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학기 기말고사 대체과제report‘Copyright’를 넘어 ‘Copyleft’로수업명: 현대인과 저작권담당교수님: 김인철 교수님학과, 학번: 행정학과 201010285이름: 조예슬제출일: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목차Ⅰ. 서론------------------------------------------------ p.3Ⅱ. 본론1.카피레프트(Copyleft)란?------------------------------------------ p.32.카피레프트의 사례----------------------------------------------- p.33.카피레프트에 대한 오해 ----------------------------------------- p.44.카피라이트를 강화해야하는 이유----------------------------------- p.4Ⅲ. 결론------------------------------------------------ p.5참고자료Ⅰ.서론최근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민감한 사항을 꼽으라고 하면 ‘저작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뉴스를 보더라도 막대한 저작권료를 배상했다던가, 저작권으로 인해 처벌받았다는 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개념이 우리가 흔히 아는 카피라이트(colyright)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정보들이 오픈되어 공유되고 있는 지금시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카피레프트(copyleft), 즉 저작권 공유이다. 정보를 사용할 권리를 정보를 사용하는 2차 저작권자에게 전달을 막지 않는 것을 주요 요건으로 삼고 있는 이 운동은 인터넷 시대의 발군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문명을 세울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지적재산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질 것이며, 인터넷이 인간 생활에 더욱 밀접하게 되면서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적 정보를 누구나 올바르게 이용하여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게 하고자 비교적 인식이 낮은 카피레프트에 대하여 조사하고, 카피라이트를 강화하고자 하는 생각을 밝힌다.Ⅱ.본론1.카피레프트(Copyleft)란?각종 인터넷 기사나 저작물에 대한 정보를 보면 하단에 'Copyright by ooo'라는 표식이 적혀있다. 카피라이트(Copyright), 즉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기 저작물을 통제 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반면에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 있다. 바로 카피레프트(Copyleft)이다.카피레프트는 1984년 미국의 리처드 스톨먼이 시작한 운동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나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선 안 되며,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바 탕으로 진행되었다. 정보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로 인해 정보 격차가 벌어져 사회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저작권 공유와 관련된 이 개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카피레프트는 정보를 사용할 권리를 2차 저 작물의 저작자에게 전달하며, 이러한 권리의 전달에 장애가 없도록 할 것을 주요 요 건으로 삼는다.2.카피레프트의 사례첫째로 우리가 흔히 쓰는 인터넷 주소의 www가 있다. 월드와이드웹의 첫글자를 딴 www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 박사가 만든 것인데,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에서 서로 자료를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하면서 인터넷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두 번째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들이다. 다들 운영체제인 ‘리눅스’ 나 웹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 오픈 블로그인 ‘워드프레스’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이 대표적인 프로그램 외에도 무료로 공개된 프로그램들이 100가지를 넘어가고 있는데, ‘오픈소스’라 함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스나 설계도를 누구나 접근해서 열람이 가능하도록 공개해 놓은 것이다.세번째는 블로그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CCL이다. CCL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의 앞글자를 따온 약자인데, 온라인에서 많이 보이는 저작권 표시 기법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싶지만, 자신의 의도와 벗어나서 저작권법 외의 용도로 사용될 경우를 방지하고자 만들어졌다. ‘원작자가 설정한 조건만 지키면 저작권법으로부터 자유롭게 가공/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라고 보시면 되겠다.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국가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는 콘텐츠다. 한국문화진흥재단 혹은 학술진흥재단같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제작된 콘텐츠는 이용 및 열람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전문학 등의 지적 자원을 보유한 인문학계에선 다시 각색하거나 영화화하여 공공의 자원으로 내놓기도 한다. 장화홍련전, 구운몽 등의 고전 소설들이 각색되어 드라마 혹은 소설로 나오는 것이 있다.3.카피레프트에 대한 오해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저작권과 카피레프트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2차 저작권자는 정보와 프로그래밍을 자신에게 맞도록 사용할 수 있지만 원래 저작권자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포기하고 공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저작권과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유했다고 해서 이를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복제해서는 안 되며, 카피레프트에 해당하는 정보와 프로그램 또한, 저작권에 따라 여러 종류의 라이선스에 따라 보호받고 있다. 카피레프트에서도 원저자 밝히기, 라이선스 파일 제공 등 여러 가지 사용 조건이 붙는다. 이를 어길 때에는 라이선스 위반으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 사용하되 조건을 꼼꼼히 살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정리하자면, 저작권을 독점하는 정보나 작품에 대해선 아예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 사용하려 할 때, 원 저작권자에게 허가를 받는 신청을 해야한다. 반면 카피레프트는 이러한 허락 신청을 간소화하여, 정보와 작품을 사용하는데 원 저작권자가 명시한 조건을 따르기만 하면 사용해도 괜찮다.4.카피라이트를 강화해야하는 이유저작권이라 하면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비용없이 무단으로 창작품이 사용되는 것을 막는 등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다. 하지만 현행 저작권시스템이 상당히 기업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 혹은 아이디어가 있는 작은 기업에서 저작물을 내놓는 경우 큰 기업에서 그 저작권을 사들이고 특허신청을 한다. 독점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작자의 권리는 사라지고, 저작권자(큰 기업)의 카피라이트(복제할 권리)만 남게 된다. 카피라이트가 너무 강화되면, 새롭게 문화를 창출하고 재창작을 하고자하는 시도들은 모두 막히게 된다. 특히 온라인으로 인해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문화 창출이 기업의 이윤에 반한다고 생각되면 기업에 법적 비용을 물어야 할 상황이 닥치기도 한다. 물론 무분별한 복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무조건 복제를 막는 행위도 바람직하지 않다.아마다 쇼지의 ‘해적판 스캔들’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정부나 산업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해적판’이 정말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것일까? 카피라이트와 저작권이라는 구조는 복제를 금지하여 콘텐츠를 희소한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가치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새로운 가치의 원천은 희소성이 아니라 확산성이다.
프란츠 카프카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책을 읽는 내내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있었다는 이야기’라니... 어쩌면 도끼보다 강력한 한방이라는 생각이 든다.'변신'이 무서운 이유는 흉측한 벌레가 된 나의 상황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진 책은 약간 읽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카프카의 대표작답게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꼼꼼한 묘사로 가득해 여유가 없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벌레로 변한 나의 시각과 느낌을 굉장히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내 손과 다리에 털이 돋을 것만 같고, 내가 벌레의 시각으로 집안을 보게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만약 이 소설의 묘사가 감성적이었다면 그만큼의 현실감은 없었을 것 같다. 냉정할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엄청난 현실감을 느끼게 해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내가 된 것 같은 몰입이 가능했다.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소설의 내용에서 풍기는 냉정한 현실의 분위기로 인해 더 빛났다. 사실 '변신'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모습도 무섭지만, 그를 대하는 가족들의 건조함이 너무 충격적인 작품이다. 그레고르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으로 가족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감과 위치는 꽤 컸다. 하지만 벌레가 된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를 방에 가둬버리는 아버지, 모성과 두려움 사이에서 고민하다 두려움에 굴복하는 어머니, 처음에는 방 청소를 해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만 나중에는 벌레가 된 오빠는 벌레일 뿐이라며 내다 버려야 한다고 외치는 여동생.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들의 모습은 가족간의 단절과 인간의 냉정함을 아주 진하게 드러낸다. 특히 그레고르가 변신한 후, 가족들이 일을 구하고 스스로 살 수 있게 되면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모습은 필요가 없어지면 형제 뿐만 아니라 자식까지도 버릴 수 있는 인간의 비정함을 보여주었다.
토머스 불핀치 『그리스로마 신화』-신화가 현대사회에 남긴 의미행정학과 201010285 조예슬이복누나와의 사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죽인 아들, 양어머니와 사랑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청년의 이야기까지. 그리스 로마신화는 현대의 막장드라마 뺨치는 충격의 연속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들을 먹어치우는 크로노스의 이야기는 기괴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만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에게 미묘한 공감과 익숙함을 가져다준다. 얼마 전 종영된 ‘압구정 백야’ 와 같은 막장드라마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소재로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현대인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음으로써도 전달될 수 있다.고전을 읽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시대에 쓰인 이야기를 통해 현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찾는 것. 그러한 고전의 의의를 대표적인 고전인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는 동안에도 느낄 수 있었다.신화에 따르면, 처음에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것을 카오스라고 하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의해 그리스 신화가 존재하게 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신화 속에서는 지금으로써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을 한다. 모자 지간에 결혼을 하거나, 남매사이에도 자식을 낳는다. 이러한 이야기의 시초가 되는 것이 가이아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이다. 그리고 크로노스가 삼켜버린 형제들을 구해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를 기점으로 그가 퍼트린 많은 자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옛 그리스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인 신화는 정의로움보다는 신과 인간사이의 힘의 대결, 사랑의 쟁취, 질투, 복수 등 현재 인간세상에서 흔히 보이는 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세계적 보편성을 관통하는 주제들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신화라는 관념이 동양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이질감도 느껴진다.동양과는 이질감있는 이야기들일지 몰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꼭 읽어야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 먼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유럽을 비롯한 서구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우리가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서구의 깊이 있는 문화를 이해하거나 감상하기 어렵다.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연설, 신문기사, 대화 등에서 신화 속 인물이나 현상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판도라의 상자, 트로이의 목마 등은 많은 패러디를 낳을 정도이고, 사랑이라는 뜻의 amour, 신들이 주로 먹던 음식인 ambrosia 등의 단어들도 익숙한데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는 점이 놀라웠다.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킬레스건의 유래는 아킬레스의 어머니가 아킬레스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아들의 발꿈치만 잡고 강에서 목욕을 시켰는데 다른 곳이 강한 데에 반하여 발뒤꿈치만 약점이 되었다. 결국 전쟁에서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취약점을 이야기 할 때 아킬레스건을 언급한다.
한국복지국가의 조세부담과 조세구조 -소득세의 저 부담에 따른 증세정치 전망Ⅰ.서론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의 복지국가 논의는 매우 활발했다. 60년대 산업화와 80년대 민주화를 배경으로 복지국가 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나 그 발달 속도가 빠른 편은 아이었다. 여, 야가 모두 복지확대를 약속하고, 국민들도 동의하지만 증세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가장 좋겠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조세체제를 ‘낮은 소득세로 인한 낮은 조세부담’체제라고 본다. 90년대 이후 소득재분배의 필요성이 커지고 복지욕구의 충족을 위해 소득세 중심의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이는 정치적 논란의 가능성이 크다. 이 논문은 첫째, 국제비교를 통해 한국 복지국가의 조세 특징을 찾아내고 둘째, 한국형 조세체제의 형성을 산업화 전략과 경로의존 맥락에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복지국가 논쟁에서 나타난 증세관련 논의를 정리한다.Ⅱ. 복지확대와 증세의 불가피성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최 하위권에 속한다. 우리의 경제력에 비추어볼 때도 복지의 수준은 상당히 낮다. 그러므로 다른 경제성숙단계의 복지국가에 비해 복지 확대를 위한 재정여건이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건전하다. 복지지출의 확대가 염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 함께 복지지출의 확대가 동반되고 있다.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복지지출 확대 탓으로 모두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부에서 늘어난 재정적자의 대부분은 감세와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지출 때문이다. 이미 경제 분야 예산의 비중이 상당히 축소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사업비를 축소하여 복지비를 마련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볼 때 증세없이 복지지출을 계속 늘리기는 어려운 구조이다.Ⅲ.비교적 관점에서 본 한국복지국가의 조세부담과 조세구조서구선진국의 경우 GDP에 대한 조세비율은 경제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상승한다. 세수의 소득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소득과세는 국가의 사회복지 기능 강화와 함께 증가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예외적인 존재이다. 국민 부담률의 변화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주요 복지국가들에 비해 낮다. 60년대 이후 지속된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과세기반이 급격히 확대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조세부담의 완만한 증가는 매우 이례적이다.우리나라 조세의 저 부담과 완만한 증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조세 구조상 소득세를 통해 거둬들이는 재정수입이 적다. 그리고 사회 보험료로 거둬들이는 수입도 평균보다 적지만 법인세와 자산세는 OECD평균보다 높다. 종합적으로 OECD평균에 근접하거나 상회하지만, 사회 보험료와 소득세가 세수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낮기 때문에 한국 복지국가의 조세부담이 매우 낮은 수준인 것이다. 사회 보험료의 경우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고 급여수준 인상에 따라 보험료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점차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다. 그러나 유독 낮은 소득세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낮은 소득세 부담의 주요인은 다양한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실효세율을 떨어 트려 왔기 때문이다.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명목소득 인상과 이에 따른 소득세의 누진적인 상향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득세 과세구간을 상향조정한 영향도 있다. 게다가 소득세울 인하라는 명시적인 감세도 단행했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소득세의 실효세율이 국제적으로 낮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 산업화의 심화와 함RP 커지는 국가기능의 확대를 뒷밭침할 재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소비세에서 조달되었다.Ⅳ.수출주도경제개발과 한국형 조세체제의 형성한국은 경제발전과 정치수준에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세부담과 주세구조도 이전보다 국제규범과 유사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세부담이 낮고 소득과세가 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조세체제의 기원은 국가주도 산업화시기로 거슬러간다.우리나라의 초기 산업화 전략은 보호무역에 기반한 수입대체산업화정희 군사정부는 중농주의에 입각한 경제발전 목적을 달성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 시멘트, 철강 등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였다. 이는 내지 지향적인 대중영합 정책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런 대내 지항적 전략은 결국 실패하였다. 그래서 군사정부는 새로운 경제 발전 전략을 찾게 되었다.박정희 정부는 5개년 개발 계획을 수정하고 마침내 대외 지향적, 수출 지향산업화 전략을 채택하였다.이와 같은 산업화과정에서 정부는 예산의 50%를 미국에 의존할 정도로 재정이 열악했고 세수증대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하지만 일련의 제도개혁이 기대했던 만큼의 세수증대를 이룩하지 못 하였다. 66년 이후 마침내 성공적인 세수증대를 이루게 된다. 이에 정부는 증세보다는 고도성장기 일본이 취한 자본축적지원체제로 전환하면서 감세정책을 공식화한 세제개편을 단행한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대한 세율을 인하하고 기초공제액은 인상하여 세 부담을 경감시켰다. 시설투자를 위한 유보적립금에 대한 비과세의 확대도 이루어졌다. 직접세중 소득세 부담을 떨어뜨리고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조세감면의 유인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반면 주세와 사치품에 대한 물품 세는 대폭 인상되었다. 간접세 중심의 조세체제가 형성되기 시작 한 것이다. 이러한 감세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77년에 부가가치세가 도입되면서 국가 기능확대에 따른 최소한의 필요재원은 직접세가 아닌 소비세를 통해 조달하는 구조가 완성되었다.이런 한국형 조세체제의 형성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면 첫째, 정치적으로 유신체제였기 때문에 국민들의 민신을 추스르기 위해 중산층 납세자의 조세부담 완화에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공급충격 때문에 가계와 기업의 세부담을 낮추어 공급능력을 증대시키는 형태로 세제를 운영하였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낮은 소득세에 의한 낮은 조세부담의 틀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다 정치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보인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성장전략 때문에 낮은 조세부담-낮은 공공지출이 용인되는 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질수록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은 중요했고, 기업의 세 부담과 노동비용의 상승도 최대한 억제되어야 했다. 긴급조치 3호에 의해 유보된 국민복지연급이 보여주듯, 간접노동비용 상승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사회보험의 도입은 산업화 시기 동안 최대한 늦추어졌다. 고도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소득이 증가하긴 했지만 생산성 증가를 하회하는 저임금 구조에서 근로자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소득세 부담의 인상은 선택되기 어려웠다.그렇다면 국가주도 산업화에서 소요된 막대한 자금은 재정이 아닌 어디에서 나왔는가?한국의 사적자본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높은 수준의 투자를 감행하여 항상 자본부족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거의 모든 조세감면제도가 활용되었다. 한편 소비세의 인상은 수출주도 경제개발전략에 부응하는 면이 컸다. 산업화 시기 한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지키기 위해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보다는 억제하여 수입을 줄이고 대신 투자재원인 저축을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 있었다. 사치성 소비재에 대한 높은 물품 세, 부가가치세와 직간접적으로 수입을 유발하는 사치 품목에 대한 고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특별소비세의 도입은 이러한 정책수요에 매우 부합하는 세제였다.Ⅴ. 현 단계 증세논쟁과 조세정치 전망1.현 단계 복지와 증세 전략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선거쟁점으로 부각되고 박근혜 의원이 전향적인 복지모델을 발표하여 복지논쟁에 불을 댕겼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선별주의 대 보편주의 간 복지논쟁 구조를 최고조에 달하게 하였다. 이 때 오세훈 시장이 패배하면서 보편주의에 입각한 ‘큰’복지국가 건설이 대세로 접어든 양상을 보였다. 총선에서 야권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통진당 사태와 종북 논쟁을 거치면서 복지 논쟁이 다소 휴지기에 들어간 듯 보였으나 양극화, 근로빈곤, 노인빈곤, 저 출산 등의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지난해 대선에서 보였다. 만약 더 전향적인 복지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좌차정당들의 공약을 실천하자면, 추가적인 세 부담이 더 높아질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각 정당들이 제시한 복지재원 마련 전략에는 다양한 방안들이 망라되어 있지만, 사민주의 복지국가에서 의존하는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소비세의 인상이나 담배, 술 등에 붙는 죄악세의 확대를 주장하는 정파는 없다. 사회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는 세력 또한 없다. 대부분 재정지출개혁을 통한 예산절감액을 복지로 돌리고, 직접세 중심의 증세를 통해 필요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2.한국의 조세체제가 증세정치에 주는 함의와 대안민주당의 주장대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복지재정의 확보는 먼저 기존 지출의 합리적 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획대로 합리화해도 재정이 부족하다. 나머지 부족한 재원은 증세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법인세, 자산세, 소득세부담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법인세와 자산세는 OECD평균치를 크게 상회하고 있고 비교국가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한마디로 증세여력이 크지 않다. 즉,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는 소득세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소득세 부담을 지고 있어서 증세여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진과세 구조를 갖고 있는 소득세의 부담을 높이는 것은 양극화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를 완화해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그러나 증세 대상이 모두 유권자라는 점은 정치적 실현가능성을 어렵게 하고 증세강도가 커질수록 저항도 커질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의 지지계층으로 기대되는 중 저소득층일수록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따라서 야권의 주장처럼 중 저소득층은 두고 고소득자에게만 소득세율을 높이고, 부유세 형식의 사회 복지 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 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할 때 증세규모가 충분할지 의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기 형성된 수출주도경제
1.에르네스트 르낭에 대하여조제프 에르네스트 르낭은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종교사가, 비평가 이다. 대표적인 19세기 실증주의 지도자로써 헤브라이어에 정통하고 철학 상 콩트의 실증주의를 계승하였다. 사회의 진화는 선미의 이상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하며 그리스도를 한 인간으로 보고 그 사상을 역사적 환경 속에 자리 잡게 한 ‘예수전’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그는 이외에 여러 저서에서도 실증적 방법과 과학주의의 날카로운 표현을 시도했다. 종교에서 초자연적 설명을 배척하고, '자연이 곧 신적'이라 하였으며 인간 본래의 자연성을 도덕적이라고 보는 점에서 자연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2.‘민족이란 무엇인가’의 간략한 내용요약이 책에서 르낭은 인종, 언어, 종교, 지리, 경제적 이해, 친화력, 군사적 필요 등 민족을 통합시키는데 거론되는 여러 요인을 제시하면서 민족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적이고 애정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당시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래 민족 간의 분쟁으로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던 시절, 르낭은 극단적 민족주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등의 비극이 자행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생각하였다. 독일 나치, 게르만 족들에 의한 이스라엘 유태인들이 대규모 학살을 당하는 일을 목격하며 순수한 단일 민족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는 민족 국가의 경계는 언어, 지리, 인종, 종교에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인간의지’에 의해 만들어짐을 주장하였다. 또한, 한 언어를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니며,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에 민족의 의의가 있음을 강조한다.3.르낭이 생각하는 민족주의르낭은 프랑스와 독일 간의 보불전쟁 이전에는 독일의 민족주의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종족 및 인종 등 자연적인 요인이 민족을 구성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인정하였고 한 때는 인종주의자로 인식되기도 하였다.하지만 1882년 3월 11일 소르본 대학교에서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독일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강의를 펼친다.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은 인종, 언어, 지리, 종교 등이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의 소속의지 나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 등의 정신적 원칙이라는 것이다. 즉 인종과 언어로 민족을 구분하는 현상을 배격하고 인간 자체를 생각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개념에서는 민족은 언제든지 새로 생겨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개념일 뿐임을 강조하고 구성원들의 의지로 인해 결성된 공동체가 민족이라고 말한다. 또한 르낭은 독일식 민족주의에 회의를 느끼며 반발한다. 자신들이 우수한 민족이라는 잘못된 신념하에 다른 민족을 압박하고 부수고 죽이는 행위를 자행하는 독일 민족의 사상을 인정하지 못 한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기원이 종족이라고 믿고 있지만 르낭은 이것을 착각이라고 말한다.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작은 도시국가나 고대 부족에서는 사회적으로 규모가 확장되기 않았기 때문에 일 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로마 제국과 같은 큰 규모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르낭에 따르면 프랑스는 켈트족, 이베리아족, 게르만 족이 모여 있으며 독일은 게르만 족이자, 켈트족이자, 슬라브족이다. 이탈리아는 종족 분류가 거의 되지 않고 영국은 켈트족, 게르만족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 알기가 어렵다고 한다. 결국 실제로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언어 또한 르낭이 판단하기에 민족을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 영국, 스페인 등의 나라는 그 안의 국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한 민족을 형성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스위스는 국민들이 3~4 개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있다. 르낭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이는 바로 구성원이다. 즉 한민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장애가 있는 상황에도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통합하여 한민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민족을 구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민족을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점이 르낭의 의견이다.종교도 민족을 구성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르낭의 생각인데, 종교는 각자가 나름대로 믿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지 국가 차원의 종교는 없다고 말한다. 카톨릭, 개신교 , 유대교 신자도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개인적이고 각자의 마음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한다.겉으로는 지리적인 분류가 ‘민족’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이지만, 르낭은 강과 산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국경선만으로는 민족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산은 민족을 구분하는데 물리적 요소로서 일부분 일조하지만 강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갈라져 있는 민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르낭은 이 택에서 ‘강은 종족들을 인도하지만 산은 그들을 멈추게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민족은 산이나 강 같이 외형적 요인에 의하여 결속된 집단이 아니라 오랜 역사과정의 결과로 생긴 정신적이고 영적인 집단이라 말한다.4.우리나라의 민족주의우리나라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그 역사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민족은 1900년 이후에 만들어지거나 근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이전에 민족이라는 용어가 세종실록에도 등장하지만 많이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근대에는 근대국가건설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민족이란 말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기이다. 그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독립을 외치면서 현실적으로는 외국의 도움 없이는 근대화를 이룩할 수 없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이후 일본이 실질적으로 조선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자주국가 건설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국가 건설에 대한 미련이 남아 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하면서 ‘국가’라는 개념대신 ‘민족’이라는 용어가 담론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다. 자주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시기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감정을 흡입시키며 마음을 사로잡았다.한일 합병 후에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의 독립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본은 이미 조선을 일본의 한 지역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지만 일본인들의 주도권을 위협하지는 못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민족주의가 팽배했다고 알고 있지만 지역분열과 사상대립을 민족이란 명분으로 묶은 것뿐이었다.해방 이후에는 민족개념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지만 이데올로기와 국가건설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남한과 북한이 좌우 대립 되면서 민족은 2차적인 문제로 밀려났지만 민족개념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특히 남한에서는 북한을 경쟁자가 아닌 같은 민족으로 보아야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최근에 들어서는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통일이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 민족 통일은 국민모두에게 호소력 있는 주장이 되었고 북한도 같은 민족이므로 포용해야 한다는 자세가 중요해졌다.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한 핏줄’이며 ‘단군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현대의 대다수 한국인들도 한반도가 하나의 혈통과 언어를 공유하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민족주의의 실상이며 민족주의가 성립하게 된 과정이다.5.르낭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 과 내가 생각하는 민족주의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로서의 역사를 겪으면서 ‘단일민족’ 이라는 단어를 고착화 시켰다. 처음에는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이러한 사상이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