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를 통해서 본 『맹자』< 目 次 >1. 맹자사후의 『맹자』2. 한 대, 유학의 부활과 『맹자』3. 당·송·원대 맹자학파의 관학화4. 명 태조의 맹자탄압5. 근대 이후 유학의 위기와 현대 신유가의 등장-참고문헌-학과 : 역사교육과학번 :학년 :이름 :1. 맹자사후의 『맹자』맹자 사후, 만장 등 그의 제자들은 맹자의 언행과 강학을 기술하여 『맹자』7편을 지었다. 그리하여 性善과 仁本을 주지로 하고 공자의 유가 학설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맹자』를 통해 스승이 제기한 민본사상과 주대의 정전제 회복을 주장하며 교육을 중시하였다. 전국시대 중·후기에 접어들면, 맹자의 유학은 이미 영향력 있는 제자학파 중에 하나로 자리 매김하는데, 이는 순자가 지은 『非十二子』에 맹자학파가 포함되었던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그러나, 법가를 숭상한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맹자학파를 포함한 유학전체에 시련을 주게 되었다. 이른바 분서갱유는 법가를 제외한 제자백가에 대한 탄압 사건이었는데 여기서 특히 순우월로 대표되는 유학파는 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측된다.2. 한 대, 유학의 부활과 『맹자』진한 교체기를 거쳐, 전한왕조가 들어서면서 유학에 대한 속박도 사라졌다. 혜제 4년(BC.191), 진나라 이래의 禁書를 폐하여 민간에서부터 유가 경전이 전수되더니, 문제 재위기에 조착을 『서경』박사로, 『시경』박사에는 신공과 한영을 임명하고 동시에 『논어』·『효경』·『이아』·『맹자』도 모두 박사를 설정하도록 하였다. 『맹자』를 다루는 학관이 이 때 설치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학관의 박사들은 ‘수효만 채우고 대기할 뿐 계발되고 중용된 자가 없었다’라는 『한서』「유림전」의 기록으로 볼 때, 유학 자체는 여전히 관학으로의 입지가 확고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지만, 공자의 유작들과 함께 맹자학파의 저서가 박사에 함께 설정된 것으로 볼 때, 전한 초에 맹자가 유학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공자 못지않게 큰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전한 무제 시대에 이르자, 한 대의 대유학자인 동중서는 절대황권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맹자가 주장한 五倫(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을 三綱(君爲臣綱·父爲子綱·夫爲婦綱)으로 교묘히 바꾸어 실천이념으로 제시하면서 군주에 대한 신하의 절대적 복종(君爲臣綱)을 가장 우위에 두었다. 또한 동중서는, 본성이 선한 것은 성인만 해당된다며 맹자의 성선설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무제 때 맹자 학설은 관학에서 축출되었다. 그 후에도 후한의 유학자 왕충이 『論衡』을 지어 맹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등, 한 대에 맹자는 성인으로의 지위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민간의 연구자들은 존속하여 꾸준히 맹자의 사상을 계승해갔다. 유학자 정종은 최초의 맹자 주석본인 『孟子章句』를 지어 『맹자』가 經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하였으며, 조기), 고유, 유희, 정현 같은 학자들도 모두 맹자의 학통을 계승하여 『맹자』연구에 힘썼다. 비록 맹자를 사숙하는 개인들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들에 의한 주석본이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전체적으로 한 대를 거치며 일반 제자백가보다 맹자의 지위가 높아졌다.)3. 당·송·원대 맹자학파의 관학화당대에 들어서서 『맹자』는 경전의 지위로 서서히 격상되었다. 이는 양관)·피일휴) 등의 官方학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한유는 당시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던 불교 종파의 유행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孟子道通論’)을 창조, 유가의 흐름을 나열하며 맹자를 성인의 반열에 세웠고, 스스로를 당대의 맹자로 칭하며 사회 정치 분야에서 유학의 영도적 지위를 회복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방의 승인을 받지는 못하였다.송대에 들어서서 정호·정이·주희 등 이학자들의 이학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으로 『맹자』는, 『논어』·『대학』·『중용』·과 함께 4서로 묶이면서 정식 경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5경을 대신하는 경학의 주체가 되었다. 이는 당대 한유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맹자』의 정식 경전으로의 격상으로 원래 12경이었던 유가의 경전체제가 13경으로 정식 확정되었다. 『맹자』의 일부 내용을 삭제했고, 이구는 『常語』3권을 지어 맹자를 비난하는 내용을 수록했으며 사마광은, 『疑孟』을 지어 ‘맹자가 인간의 인성이 선하다고 한 것은 그의 착오였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대 이래로 『맹자』의 지위는 크게 상승하여 송대 유학은 맹자가 인도한 길을 따랐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았다.)북방민족국가인 요, 금, 서하의 통치자들도 대부분 유학을 숭상했다. 금 세종 때인 대정4년(1164), 『맹자』는 다른 여러 유학서적과 함께 여진문자로 번역되어 반포되었고, 초기부터 『육경』·『논어』·『효경』·『십칠사』·『노자』·『순자』·『양자』등과 함께 태학의 주요 과목으로 지정되었으며 과거시험에도 반영되었다. 『맹자해』를 저술한 금나라의 유학자인 조병문은 자신을 공맹과 한유에 이은 유학의 계승자라고 칭했는데, 그는 특히 맹자의 민본주의 사상을 계승하여 사직과 백성을 비교하면 백성은 귀중하고 사직은 가벼운 존재임을 인정했다.원의 지배체제에서도 맹자는 관학화 되었으며, 원 문종에 의해 ‘鄒國亞聖公’이라는 칭호가 내려지는 등, 亞聖으로 존중받았다. ‘大成至聖文宣王’ 칭호를 받은 공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맹자보다 높은 봉직을 받지 못했다. 이후, 다른 유학자들과 달리 맹자는 공자와 나란히 존중을 받으면서 주원장의 맹자탄압과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맹자’는 공자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4. 명 태조의 맹자탄압명 태조 주원장은 어느 날, 『맹자』를 읽다가 불같이 대노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구절은 아래와 같다.-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중략)),-인도를 해치는 자를 賊이라 하고 의리를 해치는 자를 殘이라고 하였으며 잔적을 일삼는 자를 필부라고 하고 필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군주가 신하보기를 개와 말처럼 하면 신하가 군주보기를 國人과 같이 여기고, 군주가 신하보기를 土芥와 같이 하면 신하가 군주보기를 원수와 같이 한다)이 주장들을 보았던 역대 제왕들은 스스로를 폭군으로 인정할 수나 그는 “저 늙은이(맹자)가 오늘날까지 활동하려 하니 엄중히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면서 『맹자』의 일부를 삭제하여 『孟子節文』으로 짜깁기하여 배포하도록 했으며, 삭제된 문장은 과거시험에 반영하지 말라고 명령하여 분풀이를 가했다. 이른바 맹자의 민본주의 혁명사상은, 개국공신들을 대량으로 숙청하고 전제황권 강화에 나선 주원장에게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주원장은 군주의 세속권력인 “治統” 뿐만 아니라 유학의 “道統”)까지 장악하여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면에서도 군주에 의한 통제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주원장의 사후에도 『맹자』는 사서오경에 포함되어 관학으로 존중받았으나, 전제군주 이데올로기에 반한 대목은 삭제된 채였다.5. 근대 이후 유학의 위기와 현대 신유가의 등장아편전쟁이 끝나고 개항을 시작한 이래로 중국에서도 근대 계몽사상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찾아온 서양 문화의 충격은 공자와 맹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유학사상에도 위기가 찾아온다.청말 사상가인 공자진(?自珍. 1792~1841)은 경서와 사서에서 정밀한 큰 뜻을 발견하고 거울로 삼을 만한 것을 찾아 세상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경세치용학을 주장하며 유교사상을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맹자의 성선설을 반대하고 고자의 성무선악설을 찬성하면서 인의와 염치 등 도덕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선험적으로 구비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강유위는 『孔子改制考』, 『新學僞經考』등을 통해 공맹 유학을 옹호했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여 서구문물 수용의 근거를 유학에서 찾음으로써, 변법자강운동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고 보수파의 반발을 무마하려 하였다. 그는 맹자만이 공자 사상의 근본정신을 이해했다고 평가하며 공자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맹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강유위는 맹자가 말한 ‘不忍人之心’을 중시하며 그의 저서인『孟子微』에서 맹자의 ‘不忍人之心’에 근대 인문주의 계몽사상이 스며들어 있다고 하였다.시대와 사상의 변혁은 유학에 큰 국에서는 유학의 통치적 지위를 아예 없애버렸고, 유학은 쇠락하였다.그러다가 거의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던 유학에서도 1920년대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이른바 양수명·하린·풍우란·웅십력 등의 현대 신유가 학자들이 등장한 것이다.양수명은 전통유학을 계승하여 ‘서로에 대해 계산만 일삼는’ 서구의 공리주의를 ‘義利觀’으로 제약하여 이익만을 좇는 서구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또, 1920~21년간 북경대 등에서 『동서문화 및 그 철학』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주제로 한 강연을 열어, 신 지식층의 도전 이래로 유교와 동양문명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그는 세계문명을 서양·중국·인도문명으로 구분하여 인간의 의지나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 즉, 생활방식의 차이를 논하며 중국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되, 전통 중국의 생활태도는 재검토 된 후,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전면적 서구화’냐, ‘중국 본위 문화의 재건’이냐를 두고 벌인 긴 논쟁의 단초를 여는 것이었다.웅십력은 외적 측면만 중시하는 근대 산업 문명의 결점을 지적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현대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인간의 선한 본성을 길러 내적 심성을 기를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내성을 근본으로 보는 것을 전제로 출발하여 후천적인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 본심으로 돌아가는 구체적 과정을 규정했다. ‘사람의 본성이 본래는 맑다’고 주장한 웅십력의 가설이 맹자의 성선설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자신의 本體를 회복하자’는 가설은 이고의 복성설에 그 근본을 두는 것이며, 이고의 복성설 역시 맹자의 성선설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다.중국본토가 공산화 된 후, 1950~70년대에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현대 신유학을 다시 침체기에 빠지도록 몰아넣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양수명 등 유학자들의 신유학을 계승한 모종삼과 당군의 등의 유학자들에 의한 유학 부흥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1958년 1월, 당군의·모종삼)·서복관·장군매 등의 현대 유학자들은 홍콩의 잡지 「민주평론」에 다.
2011-1학기한남대 성적평가 방법 변경에 대한 고찰- 2011년도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을 중심으로-과목명 :담당교수 :학과, 학년 :학번 :이름 :- 목 차 -I. 서론II. 본론1. 학점 인플레 현상2. 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의 평가지표3. 상대평가의 문제점III. 결론IV. 참고자료I. 서론2011년도 1학기의 막바지인 5월 19일, 한남대학교 교무연구처에서는 성적평가 방법을 예고도 없이 변경했다. 학교 측은 변경사유를 학점인플레 심화현상과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사관련 평가지표 관련 문제로 꼽았다.한남대학은 이전까지 교양과목에 한해서는 상대평가 방식을, 전공과목과 교직과목은 절대평가 방식을 반영하여 성적을 평가했다. 교양과목은 최고 상위 25%까지 A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고, 상위 60%까지는 B학점을, 나머지 수강생은 C학점 이하를 취득하도록 해왔다. 전공과 교직 과목의 경우, 교원의 자율에 맡겨왔다. 그러던 것을 전면적인 상대평가 실시로 바꿔 버린 것이다. 다만, 이번학기에 촉박하게 실시되는 점을 감안하여 전공과목은 A+B등급 비율을 교양과목 대비 10% 상향한 0~70%로, 교직과목은 25% 상향한 0~85%로 각각 적용하겠다고 한다.)문제가 되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전 예고도 없이 학기 중에 공고해버리는 교무연구처 측의 행태이다. 본고에서는 평가방법 변경의 원인 중에 하나인 2011년도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현재의 문제점을 다루고자 한다.II. 본론1. 학점 인플레 현상학교 측이 평가방법 변경 사유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전공과목과 교직과목에서 나타나는 학점 인플레 심화현상이다. 실제로 교직과목의 경우, A+B학점의 비율이 95~99%에 육박했고, 사범대학 학과들의 전공과목 성적 또한 A, B학점으로의 편중현상이 심각했다.) 그러나 이번 사업에 선정된 대다수 대학교 사범대학들의 A+B학점 비율이 75~9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남대 측의 이번 개정이 억지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2009년도에 88개 대학을 선정하여 지원을 시작한 이래로, 조금씩 수혜 대상 학교의 숫자를 줄이면서 2011년 5월 11일에는 전국의 80개 대학을 선정하여 지원금을 교부하였다. 한남대학교는 여기서 제외되었다.평가의 기준이 된 2011년도 교육지표 포뮬러는 다음과 같다.)지표 내용공시항목성과지표① 취업률 : 0.8×(6월?12월 평균취업률+해외취업률) + 0.2×유지취업률5-다. 졸업생의 취업 현황② 재학생 충원율: 0.6×(전체 재학생 수/편제정원) + 0.4×(정원내 재학생 수/편제정원)4-라-1. 재학생 충원율4-마. 재적학생 현황③ 국제화 : 0.7×외국인 전임교원 비율 + 0.3×외국인 졸업생 비율6-마. 외국인 전임교원 현황5-다. 졸업생의 취업 현황여건지표④ 전임교원 확보율 : 전임교원/교원 법정정원6-다. 전임교원 확보율⑤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운영: 0.5×학점관리 현황(T점수) + 0.2×소규모 강좌 비율(T점수)+0.15×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T점수) + 0.15×시간강사강의료 지급단가(T점수)2-나. 성적평가 결과(분포)11-나-1. 강좌당 학생수11-나-2. 교원 강의담당 비율13-차. 시간강사 강의료⑥ 장학금 지급률 :{교내 장학금(학비감면+내부장학금+근로장학금)+ 교외 장학금(사설 및 기타)}/등록금 총액8-가. 일반회계 예결산 현황8-나. 기성회계 예결산 현황8-바. 교비회계 예결산 현황11-다. 장학금 수혜 현황⑦학생1인당 교육비 : 총 교육비 / 재학생수8의2-나. 학생1인당 교육비 산정근거⑧등록금 인상 수준: 100 - (0.4×’10년도 등록금 인상 지수 + 0.6×’11년도 등록금 인상 지수)8-차. 등록금 현황⑨ 대입전형 지표 : 0.5×대입전형 간소화 + 0.5×대입전형 공교육 연계-여기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 ⑤번의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대목이다. 이를 더 상세화 하면 아래와 같다.)- 학점관리 현황(’09년도 기준) : 1 - (0.4×A학점 취득학생 비율 + 0.4×B학점 이상 취득학생 비율 + 0.아래와 같다.)학교명한남대충남대순천향대인제대영남대소규모 강좌 비율26.3%33.2%26.9%38.6%32.9%한남대는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 또한 타 대학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1만명 이상 지방 대형 대학 중 이번 사업에 선정된 사립대학과 비교. 2010-2학기 기준.))학교명한남대인제대계명대동서대경상대(국립)전임교원강의담당 비율54.6%91.6%68.1%59.1%79.7%그 외에 교육지표 포뮬러로 제시된 9가지 중에서 성과지표에 해당하는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국제화율과 대입전형 등을 제외하고 타 대학과 비교해 보아도 각종 지표에서 한남대의 경쟁력은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전임교원 확보율을 비교한다.(2010년도 재학생 기준))학교명한남대인제대영남대동서대경상대순천향대전임교원 확보율57.6%58.3%61.1%61.3%83.7%120.1%특히 영남대의 경우, 재학생 수가 한남대의 3배가 넘는 23,325명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전임교원 확보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은 한남대가 크게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물론, 자료를 살펴본 결과 한남대 역시 2008년 이후부터 차츰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학생 1인당 교육비를 살펴보자.(2009년도 기준))학교명한남대인제대영남대순천향대학생 1인당교육비7,676,000원13,716,300원9,549,300원10,844,100원역시 한남대의 경쟁률은 크게 떨어진다. 물론 이 역시 2008년도 교육비가 6,787,800원이었으며 당해연도에 교비회계와 산학협력단 회계 등 전 부문에서 상승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여전히 타 대학에 비해서는 부족한 규모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등록금 인상수준의 경우, 타 대학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상승률은 아래와 같다.(교육지표 포뮬러의 산정 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단순 인상률))학교명한남대영남대계명대동서대순천향대인제대대구카톨릭대2010년도등록금 인상률3.5%0%0%0.4%-0.1%6%를 곱하여 합산하면서 위의 표에 적힌 타 대학들(인제대 제외)에 비해 전전년도의 등록금 인상폭이 더 높은 한남대학교 측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한남대학교는 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에 선정된 타 사립대학교에 비해 거의 대부분의 지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의 불리한 요소를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함에도 하필 성적평가 방법을, 그것도 학기 중에 손대는 학교 행정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3. 상대평가의 문제점얼마 전, 카이스트 대학생의 잇단 자살사건이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된 적이 있었다. 카이스트의 재학생들은 원래 등록금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2007년도에 취임한 서남표 총장이 대학 개혁을 하겠답시고 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시행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기준 점수에서 평균학점이 미달될 경우, 0.01점당 6만원의 벌금을 징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 총장식 개혁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 인재가 연이어 자살하는 현상 또한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징벌적 등록금 제도 자체에는 결함을 지적할 수 없다. 문제는 상대평가에 있다. 상대평가 방식으로는 개인이 얼마나 학습 목표에 도달했는지 알 수가 없고, 더구나 학년이나 학과와 같은 작은 집단에서의 평가의 결과에는 형평성이 결여된다. 동시에 목표 달성여부와 관계없이 집단 내부에서의 낙오자를 반드시 발생시킨다. 그로인해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우수한 낙오자는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에 대한 피로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적자원의 손실은 곧 우리 사회의 손실이며 국가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상대평가로 인한 지나친 경쟁은 학습패턴과 학생 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미 낮게는 20:1, 높게는 200:1까지 치솟은 임용시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사범대학 학생들에게, 학점에서도 경쟁을 하라고 내몰아 버리는 것은 또 다른 자살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적된 단점도 있지만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며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교육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 상대평가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장점, 그리고 현재 사범대학생들이 처해있는 이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은 본교 교육학과 교수 출신인 現한남대 총장 김형태 박사일 텐데도 이러한 교육정책을 밀어 부친 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대학에서 학점에 의해 일괄적으로 순위와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해도 졸업 후에 기업체나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대학성적을 반영하는 경우에는 어차피 상대평가의 방식이 적용되도록 되어있다. 아래의 자료를 보자.)서울특별시교육청 공고 제2008-82호대학별, 등급별 구성 인원은 1등급부터 순차적으로 누가 비율에 따라 계산하되, 소수로 나타날 경우는 소숫점 이하 첫째자리에서 반올림함.※ 대학성적 및 제1차 시험성적 반영 등급별 점수표등 급등급별 인원구성비(%)등급별부여점수등 급등급별인원구성비(%)등급별부여점수1520.061518.52719.771318.231019.481017.941319.19717.651518.810517.3계100%이 자료는 2009학년도 서울시 교육청 중등 임용시험 1차 시험에서의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적인 학점에 의해 성적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등급별 인원 구성 비율, 다시 말해서 대학 학과 내에서의 석차에 의해 점수가 차등적으로 매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용 시험에서 이미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성적이 반영된다면 굳이 대학에서부터 상대평가로 교직과목 점수를 채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또 한 가지, 위의 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여된 각 등급의 점수가 서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 재학 중에 학점관리를 엉망으로 하여 10등급 17.3점을 받은 학생이 1등급 20점 만점을 받은 학생보다 별로 불리한 점이 없다는 것으로, 보통 전공과목 문항점수가 1.5~2.5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임용시험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