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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시에 관하여 - 내가 가진 언어로 있는 그대로 보기
    내가 가진 언어로, 있는 그대로 보기-백석 시에 관해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언어가 없다. 말은 후천적으로 학습하여 사용하는 도구다. 처음에는 부모의 말을, 커가면서는 또래의 언어를 익힌다. 문학은 언어를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언어를 특별한 방법으로 정제한다. 시인은 모두 흔연하게 사용하는 표현이나 정형화된 문장은 여간해선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처럼 ‘파란’을 ‘샛파란’으로 쓰고 ‘하얀’을 ‘하이얀’으로 쓰는 것은 너무 쉽다. 시인들은 불 보듯 뻔한 시어를 사용하는 것을 질색하는데 백석은 거리낌 없이 비틀지 않은 시어를 쓰고 있다. 당대의 천재 시인이 시어 하나하나를 허투루 사용했을 리 없다.시인 안도현은 주저 없이 마음속 시 스승으로 백석을 뽑으며 시 ‘산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 부분에 백석의 매력이 숨어 있다. 그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시의 산문적 서술에 기여하는 말이 ‘생각한다’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프다. …(중략)… 시인의 눈은 때 묻은 목침 하나를 통해 대다수 우리민족 구성원들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현,『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한겨레출판, 2009) 69쪽)밋밋한 서술적 표현은 시를 산문적, 설명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다. 그런데도 백석이 서술적 표현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언어’를 쓸 줄 아는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남의 언어가 더 매끄러워 보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백석은 가지고 있지 않은 언어를 빌려다 쓰는 것을 거부했고, 그것은 그의 시 표현이 방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백석은 표준어로 대체할 수 없는 방언들로 정주 지방의 고유한 풍속이나 문화를 표현하였고, 자신만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어를 발굴하면서 시를 씀으로써 우리말의 용적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서란화,「백석 시의 방언 연구」석사 학위논문, 2010, 숭실대학교)’고 하지만, 백석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어를 ‘발굴’한 것이 아니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어들은 원래부터 그의 안에 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은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용하는 것이다. 표준어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굳이 방언을 쓴 것이 아니라 표준어로 대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백석 시의 방언사용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왜 백석이 방언을 사용해서 시를 적었느냐고 묻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왜 백석이 자신이 배우고 익히고 사용한 가장 익숙한 말을 사용해서 시를 적었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글의 앞머리에 언어란 배워서 익히는 후천적 도구라고 밝힌 바 있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천적 도구라면 어떤 시를 쓴 시인이 고향이 어디이고 주 활동 지역이 어디든지 간에 그 시에 사용한 언어가 정말 그 시인의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인지 남이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생이 한국인일지언정 자라며 익힌 언어가 외국어라면 당연히 외국어가 그에게는 살아 있는 언어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당사자뿐이다.또한 백석은 있는 그대로 본다. 과거의 체험적 사건을 시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던 일이나 전통적인 것, 사소한 것을 그대로 표현하곤 했던 특징들은 백석의 시선에 대한 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른 화자가 과거를 그린 것인지 아이 화자가 현재를 보여주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한 작품을 비롯해 아이 화자가 등장하는 시가 여러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자가 아이인지 어른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시인이 가진 시선이 어떻냐의 문제이다. 백석의 솔직함, 살아 있는 언어를 써서 살아 있는 사건을 들려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1936년도에 간행된 시집에서 아이의 시점을 가진 화자가 나오는 것이 전례 없던 일이라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지켜보는 시점이 아이였던 시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 그 솔직하면서도 시적인 감성이 대단한 것이다. 어찌 보면 어떤 대상을 노래하는 시인이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백석만큼 완벽하게 해 내는 시인은 없다.보통 백석의 시에서 화자의 특성을 크게 둘로 나눠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서정적, 서사적 자아와 풍경이나 정황을 묘사하는 중립적 자아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어린 시절과 전통적인 한국적 풍경에 대해 묘사하는 시인이 보다 서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이가 적을 때의 시인이 보다 감상적이었기 때문이고, 풍경을 그리는 화자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시인이 풍경과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말투로 세상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세상 그 자체가 되었으니 말투가 좀 더 무뚝뚝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그 담백한 솔직함이 백석의 시를 본 사람들이 언제나 현대적인 시라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전기 자동차가 달리고 손 안의 작은 기계 안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담아 가지고 다니는 현대사회일지언정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유년을 거쳐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한다. 그 성장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각인된 기억일 것이다. 그렇기에 소소한 사랑과 아픔, 그로 인한 유랑(방황), 전통과 성장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백석은 반근대성이라는 비평을 받으면서도 현대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다.
    인문/어학| 2013.04.29| 2페이지| 1,000원| 조회(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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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삿갓을 통해 본 풍자시 연구
    김삿갓을 통해 본 풍자시 연구1. 개괄풍자시는 언제나 민중의 곁에 있었다. 그것은 김삿갓의 예를 보면 잘 드러난다. 김삿갓 풍자시는 김삿갓 개인만의 푸념이 아닌 민중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시와 이야기를 통해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고 혹은 동질성을 획득한다. 때문에 유독 김삿갓의 일화와 작품은 구전되는 것이 많으며, 처럼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 또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김삿갓으로 바뀌어 구연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곧 김삿갓의 이야기가 김삿갓만의 이야기가 아닌, 민중의 뜻과 마음을 대변해주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풍자시조란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에 관하여 조롱·멸시·분노·증오 등의 여러 정서상태를 통하여 독자를 감동시켜 이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문학양식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니까 사회의 절대 다수인 민중, 혹은 하층민들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여 그 감정을 나타낸 것이 바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풍자는 해학과 결부시켜 설명되는데, 풍자의 웃음이 공격성을 띠는 데에 반하여 해학의 웃음은 연민을 유발한다는 차이점이 있다.풍자문학은 기존의 권리나 윤리의 허위를 폭로하고 진실을 깨우치는 것으로부터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데까지 이르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표상하는, 문학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나 늘 있어온 문학양식이었다.그렇지만 이들이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임에 비하여, 사회의 격변기였던 조선 후기에 와서는 사대부·위항인·하층민들의 여러 계층의 문학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으로 증폭되었다는 특질을 지닌다.김병연(金炳淵)의 육담풍월(肉談風月)과 언문풍월(諺文風月),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는 <토끼전>이나 <두껍전>과 같은 우화소설을 필두로 <흥부전>이나 <춘향전>·<적벽가> 등의 판소리, <봉산탈춤>의 양반춤과장이나 <양주별산대놀이>의 샌님과장, 유랑광대의 공연물인 인형극 제9장의 평양 감사가 꿩사냥을 나갔다가 개미한테 물려 죽는 장면 등가 없는 사회를 공산으로 은유하고, 햇빛을 성주에 비유한다.풍자와 그 수사는 대체로 의인법과 은유법을 애용했으며 간혹 인용법과 문답법이 사용되었다. 풍자시의 유일한 표현수단인 의인법과 은유법은 정국의 부패와 모순을 폭로하려고 할 때, 문학에선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풍자문학이 유용한 그릇이 되었다. 따라서 의인법과 은유법은 문학적 표현수단으로서의 성격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던 것이다. 풍자와 그 수사에 있어서 의인이란 비인격적 대상을 인격적으로 파악하여 표현하는 작용으로 결국 인간 이외의 대상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하게 될 때 성립한다. 의인은 인간 이상의 것, 즉 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인간 이하의 것, 즉 동식물?자연물에 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이조시대의 풍자시조는 주로 뒤쪽이었다.이조시대에 풍자문학이 유례없이 성행하였는데, 이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세조의 찬위를 비롯하여 반공정신의 거세, 연산대군의 횡포와 무오사화, 갑자사화, 그리고 중종반정이나 명종 때의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등을 거치고, 게다가 임진왜란까지 겪으며, 당시 조선 사회는 대단한 정치적 불안을 떠안고 있었다. 그 결과 인재의 등용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 악순환을 타파하려는 자를 질시와 모함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잇따른다. 이 때 시대의 불합리를 붓끝을 돌려 풍자하고 야유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런 이조시대의 불합리한 시대상황 속에서 풍자문학은 소담한 꽃을 피웠다.이어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편의 풍자시조의 소개와 그 해석을 보자.(1)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고발一身(일신)이 사쟈 한이 물것 계워 못 견딀쐬.皮(피)ㅅ겨 가튼 갈랑니 보리알 가튼 슈통니 줄인니 갓 깐니 잔 벼록 굴근 벼록 강벼록 倭(왜)벼록 긔는 놈 뛰는 놈에 琵琶(비파) 가튼 빈대 삭기 使令(사령) 가튼 등에아비 갌다귀 샴의약이 셴 박희 눌은 박희 바금이 거절이 불이 뾰죡한 목의 달리 기다한 목의 야왼 목의 살진 목의 글임애 뾰록이 晝夜(주야)로 뷘 때 업시 물건이 쏘건이 빨건이 뜻건이 甚(통해 다양한 예시를 들고 있다. 이 해동가요는 사설시조에 속하는데 사설시조란 평시조의 기본형에서 두 구 이상에서 각각 그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늘어난 시조이다. 원래 음악적 명칭이다.발가버슨 兒孩ㅣ들리 거믜쥴 테를 들고 개천으로 왕래하며,발가숭아 발가숭아 져리 가면 쥭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로나니 발가숭이로다.아마도 世上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김수장이 작품을 해석해보니 다음과 같았다.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개천으로 왕래하며,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느니라. 이리 오면 사느니라. 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발가숭이는 잠자리를 뜻한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잠자리를 잡을 때 부르는 동요에 풍자성을 가미하여 서로 속고 속이며 모해하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잠자리를 잡으려고 하면서 잠자리보고 자기들에게로 와야 산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역설적 상황이다. 즉 이처럼 서로 믿을 수 없는 각박한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발가버슨 兒孩ㅣ들’은 ‘모해하는 자’를, ‘발가숭이’는 ‘모해받는 자’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양반이라는 특정 계층, 혹은 자신보다 상위 계층에 대한 비판이 아닌, 보편적 세상의 현실 자체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종장에서 “아마도 世上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라고 노래한 것은 분명한 체념의 표현이다. 풍자는 하되, 사실 인간의 습성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세태라는 걸 노래한 것이다.(2)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 비판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것넛 山(산) 바라보니 白松骨(백송골)이 떠있거늘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뛰어 내닫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모쳐라 날랜 낼싀망졍 에헐질 번하괘라. 청구영언[시어, 시구 풀이]두험 : 두엄(지방 벼슬 자리)치다라 : 올라가금즉하여 : 끔직해서내닫다가 : 앞으로 뛰어 나가다가자바지거고 : 자빠졌구나낼싀만졍 : 나이었기 망정이지(다행이지)에헐질 : 멍들. 어혈(瘀血 : 살갗에 피가 맺힐)이 질⇒ '둑거비', ‘백송골’기하지 말고 게젓(게장)이라 해라.⇒ 서민들이 상거래(商去來)를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쟝수야, 하 거복이 웨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이란 표현을 통해, '게젓'이란 쉬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학적 어휘를 구사하는 게젓 장수의 허위 의식에 대한 빈정거림(풍자)이 담겨 있다.(4) 봉건적 가족제도 모순 비판18세기 후반부터 주자학적 가치관에 대한 민중의 불신 내지 회의는, 주자학적 윤리의 바탕인 강상을 범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전기 단시조에서 누누이 강조되어 온 충이나 효라든가 절의와 같은 기존 윤리 대신 처첩 간의 갈등이나 고부 간의 문제 또는 부녀의 부정과 관계된 내용이 장시조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전통적 도덕률에 대한 도전 내지는 반발로 파악할 수 있다.싀어마님 며나리 낫바 벽바닥을 구로지 마오빗에 바든 며나린가 갑셰 쳐온 며나린가 밤나모 셕은 등걸 휘초리나니 갓치 앙살픠신 싀아바님 볏뵌 쇠똥갓치 되죵고신 싀어마님 三年 겨론 망태에 새 승곳 부리갓치 뾰죡하신 싀누의님 唐피가튼 밧태 돌피나니 갓치 새노란 외곳갓튼 피똥 누난 아달 하나 두고건밧태 메곳갓튼 며나리를 어듸를 낫바 하시난고- 작자 미상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시어, 시구 풀이]며느라기 : 며늘아기,며느리벽마흘 : 부엌 바닥을갑세쳐온 : 무슨 값으로 대신 받아온밤나모 서근 들걸 : 밤나모 썩은 등걸알살피신 : 몹시매운, 매서운볏뵌쇳동 : 햇볕 쐰 쇠똥되죵고신 : 말라빠진겨론 : 결은, 얽은, 엮은당 피 : 좋은곡식돌 피 : 질이 나쁜 곡식욋곳 : 외꽃, 오이꽃건 밧 : 기름진 밭멋 곳 : 메꽃, 들에핀 꽃.[전문 풀이]시어머님아 며늘아기 미워 부엌 바닥 구르지 마오빚에 받은 며느린가 값에 쳐 온 며느린 가밤나무 썩은 등걸 회초리 같이 매서운 시아버님 볕 쬔 쇠똥같이 말라빠진 시어머님삼 년 결은 망태에 새 송곳부리같이 뾰족하신 시누이님 당피 간 밭에 돌피같이 샛노란 외꽃같이 피똥 누는 아들 하나 두고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를 어디를 나빠 하시는고⇒ 닷는 놈 긔는 놈에 榮華富貴로 百年同樂 엇더리 (1420, 김수장)[전문 풀이]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아까운 아가씨야 이 내 말을 들어보시오어두컴컴하고 쓸쓸한 불당 안에서 염불만 외우다가 그대의 인생이 죽은 후이면 홍두깨로 턱을 고여 책 넣는 궤짝에 입관을 하여 뜨거운 불에 화장을 하여 차디찬 재가 되면, 비여 있는 산에 구진 비가 내릴 때 울부짖는 귀신이 바로 네가 아니겠는가참말로 마음을 돌이켜 (중이 되는 것을 그만두고 나와 결혼한다면) 자손이 집에 가득하여 마치 흰머리에 이가 꼬이듯 달리는 놈에 기는 놈에, 영화와 부귀를 누리며 백년을 함께 즐김이 그 어떻겠는가(그 아니 좋지 않겠나.)⇒물욕이나 탐심이 없이 종교적 수도에만 전념해야 할 승려가 육정적인 정념의 화신이 되어 비구니를 유혹하는 파계승을 풍자하고 있다. 척불적인 요소가 농후한 이 작품은 승려가 어둡고 적막한 불당 안에서 염불만 외우다가 죽으면 산에서 우는 귀신이 된다고 하였다. 이는 불교를 신봉하는 여승생활이 속세생활보다 못하다고 격하시킨 풍자작품이다.아함 긔 뉘옵신고 건넌 불당에 동녕승이 내 올너니홀거사 내 홀노 자시는 방안에 무스것하랴 와 겨오신고홀거사 내 노 감토 버셔 거는 말겻태 내 곡갈 버서 걸너 왓노라 (작자미상)“어흠 거기 누구신가” “건너편 불당에서 동냥하는 중 저올시다.”“거사 홀로 자는 방에 무슨 할일 있어 와 계시오.”“거사님 감투 벗어 걸어 놓은 말뚝에 내 고깔 벗어 걸러 왔습니다.”[전문풀이]⇒ 이 작품은 두 남녀의 대화를 통해 남녀 간의 욕정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홀로 수양하려고 하는 남성에게 비구니가 찾아가 은근슬쩍 유혹하는 것으로 그 표현이 그렇게 직설적이진 않으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정이 상대에게 더 강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위의 작품처럼 스님의 정사를 묘사한 작품은 은근하며 주변을 의식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문답법이라는 형태도 어찌 보면 조심스럽게 접하면서 피차의 동의아래 이루어진다는 묵계이기도 하다. 육체를 드러내는 육감적인 성애올가
    인문/어학| 2013.04.29| 10페이지| 2,0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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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혼`을 통해 본 김소월 시의 능동성에 관하여
    김소월 시의 능동성에 관하여기본적으로 시는 낯설게 하는 예술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사물의 겉모양만 들어올 뿐이지만 시인은 사물의 이면,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것의 역사와 시간, 그 바깥과 안쪽을 들여다본다. 문자를 사용해 낯설게 하는 방법을 써서 이름난 사람이 바로 이상이다. 의미가 없으면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총체적 무의미를 가장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이상 시의 연구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지만 그 의미를 완벽하게 밝힌 연구는 없었다. 사실 애초에 의미를 넣지 않은 시어에서 의미를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가장 쉬운 말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으로 이름 높은 시인이 있다. 김소월이다.보편성이라는 화두는 김소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다. 누구라도 알고 있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조합하여 가장 어려운 주제인 사랑, 슬픔, 이별의 정서들을 노래했다. 김소월 시의 분석에서는 전통과 근대, 한의 정서와 보편성이라는 화두가 계속해서 논의되어 왔다. 김소월의 근대성 혹은 탈근대성에 관한 논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화두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예술작품은 시대를 초월해서 읽힐 수 있는가?’ 본 주제에 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이미 이루어져 왔기에 첨언을 붙이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겠지만, 이른바 다각도의 관찰이라는 것은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많은 범례가 있을수록 유익하므로 생각을 밝혀보도록 하겠다.비교적 수동적인 느낌을 주는 한의 정서이든 보다 능동성을 띄는 서러움의 표현이든 김소월 시가 슬픔을 그 중요한 매개체로 한다는 것은 반론 없는 사실일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김소월이 노래한 슬픔은 왜 아름답고 왜 사랑받는 것일까? 그 이유를 슬픔이 낯설게 보이도록 만든 장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소월의 대표작인「가시리」,「진달래꽃」은 물론이거니와 슬픔을 노래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중 화자는 사랑하는 님이 떠나가셔도 원망치 않고 그저 님의 안부를 빌거나 돌아오길 기다리겠노라고 선언한다. 이것을 한의 정서라고 볼 수 있을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민족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속담일 것이다. 한이라는 것은 품는 것이고, 가슴에 슬픔이 옹이지는 것이다. 실타래 풀리는 시원하게 풀려 나오는 것은 한이라기보다는 훨씬 승화된 용서와 희생의 경지다. 그런데 김소월이 용서와 희생의 시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불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가는길」과「초혼」을 보자. 님을 부르고 싶고 잡고 싶지만 잡지 않는다. 부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제시를 해 두고는 있지만,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화자의 태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용서를 경험한다. 누군가가 심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가족이니까, 친구이니까 어쩔 수 없이 용서한 적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인 용서다. 용서라기보다는 잘못을 못 본 척 그냥 잊고 넘어가주는 것이다. 모른 척이다. 그런데 김소월의 시에서는 화자가 능동적으로 용서를 실행하고 있다. 「초혼」의 전문을 잠시 살펴보자.산산히 부서진이름이어!허공중에 헤여진이름이어!불너도 주인업는이름이어!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심중에남아잇는 말한마듸는끗끗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사랑하든 그사람이어!사랑하든 그사람이어!붉은해는 서산마루에 걸니웟다.사슴이의무리도 슬피운다.떠러저나가안즌 산우헤서나는 그대의이름을 부르노라.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소리는 빗겨가지만하눌과땅사이가 넘우넓구나.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되여도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사랑하든 그사람이어!사랑하든 그사람이어!시의 화자는 부서지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이름을 지속적으로 부르고 있다. 미처 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꾸준한 부르짖음이다. 어째서 계속해서 그 사람을 부르는 것일까? 용서하기 위함이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가 끝끝내 전달되지 못한 것이 화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은 상대방에게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상대방이 저지른 그 잘못을 용서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듣는 자와 말하는 자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능동적인 용서를 요청한다는 의미 또한 존재한다. 이별 후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는 완전히 상대를 잊어야 한다. 헌데 김소월 시의 대부분 화자는 상대방을 잊지 않겠노라고, 당신도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집착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이 다른 시와 김소월의 시의 차이점이다. 김소월 시의 화자는 능동적인 용서를 실행하기 때문에 얼핏 집착으로 보일 수 있는 시적 감상을 전혀 다르게 바꿔놓는다.「가는길」또한 마찬가지다. 시적 화자가 시적 대상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을 용서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말을 건넨다. 정리하자면 다른 애정시에서 등장하는 시적 화자들은 마치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원망하는 감정의 잔뿌리를 모두 없애지 못했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에서 등장하는 화자들은 원망은커녕 용서의 꽃다발을 건네며 제대로, 능동적인 용서를 추구하고 있다.
    인문/어학| 2013.04.29| 3페이지| 1,0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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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스킨트 독후감 (향수, 비둘기, 좀머 씨 이야기 외 기타 단편 6편 간략 정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들쥐스킨트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한창 집안사정이 어지러워져 고민도 많고 한숨도 많았던 때이다. 어떤 책이던 닥치는 대로 읽으며 억제되지 못하는 감정을 대리경험으로 풀던 시절. 학교 도서관에 한구석에서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보았다. 사실 그 책을 빌린 이유는 주 제목인 향수보다 부제의 살인자라는 단어에서 난폭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1. 향수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며 빈둥대다가 밤 느지막해서야 ‘향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별로 특징적이지 않은 어투로 한 천재의 슬픈 삶에 대하여 느릿느릿 묘사하고 있는 그 책에 홀딱 반해버렸다.주인공 그르누이. 그는 흔해 빠지고 개성 없는 18세기 프랑스 도시의 하층민에게서 태어난, 아마도 그를 위한 가족계획 따윈 태초의 신조차도 쓰지 않았을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부터 이미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눈도 채 뜨지 않은 그 작은 생명이 세상의 모든 냄새를 소유하기라도 할 작정인지 끊임없이 코만을 벌름거린다. 보통의 인간과는 이미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부터가 달랐던 것.그르누이는 성장한다. 추하고 역겹게. 삶의 무수한 요건들 중 ‘생명 활동이 멈춰 있다’의 반대적 의미로써만 기능하는 삶. 그 어떤 질병도 그의 질긴 생명줄을 끊을 수 없었다. 질병들은 생명을 빼앗지 못해 아쉬워하는 듯 혓바닥을 길게 빼어 그의 몸에 숨길 수 없는 잔혹한 흉터들을 남겼다. 그러나 생명만큼은 결코 빼앗지 못했다.그는 이제까지 맡아온 모든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냄새 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냄새의 기억이 존재했다. 그 사전의 페이지수를 늘려나가는 것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다.그 때, 그 향을 맡게 된다.처음에는 섞이고 중화되어 원래의 향을 알 수 없는 희미한 조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질적인 향을 정확히 포착하여 원래의 향을 추출해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 향기는 뭐지?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기 위한 원천, 이 세상에 존재하는다. 수없이 많은 냄새의 도가니탕 속에서 빠져나와 단순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 속으로 파고드니,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그는 점점 인간의 냄새를 멀리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모든 냄새들로부터 마구잡이식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행의 처음 목적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무조건적인 도주만을 계속하던 그는 마침내 냄새의 극점 - 어떤 인간의 냄새도 나지 않는 곳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7년간이나 머무르며 이제까지 작성한 냄새의 사전을 들춰보며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빠져든다.그런데 문득.아주 문득, 어떤 기이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르누이는 모든 냄새를 정확히 판단하고 해석할 수 없었는데, 자신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냄새가 없다? 인간의 몸이란 건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냄새의 소굴이다. 그런데 냄새가 없다?그르누이는 공포에 질린다.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냄새의 사전을 열어도, 그 자신의 냄새가 없었다.그는 마침내 은신처를 나온다. 7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대단히 끔찍스러웠으므로 그는 자연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상한 연구를 하는 후작에게 붙들린다. 그의 연구 자료처럼 쓰이면서 그는 현실세계에 대해 익힌다.그리고 자신의 냄새를 ‘제조’한다.인간의 냄새라는 건 사실 대단히 간단히 제조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냄새를 잘만 이용하면 주목받는 인간이 될수도, 전혀 그 반대의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현실세계를 조금 알자마자 향수제조자의 도제로 다시 들어간다. 개처럼 일하기만 하는 그는 꽤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어떤 물건에서도 향기를 뽑아낼 수 있는 법을 배운다. 나무, 유리, 심지어 인간의 몸에서까지.그리고 그는 서서히 계획을 실행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특별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그르누이만은 알 수 있는 향기를 풍기는 소녀들이 하나 둘 피살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향수를 모으고, 소녀 살인마의 소문을 퍼뜨리던 그르누이. 마침내 마지막 제물, 그의 최초학년 그 밤, 나는 그르누이가 되어 소녀의 향을 따라 코를 벌름거리며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내가 독일어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쥐스킨트의 영향이 크다. 어떤 작가에게 관심이 깊게 동했는데 그 작가가 외국인일 경우 그 작가의 모국어로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다.‘향수’는 최근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영화에 대한 평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영화는 독일영화라기보다 할리우드영화이기 때문에 평을 쓰기가 꺼려졌다.2. 비둘기쥐스킨트는 무섭다. ‘향수’를 읽고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쥐스킨트에 대한 내 평가이다. 소설의 내용이 그로테스크해서가 아니라 그가 인간을 요모조모 뜯어서 인간의 어떤 측면을 부각시켜 글을 쓰는 것 때문이다. 인간의 요소 중 하나이므로 그것은 반드시 나의 안에도 있고, 쥐스킨트에 의해 그 부분을 찔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서운 것이다.‘향수’가 인간의 집착, 잔인성, 맹목성 같은 것들을 다뤘다면 ‘비둘기’는 인간의 나약함, 현대인의 규격화 등에 대해 다루었다고 생각한다.‘비둘기’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 그는 타성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어쩌면 원래 그의 성격은 타성적이거나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성격을 형성해나갈 무렵에는 둘러싼 세계가 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제멋대로 바뀌어버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어머니를 데려가고 아버지를 납치했다. 하나 남은 여동생은 이민을 보내어진다. 가족을 모두 잃고 자기 자신마저 고향을 잃고 전혀 모르는 낯선 곳으로 뚝 떨어진다. 그를 맡게 된 친척은 그에게 의향을 묻거나 하지 않고 그냥 군대에 보내버리고, 조나단은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제대하자마자 친척은 결혼을 주선한다. 당시에는 일반적인 중매결혼이었으나 이조차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다른 사내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그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다.핑글핑글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조나단은 지치고, 넌더리를 낸다. 친척 아저씨에게서 독립해 도시로 들어와 그간 나 부끄러움과 공포는 별개로, 그는 도저히 비둘기가 점령해버린 복도로 나갈 수 없었다. 수치심과 괴로움에 몸을 떨며 세면대에 소변을 보고, 점점 임박해오는 출근시간을 떠올리고 옷을 입기 시작한다. 8월, 그러나 목도리, 모자, 겨울외투, 장화, 그것도 모자라 우산을 들고 단단히 중무장을 한 채, 문을 빼꼼히 열고. 우산을 펴고! 지뢰밭을 지나는 군인과도 같은 자세로 흠칫 흠칫 비둘기를 피해서, 마침내 빠져나왔다.출근시간은 지켰으나, 그는 도무지 진정할 수 없다. 비둘기가 언제까지 저 곳을 점령하고 있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그동안은 여관에서 지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올해 안에 방을 산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하지만 이미 깨어져버린 완전성은 회복될 수 없다.그는, 생전 처음으로 경비 일에 괴로움을 느낀다. 지난 수십 년간 구도자의 자세로 전혀 흐트러짐 없이 경계 자세를 유지하던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그는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경계 자세를 유지하는 데 벅참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세상에! 상관의 차가 경적을 울려댈 때까지 대문을 열지 않고 놓아두었다. 단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는 치명적인 실수다. 천년만년 같은 시간이 겨우겨우 지나고 점심시간이 왔으나 그는 안락한 방으로 갈 수 없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안락한 방’따윈 존재하지도 않는다. 방으로 향하는 대신 그는 여관방을 예약하고 음식을 사서 공원으로 향한다.공원엔 거지가 있다. 수십 년 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곳에 있을 거지. 아주 잠깐, 젊은 날의 치기로 거지의 자유로움에 부러움과 비스무리한 감정이 생길 뻔한 적도 있지만 어느 날인가 그 거지가 바지춤을 내리고 사람들이 모두 보는 곳에서 설사를 해버리는 모습을 보고 부러움과 비스무리한 감정 따윈 싸그리 사라져버렸다. 그날 이후부터 그는 계속해서 거지를 경멸하고 직업을 갖고 문화적 삶을 누리는 자기 자신에게 자긍심을 느꼈다.하지만 그날 그는 거지를 경멸할 수 없었다. 불만에 차고 불안에 떠 튀기며 걷는다. 세상은 이다지도 아름다웠단 말인가? 그는 신나게 거리를 걸어 자신이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온다.비둘기.비둘기에 대한 걱정이 들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유쾌한 기분에 힘입어 그대로 발을 옮긴다. 마침내 도착한 복도.비둘기는 없다. 이미 깃털도 똥도 치워져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복도.사실 비둘기의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비둘기는 ‘촉매제’나 ‘스위치’ 정도로 쓰인 것이지, 그 자신이 대단히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갖고 있는 건 조나단 자신이다. 타율적으로 휘둘리며 살다가 지쳐버린 나머지 자신을 틀 속에 쑤셔박아 놓고 그것에 만족하고 ‘내가 조성한 타율’ 속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는 모습. 낯익지 않은가? 우리들의 모습중에는 분명 틀 속에 틀어박혀서 만족해하는 얼굴이 있다. 사실 조나단에게는 능동적으로 벽을 깰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분명 있었다. 그는 친구나 애인을 만들 수도 있었고 보다 바람직한 취미활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가 그러지 않은 것은 그의 나약함, 혹은 보호본능 비슷한 것의 작용이다. 사실 마지막까지도 타율적인 대상인 비둘기에 의해 벽이 깨어진 것은 상당히 희극적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비둘기가 사라진 복도를 비추며 소설을 끝낸다. 여운이 진하다. 여운을 넣기 위해 일부러 글을 애매한 곳에서 끊는 미숙한 작가가 아니라, 보여줄 건 다 보여주고 진한 여운만 남겨준다. 이래서 쥐스킨트가 좋다.3. 좀머 씨 이야기사실 내가 읽은 쥐스킨트의 두 번째 작품은 비둘기가 아니라 좀머 씨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중학교 2학년 때였으며, 향수에서 얻은 충격과 희열이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괴상한 이름을 외우게 만들었고, 그의 이름이 찍힌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땐 환성을 질렀다. (마음속으로만) 하지만 좀머 씨 이야기는, 그림도 많고 책 자체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꽤 난감하다.작품은 이렇다. 소년의 시점에서 평범한 소년의 일상을 서술하는데,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것은 ‘좀머’라는 사람의 존재다.
    독후감/창작| 2013.04.29| 9페이지| 2,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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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만교, 표정 관리 주식회사
    이만교의 표정관리주식회사주인공 '씨'는 미남형 얼굴에 표정이 확실히 나타나서, 좀체 자신의 속내를 숨기기가 어렵다. 표정이 너무나 확실히 나타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쉽게 그를 믿었고, 그 역시 남들에게 거짓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는 드디어 교회에 같이 다니던 '혜영'과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혜영은 그의 표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에게 끌렸지만, 너무 순진해서 혜영의 부모님에게 실직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마는 그에게 질색을 한다. 사실 거짓말을 해도 금방 표정에 나타나기 때문에, 거짓말을 못하는 것이다. 혜영은 표정관리를 좀 하라는 한마디를 남겨놓고 씨를 떠나 버린다.실연에 빠진 씨는 금세 실연당했다는 표정이 나타나 주변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는 거울을 보며 표정을 관리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가 않아 표정관리 학원을 등록한다. 표정관리 학원장은 그의 다채로운 표정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잘생긴 미남형 얼굴에 표정마저 저렇게 살아있다니, 하는 식의 감탄으로 그의 얼굴은 학원의 홍보물이 되고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그것을 자랑한다. 하지만 표정을 관리하기란 씨에게 고역이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바비'라는 여성을 짝사랑 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 앞에서 주눅이 든 표정이 되기 십상이다.그러나 바비라는 여성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표정관리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다. 지쳤던 것이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그 지친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전에는 표정만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딱 알아채던 주변사람이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야단들이다. 그는 '지쳐서 그렇다'는 말 한마디를 할 뿐이다.그런 지친 상태를 겪고 난 씨는 인식과 감정 자체를 다스릴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때부터 씨는 표정관리에 자유자재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는 그 타고난 미모와 제때 자유자재로 바뀌는 표정을 통해 모델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씨는 표정으로 여성을 농락까지 할 수 있게 된다.자신에 대한 기사를 쓴 '세아'라는 여성과 씨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 그는 자신이 표정관리를 위해 얼마만큼의 투자를 했는지 저 아이들은 알까,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어린아이들은 식당에서 뛰어 논다. 밝은 조명과 평소에 보지 못했던 주변 환경에 신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 가면서 예의범절을 익히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워도 그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덕목이다.그런데 약간 관점을 달리 해 보면 이 예의라는 것은 잘 포장된 거짓이다. 불쾌한 일을 겪어도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티를 내지 않다 보면 얼굴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감동적인 영화나 책을 봐도 순수하게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감동을 주기 위해 마련한 장치들, 복선, 카메라 워크나 소품들을 따지기 시작하면 감동하는 방법을 잊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흔히 성장이라 부르고, 어쩌면 우리가 자란다는 것은 남을, 혹은 자기 자신을 더 잘 속이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4.29| 2페이지| 1,000원| 조회(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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