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스파이더맨에서 볼 수 있는 물리학적 요소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첫째로는 스파이더맨은 어떻게 벽에 붙어 다닐까?원래 ‘스파이더맨의 손에 있는 작은 갈퀴들 때문에 마찰력을 높인다’라는 설명을 하려했는데 조사를 하다보니까 이와 관련된 얘기가 있어서 추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파리 같은 벌레들이 벽에 붙어다는 것은 예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연구는 현미경이 세상에 나온 다음부터였습니다. 한 3~400백년 정도 된 거죠.사람들은 이렇게 예상 할 것입니다. 파리 다리에 난 미세한 털 덕분에 파리가 미끄러지지 않고 벽에 착 달라붙어 있다고. 하지만 이게 딱 옳다고 얘기할 수 없다.파워 vs 훅의 대결1664년 영국의 의사이자 실험가인 헨리 파워(Henry Power, 1623~1668)는 생물에 대한 현미경 관찰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파워의 관찰에 따르면 파리는 다리에 스펀지 같은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하얀색의 점성 액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액체가 접착물질로 파리가 벽이나 천장에 붙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그러나 1년 후 파워의 생각을 전면 부정하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현미경 발명가로 흔히 알려져 있는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이 파워에 도전을 건 것이죠.훅은 우리 눈에 비록 매끈하게 보이는 표면이라도 파리에게는 충분히 거칠어서 다리에 난 미세한 털들을 거친 면에 얽히게 해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논쟁이 말끔하게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19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다른 미시생물체로 관심을 돌려버렸고 이 얘기는 머릿속에서 잊힌 탐구주제가 되고 말았다.하지만 현대에 현미경이 발달하면서 이 발바닥의 비밀을 좀 더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벽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이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게 핵심 주제인데, 최근에 이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능력이 300년 이전에 파워가 관측한 것처럼 곤충의 다리에서 나오는 액체물질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워의 주장처럼 간단한 건 아니었습니다.곤충은 털이 있든 매끄럽든 표면에 잘 달라붙어 있습니다. 매끄러운 발바닥은 개미, 벌, 메뚜기,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에서 발견되며 이런 곤충들은 발끝에 매우 부드럽고 쿠션처럼 생긴 ‘욕반(arolium)’이라는 특수 기관이 있습니다. 한편 털이 난 발바닥은 파리, 딱정벌레 등과 같은 곤충에서 보입니다.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털 발바닥이 있는 경우가 좀 더 일반적인 유형으로 보고있지만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부착능력이 탁월한지는 아직 논의가 되고 있는 주제입니다.1) 왼쪽은 털이 있는 잎벌레 발바닥의 현미경 사진이고 가운데는 확대 이미지다.오른쪽은 발바닥에서 분비된 액체로 털이 닿았던 면에만 남아 있다.2) 왼쪽은 매끄러운 대벌레 발바닥의 현미경 사진이고 가운데는 확대 이미지이다.오른쪽은 면에 남은 액체의 자국으로 발바닥 전체가 닿았음을 보여준다.예를 들어 아시아바느질개미는 몸무게의 100배나 되는 무게를 다리로 지탱할 수 있고 거꾸로 매달려 있을 뿐 아니라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다리를 옮길 수 있다. 심지어 달릴 수도 있다.어쨌건 모든 곤충의 다리에는 공통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두께의 얇은 액체막을 이용한다는 것인데 털이 있든 없든 곤충의 다리는 항상 어떤 액체물질로 젖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파워의 주장대로 말입니다.이제까지 곤충의 다리에서 분비되는 액체는 끈적끈적한 접착성 물질일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설명이 안 됩니다. 어떻게 곤충은 끈적끈적한 물질이 묻은 다리를 금세 다시 들어 올리는 것일까. 반대로 끈적거리지 않는 물질이라고 해도 이상합니다. 오히려 더 미끄러울 것일 테니까요. 이 물음을 풀기 위해 곤충들이 앉았던 자리에 남겨놓은 액체의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아미노산, 탄화수소류, 지방산, 탄수화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액체의 진짜 비밀은 밝혀낼 수 없었는데, 왜냐면 곤충이 액체를 분비하는 그 순간에 바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추가적인 실험으로 곤충들이 단순히 한 종류의 액체 성분을 내놓는 게 아니라 두 종류의 액체 성분을 분비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한 종류는 상대적으로 양이 많으며 기름 성분으로 며칠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존재했고,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종류만 확인했던 것입니다. 다른 종류는 양도 적고 휘발성이 강한 물과 같은 성분이었습니다. 기름 성분액체에 물 성분 액체가 미세한 방울로 퍼져있는 상태로 이를 ‘유화(emulsion)’라고 하는데요,아무튼 분비된 액체에서 물 성분 방울은 공기와 접하면 금방 날아가 버려 그동안 이 두 번째 액체 성분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래서 과학자들은 특수 고분자막을 이용해 마찰력을 측정하는 실험을 합니다. 특수 고분자막은 두 종류의 액체 중 물 성분 액체를 선택적으로 흡수하여 휘발성 성분의 양을 달리하거나 기름 성분만 남도록 할 수 있습니다.이를 통해 연구팀은 마찰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조사 결과, 휘발성 성분이 없을 경우 마찰력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고, 기름 성분만 남으면 곤충들은 미끄러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두 종류의 액체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연구자들은 곤충이 분비하는 액체가 ‘빙햄유체(Bingham fluid)’라고 설명합니다. 빙햄유체란 내버려두면 고체처럼 탱탱하지만 힘을 주면 액체처럼 흐른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치약입니다. 빙햄유체의 이런 특성은 액체에 분산돼 있는 작은 물 성분 입자가 약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인데, 외부에서 힘을 주지 않으면 이런 약한 힘으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힘을 주는 순간 네트워크가 깨져 액체가 됩니다. 곤충의 발이 분비하는 액체에서 미세한 물방울이 작은 입자의 역할을 하는 셈이죠. 그 결과 파리는 가만히 있을 때는 액체가 고체화돼 벽에 붙어 있지만 날려고 벽 반대쪽으로 힘을 주는 순간 점성이 낮은 액체가 돼 쉽게 떨어지는 것입니다.마찰력과 면적은 비례한다?조원 중 한 명이 자료조사를 하면서 마찰력을 크게 하는 방법은 두 물체의 면적 크기를 넓게 한다고했는데 저처럼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는 분이라면 마찰력과 면적이 비례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마찰력의 식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F=μN (μ:마찰계수, N:수직 항력)쉽게 말해서 물체가 무거울수록 물체와 바닥면 사이가 거칠수록 커지기 때문에 이상적인 상태에서 마찰력은 접촉면의 면적에 무관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여러 변수가 존재합니다.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1. 모차르트의 생애‘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27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최초의 음악 선생님이었으며 모차르트가 음악 활동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작곡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 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하는 등 서유럽각지의 긴 여행은 모차르트의 작곡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7세 때는 미뉴에트와 트리오를 작곡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으며 8세 때 최초의 교향곡(제1번Em장조)을 작곡하게 된다.이탈리아 여행 때인 10세 때에는 그가 작곡한 오페라를 밀라노에서 상연하기도 하였다. 1770년 로마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그에게 황금박차훈장을 수여하기도 하며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여행을 통해 많은 상과 명성을 얻었고, 그 후로부터 기악, 성악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창작활동을 하다가 1791년 35세의 짧은 나이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상을 떠난다.2. 모차르트의 시대상황(17-18세기)과 역사적 배경18세기 중후반에 부르주아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계몽주의사상운동이 시작되고, 사회적인 개혁이 시작되었다. 이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동의 시기가 모차르트의 생애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음악에도 한 영향을 주었다.3.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프리메이슨’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영국에서 발생한 인도주의적 박애주의를 지향하는 우애단체이자 비밀결사단체로, 모차르트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의 단원이었고 현재까지도 이 단체는 존속되고 있다. 18세기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했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것들을 중시하는 시기를 ‘계몽주의’ 시대 혹은, 인간을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인본주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당시의 프리메이슨은 기존 사회의 반동과 타락에 맞서 개혁과 진보의 편에 서 있었고, 이 사상은 영국에서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은 모차르트가 30살 때 작곡한 오페라로 봉건주의의 억압을 깨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한 오페라로 평가되는 오페라인데, 이러한 모차르트의 정신이 바로 프리메이슨 운동에 영향 받았다는 것이다.그리고 모차르트가 오페라 를 쓸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가 죽어 반동세력의 기세가 등등해졌고, 새로 부임한 황제는 혁명을 저지하려는 태도를 취했는데, 프리메이슨은 그들의 계몽적 지지 성향과 비밀결사적 성격 때문에 탄압을 받게 되고, 모차르트는 이를 방어하기 위한 오페라를 쓰기로 결심하는데 이가 바로 오페라 이다. 프리메이슨이 반여성적인 성향이 있었는데, 모차르트는 남녀평등을 옹호하는 급진파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반여성적 태도를 비웃으며 그의 작품 에서 여성의 입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