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과목명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교수님이순주 교수님학과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학번20081600이름윤예진제출일2011.05.26제목: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와 현재[목차]* 라틴아메리카의 과거0. 라틴아메리카의 정의1. 라틴아메리카의 고대문명2.1 아메리카인의 기원2.2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문명2.3 올메까2.4 마야2.5 잉까3. 라틴아메리카의 역사4. 라틴아메리카의 문화4.1 라틴아메리카의 환경4.2 라틴아메리카의 인종4.3 라틴아메리카의 언어4.4 라틴아메리카의 생활양식4.5 라틴아메리카의 종교4.6 라틴아메리카의 건축* 라틴아메리카의 현재5. 라틴아메리카의 관광지6.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문제점7. 참고문헌1. 라틴아메리카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 이남에 펼쳐져 있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케리카의 라틴계 언어권 나라들을 가리킴.⇒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걸쳐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하는 18개국 +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 +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이티를 합친 20개국⇒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최근의 정의)라틴아메리카의 중추를 이루는 나라 :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하는 18개국과 브라질 → 이베리아 반도에 기원을 두는 라틴계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종교는 가톨릭이 주류를 이룸2. 라틴아메리카의 고대문명(1) 아메리카인의 기원최초의 아메리카 인이 누구냐에 대한 설은 여러 형태로 나뉘어진다. 유태인이라는 주장을 시작으로 이집트인, 또는 폴리네시아인이라는 학설이 거론되었지만 가장 유력한 주장은 바로 몽고족이라는 것이다.동아시아의 몽고족은 4만 년경 마지막 빙하기 동안 바다의 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대륙 다리를 건너 들어왔으며, 천천히 남쪽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유적을 통해 이주자들이 대략 기원전 1만 년경에 중앙아메리카에 도착했고, 기원전 5000년경에 남아메리카 맨 끝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2)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 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중국의 고대문명족이라는 혈연관계로 이루어져 정치가 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씨족 공동체는 자치적인 정치권력을 가지고 연맹과 같은 형식을 통해 중앙정부를 구성한다.▶ 경제개인적인 토지 소유와 사유재산의 존재유무이다. 일반적으로 토지의 개인 소유개념은 없었으며 다만 개인이 그 경작권을 받아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문자지구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여러 문명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언어전달 방법들을 발전시켜왔다. 잉까의 끼뿌나 마야문자는 그들이 창조한 독특한 문자체계이다.▶ 건축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명들은 건축의 발달에 있어서 다른 어떤 동서양의 문명에 비교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열대 정글의 우뚝 솟아있는 마야의 신전이나 잉까의 피라미드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러한 고대 아메리카 대륙 피라미드는 신전으로서 만들어 졌다.▶ 과학(천문학)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천문관측은 보다 집요하게 발전하여 나갔다. 동서남북의 개념과 고도의 천문학적인 지식이 실생활에 활용되었다.▶ 달력발달된 천문학적인 지식은 고도의 달력체계를 만들어냈다. 메소아메리카지역 특히 마야는 여러 다른 문명에 비해 상당히 체계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게 나누어 52년을 주기로 하는 짧은 달력과 특정 주기를 가지지 않는 긴달력이 있었다.(3) 올메까1) 올메까 문명이란?: 원전 12세기에서 2세기경을 전후로 하여 멕시코의 동쪽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발달한 메소아메리카의 가장 오래된 문명특히 천문학, 문자, 종교, 건축, 조형예술등이 고도로 발달하여 그 이후 문명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서도 도시개념의 확립, 피라미드의 전설, 문자의 기원, 달력의 시작, 재규어 숭배, 두개골 변형 등은 올메까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2) 기원올메까 문화가 멕시코만 지역에서 자생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되었다고 하는 것이 최근에 들어 거의 정설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멕시코와 과테말라의 태평양 연안으로 유성은 예술 특히 건축술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수많은 신전, 궁전 및 공공건물들을 축조했으며 오늘날에도 멕시코 일부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마야 인들은 9세기경에 인구증가, 농경지 확대, 자연개발, 무역활성화 등으로 부와 힘을 과시하였다. 마야 국가는 9세기 말에 망했는데, 아무도 멸망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마야 문명은 계속 유지되었고 톨텍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다시 되살아났다.(5) 잉카안데스 산맥의 북부지역은 수 세기동안 차빈으로 시작하여 나즈카, 차무에 이르기 까지 풍부한 문명의 발상지였다.11세기에 들어와 잉카제국은 이 지역의 문명을 지배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언어 및 종교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였다. 제국의 왕은 잉카였고 그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데스 원주민들은 태양을 최고의 신이며 창조주로 숭배했으며 잉카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여겼다.1400년 경 잉카제국은 나날이 성장하여 근처에 있는 국가들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광활한 도로망을 구축하여 그들 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잉카 정부는 상당히 가혹하여 모든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일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지제도를 실현하듯 음식이나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였고 건강까지도 관리해주었다.잉카인들은 아름다운 항아리제조나 보석세공, 금으로 된 가면 만드는 등 뛰어난 수공업 자였고 전문적인 토목 기술자이기도 하였다.이뿐만 아니라, 훌륭한 건물을 짓는 기술과 뛰어난 수준의 외과의술을 가지고 있었다.3. 라틴아메리카의 역사1492년 콜롬버스로부터 시작된 신대륙 발견을 혹자는 라틴 아메리카에 피의 역사를 가져다 준 끔찍한 역사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찌하든 그렇게 라틴 아메리카라는 대륙은 당시 유럽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정치ㆍ행정적인 변화그들은 늘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이라는 반복되는 틀 아래 있었다.? 1492년 콜롬버스의 발견 이후50년이 안되는 짧은 시간 만에 그들은 스페인의 행정아래 정복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관료제가인 형태로 바뀌게 된다.? 19C 초반이미 너무나 커버린 크리오요들이 강력해진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부터는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 나라들이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베네수엘라, 리오 델 라 플라타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땀), 멕시코가 독립하게 되고 1825년에는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하였다.? 독립 후이들은 안정적인 정치라기보다는 군사정권 아래 맡겨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런 군사정권 아래 수출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과 어느 정도 안정된 정치로 인하여 굉장한 부를 얻게 된다.이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으로는 무역을 통해 얻은 성장인 만큼 국내 경제가 외국자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자국의 농민들을 위한 보호 무역 정책들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1910년 멕시코혁명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역사? 16C 정복 초기대다수의 인디오들이 질병과 정복자들의 착취로 인하여 사망하곤 했다. 그들 중 90%가 죽게 되자 인디오들의 인구비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여전히 구성원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인디오들은 항상 피정복자의 낮은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떤 책임과 권리도 갖지 못하는 열등존재로 여겨졌다.? 17C양분화된 사회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혼혈 인구의 증가때문이었다.? 17C 중반메스티소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수없이 많은 종류의 혼혈인종이 탄생하면서 이전과 같은 양분화된 사회는 유지되기가 힘들어졌다.신체적인 특징이 스페인계와 비슷하고 거기에 경제적 요소까지 갖추면 급격한 지위상승이 가능하였다.이와 같은 17C의 인종차별주의가 현재까지도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 남아있다.4. 라틴아메리카의 문화(1) 환경라틴아메리카는 지구 총 면적의 약 19%에 해당하는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함→ 이 결과 다양한 생태계적 조건을 가짐: 지형은 크게 서부의 안데스 산맥, 대거 이민 집단이 라틴아메리카로 이동함에 따라 현재에는 더욱더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고 있다.(3) 언어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달 했을 당시 라틴아메리카에는 100개 이상의 많은 토착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스페인어의 어휘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아라우아꼬어’는 사라졌으나 나머지 언어들은 아직 원주민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채택된 것은 스페인과의 인종적, 정서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인 관계를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부족과 광활한 지역을 미래지향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였다.(4) 생활양식라틴 아메리카인들은 대화와 사교를 중시한다.그들의 생활에는 종교적 요소가 깊숙이 침투해왔다. 축제문화만 보아도 종교적인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의 의미는 ‘단식’으로 가톨릭사상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놀고 마시는 행사로 간주되고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사교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5) 종교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종교인 가톨릭 사상도 스페인의 영향 하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원주민의 토속신앙과 가톨릭사상이 세례, 고백, 승려 제도, 성지 순례 등에서 비슷한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큰 거부반응은 없었다.가톨릭교가 대표 종교로서의 입지가 굳혀 지기까지 선교사의 활약이 돋보였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데 반감을 갖지 않게 하기위해 많이 노력하였다.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도 가톨릭교회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는 정부와 공생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는 식민시대 선교사들이 처음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해 가톨릭사상을 전파 시켰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의 막강한 경제력은 아직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에 깊숙이 박혀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다.(6) 건축멕시코와 중미 지역의 고대 문명들의 건축을 살펴보면 대체로 힘과 에너지가 넘치고 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규모는 웅장하지만 직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