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몸 사상과 생태신학(최인식)1. 들어가는 글인간의 창조의 중심으로 이해되어져 온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는 몰트만의 주장처럼 생태신학이 의미 있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전이해 혹은 바른 이해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생태적 에토스에 봉사하는 ‘잘 이해된 인간중심주의’는 오늘의 생태신학을 위해서 매우 건설적인 고찰로 받아들일 수 있다.이와 같이 생태신학의 논의에서 자연 환경을 논하기 위해 인간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의의 깊숙한 곳에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생태신학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인 다석 유영모의 인간학적 몸 신학을 생태신학적 관점에서 풀어볼 수 있다.그가 비록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생태론이나 생태신학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의 ‘동양적’ 기독교관은 곧바로 ‘생태적’ 기독교관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다석의 생애와 사상은 그의 제자들인 김홍호와 박영호 두 사람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2. 다석의 몸 사상과 자연다석의 몸 이해는 물질적 생태계를 대표하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생태계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우주관이나 자연관은 소우주로서의 인간이 지닌 몸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그의 몸 사상을 살피면 생태계에 대한 그의 태도를 알 수가 있다.몸과 몸의 나(몸나)다석에게 몸 개념은 몸뚱이, 육체, 살이란 단어와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사람의 몸뚱이는 벗어버릴 허물이요, 옷이지 별개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주인은 얼(靈)이고 영혼이란 것이다. 이것을 생태계에 적용하면 결국 자연도 ‘하나의 벗어버릴 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생태계적 자연은 인간의 몸을 확장한 현실 개념이 된다. 몸이 죽어 없어질 존재가 되는 것처럼 자연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유한한 존재이다.다석에게 몸이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되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벗어버릴 허물이요, 옷뿐인 몸을 ‘나’라고 칭하기 때문에 몸이 문제가 된다. 그는 ‘나라는 것을 오관사지(五官四肢)에 한정해 개다.”라고 말한다. 이를 다른 차원에서 부연하면, 아무리 우주만상의 자연이 장엄하고 아무다운 자태를 뽐내어도 그것은 인간에게서 몸에 해당하는 것이지 참나는 아니라는 것이다.하지만 다석은 ‘몸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몸’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몸 부정이 아니라 몸의 나 곧 ‘몸나’를 부정한다. 오히려 몸은 건강해야 하고 몸의 고유한 가치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자는 무엇보다도 큰 관심을 쏟는 것이 건강이였다. 이 몸은 내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 온 세상 사람을 다 구원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는 바로 자연환경에 적용된다. 자연이 곧 정신이나 신이지는 않치만 신의 능력이 표현되거나 정신이 깃드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석은 몸과 자연을 성히 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정신’이라고 말한다.“성하게 받은 몸을 성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남에게 빌린 그릇 성하게 그간 썼으니 늙어버렸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꼭 성히 도로 갖다 놓는 것이 옳다 … 적극적으로 성하여야 한다. 몸성히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라고 본다”한 걸음 더 나아가 다석은 정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몸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존재라는 듯이 말한다. 이를 자연에 적용하면 자연 역시 단순한 생태적 물질의 집합체가 아니라, 정신계와 교감 내지는 소통함으로써 생명력을 드러내는 실재라는 것이다.“몸은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4백조의 살알(세포)이 하나로 뭉치어 유기체를 이룰 때에 여기서 개성이랄까, 성격이랄까, 한 인격이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4백조의 살알이 여기에 살알을 넘어서는 인격이 생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다석의 몸 부정은 몸을 ‘나’로 생각하는 ‘몸나’로 인한 것이지, 몸 자체를 문제시 삼는 것이 아니다. 몸 부정은 몸에 대한 강한 긍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몸 자체는 ‘인격’이 드러나는 ‘신비이는 몸나를 참나로 아는 이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몸을 성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듯이 자연을 성하게 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의 정신’이다.2) 몸과 얼다석의 몸 이해는 얼과의 유기적 관계를 떠나서는 그 기본 윤곽을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얼은 영, 정신, 성령,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의 맥락이다. 그는 '사람에게 영원불멸 한 것은 얼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몸이 내가 되어서는 안된다. '생각하는' 정신이 내가 되어야 한다. 몸은 얼을 위해 존재하고 이를 자연에 적용시키면 자연은 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럴때 자연의 참 주인이 몸나로서의 인간이 아닌 것을 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얼을 위해 몸이 죽어야 하며 자연이 몸나를 참나로 생각하는 인간을 위해 죽어서는 안되고 얼을 위해 자연이 죽을 때 자연은 산다. 그리고 얼나의 인간은 자연이 몸나의 인간에 예속되거나 지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몸이 얼을 위해 존재할 때 생태적 자연이 얼을 위해 존재할 때, 몸이나 자연은 생명의 본질을 드러낸다. 얼나는 몸과 자연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꽃 피우는 영원한 나다. 이때 몸의 죽음 혹은 자연의 죽음이란 얼의 드러냄을 나태내는 역설적 표현이다. 이처럼 다석의 생각은 몸과 얼을 구별하면서도 또 나누지 않는다. 그는 인생은 한마디로 "참나(참된 나)를 따라 몸을 드리는 '하루살이'다. 몸이나 자연은 반드시 참나를 따라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자연은 파괴된다. 참되 나의 실재를 찾음없이는 참 생명은 없다. 몸나를 죽이고 참나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결국 다석의 몸 신학은 몸나가 부정된 죽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참나로 살아가는 '생명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석의 일생의 가르침의 주제가 바로 몸나가 참나가 아닌 얼나(얼의 나)가 참나라는 것이다. 얼은 한아님이 보내신 성령이며 그리스도며 말씀이다. 종국에는 한아님이 곧 얼이다라는 것이다. 한아님은 몸인 내가 몸나를 참나로 알지않고 보내신 얼을 참나로 깨닫을 때 나는 몸나에서 얼나로 거듭나게 된다. 이 때 한 단식(斷食)과 단색 (斷色)여기에 한가지 제기되는 문제는 그럼 어떻게 어떻게 얼나가 몸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에대해 다석은 참나로 사는 것은 성령을 숨쉬며 사는 삶이고 이는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삶이라고 한다. 얼나는 몸의 요구대로 따를 것이 아니고 완전한 식욕과 색욕의 부정이 아닌 다스리는 차원에서의 단식과 단색을 말한다. 더나아가 기도를 통해 참나의 말씀을 따라 몸을 제사로 드려 몸나를 죽이고 참 생명의 얼나로 사는 것이 얼나의 길이며 몸수련의 도(道)라 한다.그는 몸을 다스리듯이 자연에 대해서도 나의 태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한다. 과거에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 지배와 착취였다면 그 이유는 몸나의 인간들의 행위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몸과 그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에 대한 다석의 태도를 볼 수 있는데 자연을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몸나로서의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탈인간중심을 말하는 근본생태론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이된다.다석의 몸 신학은 생명신학이기 이전에 죽음의 신학이다. 생명은 죽음으로 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죽음은 몸나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몸의 자체의 부정이 아닌 그 유한성과 상대성을 말하는 것이며 몸 자체의 가치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몸은 한아님의 뜻을 드러내야 하는 상징이며 그 자체로 역할과 사명이 있다. 이것은 자연에도 적용되어서 자연 역시 유한하지만 자연도 한아님의 얼을 드러내는 상징이기 때문에 자연은 건강히 보존되어야 한다.다석의 몸수련은 몸나가 얼나로 태어나고 또한 참 생명의 얼나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 위함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깨달은 후에 몸 수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 몸 수련을 통해 직관적으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몸 수련과 얼깸은 동시적이며 교차적이다. 결국 그의 몸 수련은 얼 세움이 되는 것이다. 그의 몸 수련은 관념의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닌 체험의 행함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의 식사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루 한 끼를 먹음으로 식욕을 얼의 양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실제 그는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유명한데 이것은 한아님을 향한 예배의 극치이며 정신으로 육체를 먹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자연에 적용하면 자연물에 대한 소비의 극소화이다. 자연을 적게 먹는 것이다.또한 식욕만큼 몸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성욕인데 이 성욕을 바꾸어서 한아님과 하나 되는 욕구로 바꾸는 몸 수련이 일좌(一座)이다. 이것은 정조(貞操), 체조(體操), 지조(志操)를 갖추는 것으로서 이것이 곧 수신이며 기도라고 말한다. 다석에게는 '단식'이 몸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면 '단색'이 정신적 차원에 깊이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며 '치정(癡情)'을끊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에도 적용되는데 자연에 대한 치정 즉,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쾌락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을 즐거움을 위해 오염시키고 훼손하는 행위들이 다 자연에 대한 치정이라는 것이다 (고성방가, 절벽등에 낙서, 골프장, 쓰레기 등). 이것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욕정이며 性생활이 아닌 失性생활이다.다석은 금욕이나 절제는 몸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고 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몸나로 살면 나도 자연도 파괴되지만 얼나로 살면 나도 자연도 살아나는 것이다. 몸과 자연에 대한 다석의 가르침은 한 가지이다. 몸이나 자연은 얼을 담는 그릇이란 것이다. 유한하고 깨지기 쉽기 때문에 잘 보호해야 한다. 이전에 자신과 자연을 파괴하던 몸나에서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얼나의 참나로 거듭나는 일이 필요하다. 이 때 비로서 몸과 자연은 얼나와 더불어 건강한 몸, 건강한 자연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다석의 몸 신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생태신학적 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생각해 볼 점1. 다석의 몸 사상과 영지주의자들의 생각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2. 다석의 몸에 대한 이해는 성경적 부활론과 내세론과 관계되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3. 기독교.23
그리스도와 문화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핵심적인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이 세상을 공관복음의 세계관 즉, 하나님의 나라와 바알세블의 왕국으로 구분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문화관이라 할 수 있다.즉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격한 원인을 기독교인이 유대문화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대한 결과로 본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인이 법적인 보호를 박탈당한 것도 헬라, 로마 문명을 도피 또는 공격한 때문이며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세속적 문화와 타협이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주로 중세 수도원이나 소종파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입장들로서 그들은 세상포기의 입장과 세상에서 나와 스스로 갈라서라는 권고를 하는 입장이다. 현대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이교적 사회의 관습을 완전 포기할 것을 권유하는 모습이나 터툴리안의 반문화사상과 톨스토이가 문화를 배척했는 것도 이러한 입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여 모든 것을 거기에 집중시키며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스토아 철학의 엄격한 도덕을 그리스도의 주권과 결부시킨다. 그는 요한 일서의 특징인 적극적이고 따뜻한 사랑 대신에 주로 소극적인 도덕을 강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받으라는 교훈을 별로 강조치 않았다. 여기서 그의 문화에 대해 배격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신자의 투쟁은 자연을 상대로 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상대로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죄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 문화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핍박자로부터 신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변증론을 저술했으며 신자들을 향해 이교신앙으로 부패해 있는 여러 사회적 회합 또는 직장에서 사직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정치, 병역, 의무, 법정 투쟁의 기피의 권면에도 나타나며 철학과 예술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에서도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율법에 반대되는 생활양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의 입장을 대표하는 기념탑을 세웠다고 여겨지고 있다.톨스토이 역시 그리스도의 계명에 충실하고자 했던 신앙형태를 ‘모든 문화적 제도에 대한 철저한 배척으로 나타내었다. 그는 터툴리안처럼 인간성 자체 안에 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문화적 제도 안에만 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문화의 모든 모양이 정죄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는 국가권력과 자본주의적 경제제도와 소유문제까지도 죄에 젖은 문화의 소산이라고 생각하고 지식인, 지주, 군인들에게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할 것을 권했다. 그는 국가권력에 잠식된 교회 역시 반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깃발아래 문화에 대항하는 십자군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이외에 문화에 대립하는 자들과는 틀린 모습이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보다는 그리스도의 법에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가 없다 해도 좋을 정도이며 기독교적 계시의 역사적 본성이라든지 타락과 구원의 심리적, 도덕적 영역에 대한 이해도 그에게는 결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반문화적 기독교의 분명한 대표자임에는 틀림없다.터툴리안과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이러한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자세에 대해 니버는 필요하나 부적절한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의 충성과 성실은 가장 매력적인 성질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고백하기 위해서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라는 해답이 마음을 끄는 이유 중에 하나는 행동으로써 하는 고백의 이러한 명백한 반복 때문이다. 그들은 가이사의 통치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으나 그것 때문에 교회의 사회적 승리를 가져오는 길을 열어주었고 따라서 이방 세계를 기독교 문명으로 개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서 위대한 교회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고 수도원 주의가 많은 제도를 강화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소종파인들은 정치적, 관습적 중요한 공헌을 남기었다. 종교적 자유 확보. 군비 축소, 국제 평화를 위한 모든 기구의 창설이 그 예이다.하지만 그리스도의 권위가 문화의 권위에 관계되는 점에서 단연 배격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느끼는 것은 이들의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퇴거와 포기가 성도의 생활에 필요하지만 문화에 대한 책임과 참여 역시 필요하다. 문화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를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하나의 자연적인 존재로 보신 것이 아니라 문화 안에서 인간이 된 존재로 보신 것이다. 극단적인 자들은 자신들이 배척하는 문화 또는 문화의 일부를 언제나 이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들은 오류가 있다. 그들은 ‘얼마동안’ 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생명의 새 질서가 밝아오는 그때와 그것이 온전히 승리하는 때의 중간 시대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들은 참으로 세상에서 떠나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계속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극단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문화의 문제에 따라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다만 일정한 노선을 따라 해결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것들은 먼저 문화에 대한 니버의 개념 구분이 지나치게 엷고 일반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지만 그들 조차도 말과 언어, 삶의 영역에서 바로 문화 안에 존재하고 있음으로 적은 모순이라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문화라는 개념의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평가가 다르게 나 올 수 있다고 생각 되어진다.니버는 문화를 대략 전통과 역사 속에 흘러내려온 하나의 삶의 유산이나 유물들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 하나의 소통의 방식으로 남은 보편적인 틀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소위 오늘 날의 사람들은 그런 보편적인 삶의 양식까지를 문화라고 특정 짓지는 않는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나서 문화생활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TV를 시청하고 나서 문화활동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인간사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삶의 형태긴 하지만 특정문화도 일반의 삶에 정착하고 나면 그것은 보편화된 평범한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다.때문에 니버가 극단적인 문화론자들을 향해 그들도 당시의 언어와 당시의 풍습과 가치관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이야기한 특정한 문화적 현상과 기독교를 구분하는 모습을 이율배반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문화의 정의에 대한- 조금은 편협한 평가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니이버의 신학적 배경을 이루는 신 정통주의의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정통주의는 19세기 과학과 자유주의 이론의 배경의 반동으로 일어난 조류이며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핵 문제의 발현 등 낙관주의와 현실의 한계에 대한 깊은 불안에서 시작된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문화적 발전과 개발의 한계를 목격한 시선에서 나 올 수 있는 신학의 관점에서 박해 속에 터툴리안의 극단적 문화관이 발현된 것을 바라보고 물질적 낙관주의의 한계에서 부유한 엘리트 계층으로서 톨스토이가 겪었던 동일한 삶의 비관을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또한 니이버가 활동하던 시대에 학문적 잇슈였던 환원주의적인 관점의 접근 역시 지금으로서는 석연치 않은 학문의 하나로 평가되어 진다면 문화와 신앙을 원자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작업은 다분히 결과적이고 기계적인 답만을 도출 해낼 뿐 문화와 신앙이 함께 어울려 형성해온 그리고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신앙과 체험에 맞물려 이루어온 인간역사의 상상할 수 없는 폭넓은 차원의 문화 속의 숨겨져 있는 가치들을 저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문화의 주인이 진정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인 우리가 평가하는 그것들 넘어에 그 분의 헤아릴 수 없고 사람의 생각과 다른 그분의 경륜 속에 숨겨진 비밀스런 의도 또한 있다고 하는 의식은 버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머리말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현대주의란 1960년대에 주로 미국에서 출발한 미술, 건축, 문학, 음악, 무용, 과학, 철학 등의 영역에서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나타나기 시작한 예술적, 사회적 철학적 현상이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을 그대로 계승하여 그것을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한계와 제약을 초월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면에서 단순히 탈현대화만의 과정이 아닌 현대주의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조는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자끄 라깡, 장 프랑스와 료타르등의 사상가 등의 학문적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들은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회의주의 사상가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과학의 가설을 포함하여 현대 문화체계의 경험주의적, 합리주의적 휴머니즘적 가설에 도전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불연속성, 분열, 해체, 탈중심화, 비결정성 등 비(非)나 불(不) 혹은 탈(脫)과 같은 접두사를 쓴 용어로 그 특징이 규정된다. 불연속성, 탈중심화 등과 같은 단절의 수사학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역설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끊임없는 이탈과 모순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Ι.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탈정경화(脫正經化): 전통과의 극단적인 단절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전통과 인습과의 극단적인 단절이 특징적이다. 모더니즘이 18세기의 중세기적 교회전통에 대한 반동적인 사조라는 면에서 모더니즘과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 모더니즘이 여전히 인정하고 있는 합리성, 도덕성, 주체성이라는 전통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여기고 이런 것들과는 단절(불연속성)하고자 한다. 이것이 탈정경화 현상이다. 이 현상이 가장 핵심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이다.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은 이것에서 파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탈정경화는 신학적으로는 정경에 대한 고등비평, 신의 죽음 선언에서 시작하여, 문학적으로는 작가의 죽음, 교육학적으로는 학교교육의 교화과정 개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경향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경향을 보편내재성(immanence)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현대인의 정신이 여러 상징 속에서 스스로를 일반화함으로써 점점 더 본질적인 영역에 끼어들게 된다”라는 것이다. 결국 정보, 지식, 상호소통, 상호의존 등으로 일반 정신을 주도하는 보편적 경향, 즉 불확실한 해체와 탈중심화의 경향이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개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신의 영이 자연과 세계 속에 편만하다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파편화 혹은 편린화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성, 전체와의 조화, 통합 및 종합을 거부한다. 이 현상이 파편화, 단편화 혹은 편린화이다. 이러한 경향은 결합보다는 단절, 질서보다는 혼돈, 총체성이나 종합보다는 해체나 분해를 더 중시한다. 이는 사회와 역사의 전체과정은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으며 사회관이나 역사과정에 대한 일목요연한 서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료따르를 비롯한 이들은 마르크스처럼 역사와 사회과정에 대해 전체화하려는 시도는 망상이라고 본다. 이들은 총체성을 거부하면서 언어게임, 시간, 인간주관, 사회에 대한 파편화를 강조한다. 또한 이 신념은 아방가르드 운동(Avant-Garde)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인데 이 운동은 통일의 해체를 원했고 작품의 연속성과 자율성을 고의로 의문시하거나 방법적으로 파괴하고자 했다. 이는 파편화된 이미지 속에서 결합을 통한 하나의 의미를 재구성하기보다는 단절, 질서보다는 혼돈, 총체성이나 종합보다는 해체나 분해를 더 추구하고 있다.탈장르화와 이종혼합문학과 철학의 한계가 허물어질 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장르의 한계가 허물어진다. 이 현상이 이종혼합이요 탈장르화이다. 다시 말해 각 장르를 엄격히 구분하던 모더니즘적인 입장에서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와 소설의 경우 두 장르 사리에 존재하던 선이 유동적으로 되어 소설장르에서 시로 혹은 수필로 혼합되는 을 노출한 점에 있어서 현대사상 흐름에 하나의 공헌을 하고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 적 주체성 사고에 입각해서 기독교 케리그마의 실존론적 이해를 시도한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과 그의 프로그램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브라운과 부리(Buri)등의 비신화론화 프로그램의 방법론적 일면성을 폭로해 주고 있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인간의 주체성 사고에 입각해서 해석함으로써 계시 말씀의 신적 권위 성을 부정하고 계시 말씀을 인간학적 표상내지 기호나 신화로 환원해 버린 데 있다.과학적 합리주의의 비판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이성의 자율성을 앞세우면서 제시한 과학적 합리주의의 성을 무너뜨린 점에 있어서 현대사상 형성에 공헌하고 있다. 과학적 합리성은 신의 계시 행위와 초자연적인 범주에 대해 부정하면서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과학적 합리주의가 가장 파괴적으로 영향을 행사한 영역이 기독교 교의학과 성서비평학 분야였다. 이런 움직임은 성서의 권위와 기독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폰 라드, 본캄, 베스터만과 같은 학자들은 일반 사와 달리 진행되는 신앙을 향해 다가오는 구속사 개념을 발전시키고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재 복권시킴으로써 신학적 합리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또 폴라니, 토마스 쿤 등의 학자들은 과학자 활동이 객관성이나 합리성에 의해 중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틀, 인간의 기호, 인간의 인격적 개입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결단코 보편적 타당성과 객관적 합리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해 내었다. 이들은 현대주의가 이제껏 우상시해 온 자연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신상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부정적 측면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 가치의 부인과 진리와 윤리의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 책임적 주체의 부정, 문화의 퇴행과 퇴폐 등으로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전통부재와 가치 규범의 도착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과 규범의 해체를 부정하고 이것과 단절함으로써 전통적에서 개혁신학은 이 사상이 발견한 인간 이성의 한계성과 허위의식의 구조를 기독교적으로 조명하면서 현대인으로 하여금 이성과 주체성의 극단적인 부정으로 나가지 않도록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과학주의의 한계-과학적 실험과 사고의 근저에 과학자 자신의 가치설정이 깔려 있다-를 기독교적으로 조명하면서 현대인으로 하여금 학문적 체계의 부정으로 나가지 않도록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리와 도덕의 객관적 실재가 부정되는 곳에서 인간은 방황과 절망과 허무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신학은 이런 사상이 팽배한 곳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수의 구속의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이성과 도덕은 그 권력의지와 조작성의 가면을 벗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복음주의머리말포스트모더니즘은 넓은 의미로는 21세기를 지향하는 현대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비판적 시대정신이며, 좁은 의미로는 전통과 진리와 가치를 파괴하는 해체주의를 가리킨다.모더니즘의 특성모더니즘은 객관적인 과학, 보편적인 도덕과 법, 그리고 자율적 예술을 인정하고 추구하는 계몽주의 정신에서 나타난 인간 정신이다. 개인주의적 개성을 존중하며 그로 인해 역사와 세계에 대한 진보와 낙관주의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것은 계몽의 희망과 이념에 배치되는 결과였다. 과학, 도덕, 예술은 점차 제도화되었고 무한한 자기실현의 원리들은 쾌락주의와 자기 도취 증을 야기 시켰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성과를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발현하게 되었다.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가상현실인 텍스트이 사상은 책의 관념을 제거하고 텍스트의 관념을 제시한다. 책의 관념은 전통적 신학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본다. 책의 관념을 부정하고 텍스트의 개방을 선언하는 것이다. 책이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텍스트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연쇄성을 종횡으로 이어가면서 생기는 직물처럼 곧 세계와 연결해주며 곧 실제라는 현실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거대담론 거부거대담론되었던 데카르트 적 의미의 근대적 인간은 소멸하게 된다.전체적인 조망전체적 사고는 물리학으로부터 새로운 환경의식에 이르는 사고이다. 표면적이고 표상적인 문화와 기술의 차원 속에서 종교적이고 심층적이며 윤리적인 차원을 향한 조망을 여는 것이다. 그 길은 전체적인 조망을 얻는 것이다. 이 조망은 인류의 사고를 과학기술적인 기능적 차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여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상응하고 환경에 친화하도록 하는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과 복음주의의 특성텍스트 배후에 실제는 있다.이들은 현실과 실재보다는 텍스트나 가상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예수의 부활사건의 의미만을 중요시하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처럼 모순적이다. 모든 이야기나 담론 배후에는 구체적 사실, 실재가 있다. 성경에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속사적 계시 사건이다. 만일 언어가 그것이 가리키는 사실이나 실재를 지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관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다.실재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존재한다.예수의 부활사건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결단하게 하는 의미의 사건으로 우리 교회와 신자들에게 다가온다. 구속의 사건은 우리의 판단여부와 상관없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 사건에 믿음과 역동적인 믿음으로 반응 할 수 있는 것이다.텍스트의 규범 성이란 텍스트 배후를 가리키는 실재연관성이다.현실이란 텍스트가 아니고 텍스트가 지시되는 차원이다. 예컨대 복음서의 부활기사는 역사적 예수의 부활이라는 실재적 사건을 지시한다. 부활기사에 관한 좋은 텍스트란 이 객관적으로 일어난 부활사건을 가르쳐 주는 것이요, 이 부활사건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알려 주는 텍스트이다.객관적인 의미와 가치는 존재한다.해체주의는 본래적 의미나 의미 그 자체와 같은 객관적인 의미를 부정한다. 하지만 복음주의에 의하면 의미와 가치는 인간의 존재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진리 11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목차마이클 센덜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신드롬신드롬의 원인은 무엇인가.1) 시대에 대하여 의문(疑問)하다.2) 시대에 대하여 회의(懷疑)하다.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의란 무엇일까참고자료마이클 센덜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신드롬스마트 폰이 각광을 받는 첨단의 디지털시대에 '도덕과 정의'를 다룬 중세기적 느낌의 무거운 책이 서점가를 점령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대한민국에 인문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간 일도 오랜 시간 동안 없었던 일이지만 자그마치 그 판매량이 60만권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동일한 저자의 책인 ‘윤리를 말하다’와 ‘왜 도덕인가” 역시 ‘생명윤리와 도덕’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간된 이후 계속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자리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최근 ‘한국의 정치철학자들, 정의란 무엇인가를 따지다’ 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을 비롯한 많은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회들은 앞다투어 이 책에 대한 반응을 다루는 모임 등을 개최하고 또한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여름 휴가철에 CEO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 1위로 선정하더니 2010년을 마감하는 연말의 각종 방송의 대담 회 석상에서는 올 한 해를 대표하는 화두의 한 가지로 빠지지 않고 샐던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신드롬을 토론의 주제로 올리고 있다. 그리고 끝내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인문, 철학분야의 책이 10여 년 만에 판매 1위에 자리에 올라서 10주 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염병과 같이 이 사회를 휩쓸어 60만부의 판매고를 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신드롬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 될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 되어진다. 과연 이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 대한 이 폭염과도 같은 반응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신드롬의 원인은 무엇인가.일부에서는 마이클 샌덜의 신드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샌덜의 신드롬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도 그의 책은 이미 번역된 일들이 있다. 또 이번 들의 불만이 정의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 자유주의의 시장경제 속에서 가속화되는 빈부의 격차와 공평과 공정의 문제에 대한, 그리고 비 정규직에 관한 문제, 낮은 취업률과 높은 실업률, 비싼 등록금 등의 문제들이 현실에 대한 삶에 갈증을 더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고위공직자들의 자녀들의 낙하산식 취업과 등용, 재벌 2세들의 기업승계, 대기업들의 SSM 진출 등의 한 편의 모습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부정과 거부라는 반응 속에, 우리 사회와 삶의 주변의 일들에 대해 그 근본을 이해하고 파헤쳐보고 싶은 욕구를 품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방송에 출연한 철학자 탁석산 선생은 이 신드롬은 일종의 ‘국민들의 시위’와도 같다고 주장하였다. 정의롭지 않은 지도자들과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만큼 고통스럽고 대낮에 사마리아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의 그 심정처럼 그 어떤 타는 목마름에 냉수 한 컵을 들이키고픈 심정으로 이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도 과언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는 없는지,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평등 하다고 생각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모르는 다른 대안이나 해답은 없는 것인지, 정말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냥 이렇게 미래에 대한 꿈과 기대가 없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통스런 고민들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하게 되는 것이다.2) 시대에 대하여 회의(懷疑)하다.지난 8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선 경제 논의가 정치를 지배해 왔다. 우리 모두 국민총생산(GDP)의 증가와 부를 원했고 분배의 문제에 직면했다. 광의의 정치가 경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공허함(emptiness)’을 느낀 것 같다. 왜냐면 ‘정치인과 정당들은 좋은 삶의 조건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얘기하지만 빼앗기고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만을 강하게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이다. 그것이 바로 신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유엔식량특별조사관으로 있던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는 오늘날의 기아의 형태가 신 자유주의적인 경제 구조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등장해서 세계경제를 독과점하고 있는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 특히 거대금융자본의 착취라는 형태를 통해서 실제로 국가의 경계를 무시하고 자본이라는 것이 가진 자와 강한 자에게 지속적으로 몰리는 구조가 바로 신 자유주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기아의 형태가 구조적이던 한시적이던 그 원인의 제공자들은 분명하게 거대자본을 지닌 강대국이며 피해자는 일명 제3세계라고 불리는 122개의 국가들로 나뉘어 진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책에서‘신 자유주의는 한 국가 안에서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간에 간격을 더욱 크게 할 것이며 마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픈 열망으로 지속적인 국가경제의 시스템을 바꾸어 나감으로 개혁주의자처럼 보이게 되고 반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개혁주의자 같은 그들에 대항함으로 보수주의자 인양 보여지는 현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이 주장에 의하면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경제 제일 주의적인 방법에 어떤 삶의 기대를 더 이상 두기가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현실은 장 지글러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이미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사라졌다고 하며 ‘빈곤의 대물림 사회’라는 말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경제적 전문 용어나 날카로운 분석을 하지는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구조는 우리의 현실을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체감하고 있다. 가장들이 가정을 책임지는 무게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하고 딸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 술을 따르는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있었다.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의란 무엇일까.사실 이 번 해의 출판계는 ‘정의란 무엇인가’ 뿐이 아니고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포함, 도덕성 부재로 망한 기업 사례를 통해 기업윤리를 강조한 '이제는 도덕이다', 공정한 국가의 원칙을 제시한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의 '공정국가', '한국의 법치, 그 길을 묻다 - 우리사회의 정의를 되찾는 리걸 마인드' 등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이슈를 담은 책들이 계속 이어졌다. 경제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월 하는 계산적인 사회와 더욱 종잡을 수 없이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의 속도화된 사회 물결 속에서 기본적 가치를 망각하고 삶을 영위하다 보니 사람들은 "삶의 단단한 지표를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환경 변화가 너무 빠르고 개인의 정체성도 모호해짐을 절감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혹자는 우리 시민사회의 의식이 부쩍 성장했다고들 이야기 한다. 수동적인 태도로 무조건 정부를 따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제시하는 시민사회의 참여운동이 날로 발전한다고 한다. 탁석산 선생의 말처럼 정말 이 신드롬은 일종의 시위이며 항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정의로운 사회와 공평한 삶을 원한다면 단지 책을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최근 미국에서는 다시금 영웅(HERO)스토리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는 과거에 이미 영화화 되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퇴물 히어로인 슈퍼맨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을 재조명 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전에 영화계에서는 관심을 갖지 못하던 히어로들을 발굴해서 영화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습니다.아이언 맨 등이 영화화 되어 큰 인기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라고 한다. 심지어는 하나의 영웅으로는 부족해서 이 영웅들이 팀을 이루어 악당과 싸우는 스토리를 담은 영화들이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팀의 이름은 HYP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심지어 가장 부패했던 전두환 정권에서 외친 ‘정의사회 구현’이란 구호는 더욱 소름 끼친다.마이클 샌덜은 그의 책에서 정의란 어떤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일련의 책들 속에 숨어있는 사상의 제시들을 보았을 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도덕과 윤리’를 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가 가장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념이다. 그러면서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단계”이며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사회 속에서 공정한 분배와 나눔, 동일한 기회의 주어짐, 복지의 문제 등은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고 못 나누는 문제의 성격이 아니다. 파이의 규격을 측량하는 사람이나 자르는데 필요한 날카로운 칼의 문제가 아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르는 사람의 마음(도덕과 윤리)과 잘려진 파이를 조금 더 큰 것을 가지고 가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한 것을 취하려는 여유로운 태도와 현실의 상황에서 보다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것을 밀어줄 수 있는 태도(인간성)에 달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센덜은 공동체의 가치를 말한다.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닌 작고 평범한 여럿이 바른 윤리와 도덕으로 이루어놓는 민주공동체를 말한다. 경제논리가 정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때문에 민주적 삶의 가치와 공동체, 연대성, 신뢰, 시민애 등은 줄어드는 가치가 아니라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크고 강해진다고 마이클 센덜 교수는 말하고 있다. 가치가 혼란하고 정답이 언제나 정답일 수 없는 현실의 세상에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함께 잘사는 것을 함께 찾아내어가는 과정이야 말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삼일운동 이후기독교의 비(非) 사회참여화 현상분석을 통한한국 기독교의 방향성 고찰목차I. 여는 글Ⅱ 삼일운동 이후 기독교 신앙형태 변화의 이유들.일본의 정치형태의 변화에 따른 기독교 내부의 민족운동 양상의 변화일본의 정치형태의 변화기독교 내부의 민족운동 양상의 변화교회 지도자들의 경제적 변화에 따른 사상적 변화교회내의 신앙적 갈등과 혼란① 신앙인가 정치적 필요인가.② 타계주의와 신비주의 신앙의 성행일제의 선교사 회유와 선교사들의 반응선교사 회유 정책선교사들의 친일적 반응Ⅲ. 닫는 글참고문헌I. 여는 글한국의 기독교는 선교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에는 당시에 제국주의적 팽창 가도에 있던 일본침탈의 영향으로 현실과 신앙의 장을 구별 할 수 없는 사회참여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온건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던 당시의 선교사들의 신앙교육과 의료, 교육 중심의 선교적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커다란 적과 제국주의 열강들이 활개를 치던 당시의 세계적 시대상황은 조선의 기독인 들로 하여금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에 처한 민족의 앞날을 새롭게 창조해 보겠다는 급진적이고 희생적인 신앙민족운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이유들을 제공했다.민경배 교수는 이러한 상황들 가르쳐서“한국교회가 비록 경건주의적 보수적 신앙형태에 의해 선교된 나라요그러한 신앙형태가 1907년의 부흥운동을 통해 정착된 나라였지만,그 신앙 자체가 민족적, 사회적 구조 안에서 발전 되었다는 사실을보여준다. 복음주의적 신앙이 내연 할 때 그것이 역사적 정황의 요청에따라서 민족이나 사회의 환경에 현상화하고 증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당시 일본의 무단통치로 조선사람들은 종교적 활동 외에는 어떠한 모임이나 조직이 불가능한 상황 이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 교회는 유일하게 민중이 모여서 함께 당면한 시국의 문제와 현실의 암울함 들을 이야기하고 염려하며 서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혹은 비밀스럽게 민족운동과 정치 계속 삼일운동 이후에 기독교의 비 사회 참여적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지만서정민이 이야기한 ‘몰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당시 현실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버린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기독교역시 삼일운동 이 후에 커다란 박해에 관해 가장 큰 피해자요 상처를 받은 입장에서서정민의 비판은 기독교의 내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비인간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있다. 하지만 만주나 상해 임시정부 등의 독립운동들이 많은 피해와 박해에도 불구하고지속적으로 독립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중도에 민족운동의 모습을많은 부분 잃어버린 기독교에 관하여 나온 비판들 역시 이 의도를 인정 할 수 밖에없다는 판단이 서게 된다.교회 지도자들의 경제적 변화에 따른 사상적 변화1920년대에 이르면서 기독교 공동체는 엄청난 수에 달하는 사역자가 양성되고 이들은 교회에서 봉급을 받는 전임 사역 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1920년대 초에 장로교와 감리교만 해도 1,266명의 성직자와 1,844명에 달하는 교회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기독교의 상장과 함께 이 숫자 또한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교회의 양적 성장과 그로 인한 지도자들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지위의 변화가 많은 부분에서 섬김과 종 됨의 리더십을 벗어나 문화적, 지적 우월감을 가져왔으며 영적인 군림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지도자들이 점점 상층 계급에만 관심을 가지고 짝하여 간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삼일운동 전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신채호도 기독교는 가진 자들의 종교가 되어 간다 라고 꼬집고 저들이 믿는 그리스도라면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 라고 했으며 당시 그 가 쓴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기독은 늘 고통 받는 자가 복 받는다고 거짓말로 망국민중과무산민중을 거룩하게 속이어 적(일본)을 잊고 허망한 천국을꿈꾸게 하여 모든 강권자와 지배자의 편의를 주셨으니.. 그러나이번에는 너무 참혹하게 피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자각의민중들멈추지 않았다. 결국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독립협회 중심의 지부활동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거행된 삼일운동은 신앙적 신념과 독립이라는 민족적 이념을 섞어 조선인이면 누구나 애원하던 독립의 바램을 전국적, 전국민적 터뜨리게 되었던 것이다.실제로 기독인의 당시에 삼일운동 참여율을 보면,초기 1,200여 회의 만세운동 중에 주동세력이 뚜렷한 340회를 지역 별로 나누면 311개 지역이고 이 가운데 특정 세력이 주동이 된 경우를 보면 기독교 78, 천도교 66, 기독교와 천도교의 공동 주동이 42개 지역으로 나타난다. 당시 국민의 2%도 되지 않던 30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들의 수를 감안할 때 300만 명에 이르는 천도교의 신도들에 비해 독립운동 참여율이 현저히 높은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나름대로 삼일운동의 영향으로 얻게 된 결과들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변화되는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들에 눈에 보이는 삼일운동에 대한 일본인들의 보복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더욱이 교회가 입은 피해와 상처는 이 후의 기독교 신앙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기독 인들은 약 6개월간 지속된 각지의 시위운동의 많은 부분을 주도했고 독립선언서를 운반하며, 태극기를 제작, 살포하는 임무를 당당하였다. 어느 종교보다도 피해가 극심했으리라는 점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에 조선에는 일제의 1개 사단 병력과 2만 명 이상의 헌병 그리고 무수한 헌병보조원들과 경찰이 있었으므로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보복은 혹독하였다. 이 사건의 중심에 기독교 교회가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였고 검거된 인사들에게 모진 고문을 감행하였다. 교회의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수원 제암리 감리교회의 학살사건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의 교회의 박해를 통계적으로 알아보면 1919년 3월부터 그 이후 두 달여간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된 자 46,948명, 교회파손 47개소, 학교 파손 2개소, 민가 파손 7 사이 또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는 일련의 민심 수습책의 하나로 선교사 회유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이것은 선교사와의 관계를 호전시켜서 그들의 본국에서의 일본에 대한 여론을 무마하고 호전시키는 한편, 한국 교회와의 반목을 진정시키려는 계획된 의도였다. 총독부내에 종교 과를 설치해서 선교사들과 잦은 접촉의 장을 만들었고 교회 등의 기관 등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등 큰 변화를 만들었다. 선교초창기 미국 공사대리이며 서양 선교사들의 지도자 격 이였던 앨런 선교사는 아펜절러 등의 선교사들에게 엄중히 요구하여 기독교인들이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엄금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선교초창기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암묵간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그들은 일본을 통한 한국의 근대화가 선교과정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을사조약 이후 통감정치가 시작된 후에 케이블(E.M. cable)이라는 선교사가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잘 나타나는데,“조선은 주권을 빼앗겼고 외교권을 빼앗겼다……그러나 이러한 상황은조선을 더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관료들의 뇌물 등부정부패가 판치는 상황에서 일본의 강력한 통제 아래 새 정부가조직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행정을 베풀어서 조선뿐 아니라동양의 평화와 복지를 확립해 나갈 것이다”.라는 것이다.선교사들의 친일적 반응이러한 선교사들의 입장 속에서 일본의 일련의 조치는 애당초 종교와 정치를 구별하려던 대다수 선교사들을 보다 친일화로 전향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계속된 총독부의 회유 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그들이 원하던 결과들을 가져다 주었는데 일본의 정치적 만행을 비판하던 선교사들까지도 서서히 조선의 독립보다는 ‘조선 독립 불능론’에 접근해 가는 경향까지 가져오게 하였다. 심지어는 제암리 사건 등을 세상에 폭로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대표적 반일 선교사였던 스코필드도 1922년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당시 동아 일보의 기자들에게 ‘한일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한일공영의 온건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지금의 사람들은 교회를 말하면 헌금을 생각하며 경제적 힘을 인식한다. 또 기독교를 말하면 이명박 정부와 연결된 정치적 힘을 연상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다운 섬김의 힘과 희생과 봉사에서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은 아니다.기독교는 물질이기 이전에 정신이며 물리적 힘이기 이전에 섬김에서 나오는 내면적 힘이다. 많은 헌금으로 사회의 약자들에게 조금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물질적 봉사나 대통령이 교회 장로이기에 주변의 참모들을 기독교인들로만 채워 넣는 식의 정치적 현실참여도 그 본연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일찍이 조선의 기독교가 일제치하라는 현실 속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민족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어났던 것은 지극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자끄 엘룰은 이렇게 말한다.“실천이란, 우리가 진지하게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실과 동시에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실제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한 가시적인증거이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도 실천은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진정성의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자끄 엘룰에 말에 의한다면 삼일운동 당시의 기독 인들의 행위는 신앙의 진정성의 증빙이 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믿는 바에 의하여 불의에 항거한 용감하고 희생적인 신앙형태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항거는 자신들의 믿음의 영역이 내면을 넘어서 현실과 상황 속까지임을 증명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주권이 죽음 이 후에 국한 된 것이 아닌 이 땅과 이 시, 공간을 포함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행동 이였다. 그랜버그는 교회의 역할과 사명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초대교회를 비추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스라엘과 초대교회에서 우리는 공동체 자체의 사회적 창조가그것의 종교적 경험과 불가분리적으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공동체(교회)자체가 바로 직접적이며 형성적인 도덕적 주체였다.……신앙 공동체의 지체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에 관해 생각했을 때, 그들은 무엇이 보편적인 선이며 우리의 어떤 행동이그것에 합치될 것인가? 라고 묻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이 물었던것은 바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