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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웨슬리의 생애에 대한 소개입니다. 평가A+최고예요
    존 웨슬리의 생애유윤종 목사(교단교육국장)Ⅰ. 들어가는 말존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알고 일평생 열정적인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뜨거운 성령 체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신앙운동을 펼쳤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철저한 소그룹사역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이웃과 사회를 향하여 복음전파 사역과 봉사 사역을 시행하였다. 그것이 영국교회와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오늘 우리에게 21세기를 새롭게 변화시킬 ‘존 웨슬리’가 필요하다.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갱신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존 웨슬리는 기독교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설교 하였으며, 이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새로운 신앙운동을 펼쳤다. 그는 치밀하다 싶을 정도의 시간 관리와 조직관리, 그리고 철저한 훈련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였고, 이들을 소그룹 안에서 한층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 설 수 있도록 도왔으며, 또한 과감히 세상에 파송하였다. 본 글에서는 존 웨슬리가 펼친 교육과 소그룹 사역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한 책은 마이클 핸더슨의 『존 웨슬리의 소그룹 사역을 통한 제자 만들기』이다.Ⅱ. 교육훈련가로서의 존 웨슬리1. 비범한 시작존 웨슬리의 삶은 18세기 전반을 아우른다(1703-1791). 교육가로서의 웨슬리의 성공은 상당 부분 가정교육에 기인한다. 부모로부터 전수된 교육의 원칙들이 결국은 웨슬리의 교육철학의 기본 줄기가 되었다. 후일 존과 동생 찰스는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데 자신의 부모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상당 부분 도입했다.존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비국교도 사역자인 앤슬리 박사의 딸이었다. 수산나의 아버지는 런던의 저명한 목사이자 청교도 지도자 활동과 말, 심지어 생각과 동기까지도 잘 짜인 체계로 만들고자 했다. 또 자녀들에게 엄격한 시간 관리와 규칙적인 행동의 규범을 전수했다. 매일 9-12시, 2-5시까지는 쉬는 시간 없이 수업을 들었고, 6시에 가족이 모여 기도했고, 기도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했다. 7시에 하녀가 모든 아이들을 씻겨 8시면 모두 잠자리에 들게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에도 수산나는 ‘생활을 조직화’하라고 강력히 권면했다.이 놀라운 가정은 당시 영국의 가장 강력한 교육 사상의 흐름들을 한데 묶어 냈다. 어린 시절 존과 찰스 웨슬리가 흡수한 교육기법은 가난한 자들과 갇힌 자들, 소외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깨우치는 험난한 일을 감당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2. 안수와 정연한 삶웨슬리는 사립 기숙학교인 차터하우수와 옥스퍼드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1724년, 대학을 갓 졸업한 웨슬리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웨슬리의 아버지는 국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사제로 삶을 헌신하라고 아들을 독려했다. 존의 아버지 새뮤얼은 성직자에게 필요한 학문적 소양과 성경 언어 연구에 초점을 맞춰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철저하게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어머니 수산나는 뿌리 깊은 청교도적 교육을 반영하는 듯이 청교도 사역자들이 두각을 나타냈던 목회적 기도문과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신학에 관심을 쏟으라고 권했다. 존은 이 두 가지를 다 했지만, 네 권의 책이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범과 실천」, 윌리엄 로우의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이 그 네 권의 책이다.3. 신성 클럽존 웨슬리는 1792년 옥스퍼드에 강사로 초빙됐다. 링컨 대학 특별연구원으로 웨슬리는 한 그룹의 학부생들이 학문적,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들을 감독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존은 이내 이 스터디 그룹의 리더가 되어 이들이 더욱 철두철미하게 그룹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생겼다. 첫 번째는 제자훈련과 교회의 관계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열정이 있는 지식층뿐 아니라 모든 회중이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조직을 더 심화시켰다. 두 번째로 기독교 선교의 본질과 선교사의 지위에 변화가 생겼다. 그에게 선교활동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의 헌신을 일구고 발전시키는 매체였다. 웨슬리에게 선교는 제자도의 최종 산물이 아닌 제자도를 더욱 진전시키는 수단이었다. 세 번째 변화는 위계 제도 하에서의 상향 이동성의 도입이었다. 국교회의 구조는 영국 사회의 수직적 계급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조지아의 사회적 상황 덕분에 웨슬리는 평등주의적 기반에서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그룹 내에서는 리더와 구성원의 구분을 확고히 하면서도 신실하기만 하다면 구성원이 리더가 될 수 있게끔 했다.5. 드 렌티 모델웨슬리의 그룹 방법론을 형성하는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일찍이 미친 모델은 드 렌티가 프랑스에 세운 소회(small societies)였다. 27세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변화를 받은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사람들에게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독려하는 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렸다. 웨슬리는 평생 동안 드 렌티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효과적인 방법론을 갖춘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전범으로 여겼다. 웨슬리는 드 렌티의 모델에서 다음의 사항을 취사선택했다.1. 매일 그날의 성과와 과오를 세밀히 점검한다.2. 매주 만나 기도하고, 경건 서적을 읽고,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개인의 종 교적 체험을 나누는 경건한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만든다.3.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대접 받기를 거절한다.4. 개인의 경건에 열정을 품고 이를 개인의 품행과 다른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섬김으로 표현한다.5. 건전치 못한 낙서를 지우기 위해 주머니에 수건이나 스펀지를 가지고 다닌다.6. 의사의 진료를 받을 여력이 없는 어려웠다.7. 올더스게이트 체험존 웨슬리는 피터 뵐러 목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모라비아 교도의 영향을 받았다. 바로 개인적 회심의 체험이다. 두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뵐러 목사는 웨슬리가 직면한 개인적 딜레마에 대한 해법으로 단번에 회심을 체험하기를 구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몇 주를 쉬지 않고 구하고 찾은 끝에 웨슬리는 마침내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의 모라비아 교도 모임에서 그가 바라던 경험을 했다.회심은 참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의 삶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회심은 신학적 원칙이자 개인적 믿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종교적 교수 그룹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회심은 한 개인이 독특한 교수 과정의 한 부분이 되는 진입 지점이자 통과의례이다.올더스게이트 가에서의 경험이 웨슬리의 삶에 실로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는 회심을 경험한 1738년 5월 24일을 첫날로 해서 일기장에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회심의 필요성을 삶으로 직접 확인한 웨슬리는 교회건 소그룹이건 부르는 곳마다 달려가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선포한 말씀을 들은 이들에게서 행동의 변화가 빈번히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회심에 대해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회심은 감리교의 필수 요소이자, 정교한 교육 시스템의 근간이자, 주요한 방법이 되었다.8. 헤른후트 모델1738년 7월 4일, 회심을 경험하고 3주 후, 웨슬리는 작센의 모라비아 교도 정착촌으로 떠났다. 헤른후트 정착촌에서 모라비아 공동체를 관찰하며 웨슬리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체계적인 사고를 타고났던 웨슬리는 모라비아 공동체의 꼼꼼한 운영 프로세스에 완전히 매료되어 3주 동안 전체 운영 계획을 면밀히 살피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세심하게 메모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영적인 부분을 감독하고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공동체를 작은 셀로 나눠 ‘신도회’라는 이름을 붙였다.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가 개인의 성품과 구제활동 참여에 집중터 레인 모임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서 효과적인 요소들을 모아 강력한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웨슬리는 페터 레인 모임에서 개인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그룹의 질서라는 공식적인 우산 아래 두고 보호 받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고민과 갈등을 통해 최대한의 성장을 일굴 수 있도록 했다. 페터 레인 모임은 국교회의 종교 단체들과 모라비아 신도반의 강점을 한데 모았다. 종교 단체들은 인지 차원의 가르침, 특히 개인적 적용을 위한 종교적 정보의 습득 측면에서 탁월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모라비안 신도반은 개인의 경건생활을 발전시키고 적극적인 삶을 고양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구축했다. 매주 수요일 9시에 큰 방에서 갖는 전체 모임인 신도회에서는 가르침과 감동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웨슬리나 뵐러가 모임을 인도하거나 강사를 초빙했다. 교육 기능과 ‘체화’ 기능을 철저히 분리하기 위해 수요일 전체 모임 이외에 5명에서 10명의 동성으로 구성된 신도반은 일주일에 두 번씩 모임을 가졌다. 신도반의 목적은 친밀한 교제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신도반에서는 웨슬리와 뵐러가 임명한 평신도 리더가 정해진 질문에 따라 흐름을 이끌었다. 회원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신앙 상태를 보고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 회원들은 상황에 따라 격려나 인정, 제안, 지지 등으로 적절하게 반응했다.안수를 받지 않은 평신도를 신도반의 리더로 세운 것은 국교회 문화에의 혁신이자 충격이었고, 이내 기성 성직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비난이 이어졌다. 웨슬리가 이 같은 리더십 혁신을 시도한 데는 물론 만인제사장론을 확신했던 모라비아 교도의 영향이 컸다. 모라비아 교도는 경배와 교육, 섬김의 사역을 성도 전체가 두루 맡도록 했다. 모두가 자신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공동체 전체가 사역을 맡은 군대로 움직였다.페터 레인 모임을 통해 웨슬리의 그룹 방법론은 한 단계 도약했다. 신도회와 신도반의 두 단계 참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두 가지 교육 전했다.
    인문/어학| 2015.06.12| 8페이지| 1,000원| 조회(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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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웨슬리의 위대함은 그의 소그룹 사역에 있습니다. 웨슬리의 소그룹 사역에 대한 논문입니다.
    존 웨슬리의 소그룹사역론유윤종 목사(교단교육국장)Ⅰ. 들어가는 말웨슬리의 메도디즘은 영적인 갱신운동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참 기독교 공동체의 힘을 알게 하는 대중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역사 속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는 역사를 보여 주는 가장 으뜸가는 본보기이다. 웨슬리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운동을 펼쳤다. 교회 안에서 새로운 신앙운동, 성령운동, 전도운동, 교육운동, 사회봉사운동을 펼친 것이다. 그는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 힘썼으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목회는 교회를 새롭게 하는 갱신운동의 역할을 감당했고, 오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 목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그 핵심에 웨슬리의 소그룹사역이 있다. 웨슬리의 소그룹사역은 단지 목회를 위한 조직 원리로서가 아니라 내적으로 새로운 신앙운동과 성령운동, 그리고 외적으로 역동적인 전도운동과 사회봉사운동을 연결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워드 스나이더는 그의 책 『혁신적 교회갱신과 웨슬리』에서 “이렇게 생겨난 체제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내에서의 제자훈련 체제”라고 평하고 있다. 1738년부터 수년 동안에 메도디스트의 신도회, 속회, 신도반(조, 밴드), 순회전도자, 소박하게 지은 설교하는 장소와 계절마다 갖는 애찬식 등이 조직되었다. 새로 나타난 시스템은 가난한 사람과 교육받지 못한 무리들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웨슬리는 그런 군중들에게로 다가갔을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해 내었다.웨슬리는 신앙의 체험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양육시키기 위해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조직을 신앙생활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데도 탁월한 인물이었다. 웨슬리의 소그룹 조직이나 교회조직은 처음부터 목회조직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적인 기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지기를 한 주에 한 번 만난다.신도회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했는데, 입회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죄에서 구원받아 도래하는 진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했다. 웨슬리는 지원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 열망을 삶의 열매를 통해 확인하였다. 신도회에 입회하려는 지원자는 이런 기본적인 조건 외에 세 가지 의무를 실천할 것이 요구되었다.첫째, 흠이 없이 행동하고, 모든 모양의 악을 피하라.둘째, 선행이나 각자의 능력에 따라 여러 모양의 자비를 베풂으로 기회를 얻을 때마다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가능한 선을 행한다. 선행은 육신과 영혼을 위한 것으로 나누었다. 즉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전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셋째,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한다. 예를 들면, 공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봉사자로 말씀을 읽거나 설명하는 일을 한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고, 가정기도와 개인기도에 힘쓰며, 성경을 연구하고 금식하며 절제한다.웨슬리는 메도디스트(Methodist)를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웨슬리가 신학 개혁가가 되겠다는 목적을 품고 이 모든 일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까지 메도디즘에 남아 있는 것은 조직 그리고 초기 메도디스트 신도회와 밀접하게 연계된 교리들이다. 이중 웨슬리의 교육 방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몇 가지 핵심 개념들이 있다. 웨슬리는 소위 대중적인 신념들, 특히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신념을 거부하고 직접 근본적인 원칙들을 제시했다. 웨슬리의 신념 체계는 교육 도구들을 선정, 거부, 또는 수정하는 여과장치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교수 방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웨슬리의 핵심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1. 인간의 완전성.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개혁파나 칼빈주의자들과는 달리 웨슬리는 인간의 본성이 더 좋은 쪽으로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웨슬리는 “완성성은 진보하는 존재의 합리적인 목표다.”라고 했던 헉슬리(Huxley)와 회 회원만 2,200명으로 늘어났고 모두가 동시에 속원이었다.속회는 11명의 회원으로 구성되고 한 지도자의 돌봄에 맡겨졌다. 1742년 말에 신도회는 여러 개의 작은 그룹, 즉 속회로 나누어져 완벽하게 제도화되고 메도디스트 신도회의 신앙교육과 훈련을 위한 핵심 기구로 정착되었다. 속회에 있어서는 속장의 지도력이 가장 중요했다. 속장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1) 일주일에 1회 이상 반드시 모든 속회원을 방문하여 만난다.(2) 속회원의 영혼의 형편을 조사한다.(3) 권면하고 가르치고 안내하고 책망하고 위로하고 지원하고 구제하며 기도해 준다.(4) 모은 헌금을 유사에게 전달한다.(5) 속회원의 모든 형편을 목사나 설교자에게 보고한다.속장은 속회원들의 영혼을 돌보는 ‘영혼의 감독자’, ‘영혼의 목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평신도 목회자였다. 속회는 처음에는 속장이 각 속회원들을 방문하는 방식에서 곧 모든 속회원이 한 곳에 모이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웨슬리는 매주 화요일 밤에 속장들을 모아서 더 좋은 지도자로 훈련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속회를 성경적 근거를 가진 신중한 은혜의 방편이라고 강조하였다.메도디즘의 가장 특징적 성격은 “마음 뜨거운 사랑의 교제”였으며, 이것은 속회 안에서 가장 충만하게 경험되었다. 속회는 수천 수만의 신도들을 소그룹으로 묶어 돌보고 양육하며 훈련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방편이 되었다. 또한 속회는 복음전도의 기능으로도 발전하였다. 웨슬리는 충실한 속회 출석자들에게 3개월마다 회원표를 주었고, 이것이 충실한 메도디스트의 표가 되었다. 이 출석표는 3개월마다 회원의 자격을 조사하는 수단이었다. 또 이것은 3개월마다 열리는 애찬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새 회원에게는 3개월의 수련기간을 충실히 거친 후에 첫 번째 표가 주어졌다. 웨슬리는 나태한 큰 그룹보다 헌신적이고 성결한 작은 그룹을 선택했다.속회는 처음에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메도디스트들은 속회에서 다양하고 귀중한 경험을 하면서 메도디스트 영성생활의 할 수 있게 해 줬다.10. 즉각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함으로 신도회 내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3. 신도반(Band, 조, 반회) : 정서 모드속회가 주로 개인의 간증과 권면의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이루어진 성도의 교제와 교육 중심의 신앙 훈련 모임이라면, 신도반은 내면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죄의 상호 고백과 영혼에 대한 상호 엄격한 감독을 통한 신앙 고백적 영성 모임으로 운영되었다. 속회원들 중에 자신의 영혼의 내적인 완전 성결과 외적인 완전 성결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더 친밀한 영적 고백을 위한 연합의 수단이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전심으로 추구하는 신도들의 모임으로 신도반이 시작되었다. 웨슬리는 야고보서 5장 16절의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라는 말씀을 근거하여 서로의 죄를 고백하며 함께 죄악의 본성과 생활의 습관을 치료받아 완전한 성화의 구원을 얻게 하는 목적으로 신도반을 둔다고 말했다.신도반의 목적은 정서적 방향 재설정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속회와 달리 신도반은 성별과 나이, 결혼 여부까지도 같은 사람들끼리 모였다. 신도반은 분명하게 결단하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사랑과 거룩함, 순결함 가운데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모임이었다. 신도회가 머리를 위한 모임이고 속회가 손을 위한 모임이라면, 신도반은 가슴을 위한 모임이었다. 웨슬리가 가장 좋아했던 교육 모드는 신도반이었다. 밴드의 핵심 기능은 ‘긴밀한 대화’다 즉 행동이나 생각이 아닌 동기와 가슴으로 받아들인 느낌에 대한 성찰이었다.웨슬리는 메도디스트의 목표가 ‘영국 전역에 성경적 거룩함을 전하는 것’임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주지시켰다.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웨슬리의 믿음은 행동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에 모두 반영이 됐다. 웨슬리의 교육 프로그램은 거룩함이라는 일관된 목표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신도회에서는 거룩함의 교리을 일주일에 한 번 바친다.선발 신도회는 이름 그대로 소그룹들 중에 가장 믿음이 좋을 사람들을 선발하여 만든 그룹이다. 이들은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웨슬리는 계속하여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상호 신뢰하고, 목사에게 절대 순종하고, 정기적인 구제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소그룹의 규정에서도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항상 그에 버금가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주었다.(1) 웨슬리가 비록 제도적인 교회보다 기능적인 교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2) 물론 웨슬리가 대그룹보다 소그룹을 더 염두에 두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3) 소그룹과 대그룹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 간다면 교회는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이다.(4) 소그룹과 대그룹의 건강과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다. 소그룹이든 대그룹이든 좋은 리더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성령의 능력이 임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신하는 것이다.5. 참회 신도반 : 재활 모드웨슬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도회 안에서 처음에는 은혜 안에서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다가 서서히 유혹에 빠져 태만해지고 범죄하는 낙심자 또는 낙오자들을 발견했다. 웨슬리는 이들이 믿음에 파선을 일으킨 자들이기 때문에 ‘참회자들’로 따로 모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다시 주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매 주일 저녁에 따로 신앙훈련을 시켰다. 웨슬리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훨씬 더 강한 믿음을 갖고 전보다 더욱 조심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참회 신도반은 속회의 행동적 요구 수준에 부응하기에는 의지력이나 개인적인 절제가 부족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됐다. 메도디스트 교육 시스템의 대상은 많은 이들이 ‘영국 사회의 쓰레기’로 여겼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육 체계 내에 사회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췄다.
    인문/어학| 2015.06.12| 20페이지| 2,0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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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결교회 주일예배 모델에 관한 한 연구
    성결교회 주일예배 모델에 관한 한 연구-예배갱신운동에 입각한 성결교회 주일예배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향을 중심으로-Ⅰ. 들어가는 말기독교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행위를 깨닫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예배는 자신이 받은 구속의 은총에 대해 은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와 보답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 감사의 표현은 앉아서 구경만하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예배자들이 직접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구경만 하는 예배”, “방관자적 입장의 예배”가 아니라 예배자가 직접 “참여하는 예배”,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현대 예배갱신은 바로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예배는 생명 있는 종교가 가지는 유일하고 충분한 증거이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의 신앙생활에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신앙의 필요 불가결한 표현이다.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한정된 시간과 장소, 의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장소, 의식절차가 전부 기독교인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음과 아울러 전인적인 감격 속에 자신이 받은 거대한 은총의 주인 앞에 나아와 감사와 보답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한국교회에 불기 시작한 예배 변화의 진원지는 20세기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세계교회의 예배갱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서양이나 동양, 그리고 신학적인 보수나 진보에 관계없이 모든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 한국 개신교의 예배갱신에 영향을 준 20세기 세계교회의 예배갱신운동의 두 주류는 예전적인 예배와 현대적인 예배로 서로 판이하게 다른 방법으로 예배갱신에 접근한다. 예전적 예배갱신은 세계교회들의 동의를 얻으며 가톨릭과 주요 개신교 교단들(미국의 경우,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연합감리교 등)에 의해 일어난 성서적인 예전과 교회의 전통적인 예전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며, 현대적인 예배는 예전회복운동과는 반대로 성령는데, 유의해야 할 점은 광고의 내용이 전체 회중과 관련된 것이거나 또는 회중이 선교를 향해 나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2. 성결교회 주일예배 순서의 예시)다음의 예배는 성경적 예배의 틀에 초대교회(4-6세기)의 예배형식을 더하였으므로 말씀과 성만찬의 2부 구조로 되어있다. 이는 초대교회의 예배형태이며, 예배갱신운동의 영향에 힘입어 현재 세계 교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예배 형태이다. 기존 한국 교회의 예배는 회개, 침묵, 수동적 참여를 기조로 함에 반해, 이 예배순서는 주님의 날에 맞는 부활의 기쁨과 감격을 강조하며, 예배 봉사자의 숫자를 가능한 한 많게 하고, 교독 형식을 도입하여 회중의 능동적 참여를 제고한다.Ⅰ. 입례의 예전(모든 회중이 일어서서 찬송을 부르는 동안 집례자와 봉사자들이 입장한다.)인사목사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회중 : 또한 목사님과도 함께목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회중 : 아멘.찬송개회기원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 한 주간의 첫날인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두움으로부터 빛을 가져오신 창조의 날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어두움에서 일으키신 새 창조의 날입니 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물과 성령을 부어 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신 영광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사역에 동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세세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니다. 아멘.찬송Ⅱ. 말씀의 예전감화를 위한 기도주여, 이 시간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의 심령을 열어 주시사, 주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될 때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기쁨으로 듣게 하여 주시옵소 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제1독서(구약)화답송(시편송) : 찬양대제2독서(서신서)복음환호송 : 찬양대복음서봉독설교(설교 후에 초청과 결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응답의 찬양 : 찬양대신앙의 확인 : 사도신경공동기도(기존 대표기도 방식 외에, 인도자는 기본적인 예배의 구조는 성서적인 근거와 역사적인 근거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먼저 신약공동체의 예배경험에 근거해야 하고 여러 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발전된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주로 말씀 선포(회당예배)와 성만찬을 통한 감사(다락방예배)에서 기억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는 처음의 두 가지 기본적인 예배구조에 예배의 시작 부분에서 예배공동체가 함께 모이고,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또 다른 두 가지 구조를 추가하여 4중의 예배구조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세계교회는 바람직한 예배가 이와 같은 4중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성결교회의 예배순서는 4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예배의 4중 구조는 예배를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만남으로 이해한다. 이 예배 구조에 의해 예배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모여” 먼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간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예배자들과 대화를 나누신다. 그 다음,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자들이 주님의 식탁에서 그 말씀에 대하여 적절한 “감사의 반응을” 나타낸다. 특별히 이 감사 단계에서 예배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 그 곳의 성도들이 드리는 영원한 예배에서 축하되는 “성만찬에 참여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예배자들은 그 하나님을 계속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다.” 이 4중 구조는 각 예배자들이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로 참여하는 연극과 같이, 예배의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예배의 순서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출발지에서 종착지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한다.)성결교회의 예배는 이러한 바람직한 방향을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앞서서 예배갱신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성결교회는 세계 주요교회의 예배갱신에 발 빠르게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성서적이면서도 교회전통을 충실히 살리는 방향으로 예식서를 제작하여 보급하였다. 물론 한국교회의 예배가 구도과 성찬을 통하여 얻어지는 축복에 대하여 설교하였고, 규칙적으로 성찬을 베풀고 교회력의 중요한 축일들에는 반드시 성찬을 시행하였다. 웨슬리는 성찬을 사죄의 확신을 주는 성례전이라고 확신하면서 매주 한 번씩 성찬을 시행하였다. 노년기에는 성찬을 베푸는 횟수가 점점 잦아져서 어떤 때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실시한 적도 있다. 웨슬리는 성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천국의 약속으로, 그리고 희생으로 이해하였다.)미국 감리교회의 예식서에서 볼 때, 성결교회 예식서는 현대 예배의 균형 잡힌 4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부분은 “입례의 예전, 말씀의 예전, 성만찬예전, 파송의 예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입례의 예전에 다양한 모임을 포함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을 더 풍부하게 가지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고백과 용서의 부분을 더 실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설교를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사죄의 확신을 갖는 것은 바른 신앙인의 삶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성찬의 중요성을 철저히 교육하여 성찬을 의미 있게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성찬이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의도적인 은혜의 수단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계획하여 말씀과 성찬의 균형을 통해 바른 예배가 드려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성결교회의 성숙에 큰 힘이 될 것이다.2) 미국 장로교회의 측면에서미국 장로교회의 예배 순서는 감리교회와 마찬가지로 4중적 구조다. 장로교회의 예배신학적 특징을 살피면 성찬에 대한 비중을 확대해서 점차 그 빈도를 늘려가고 있으며, 교회일치적이고 선교적 영역, 여성에 대한 관점의 변화, 노소에 대한 보다 증대된 관심을 볼 수 있다. 1993년 총회로부터 인준된 예식서인 『공동 예배서』(The Book of Common Worship)는 몇 가지 면에서 이러한 개혁적 성향을 확인하고 있다. 그 하나는 형식성을 제공하 믿을 만한 은혜의 수단이지 은혜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행위 속에 있다. 따라서 성찬을 통해서 선포되는 그리스도는 온전한 그리스도이시며 그 선포는 잔치 주인의 전체적인 구속사역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성육신을 마음에 되새길 수 있다.) 이러한 성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봉헌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이러한 성찬을 제대로 실행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서 성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실행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설교를 통해 성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는 설교 전체를 성찬에 할애하는 설교 대신에 여러 주제를 지닌 각각의 설교 속에서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설교를 할 때, 성찬식이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신자들 간의 독특한 친교를 나누게 되는 것임을 다룰 수 있다. 성육신에 대한 설교는 베들레헴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분이 지금은 떡과 포도주 속에 동일한 겸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다른 주제들도 그와 같이 다룰 수 있다. 더불어 성찬개혁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모든 연령층에서 장려되어야 한다. 어린이와 젊은 층을 위한 교회학교 커리큘럼에 들어가야 하고 수양회나 캠프 등에, 그리고 전 교인 활동 프로그램 속에 들어가야 한다.)3) 미국 성공회의 측면에서성공회는 1979년의 예배서 개혁을 통해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까지 초기 성공회의 예배 경향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1892년도의 미국 예배서의 개정과 1928년의 개정은 여전히 개정의 여지를 남기고 있던 차에 몇 차례의 개정 후 1979년 최종적으로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발간하고 이어 1982년 찬송가도 만들어서 성공회의 예배 성향을 엿보게 하였다.)예배의 순서를 살펴보면 정확하게 앞서와 같이 도입(entrance),)
    인문/어학| 2012.03.06| 19페이지| 2,000원| 조회(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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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에서 말하는 성령세례의 의미에 대한 연구
    신약에서 말하는 성령세례의 의미에 대한 연구-‘성령세례로서의 성결’에 대한 성서신학적 이해를 중심으로-Ⅰ. 서 론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은 성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이는 성도가 받을 성령세례를 가리킴이니 주 예수께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고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제자들은 성령의 세례, 즉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였으니(행 2:1-4) 우리도 모든 사람을 중생으로 인도하고 중생한 처 지에 있는 신자들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 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성결교회 헌법은 성결을 성령세례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성결교회가 주장하는 성결은 다름 아닌 예수 부활 후 첫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세례를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결교회 헌법이 규정한 성결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성결(성령세례)은 신자들에게 체험되는 그 무엇이다. 둘째, 성결(성령세례)은 중생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소위 “제 2의 축복”이다. 셋째, 성결(성령세례)의 본질은 성화이다. 그렇다면 신약 성서를 통하여 위의 세 가지 명제가 타당한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즉, 성령세례는 신자들에게 경험되는 것인가? 성령세례는 중생과 구별되며 중생 이후에 오는 또 하나의 체험-소위 “제 2의 축복”인가? 그리고 성령세례의 본질은 봉사를 위한 능력이 아닌 신자의 인격 성숙과 관계된 성화인가?)따라서 본 소고는 신약이 말하는 성령세례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정확히 탐구하여, 과연 성결을 성령세례로 정의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를 밝혀볼 생각이다. 특히 중생과의 관계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는 과연 다른 것인지를 먼저 살펴볼 것이고, 다음으로 성령 충만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 성결을 성령세례로만 정의한 것이 합당한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단지 인격 성숙과 관련된 성화로만 보지 않고, 성령 충만과 연관하여 살펴본(Luke-Acts) 뿐이라는 사실은 성령세례는 우선적으로 누가-행전의 본문 속에서 분석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누가복음서를 제외한 각 복음서는 예수를 세례 요한과 대비시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소개하는 것 외에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마 3:11; 막 1:8; 요 1:33). 바울도 서신서에서 단 한번 이 단어를 사용했을 뿐이다(고전 12:13). 오직 누가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일관성 있게 자신이 신학을 정리한다(눅 3:16; 24:49; 행 1:4-5, 8).)“성령”이란 단어는 “세례”라는 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결합은 누가복음 3장 16절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는 세례 요한의 선포에 나타난다. 세례 요한이 선포 안에서 대비되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보다 우월한 메시아의 성령 세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의 실마리처럼 누가 문서 전체를 관통한다. 천사의 두 고지에서 도출된 요한의 모태에서의 성령 충만에 대한 예수의 성령 수태의 우월적 병행(비교. 눅 1:15과 35) ; 세례 요한의 선포에서 세례자 요한의 물 세례에 대한 메시아 예수의 성령 세례의 우월적인 대비 ; 부활하신 분의 성령 세례에 대한 새로운 약속(비교. 행 1:5, 8) ; 오순절 메시아의 성령 세례의 실현(행 2:1-4) ; 베드로를 통한 성령 수여에 대한 범 인류적인 약속(비교. 행 2:38-39) ; 사마리아와 고넬료 가정에서 마지막 약속의 성취(비교. 행 11:15-17) ; 에베소 제자들에게 성령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들의 성령 받음(비교. 행 19:2-7). 이상과 같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부분마다 성령 세례가 언급되며 그 용어가 큰 문단을 여는 주제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총 주제는 ‘메시아의 성령 세례’라고 할 수 있다.)약속이 성취되고 또 다시 약속되는 이러한 도식이 누가-행전 전체를 지배한다. 이 적인 표현으로서 교회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성령의 부어줌을 뜻한다.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사용한 세례 요한이 선포한 성령 세례에 관한 말씀을 부활하신 예수의 입을 빌어 사도행전 1장 15절에서 사용한다. “너희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이 말씀은 며칠 후에 이루어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시사한다. 또한 문맥에 따르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것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즉 성령이 임하면 그 결과 권능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참조 행 1:8).세례 요한이 선포한 성령 세례에 관한 말씀과 부활한 예수께서 성령 세례에 관하여 약속하신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참조. 행 2:1-4)을 통하여 성취된다. 약속된 성령 세례가 성취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수에 베드로가 설교한다(참조 행 2:14-41). 이 오순절 설교에 의하면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성령 세례에 대한 약속이 다시금 베드로의 설교에 의하여 확대된다. 성령 세례가 오순절 이후에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에게 부어진 것이다(참조. 행 2:39 ; 행 10:1-48). 이제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 세례를 받을 것이며 받아야 한다.성령 세례는 우선 존재의 형성이 모든 사람과는 다른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가 준다. 그가 부활 승천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제자들에게 부어준 것이 성령 세례이다. 성령 세례는 성령을 부어주는 것, 그리고 성령이 임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성령 세례는 반드시 받게 될 것이고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오순절 성령 세례에 의하여 형성된 교회, 즉 성령의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즉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며, 성령이 부어주신 대자가 되었다(19:1). 그런데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다(19:2). 그리고 에베소에 있던 신자들은 자기들은 성령의 존재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 즉 회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안수하자 이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성령 세례는 중생과는 분명히 구별되며 중생 이후에 신자가 받는 것이라는 것이다.)토레이는 가장 최초로 성령세례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정립한 학자이자 목회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보다 이 성령의 세례라는 한 개의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되는 사실은 이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그 받는 자 스스로가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 수 있 뚜렷한 체험을 가진 것이다. 이른바 중생과는 명확히 구분되고 분리되는 성령의 역사중의 하나이다. 성령의 세례는 언제나 복음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과 항상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성령의 세례가 무엇을 위함인지 주목해 본다면 성령의 세례는 능력과 봉사의 능력을 부여해 준다.”고 했다.)성령세례는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떤 것이다. 성령의 세례는 원초적으로 성령의 어떤 사역은 아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어떤 것, 혹은 ‘특수하게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심’이다.) 성령세례란 언제나 분명하며 실수가 없는 어떤 것이어서 그것이 발생하는 사람에게서와 이 사람을 지켜본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인식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받은 사람이나 그를 보고 있는 다른 이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체험을 가진다.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중생이 비체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성령의 세례는 분명히 체험적으로 알 수 있게 임한다.성령 세례는 크고도 놀라운 사건이다. 사람이 이 지여 종종 성령 충만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행 4:8, 31 ; 6:3, 5 ; 7:55 ; 11:24 ; 13:52). 그렇다고 해서 흔시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누가가 처음의 성령 오심을 ‘성령세례’로 그 이후의 성령 오심을 ‘성령 충만’으로 정확하게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가는 오순절의 성령세례 사건과 바울의 성령세례 사건의 경우에도 동일한 ‘성령 충만’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행 2:4 ; 9:17), 동일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다시 오신 경우에도 성령의 첫 번째 오심을 설명할 때 사용한 ‘주다’라는 용어를 똑같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격적인 성령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내주하시는 성령이 곧 초월하시는 성령이시므로 내용에 있어서는 항상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전자나 후자나 부활하신 주님이 파송이라는 점이다. 곧 성령은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서 새롭게 파송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성령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는, 즉 성령의 처음 오심, 내주, 계속적인 사역, 다시 오심, 새로운 시작 등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존하고 비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날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계속적인 과정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단 한번 받음으로써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회개를 필요로 하는 성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엡 5:22-24),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는 것’(고후 3:18)은 계속 되어지는 것이다. 신약의 저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윤리적인 명령을 제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바로 이와 같은 윤리적인 명령의 실천, 곧 성령을 따라 사는 날마다 새로워짐의 삶의 역사를 위해(롬 8:4-6 ; 갈 5:16) 성령의 오심과 새로운 활동은 계속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따라서 구원론적으로 볼 때 성령세례와 중생은 서로 분리되지 않다.
    인문/어학| 2012.03.06| 12페이지| 2,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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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세계관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세계관Ⅰ. 들어가는 말청년목회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 키운 제자들 중에서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두 명의 여제자가 있다. 한 명은 의사이고 한명은 대기업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산후조리원을 개업하여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인 제자는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다. 딸이 6살이다. 참 이쁘다. 전남편도 의사이다. 결혼 전부터 전남편의 신앙이 문제였지만, 실상 이혼사유는 심각한 성격차이인 듯하다. 그러나 이혼한 그 제자는 지금도 좋은 신앙인으로 살려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결혼 전에는 거의 상의가 없다가 지금은 수시로 신앙과 삶, 그리고 사역에 대한 상담을 해오고 있다는 것인데, 그 상담에는 재혼에 대한 상담도 포함되어 있다. 총각을 사귀고 있다. 그녀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산후조리원을 하고 있는 제자는 참 신실하다.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혼위기가 있었다.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이다. 처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그녀는 이 일로 인하여 남편이 신앙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괴로워하면서도 이혼을 피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남편이 용서를 구하면서 돌아올 때 발생했다. 그때부터 남편이 미워지고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노가 생겨난 것이다. 오랜 기간의 상담과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신앙과 사랑은 지금 용서하는 것이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지금 그 가정은 두 명의 자녀를 키우며 잘 지내고 있다. 가치가 상대화된 이 시대의 참된 신앙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절대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외모를 중시한다든지, 성격차이와 외도 등의 이유로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문제가 이제는 기독교인들에게조차 일상이 된 듯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를 규범적으로 판단하여 하지 말아야할 기독교인의 가치로 주장했었다. 그런데 내가 정성을 다해 키운 제자들에게 이 문제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떤 의미를 가지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먼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에 대해 알아보겠다.첫째는 상대주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는 상대주의적인 관점은 절대성에 대해 부정한다. 누구나 모두 제 나름대로의 가치관 혹은 사상을 가지고 있고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의 객관성과 성경말씀의 절대성과는 부합하지 않으므로 충돌을 빚게 된다.둘째는 탈중심화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주체가 되는 자아의 일체감보다는 오히려 자아로부터의 탈피, 분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탈중심적인 가치관은, 통일된 중심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는 기독교 신앙과는 상충된다.셋째는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이다. 기존의 질서를 깨고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를 불신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거부한다. 기독교는 인류 구원과 창조 목적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 이야기가 거대한 담론이며, 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거대담론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불신이 기독교 신앙에도 적용이 될 때, 이 둘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넷째는 다원주의 사상이다. 기존의 사고가 이성?비이성, 기독교?이교도, 문명?야만 등과 같이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각기 개별적이고 다양한 가치들로 본다. 다원주의적 사고는 모든 개념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 역시 다른 수많은 신앙들 중 하나로 간주되어 그 절대성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기독교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관점을 거부하고 있다.이처럼 기독교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세상 속에서의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주권을 확장하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는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기독교와 친화성을 보여준다.첫째, 양자는 과학주의적 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벨론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세계관적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대안이 필요했을까? 고대 바벨론 제국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어떤 이미지로 보았을까? 이스라엘 백성은 제국 권력의 무기력한 희생양이었다. 결국 이들은 신들의 노예이자 바벨론 사회에서 노예인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바벨론 포로기의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 우리와 대단히 비슷한 상황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했다. 곧 제국주의적 독재자와 무기력한 희생양이라는 상반된 방향으로부터 모순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포스트모던 문화에서는 한 가지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 반대의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희생자의 체험이 자주 폭력적 저항의 태도를 발생시키듯이, 우리의 자율적 태도는 깊숙이 자리 잡은 불안감과 무력감을 감추는 얼굴을 만든다. 우리의 세계와 삶은 혼돈 속에 내몰리고,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포스트모더니티 세계 속에서 과연 계시는지 의심하게 되었다.창세기 1장은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백성을 위해 기록되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세계가 생겨났다. 우주의 주권자이신 주님은 단순히 말씀으로만 밤과 낮,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별, 육축, 그리고 인간을 만들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야훼 하나님은 전체 피조 세계를 통치한다. 창세기 1장은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라고 하는 보다 크고 우선적인 현실에 기초하여 바벨론 포로생활과 포스트모더니티를 다시 기술하게 한다. 아울러 다양한 측면을 가진 조화로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생명과 축복을 만들고, 우리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을 재해석하게 한다.근대의 프로젝트는 급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과거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적이라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믿음과 근대적 이상의 혼합물이다. 따라서 과거로의 회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성서적 근원으로 돌아가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이 회귀는 우리를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도록 몰아세운다. 포스트모던적 자포자기와 근시안적인 보수주의를 거부하면서 우리는 ‘순수함의 회복’을 소망한다.바벨탑은 근대의 자율적 세계 건설이라는 상징적 역할을 해 준다. 그러나 모더니티는 바벨탑처럼 휘청거리며 거의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근대 세계관의 균질성은 종족주의, 성의 전쟁, 인종 갈등, 인종청소, 광범위한 문화적 혼란 등으로 인해 파편화되었다. 우리에게 규범적인 역사의 방향성을 제공해 주던 진보 신화라는 성스러운 방어벽은 무너졌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궁극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문화적 고통과 포스트모던 문화의 혼란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고백해야 한다. 창세기 11장 7-8절에서 하나님께서 바벨탑 건설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흩어버리신 것처럼 하나님은 모더니티의 거만한 문화를 심판하셨다.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야기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바벨탑을 무너뜨리셨다. 이 길은 바벨탑으로 시작해 아브라함을 지나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 왕조, 바벨론 포로와 귀환 등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대단원을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 대단원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예수 뒤에 교회가 도래했는데 바로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다.바벨탑의 혼란은 오순절 사건에서 풀어진다. 오순절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 한 다락방에 모여 있었다. 그곳에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있었다. 언약의 백성은 5백 년 동안이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살았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고 새로운 백를 변화시키고 있다.Ⅳ.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세계관의 조화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극복하는 성서이야기를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러 면에서 기독교와 상충하는 점들이 있으며 이런 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문제이다.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세계관 사이의 조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1. 자아 해체를 통한 타자 중심의 사고와 태도근대적 주체는 이성 중심의 주체요, 의식적 자아 중심의 개별자 주체였으며 그 이외의 요소들은 배제하는 주체였다. 이 주체가 공동체적으로 적용될 때도 배타적인 성격은 여전히 드러난다.기독교 역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배타적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단과 타종교를 극단적으로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경향이 많은 종교였다. 타종교나 대중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신실한 신앙의 증표인 양 생각하기도 했다.모더니즘의 주체의 강조는 타인에 대한 배제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경우, 그 주체는 극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해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아 해체는 기독교에 있어 또 다른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자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에게로 시선을 돌려 보다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2.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통한 자아 성찰적 자세대중들은 기존의 질서 혹은 거대담론에 대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비판의식이 결여된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날카로운 질타와 비판을 가했다고 할 수 있다.인간은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그 지성에는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와 사고체계에 절대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반이다. 이러한 사고는 자아 성찰적 자세의 계기를 낳아 끊임 있다.
    인문/어학| 2012.03.06| 7페이지| 1,500원| 조회(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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