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명목회와사회봉사교회의 본질학과M.Div Ⅱ교수명최동규 교수님학번2014308030제출일15.06.11이름배은찬주제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각 교회는 근본적으로 선교적 본질을 가진 지역 회중, 곧 지역 사회 내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드러내는 신앙공동체,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선교적 공동체이고, 그에 의해 교회를 구성하는 각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요약이 책은 선교학과 교회론을 동일한 이해의 시각에서 종합하였다. 기존에 오용된 교회론을 시정해주고, 건전한 선교학적 교회론을 설명함으로 지역 교회의 선교적 위치와 사명을 재인식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현 시대의 한국교회는 엄청난 재원과 인력을 해외 선교에 쏟아 붇고 있지만, 수많은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선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선교의 출발점은 지역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고 교회의 모든 사역과 조직을 선교적 관점에서 재편성하며 성도들을 선교적으로 동력화하는 바로 그곳이 된다.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선교적 관점에서 훈련될 필요가 있다. 지역 교회와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선교적 마인드로 깨어나야 하고, 지역 사회를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선교적 사명을 인식하고 사역에 임해야 한다. 선교는 단순히 해외 선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교적 관점에서 교회의 선교적 삶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교회는 단순히 일정한 시간, 일정한 공간에서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선교적 본질을 가진 지역 회중 곧 지역 사회 내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드러내는 신앙 공동체를 말한다. 이 공동체는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은 선교적 공동체이며, 교회를 구성하는 각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처럼 살아가야 한다.저자의 태제1. 21세기에 재발견된 교회교회의 본질에 대한 오해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은 독특한 것이다. 바로 성령께서 이 세상에 행하신 행동의 결과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 창조되고, 선교적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성령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사회적 조직체이며, 영적 공동체로 존재한다.2. 교회에 관한 선교적 이해하나님의 선교적 본성은 무엇보다도 창조활동을 통해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세계를 만드셨으며, 최고의 작품인 인간은 창조의 완전한 전개를 위한 참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선교적 본성은 구속활동을 통해 표현되었고,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에 의해 잃어버린 모든 것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예수를 세상으로 파송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새로운 완전과 완성으로 인도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와 선교는 분리된 개념이 아닌 공통 개념으로 합쳐져야 하고, 교회는 그 본질 가운데 있는 선교를 적극 발전시켜야 한다.3. 교회에 관한 발전적 관점들교회는 성령의 창조물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정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성령의 역동적 인격과 능력이 교회 가운데 존재하며, 성령의 창조물인 교회는 항상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를 인도하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을 고려하는 선교학적 교회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킴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여야 한다.4. 교회와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교회가 하나님에 의해 소유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중개자(agent)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과 존재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으로부터 유래한다. 교회가 행하는 것 곧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의 표현이다. 어떻게 교회가 구성되느냐에 관한 것 곧 교회의 조직적 삶은 그것의 사역과, 두 왕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능력대결에 의해 형성된다.5. 교회의 본질첫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화해된 관계, 그리고 타인과 화해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다양성을 초월하는 연합이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새롭게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세 번째는 성도의 교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에 기초하여 화해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타인을 경험하고 있다. 네 번째는 성령의 창조물이다. 교회는 개인적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아닌, 성령이 내주하시는 공동체이다. 성령을 통해 만들어지는 창조물인 것이다.6. 교회의 사역교회의 거룩성은 교회가 성령의 창조물이라는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말하는 속성이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교회에는 인간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교회는 사회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영적 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러한 이중적 본질로부터 어떻게 살아가는가? 교회는 거룩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인간적 특성을 통해 가시적, 현세적, 역사적 실존 안에서 구원받은 삶의 풍부한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기에 교회는 사회적이어야 하고, 그를 통해 교회는 모든 사역을 통해 구체적인 방식으로 거룩성을 드러내야 한다.7. 교회와 능력들교회는 창조의 사역을 이루어 간다. 하나님의 목적은 창조와 재창조와 완성 안에서 이해해야 하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삶은 재창조 되어져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능력들을 패배시키는 사역을 감당한다. 악한자의 능력을 패배시키는 사역을 교회는 감당하는 것이다. 교회는 능력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교회는 타락한 능력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더 이상 지배할 힘이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무력하게 된 능력들의 정체를 폭로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역은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8. 교회의 조직적 삶교회의 본질은 교회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고, 교회의 사역은 교회의 조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며, 교회의 조직은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구조들을 제공한다. 교회는 그렇기에 행하는 바를 조직한다. 조직은 교회의 존재에 본질적이다. 교회는 제도적으로 조직적인 공동체이고, 단순히 머물러 있는 조직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화하려는 조직이며, 예수의 증인으로서의 조직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그분의 구원 능력을 끊임없이 증언하는 조직이다.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개요>▶. 도서의 해제1. 책의 주제2. 저자의 태제와 설명3. 내 삶과 사역에서의 적용------------------------------------------------------------------------------------▶. 도서의 해제책의 제목-저자/역자 : 찰스 E. 벤 엥겐/임윤택 /출판사 : CLC(기독교문서선교회) /발행일 : 2014-081) 책의 주제교회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저자는 그간 살아오면서 함께 일하고 대화했던 많은 선교사들과 목사드을 만나면서 교회의 존재목적. 특별히 지역 교회의 존재목적을 분명히 해야겠다는 사명을 절감한다고 말한다. 특히 교회의 표징을 말하는 세가지 방법을 강조하는데 첫째 모델교회 방법으로 어느 특정 교회를 예로 들거나 다른 교회를 위한 모델로 사용하는 방법과 둘째 통계학적 방법으로 사회학이나 통계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권장할 만한 교회의 특성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인 셋째는 성경적 비교 방법으로 교회에 대한 성경의 실례, 가르침이 제시된 진리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세가지 방법중 세 번째 방법론을 중심으로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론의 강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진리들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 성경적 방법론의 명확한 기준은 우리에게 다른 방법론이 줄 수 없는 선교적 방향 감각, 추진력, 동기, 확신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이 방법론은 이상적이고 이론적이며 논리적 진리로부터 출발함으로 현실 생활을 계속적으로 점검하게 된다.2) 저자의 태제와 설명1. 지역 교회: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God,s Missionary people)선교적 비전이 우선이다 선교사나 목사 교회개척자들이 선교적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먼저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교회에 대한 새로운 선교적 비전을 가져야만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역동적 관계를 갖고 있다.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자라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이다.교회와 선교, 이 두 개념이 서로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교회와 선교를 분리하여 어느 한편만을 독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생활화해 나갈 때 지역 교회는 우주적 교회로 형성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내에서 자신들을 선교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교회 공동체를 인간 조직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만드신 유기적 조직체임을 상정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으로 부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주님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성장하는 지역 교회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이 나타난다.2. 지역 교회: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를 향한 새로운 비전(God,s Missionary people)교회의 참된 목적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생명을 주시는 성령,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즉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선교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에서 발전된 교회의 목표를 확실히 정해야만 한다. 코이노니아, 케리그마, 디아코니아, 말투리아의 성경적 용어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선교적 교회에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이방인에게 빛과 만민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선교적 교회와 선교하는 백성의 특별함은 그들의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목숨을 버리신 것은 교회가 아닌 세상을 구함이었다.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희생 제물, 어린양으로 보내 진 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교회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 문화 상황에 맞게 적합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3. 지역 교회: 선교적 교회가 되어가는 지역 교회(God,s Missionary people)“선교적 교회를 세워야 한다.” 세운다 라는 동사는 지도자들과 추종자들이 함께 의식적이고 활동적으로 선교적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성도의 교통함은 특별히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에 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적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부르심, 가르침, 소명, 명령, 목적에 순종할 때 그들은 교회가 물려받은 선교에 동참하게 된다. 이러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교회로서 본질을 잘 드러내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코 계획이 없이는 선교가 필요한 땅에서는 선교적 교회가 이루어지거나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교적 교회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나가서 선교하도록 돕는 조직을 만들어 갈 때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3) 내 삶과 사역에서의 적용“선교적인 학교를 나는 매일 꿈꾼다.” 나의 목표는 선교지에서 교육선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학교를 설립하고 건축하고 교육하는 것에 대해 기도하며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적이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선교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면 선교사는 종교의 교리를 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보통 기독교의 교리를 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선교적 교회론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성에 근거해서 교회를 정의하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흔히 우리가 학습하고 배우는 내용의 요점은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이 하나님의 행위의 결과로 성부가 성자를 보내시고 이어서 성부와 성자가 성령을 보내셨는데, 이 보냄이라는 개념이 바로 선교의 본 의미로서,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즉 교회를 보내셨다. 교회는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존재”이고 본질상 선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그 선교론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저자는 지역 교회를 한 주제로 삼았으며 또한 이 지역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향한 선교를 위해 세워졌으며 그들은 실로 믿음의 실체인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통하여 지역 교회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핵심적인 성경적 해답을 찾는데 있어서 내가 신대원에 재학하며 있는 동안에 선교적인 학교를 위해 정립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개요>▶. 도서의 해제1. 책의 주제2. 저자의 태제와 설명3. 내 삶과 사역에서의 적용------------------------------------------------------------------------------------▶. 도서의 해제책의 제목-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4월1) 책의 주제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보다 자기를 통하여 더 널리 알려지는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와의 영광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 이것은 그가 진실로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바 된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다.2) 저자의 태제와 설명1. 세상에서 신학만큼 독특한 학문은 없다신학은 학문의 출발자체가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도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목적에 고정되어야 하며 학문의 마지막 열매가 복음전도를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학문이다. 그렇기에 신학은 학문이자 단순한 학문이기를 거부한다.2.세례요한처럼 나는 살다가 죽고 싶다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그 성경의 예언들을 모두 성취하고 간 세례요한은 설교자의 길이 무엇이고 이 시대에 영혼들의 목자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삶의 가치가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성경적인 대답을 해주는 인물이다. 그렇기에그와 같이 나는 불꽃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진다.3. 우리는 선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살았는지 기억하여야 한다.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그 생애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들의 삶이였다. 그들은 비록 한사람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함으로서 다수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4. 목회사역의 기초준비 즉 건강과 육체의 순결을 가져야한다.하나님을 섬길 우리 몸을 구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건강으로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5. 지성적인 준비를 해야한다.믿음 뒤에는 그 믿음을 확증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없이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과 지식은 같이 동반되어야 한다.6. 신학의 기초는 분명한 성경관을 기초로 한다.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고 호흡하는 일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성경말씀에 따라서 죽을 준비를 하기 위하여 신학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7. 목회사역에 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우리는 몸소 섬기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연습을 신학 수업의 도상에서 해야 한다.8.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해야 한다.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들을 계회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그 영광스러움을 회복 할 수는 없는 것이다.9. 기다림의 미학을 가져야 한다.역사의 무대를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원리를 통해 움직이는 것을 본다면 높아질 것을 꿈꾸지도 말며 낮아질 것을 염려하지도 말아야 한다.10. 우리는 빛이 아니다우리는 빛으로 대접받기를 거절하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명은 단지 그 빛을 증거 하는 것이며 우리의 증거로 인하여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다.3) 내 삶과 사역에서의 적용최근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만나서 애기하다보면 자신의 직분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가정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으로 인하여 맺여진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모든 이유로 볼 수 없었다. 학생으로서의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작용은 신대원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목회의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내 자신이 교만하거나 잘나서 판단을 하기 싫지만 현재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직분을 포기하고 있다. 좌우로 치우치거나 놀라울 정도로 직분을 망각하고 있다 몰른 그들은 맡고 있는 교회를 떠나지도 않고 다른 직업을 찾지도 않았다 교회는 여전이 그들에게 사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무섭고도 안쓰러운 현실이다.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의 책에서 말하는 목회자의 상으로서는 특별한 목회자 즉 정말로 신실하고 아름답고도 보배로운 존재적 목회자는 반드시 남다른 준비를 통하여 모습을 들어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학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사람이 믿음으로 시작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며 이성만으로 하나님이 탐구될 수 있다고 맏는 모든 사상을 거부하며 그 학문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회와 읽어버린 세상을 더 잘 섬길 것을 열망한다고 말하고 있다또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교회와 세상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탐구하며 신학도로서 목회자로서 한명의 인간으로서 학생과 목자와 사람의 신분을 잘 정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부족하고 나쁜 신학생이다. 본문의 저자와의 의도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며 참으로도 거룩한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되는 바쁜 삶을 핑계로 말씀을 뒤로 하고 있으며 피곤하다는 몸의 본능대로 기도하는 시간내내 잠을 청하고 있다.
제목 : 영화 감상문목 차1. 들어가며2. 영화 이야기3. 로봇이 일으킬 변화1) 개인의 변화2) 사회의 변화3) 인류의 변화4. 로봇이 가져올 문제들5. 나오며들어가며지난 달,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인, 알파고와 인간대표 이세돌의 바둑대회가 열렸었습니다. 바둑에 관해 문외한인 나는, 인터넷 기사들을 통해 처음 그 대결을 접했습니다. 대결 날짜 전까지 수많은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수많은 기사들은 당연히 이세돌의 거뜬한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바둑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바둑의 모든 수를 컴퓨터가 읽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보고, 당연히 알파고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5전 4승 1패. 알파고의 승리였습니다. 나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당황했고, 나도 평소에 관심조차 없던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분명 인공지능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이러한 관심들이 그 전에는 로봇, 기계 쪽에 관심도 없는 내가 세 개의 영화중 로봇이라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도 영화를 처음 접해 봤는데, 개그 코드, 중간 중간 나오는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3류 영화인 것 같은 영화 가운데 생각해볼 문제들을 많이 던져준 . 2시간 40분 가량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영화를 떠올리며 글을 시작합니다.이 영화를 통해, 바시가란 박사, 만능로봇 치티, 사나가 겪는 이야기를 통해 로봇의 기능, 로봇이 일으킬 변화, 로봇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2. 영화 이야기영화의 주인공인 바시가란은, 만능로봇 치티를 만듭니다. 치티는 바시가란의 말을 따라 많은 일들을 수행해 나간다. 바시가란의 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바시가란의 여자친구인 사나를 구해주기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운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개를 하라고 하면 스피드 1 테라헤르즈, 메모리 1 제타바이트를 연발하는 로봇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정, 복합적 생각들을 할 수 없는 치티는 오로지 모든 이들의 말대로 행동하며, 사고뭉치의 역할 또한 해나갔다. 많은 도움도 주지만, 많은 사고도 일으키는 치티는 위험성 때문에 군용 로봇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그러자 바시가란은, 치티에게 감정을 가르쳤고, 치티는 고마움의 표시로 뽀뽀를 해준 사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본 바시가란은 치티에게 사나를 향해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을 어기고, 바시가란은 치티를 처분하게 되고, 치티는 병기가 됩니다. 자아를 가지게 된 치티는 수많은 치티들을 만들어, 사나를 차지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바시가란은 사나를 지키게 되고, 치티를 착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치티는 자신을 분해하고 박물관에 전시되게 됩니다.3. 로봇이 일으킬 변화1) 개인의 변화바시가란과 사나의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로봇의 개인의 삶을 편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단순 노동, 육체적 노동의 경우는 오히려 로봇들이 월등히 잘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동차 운전의 경우도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동 운전이 되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주 별 것 아닌 구두닦이부터, 요리 등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일들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고, 개인의 삶을 편하게, 윤택하게 변화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2) 사회의 변화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제품들을 생산해 내는 공장에서는 실수가 없으며, 고강도의 노동을 통해 많은 제품들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통해 제품들의 가격과 품질에 있어 향상 될 것입니다. 그 외에 많은 분야들에서도 로봇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3) 인류의 변화인류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개발된 목적 또한 인류에게 윤택함을 주기 위함이며, 편리함 등의 많은 것을 통해 인류는 변화될 것 입니다. 인류의 도움을 로봇을 통해 가져오는 시대 또한 올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의료분야에서는 이미 로봇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술 도구로, 치료의 도구로 수많은 로봇들이 사용되고 있고, 실제로도 로봇을 통해 수월하게 치료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4. 로봇이 가져올 문제들저는 로봇이 가져올 장점들보다 로봇이 가져올 문제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흔히 로봇이라고 하게 될 때, 영화에서 나온 치티처럼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움직이는 로봇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일상에 로봇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로봇들은 우리가 하기 귀찮아하는 많은 것들을 대신 해줍니다. 로봇은 지침도 없고, 감정도 없어서 항상 일정하게, 24시간 일을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이 과연 마냥 좋은 것일까요?로봇이 생기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삶에 편리해진 부분들도 있겠지만, 분명히 사람이 해야할 일을 로봇이 대신 하는 것이기에,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로봇이 훨씬 경제적이기에 이러한 모습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그 뿐일까요? 영화에서 치티를 악용한 보라처럼, 로봇은 얼마든지 악용하려면 악용할 수 있습니다. 치티와 같은 살상용 로봇이 이미 개발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될 정도로, 과학은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고, 실지로 인터넷을 보게 되면, 학창시절에 생각하고 배웠던, 봐왔던 로봇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로봇은 훌륭한 모습과, 훌륭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 교회사서론이 책은 쿠어트 디트리히 슈미트 라는 분이 지으셨고, 정병식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살아있는 교회사’라는 책이다. 신앙과 지성사라는 출판사에서 2010년 9월 10일에 출판하였다. 이 책을 지으신 쿠어트 디트리히 슈미트라는 분은 1896년 10월 25일 독일 브레멘의 우트레데(Uthlede)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여 괴팅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24년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해 같은 대학에서 교수 자격 논문을 완성하였고 많은 곳에서 가르치시고, 일하셨다. 고백교회 고백교회(독일어: Bekennende Kirche, 영어: Confessing Church)는 1934년 히틀러에 반대하여 설립된 독일 에큐메니컬 교회를 말한다. 1935년 독일 바르멘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종의 대상이요, 하느님의 계시라는 내용의 《바르멘 선언》을 발표하여 히틀러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하였다.(Wekipedia 참조)연구의 주창자였고, 1958년 이후 “고백교회 역사 연구”라는 시리즈를 출간하셨다. 그리고 “고백교회와 교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주장”이라는 3권으로 된 책을 1933-36년 출간했다. EKD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약칭:EKD)는 루터교회(Lutheran), 개혁교회(Reformed,장로교회), 연합 개신교 교회(United Protestant)에 기초한 독일의 개신교 교회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천을 위해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회원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Wekipedia 참조)의장을 역임한 그는 게르만 선교, 고백교회, 교회와 국가, 교회사의 근본적인 문제, 고백교회 운동 연구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그리고 이 책의 역자이신 정병식 교수님은 서울신학대학교(B.A.)와 대학원(Th.M.)을 졸업하고 육군 군목을 역임했다. 2000년 독일 본(Bonn)대학교 신학부에서 종교개혁과 마틴 루터 전문가인 칼-하인츠 츠어 뮐렌 칼-하인츠 츠어 뮐렌(Karl-Heinz zur Muhlen)193삽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리고 만화 한눈에 읽는 교회사는 말 그대로 만화로 되어있어서 역사를 딱딱하게 생각하고 재미없어하는 나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교회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역사의 일부분이 아니다. 교회사는 없어서는 안 될 신학의 주요 부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서에서도 이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행위와 가르침 외에도 집필자는 교회의 운명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 1:8)이르는 그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행동 주체는 성령이다. 성령은 사도들이 증인의 일을 하도록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으로 언급되고 있다. 성령을 통하여서 많은 일들을 했다. 고전 12장에 의하면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역사 역시 그리스도의 계속되는 활동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가 교회에 역사한다. 그가 교회, 즉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모은 것처럼, 성령을 통해서도 역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은다. 그가 일으키는 모든 개별적인 역사들이 곧 교회의 삶이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그에 의하면 여기 이 땅에서 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교회사의 본래 과제다. 물론 그리스도의 역사와 교회의 생활 방식은 교회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일반 문화 발전과 국가 및 국민의 삶 속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그 점들을 연구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사의 한 부분이 아니며, 문화사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역사하여 세운 교회와 그 교회의 삶은 나눠질 수 없고, 또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외적이며 가시적 교회의 역사에 합류되어 있다.교회사는 지금까지 해왔던 말처럼 많은 방법,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고, 많은 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많은 핍박을 받았던, 중세에는 타락하여서 세속적으로 되었던 기독교, 종교개혁가 직면해있는 문제가 매우 복잡한 이유는 고대교회사가 이 문제에 답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점점 깊어가는 내면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될 정도로 강하게 되었으며, 모든 이교를 제거하고 제국이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었나 하는 점이다. 이 문제의 답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선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양자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교회의 형성에 관한 이러한 이중적인 진술은 교회사가 역사와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리고 역사는 동시에 인간의 결단의 장소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행동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이 둘 모두 인간을 상호배타적으로 인도한다. 역사라는 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으시는 것이지만 인간의 자유결정, 자유결단, 자유행위로 인해 역사는 바뀌어 가는 것이므로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 둘 다 영향을 받는다. 인간이 잘못 행동을 하여서, 생각을 하여서, 교회를 지도해 나가서 내면적인 삶으로 깊어지고 하여도,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될 정도로 강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이교를 제거하고 제국이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속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 도우심이라고 밖에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다.1)고대교회사고대교회사의 시기는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였을 때부터 그레고리우스 1세가 왕이 되었을 때까지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약 600년 가량의 사이에 교회는 많은 변화를 하였다. 초대교회의 시기부터 로마가 동로마 서로마로 나눠지고,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회도 많은 사건들을 겪었다. 억압받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했다. 두가지를 다루어 보겠지만 첫 번째로 기독교의 확장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1) 고대기독교의 확장 - 기독교는 바울 이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눠진다.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로 나눠진다. 외적으로 드러난 생활 방식을 볼 때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 관계가 유지 될 수 있었다. 유대 기독교는 주 것이다. 우선 동·서방 교회가 분열된 것을 한번 보겠다.(1)동·서 교회의 분열 - 하나를 중시하는 고대교회의 관점이 중세에도 수용되었지만, 11세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분열되고 만다. 이러한 상황은 1세기 이후 교회가 희랍측과 라틴측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해 왔다는 사실에서 예정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게르만, 슬라브 민족의 침략을 통하여서 쪼개지고, 서로 나누어지다가 결국 로마 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동·서방의 분리가 양측을 독자적 성격을 가진 교회로 발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 세계를 내부적으로 각성케 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부터 오늘날까지도 아직까지 동방교회와 서방은 화해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서로간의 분쟁을 말리기 위해 11세기경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9세가 비잔틴에 사신을 파견하여서 싸움을 종결하여 주기를 요청하였지만 오히려 서로간의 협상을 통하여서 더욱 서로를 비난하게 되고 파문장을 쓰며 서로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어려운 관계에 처한 사람들의 행동처럼 동방은 매우 민감하였고 그들의 오랜 전통을 주장하였지만 서방의 개혁운동은 호전적인 교의주의에 경직되어 있었다. 형제라 할지라도 서로 다를 경우 형제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서방의 분리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의 일치라는 자명한 이치와 교리적인 차이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는 치유될 수 없었다. 이러한 분리는 이미 이전에 동·서방의 대립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동방 교회는 로마에 대한 복종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를 내린 독립적인 교회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서로를 멀리 한다. 양측 모두 전에는 활발하였던 성직자의 교류가 동결되어서 많은 손실을 입었고, 입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이다.(2)중세의 특징 - 잠시 중세의 특징을 간략하게 한번 보자면 중세시대는 모든 힘을 하나로 통합하고 만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보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던 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치된 문화에서 중세는 세상의 구원을 분위기나 이단적인 운동을 어느 곳에서도 루터는 접하지 않았다. 그렇게 1505년 아우구스티누스 은둔파 ‘검은 수도원(Schwarze Kloster)에 들어갔고,(나중에 이 수도원은 종교개혁의 수원지가 되었다.) 수도원에서 루터는 자신의 영혼을 평온케 하고자 일정기간 많은 고행을 쌓았는데, 깊은 내적 고통을 통하여서 복음을 재발견하게 된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겪은 갈등들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교회의 요구를 더욱 진지하게 수행하도록 불을 붙였다. 부패한 가톨릭이 아닌 참된 가톨릭주의를 붙들고자 온 정열을 기울였으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루터는 새로운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성서적 진리를 알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자신의 중요한 생각들을 불가피하게 성서적 진술의 형식을 빌려 언급해야만 했다. 그의 신학은 성서적 개념의 신학이다. 루터는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새롭게 해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의 성서론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루터는 자신만의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칭의론, 윤리적 원칙, 교회 개념들을 자신만의 뚜렷한 잣대를 설정하여, 현대 신학에 큰 영향을 주고,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영향을 주는 훌륭한 신학자, 개혁자로 남아있게 되었다. 루터를 통하여서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보름스까지(1516-1521), 보름스부터 뉘른베르크 휴회까지(1521-1532), 뉘른베르크 화의부터 슈말칼텐 전쟁까지(1532-1546) 이렇게 크게 3부분으로 나눌수 있는 독일의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독일의 종교개혁은 초기에 이미 경계지역을 넘어 주변으로 확장되어 갔다. 서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추종자를 얻었다. 그러나 북부와 북동쪽에서만 계속 확고한 기반을 잡았고, 더 많은 경우에는 북부의 강요로 가담한 지역들의 민족적인 부흥과 연관되어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루터교회가 생겼는데, 그 루터교회는 루터의 사후에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게 만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