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사회계층에 있어서 가정의 경제력은 사회에 얼마나 많이 영향을 끼칠까? 나는 지금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는 가정배경 즉, 가정스펙이 많은 영향을 준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회가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마르크스도 그런 사회를 비판만 하였지 직접 실현하지 못한 이유가 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나라든, 어떤 세상이든 평등한 구조인 사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회에서 계속적으로 태어나는 아이의 아이의 아이는 그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는데, 잘못 생각하면 어쩌면 그 아이를 제품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자를 떠올리기 쉽다. 또한 공산주의 사회를 떠올리게 되는데, 공산주의 사회란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잘 살자’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계급없는 사회를 만드려고 하지만, 공산주의를 이상이념으로 여기는 북한의 경우도 결국, 상-중-하류 계층으로 나뉘어진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노동당의 고위당원이면, 그 자녀들은 크게 고생할 필요 없이 부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와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그리고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계층이 있기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본다.단점으로는 가정배경이 어떻든 학력이나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놓치게 되고, 사회를 위한 인재, 창의성을 무시하게 되어 그 사회는 발전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고, 교육받는 과정이 한 인간이 완성제품이 되는 과정으로 변질 될 수 있고, 가정배경이 뛰어난 자제들은 아무런 노력없이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는 평생 중-상류계층의 사회가 되어버리고, 교육-경제-정치-복지-문화가 중-상류계층 위주로 돌아가게 되어 하류계층의 사회진출이 어려워지거나, 그 사회는 절대 조화할 수 없는 서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하지만, 장점으로는 그 사회의 기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에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도를 해야하는 계층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으로는 한 사회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 불평등에서 중-상류계층이 중심이 되어서 하류계층이 괄시받는 상황도 나온다. 이런 계층간의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 학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받는 교육도 가정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집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담을 덜기위해 수업료가 저렴한 공립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유복하게 자란 자녀들은 수업료와 복지가 뛰어난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렇게 가정환경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방식과 다른 내용의 수업을 받게 된다. 그렇게 이미 학교에서부터 사회계층이 나눠진다. 하지만 학교에서 단지 지식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교는 본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인성교육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의 상호작용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계층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의 계층은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그런 관계들이 사회계층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인성교육과 사회교육의 장인 학교 내에서 최근에 변질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면, 나의 중학생 1학년 시절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중학교가 입학하기 전에 춘천에서 부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동네에서는 ‘미리내마을’, ‘그린타운’이라는 두 개의 동네가 있었다. 나는 ‘미리내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학급 안에서도 경제적 구도가 있는게 아니던가! ‘미리내마을’은 17~32평의 동네이고, ‘그린타운’은 38~61평의 동네였다. 그런데 처음에 친구를 사귈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좀 흐르더니 ‘미리내마을’ 아이들 끼리, ‘그린타운’ 아이들 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나는 어린나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엄마에게 ‘그린타운’으로 이사를 가면 안되겠냐고 떼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때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린타운’에 사는 아이들을 더 잘해준 것을 생각하면 사춘기나이의 나는 그만한 충격은 없었다. 결국 우리 집천에서 용은 안난다고 생각한다. 경제력이 지렁이와 미꾸라지를 용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강남가의 학원들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강남부모들의 치마바람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런 사회적 불평등이 지금의 사회에서 납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쉬운 것 같다.나는 갈등론자들을 배우면서 갈등론자들은 사회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려는 평화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그것은 허황된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그 학자들이 원하는 세상이 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중-상류계층을 설득해 하류계층과 어우러진 사회를 만들거나, 하류계층 사람들이 반란, 혁명, 개혁을 통해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려려면 전쟁이나 무력이 불가피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중-상류계층은 진보를 바라지 않는다. 중-상류계층은 사회안정을 바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안정되길 바라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으로 바뀌려면 일단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것이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는 과정에서 사람이 변화하는데 이 과정을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의 관념과 의식이 바뀌고, 그로 인해 계층이 변화되고,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또한 갈등론에서의 학교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 시킨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학교 내에서도 부로 결정되는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동생도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일류대학교를 쓸 때 교사들의 추천과정에서 실력이 있는 학생보다는, 집안이 유복한 자녀의 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청탁을 하는 경우를 봤을 때, 학교라는 세련된 기관에서도 그런 부로 생기는 부정부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그런 경쟁사회 때문에 때가 묻어있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학교에서의 관계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니 위치와 이름이 다를 뿐 관계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현대사회의 학교가 중-상류계층 위주로 돌아간다고 해도 학교라는 자체가 중-상류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획일적인 것보다는 다양한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학교라는 곳은 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은 학교라는 곳이 안타깝게도 지금은 학교가 세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더 크게 생각된다.그 다음으로 나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해방론을 생각해보았다. 프레이리는 노동자들에게 자아의식을 원했고, 의지가 없는 그들에게 의지를 기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나라’자체에서 상류층이 교육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는 나도 정말 동의한다. 그리고 프레이리는 은행식교육을 비판했다. 나도 그 점을 비판한다. 나는 은행식교육은 교육받는 학생이 학교에서 발급해주는 내용만 받는 일방통행같은 교육이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프레이리를 동의해 토론,대화식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당연히 스승과 제자가 행하는 것인데, 스승만이 제자에게 아무리 주입식으로 교육을 행해도 제자가 거부하게 되면 그 교육은 쓸데없는 교육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육을 행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교육을 창조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행식교육을 주형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성 그리고 의사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은 지금 잠깐은 좋지만 나중의 미래생각을 하게 되면 다 쓸데없는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들을 좀 오래 걸리더라도 참교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참교육은 개인, 집단, 사회, 국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각한다. 교육은 좀 더 나은 직업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서는 일반화 되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엘리트계층이 힘들지 않게 돈을 벌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들의 사고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육체적으로 하는 노동과 펜을 굴리는 노동의 귀천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것은 어쩌면 정당하게 생각을 하지만, 그 직업들의 귀천을 나누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사고라고 생각한다. 결국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하는 일인데, 그 과정과 방식이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귀천의 차이가 아직은 가정의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것은 어쩌면 최근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아닌 것 같다. 옛날 왕조들의 왕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 권력과 권위를 세습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런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 그 때부터 그런 경제적 지위의 세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사회를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그런 과정들 속에서의 학교는 단지 더 나은 직업을 위한 과정 중 한 부분밖에 되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학생들은 교과서, 교사, 교수행위 같은 것들은 자신들의 스펙을 위한 보조자로밖에 생각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정작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학교는 인격을 도야하는 장소인데, 단지 입시 위주로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은 입시문제에는 강할 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예의나 해서는 안되는 일을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갈등이론은 한 개인을 위해서는 올바르지 못한 이론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로써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쉬울 뿐이다.그래서 나는 여기서 잠깐 구조기능이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갈등이론과 구조기능이론 중에서 이 사회에는 어떤 것이 추구되어야 하고, 어떤 이론이 현실적인지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구조기능이론은 이 사회를 평등하게 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2002처음에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장르가 로맨스 인 것 같아 매우 설렜다. 하지만 영화의 처음 시작은 수도원에서 부르는 노래가 제일 먼저 나왔다. 그 노래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엄숙해졌다.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모형이어서 다큐영화 인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나오는 칸도리안 수도원의 수사들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지만 조금은 구식이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이라서 부담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주인공들의 모습을 하나씩 볼 수 있었다. 전혀 수도사들 같지 않았고, 수도원에 어울리지 않는 코믹스럽고 엉뚱한 모습들이 귀여워 보였다. 문득 그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그 수도원에 머무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처음부분에 나오는 교단규범집을 설명하길래 그 규범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내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중간 부분에서는 교단을 파문시킨 교회에서 그 규범집을 없애려고 일부러 접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세 수도사들은 그 규범집을 가지고 이탈리아의 수도원까지 가는 도중에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세 수도사들은 이 역경을 헤치고 그 규범집을 이탈리아까지 운반하는데 성공을 하지만 수도사들은 그 과정에서 많은 교훈과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배운다.농부인 타실로는 혼자 집에 있다가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벤노와 아르보에 대한 정을 느끼게 된다. 또 벤노는 속세에 빠져있다가 타실로와 아르보의 노래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속고 있었다는 것과 타실로와 아르보가 자신을 끝까지 믿어줬다는 것을 느낀다. 아르보는 키아라라는 여자를 만나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몰라왔던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세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소중한 생각을 얻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당장 내가 해야하는 것과 내가 잊고 지냈던 사람들 그리고 감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대학교 입학과 지금까지 일단은 공부만 하자고 단념을 했었다. 그렇게 되니 인간관계와 과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만 하게 되었다. 나는 그 공부만 하면서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감히 다른 것을 할 엄두가 안났다. 원래 1학년은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추억도 남기고, 선배들과 어우러져서 대학생활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하는데, 나는 단지 몇 명의 친구와 내가 당장 해야하는 공부만을 생각하다 보니 나의 1학년은 정말 재미없는 생활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나는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허무하게 쓴 것 같아 너무 아깝고 다시 입학해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수도사들도 그렇게 속세를 늦게 접하면서도 많은 것을 얻어갔다. 여기서 나는 아직은 늦지 않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봐야 겠다는 것을 느꼈다. 또 나는 내가 공부와 대학생활 때문에 나의 감정을 숨겨 왔었다. 그 감정들은 소중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드러낼 용기도 없고 나 자신이 그 감정들을 감당을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르보는 자신이 몰랐던 감정을 드러내서 많은 것을 얻는 부분에서 나도 너무 미련하게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세 수도사들을 보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것에는 내가 원하는 답이 있는지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하고 내가 진심으로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더 심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나는 부모님에게 떠밀리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지 성인으로써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어떤 것들을 만들고 꾸미는 일 그리고 어떤 조직을 이끌어가는 일을 좋아한다. 그 일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당장 방학이나 시간 날때마다 조금씩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나에게 맞는다면 서슴없이 그 길을 갈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말 나의 꿈과 나의 감정, 그리고 그 짜릿함에 내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한 수도사들처럼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그런 설렘을 느꼈다.그리고 독일어를 배우면서 독일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독일어를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대사 중에 내가 아는 단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뿌듯하고 독일어를 조금만 배우면 배우들의 대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또 독일어를 독일인이 하는 발음을 들으니 독일어는 영어, 프랑스어와 다르게 아무리 빨리 말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독일어가 더 생생했고, 영어와 다른 언어가 지니지 못한 독일어만의 매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배우는 독일어와 독일에서 배우는 독일어는 정말 차이가 많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기회가 된다면 독일에서 정통발음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의 독일어는 사람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인 것 같다. 독일어의 억양을 조절 할 수 있어 나긋한 억양, 강도가 센 억양, 슬픈 억양, 고요한 억양, 기쁜 억양 등 다른 언어와 다르게 명확히 표현 할 수 있는 것 같다.
설국은 철학적인 책인줄 알았다. 역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었다. 이 책은 한 남자와 한 게이샤의 사랑이야기 였다.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이 두 남녀가 일년에 한번 만나면서도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을 싹틔우는 것이 너무 묘사가 잘되어 있어 그 문장 하나하나에 감동을 느꼈다. 또한 이 책의 매력은 자연풍경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표현들을 생각지도 못했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정말 석양이 지는 것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나게 해준다. 그렇게 글에도 색깔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책을 처음 봤다. 이 책을 보는 내내 그 묘사들을 상상하느라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두 남녀의 사랑은 깊은 듯 얇은 듯 알 수 없는 사랑이라서 흥미가 더 생겼다. 그렇게 이 책의 내용은 시마무라라는 남자가 나온다. 이 남자는 부유한 가정에서 아무 걱정 없이 일본무용을 공부했다. 하지만 진보가 없는 일본무용에 대해 편협하다는 생각을 가져 공부를 그만두게 된다. 시마무라는 진보적인 서양무용에 눈 뜨게 된다. 그렇게 남자는 서양무용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눈의 마을,온천마을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 마을에서 고마코라는 게이샤를 만나게 된다. 고마코는 항구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춤 선생을 만나서 춤을 배워 게이샤가 된다. 시마무라는 눈 처럼 순결하고 깨끗함을 지닌 고마코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순결한 정신과 춤에 대한 열정에 감동해서 고마코에 이끌려 온천마을을 세 번이나 찾게 된다. 또한 고마코가 아끼는 요코라는 여자가 그 관계에 끼게 된다. 시마무라는 요조숙녀같은 요코에게도 연정을 느낀다. 하지만 고마코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시마무라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약혼자인 유키오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이다. 그 환자를 요코가 어머니처럼 부인처럼 간호한다. 하지만 유키오는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두기 전에 고마코를 부른다. 그렇게 1년 뒤 시마무라는 다시 그 마을을 찾아간다. 요코는 유키오의 묘를 매일 찾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고마코는 옛날과 같이 시마무라를 반가우면서 토라진 척을 한다.이런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그 과정을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과정보다는 조금씩 변해가는 시마무라의 마음, 또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관계, 시마무라와 요코의 미묘한 관계,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 등 인물들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들은 확실하지는 않은 관계이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감정들에 걸쳐있다. 그래서 긴가민가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게 나를 궁금하게 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한 감정들이 더 짜릿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은 뭔가 완벽한 내용이 아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내가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또한 주인공들의 마음도 잘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해서 조금은 답답했지만, 모든 것을 알았으면 그 재미가 떨어지고, 그 주인공들의 미묘한 마음을 글로는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 번 읽으면 읽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또 나는 이 책의 글들이 현대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고전적이지만 촌스럽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현대적인 문체보다는 고전적인 문체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이 책은 사랑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는데, 나는 아직 사랑을 해보지 못해서 그 감정을 알 수 있을까 했는데, 이 책을 보고나서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더 복잡해진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사랑은 확실한 게 아니고,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 처럼 사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에서 이 책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봤을 때는 시마무라라는 남자는 너무 이기적인 남자인줄 알았고, 고마코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불쌍한 여자인 줄 알았지만, 책을 읽었을 때 그 정보를 이해를 잘 못한 것 같았다. 시마무라라는 남자는 여자에게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 또한 그 심중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두 남녀가 이상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 남녀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 점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랑은 집착이 될 수 있지만, 이 두 남녀는 가벼운 마음이지만 그 연정은 깊었다. 나도 이런 부담없는 사랑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공감이 됐던 부분은 고마코가 내 또래이지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았고, 나보다 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많은 생각, 많은 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처음에는 고마코가 20대 후반 인줄 알았다. 말하는 것이 어쩔 때는 앙증맞을 때도 있지만, 성숙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코에 비하면 나는 고마코보다 더 풍족하고, 많은 생각, 고난과 역경도 없었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숙해서 괜히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제목만 봤을 때는 동화같아서 상상력의 풍부함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천진난만한 면과 달리 사회모순을 그대로 비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살펴보자면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매일 밤 만나서 회의와 담소를 나눈다. 동물들을 인간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지만 매일 말 뿐 이었다. 여기서 동물은 지금의 우리 국민과 조금 유사하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을 자기의 감정표현은 조금은 자유롭다. 하지만 옛날 군주 밑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우리 민족이 동물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또 독일로 빗대어 생각하면 지금의 독일은 통일이 되었지만 완전한 통일은 아니었다. 동독과 서독은 겉으로는 평화 통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독이 동독을 합병시킨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산주의였던 동독인들을 서독인들은 게으르고 무식하고 힘없는 인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서독인 마음대로 동독인을 조종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동독인들은 서독인에게 갇혀사는 동물로 비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동물들은 존즈씨의 틈새를 공격해 자유를 선언한다. 물론 동물들에게도 지도자는 있다. 처음의 동물들의 우상은 메이저 영감이다. 이 돼지는 동물들에게 혁명의식을 불어 넣어 주는 존재이다. 우리나라로 빗대어 보자면 나는 김구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무지한 국민들에게 우리 조국의 현실을 알려주면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인재는 아깝기 마련이다. 김구나 메이저영감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한 인재가 세상을 뜨게되면 세상은 그 공백에 혼란스러워 지기 마련이다. 책에서도 그렇듯 젊은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그 우상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한다. 역시나 두 돼지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돼지들이다. 스노볼은 영리하지만 베짱이 없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론보다는 실행을 하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돼지가 힘을 합치면 좋겠지만 왕은 둘 일 수가 없다. 이렇게 이 두 돼지를 보면 나는 우리나라의 대선이 생각이 난다. 정당들은 각각의 특징이 있다. 그 장점을 합치게 되면 완벽해지지만 절대로 합치치 않으려 한다. 그래서 정당들은 대권을 놓고 치열한 머리싸움, 몸싸움을 한다. 하지만 합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빛을 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자연스럽게 나뉘게 된다. 피지배층이 된 제 3자의 인물들은 잠시 갈등을 한다. “어라?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과연 이런 모습이었을까? 난 주인이 해주던 대로가 좋았던 것 같아!” 같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동독인들의 사고가 나온다. 동독인들은 막상 세상이 변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닥치고 보면 분단시절이 더 나았나고 생각하는 동독인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나폴레옹이 대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나폴레옹은 인간의 삶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복서 같은 동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들을 하게된다. 이렇게 나폴레옹 독재정권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폴레옹의 독재정권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나폴레옹의 강압적인 정치도 있었지만 그것을 의심없이 여기면서 당연시 여기는 다른 동물들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그 것을 의심을 해보고 시비를 가렸더라면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처음의 자유7계명을 점점 돼지 위주로 지배층 위주로 바꿔나가는 쪽으로 수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각이 났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헌법을 바꾸는 행위가 나폴레옹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들은 피지배층의 동물들과는 다르게 그에 맞는 반항과 저항을 해서 꼭 지배층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 민족 스스로 혁명을 일으킨 면에서는 우리 민족이 그 지배층들 보다 더 훌륭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민족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행복하게 살고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영웅이라는 자리와 우상, 왕의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책임자가 민중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자리도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어리석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자세로 있으면 언제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무지한 나폴레옹 같은 리더가 있으면 무지한 귀족도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몰리라는 말이다. 각설탕과 화려한 리본에 혹해서 사치를 부리는 말이다. 이런 것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는 존재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에 빗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경제력이라는 힘을 가졌으면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모든지 다하는 탐욕스런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그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은 재벌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재벌이던 정치인들이던 둘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탐욕스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재벌이나 정치인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벤자민 같은 존재는 이 사회의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왜 이렇게 피폐해 졌을까? 그것은 바로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에 생겨난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이나 재벌을 비판만 하지 말고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향을 지닌 동물이 있다. 벤자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던 자기의 꿈을 위해서 꿋꿋이 일하는 동물인데 이런 동물들 때문에 나폴레옹의 정권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에서 독재라는 정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고, 그 해결 방안도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나는 이 책을 한 번 봐서는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것을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 동물들의 정치의 과정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보고나서 내가 느낀 것은 정치에 무관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의 내용들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나에게 경고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보고나서 나는 매우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치기사를 거의 읽지 않았던 난 점점 정치상황에 빠져들게 되었고, 요즘은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빗댄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은 아마도 격분함 일 것 이다. 그 감정은 그 드라마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고, 이 책을 보면서 나폴레옹의 만행을 보고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모두를 위한 혁명이 아니라 자신이 좀더 편해지기 위한 혁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 나폴레옹 같은 파렴치한 사람이 안나오길 바란다. 또한 그 무지한 동물들을 보니 진작 난 그 동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동물들의 행동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 책은 나를 각성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조지오웰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간단하게 이 책은 단순하게 책만의 이야기가 아닌 권력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하는 것 같다. 또 나는 평소에도 생각했던 것을 더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요즘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같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권위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한다. 그것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권력의 맛을 한번 보게 되면 그 맛에 중독되어 그 환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보았다. 그 중 정치권 사람들을 보았을 때는 아무리 천성이 착한 사람도 정치판에 뛰어들면 세상을 올바르게 고치자라는 초심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점점 권위를 누리면서 초심 때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국민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결국 나폴레옹도 자신만 권위를 가지고 다른 동물들을 부리며 호화롭게 산다. 나는 문득 이 책을 보고나서 올바르고 청렴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용기가 안났다. 나도 그런 권력의 맛을 보고 못빠져 나올까봐 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지만 강하다면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짐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보고나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또한 가만히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이 책은 단지 정치비판을 할 수 있는 생각만하게하지 않고, 나의 꿈과 미래 또한 나의 가치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과 나를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단지 교양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