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아내 테일러의 손을 거쳐 출판되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출판된 두 사람의 사상이 담긴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인 제임스밀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여러 가지 난점을 어중간히 해결해놓고 완전히 해결한 것인 양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전체를 다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부분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 것’을 습관으로 하는 열린 교육을 그에게 행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교육에 따라 열린 사고를 갖게 된 인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열린 사고와 아내의 사랑으로 완성된 자유론은 한마디로 ‘개별성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의 기본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한마디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모두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총 5장으로 엮어진 이 책에서 개별성과 자유의 기본원칙은 바탕이 되어 각 장에서 새롭게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머리말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의 횡포 즉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체감으로 느끼지 못해 부정하지만 다수의 횡포에 노리개로 지내고 있다. 한 예로 이번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건설에 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 이다. 민심으로 이루어지는 국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민심으로 이루어 진 것이 무엇이 있을까?우리나라의 다수의 횡포는 정치그룹의 민심의 말은 귀 막고 눈 막고 하는 행실로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권력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그 모습이다. 4대강 건설로 우리나라의 농경지가 무너지고 있다. 그로 인해 배추 한 포기에 만원을 호가하는 일명 ‘금추’가 우리 시장에 등장하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권이며 정치인가?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목적이라 하나 아직 우리 사회는 그 경계가 뚜렷하지 못하다. 개인에 대한 사회 통제를 과도하게 확대하려는 경향으로 다수의 생각과 성향을 하나의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책의 내용이 무섭도록 우리사회와 닮아 있다. 그리고, 사회의 주도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도덕적 억압의 기제는 훨씬 강력해졌다는 대목에서 대통령 욕을 하면 잡혀가는 억지스러운 전진하지 못하고 과거로 후퇴하고 있는 부끄러운 우리사회를 생각나게 했다. 자유론의 중심적인 생각과 주장은 머리말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허를 찌르는 듯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시 한번 지금 상황보다 더 악화될 수 있는 우리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뜻한다. 생각과 토론의 자유.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우선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제1장의 다수의 횡포와 다름이 없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완전 할 수 없다. 기계처럼 설명서와 설계도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은 각자 고유의 예측할 수 없는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그 의견이 자신과 동일한지 여부를 평가할 뿐 그 의견이 왜 자신과 다른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도 있다는 전제가 없는 것이다.존 스튜어스 밀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라 한다.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사람들에게 명시할 수 있는 기회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쓸모 없는 의견으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 의견을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반대되는 의견의 논리적인 해석이다.인간들은 결과가 명확히 들어나는 토론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의견에 절대적인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뿐이다. 토론이란 말 그대로 토의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무시해가며 토론을 이끌어 갈 때 그 토론은 죽은 진리로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우린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처럼 비운의 주인공들이 끝이 아니라 우리시대에 또 다른 주인공이 탄생할 수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제3장, 개별성-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개별성이란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각각 따로 지니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인간에겐 개별성이 있다. 하지만 그 개별성을 표출해 내느냐 남들과 똑같은 틀 안에서 개별성없이 획일화된 생활을 하느냐는 본인의 행동에 따라 달리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별성을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주장한다. 인간은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로보트가 아닌 스스로 자라나는 나무와 같은 존재라 내재적인 힘이 필요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지만 무궁무진한 생각을 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힘보단 남들과 다르다는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쳐 똑같은 시대를 반복되게 할 것인가? 존 스튜어트 밀은 개별성을 짓밟는 것은 최악의 독재라 말하고 있다. 그들의 원하는 획일화된 의견 속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도 미래도 없다. 관습이란 틀 속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행해왔듯이 오늘날에도 행해야 한다’는 법은 그 어느 법전을 뒤져봐도 없다. 과거에 짓밟혔던 의견도 현대에 와서 각국에서 찬양 받는 의견으로 탈피하는 경우가 있듯이 현재에 안주한다고 항상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러서 이전 사람들이 행해왔던 것처럼 구성된 스토리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여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어제보단 나은 내일을 위해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제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우리에게 사회란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사회가 없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통한 생각과 정보, 지식이 공유 될 수 없고, 모두 각 자만에 생각으로 행동하고 본보기 없이 살아 갈 것이다.‘ 사회는 교육에 관한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론의 압도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규정된 사람다운 삶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기본적인 삶의 모습의 본보기를 사회를 통하여 사람들은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다. 제 1장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사회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개인에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선을 어떻게 사회는 지킬 것인가? 개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라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하고 있다.한 예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했을 때를 들 수 있다. A란 사람이 B의 행실을 한 포탈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험담을 했다. A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은 아무 누구도 설사 국가라도 그의 행동을 제한할 수 없다. 하지만 B는 게시판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후엔 B에게 정신적인 피해가 생기는 것이다. 자유를 지향하면서도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부분이 명확이 나누어져 있고, 그것을 사회가 판가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난 사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국민의 신호등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그저 어떠한 안건만 나오면 싸우기 바쁜 싸움터로 돌변하는 현실에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제 5장 현실적용존 스튜어트 밀은 ‘각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해를 주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 사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균형을 취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였다. 이 말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로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에 따라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 온다는 추가적인 내용도 함께한다. 이 원리는 정부에게도 똑같이 적용 되며 개인들의 노력과 발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한 사회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이 틀 안에서 자유의 경계는 어떤 사람에게는 해를 어떤 사람에게는 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사회에 속해있는 한 인간은 절대적이기 않기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 자유를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이 행하고 싶은 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란 것은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가 아니라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생각과 인성을 겸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때때로 살아가면서 그 정의를 망각한 채 자유를 방패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놀라운 것은 1859년에 쓰여진 이 책이 15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에 크게 다르지 않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크다. 고전문학이라 시시콜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한 책이다. 세상에 변화에 따라 인간의 행동과 생각이 변한다 생각을 하지만 인간의 고유의 본성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 본성 또한 변하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지은이 라인홀드 니버는 개신교 신학자로 인간의 윤리사상에 대해 논하며 “인간은 언제나 가장 이해하기 힘든 문제이었다.”라고 말하였다. 인간을 문제로 삼는다면 수 없이 많은 예외적인 상황과 개별성에 부딪혀 문제 속에 문제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인간과 사회가 만났을 때 나타나는 도덕성의 변화에 대해 이 책은 논하고 있다.서론에서 이 책의 주제는 ‘첫째, 개인의 도덕적 사회적 행위는 사회집단의 도덕적 사회적 행위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둘째, 이 구별은 순전히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 할 수 없는 정치 영역들을 정화시켜준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서론에서부터 니버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히 해주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본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인간에게 있어서 도덕성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선한 것인데, 물욕이나 나쁜 환경 때문에 악하게 된다고 보는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을 믿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자신보다 약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대를 도와주고자 한다. 또, 그러한 타고난 도덕성은 교육을 통하여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니버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도덕적인 성형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 집단에 구성인물이 되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비도덕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말하고 있다. 사람들 내면에 숨겨진 이기심은 집단을 통해 모여 집단이기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이 나타내는 이기심이 극대화되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커지게 된다.한 예로 무임승차를 들 수 있다. 무임승차란 한 개인이 ‘나 하나쯤 이야.’란 생각으로 집단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고 결과는 함께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에 한 사람에 주어진 역할이라면 그에 따른 결과물은 자신의 역할의 행함의 유무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의 일이라면 자신이 역할을 하지 못하여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큰 부담을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62.9%라고 한다. 40%이 사람들이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제대로 된 사람에게 투표를 하겠지 그리고 그 사람이 괜찮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임기에 뽑힌 대통령이 정치에 성공적이면 그에 따른 사회적인 복리와 혜택을 투표를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받게 된다. 반대로 정치가 실패적이라면 자신은 ‘그 대통령을 일부러 뽑지 않았다.’라 말하며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만약에 투표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개인에게 법적으로 제재가 가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집단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이 돼버린다.또 다른 예로 ‘익명성’에 따른 악효과도 들 수 있다. 인터네에서의 익명성은 한 개인이 익명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지시하는 것처럼 책임이 한 단계에 걸쳐서 전이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닌 누리꾼들의 의견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된다. 이러 모습으로 작성된 글에 사람들은 책임감이나 도덕성에 대한 죄의식은 자신의 몫이 아닌 마냥 악의 적인 내용도 서슴없이 작하게 된다. 악플에 따른 피해로 심지어 자살한 연예인을 보면 인간이 익명이라는 그늘아래 얼마나 악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본문에서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애국심의 도구로서, 혁명적인 열정의 매개자로 자처하면서 그의 권력에 대한 우쭐한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유럽을 피로 물들였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박애의 꿈이 그렇게도 빨리 나폴레옹의 제국주의의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글프게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사회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인도적 자원들의 부적당함을 드러낸 것이다.’ 부분을 보면 혁명적이고 애국심이 넘치던 나폴레옹의 꿈이 사회와 만났을 때의 참담한 결과를 알 수 있다.그렇다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집단의 책임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문제에 니버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정치적인 해결책과 제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에는 문제를 해결한 자질과 능력이 충분히 있고, 이 또한 노력에 따라 무한으로 성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을 다른 이에게 넘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이 정치적인 강제성이라 니버는 말한다. 하지만 이때의 강제성은 작은 집단에서가 아닌 더 큰 사회에서의 강제성을 말한다.그래서 니버는 “역사는 사회적 유대와 정의라는 목적을 향한 긴 노력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다. 목적을 두고 강제성을 주어 그것이 사회적인 유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유지하여 역사를 이룬다는 것이다. 개인대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강제성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한 사회에서의 강제는 당당히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제성에 개인들은 불가피한 사회 관계의 방법으로 받아드릴 것이고 필요성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강제성의 선을 넘어 불평등한 특권으로 정당화 시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강제성을 가진 가장 뚜렷한 힘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들 수 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힘을 키워 폭력을 일삼는다. 폭력을 통하여 유지되는 평화는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러한 폭력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강제성의 선을 넘어 불합리함을 느끼게 하고 비도덕적으로 사람들에게 불신을 산다.니버는 13년간 목사로 활동하고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니버는 ‘개인적 차원의 이상은 종교적인 도움으로 인해 가능하지만, 집단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명확히 구분 짓고 있다. 이처럼 니버는 개인의 도덕적-사회적 행위는 사회집단 -민족집단이건 인종집단이건 경제집단이건간에- 의 도덕적-사회적 행위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그리고 또 하나 이 구별로 인해 순전히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영역들을 정당화시켜준다’ 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왜 니버는 개인과 사회집단의 도덕적, 사회적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을까?개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있어 문제가 있을 때 개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생각하고, 동정과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에 도덕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집단으로 모여 사회를 이루어 질 때 자신내면에 숨겨진 능력이 적어지며, 개인의 작은 이기심이 모여 커다란 힘을 가진 이기심을 보이게 한다.한 아파트 입주문제로도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이 나타난다. 님비현상은 집단이기주의를 일컫는 말로서, 자신이 사는 지역에 사회 혐오시설인 화장장, 분뇨처리장, 쓰레기 소각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말하며, 핌피현상은 지역이기주의로 수익성 높은 사업을 내 지방에 유지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에 개인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면 그렇게 큰 문제로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는 앞으로 개인대 개인으로보다는 넓게 사회와 소통하며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직장도 사회집단의 한 부분이고, 학교도 사회집단이다. 하루의 절반이상을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니버가 말하는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말이다. 개인에게 도덕을 요구하기보다 사회집단에 도덕성을 요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예술의 전당에서 재미있는 미술전을 한다고 하여 친구를 끌고 가보았습니다. 미술전시회는 작년에 마그리트전 이후 오래간만에 가는 것이라 한껏 기대에 부풀어 찾아갔습니다.만화와 미술이 만났다! 같은 그림이지만 만화와 미술은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둘이 만나서 탄생한 작품이라 기대가 됐습니다.처음 입구에 걸려있는 크로스컬쳐 현수막앞에서 사진한장 찍고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만화를 단순히 가볍고 유희적인 매체로 접근하지 않고 실감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처음 본 작품은 인터넷에서 어떤전시회를 볼까하고 검색 중 발견하여 꼭 보고싶었던 박두진작가님의 작품이었습니다.어렸을 때 아름답게만 보였던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만화 속 주인공의 눈을 도깨비처럼 하나로 만들어 놓은 그림. 이 그림은 만화주인공의 환상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주인공은 무결점이 아니라 얼마든지 가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무섭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주인공은 언제나 아름답고 착하기만 한 정의의 인물이라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눈을 또 다른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그 다음 인상깊었던 작품은 성태진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언제나 악의 무리와 싸워 이겨 영웅으로 모든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로봇들을 사회에 부적응자로 몰락시켜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비유시켰습니다. 단단한 갑옷을 벗어던지고 늘어진 츄리닝을 입고 있는 로봇. 웃기기 보다는 현재 우리나라에 부적응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생각나 씁쓸한 기분도 들었습니다.김명화작가님의 작품들. 케익과 아이스크림은 행복한 삶을 의미하고 커다란 딸기는 여성을 상징합니다. 엘리스의 몸에 커다란 딸기 얼굴을 올려놓은 그림은 우리나라의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습니다. 점점 성형하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사회는 예쁜 여성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슈퍼맨이 커다란 딸기를 바치고 있는 작품은 남자들이 예쁜 여자들을 우상으로 여기고 우선시 여기는 모습을 풍자한 것 같았습니다. 나 또한 능력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고 겉치레에 급급했던 모습을 반성했습니다.이와 비슷했던 그림 중 루이비똥옷을 입은 돼지 그림이 있었는데 돼지목의 진주목걸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또, 맥도널드 로고를 가슴에 달고 있는 뚱뚱해져버린 슈퍼맨, 배트맨들보면서 공감이 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마지막으로 기억이 남은 작가님은 우리의 일상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는데 작품마다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나도 한번 내 작품을 만들 때 내 자신을 등장인물로 넣는 것도 내 그림에 대한 애정이 클 꺼 같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많은 작품들을 보며 웃으며 공감하다 보니 어느새 전시의 끝자락에 와있었습니다.미술전시회 하면 딱딱한 선입관이 있어서 같이 가기 꺼려하던 친구도 어느새 그림들을 보며 나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오면서 다음부터 우리도 문화생활을 많이 하자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마치 기억 속에 잊혀 졌던 친구들을 만난 거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 비디오가 닳도록 돌려보면 만화주인공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고 이들이 새롭게 탄생되어 단순히 그림으로서 재미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도 하고 반성도 할 수 있게 해주어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끝-
10대와 20대의 문화가 같아졌다.예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대학생 대접을 받는다.예전의 대학가에서는 서점이 호황을 누렸다./그러나 지금의 대학가에서는 술집이 호황을 누린다.예전에는 호스티스들이 여대생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했다.그러나 지금은 여대생들이 호스티스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한다.예전에는 국민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액세서리를 대학생들은 거들떠보지않는다.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악세사리를 대학생들도 똑같이 선호한다.대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똑같은 수준의 문화를 즐기고 있는것이다.한마디로 오늘날은 모든 문화가 정체성을 상실해버렸다./어디를 들여다보아도 뒤죽박죽이다.양심도 죽었고 예절도 죽었다. /전통도 죽었고 기품도 죽었다.낭만도 죽었고 예술도 죽었다./ 그것들이 죽은 자리에 오늘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밤이 깊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소설가 이 외 수, ‘10대와 20대의 문화가 같아졌다.’)- 대학생들에겐 낭만은 사치다.예전의 7080세대의 대학생은 독재적인 사회분위기에 맞서는 자유를 향해 싸우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서있었다. 모여서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실행하는 집단으로 대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패기와 열정이 있었다. 대학생이 신분이기보다 한 계층으로 여겨졌다. 현재의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학력과 토익 점수는 높으면 높을 수록 좋다. 취업의 문턱에 좀 더 가까워 지기 위해 남들의 기준을 쫓기에 바쁘다. 경쟁이 심한 세대. 지금 사회는 그들에게 높은 학력, 토익점수, 자격증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합당하다면 대학생은 자신의 인생에서 큰 과제인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사회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학력의 높은 사람만이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 나를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했다. 이것이 과연 요구일까? 난 강요라 본다. 이러한 사회의 강요에 대학생들은 열정과 패기를 가지기 보단 걱정과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다.그들에게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술집, PC방이고, 동아리는 남녀가 어울리는 만남의 장 일뿐이다. 만약 그들 중에 누군가가 낭만을 찾는다면 바보취급을 받는다. 요새 친구들을 만나서 나누는 주제는 연예인, 쇼핑, 드라마 등 전혀 깊이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TV를 함께 보다 MBC파업에 대한 뉴스기사가 나와도 ‘좋아하는 쇼 프로그램이 불방을 하여 불편하다’란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TV 드라마 속 주인공이 누구를 선택할지에 집중한다. 조금만 대화의 주제가 깊어지면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주제로 돌리기 급급하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서라 하면 고지식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바라본다. 주입식 교육으로 ‘왜?’로 시작하는 생각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렇구나~’로 끝나는 교육으로 사회의식과 지성, 철학의 부재로 사색의 깊이가 사라진 것이다. 분명 그들에게도 감수성과 열정이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취업이고 항상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들을 쉽게 꺼낼 수 없다. 저마다의 양심과 사상 없이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 속에 나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는 20대지만 아직 부모님 그늘아래서 보호받고 싶어하는 10대와 다를게 없다.- 자유의 출구 ‘인터넷’그들은 이제 어렵고 복잡한 것 보다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만을 찾게 됐고, ‘인터넷’이란 자유의 창구를 만나게 됐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제재도 없고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곳은 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 속에서 10대도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대학생들도 10대의 수준의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얼마 전 영화 감상의 글이 있는 유명한 블로그를 가보았다. 영화평론가 못지않게 적절한 비판도 함께 있는 공감되는 글들이었다. 30대의 블로거라 생각하였는데 블로거 소개란에 ‘18살’이란 글자를 보고 나는 영화를 그저 시간 죽이기용으로 본거 같아 반성을 하였다. 반면, 인터넷상에서 두서없이 상대방에게 악의적으로 악플을 다는 네티즌이 있었다. 철이 덜든 초등학생이 장난친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놀랍게도 명문대 대학생으로 밝혀졌다.- 문화의 깊이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렇게 좋은 정보도 있고, 나쁜 정보도 있는 다양한 연령에게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7080세대의 10대의 문화에 비해 현대 10대의 문화는 놀랍게 성장했다. 고무줄 놀이와 구슬치기를 하며 같은 나이또래와의 교류가 아니라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10대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양이 커지고 함께 소비하면서 과거에 비해 성숙해졌다.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한다는 것의 단점으로 모두가 함께 이해를 해야 하기에 깊이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10대와 20대의 문화가 같아졌다고 그 문화가 저급문화라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깊이는 받아들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문화의 질 하락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 대학생에 인식과 생각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건 시대의 탓한겨레 21에 실렸던 유시민 전 장관의 인터뷰에서 20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요지는 386세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민주화 운동하고 학교 안 나가던 사람 있는가 하면 그 때도 도서관 가서 살고 시험 목숨 걸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단 것이다. 어느 세대를 한 가지의 잣대만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확실히 경쟁이 심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고 어쩔 수 없다. 시대가 이런 걸 어떡하느냐 라고 말해선 미래가 없다고 본다. 이런 시대에도 분명히 취업을 떠나서 대학생이 가져야 할 문제의식을 갖고 그 나이에 해야 할 고민과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사회는 지금 지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문제를 사회에 잣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바뀌기 전에는 절대 사회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건 지배층을 이루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항상 젊은 피였다,. 나 또한 우리나라의 20대이며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20대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는다.
주 신 구 라작가 및 작품 소개일본의 섹익스피어라 불리는 인물로 에도 막부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케다 이즈모(竹田出雲), 미요시 쇼라쿠(三好松洛), 나미키 소스케( 木宗輔)는 근세 일본을 대표하는 극단인 작가 중 하나로 특히 중심 인물인 다케다 이즈모는 인형극인 와 작가로 「주신구라」를 포함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신구라」는 실제로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을 토대로 만든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관련 작품을 낳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문학이다.[주신구라]는 의(義)와 충(忠)에 대한 일본인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수많은 아류작과 풍자 작품을 낳은 살아 있는 일본 최고의 고전이다.본 작품은 1701년에 에도 성안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과 1702년에 있었던 아코 지방의 사무라이들이 주군을 위해 복수한 실제 사건을 작품화한 것이다. 아코의 영주인 아사노의 할복에서 시작되어 주군을 따르던 로닌들의 와신상담, 주군의 복수 결행 등으로 이어진 아코 사건은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으며 에도 시대를 뒤흔드는 대화제가 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사건은 곧 로 상연되어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일본 국민들의 사랑 속에서 성장해 왔다. 특히 [가나데혼 주신구라]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최고의 극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 의 작품을 원형으로 하였으며, 그전까지 아코 사건을 다룬 여러 작품을 집대성한 것으로, 내용의 완성도와 그 인기에 있어서 의 원류로 평가받고 있다.줄거리(47인의 복수극)1338년 2월 하순,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닛타 요시사다를 토벌하고 교토에 거처를 정하여 그 덕이 사방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동생인 아시카가 다다요시를 가마쿠라에 쓰루가오카 하치만의 궁에 칙사로 보낸다. 이 때 그를 영접했던 사람들은 고노 모로나오, 모모노이, 엔야 한간이었다. 영접을 위한 자리에서 고노 모로나오는 모모노이에게 무사로서 보일 수 없는 큰 망신을 준다. 저택으 동의하는 척 하고서는 고노 모로나오에게 뇌물을 몰래 보낸다. 이 일로 인해 고노 모로나오는 모모노이에게 지난 일을 사과를 한다. 하지만 이번엔 엔야 한간에게 듣기 거북한 말들을 내뱉는다. 성질이 급한 엔야 한간은 급히 칼을 빼들고 고노 모로나오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모모노이의 간신인 혼조가 말리는 바람에 고노 모로나오를 죽이는데 실패한다. 하지만 칙사를 접대하는 임무를 총괄하는 집사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죄가 되어 엔야 한간은 할복하게 된다. 엔야 한간은 죽을 때 자신의 억울함을 가신인 오보시 유라노스케에게 호소하고 복수해줄 것을 부탁한다. 주군을 잃은 한간의 가신들은 졸지에 로닌의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중 엔야 한간의 호위를 소홀히 했던 하야노 간페이는 주군의 복수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내인 오카루를 유곽에 팔어 돈을 벌지만 장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써서 할복 하고 만다. 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에 센자키 야고로와 고에몬에 의해 그의 누명이 밝혀짐으로써 그의 억울함이 풀리고 주군의 복수를 위한 연판장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한편, 가신 중 우두머리 격인 오보시 유라노스케는 기온의 유곽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로 모노나오의 경계를 풀기 위한 위장이었다. 여기서 그는 할복한 간페이의 부인 오카루를 풀어주고 배신자 구다유를 죽인다. 그가 야마시다에 은거하는 중 혼조의 부인 도나세와 그의 딸 고나미가 온다. 고나미와 유라노스케의 아들 리키야의 혼인 문제 때문이었다. 도나세는 유라노스케의 아내 오이시를 만나 혼인 문제를 간청하지만 오이시는 그녀의 간청을 단번에 거절해버린다. 그리고 결혼을 해야겠다면 도나세의 남편 혼조의 목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 때 아내와 딸을 몰래 따라온 혼조는 오이시의 말을 듣고 오이시를 죽이려 한다. 그러자 리키야가 들어와 혼조를 죽여버린다. 혼조는 죽기 직전에 자신이 고노 모로나오에게 뇌물을 횡령한 일, 그리고 그로 인해 화가 엔야 한간에게 돌아간 것, 엔야 한간을 말려 고노 모로나오를 죽이지 못한 것을 사죄한다. 움을 받아 고노 모로나오 저택을 습격 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46명(하야노 간페이 생략)의 무사들은 고노 모로나오의 저택을 습격하여 결국 모로나오를 죽여 엔야 한간의 영혼을 위로한다.주신구라 속 일본정서와 문화1. 무사도 정신-사무라이는 교토(京都)로부터 토고쿠(東國) 지방에서 일어난 무장 개척 농민의 수령 층이 점차로 토착 지방 세력으로 대두되어 생겨난 계급이다.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그들은 점차로 율령 체제와 귀족들의 토지를 잠식하여 12세기 말,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라는 양대 무사 집단의 무력 충돌 끝에 마침내 무력 정권의 탄생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일본은 (사무라이라는 신분이 폐지되는 메이지 유신까지) 사무라이가 거의 모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사실 사무라이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농업을 겸하면서 유사시에만 사무라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것이 16세기 말 도요토미의 병 농 분리 정책으로 농민에서 분리된 하나의 지배 계층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에 명예와 특권이 부여되자,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할 공통된 규칙과 기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더구나 그들은 늘 싸우는 자의 입장이었고, 각기 다른 씨족에 속해 있었으므로 그 필요성은 더욱 컸다. 무사 역시 부도덕한 행위를 할 경우, 엄중한 제재를 가하는 모종의 규율과 기중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무사도이다.-무사도는 글자 그대로 무인 혹은 가사가 지켜야 할 도리로서 무사가 직분을 이행할 때에나 나아가 생활 속의 언행에서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도리이고, 벚꽃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고유의 정신이다. 무사도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덕목으로는 인, 의, 용기, 충의, 충의, 할복과 복수, 명예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에 무사도 정신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선비정신이 있다. 우리나라의 선비정신은 서로가 협의하고 양보하는 정신으로 끊고 자르는 것이 분명한 무사도 정신과 매우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접근 방식의 차이가 있을에 대한 충성과 대인 관계에서 신의(또는 의리), 싸움에서의 용기, 약자에 대한 배려를 기본 규범으로 삼고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주군과 가신이라는 비교적 엄격한 주종관계를 지닌 까닭에 주군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 당연시되고 일정 부분 강요되었던 무사나 기사와는 달리 선비는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존재로서 임금에 대한 충성을 기본으로 하긴 했어도 임금이 부당하게 전횡을 일삼거나 국사를 그르칠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이를 단호히 비판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2. 충군애국-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사랑함3. 의리- 의리란 봉건사회 속에서 형성된 개념으로, 주종관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부부관계 등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규범이다.-의리와 인정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면 의리는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개념으로 친구간에 지키는 예의라기보다는 타인의 "은혜"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의무로 여겨진.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생각을 한다. 인정은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사랑, 동정, 연민 등의 감정을 말한다.작품분석(여러 시각의 문학)① 복수의 문학주군인 엔야 한간이 억울하게 할복하자 떠돌이 사무라이가 된 유라노스케와 그 동지들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로지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낸다. 간페이는 아내 오카루를 유곽에 팔아넘기는 일까지 감내하고, 고나미는 복수를 위해 떠나는 리키야와 하룻밤뿐인 부부의 연을 맺으며, 기헤이는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이혼장을 쓰고 어린 자식의 목숨까지 내놓는다. 이처럼 주인공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오직 하나, 주군의 복수에 있다. 따라서 [주신구라]는 주군의 복수라는 대명제에 모든 문제가 수렴되는 이다. 이 작품은 주군의 복수가 성공함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원한과 고난이 승화되는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② 죽음의 문학무사들의 복수를 그린 작품답게 총 열한 장 중에서 다섯이, 제6장에는 간페이의 할복이 각 장의 말미를 비장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본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제5장에서 착한 요이치베를 죽인 사다쿠로의 죽음, 제7장에서 모로나오의 개 노릇을 하던 구다유의 죽음은 악인의 말로를 보여주는 통쾌한 결말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원수 모로나오와 그 일당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함으로써 엔야 한간의 사건과 관련된 악인은 모두 멸망해 버리는 권선징악적인 면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어느 장면에서나 사건의 해결 방법은 항상 죽음이다. 제9장에서 딸 고나미의 혼사를 위해 죽음을 택한 혼조도 결국 죽음으로 현실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복수를 마친 유라노스케의 일행도 모두 죽음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선인도 악인도 모두 죽음으로써 무(無)로 돌아간다는 현실 인식과 더불어 억울한 영혼의 명복을 비는 진혼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③ 서민의 문학엔야 한간과 유라노스케 일행은 바쿠후의 불공정한 판결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시련을 겪는다. 당시 일본 근세 사회의 도시 서민은 신분상의 차별과 부당한 억눌림 속에 있었는데, 그들은 억울하게 당한 약자인 유라노스케 일행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화를 극화한 것인 만큼 [주신구라]의 기본 뼈대는 무사들의 복수담이지만,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이기 때문에 서민의 입장을 반영하거나 서민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따라서 [주신구라]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와 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애환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모로나오가 엔야의 아내 가오요 고젠에 대한 연모가 한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건은 물론, 리키야와 고나미의 애절한 이별과 상봉, 간페이와 오카루의 농염한 연애와 도피, 복수를 위해 생이별을 하는 기헤이와 오소노 부부, 이처럼 남녀간의 사랑이 작품 곳곳에 수놓아져 있다. 이들의 사랑은 주군의 복수를 위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기에 더욱 애절한 느낌을 주며, 복수라는 의리와 대비되어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