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읽고나는 이번에 일제 강점기의 상황을 어떤 역사서보다 상세히 잘 알 수 있다고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백범일지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왜 진작 이 책을 읽지 않았는지 부끄러웠고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전의 이미지는 독립운동에 관한 딱딱하고 어려운 옛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처음 이미지와 달리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파란만장한 김구 선생의 일생이 재미있고 쉽게 일기형식으로 쓰여있어서 좋았다.우리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존경받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백범 김구선생을 쉽게 꼽을 수 있다. 이야기는 김구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1876년에 황해도 해주의 빈농에서 태어나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김창수를 그려나간다. 주인공이 마치 가상의 인물처럼 처음부터 너무 뛰어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려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김구 선생님의 어렸을 적 장난스러운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된다. 아버지의 큰돈을 가지고 엿을 바꾸어먹으러 가다가 혼나는 일부터 큰 홍수가 난 마을에 색 물감을 풀어 장난치는 모습까지 읽다가 보면 마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 놓은 것만 같았다.책이 김구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지나가면서 학문을 접하게 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가난한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던 김구선생님의 모습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져졌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과거 시험인 임진경과에 응시하지만 그곳의 많은 부정부패를 보고 실망을 하며 이때에 이런 현실을 개탄하고 개혁 정신이 싹트게 된다. 바로 조선시대의 신분 구조 때문이었다. 이에 어린 나이에 동학에 들어가서 이름을 떨치기도 하고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더 큰 뜻을 품게 되며 오직 나라, 조국을 위한 그분의 삶이 시작된다.이런 김구선생님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인을 죽이게 된 일이다. 이런 큰일을 벌이고도 무서워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일본인을 죽인 이유와 그 범인이 자신임을 당당히 밝히셨다. 그 당당함에 나는 매료되었고 존경스러웠다. 이러한 당당함은 우리시대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된다.그 일이 있은 후 김구선생님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여러해 동안의 옥살이와 형초를 당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한 굳은 결의는 꺾이지 않고 더욱 강해져만 갔다. 옥중에서도 여러 서양의 선진 책자를 접하면서 의식을 더욱 더 넓혀 나가며 일본인에게 큰소리를 치시는 등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신다. 김구선생님의 옥살이 뒤에는 이곳저곳을 계속 옮겨 다니면서 아들이 잘못될까봐 노심초사 하는 어머님의 숨은 옥바라지가 있었다. 아무튼 감옥에서도 그 이름을 떨치던 김구선생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석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탈옥을 하게 된다. 탈옥 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방면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러면서 성장하게 되는 김구선생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그리고 그 후엔 교육을 통한 우리 민족의 계몽을 위해 노력하신다. 교육에 관해서는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여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못 깨달은 동포를 깨우쳐서 다 기울어진 국운을 되살리려는 큰 비밀운동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참여한다. 이런 김구선생님의 면모는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으로 국민들을 계몽시키고 의식을 성장시켜야만 참된 독립을 얻고 성장해나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유달리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뜨거운 것이 아마 김구선생님과 같은 사상이 이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다.그 이후의 독립운동으로 17년형을 선고받지만 김구선생님은 뜻을 굽히지 않고, 이때에 와서 이름을 “김구” 로 바꾸게 된다. 호도 이때에 “백범”으로 바꾸게 되는데, 그 뜻은 미천한 한사람이 동포의 한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 후 출옥한 김구선생님은 상해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첫 강의시간에 교수님께도 들었던 일화로 본래의 신분이 미천한지라 임시정부에서 문지기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구선생님은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나타난다.이렇게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김구선생님은 여러 명의 독립투사들과 목숨을 나라에 바치며 많은 활동을 하셨다. 이봉창 의사가 일황을 저격한 일부터 윤봉길 의사가 그 유명한 도시락폭탄을 던진 일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그때의 우리민족의 투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감동적인 부분은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러 가던 날이었는데, 그날의 윤봉길 의사는 거사를 앞두고도 너무나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쓰여 있다. 이러한 우리 조상들의 곧은 의지가 대단하다여겨졌다. 또 가기 직전 자신의 좋은 시계를 김구선생님의 낡은 시계와 바꾸어 차고 간 대목에서의 말로는 다 못할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김구선생님은 또 다시 일본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도 독립에 대한 염원은 변하지 않으셨다.시간이 흘러 1945년 일제의 항복 소식에도 그리 기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려와 탄식을 하였는데, 이 독립에 우리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우리의 발언권이 약해질 것을 염려했고 이는 두개의 나라로 갈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해방 후에는 혼란과 분단으로 치닫는 민족의 새로운 비극이 전개되자 이를 저지하고 진정한 자주 통일의 독립정부를 우리 독자의 힘으로 수립하고자 대내외의 역경과 살신성인의 자세로 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