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의 를 읽고 ‘이영녀’를 둘러싼 모든 극적 상황들이 그녀를 자꾸 구석으로 몰아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몸을 팔아 생을 연명할지언정 그녀는 저항할 줄 아는 여성이요, 현실에 맞서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저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고, 오히려 그녀를 보고 조소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딸인 명순 또한, 불공평한 현실에 대해 대항하지만, 명순의 자그마한 힘으로는 그 거대한 현실의 굴레에 티끌만치도 변화를 주지 못한다. 1막에서는 명순과 그의 아들 관구가 싸우고 있고, 안숙이네가 나와서 일방적으로 관구의 편을 들어준다. 여성보다는 남성의 우월성을 부추기고 있는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관구가 “가시내는 모두 사내들의 종년이란다”라는 대목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명순은 관구과 안숙이네의 홀대에도 조용히 수긍하고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험한 말도 섞어가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이영녀가 등장하고 불합리한 ‘성’놀음에 울컥하여 화를 내자, 안숙이네는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돈 벌려 하는 짓이니 눈 한번만 찔끔 감으라고 이영녀의 대사를 받아친다. 여기서 맨 처음 언급했던 이영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성’을 파는 여성이 아닌, 비록 성을 파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나 부당한 일을 당하면 거기에 맞서려고 하는 저항적 인물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갈보 짓은 아이들 학교 보낼 목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비록 삐뚤어졌기는 하나 여자 혼자서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 일을 하면서도 공장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성 판매에 맛들인 여성이 아닌 생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 일을 생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제 2막에서는 이영녀가 공장 감독하고 싸우고 온다. 사람들을 개 돼지 모양으로 부리는 감독에게 한바탕하고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녀는 의식이 있는 여성인 것 같다. 그 결과로 그녀는 공장에서 잘리게 된다. 이것이 권력 있는 자들의 횡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그런데 그녀를 의식 있는 여성이라 생각하였지만, 공장에서 잘릴 판이 되니까 사장에게 가서 몸을 팔고 해직을 면한다. 이영녀는 의식이 있는 여성이긴 하나, 현실 앞에서는 좌절하고 임기응변으로 살아남는 인물인 것 같다. 제 3막에서는 유서방이라는 사람과 다시 사는 모양인데, 그 남자역시 영녀의 몸을 탐할 뿐, 자상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녀가 몸져눕고, 이에 성질이 난 유서방은 더욱 괴팍해진다. 또 어린 명순이까지 넘본다. 파렴치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혼을 했어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그녀에게 남자란, 따뜻한 보호막이, 아닌 자신에게 바쳐진 영녀라는 희생물을 가지고 장난이나 치는 돈 가진 속물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희극을 읽고 남성의 속물적인 근성과 남성우월주의를 비꼬아서 비판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데, 비극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작품 는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기가 힘들어 ‘성’을 판매하므로써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며, 그 현실에 저항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해 현실에 묻어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내용에 현실감이 있어서 더 공감과 이해가 갔던 작품이다.두 번째 작품으로 이다. 가장 읽기 어렵던 작품이다. 내용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다. ‘이영녀’나 ‘산돼지’의 경우, 현실감있는 인물이 등장해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있는데(현실적인것 혹은 역사적인것) 이에 반해, ‘난파’는 어린자식인지 나이든 자식인지 시인이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그 시인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일 뿐인지, 카르노메 노래는 왜 그렇게 많이 반복되었는지 궁금증만 잔뜩 일으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충 이해한 것을 요약해보면, 시인이라는 인물은 ‘모’라는 유령의 아들이다. ‘모’는 내가 낳았지만 제일 미워했던 아들이라고 시인에게 반복하여 말하지만, 그 말에는 이상하게도 ‘모’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시인은 계속 ‘모’에게 원망을 늘어놓는다.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지 못한 어머니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모’는 시인에게 바깥으로 나가서 현실을 보고 불완전한 더러운 다른 인간들과도 싸워 보라는 둥, 불완전하게 낳아줬으니 안일하고 배부른 완벽한 놈과는 다르게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도 보고 싸워보라고 부추긴다. 이런 이야기들로 미루어 봤을 때, 시인은 그야말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자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하고 현실에 주저앉으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모’가 나타나서 그를 일으키려한다. 그리고 무서워하지 말고 싸우라고 한다. 그래야만 행복이 찾아온다고.‘부’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라고 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현실과 싸워달라고 말한다. 또한 양반가정?신라 성족의 후예라는 꼬리표를 시인에게 달아주고, 효도를 하고 충성을 다하라고 강요한다. 시인은 그런 것이 싫다. 자신을 옭아매는 압박이 싫고, 현실에 대항해 싸우기도 싫다. 그렇게 달아나고 싶어 할 때, 백의녀가 나타난다. 봄과 꾀꼬리와 춤을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신주와 모가 시인을 떼어놓는다. 시인은 세상과 싸울 사람으로 그러한 유희나 즐기고 있는 사람이 못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비의녀가 나타나 옷을 벗으며 시인을 유혹한다. 그것을 동복제가 구해준다. 이는 역시 세상과 싸워야할 사람이 즐겨야 할 것이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비가 나타난다. 비비는 운명이, 이상이, 로맨스가 시인을 괴롭힌다고 말을 한다. 시인은 그런 것이 없다면 시인이 아니라고 대항하지만, 비비의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든다. 비비는 시인을 자꾸 옭아매는 ‘모’와 인연을 끊고 자기 생활에만 열중하라고 충고 한다. 시인은 이제 비비에게 빠져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모’는 양고자년한테서 그 애를 떼어내야 한다며 둘 사이를 반대하고 3막 중반부까지는 비비가 사라져 나오지 않다가 카르노메로 바뀌어 다시 나타난다. 옷색 옷으로 바꾸어 입은 비비, 아니 카로노메가 다시 시인 앞에 나타났지만 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난 것 같다. 큰 갈레오토가 두 분 다, 별이 벌써 떨어진 줄을 잊지 마시라는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시인은 비비를 만난 후부터 계속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사랑을 쫓았지만 그것은 자기 길이 아니었나보다. 시인이 “빵 구하는 이에게 돌이요”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 그 말은, 사회에 대해 저항하고 대항해나갈 그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 불 꺼진 등대 밑에 자빠진 사람, 즉 시인 자신이 자신의 원래 목표를 잃고 물에 뜬 부표처럼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카르노메를 버리고 ‘모’에게로 돌아간다. 즉, 사회에 맞서는 ‘모’가 바라는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카로노메를 잊지 못하는 시인. 카르노메 노래 가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모’의 사랑이었든 ‘카르노메’의 사랑이었든 사랑을 갈망하던 존재였던 것 같다.작품 는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구체적이지가 못하고,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체내용을 대충 보면 시인이라는 한 인물이 모와 부와 신주 등의 압박에 못 이겨 사랑을 갈구하며 이탈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모’에게로 돌아간다는 내용 같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사람인 시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혼령들로써 들러리인 것 같다. 시인이 나약함을 벗고 세상에 맞서게 되는 과정에 필요한 들러리.작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최원봉과 차혁은 청년회에 몸담고 있다. 그런데 원봉이 장부에서 50원을 축나게 한 것에대해 말싸움이 일어나는데, 차혁은 사회를 위해 이 기회를 틈타 처지와 주장이 태평양만큼 떨어져 있는 청년회 적군놈들을 몰아내자고 하지만, 원봉은 그것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한 일인 만큼 자신이 책임지고 사직까지 할 생각이다. 차혁은 자포자기해서 무기력 해는 원봉을 보고 분한마음이 든다. 여기서 볼 때 차혁은 대의를 중시하고 나 하나보다는 사회전체를 생각하는 것에 비해, 원봉은 그러한 큰일에 나설만한 간 큰 사람이 되지 못해 그런 일에 뛰어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영순과 차혁이 사귀고 있는 마당이어서 화가 나 가버린 차혁에게 사과하겠노라고 영순에게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원봉이 영순이를 여동생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는 점이다. 영순을 보며 가슴 쓰라려하는 모습이나, 부둥켜안는 모습이나, 입을 맞추는 모습이나 뭔가 수상하다. 차혁을 질투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