 덩어리로 들어가 있고, 밑반찬으로 곁들여 나오는 콩나물 무침, 김치, 시금치 속에 모두 당근이 채친 채로 들어가 있었다. 나는 당근이 모든 음식에 섞여 나오는 점을 주의 깊게 보고, 한국에 있는 식당에서도 이를 관찰한 적이 있는데, 주방에서 조선족 한국어가 들리는 경우 식당 밑반찬에도 마찬가지로 당근이 섞여 있는 점을 알아냈다. 그래서 조선족 음식문화에서는 당근이 큰 비중을 차지하나라고 추측을 한 적도 있다. 이처럼 중국 청년들은 한국 요리와 다른 “조선 요리”를 먹고 정통 한국 음식점에 와서 맛이 다르다, 가짜 한국 요리라고 불평한 적도 있었다.90년대 후반에는 아예 한국 간식이라고 판매되는 불량식품도 있었는데, “한국 소 힘줄(牛板筋)”이라고 불리는 연변 생산의 정체불명의 질긴 ‘고기’는 중국식 고추기름과 한국에서 쓰이지 않는 조미료인 산초나무(花椒)를 섞은 식품으로 중국 방방곡곡에서 판매되다가, 2000년도 후반에는 불량식품으로 정해져서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한국 철판구이(韓國鐵板燒)가 있는데, 중국식 꼬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음식을 조선족이 팔다가, 정통 한국 음식점이 많이 생기면서 이 철판구이도 사라져 갔다.이렇게 변질한 한국문화가 조선족을 통해 중국인에게 전파되면서, 한인들이 타격을 받았었다. 한족이 오히려 조선족의 한국문화를 부으킨다.
    인문/어학| 2015.01.27| 11페이지| 2,500원| 조회(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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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조와 가사문학, 월인천강지곡 중심
    시조와 가사문학--------- 중심으로첫 만남주제 1.주제 2.시조와 가사문학주제 3.가야 역사주제 4.한국학이란 무엇인가헤어짐첫 만남2013년 11월 28일, 웨르너 삿세 교수의 특강을 들으러 조금 이른 시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파란 눈의 선비’라는 키워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학을 전공하신 독일 학자, 한국의 무용수와 결혼하시고 한옥에 사신다는 이런 분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교수님은 이미 도착하셔서 강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듣던 대로 매우 유쾌하신 분인 것 같아서 상기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강의는 네 가지의 큰 주제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세종대왕의 시 의 재해석, 시조와 가사문학, 가야 역사 그리고 한국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국문과 학생으로 알지 못했던, 솔직히 말하자면 어려워했던 시조문학을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니, 왜 기사에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운 분이라고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또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MS Powerpoint 문서에는 중세국어를 입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셨다. “중세국어도 우리말입니다.”라고 외치시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글과 문학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주셨는데, 매우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불거졌다. 집에 돌아와서 당장 확인을 해보고 해당 프로그램 기업에 적어도 이메일이라도 보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주제 1.먼저 첫 번째 주제인 을 요약해보겠다. 우리는 흔히 세종대왕하면 떠오르는 것이 훈민정음이다. 물론 이는 세종대왕의 중요한 업적이며 한글의 탄생한 엄청난 사건이긴 하지만, 그만큼 세종의 한글 외의 업적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여길 수 있다. 예전 사람들은 현재와 다르게 많은 분야의 전문가였다. 같은 사람이 사회운동가이며 국어학자고, 또 선생님이기도하며 교과서 편찬도 관여하는 것이 흔한 사회가 있었다. 세종대왕도 이처럼 여러 분야에 거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사람이었다. 그의 시인 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문학에 대한 식견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웨르너 삿세 교수는 이 작품을 서양식 분석방법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문법을 분석하며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시의 구조가 들어나고 또 이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따라서 문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본문을 바라보면,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다시 막과 장면으로 나뉠 수 있는 증거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막과 장면을 설명하면서 의 세련된 시다운 문체를 강조했다. 또한 구조와 상부구조가 명백하다고 하면서 그에 따른 특징을 제시했는데, 예를 들면 상대 높임 종격어미로 텍스트의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시오”, “니” 등의 종결어미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러한 종결어미에 따른 막과 장면의 나누어지는 방법은 에서 유일하게 나타난다고 했다.이러한 작품은 서양의 논리구조로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은 이러한 문학 작품이 한국 독특한 문학 구조라고 받아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 학문이 무조건적으로 규범시되어 한국문학을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의 작품이나 등은 병렬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분명한 서양식 기승전결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삼국유사』에 실린 작품들이 문학적으로 저평가 받지 않는 이유와 같다.본 주제의 끝부분에서 웨르너 삿세 교수는 중세국어를 읽을 때 문법 따라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한자 공부를 통한 원문 해독능력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주제 2.시조와 가사문학시조와 가사문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양반문화와 평민문화의 특징을 비교하였다. 먼저 양반문화는 기록문학이며 한문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시나 사서삼경, 그리고 중국문학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반대로 평민문학은 구비문학의 형태를 지니며 국어중심의 민요나 무가, 또는 민화 설화 그리고 수수께끼 형식을 지니는 특징이 있다.본 특강에서 다룬 시조는, 3.5.8 의 박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비율은 황금비율에 의한 박자 구분이라고 했다. 황금비율은 사람이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비율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모나리자 그림이나, 부처의 상, 그리고 현대 시대에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인의 얼굴의 비를 떠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조의 황금비율 박자는 노래의 심미성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3.5.8 구조가 반복되면서 간혹 긴 구가 나오면 다시 그 구를 황금비율로 잘라서 부르게 되므로, 시조를 듣고 있을 때는 항상 귀에 잘 들어오는 박자를 청취하게 된다.시조와 가사문학의 정결함과 아름다움을 언급하면서, 그 내용에 포함되어있는 요소들도 함께 제시되었다. 가사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풍수지리, 중국 민속, 그리고 유교, 불교, 도교가 모두 어우러져 나타난다고 했다.우리만의 멋스러움을 나타내는 시조인데 사실상 사람들에게는 난해한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은, 현재 시조의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학교 교과서를 찾아보면, 편의에 따라 시조를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경우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넣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꽃”이 상징하는 것, 혹은 “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에 바쁘다. 하지만 웨르너 삿세 교수는 한국 문학의 특징을 가리키며 이러한 학습방법은 과대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을 중국, 또는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특색은 바로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버리고, 시조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물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결코 그 시조가 본래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등져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한국의 문학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잘게 나누어서 분석하는 것보다 문학 작품을 통틀어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다.주제 3.가야 역사일반적으로 우리는 백제 신라 고구려의 역사를 삼국시대고 칭하고 가야연맹은 하나의 국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자료가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내용을 바탕으로 후세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의 대표 작품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배경으로 역사가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두 저서의 작가인 김부식과 일연(본명 김건명)은 모두 김 씨 집안의 역사이므로 신라에 편중된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본래 역사는 사람이 쓰는 것으로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두 사람모두 신라의 입장에서 기술하였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불교가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의 입장도 불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의 도입부분에서는 가야보다 신라가 불교를 먼저 받아 드렸다고 주장하다가 후반부에 가서는 가야에도 있었다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같다. 이렇게 가야의 역사를 왜곡하는 현상은 마치 일본이 한국 실민지 시대에 원래 한국이 일본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가야는 신라의 한 속국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연맹도 엄연히 하나의 국가라고 여기는 것이 옳다고 했다.한 나라의 정치제도 안에서 그 나라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사와, 외국인이 그 정치의식을 가지지 않고 바라보는 역사는 다르다고 했다. 곧이어 외국인이 먼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식한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 또한 그 나라에 대한 편견을 완벽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마치 그 나라에 도착해서 몇 명과 대화를 나누면 그 사람들을 통한 선입견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외국인이 생각하는 역사 또한 객관적일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결국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대한 먼 곳에서 그 역사를 바라보며, 가급적이면 객관적인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주제 4.한국학이란 무엇인가대학에서 한국학이 하나의 정규 전공인 곳은 많지 않다. 그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어나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전공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학과나 국어국문학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학을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사학과 국어국문학 외에도 민속학, 불교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이 결합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주장이 마치 탁상공론과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거의 보여주고 있지 않다. 아무도 한옥에 살지 않고, 한복을 입고 나오면 오히려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이며 오히려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서양 명절에 더 열광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이다.웨르네 삿세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지적하며 한국학에 대한 불안을 표시했다. 먼저 한국 사람이 한국학을 연구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실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돌려 말하자면 인문학을 비롯한 민속학 등의 연구는 취업시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인문학을 기피하고 있는 추세이다. 게다가 요새는 학생들의 한자 능력 또한 매우 부족하다. 최근 한 기사에서는, 대학생 상대로 자신의 이름, 부모님의 성함을 한자로 적어보라고 했을 때 부모님의 성함을 한문으로 정확하게 적은 학생이 거의 없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우선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어긋난 한자 교육은, 어느 시대에는 한자 교육을 시행하고 또 시대가 바뀌면서 순 한글 전용 교육정책으로 전환되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서양학문의 영입으로, 한자보다는 영어를 선호하는 현실도 논의할 수 있다.다른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국사 교육이다. 일단 사람들은 역사를 딱딱한 학문이라고 인식하면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게다가 본인이 대학 수능 시험을 보던 시기만 해도 특정한 대학교가 아니면 국사를 수학능력시험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갖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문 외에 국사 또한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학생에게 교육해야할 대상이다. 또 국사를 연구함에 있어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속학, 문학, 불교학, 사학, 그리고 사회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연구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인문/어학| 2015.01.27| 5페이지| 1,000원| 조회(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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