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명절(名節) 】목 차■ 서문● 춘절(春節) P.3● 원소절(原宵節) P.5● 청명절(淸明節) P.7● 한식절(寒食節) P.8● 단오절(端午節) P.9● 칠석절(七夕節) P.10● 중추절(仲秋節) P.11● 중양절(重陽節) P.13● 납팔절(臘八節) P.14● 동지(冬至) P.15■ 결론■ 서 문중국의 세시 풍속은 역사성, 지역성에 따른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 자체는 대동소이하며, 해(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농경활동을 거행하며 행복을 추구해왔다. 중국은 오래된 농경문명이 있고, 이에 농업과 전통절기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중국 전통사회에서 세시풍속이 발달하게 된 대표적 요인으로는 농경생활을 주로 하는 사계절의 뚜렷한 자연적 환경을 꼽을 수 있다. 고대 중국 사회에서는 세시 풍속 중 특히 조상에 대한 제사를 통해 가족의 단결, 나아가 마을 단위의 축제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모든 백성이 한 날 한시에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국가적 일체감을 가지게 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당연하게도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어서, 풍년이나 개인의 안녕과 풍요에 관한 모든 것을 자연에 의지하였다. 그로 인해 점복과 같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들이 많이 행해졌고, 그것은 세시풍속을 통해 시행되어 왔다. 그래서 전통 세시풍속은 주술-종교적 의식이 지배적이었다.중국은 춘절에서 동지까지 다양한 절기 풍속을 가졌다. 이것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식과 이완의 시간으로써, 각 명절에 해당되는 음식과 풍속 등을 통해 노동의 성취감과 기쁨을 공유하는 기능을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음 해의 농업 활동에 대한 장려로 이어졌는데, 이는 단순히 농업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인 이익 뿐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부에 대한 장려였다. 이처럼 중국의 24절기)에 맞추어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다양한 모습의 제사와 행사, 놀이와 금기들은 농업과의 긴밀한 관계에 한 정월 대보름’이 풍속이 되었다.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漢)나라 때, 권력을 천탈하였던 여후(呂后)가 죽고난 뒤 주발(周勃), 진평(陳平) 등의 사람들이 여러 여씨(呂氏)들을 몰아내고 문제(文帝)를 천자로 삼았다. 문제는 여씨를 몰아낸 이날이 정월 보름이었기 때문에 이날 밤 변복하고 궁문을 나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면서 이날을 기념하였다 한다.- 원소절 풍속1) 연등(燃燈)연등(燃燈)의 풍습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고, 당나라 때에는 연등을 구경하는 활동이 점점 흥성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등을 구경하는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연등의 양식 역시 더욱 다양해졌다. 명나라 때는 연속 10일 동안 등을 구경했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이었다. 연등 풍습에 설이 하나 있는데, 천궁을 지키던 신조(神鳥)가 길을 잃고 세상에 내려왔다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이를 안 옥황상제가 대노하여 정월 보름에 불을 질러 인간을 벌하려 하였다. 이에 옥황상제 딸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 한 노인의 기지로 집집마다 붉은 등롱을 내걸고 폭죽을 터뜨려 불꽃을 올려서 이미 불이 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후로 정월 보름 날 등불을 밝히고 폭죽놀이를 하는 것은 그 날의 승리를 기념하고 인간세계를 도와준 선녀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2) 답교놀이답교놀이는 주교(走橋)라고 하여 밤에 부녀자들이 모여 흰 비단옷을 입고 다리를 건너는데, ‘액을 건넌다’고 하여 허리와 다리에 모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3) 등에 달린 수수께끼 풀기이 놀이는 시등(猜燈)이라 하는데 초롱이나 등롱에 매단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송나라 때에 나타났으며 현재 원소절의 주요 활동이다. 호사가(好事家)들이 수수께끼를 종이쪽지 위에 쓰고 등 위에 붙이거나 꼬리로 달아놓으면 그것을 사람들이 보고 정답을 맞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수께끼를 매우 재미있어 하고, 지혜를 개발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사회 각 계층에 인기를 얻으며 전승되어 왔다. 일반적으용차, 저택 등 다양한 종이 제품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각종 종이 제품을 태우는 청명절의 전통은 공기오염과 쓰레기 발생 등 및 과도한 비용 문제가 있어 최근에는 이를 자제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중국의 어느 지방 도시는 종이돈 대신 꽃다발을 놓거나 나무를 심는 방안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조상을 위해 편지를 쓰거나 웹사이트를 만들어 기억을 담는 방안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청명절 놀이와 풍습1)그네뛰기그네를 가리키는 추천(秋天)은 원래 ‘가죽 끈을 잡고 이동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고대에는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등 자연수목의 옆으로 뻗은 가지에 색깔 있는 끈을 매달아 그네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단오날(음력 5월 5일) 그네를 뛰며 놀았지만, 중국은 청명절에 그네뛰기를 한다.2)축국고대의 축구에 해당하는 축국은 가죽 안에 털이나 풀을 채워 만든 공인 국(鞠)을 발로 차며 즐기는 놀이를 가리킨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발명한 놀이라고 하는데, 애초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용도로 개발됐다. 축국은 청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즐기던 놀이였다.3)나무심기청명 무렵은 햇볕이 따스하고 봄비가 내리는 시기라 이때 나무를 심으면 생존율이 높고 성장이 빠르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청명절에 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으며 청명절을 '식수절(植樹節)'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식목일이 4월 5일이 된 것도 청명의 오랜 풍속과 관련이 있다.4)버들 꽂기청명절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수양버들을 꽂아두는데 이는 봄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각종 병해충의 피해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질병에서 멀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또는 버드나무에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한다.5)답청봄놀이(春遊)라고도 부르는 답청은 옛날에는 탄춘(探春), 심춘(尋春) 등으로도 불렸다. 꽃피는 춘삼월이면 만물이 생기를 띠며 파란 풀이 돋아나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므로 오래 전부터 답청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청명절 음식1)달걀성묘를 할 때 삶은 달걀을 묘비에 쳐서 깨뜨을 악월로 여겨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 사람들은 이때가 되면 긴장하여 매사에 조심하고 금기를 지키며, 신중히 절기를 보내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조상(祖上)제사와 천신(天神)제사와 다르게, 역신(瘟神)제사는 오직 단오절에만 올리는 대표적인 제사라고 할 수 있다. 단오절은 굴원을 기념하는 행사 외에도 여름이 곧 시작되는 절기이기 때문에 병을 쫓고 건강을 다지는 것 역시 빠질 수 없는 일이다.- 단오절의 행사 및 놀이단오절에 중국 사람들은 용선경주를 하거나, 명절음식인 쫑즈(?子))를 먹거나 혹은 물속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신을 달래어 화를 면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종규(鐘?) 귀신잡기)가 있다. 종규의 형상을 걸어놓아 가정의 불화를 쫓는다. 용선경주)는 강이나 바다에서 용처럼 생긴 배(龍船)를 20여명이 노를 저으며 빠르기를 겨루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것 외에도 중국 단오 풍속은 대부분 벽사제액), 건강유지 등과 관련된 웅황주 마시기, 오색실 걸기, 향주머니 걸기, 창포 꽂기, 쑥 걸어 놓기, 창포물로 목욕하기 등을 하며 악귀를 쫒고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다소 남아 있다.- 단오절의 현재중국에서 가장 최근인 2008년에 지정된 휴일이 바로 청명절, 단오절, 중추절이다. 이전에춘절(春節), 노동절, 국경일 이렇게 세 가지 명절에 각각 일주일씩 쉬었지만, 올해는 노동절을 3일로 줄이는 대신 청명절, 단오절, 중추절에 각각 하루씩 휴일을 만들었다. 용선을 젓는 풍습은 지금은 성대한 대회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마카오 등지에서도 국제적인 용선 경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칠석절(七夕節) 7월 7일- 칠석의 유래칠석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견우와 직녀에 관련된 설화와 풍속이 삼국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1년에 한 번 만나기 때문에, 이별이 서러워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한다. 천체의 운행에서는 단순하게 견우성과 직녀성이 이맘때 즈음 초저녁 하늘 가 되었다. 중국 여러 지방에는 아직도 많은 ‘배월단(拜月壇)’, ’배월정(拜月亭)’, ‘망월루(望月樓)’의 유적이 있다. 북경의 ‘월단(月壇)’이 바로 명나라 가정(嘉靖)년에 황실에서 달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축조한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달의 둥금으로 ‘슬픔과 기쁨, 이별과 상봉’을 표현하였고 타향살이 나그네들은 달에 애틋한 감정을 실어 시로 담아내기도 하였다.)중추절에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음식을 장만하여 달에 차례를 올린다. 이것은 배월(拜月)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절차나 장소는 한국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과 사뭇 다르다. 우선 차례의 대상이 다르고, 중국은 달이 음기로 이루어졌다하여 여자들만 절을 하고 남자들은 절을 하지 않는다. 또한 차례의 장소도 누각이나 마당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중주철의 행사 및 놀이농경 사회인 중국은 오곡이 풍성한 것은 월신(月神)이 인간 세상에 복을 내린 때문이라고 믿었다. 중추제 때면 모든 사람들은 배월(拜月)이라 하여 일년 중 가장 크고 둥근 8월의 보름달을 향하여 감사의 제사를 지내고, 상월(賞月)이라 하여 달을 감상하면서 소원을 빌며, 가정의 원만함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의 송편에 해당하는 월병(月餠))을 먹는다.중추절은 오래된 명절로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달구경을 하는 것은 이 명절의 중요한 행사이다. 또한 중추절에는 중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경축행사가 벌어지는데 제일 대표적인 것이 등회(??)이다. 중추등회로는 판용채등(蟠?彩?), 상아가 달나라 가다, 각양각색의 채색등, 연화마등(?花走??), 금용비우(金??舞), 등용전(??展)등이 있다.- 중추절의 현재위에서 밝혔듯이 중추절은 2008년부터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옛날 제왕들은 봄에는 해, 가을에는 달에 제사 지내는 제도가 있었고 민가에서도 중추절에 달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후에 달구경이 제사보다 중시되면서 엄숙한 제사는 가벼운 오락으로 변하였다. 이제는 각 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정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즉 연회졌다.
Steal, Steel, StillSteal - 빼앗다영화는 싼쌰댐이 건설되면서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극명히 다른 두 가지 삶을 대조시킨다. 그것은 단적으로 자본의 ‘수혜자’와 ‘희생자’의 삶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향촌 지역에 자본이 유입되면서 싼샤댐이 건설된다. 이전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국가의 정책이라는 대의 아래 저항이나 변명의 여지도 없이 살 곳을 잃었다. 그들이 2천 년 간 지속해온 삶과 정신이 묻어있는 고향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빼앗기고는 강제로 이주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어 철거민의 삶을 살아간다. 반대로 이 과정 속에서 자본이 들어오면서, 수몰되지 않은 고지대는 댐 건설에 따른 자연경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의 천국이 된다.수몰지역 주민들이 땀 흘리며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할 때, 그들은 고분을 캐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그들이 멋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남녀가 춤을 출 때, 주민들은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누군가가 노래하는 것을 들으며 소소히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 노래 또한 극명하게 대조되는데, 고지대의 그것은 낭만을 노래하지만, 저지대에서는 인간다움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대비는 영화 중 부각되는, ‘담배’, ‘술’, ‘사탕’, ‘차’ 등의 하찮은 것들에 위로를 얻는 이들의 삶을 비춰줄 때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이런 대조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싼밍과 션홍이다. 굳이 부류를 나누어 보자면 싼밍은 저지대 수몰지역의 주민에 가깝고, 션홍은 그 반대이다. 싼밍은 아내를 찾으러 와서는 아내를 볼 수 없자 건물 철거를 위한 일용직의 삶을 살며 아내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내에게 떠난 이유를 묻자, ‘그 땐 철이 없어서..’라는 대답을 하며 돌아가고 싶은 뜻을 넌지시 비춘다. 하지만 그녀는 3만 위안이라는 빚을 안은 채 힘겹게 살고 있었고, 그는 현 남편에게 그 빚을 1년 내에 갚겠다고 하고는 아내를 데려오기로 한다. 반면 션홍은 남편을 찾으려 왔지만, 그는 싼밍의 아내와는 다르게 자본의 수혜자로서 고위층과 어울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차를 사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심지어 션홍이 보낸 차(茶)는 포장조차 뜯지 않은 채로 사물함에 둔 채였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션홍은 마침내 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분명 처음에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나, 자본 사회 속 남편의 모습에 그녀는 생각에 없던 이별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 또한 그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아서 어떻게 보면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군상을 보여줌을 퉁해, 정말로 빼앗은 자는 누구이고 빼앗긴 자는 누구인지를 고민하게 한다.Steel - 강철댐 건설로 인해 삶의 희생을 강요받은 이들, 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과는 먼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영화 내에 비춰지는 많은 부분들이 이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건물을 ‘인력으로’ 철거하는 일을 하거나, 철거 명령이 내려왔는데 나가지 않고 버티는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받는 일을 한다. 이들의 삶은 피곤하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고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수혜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조건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질에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어 건강해 보이며, 하루의 일이 끝난 후에는 서로 담배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고로 죽자, 간소하지만 그들의 방식으로 옛 동료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본이나 여타 다른 ‘만족’을 주는 무언가로는 생겨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아스팔트위에 피어나는 잡초 같은 이들이다.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를 했고, 또 생계를 위해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런 그들의 마음은 오랜 시간 힘든 생활을 하며 고난에 대해 무뎌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이전의 싼샤에서의 열악하지만 인간미 넘쳤던 생활은 그들에게 강철과 같은 심장을 주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굳세게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Still - 계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거듭 말하지만, 이들은 댐 건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는 수심 156미터가 되었을 때의 수몰 예상지역을 건물마다 표시하고 그들에게 이주 명령을 내린다. 이는 거주민들에게 사형집행일이나 마찬가지로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싼밍이 묵었던 숙소 주인도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은 잠깐 분개하고는 곧 수용하고 광동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한다. 여기를 떠나서 어디로 가란 말이냐 라는 식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위해 미련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는 철거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싼밍이 아내를 찾았으니 돌아가겠다고 하며, 광산 일을 하면 하루에 200위안도 문제없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고 하자 그들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들은 짐을 싸서 싼밍과 함께 돌아가게 된다.
자본, 민중, 혁명 그리고 ∞영화 내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장곰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혁명가적 성격을 띄고 있다. 이에 반대로 황사랑은 자본에 타락한 권세가를 대변한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자본적 이익과 혁명적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방덕과, 혁명을 원하지만 스스로 나서지는 않는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민중들, 이 모든 것이 이 글의 제목을 이야기하기 가장 좋으며 한편으로는 유일한 소재가 된다고 생각한다.영화의 도입부, 장곰보는 새로운 현장이 되기 위해 강성을 향해 가는 마방덕의 기차를 습격한다. 마방덕은 현장이 되어서 더 많은 자본을 얻기 위해 현장 자리를 돈을 주고 산 사람이다. 그를 대신해 새로운 현장이 되려는 장곰보의 행보는 마방덕의 계획에 의해 강성이 아닌 어성으로 향하게 된다. 장곰보가 스스로 현장으로서 나선 것은 자본의 병폐로 인해 생겨났고 또 생겨날 제2의 황사랑의 탄생을 막고, 혁명을 시작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게 도착한 어성은 단순한 옛 중국이 아니라, 일본식 화장을 한 채 북을 치는 여인들과, 서양식 정장을 차려입은 황사랑의 모습, 그리고 벌거벗은 민중들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장소로써 외부 자본이 유입되어 비정상적인 모습을 가진 곳이다. 이 장소에서 황사랑은 자본을 착취, 축적하고 그의 측근들은 횡포를 부리며, 민중들은 괴로운 삶을 산다. 이 곳에 부임한 장곰보는 ‘공평, 공평, 공평’을 외치며 민중을 향한 횡포를 종결시키려 하고, 오해를 받은 여섯째는 그 정의를 증명하고자 스스로 배를 가른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민중은 여전히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소극적이다. 반면 지주인 황사랑은 그의 터전에 들어온 장곰보를 없애고자 적극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마방덕은 황사랑과 장곰보 사이에서 저울질 하며 혁명과 자본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이런 어성에서 장곰보는 황사랑의 돈을 훔치겠다고 결심하는데, 이는 자본가의 힘을 빼앗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돈을 빼앗을 때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가 외친 공평을 실현하는 것이다. 민중들에게 그는 새로운 이상이자, 그들을 해방시켜줄 구원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장곰보의 혁명적 행보와는 달리 민중은 여전히 소극적일뿐더러, 두려움에 황사랑에게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결국 황사랑과 장곰보의 대결은 ‘가짜’ 장곰보 토벌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곳에서 또 한명의 형제를 잃고, 마방덕도 상체는 은자 더미에 묻히고, 하체는 나무에 걸려버려 자본과 혁명 중 어느 쪽을 택했는지 모른 채 죽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진짜 장곰보가 맞느냐’는 그의 마지막 질문은 혁명에 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진다.결국 그들의 희생과 장곰보의 계략으로 황사랑과 대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마지막 대적에서 조차 민중은 소극적으로 반응한다. 다만 그 소극적인 행동 중에도 자본을 향한 탐심은 남아서인지 장곰보가 뿌린 은자를 밤사이 가져가지만, 아침이 되자 황사랑이 두려워 이내 다시 내놓는다. 이번엔 총을 뿌려놓자 그들은 총 또한 집어간다. 다시 황사랑의 마차가 그것들을 거두러 오지만, 이번엔 장곰보가 총을 쏴서 말들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이 둘의 전쟁 과정 뒤에 있는 민중은 은자가 주어지건 총이 주어지건, 그들의 삶에서 관심 있는 것은 오직 마작같은 놀이 뿐이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에서 이전에 볼 수 있던 3S를 보는 듯하다. 권력에 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것. 결국 그에 따라 오직 혁명을 외치는 이들의 외침만이 허공에 맴도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혁명가의 외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수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라 달려간다. 이에 그들은 황사랑의 저택을 향해 돌격하지만 뒤에 남은 것은 성난 민중이 아닌 두리번거리는 거위 몇 마리일 뿐이다.결국 장곰보와 육형제 중 몇 명만이 저택의 문 앞에서 총질을 해댄다. 그리고 그 사이 장곰보는 문에 느낌표와 물음표를 쏘아 넣는다. 민중의 반응에 대한 놀람의 느낌표와 혁명이 성공할지 여부에 대한 물음표 였을까. 아니면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연한 의지의 느낌표와 혁명 이후 가야할 길에 대한 물음표 였을까.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장곰보의 계획대로 가짜 황사랑을 처형함으로써, 민중은 (거저먹은) 승리에 사기충천해서 황사랑의 저택으로 달려들어간다. 그리고 장곰보는 잡힌 진짜 황사랑에게 묻는다. 돈이 중요할까 황사랑이 중요할까. 그리고 그는 답하길, 황사랑 즉 ‘자본을 부정적으로 독점하는 이들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이들의 혁명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 보인다. 자본을 독점하고,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황사랑은 죽고, 그의 재산은 민중에게 분배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혁명가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혁명 주도자인 장곰보를 남겨두고 상해로 떠나게 된다. 비록 함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솔직히 불편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다. 당연히 혁명을 앞에 두었기에 접어두어야 할 인간적인 부분이 있고, 그들은 인간이기에 언제까지 혁명세력으로 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 완수된 순간이 민중 중 한명으로 돌아가는 순간인 것이다.
퍼즐을 맞추면 사회가 보인다영화는 퍼즐 조각들이다.단순히 중국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는 그 사회가 가지는 부분적인 현상이나 성격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영화가 가지는 한계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강력한 특징이기도 하다. 즉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그에 따른 해결을 촉구하거나, 또는 문제를 인식시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의 해결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한편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를 완전히 이해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회의 모습과 문제들 중 일부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 일뿐, 그 사회 전체에 대한 이해라고는 할 수 없다.앞서 얘기한대로 영화가 가지는 한계성으로 인해 사회 전체를 영화 한편에 담는 다는 것은 어려움을 넘어서 불가능한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 사회를 정확히 보고 또 다각도에서 보기 위해서는 영화 한편 한편에 국한되지 말고 여러 영화를 두루 비교 분석해야 한다.영화라는 것은 감독이 자신의 의도에 맞추어 사회라는 큰 그림 중 일부만을 왜곡 혹은 과장해서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낸 하나의 퍼즐 조각이다. 하지만 사회가 정물화처럼 뚜렷하고 명확한 그림이 아니기에, 그것을 나타낸 퍼즐 조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생각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는 모양의 퍼즐도 아니다. 감독 각자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영화로 표현해 냈기에, 그것들의 교집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부분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곧 영화를 통해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감독들이 만들어낸 퍼즐 조각들을 한데 모아, 맞춰보고, 겹쳐보며 그 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어떤 큰 그림을 보여주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감독들이 사회를 표현하고자 만든 다양한 퍼즐들을 결합시켜서 본다면, 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그 이상의 도구가 없을 만큼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과 ‘현대화’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퍼즐 조각들을 모아보고 그를 통해 중국 사회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퍼즐 모으기 1 - 여성지금 중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첫째로 ‘여성’을 말하는 퍼즐 조각들을 모아보려고 한다. 중국사회는 이전에 유교라는 틀 아래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억압받아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국두』에 등장하는 국두가 유교사회 아래 억압 받고 희생을 강요당해 온 전통 여성상을 대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붉은 수수밭』이나 『홍등』에서도 여성이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남성을 위한 종속적이고 보조적인 존재로 존재할 뿐이다.이렇게 봉건 사회 속에 불행과 억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던 여성상이 『모리화』에서 달라진다. 『모리화』의 배경은 1920년대 상해로, 아편전쟁 이후 강제로 개방되어 서구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곳이다. 영화에는 3대에 걸친 여성들이 나오는데, 모두들 이전의 전통적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질적으로, 급속한 외래문물 유입으로 인해 그들이 입는 옷이나 사는 집 등이 달라졌으며, 정신적으로는 그들이 더 이상 남성 의존적이지 않게 되었다.비록 ‘모’는 맹사장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했다가 버림받고는 화려했던 날만 되새기며 살지만, 다음 세대인 ‘리’는 스스로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남편에게로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남편과 그녀 스스로를 잃긴 했지만, 그녀가 보여줬던 진취적인 모습은 중국의 여성의 인식과 행동이 변해가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어서 ‘리’ 이후에 등장하는 세대인 ‘화’는 여성의 완전한 독립을 보여준다. 그녀는 교육을 받은 지청(知靑)으로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 나갈 뿐만 아니라 자기 남편의 학비까지 뒷바라지 한다. 게다가 남편의 배신 뒤에도 그녀 이전 세대처럼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독립에 성공해서 아이를 데리고 이전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게 된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남성에 대한 정서적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부분까지도 더 이상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독립했으며, 스스로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해 나가는 여성이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리고 『결혼증명서』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현대적 여성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을 당당히 요구한다. 심지어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여성의 권리가 남성의 그것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혹자는 영화에만 국한된 사실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소재가 영화에 등장하고 그것이 관객의 공감을 산다는 것은 그 사실이 결코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곧 영화의 배경이 된 2000년대는 여권의 신장이 완전히 이루어져서, 이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닐 뿐더러 남성과 동일한 혹은 남성을 넘어서려 하는 단계에 까지 와있는 것이다.또한 『유화호호설』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한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바로 자오샤오솨이와 장치우셩이 한 여자를 보고 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짧은 논쟁을 하는 장면이다. 비교적 나이가 있는 장치우셩은 여성의 덕이란 순종, 무지 등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최근의 세대인 자오샤오솨이는 능력이 곧 덕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전세대가 가졌던 인식과는 상당히 달라진 현대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이렇게 몇 개의 퍼즐 조각들이 모여서 보여주는 중국이라는 그림 속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모습이란 이전에는 비록 유교의 그늘 아래 억압되어 있었으나, 역사적 흐름에 따라 서구적 가치관이 수용되고 또 여성교육이 보편화되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함에 따라, 여성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그 사회적 지위 또한 높아졌다는 것이다.퍼즐 모으기2 - 현대화여성에 이어 두 번째는 현대화라는 키워드에 따라 모아본 퍼즐들이다. 이들을 비교, 분석해봄을 통해, 중국에서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보고자 한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본 대부분의 영화들이 결코 현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의 삶의 터전이 이전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세련되게 변했고, 그들의 의식주가 개선되었을지라도 영화는 변화된 화려함에 집중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인간에 대한’ 암울함을 보여주려고 한다.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래, 급속히 유입된 ‘자본주의’로 대표하는 서구적 가치가 증국 인민들을 뒤흔들었고, 이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와 변화에 온전히 적응하다 못해 악용하는 졸부들을 만들어 냈다. 이는 중국 사회 속에서 악순환으로 이어져 심각한 수준의 빈부격차를 야기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본을 기준으로 하는 일종의 ‘계층’이 생겨난 것이다.이것의 폐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유화호호설』이다. 영화 내에서 ‘리우더롱’은 개혁개방의 혜택으로 갑자기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대표한다. 그는 자오샤오솨이와 여자 문제로 마찰을 일으키지만, 자오샤오솨이가 복수를 하려하자 급하게 거액의 돈을 주며 그와 화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리우더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오샤오솨이는 복수를 위한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는 서로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리우더롱은 가진 것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고, 자오샤오솨이는 복수를 통해 체면을 살리고자 한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대화를 통해 상호간에 요구사항을 이해하려 했다면, 리우더롱의 진심어린 사과와 자오샤오의 체면을 살려주는 행위로 거액의 돈을 대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패왕별희 : 정체성지난 번 장예모의 『국두』를 예교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 아래 부분적으로 영화를 해석했다면, 이번에는 다각도로 장예모의 영화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첫째로 영화에 나타난 ‘역사적 흐름에 따른 인물의 적응 방식’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 한다. 영화는 1924년부터 1966년까지를 보여주는데, 이 시기는 중국이 격변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일전쟁(1937)과 1945년 일본 항복 후 장개석 정부의 북경 수복, 이후 공산당 정부 수립에 이어진 1966 문화대혁명 등이 그 기간의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러한 국가적인 큰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등장인물들의 행동방식에도 변화가 생겨난다. 먼저 1924년을 시작으로 ‘도즈’는 경극단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시토’를 알게 되어 서로 의지한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둘다 성공한 경극배우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이후 이 둘의 행동방식은 변하기 시작하는데, 샬로(시토)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계속 바꾸어 나간다. 자신이 경극 배우로써 유명해져 우월할 때는 연예계 대부인 원대인을 업신여기지만,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도움을 받으려 한다. 또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는 순간순간 이를 회피하려고 애쓴다. 특히 그는 머리로 벽돌 등을 깨는 ‘자해’의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해 나가는데, 공산당 시기에 이르러 취조를 받을 때는 더 이상 ‘자해’를 통한 문제 회피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그는 문화대혁명 때 자기 동료와 가족, 그리고 경극에 대해 비판하며 자기를 부정하는 회피 방식을 취하게 된다. 반면 데이는 상황마다 수동적으로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경극 배우’를 이유로 시토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해오다가, 시토가 결혼한 이후에는 원대인이 그 대상이 된다. 그리고 후에는 아편에 의지하게 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이들에게서는 패왕을 자처하지만 현실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샬로와,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데이의 모습에서 당면한 문제에 부딪혀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서있는 ‘쥬산’은 비교적 문제해결 의식이 강하다. 샬로가 잡혀갔을 때나, 데이가 잡혀갔을 때 그녀는 적극적인 행동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또한 그녀와 반대로 나사장은 자기를 버리고 실세에 자기를 맞추는 모습을, ‘서’는 사회 변화를 주도해 가는 모습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이렇게 몇몇 인물을 대표로 하는, 패왕별희로 축소된 중국사회를 통해, 역사의 흐름 속 인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둘째는 영화 속 ‘데이’에 주목해서 이해하는『패왕별희』이다. 『패왕별희』 속 ‘데이’를 이해하는 방식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데이’가 어린시절부터 ‘우희’라는 캐릭터에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고, 극중 인물과 현실의 자기를 동일시하여 결국 극 속에서처럼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바로 그가 극중 캐릭터와 동일시해서 여성의 자아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여성의 자아를 먼저 취함으로 인해 우희의 역할을 흡수했다는 것이다. 이는 먼저 ‘도즈’의 신체적 특성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바로 그의 손가락 개수이다. 그는 본래 5개여야 할 손가락을 6개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다. 이는 손가락 하나로 상징되는 남성을 심벌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섯 번째 손가락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 잘려지는데, 앞의 전제 하에 이는 ‘타인에 의한 거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타고나서 스스로 알아가는 성이 아닌 ‘타인에 의해 정의’된 성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극단에서 그가 맡게 된 ‘우희’ 역할은 이런 정체성 문제를 한층 더 가중시킨다. 결국 이것이 이후에까지 이어지는 ‘정체성’ 문제의 근본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그렇지만 그는 처음엔 타인에 의해 정의되어진 성을 거부한다. 일례로 그의 대사 중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가 아닌데..’ 부분에서 그는 계속 자신은 본래 사내아이라고 틀리게 말하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때리고 구박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의지해왔던 ‘시토’가 화를 내며 그를 상처 입히자 이내 ‘나는 본래 계집아이..’라고 바꾼다. 이는 도즈가 단순히 ‘우희’의 역할을 자신의 자아로 받아들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려지지 않기 위해 그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그는 버려지고 싶지 않아 항상 의존할 대상을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내의 도즈는 뒤바뀐 성 정체성을 가진 인물일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물인 것이다.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한 도즈에게 그토록 우상으로 여겨왔던 ‘장내시’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경극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를 만나지만, 장내시의 모습은 그가 그려오던 우상의 모습이 아니고, 이내 그에게 겁탈 당하게 된다. 이 사건 직후 극단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려진 한 아이를 보고는 극단으로 데려간다. 이는 마치 그가 그 사건 이후 여성으로서 ‘임신’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이후 그들은 성장해 유명한 경극배우가 되는데 그들은 그 유명세로 인해 가는 곳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장내시의 이전 모습과 같아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샬로는 결혼을 하게 되고, 데이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은 원대인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후 중일전쟁의 혼란기와 공산당 집권기로 대표되는 사회의 극심한 변화 속에서, 샬로와 여러 번의 갈등이 있었지만 힘겹게 ‘패왕’과 ‘우희’의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