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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란 무엇인가 서평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업으로 손꼽혔던 마이클 샌덜교수의 실제 하버드 강의 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2010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으로 인문학 서적으로서는 8년 만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인 2010년에 왜 갑자기 정의란 키워드가 조명을 받을까? 우리나라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과 발전함과 동시에 사회가 양극화에 접어들면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이와 동시에 천안함 사태, 한미 F.T.A 쇠고기 광우병논란을 보아도 정치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과연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이며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 일어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최근의 신공항 건설 문제만 보더라도 하나의 정책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국가정책 뿐 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가운데에서도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이 가득하다. 중세시대의 그리스도교라는 절대적 도덕기준이 사라지고 특정한 기준이 되는 윤리나 도덕이 없어 가치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어떻게 이성적으로 그것들을 통과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 정의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고찰해보며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이론적인 설명은 책에서 읽었으므로 이번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생각해 볼 숙제로 남겨주신 ‘입학처장의 본고사 부활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상황에서 각 관점들을 살펴보고 각 관점들이 지니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정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겠다.우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본고사 부활은 정의롭지 못하다. 공리주의자들에게 최고의 도덕 원칙이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즉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정의롭지 못하다. 이런 공리주의적 관점은 특정한 선택상황에 처해 있을 때 선택의 합리성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개인의 권리가 무시되며 모든 가치를 하나의 공통된 통화로 측정하는 문제점을 지닌다. 사회의 모든 가치가 하나의 통화로 측정하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사건이 발생해 이루어 진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현재에는 미리 파악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현재에 예상치 못한 결과나 파급효과 등은 고려하지 못한다. 공리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지는 선택의 합리성이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공리주의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공리주의 자체가 하나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갖기에 사회적 약자인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문제가 생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소수의 희생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과연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유대인 학살이 옳은 일일까? 우리가 현재 결정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인지 다수의 집단적 이기주의인지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이익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공리주의는 목적론적, 결과론적인 관점이다. 현실에서 공리주의는 목적과 결과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경쟁과 효율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경쟁과 효율이란 공리주의적 관점이 자본주의가 성장하는데 큰 축을 담당했지만 동시에 인간을 자본의 늪으로 인도했다고 할 수 있다.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정의란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 자신’은 국가나 정치 공동체가 아닌 나 자신에게 속한다는 생각하기에 제3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어떠한 간섭도 제한도 반대한다. 오직 국가는 폭력, 사기, 그리고 도둑, 계약 이행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소극적 국가, 야경국가만이 정당하다. 이런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는 한 대학의 입시 전형으로 본고사를서도 문제점과 한계를 지닌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정의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주의,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가 사람들의 진정한 자유를 보호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 우연성을 지닌다.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선천적인 우연성으로 누군가는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어떤 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결과로서 열매로서, 정당하게 자신이 일한만큼 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불평등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 대다수의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무책임하게 그 자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의 자유보호란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자유의 보호가 아닌 기득권 자신들의 자유보호라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환기 해볼 때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목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해 보인다.존 롤스의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본고사 부활은 정의롭지 못하다. 롤스는 정의란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 속에서 구성된 절차적 정의에 따라 합리적 당사자들이 선택한 결과가 정의이다. 원초적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란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 상태에서는 강압이나 지배층의 이익 등의 불공정한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롤스 또한 기본적 자유의 평등원칙, 기회 균등을 우선하는 원칙으로 인정한다. 그와 동시에 분배되는 몫이 대단히 임의적인 요소에 부적절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을 인식하며 이 불공정함을 수정하는 방법으로 차등의 원칙을 말한다.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려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재능을 개발할 기회가 주어 져야하며 이는 곧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 서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합의를 하는 개인들 자신이 어느 위치와 소속에 속해 있는지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롤스가 말한 절차적 합의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현대에는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공동체 전체와 관련된 주요한 문제들에 대한 집단적인 심의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루소가 말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가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투표가 끝나면 대다수가 정책 결정과는 정책결정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며, 실질적으로 소수 엘리트들이라 불리는 기득권층 그들만이 정치를 한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무지의 베일 속에 있지 않은 그들에게 롤스가 말하는 원칙들이 잘 지켜지는, 절차적 정당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러한 절차상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물론 제도적으로도 일반대중들의 크고 작은 공동체와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최대한 도입한다하더라도 롤스가 제창한 정의에 완벽히 부합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칸트는 공리주의나 미덕 장려를 거부하며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칸트에게 자유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심에 따름이 아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어떤 옳은 일을 할 때 그 이유가 옳기 때문이지, 이면에 어떠한 숨은 동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율이라는 의미의 자유를 추구하려면 가언명령이 아닌 정언명령에 따라야한다. 정언명령은 행동의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준칙이라야 하며 인간을 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보 올바른 것이지만 각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른데 어떻게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행위가 존재할까? 또한 각 문화마다 관습이나 사회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에 부합하는 보편적인 도덕, 규칙은 존재할 수 없다. 서구국가들의 도덕적 원칙이나 가치만을 인류 보편적인 것으로 본다면 종 차별주의에 기초할 수밖에 없게 되며, 서구나라 그들이 절대적 진리로까지 여기는 민주주의의 현재 큰 흐름인 문화다원적인 민주주의라는 흐름에 스스로 역행하게 된다.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는 본고사 부활이 정의로울 수도 있고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중립적이지 않은 것이라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그리고 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 그에게 정의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즉, 재화를 공정하게 정의롭게 분배하려면 해당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우리의 자연적 본성에 내재된 목적을 개발하고 표현하는 것이며 우리의 탁월한 덕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시한 상황에 대입해 보면 대학의 텔로스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본고사가 정의로운지 정의롭지 못한지 달라진다. 대학의 텔로스가 우수한 인재 양성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면 학업 성취 가능성이 큰 학생을 뽑는 방법으로서 본고사가 정의롭지만, 대학의 텔로스를 인재 양성의 집단 이상으로 ,특정한 공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본고사부활은 정의롭지 못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목적론적 정의가 갖는 가장 큰 한계는 텔로스가 명확하게 명시되어있지 않아 텔로스에 대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삶에서 덕과 덕이 상충하는 경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떠한 행위를 할 때 끝없이 도덕적인 갈등을 하며 도덕적인 행위 또한 불변하고 확정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을 결정하는 능력인 프로네이다.
    독후감/창작| 2011.10.11| 6페이지| 2,500원| 조회(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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