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현대 커뮤니케이션 이해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에답을 해야 한다. 우리는 왜 현대 커뮤니케이션을 깊게 탐구하려고 하는가? 우리, 조금 더자세히 말하자면, 21세기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학문으로 다루고있는 우리는 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가? 설교에 성경만 담겨져야 한다는주장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가?만일 , 이 질문에 ‘유효하지 않다.’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바로 ‘설교의 상황화’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설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필요한데, 김운용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설교는 하늘과 땅이 잇닿은 신비로운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사역이며,일상의 것과 초월의 것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룩되는 사역이다.1)’ 이처럼 설교는 사람이소유하고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이며, 이 사역에는 반드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설교의 상황화는 바로 설교가 오늘날의 시대와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설교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려지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연구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면서 우리는 현대라고 지칭되는 오늘날을 살아가면서, 과연 들려지는 설교를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세상은 이미 전달자 보다는 수신인이 중요해졌고, 전달자의 의도보다는 수신인이 받는 의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의 많은 학문이나 영역들에서는, 수신인에 대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중 략>샤논과 위버는 메시지를 부호화하고 그 부호를 다시 해독하는 과정29)은 인간이 그속에 개입하게 될 경우 주관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주관성에 대해 언급하였다.30)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문자적 구어적 연설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 시각예술, 연극, 발레 그리고 인간 행위 전반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하였다.샤논과 위버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견해를 발전시키면서 소음(noise)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는 전달자가 목적하는 전달이 소음의 개입으로 왜곡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즉우리는 샤논과 위버의 모델에서 ‘전달자의 메시지는 수신자의 메시지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를 잘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스펄전의 목사론200731235 장윤경1. 들어가며많은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되며 훌륭한 목회자라고 칭송받는 사람, 스펄전.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목사로서의 자질과 성품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또한 실력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스펄전 자신이 설립한 목회자 대학에서 금요일 오후마다 학생들에게 직접 강의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나는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가 훌륭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목사론을 읽고 나니 목회자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숙연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빠짐없이 답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깊이 와 닿은 부분들을 인용하고, 전체적인 나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2. 스펄전의 목사론 구성과 주요내용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목회자의 소명, 두 번째는 목회자의 성장, 세 번째는 목회자와 기도, 네 번째는 목회자와 성령이다.(1) 목회자의 소명 : 이 책의 첫 번째 구성인 목회자의 소명에서는 목회자로서 두가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기 점검으로서, 구원받았는지의 여부와 일반 성도보다 경건한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둘째는 소명에 대한 것인데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것인지, 이 소명은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 소명을 확인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해서 잘못알고 있으면 당사자에게 큰 불행이라고 말한다. 뿐만아니라 교회에까지 심각한 고통을 안겨 준다고 지적한다.그렇다면 소명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목회 소명의 첫 번째 표지는 강렬한 소망이다. 여기에 그의 말을 인용한다.여러분이 인도의 모든 재물을 다 주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을 제쳐두고 다른 직업을 택할 수 없다고 확신하며 다른 조건도 다 갖추었다면, 여러분은 이 사도 직분의 징표가 있음을 믿어도 됩니다. (p.52)그러나 동시에 스펄전은 목회의 열망은 일시적인 충동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피하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말씀 선포를 사모하고 열망하며 급기야 갈급해야 할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해지는 소망이라야 한다. 이 외에도 목회 소명의 두 번째 표지는 가르치는 은사이고 세 번째 표지는 사역의 열매이다. 그리고 네 번째 표지는 교회의 공적인 판단이다. 스펄전은 이 네 번째 표지에서 중요한 한가지를 지적한다. 바로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마다 모두 신학교에서 받아 주면 안된다는 점이다. 스펄전이 제시하는 목회자로서의 적합하지 않은 사람 목록을 나열해보겠다.세상적인 야망으로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회심한 이후 너무 쉽게 잘못된 교리나 행동에 빠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열심은 뛰어나지만 지력이 부족한 사람은 목회자에 적합하지 않다.이유없이 무조건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모든 일에 무능한 사람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목회 사역에 자만하는 사람도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다.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중요한 교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목회자가 된 이후에 목회의 실제적인 증거로 소명을 입증해야 한다.(2) 목회자와 성장 : 스펄전의 강의 내용 중 가장 긴 부분에 해당하는 목회자와 성장 부분에서는 목회자의 자기 계발, 목회자와 독서, 목회자와 대화, 목회자의 침체 등을 제시한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목회자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지성, 언어 능력, 도덕성, 영성, 실천 능력 등을 계발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며 필독서는 구입하고 소수의 좋은책은 암기하다시피 외워야 한다. 그리고 읽어 볼만한 책들은 지혜롭게 빌려보고 무엇보다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목회자인체 하는 태도는 피하되 휴식시간에도 목회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교적인 사람, 쾌할한 사람, 대화를 독점하지 않으나 벙어리는 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도 담대히 믿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나는 목회자와 성장이라는 부분에서 목회자의 침체에 대해 눈여겨 보았다. 스펄전은 목회자가 성도들보다 고난의 몫이 더 크다고 말한다. 목회자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딘가에 병들어 있고 영적 침체에 노출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우리의 수고는 정신적인 수고 이상입니다. 그것은 심령의 수고요, 우리의 가장 깊은 영혼의 노고입니다. 주일 저녁만 되면 생명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난 것처럼 기진맥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영혼을 성도들에게 전부 쏟고 나면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깨뜨릴 수 있는 빈 질그릇이 된 것 같습니다.그렇다면 목회자는 언제 영적 침체에 빠지는가? 스펄전은 6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큰 성공을 거두고 난 뒤, 둘째, 큰일을 이루가 전에, 셋째, 끊임없이 계속해서 사역을 하다가, 넷째, 한방의 결정타로 (예를 들면 배신, 분목, 분열, 비방, 비난 등) 다섯째, 고난이 겹칠 때, 여섯째, 영문도 모르면서도 영적 침체가 온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해결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심으로 찬송받으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감미롭게 전하며 그분의 사랑 속에 굳게 세워진다. 그렇기에 목회자의 영적 침체로 인해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펄전은 설명한다.(3) 목회자와 기도 : 스펄전은 목회자에게 물, 공기와도 같은 것이 기도인 것처럼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는 목회자 자신에게, 능력있는 설교에, 목회 성공에 대한 비결이다. 목회자는 평신도보다 기도에 더 탁월해야 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기도를 통해 목회자로서 다듬어지게 되며 능력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 설교하는 동안에, 설교후에도 기도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사역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목회자는 기도해야 한다. 스펄전은 사역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기도를 소홀히 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기도가 설교보다 항상 짧기에 평생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스펄전은 공기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공기도는 엄숙하고 겸손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화이기에 그러하다. 공기도는 설교를 우회적으로 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선 안되며 가급적 설교자가 공기도를 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에 스펄전의 말을 인용한다.여러분이 정말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려면 교인들에게 할 일을 줌으로써 교인 대접을 할 생각으로 기도할 사람을 고르는 관행은, 정중하지만 단호히 삼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십시오. 공적인 기도가 예의를 차릴 기회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중략)... 기도는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유용하고, 귀한 부분 중에 하나이며, 설교보다도 더 많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제 확고한 신념입니다. (p. 213)스펄전은 바른 공적 기도지침을 제시하는데, 공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해야 하며 교인들의 상황에 잘 맞아야 하고 짧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눈뜨고 기도하는 습관은 좋지 않으며 판에 박힌 예배 순서보다 변화된 예배 순서에서의 공기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제시한다.(4) 목회자와 성령 : 스펄전은 성령과 목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루면서 목회의 성공과 능력은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성령을 믿는 단계를 넘어 성령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식을 주며,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는 지혜와 능력을 주고, 설교하는 모든 시간에 기름부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가 열매맺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외에도 성령은 항상 기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다양한 성도들을 목양하고 교회를 잘 지도하게 한다. 이런 성령께서 떠나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런데 성령이 떠나시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이다. 스펄전이 말한, 어떤 경우에 성령이 떠나는지 나열해 본다.
선교 모델로서의 메시아 사상 : 선지자, 제사장, 왕성서선교신학예배설교학 1학기장윤경1. 들어가는 말선교 모델로서의 메시아 사상을 알아보기 이전에, 교회의 정의에 대한 성경적 접근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에서 해야 하는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이며 그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가에 대한 여부가 선교의 정당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회에 대한 성경적 접근은 교회의 사역인 선교에도 영향을 줄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교회의 성경적 정의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고전12:27). 이 말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몸 된 교회가 따른 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선한 사역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교회의 지상과제이다. 이를 위해 교회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 해 나감으로써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그렇다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역을 하셨는가? 구약시대부터 ‘메시아’로 예견되었던 예수님은 지상에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왕으로, 사역을 감당하셨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교회라는 관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는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메시아 사상의 삼중직, 즉, 선지자, 제사장, 왕에 대한 직분을 통해 고찰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아 사상이 교회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메시아 사상과 선교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1. 선지자선지자(先知者)의 한자어는 ‘남보다 먼저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학문을 먼저 아는 사람을 선생, 혹은 랍비(Rabbi)라고 할 수 있는데, 이보다 더 능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시를 아는 자이며 이를 백성에게 전달하는 Signing)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변하는 대변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성전 문 앞에서 선포하기도 하고(렘7장), 사람을 보내어 대신 말하게 하기도 하였으며(사37장), 거리에서 외치기도 했다(렘11장).그러나 이들은 말로만 외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행동은 하나님 말씀의 비유로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의 토기장이 비유)(렘18장), 에스겔의 녹슨 가마비유(겔24장)이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라고 할 수 있다.예수님도 이러한 선지자의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의 선지자 사역을 세가지 특징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은 실수나 잘못이 없는 선지자이시며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하신 분이다(벧전2:2-3). 둘째,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8절에서 볼 수 있듯이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표현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다. 셋째, 예수님은 행동으로 말씀을 보여주기도 하셨는데 이는 기존 선지자들의 모습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말씀의 비유를 위해 행동을 한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족식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원수들을 사랑하시되 생명까지 버리셨으며 특히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이러한 예수님의 선지자적 사역은 구약의 선지자처럼 한 시대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선지자 사역을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행하셨고 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깨달아 알게 하신다.2. 제사장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책이었다. 무지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주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법을 가르쳐 깨닫게죄를 속하는 속죄제를 반복하여 드려야 했다.) 즉, 구약의 제사장들은 스스로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 후에야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다. 이 제사는 해마다 반복되어야만 했는데 매년 대속죄일인 7월 10일이 되면 성전으로 나아가 속죄의 제사를 드렸고 그 때 마다 짐승의 피를 흘려야했다. 이러한 제사는 죄에 대한 경고와 경각심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지는 못하였다.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회복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드린 이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고 정상화되었으며 화목케 되는 역사가 나타났다. 예수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으셨고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희생제물의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제사장이신 예수님 자신의 피였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신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즉, 영원히 죄 사함을 받는 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백성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성전에 나아가 기도한 제사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항상 간구하시는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3) 왕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왕의 시초는 사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다윗, 솔로몬은 대표적인 왕으로 꼽힌다. 솔로몬 이후로 나라가 분열되면서 두 나라에 각각 다른 왕이 이스라엘을 지배했는데 이들 왕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들 왕은, 다윗이라고 할 지라도 완전하지 못했다.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예수 그리스도는 이중적인 왕권,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며, 교회와 세상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영적인 세계를 통치하시는 왕이신 동시에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가 되신다. 그분은 또한, 거룩한 시온의 왕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으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되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실 분이다(고전15:25).손윤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의 직분을 행하시는 이유를 요리문답을 근거로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 우리를 다스려 보호하시기 위함이요, 셋째, 자기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막아 이기시기 위함이다.이에 대하여 우리의 응답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순종’이다. 불안하고 연약한 우리는 그분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며, 그의 다스리심과 보호하심에 따라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원수를 막아 이기시는 왕이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의탁해야 한다. 이 분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인 강요와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우리를 보호하고 다스리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을 지키는 목자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되 때로 징계도 하신다. 징계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징계가 없으면 그것은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권고하면서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듯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히12:8))4) 메시아 사상의 삼중직과 교회우리는 메시아 사상의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을 결정짓고 있음을 보았다. 정리하자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행하신 선지자이셨고 스스로 제물되어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신 대제사장이셨으며, 온 우주와 이 세상의 왕이셨다. 그분의 직책은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완벽한 것이었으며, 영원한 시에 이 세 가지 직분이 세상에서 사역하도록 동원되었을 때의 역할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설명한다.예언자 - 사랑과 정의 실현을 위한 소명 : 도전을 주고 오히려 불편하게 하고 경고한다. : 생동감있는 설교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제사장 - 가능한 가장 쾌적한 영적인 상태를 갖게 하기 위한 소명 : 위로함, 수용, 용서 : 성례전집행이나 상담, 그리고 이와 유사한 활동인 목회를 통하여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왕 -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여러 가지 자원들을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관리함 : 관리나 기획,훈련활동 등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인 왕과 제사장, 선지자 직분 외에도 누가복음 4장 16-20절 말씀을 근거로 하면 ‘치유자’와 ‘자유케 하는 자’로서의 두 개념을 포함시키는데, 여기에서 이종성의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설명하면, 그리스도의 사역 방법을 다섯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성육신, 예언자, 제사장, 고난의 종, 왕이라는 관점에서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정리하면 그리스도는 자유케 하시고 치유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시고, 고난의 종이 되셨다.)여기에서 치유자의 역할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치유란 몸과 마음과 정신적, 영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말하며,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하나님과 화목할 것’(고후 5:20)을 외치심도 치유자로서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유케 하는 자라는 말은 해방신학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강조한 개념이나 주님의 주된 사역으로서 죄, 죄의 결과, 죄의 세력, 율법으로 말미암은 심판, 깨어진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내적인 표지로서 말씀과 권징과 성례전을 행하며, 세상을 향한 역동적인 속성으로서 통일성, 성결성, 보편성, 사도성을 가지되 그 중심 사역은 그리스도의 직분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세과 선교
성례전 연구Baptism in the Reformed TraditionA Historical and Practical Theology- John W. Riggs -예배설교학 1학기장윤경목 차Ⅰ. 서론1. 예배학 운동과 기독교 입문으로서의 세례 - 21) 예배 갱신 운동 - 32) 성인기독교입교예식(RCIA) - 53) 교회학 사전평가 - 84) 예비시험 : 루터란 예배서 -105) 연구의 범위 - 13Ⅱ. 제 1 장 개혁 세례 신학의 기초1. 제 1세대 : 쯔빙글리, 루터, 부처 - 141) 율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2) 마틴 루터(Martin Luther) - 183) 마틴 부처(Martin Bucer) -214) 요약 - 26Ⅲ. 도표 정리 - 26Ⅳ. 참 고 문 헌 -27Ⅰ. 서론1. 예배학 운동과 기독교 입문으로서의 세례예배학 운동)은 19세기 초에 유럽에서 시작되어 20세기 후반까지 세계 여러 지역들로 퍼져나갔다. 예배학 운동은 역사적 방법들과 신학적 관점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모든 방법들과 신학이 개신교 예배의 실제나 신학적 관점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기본적인 문제들은 신학적 움직임이 개신교가 추측하는 가정들을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전통과 부딪혔을 때 발생할 수 있다. 최근 개신교 학문은 예전적 역사를 연구할 때 이러한 관점을 알아보려고 한다. 제임스 화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개신교 예배의 연구는 주로 로마 가톨릭 예배의 학문으로부터 이끌어낸 방법에 의해 세워졌다. 실제로, 이것의 주요 관심은 예전적인 내용들이었음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이 성례전이다. 그것들은 로마 가톨릭 예전적 학문의 주요소이며 그러한 연구의 방법론들은 주로 지난 반세기 동안에 주의 깊게 발전되어 왔다. 원문 연구들, 특히 미사에 대해서는 그 양이 방대하다.) 나는 이러한 연구가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이 드리는 예배에 왜곡된 심상을 부여하고, 또한 그들의 예배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주장한다.)Section 1에서는 성인진 세례 성례전과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비전을 꿈꾼다. 각 사람이 그의 사역을 할 때, 그리스도에게로 새롭게 접목될 것뿐만 아니라 예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세례를 받고 RCIA에 참여함으로써 예배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예전은 교회의 갱신을 위한 다년간의 예배학 운동의 요구의 표현이다. 1914년에 보댕(Beauduin)은 ‘교회의 경건함(La Piete de l’eglise)’을 출간했다. 여기에서 그는 예배는 모인 공동체의 사역이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 안으로 지속적으로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믿는 자들은 내적으로 성령 안에서, 외적으로 사명 안에서 새롭게 된다.만약에 기독교 입교의 예식이 예배학 운동의 수년간의 목표에 부분적인 성과를 가져왔다면 그것 역시 현재 예배학 이론의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예배학 이론은 많은 형태들을 가져왔다.) 나는 예배학 이론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카바나흐(Aidan Kavanagh)와 그의 제자인 파거버그(David Fagerberg)를 꼽는다. 여기에 전반적인 신학적인 계획의 부분으로써 표현된 예배 신학 이론이 있다.예배 신학은 교회학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배하는 모임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교회학은 기독론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가 그분의 몸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기독론은 구원론을 포함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기능적으로 우리가 유월절 신비에 접목되어 성육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죄의 교리가 없어도 구원론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인간성이 의미하는 바를 드러내는 창조의 교리 없이 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하나의 다이아몬드에 여러 측면이 있듯이 교회도 예배에서의 언어와 행동을 규정한다. 보댕과 다른 학자들이 잘 표현했듯이 특히 3가지 관점이 예배학 운동의 목표에 반영된다. 예배의 사건은 그 자체로 예전적이며 교회학적이고 목회적이다.예배 신학의 기본적인 전제로 생겨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예배 안에서, 속적으로 예식의 중심적 기도와 구조 안에서 이 자료를 제정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루터가 이 기도서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자료들은 모두 명료하지 않고 이차적인 문헌이 방대하다.) 루터의 자료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의 홍수 기도는 초기 개혁 전통의 세례의 기도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개신교 예배서들의 기도문들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루터의 1526년 세례 예식서를 보면 홍수기도(Flood Prayer)는 축귀의식과 복음서 읽기로 구성되어있다. 루터는 홍수기도에서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과 인간의 응답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새로운 탄생이 도출되었음을 주장했다.루터 그 자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세례 사에의 기본적인 연결을 이해했을지라도 루터는 창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대신에 신실한 노아로 시작했다. 세례의 순간에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두 가지 예표론적인 순간들 중의 첫 번째로 노아에 대한 암시가 시작되었다. 첫째,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세상의 도전이다. 노아는 믿었고 그는 생명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죽음으로 갔다. 루터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당신의 의로운 판단에 의해서 세상은 정죄를 받았고,당신의 크신 자비에 의해 노아와 그의 자곡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다음으로, 루터는 동일한 결정적인 순간을 예표론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바로의 이야기를 사용했다. 바로는 그의 마음이 굳어졌고 죽음으로 간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생명으로 지나갔다. 여기에 루터는 정면으로 맞선 사람에 대해 두 가지 선택을 병행시켰다.마음이 굳은 바로는 그에게 속한 사람들과 함께 홍해바다에서 익사했고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은 마른땅으로 인도되었습니다.하나님을 신뢰하거나 믿지 않는 것, 생명이나 죽음의 순간은 세례의 현재적 순간을 예표한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을 지지했거나 하나님께 대응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받은 사람역시 평생 하나님을 지지하거나 하나님께 대응할 것이다.게다가 루터의 기도는 (극히 신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그 해 6월, 쯔빙글리는 화체설의 개념을 거부했고 성경에 의거하여 미사의 성만찬 부분을 재고했다. 성경적 기준에 대한 관점을 갖고 있던 몇 몇 지역시민들은 우상과 형상에 반대한 공적인 논증의 심각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9월에 한 구두 수선공이 지역 방앗간에서 사유재산으로 만든 십자가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체포되었다. 시의회는 2차 논쟁을 소집하였고 10월에 열렸다. 결과는 다소 실망적이었다. 왜냐하면 미사는 여전히 라틴어로 진행되었고 성찬식에서는 오직 빵만 사용되었고 개인적인 모임과 특별한 집회들은 형상을 신중하게 제거하도록 했다.1524년에서 1525년에, 취리히는 평화와 경건함을 추구하는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과 로마교회가 깨어질지라도 성경을 원칙으로 하는 복음적인 예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미사에 대한 온건한 개혁은 십일조를 내는 것과 형상에 대한 논쟁에 대해 반박했다. 쯔빙글리를 따르던 사람들과 친구들의 소수의 목소리는 급진파로 구성되었고 새로운 종교적인 개념들을 의논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였다. 유아세례에 대한 질문이 부상되고 성경적 근거에서 도전받았다. 1524년 8월에 지역 시민들이 그들의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향은 취리히를 중심으로 세례반이 부서진 이웃 마을 졸리콘까지 퍼져나갔다. 1525년 1월에 의회는 세례 받지 않은 모든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했고 모든 비밀스러운 모임은 중지되었으며 졸리콘 교회의 세례반은 고쳐졌다.1525년 1월 21일에, 복음주의자들은 쯔빙글리와 함께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도시 의회는 펠릭스 만츠(Fellix Mantz)의 집에서 모였다. 콘라드 그레빌도 참여했는데 그는 비엔나와 바질에서 수학했고 그 곳에서 쯔빙글리와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도한 후에 조지 블라우록(George Blaurock)이 그레벨에게 세례를 줄 것을 요청했고 그레벨은 그렇게 했다. 그때 블라우록은 15만, 사나 죽으나 끊임없이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그리고 루터는 사제서품, 견진성사), 속죄의식, 결혼, 지나친 도유와 같은 견해들에 대해, 복음서의 약속이 그 안에 적절하게 담겨 있다면 그 성례전은 적합하다고 설명하면서 ‘모든 성례전들은 믿음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교회의 바빌론 유수’에서, 루터는 성스러움의 약속이 되어야 하는 성례전 구조가 올바른지에 대해 논쟁했다. 그리고 성례전을 받을 때 믿어지는 표면적 상징에 가치를 부여했다. 한편으로는 성례전의 중요점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의 약속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란 성례전적인 관념으로의 믿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했다.) 자연적으로, 그 이후에 루터는, 그의 소요리문답을 썼고, 그는 이러한 모든 논쟁점들을 주의 깊게 구분했다. 세례의 두 번째 장에서 루터는 세례의 효과에 대해 언급했고 세 번째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러한 효과들을 생산하는 것은 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물과 연결되어 우리의 믿음이 물과 연결된 하나님의 말씀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물은 더 이상 세례가 아니다.루터는 3장과 4장, 그리고 마지막장에서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살기 위해 날마다 옛 아담이 죽고 매일 깨끗함과 의로움을 입는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서의 세례의 중요성을 묘사했다.더 세부적일지라도, 비슷한 방식으로 루터는 이러한 세례의 관점들을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묘사하였다.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루터는 ‘말씀에 물이나 자연 요소에 더해지면 그것은 성례전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만이, 물과 접촉되는 말씀을 타당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례의 효과를 가져온다.성스러운 약속, 상징, 믿음(Promise-Sign-Faith)의 3요소는 루터의 고전적 성례전 구조가 되었고 루터교 교회들과 개혁교회들과 같은, 거의 겨 개개혁 성례 신학에 영향과 같었다. 1장에서는 루터의 1526년 세례예식과 그의 유 했다.
설교의 역사레오 대제, 그레고리 대제, 비잔틴 시대의 설교발제일: 2011. 3. 21발제자: 장윤경 (예배설교학 1학기)목 차Ⅰ. 들어가는 말 - 2Ⅱ. 5, 6세기 중세시대 개관A. 정치적 상황 - 3B. 사회적 상황 - 4C. 교회의 상황 - 5D. 설교의 상황 - 7Ⅲ. 레오 대제의 설교A. 레오 대제의 생애 - 8B. 레오 대제의 설교신학 - 10Ⅵ. 그레고리 대제의 설교A. 그레고리 대제의 생애 - 13B. 그레고리 대제의 설교신학 - 15Ⅳ. 비잔틴 시대의 설교A. 시대적 상황 - 17B. 비잔틴 시대 설교의 특징 - 19Ⅴ. 나가는 말 - 20Ⅵ. 참고문헌 - 21Ⅰ. 들어가는 말요즘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교회가 마땅히 추구해야 마땅한, 모범적이고 도덕적 삶의 태도가 시들해졌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이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교는 듣기 즐거운 말을 하는 연설로 치부되어 버렸고,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윤리적 문제점들이 하나씩 들춰지고 있기에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어두워 보인다.이러한 한국교회의 상황과 비슷하게도 5, 6세기의 중세는 기독교 역사에서 암흑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암울하다. 이러한 중세적 상황은 고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와 비교)했을 때, 암흑이라는 별칭이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설교에 있어서는 4세기 즈음의 고대와 많이 비교되는데 그 이유는 고대에 훌륭한 설교자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설교가들은 체계적이면서도 충실한 내용의 설교를 통해 영혼 구원과 기독교인으로서 지녀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고취시켰다. 그러나 중세의 설교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에 대해 홀란드는 “교부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의 후계자들이 바로 뒤를 잇지 못했으며, 초기 암흑시대의 설교는 역사상 최하점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교회 안팎으로 배출되는 교회 지도자들의 야욕과 부패, 그리고 복음 설교의 변질)로 인해 교회의 타락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이러한 중세의 모습들은교라고 부르는데 이 비잔틴 기독교는 향후 4세기 반 동안 크게 확장되어 동유럽과 발칸반도에 지배적인 신앙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한편 이 시기에는 교황권의 종교적이고도 세속적인 힘이 형성되었다. 이형기는 중세 초기의 교회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유능한 사람들이 교황이 되어 교황권이 강화되었고, 교황의 권위가 지리적으로 확장되었다. 사실은 500년 이전부터 서방 교회는 로마제국의 붕괴로 인해 생긴 공백상황에서 교황들의 권위가 상승세를 경험했다. 그런데 이 상승세는 교황의 보좌에 앉은 개인들의 능력과 상황에 의존하였다. 무엇보다 정치적 무질서와 혼돈이 교황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게다가 로마의 교황청은 로마 교황의 우위성을 교회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정당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정당성 작업은 의문되는 점들도 있을뿐더러 미신적인 주장도 없지 않다. 교회 설립을 두고 복음서)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로마는 베드로의 일 터전이었고 바울까지 합세했기 때문에 중요한 위치라고 주장)하는 점 등이 그러하였다.다아간이 지적하듯이 “교회 조직은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조직에 속한 여러 등급의 주교들을 통해서 정점”)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교황들의 위치, 즉, 교황들이 로마세계의 대표이자 보호자로 간주되며 정신적으로 로마의 황제들의 자리를 물려받은 자들로 여겨지는 경향에 대해 이형기는 좋은 결과 뿐만 아니라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지적한다.좋은 결과로는 이 교황들로 인하여 서방 교회의 구조적 통일성이 생겼고, 유럽의 정신적 유대감이 형성되었으며, 통일성 있는 중세 교회 문화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쁜 결과로는 사랑의 통일성보다 조직적이고 제도적이고 관료적인 통일성이 앞섰다는 점이고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로마제국의 힘과 같은 세속화된 힘과 혼합되었다는 것이다.)D. 설교의 상황중세시대의 설교에 대해 헨리 브라운은 설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침체된 어둡고 부패한 시기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설교의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동, 서교회 안에 정통교리를 수호하고 확립하였다.)B. 레오 대제의 설교신학레오는 로마 공동체와 전체 교회에 대하여 서간)과 설교문)을 남겼는데 그것들은 라틴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당시의 교회 역사, 신학,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보여주고 있다.레오가 남긴 96개의 설교들은 대부분 짧은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긴 것도 20분 분량이었고 대다수가 그 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주로 축일)에 행해졌는데 사순절, 성인의 날과 같은 다른 행사 때에도 주로 행해졌다. 레오의 설교 강론집은 성격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하나는 교의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례적인 것이다. 그 중 교의적인 강론에는 이단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그의 설교문을 보면 그러한 특징이 드러난다.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마니케오 파의 악마적인 이단은 이 유일한 신앙, 모든 세기를 통해 예언된 진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농락하고 죽이기 위해 모독적이고 불합리한 거짓말에서 나온 유해한 학설을 꾸며냅니다. (...중략...) 사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한 여자의 몸 속에 내려오셨다는 것과 그리고 육신의 본성과 일치되어 실제 인간의 가짜 육신 안에 태어나실 정도로 그분의 엄위를 치욕적으로 낮추셨다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그분에게 모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의 결과입니다.)한편 전례적인 내용이 담긴 설교에서는 교훈적인 내용)을 가르쳤으며, 교회의 미덕, 자선, 고해성사를 권고하며 가르쳤다.레오의 설교 중에서 수난에 관한 8편의 설교는 주목할 만하다. 그 내용은 예수의 체포, 빌라도의 순응하는 죄, 유대인들의 커다란 잘못, 그리스도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과 시몬이 그것을 나누어지는 의미, 십자가의 심오한 의미를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보는 방법에 관한 것인데 다아간이 제시한 레오의 설교 인용문을 보면 십자가의 매력적인 힘중세 카톨릭 신앙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그레고리의 이러한 모습은 비판적으로 평가되었다.그레고리의 중요한 업적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교황으로서 교회령을 관할한 것이다. 이 교회령은 매우 큰 재산으로서 시실리,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북부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까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교황청의 유지비와 로마의 식량의 공급원이 제공되었큰 재산레고리는 이 수입을 사용하여 교직의 생활 및 공중 예배이 경비로 지출하고 로마의 방위와 여러 가지 자선사업의 기금으로도 사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교회 뿐 아니라 국가의 문제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었다.)이러한 그레고리의 생애를 놓고 그에 대해서 평가한 해리 로젠버그(Harry Rosenberg)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콘크탄티대제와 종교개혁 사이의 대략 180명의 로마주교 가운데 그 누구도 대(大) 그레고리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였다."B. 그레고리 대제의 설교신학가톨릭의 백과사전에는 그레고리에 대하여 “그는 출중하게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고 논쟁가도 아니었다. 그는 실상 엄정한 의미에서 신학자였다고도 할 수 없다. 그는 한 훈련 받은 로마 법률가였고 행정가였으며 수도사이며 선교사이고 설교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영혼의 의사였으며 사람들의 지도자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중세 가톨릭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음을 가늠케 한다.)그에게 해당하는 여러 가지 수식어 중에서 설교가로서의 그레고리는 오리겐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 카시안, 어거스틴)은 그의 영적세계를 자극했다.) 이러한 영향 아래, 그레고리는 설교를 자주 할 정도로 성실했고,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그의 설교는 62개)가 전해지는데 22개는 에스겔서에 관한 것이고 40개는 복음서에 관한 것이었다. 설교 중 일부는 그 자신이 직접 썼고, 일부는 다른 사람이 받아쓰고 그가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설교들은 대개 짧지만, 몇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돔(dome)안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도 창공처럼 무한하고 심오하게 보인다.)B.비잔틴 시대 설교의 특징비잔틴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 교부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비잔틴은 기독교제국, 특히 그리스 신부들, 갑바도기안들, 안디옥 신부들, 알렉산드리안들의 교부들에 대한 상속인)이었다. 이러한 교부들의 신조를 이어받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다마스커스 요한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비잔틴 혹은 희랍 정교희의 표준 신학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이형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그도 그럴 것이 광범위하고 명쾌하게 기술되었고, 가톨릭교회의 희랍측 신앙을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동안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이 피터 롬바르드(Peter Lombard)와 아퀴나스(Thomas Aquinas) 등을 포함하는 서방측에도 영향을 끼쳤다.)비잔틴 교회에서 설교된 내용은 교리적이면서도 도덕적 실천에 대한 권고가 주된 내용이었다. 이 시대의 설교는 온유함, 겸손, 죄인의 용서, 악을 선으로 갚는 일, 원수 사랑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것을 많이 말하였다.)Ⅴ. 나가는 말중세초기의 기독교는 시대적인 어지러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신앙을 지켜나가려고 애쓴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교회가 타락하고,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평가 속에서도 신앙의 본질과 기독교의 복음을 참된 모습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분명히 있어 왔음을 보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레오 대제와 그레고리 대제를 살펴보았는데 이 두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정치, 사회적인 영향력을 모두 행사하였다. 그들은 설교를 통해 이단에 대항하려고 노력했으며, 사회적인 악을 개선하고 높은 도덕성과 교훈적인 내용들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들은 삶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대제(大, Great)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시대가 어둡다고 해서 역사는 그 시대를 암흑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대를 밝혀 줄, 사람들이 존재하느냐의 여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