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글쓰기청소년 자살의 원인과 해결책예전에 비해서 최근 청소년의 자살은 심각한 사회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게 된 청소년 자살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 써보겠다.청소년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힘들게 하는가장 큰 원인은 성적과 학교폭력이다. 성적 지상주의 교육에서 학생들은모두가 경쟁의 대상이고. 학교는 치열한 경쟁의 마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동료에대한 적개심이 학생들의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성적으로 소외되고 상처 받은 학생들의 마음은 친구에 대한 우정과 배려보다폭력으로 표출되고 만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친구나 후배가 아니라 내 욕구의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상대방의 인격은 철저하게 무시되는 것이다. 난폭한 언어나 물리적인 힘 혹은 고의적인 따돌림으로타인을 괴롭히고그것으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풀어내거나 과시하려고 한다. 이런 감정이 타인에게 가해질 때 학교 폭력이 되고 자신에게 향하게 될 때 자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가해자가 되면 피해자가 있게 되고 그 피해자는 막다른 길에 들어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자살을 만드는 시스템이 도돌이표처럼 우리 교육에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내놓는 처방이 자살 예방 교육, 상담 교사 배치, 자살 고위험군 학생 조사 등이 있다. 잘 보면 이런 조치가 형식적이고 임기응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내과 질환의 환자를 외과 치료로 고치려는 격이다.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을 담당하는 학교가 학생들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그것이 늘 작동하도록 힘써야 한다.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누군가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설혹 그것이 몇몇 학생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의 경우 그런 징후나 원인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학생들이 그것을 선생님들에게까지 들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교사와 학생의 소통이 단절된 가운데 학교 폭력은 몇몇 학생 간의 갈등으로묶여진 체 방치된다. 교사와 학생의 교류가 없으니 학생의 문제를 교사가 모를 수밖에 없다. 교사가 먼저 자신의 일보다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여기에는 ‘학생 수가 많다’, ‘업무가과중하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제자가 죽어가는데 무슨 말인가. 학교 폭력이 없는 학교의 공통점은 학생의 문제가 드러나고,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힘을 모아서적극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대구에서는 한 학생이 자살한 몇 달후 같은 학교에서또 다른 학생이 자살하였다. 자살과 폭력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간의 적극적이고 애정 어린 관심과 협조 없이는 예방 교육도 소용이 없다.자살할 학생이라면 문제가일어나기 전에 학교나 주변의누군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목격자가 나타나고 증인이 나타난다는 거다. 그동안 그들은 방관자이거나 공범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되었을까? 친구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 자신이 개입하는 것이 두렵고 귀찮아서 일까? 자신이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사건을 해결하는데 참고인으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것에 대한 귀찮음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여기에서 핵심은 정의감과 도덕적 문제라고 생각한다.정의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배우지도 못했고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실천과 양심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간단히 말하면 교과서 안의 내용을 교과서 안에서만 다루었지 현실 생활에서 학생들이 체험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그런 것을 배울기회가 없었다가 보다 학생들이 박탈당했다는 말이 적합하다. 형식적으로 그리고 타율적으로 적당히이루어지는 지금의 학생 자치활동이나 클럽 활동은 내가 보기에 교육과정의 장식에 불과하다.그런 예는 고등학교 축제에서 볼 수 있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로 이틀이나 하던축제를 어느 때부턴가 반나절로줄이고 내용도 별로 없는 프로그램으로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에는 차라리 교실에서 하던 수업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게 편하다는 교사들의 반교육적인 편의주의도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존중받는 교육, 자기 운명의 주인이 자신임을 체험하는 교육, 교육 내용을 현실에서 찾아 실천하는 교육을 해야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인격도 나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불의나 불행에 방관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구의 상당수가 공동주택에서 거주하는 우리는 집에서 아무생각 없이 '쿵쿵' 뛰기도 하고, 윗집에서 들려오는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층간 소음은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있다고 한다."사적인 공간에서 내 맘대로도 하지 못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동주택에서 서로 부대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란 있을 수 없다.같이 살고 있는 이웃을위해 층간소음을 최소화 하고소란한 행동에는 스스로 제약을 가해야 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몇몇의 배려심 없는사람들 때문에 이웃 간의 불화가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폭력으로 번지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인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한다.실제로, 명절 때 서울로 부모님을 뵈러 온 두 형제가 아랫집에 있는 이웃과 층간 소음 문제로 말다툼을 버리다 흉기에 휘둘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그 여파로 당뇨병을 앓고 있던 두 형제의 아버지는 사건 발생19일 만에 사망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또 대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도 아랫집에 있던 남성이 윗집에서'너무 시끄럽게 한다.'며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를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이렇게 이웃 간의‘층간소음’폭력은 우리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됐나?’ 하고 의구심을 들게 만들기도 하고, ‘이웃 간에 얼마나 대화가 없었으면..’ 하며 혀를 차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층간소음에 노출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2006년 KBS에서 전국공동주택에 거주하는 20대 남녀 5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5.6%가 층간소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고, 응답자 중61.5%가 층간소음 문제로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층간소음은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큰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데, 그렇다면 층간소음의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가 11월 7일 부터 22일 까지 국민 3040명에게 층간소음의 주 원인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이이들 뛰는 소음이 1677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기계소음, 어른이 걷는 소음 등 순으로 층간소음이 발생하는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것들이 층간소음의 본원적인 원인일까? 아니다. 아이들의 소음, 악기, 문 여닫는 소음은 단지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층간소음을 야기하는 범인은 무엇일까? 범인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 층간소음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우리의 이기주의일것이다.공동주택에 살면서도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나 편한데로만 행동한다면 당연히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집이 조용하다고 해서 아래집도 조용 할 거라고 단정하면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게 된 걸까? 조선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웃 간의 정이 넘쳐 났고 '이웃사촌'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무색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도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밝게 인사하는 얼굴은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성행을 해서 그런것인가? 어찌됐건, 지금 우리는 이웃에게 너무나도 관심이 없다. 대화는 고사하고, 인사 몇 마디 나누기도 불편한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현재로는 층간소음을 관리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교육, 홍보와 같은 방법이나이웃 간의 자율적인 화해로서 풀어나가고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아직 법적인 절차가 확립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어떻게 층간소음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까? 여태까지 건설된 공동주택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앞으로 지어질 공동주택에서는 층간 두께를 강화한다든지 방음장치를 층간에 설치 한다든지, 층간소음 방지기준을 설정하고 실제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층간소음방지가 강화된 공동주택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해결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 따라서,같은 공동주택내의 이웃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관행이도입되어야 한다.'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속담도 암시하듯이, 안면을트고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이웃에게아무래도 더 조심히 행동할 가능성이 높고, 함부로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못 하게 될 것이다. 즉,인사를 통해 이웃의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공동주택 단지별로 아파트 부녀회장이나 통장을 필두로 이웃 간에 웃으며 인사하는 관행을 만들어 나간다면 층간소음이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 해결방안으로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층간소음의 직접적 원인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음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잘만 관리 한다면 층간소음으로 부터 오는 많은 문제가 해결 될 것이다.우선실내에서 아이들에게 꼭 충격을 완화해주는 실내화를 착용하도록유도해야 한다. 아이들은 뒷굼치로 쿵쾅 거리며 걷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실내화를 착용하게 된다면 소음이 덜 유발될 것이다.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아이들이집안에서 뛰어 다닐 경우따끔하게 혼을 내어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 예의 없거나공공장소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아이를 둔 부모는 대부분 혼을 내지 않거나 아이들을 방관하는경향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운 아이들은 집 안에서도 시끄러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아이를 엄격히교육을 시켜서 뛰지 않도록효과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더나아가, 마루에 소음흡수 카페트를 깔거나돈을 투자하여 층간소음방지 공사를 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공사를 해야 하므로 쉽사리 마음이 내키지 않는 방법들이다.
인문사회글쓰기 레포트제목 : 선물중심글감 : 크리스마스 때 부산으로 가서 여자친구와 데이트주제문 : 여자친구가 깜짝 선물을 준비해서 감동을 먹었다서두 : 부산으로 가서 데이트를 했던 이유는 사귀면서 여행을 같이 간적이 없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부산으로 데이트하러 갔었다.본론 : 사귀면서 같이 의미 있는 데이트를 못해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핸드폰으로 부산에 대해서 유명한 맛집과 커플들이 꼭 봐야하는 곳들을 검색해서 보았다. 검색을 하면서 남포동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장식으로 꾸며놓은 거리와 해운대 바다가 제일 맘에 들어서 그곳으로 가리고 정했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남포동거리로 갔다. 도착해서 보니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그래서 여자친구와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고 같이 다정한 모습으로 찍고 다녔다.구경을 다하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를 갔다. 해운대를 가서 바다구경하고 같이 걸어가면서 그동안 말 못했던 서운한 말과 화났지만 얘기를 못한 일들까지 서로 얘기하면서, 서로에 대해 전보다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때 여자친구가 먼저 근처에 자주 가던 곳이 빕스인데 거기가 진짜 맛있다고 해서 따라갔다.기다리는 동안 와인과 음식을 주문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나왔다.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종업원들이 케이크와 선물을 들고와서 생일 축하노래처럼 100일 축하노래를 불러줬는데, 처음에는 시킨 적이 없고 종업원들이 실수한 것처럼 느껴져서 심기가 불편했지만, 100일 노래와 내 이름과 여자친구이름이 케이크에 위에 예쁘게 장식 돼 있어서 약간 당황스러웠고, 놀랬다.여자친구가 자기는 사귀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해주고 받기만해서 하루 전에 종업원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부탁을 했다고 했다. 순간 여자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였고, 사귀는 동안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한 거에 미안했다.
인문사회과학글쓰기2010010866 경영학과 2학년 김우진세대 간의 갈등과 해소방안어느 누가 아무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기를 거부할까?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갈망하는데도, 현실은 참 녹록치 않다. 무엇이 우리를 방해하는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세대 간 갈등을 느끼게 되는 가장 중요한 사례 세 가지를 들면 이렇다.첫째, 자녀와 부모 사이의 갈등이다. 양극화된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빠듯한 삶을 산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노동시장에서 학력 차별이나 능력 차별이 극심하다. 그런 척박한 현실을 경험하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공부를 많이 시켜서 좀 편하게 살게 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본인들이 노동시장이나 노동과정에서 차별을 받는 가운데, 막상 그 차별의 구조나 과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무능력을 탓한다. 가방끈이 짧아서, 또는 학벌이 좋지 않아서, 아니면 전공이 좋지 않아서, 한마디로, 자신은 일종의 루저이기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남 몰래 눈물도 흘린다. 차별구조 때문에 서럽기도 하고 그 구조가 야기한 패배감과 좌절감, 무력감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전쟁 상황에서 경험한 폭력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에게 정신적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 트라우마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제 사람들은, 내 자식만큼은 공부를 많이 하거나 좋은 대학을 나오고 인기 학과를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자식을 통해서 부모의 트라우마를 풀려고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이게 모두 네 장래를 위하는 길이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제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변하고 많은 경우 새로운 트라우마를 낳는다.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이 비극의 뿌리, 즉 차별과 불평등이 야기하는 제도적 폭력을 예사로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결코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물로 봐선 안 된다. 자녀도 엄연한 인격체다. 자기 삶의 주체인 것이다. 부모의 삶은 부모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되, 자녀의 삶에 대해서는 자녀에게 삶의 주체임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그런 관점에서 무한정 지지를 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세대 간 갈등은 무난히 극복된다.둘째,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의 갈등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약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막강한 가부장적 문화나 가족제도 때문에 우리는 결혼을 하되 곧잘 ‘남성이 장가를 든다.’라는 말보다 ‘여성이 시집을 간다.’고 한다. 신부 입장에서는 친정을 떠난 서러움과 시댁에 적응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가 겹쳐 다가온다. 게다가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온갖 가사노동 및 하루 세 끼 식사를 같이 해결하려다 보니, 서로 가치관이나 해결 방식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서방님도 챙겨야 하고 시부모도 챙겨야 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늘 자기가 키워온 아들이 자기 말보다 자기 아내 말을 더 많이 듣는 것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다. 심하면 자식을 며느리에게 뺏긴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며느리조차 직장에 나가기에, 대접을 받고 싶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 속옷 빨래까지 해주는 경우까지 생긴다. 서로 존중하면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서로 기대가 다르고 서로 실망감을 느끼면 관계는 악화하고 갈등은 심화한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급속히 변해서 대부분의 신혼살림은 독립한다. 시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자식과 며느리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온갖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자식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많은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반기지 않는다.물론 같은 집에서 두 세대가 모여 살면서도 서로 존중하고 인내하면 모두 좋다. 나중에 손자손녀가 태어나 3세대가 원만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개는 모여 살다 보니 갈등이 심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주도 방식처럼 부모 세대와 자녀 부부 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도 위채와 아래채로 나눠 사는 방식이다. 식사도 대개 따로 해결한다. 둘째는 도시 아파트의 경우, 별도의 살림집을 꾸리면서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이다. 둘 다 원리는 같다. 가까우면서도 약간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서로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자주 만나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건 함께 하는 방식이다.셋째, 선거 과정에서의 세대 간 갈등이다. 많은 경우,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이 힘겹게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해 근본 뿌리를 파헤치고 올바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거나 별로 없다. 그저 내 손에 돈이나 먹을 것이 많이 들어오면 좋고 나만 다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게다가 특히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전쟁이 야기한 온갖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전쟁의 근본 뿌리를 파헤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사회 운동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 국면에서 보수 정당을 찍는 건 다반사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거나 대중 소비의 시대를 누리며 자란 젊은 세대는 “왜 우리가 근로소득세를 내어 보수 정치가를 뽑은 노인들에게 복지를 해주어야 하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의견도 일리가 있긴 하나 길게 보면 편협하다. 우리가 소망하는 사회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사회라면 정치적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모두 혜택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 세대 간 갈등이 줄고 연대가 구현된다.
인문사회과학 글쓰기제목 : ‘7번방의 선물‘영화를 보고중심글감 : 7번방의 선물이 말하고자 하는 것.주제문 작성 :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말해주고 있는 영화이다.서두 : 내가 7번방의 선물을 보게 된 것은 친구가 내 집에 찾아와 이번에 좋은 영화가 개봉 되었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보고 싶던 마음에 친구랑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보게 되었다. 그 영화가 7번방의 선물이다.본론 : 1. 가방을 사기 위해 갔다가 경찰청장을 만남2. 경찰청장 딸을 살해했다고 오해를 받아 사형을 받게 된다.3. 교도소 과장도 이용구를 도우려고 했지만, 실패하였다.4. 억울하게 사형 당한 이용구를 위해 딸은 변호사로 성장해서 누명을 벗겨준 다.마무리 :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으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영화이다.인문사회과학 글쓰기2010010866 경영학과 2학년 김우진7번방의 선물내가 7번방의 선물을 보게 된 것은 친구가 내 집에 찾아와 이번에 좋은 영화가 개봉 되었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보고 싶던 마음에 친구랑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보게 되었다. 그 영화가 7번방의 선물이다.줄거리를 보자면, 1997년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 이용구는 딸 예승을 위해 세일러문 캐릭터가 그려진 노란색 가방을사는 것을 꿈꾸며, 매일같이 가방 가게 앞에 들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가방은, 결국 경찰청장의 딸의 것으로 넘어간다. 그 가방을 예승에게 사주고 싶었던 용구는 세일러문 가방을 매고 있던 경찰청장의 딸에게 집적대다가 경찰청장에게 맞는다.다음 날, 용구가 마트 주차요원으로 근무하여 받은 월급을 계산하던 도중 가방을 사 갔던 경찰청장의 딸을 만나고, 가방을 멘 아이는 용구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세일러문 가방을 파는 다른 곳을 알려주려고 전통시장의 골목길을 뛰어가던 아이는 스스로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뒤통수가 깨지고 떨어진 벽돌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아이를 따라갔던 용구는 목격자의 신고에 따라 경찰청장의 폭력에 대한 보복으로 아이를 살해, 강간한 것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아 성남교도소에 입감된다. 집에 혼자 남은 예승은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된다.성남 교도소에 있던 용구는 어느 날 같은 방을 쓰던 방장을 살리게 되고 방장은 용구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 용구가 딸이 필요하다고 하자, 다른 수형자들의 도움으로 예승을 몰래 교도 방으로 들여온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납치범에게 아들을 잃은 보안과장에게 이 사실이 발각되어 용구는 과장으로부터 미움을 받지만, 다른 재소자 박상면이 저지른 방화로 죽을 뻔한 보안과장을 용구가 구하자 과장 역시 생각이 달라져 용구를 도우려고 한다.결국 모든 재소자들이 용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탄원서를 작성하고, 용구가 재심 법정에서 말해야 할 말들을 미리 준비하여 알려준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의 무성의한 변론 진행과 경찰청장의 협박·폭행으로 용구는 정작 현장에서 준비해갔던 말들을 이야기하지 못 하고, 거짓 자백을 하며 재심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는다.마지막 방법으로 다른 수형자들이 열기구를 만들어 예승과 용구를 탈출시키려고 하지만, 열기구가 교도소의 담에 걸려 넘지 못 해 실패한다. 결국 1997년 12월 23일, 예승의 생일에 용구의 사형이 집행되고, 14년 후 성인이 된 예승은 사법연수생이 되어 2012년 12월 23일 열린 모의국민참여재판에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이 영화는 대규모 흥행 성적으르 기록하기도 하였다, 교도소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딸 바보의 아빠의 심정을 코미디 장르로 표현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무겁지 만은 않은 주제로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코미디적 요소에 맞춰 전체적인 발랄한 흐름을 유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행태에 대하여 비판적인 면도 함께 유지하고 있다.나는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감동적인 영화이다. 눈물을 흘린 이유는 이용구가 한 행동들 하나하나가 감동적이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형자들도 이용구를 위해 노력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경찰청장의 딸을 죽였다는 구체적인 증거 없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 죄 없는 이용구를 살해 혐의로 사형시킨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의 2008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138개 국이 법적,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했고, 우리나라도 1997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사실상 사형 폐지국’에 속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감동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형 제도를 시행했기 보다는 이 7번 방의 선물이란 영화는 고위관직자들의 권력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이러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