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의 이해REPORT과 목 명 : 현대음악의 이해담당 교수 : 최경연 교수님제 출 일 : 2011년 5월 3일인문사회학부2011260387서지원목차1. 영화 속의 삽입된 현대음악- 캐리비안의 해적 ‘He's a pirate'를 중심으로...1) 영화의 진행과의 관계2) 작곡가의 작품 경향3) 곡의 형식과 장르, 연주기법과 악기들의 종류2. 교재 속의 현대음악 감상3. 향후 현대음악의 바람직한 방향1. 영화 속의 삽입된 현대음악- 캐리비안의 해적 ‘He's a pirate'를 중심으로...1) 영화의 진행과의 관계‘He's a pirate' 이 곡은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제 O.S.T 이다.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는 제목 그대로 해적에 관한 영화이다.하지만 영화자체가 이전의 해적 영화와는 다르게 해적의 모습을 희화화해 관중들이 즐기기 쉽게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해적영화가 보통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를 뒤엎고 여성들의 인기도 크게 얻었다.주제곡인 'He's a pirate' 은 주제곡이니만큼 주로 오프닝이나 엔딩에 쓰인다.하지만 곡의 분위기 자체가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곡이기 때문에 해적들이 싸우는 전투신이나 긴장감을 돋우는 장면에서 변형된 음악들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경우는 3)의 연주기법 부분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그리고 곡의 도입부에 현악기들이 낮은 D음을 리듬을 타면서 연주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영화의 웅장한 장면 이전에 깔리는 긴장감 가득한 부분을 표현하는데 적절하게 이용된다.원곡 자체는 영화에 크게 쓰이지 않고 리메이크 버전들만이 쓰이는, 엔딩 크레딧만 장식하는 어쩌면 비운의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2) 작곡가의 작품 경향‘He's a pirate' 이 곡의 작곡가는 클라우스 바델트 (Klaus Badelt) 로 독일태생의 영화음악 작가이다.주로 tv나 광고에서 이름을 알리던 클라우스 바델트 (Klaus Badelt) 는 1998년 같은 독일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 (Hans Zimmer) 와 씬 데드 라인, 글래디에이터, 미션임파서블2, 한니발, 진주만 등을 공동작업 하였고, 타임머신, K-19, 리크루트 등에서는 독자적인 역랑을 발휘했다.웅장한 음악부터 서정적인 선율까지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고 특히 독일 출신의 음악가답게 공격적인 사운드와 테크노 리듬을 역동적으로 아우르는 표현력을 발휘하고 있다.3) 곡의 형식과 장르, 연주기법과 악기들의 종류'He's a pirate' 의 형식에는 특이점이 하나 있다.그것은 멜로디의 속도, 받쳐주는 반주의 변화만으로도 멜로디의 느낌이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서 기존의 곡인 'He's a pirate' 이 캐리비안의 O.S.T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편곡되어 쓰였다.그 예의 첫 번째는 ‘One Last Shot' 이다.정확하게 영화가 끝날 때 딱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으로 사용되며 이러한 점은 클라우스 바델트 (Klaus Badelt) 의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영화 마지막의 감동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작품인데, 멜로디가 ‘He's a pirate’ 이다. 하지만 속도에 변화를 주면서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원곡은 주로 활기찬 분위기지만 그 대신에 전율이 느껴지는 감동이 그 분위기를 대신하고 있다.두 번째는 드럼 사운드를 바꾼 것으로 ‘The Medallion Calls' 이다.이 곡은 주인공인 잭 등장신마다 나오는 음악이다. 화려하고 경쾌한 멜로디는 ‘He's a pirate’의 중간 부분을 따 온 것이다.3편의 음악 중 ‘싱카폴’의 뒷부분에도 이 곡이 약간 편집되어서 붙어있기도 하다.주로 현악기가 사용되었던 원곡에 비해서 관악기를 주로 사용한 점에서 많이 다르고 드럼도 원곡의 마림바가 아닌 스네어드럼을 사용하면서 이전의 웅장함과는 다른 행진곡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세 번째는 ‘Will and Elizabeth’ 이다.이 곡은 주인공인 잭과 윌이 처음 만나 싸울 때 나오는 음악이다.역시 원곡은 ‘He's a pirate’ 이나 멜로디 사이사이를 띄워놓아서 긴장감을 더 많이 배가 시켰다.네 번째로는 ‘Wheel of Fortune’ 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제목을 가진 곡이다.이 곡은 앞의 클라우스 바델트 (Klaus Badelt) 가 작곡한 ‘He's a pirate’ 를 같이 작업을 하던 한스 짐머 (Hans Zimmer) 가 편곡을 한 것이다.원곡 보다는 긴장감을 더하는 전장의 분위기가 더 많이 풍기는 듯하다.‘He's a pirate’ 의 원곡이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서 바이올린의 세컨 포지션, 써드 포지션을 사용했다면 여기에서는 현악기보다는 금관악기의 사운드를 통해서 베이스음을 더 강조해서 긴장감을 드러냈다.그리고 악기만으로 구성되어있던 기존의 곡에서 탈피해서 그 외의 디지털 사운드도 이용해 음악의 다양성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부분의 오르골 사운드와 약간의 사람의 음성사운드를 섞어 쓰는 부분에서는 듣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을 주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다섯 번째는 'Drink Up Me Hearties' 이다.처음에는 다소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한다. 이곡은 다른 곡들이 원곡을 가지고 다른 악기를 사용한다던가, 템포를 변화시킨다던가, 리듬을 바꾼다던가 하는 작은 변화 속에서 다른 느낌을 꾀한 데에 비하면 많은 변화를 주었다.기본적인 주제 선율은 변화시키지 않지만 그 사이사이에 전혀 다른 곡들을 삽입하면서 기존의 곡과는 차별화된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원곡을 그대로 쓰는 부분은 원곡보다 템포를 빠르게 해서 좀 더 가벼운 느낌을 만들어 냈고, 현악기 보다는 주로 금관악기를 이용해서 다른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냈다.끝부분에는 바이올린이 시작하는 주제에 다른 악기들이 서서히 합류하면서 곡의 웅장함을 한층 더하면서 곡의 클라이맥스까지 주제를 이끌어간다.템포를 빠르게 변화하고 리듬까지 변화를 주면서 앞서 사용되었던 드럼이외에 다른 드럼을 사용해서 조금 더 리드미컬하게 만들고 팀파니가 사용되었던 부분은 다른 금관악기들이 그 자리를 채워 전체적으로 스케일이 더 크게 변화되었다.이러한 변화 때문에 원곡보다 훨씬 경쾌하고 원곡과는 다른 웅장함을 드러낸다.끝부분은 앞서 살펴봤던 ‘The Medallion Calls' 의 부분과도 흡사한 형식을 띄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느낌이 가볍고 경쾌하다.마지막으로는 ‘ I don't think now is the best time' 을 꼽을 수 있다.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3에서 나오는 곡으로 맨 마지막 장면의 흥겨움을 드러낼 때 쓰였던 곡이다. 등장인물들이 춤을 추거나 엽기 행각을 벌이면서 싸우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다. 반주에 상당한 변화를 줘 앞서 살펴보았던 곡들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춤곡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2. 교재 속의 현대음악 감상-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시카’페트루시카는 스트라빈스키가 불새라는 무용음악을 작곡해 크게 성공하고 난 뒤에 발표한 또 다른 무용음악이다. 이 곡은 1830년대 사육제 기간의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의 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인형들 세계의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러시아의 민속 음악적 선율이 많이 나타나고 있고 작품 전체에 민족적 색채가 짙게 풍긴다. 또 발레음악으로서 뿐 만 아니라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회에서도 연주된다.페트루시카는 이전에 봤던 ‘노다메 칸타빌레’ 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이미 들은 적이 있던 음악이었다. 드라마에서 들었던 음악은 피아노곡이었는데, 피아노곡이라는 느낌보다는 오케스트라 곡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선율도 다양하고, 다양한 음들이 같이 움직이면서 여러 개의 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관현악곡으로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검색을 해서 관현악으로 연주되어있는 페트루시카를 들어볼 수 있었다.피아노곡과 느낌을 비교하기 위해서 관현악곡도 피아노곡과 같은 부분이었던‘페트루시카-1악장 러시아무곡’ 을 들어보았다.피아노곡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경쾌하고 발랄한 선율의 느낌이 타악기와 목관악기의 소리 때문에 더 경쾌하게 느껴졌고, 피아노의 저음부분이 표현하고 있는 부분을 금관악기가 대신하면서 위에서 놀고 있는 가벼운 선율들이 더 돋보이게 하는 밑바탕을 깔아주는 느낌이 들었다.직접 페트루시카가 공연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듣기만 해도 그림이 그려지는 상쾌한 곡이었다.
일본 원전 사태가 말해주는위험사회과 목 명 : 현대 사회학의 초대담 당 교 수 : 이진희 선생님제 출 일 : 2011년 06월 09일인문사회학부2011260387서지원■ 목차1. 서론- 왜 일본의 원전 사태에 집중을 하는가?2. 본론1)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2) 구체적 적용-첫 번째 적용점 : 정치적 성향을 띠게 하는 패닉현상-두 번째 적용점 : 미디어의 공포 조장-세 번째 적용점 : 인간의 지식이 원인이 된 위험3. 결론■ 참고 문헌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프랭크 푸레디 지음, 박형신, 박형진 옮김, 이학사, 2011.현대 사회학-앤서니 기든스 지음, 김미숙, 김용학, 박길성, 송호근, 신광영, 유홍준, 정성호 옮김.을유문화사, 2011 5th edition.그 외 신문 사설, 사진 첨부자료-각주참고1. 서론- 왜 일본의 원전 사태에 집중을 하는가?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부근의 해저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최고 10m의 쓰나미가 발생해 진앙지 인접지역 원전의 원전 전원공급계통 등에 영향을 주었고, 일본 내의 총 54개의 원전 중 진앙지 주변의 10기가 지진발생 직후 자동정지 후 전력공급실패 등으로 원자로(핵연료) 냉각실패에 따른 원자로 건물 폭발 등에 따른 방사선 비상상황이 발생하였다. 이후 후쿠시마 제 1발전소의 1,2,3호기 전력공급실패로 인해 원자로냉각기능이 상실되었고 그 다음날인 12일 원자로건물이 폭발하였다. 3일 뒤인 15일 후쿠시마의 제 1발전소의 2호기 폭발로 인해 격납용기가 손상되었고 환경방사선량의 증가에 따라 인근 20~30km 지역 주민에 대해 옥내 대피령이 떨어졌다.아래의 사진 자료는 방사성물질 이동 예상도이다.자료1)은 3월15일 18:00시 예상도이며, 자료2)는 3월16일 24:00시 예상도이다.이 자료들은 미국 국립해양기상청(NOAA)가 개발한 HYSPILT를 이용한 것이다.자료1) 3.15 18:00시 )자료2) 3.16 24:00시)위의 자료들을 토대로 봤을 때 지진발생 1시간 이후부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위의 유언비어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국민들에게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후에 일어난 일본의 저농도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한 공포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원전사태에 대해서 왜 우리가 공포에 떠는지, 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태평양 주변 국가들까지 일본 원전사태에 집중을 하는지 조금 더 집중적으로 분석해보려고 한다.2. 본론1)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나는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이 책의 내용 중 ‘제 3장 우리는 왜 패닉에 빠지는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다.이 chapter에서는 ‘패닉’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가장먼저 내세우며 앞으로 무엇을 얘기 할 것인가를 던지고 있다.‘패닉: 갑작스럽고 엄청난 놀람 또는 공포의 느낌으로, 보통 사람들의 육체에 영향을 미치고,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지나치거나 무분별한 노력을 이끈다.’)그리고 우리가 패닉에 빠짐으로써 어떤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이 chapter의 논리를 몇 가지로 정리·요약해봤다.첫 번째, 패닉은 정치적 세력들에 의해서 선택되고 날조되며 이것은 비정치적 기구들이 정치적인 성향을 띠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패닉이라는 것은 그 사안을 다루는 부류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견해와 상응한다. 특히 보수적 지식인과 우파 지식인들은 환경 대재앙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 학대와 관련된 패닉을 큰소리로 비난한다. 이러한 이해관계에 있는 부류들은 미디어의 섹션들을 이용하여 패닉을 조장하는 날조를 시도하며, 그에 따른 날조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광범위한 불안과 공포를 폭발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우리는 ‘도덕적 패닉’을 유감스럽고 창피한 에피소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불안을 분출하는 것인 한, 그것이 왜곡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된 것일지라도, 공중의 인식의 중요한 전환을 험 의식을 증폭하거나 약화시킬 뿐이지 위험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가 위험에 몰두하는 것은 문제의 조짐이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세 번째,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면서 만들어낸 지식·기술·과학의 진보적인 것들이 자연의 복수로 다시 되돌아오는데 우리는 그것을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위험의 폭발-광우병에서 유전자공학이 초래한 위협에 이르기까지-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반영한다.’)독일 교수 율리히 벡과 케임브리지 교수 앤서니 기든스와 같은 유럽의 주요 사회학자들은 위험 의식과 지식의 증가 간의 밀접한 연계 관계를 주장한다.‘벡에 따르면 위험 사회의 중요한 면은 위험이 공간적으로, 시기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위험은 모든 국가와 모든 사회 계급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지구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가령 테러리즘이나 오염과 연관된 것과 같은 많은 유형의 인위적 위험은 국가적 경계를 넘어선다.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체르노빌 인접부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나이, 계급, 젠더, 지위와 상관없이-위험한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동시에 그 사고의 영향은 체르노빌 그 자체를 훨씬 더 벗어났다-유럽과 그 외 지역을 통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방사선이 폭발 이후에도 오랫동안 검출되었다.’)“위험의 근원은 이제 더 이상 무지가 아니라 지식”)-율리히 벡“오늘날 우리가 처한 많은 불확실성은 바로 인간 지식의 증가에 의해 창출된 것”)- 앤서니 기든스또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에서는 과학적 실험의 예상치 못한 결과가 재앙을 가져오는 세상을 그려냈다.인간은 항상 하나의 위험 혹은 다른 위험에 직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험은 일찍이 다가왔던 위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사회는 가뭄, 지진, 기아 등 인류의 행동과 관련되지 않은 외부위험 (벡이 말하는 과거의 ‘자.8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도쿄 번화가 시부야 등지에서 시민 1만 5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가 개최돼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도쿄 고엔지 시민그룹 등 시위대는 집회를 가진 뒤에 밴드와 스피커를 실은 트럭 4대를 따라 가두 시위를 벌였다. 참석자들은 “원전 철폐”나 “깨끗한 공기와 땅을 돌려 달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 여성(40) 참가자는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 6일 하마오카 원전의 운전을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하지만 가동되는 원전은 여전히 많다.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시위 참가자 중 경계 근무를 하던 기동대원을 때린 남녀 두 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한편 간 총리로부터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단을 지시받은 주부전력은 7일 임시 이사회를 열었지만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음 기사는 최근 날짜의 기사로 현재 후쿠시마 원전의 피해복구를 둘러싼 정치 파벌투쟁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를 담은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책임을 둘러싸고 현재 일본의 자민당이 현임 총리인 간 나오토 총리를 사임시키려고 정치공방을 펼치는 중이다. 이미 후임 안까지 제출이 되어있는 상태이며 내년 초쯤에 사임할 것을 밝힌 간 총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국민적 분노는 정치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의 와타나베 시즈오(59)는 정치인들을 겨냥해 “파벌투쟁 같은 짓만 해서는 재해복구가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전했다. 신문은 또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가 1일 저녁 도쿄 시부야역 앞에서 가두연설을 할 때 한 남성(64)이 “일본인으로서의 긍지가 없느냐. 이럴 때 다리나 잡는 짓을 벌이면 외국에서 웃을 것”이라고 고함쳤다고 전했다. ’)아래의 기사는 일본 국민들이 현재의 내각, 즉 간 나오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을 교체해야한다는 의견에 동의9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미키타니 사장은 전날 도쿄도내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에너지정책 방향과 관련해 “게이단렌과 생각이 다르다. 정치인이 정책이 다르면 탈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게이단렌 탈퇴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발전과 송전은 분리해야 한다”며 “독점체제에서는 규율도 경쟁도 작동하지 않고, 정부와 유착돼 감시도 소홀하게 된다”고 말했다.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간 나오토 내각이 내놓은 전력생산(발전)·송전 분리방안에 게이단렌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미키타니 사장은 지난 27일에는 트위터에 “(게이단렌의) 전력업계를 보호하려는 태도는 용서할 수 없다” “슬슬 게이단렌을 탈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라쿠텐은 1997년 인터넷 쇼핑몰로 시작해 인터넷 금융, 통신, 프로야구(라쿠텐 이글스) 등에 진출한 신흥그룹이다. 최근엔 트위터에 “일본의 부흥을 위해서는 관료, 국회의원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위의 기사들을 종합해봤을 때 기존의 정치세력과는 상관없는 주민들과 상류층인 기업인들까지 정치적인 여론에 합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정부가 원전사태의 수습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나 정치세력을 키우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정치인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은 최근에 불거진 지진대책특위 부위원장의 정치인 性스캔들로 인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결국, 자연적인 재해로 인한 원전피해라는 하나의 패닉현상이 일본열도 내의 주민들의 ‘의식 성장’을 고취시켜 자신들이 처해있는 위험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대처하는 정치적인 성향을 띠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두 번째 적용점 : 미디어의 공포 조장‘최근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 오염에 대한 공포는 분명 과장된 것이다. 극미량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방사능 비’라는 낙인은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 사회 전반
·과목명 : 현대사회의 이해담 당 : 고승우 교수님학 과 : 인문사회학부학 번 : 2011260387제출자 : 서지원대학 등록금 관련 레포트■차례1. 서론- 등록금 인상과 ‘반값 등록금’2. 본론1) 반값 등록금 찬성 측 주장2) 반값 등록금 반대 측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3) 대학 등록금 이해관계자들 간의 인식 차이 분석3. 결론■참고 자료< 대학 등록금과 물가 상승률 비교 >-통계청 자료반값 등록금 둘러싼 4가지 우려 그리고 대안-경향신문,2011.06.03,정유진·송현숙 기자1. 서론- 등록금 인상과 ‘반값 등록금’각종 매스컴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슈가 되는 대학 등록금 문제. 그 문제점과 실태를 이번 레포트 주제로 삼아 파헤쳐 보려한다.여야가 6월 임시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를 다루기로 합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등록금 문제가 뜨거운 사회 현안으로 부상했다.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 대학생들의 큰 지지를 얻은 공약은 바로 ‘반 값 등록금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을 한지 4년째인 지금까지 아직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애초에 한나라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반값등록금’은 정치권에서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으며, 이러한 논란이 거센 가운데 대학은 등록금을 해마다 2~15%까지 올리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상황이 이렇다보니 휴학을 선택하거나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고 있는가 하면, 등록금 문제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들도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9명이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느꼈으며 6명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실제로 학생 30%는 학자금 마련을 위해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이나 시중은행,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고, 이 중 17%가량이 돈을 갚지 못해 연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이 2만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학생 100명 중에 1명이 신용불량자인 셈이다.뿐만 아니다. 서민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학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년 주부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어 ‘모골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두 자녀가 대학을 다닐 경우 그 부담은 곱절이 된다. 선택의 여지없이 두 자녀 가운데 한 명은 장기 휴학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거나 한 명이 졸업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부모가 경제력이 없는 가정에서는 자녀를 대학 보낼 꿈조차 꿀 수 없다.2. 본론1) 반값 등록금 찬성 측 주장요즘 같은 불경기에 등록금 인상은 대학생의 자녀를 둔 가정의 재정악화를 가져다준다는 반값 등록금 찬성 측 주장에 따라 가시화된 자료를 통해 파악해보자.표1) 은 현 정부 출범이후의 등록금 인상률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고표2) 는 대학 등록금과 물가 상승률을 비교한 그래프이다.표1)표2)위의 자료 표1), 표2) 를 살펴보면 청년실업과 작년에 전국 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2배에 달했다.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물가상승률은 2-3%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인상률은 5~15%를 기록하면서 어느 덧 ‘입학금 100만원 시대, 등록금 1천만 원 시대’가 돼버린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물가 상승률과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는 일종의 괴리가 존재하게 되는데 물가 상승률은 종합적인 상승 평균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체감 지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 가정에서 식비 및 생활유지에 쓰이는 비용의 상승률은 종합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의 지속적인 인상은 단연 가정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2) 반값 등록금 반대 측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이러한 상황 속에 연간 1000만원에 이르는 대학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으로 인해 다른 복지예산이 줄어들고, 대학들에만 이익이 될 것이라는 반대 논리도 나온다. 반값 등록금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사안이 복잡할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등록금이 올랐고 결국 정부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1) 다른 복지예산이 줄어들수도 있다.교육과학기술부 등에 따르면 현재 대학 등록금 총액은 약 14조원에 이른다. 이 중 장학금 1조~2조원을 빼면 학생들의 실질 등록금 부담액은 12조~13조원이다. 따라서 반값 등록금을 위해서는 최소 6조~6조5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반값 등록금을 도입하면 다른 복지예산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정부가 초중등교육 예산을 빼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물론 반값 등록금의 실현에 국가 재원이 들어가는 데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을 위해서 추가적인 재정확충이 필요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연간 국가적 예산 낭비는 7조원을 훌쩍 넘은 13조원에 이르고 있다. 재정적 예산 낭비를 하지 않고 쓸데없는 토목공사에 돈을 쏟아 붓지 않는다면 반값 등록금은 물론 의무교육 시스템의 복지 확충으로 학생들의 무료급식이 지원 가능하다는 말이다.반값 등록금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반값 등록금 도입의 대전제가 전체 복지예산의 ‘파이’를 키우는 데 있다고 말한다. 기존 예산 내에서 ‘돌려막기’를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총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 등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부자감세 철회와 증세로 세입을 늘려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 반값 등록금 정책의 핵심”이라며 “기존 복지 및 교육예산을 삭감해선 안된다”고 말했다.(2) 대학들만 배불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대학정보공시시스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89개 4년제 대학 중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곳은 70곳(37%)이다. 반값 등록금 제도가 이런 부실대학의 재정을 메우는 쌈짓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몇 백억대 적립금을 쌓아놓고 재단 전입금조차 내지 않는 사학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생에게 직접 주는 ‘등록금 지원금’과 대학에 주는 ‘교육환경개선 지원금’의 투 트랙으로 진행하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학생에게 지원금을 직접 줌으로써 대학이 전용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자는 것이다.재단 전입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사학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개방형 이사제 등 사학법을 보다 엄격히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2006년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학법 통과를 결사 반대한 장본인들”이라고 말했다.(3)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이 될 수도 있다.반값 등록금을 도입한다 해도 등록금에 거품이 빠지지 않은 채 계속 오르기만 하면 결국 대학에 흘러가는 국고의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립대에 국고가 투입된다는 것은 대학의 공공성이 그만큼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부가 등록금 인상률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에 월세를 지원하는 독일 정부가 집주인들이 월세를 마구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정진상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요 사립대가 등록금을 올리면 다른 대학들이 그에 맞춰 경쟁하기 위해 뒤따라 올리는 식으로 등록금 인상이 이뤄져왔다”면서 “국·공립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들 대학의 등록금을 장기적으로 완전 무상에 가깝게 내리면 시장원리에 따라 다른 대학들도 따라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4) 사회 양극화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도 있다.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차라리 (반값 등록금에 쓰일) 그 돈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임금격차를 줄이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동북공정)REPORT교 과 목 : 유물로 보는 고구려 이야기담당 교수 : 최종택 교수님제 출 일 : 2011년 03월 28일인문사회학부2011260387서지원■ 목차1. 동북공정이란?2. 동북공정의 목적 (중국 측의 의도)3. 중국학계의 주장과 논리4. 동북공정의 진행과정5. 남, 북한의 대응방법1)남한2)북한6. 결론■ 참고문헌동북공정의 선행 작업들과 중국의 국가 전략-우실하 지음, 울력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이개석, 이희옥, 박장배, 임상선, 유용태 지음, 고구려연구재단동북공정과 고대사 왜곡의 대응방안-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지음 , 백암동북공정과 한국 학계의 대응논리-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북한의 고구려사 인식과 동북공정 대응- 레포트월드 출처 자료네이트 검색, 백과사전다음 검색동북공정이란?동북공정이란 중국이 자국의 국경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이다,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를 줄인 말로,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를 뜻한다. 이 연구를 통해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즉, 중국은 현재 중국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및 발해 모두 다루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고구려이다. 즉 고구려를 고대중국의 지방민족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다.동북공정의 목적 (중국 측의 의도)동북공정은 민족 응집력을 증강하고 애국주의를 고양시킨다는 목표 아래에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른 중국 동북 변강 안정화 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중국에서 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지역은첫째, 국제적인 문제로 대두된 티베트 지역둘째, 인종적, 종교적으로 분명히 구별되는 위구르 지역셋째, 독립 국가를 이루고 있는 남, 북한과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 밀집된 동북지역등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로 각 소수 민족 공화국들이 독립하였고 1992년부터는 한국과도 수교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다민족 통일국가론을 지향하는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 주변 소수민족들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동북 변강 안정화 전략을 펴게 된 것이다.동북공정의 목적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자면첫 번째 목적으로는 정치사회적 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원리를 폭넓게 수용하고 있고 인민들의 사고와 생활양상이 민주주의적으로 바뀌어서 점점 그 통제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중국의 중앙정부는 역사를 통해서 국민적 통합과 사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두 번째로는 동북지역 장악 및 역사적 명분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동북3성은 대체로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 통치해왔고 특히 그 지역에 한국인의 방문이 잦아짐에 따라서 중국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중국중앙정부는 그 지역이 역사적으로 한민족(한족)의 아래에 있었던 지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세 번째는 조선족을 통제하고 한민족의식을 제거하기 위함이다.동북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다르게 언어와 습관이 동일하고 단결력이 강하며 현존하고 있는 모국에 대한 동경심으로 인해 연방분리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중국중앙정부는 고려하고 있다.네 번째로는 소수민족의 분열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이다.중국내에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게 되면 쉽게 분리 독립할 수도 있다. 이런 판단에 따라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중국은 역사적으로 다민족통일국가라는 개념을 가지고 국가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이미 중국의 서부지역과 남부국경지대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동북부지역의 확고한 영토화를 역사적으로 공고히 하기위해서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중국학계의 주장과 논리동북공정에 있어서 중국학자들의 주장은 거의 동일하다. 이미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연구와 토의를 통해 견해를 일치시켰기 때문에 고구려를 포함한 우리의 고대사가 중국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중국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자면첫째, 고구려가 조선이라는 선입견을 버려라.둘째, 역사귀속과 현실의 계승은 다른 문제이다.셋째, 고구려 민족과 문화는 중국에 가깝다.넷째,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다.정도로 볼 수 있다.위 내용은 초반부터 중국학계에서 주장해왔던 것들인데 최근에는 일사양용(一史兩用)의 견해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일사양용은 고구려 역사가 한국사와 중국사에 모두 귀속된다는 입장이다.이러한 견해가 제기된 것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중국의 정책적 노력에 대항한 주변국가 학자들의 강력한 비판과 반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중국학자들의 견해전환은 한국에서 주최한 여러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면서 대한민국의 학계의 분위기를 파악했고 여러 학자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귀속문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서도 중국은 고구려사가 모두 중국에 속한다는 주장은 버리지 않고 있고 일사양용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사에 속하는 고구려사는 후기로 한정짓고 있다.하지만 아직 중국학계 내에서는 여전히 고구려사는 중국사에 귀속되는 게 맞다는 입장도 적지 않고 이러한 일사양용의 견해를 비판하는 세력 또한 적지 않다.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최근에 주장되어지고 있는 일사양용은 고구려사가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북한의 역사로 편입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부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견해로서 그 근본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속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동북공정의 진행과정동북공정의 연구 영역은 중국의 강역이론 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한중관계사 연구, 중국 동북국경지역과 러시아 극동지역 관계사 연구, 한반도 정세변화와 중국 동북 국경지역 안정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전통적인 한국 역사 또는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이 동북공정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2000년 12월 20~24일, 변강센터의 주임인 마따정과 리셩이 지린성 창춘을 방문했는데, 이것은 2000년 12월 당중앙이 둥북지역에 대한 연구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 중앙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지린성 당 부서기인 린옌즈를 만나 동북3성 연석회의를 개최하는 문제를 협의 했고 그에 따라 2001년 4월 리셩이 다시 동북3성을 방문해서 동북3성의 당 선전부와 각 성 사회과학원 관계자들과 함께 동북공정과 관련한 사항을 협의했고, 2001년 6월 4~6일에는 100여명의 전문가가 참석하여 회의주제와 성격을 확정했다.이어 2002년 1월 24일에서 2월 5일에 걸쳐 리셩과 류웨이가 동북3성을 방문해서 동북공정 지도부인 영도소조와 함께 전문가위원회의 인선을 협의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구체적인 연구 내용과 방향에 대해 협의했다. 이후 변강센터는 2003년 7월 9~13일, 지린성 사회과학원과 연합하여 학술연구토론회를 지린성 창춘과 퉁화에서 개최했는데 이것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개최한 최초의 대형 학술회의였다.특히, 이 대회에서 고구려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대회를 거치면서 비교적 통일된 동북변경 역사 서술체계가 형성되었는데 즉, 한반도와의 관계에서 조선족의 역할활동 범위를 한반도 내로 제한하는 것을 기조로 하여 기자조선설을 강조하고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 변경민족정권이라는 데에 합의하였으며 고려의 북방한계선을 한반도 내로 제한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성과의 일부가 2003년부터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동북변강총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은 광명일보에 실린 문건에서 정확하게 나타났는데, 이 글의 요지는 고구려 정권은 중원왕조의 제약과 지방정권의 관할을 받은 고대 변강민족정권이기 때문에 고구려는 동북지역 소수민족 정권이며, 왕씨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라는 것이다.남, 북한의 대응1)남한의 대응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왜곡의 차원을 떠나서 한중간의 외교의 문제로 불거졌고 그에 따라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은 민간적인 차원에서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것이므로 중앙정부는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도 단순히 외교적인 대응만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학술단체를 만들어 중국에 맞대응 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한국정부는 교육인적자원부 산하에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하고 동북공정과 관련된 중국의 논거를 반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동북아역사재단은 학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개별적으로 나뉘어 진행되어온 한국 고대사 연구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 목차1. 고구려의 건국2.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1) 국가체제의 정비2) 영토의 확장3. 고구려의 전성기1) 국가체제의 정비2) 영토의 확장4. 고구려의 쇠퇴와 멸망■ 참고문헌고구려 건국사- 김기흥 지음, 창작과 비평사한국사 / 고려왕조의 성립과 발전- 국사편찬위원회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지음, 사계절고구려의 발견- 김용만 지음, 바다출판사소년한국일보 고구려 연재물- 2004.05.10 고구려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레포트월드 출처 자료고구려 역사의 전개- 레포트월드 출처 자료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 까페 자료네이트, 네이버 검색자료고구려의 건국-고구려 건국 설화를 중심으로..고구려 건국 이야기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란 글에 소개되어 있다.천신의 아들인 해모수가 땅에 내려와 부여의 왕이 되었는데, 어느 날 웅심연 물가에서 하백의 딸 유화와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모수는 유화를 버리고 떠나고 말았다.결국 유화는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게 되었고, 그 후 유화는 동부여 금와왕을 만나게 되었는데, 금와왕은 그녀를 궁궐로 데려와 살게 했다. 그 곳에서 유화는 햇빛을 받아 임신을 한 후 커다란 알을 낳았고, 그 알을 깨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주몽이다.주몽은 어릴 적부터 활을 잘 쏘고 힘도 센 데다 세상을 보는 눈이 뛰어난 인재였지만, 동부여에서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없었다. 도리어 금와왕의 자식들에게 질투를 받아 마구간 지기를 해야만 했다. 주몽은 희망 없는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동부여를 떠나게 되고, 그것이 곧 고구려 건국의 시작이 된다.이 이야기는 고구려인이 직접 쓴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간략히 나오는데. 다만 고구려를 건국한 분의 이름을 추모(鄒牟)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주몽은 활을 잘 쏜다는 뜻의 별명이다.추모왕의 건국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신화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하지만 추모왕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기록된 것은 고구려 사람들이 추모왕을 고등신으로, 어머니 유화를 부여신으로 섬겼기 때문이다.추모왕이 처음 계곡이 많으며 넓은 들판이 없어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면서 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먹고산다. 기름진 농토가 없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초기의 고구려의 단위정치제는 소국의 연합과 같은 형태였고, 각각의 소국들은 상호간에 통합과 복속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고구려의 성장과 발전고구려의 성장과 발전의 원인으로는 주로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수 있다.첫 번째로는 국가체제의 정비이다.초기 고구려의 정치제인 나부는 원래 독자적인 단위정치체였기 때문에 다양한 세력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부는 나집단으로 성장하지 못한 개별지역집단, 나집단, 나국, 다른 나국을 복속시킨 중심 나국 등 여러 세력집단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일원적인 편제기준이 확립되기 이전에는 봉왕?봉주?사성 등의 방법으로 각 세력집단을 편제하였다. 봉왕과 봉주가 비류국 송양집단이나 부여왕 종제집단과 같이 독자적인 운동력을 지닌 단위정치체를 복속?편제하는 방법이었던 반면, 사성은 다양한 집단에게 주어졌다.국가 중대사는 계루부왕권과 나부세력들의 협의기관인 제가회의에서 결정되었다. 대외전쟁은 계루부왕권이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복속민에 대한 지배 역시 대가와 같은 독자적인 세력이 계루부왕권의 통제를 받으면서 수행하였다. 각 집단의 제사는 국중대회를 통해 국가차원으로 통합되었다. 국중대회인 동맹제에는 계루부를 비롯한 5부의 지배층이 모두 참석하여 고구려족 전체의 신인 동명과 하백녀에 대한 제사를 모셨다. 이후 고구려 국가체제는 계루부왕권이 강화되는 반면 나부의 독자성은 점차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나부체제의 기본골격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각 세력의 나부 혹은 중앙정계에서의 위치는 왕권과의 친밀도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3세기 전반에도 소노부나 절노부는 여전히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가들이 설치한 관원의 명단은 왕의 관원과 차별 대우를 받았다. 또 고추가라는 칭호도 왕의 종족인 계루부의 대가를 비롯하여 소노부의 적통대인과 대 왕과 제가세력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이해된다.2세기 말경부터 일어난 사회경제적 변동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고국천왕대에는 용작농이 발생하였을 뿐 아니라 일부는 힘써 농사지어 자급할 정도의 계층으로 상승하였다. 지배층의 토지와 노동력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함으로써 계층분화는 가속화되었다.3세기 전반 고구려사회는 대가와 소가를 포함한 지배층인 대가가 전체 3만 호 가운데 만여 명이나 되었고, 부여의 예에서 보듯이 각 읍락은 호민과 하호로 분화되었다. 3세기 말경에는 용작농과 유이민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등 계층분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처럼 계층분화가 심화되면서 각 읍락에 유제로 남아 있던 공동체적 관계는 거의 소멸되고, 유력계층의 예민으로 전락하는 무출농민이나 용작농이 늘어났다.그리하여 나부체제는 해체되는데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나부세력의 분화와 중앙귀족으로의 전신이며, 다른 하나는 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이다.나부체제의 해체에 따라 집권적 국가체제가 점차 정비되어 나갔다. 고국천왕이 다른 사람의 토지와 노동력을 과도하게 수탈하던 연나부 세력을 억누르고 비교적 한미한 출신인 을파소를 국상으로 등용한 것은 집권적 국가체제의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고국천왕과 을파소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계층분화의 심화로 용작농이 발생하는 등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자 이들이 유력세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이는 기존 나부세력의 이해와 상반되는 조치로서 국가의 공민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계루부왕권은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왕권강화책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왕위계승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뀐 것은 왕권강화의 구체적 표현이다. 연나부와 같은 특정 나부세력과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계루부집단 내에서 왕권의 위상을 강화하였다.이후 두만강 하류일대나 신성과 같은 정복지역에도 점차 지방제도가 실시되어 국가권력의 통치력이 직접 미치게 되었다. 이 시기 지방통치조직은 각 교통로상의 일반 성, 곡을 지방통영토의 확장이라고 볼수 있다.고구려의 나부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주로 주변 이민족 집단을 복속하였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기원을 전후하여 선비족의 일부를 복속하였다고 한다.1세기 중엽 나부체제가 성립되면서 먼저 동해안 방면의 옥저와 도예를 복속하고 이 지역의 풍부한 해산물을 확보하여 확고한 배후기지로 삼았다. 고구려는 내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1세기 후반에는 동옥저, 2세기 중?후반에는 동예를 복속하였다. 또한 고구려는 옥저의 대인을 사자로 삼아 읍락사회를 통솔하도록 하는 한편 고구려의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책하도록 하였다. 대가들은 계루부왕권의 통제 아래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옥저를 정복하고 그 대가로 조세수취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나부체제기의 대외정복은 대체로 계루부왕권이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통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한편으로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군현과 직접적인 군사대결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한군현 공략은 동해안방면 진출과 달리 인민을 노획하고 재물을 초략하는 약탈적 성격이 강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군현세력이 강했기 때문이지만, 고구려 또한 한군현에 진출하여 직접 지배할 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2세기말 이래 사회경제적 변화에 직면하여 대내적인 개혁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활발한 대외정복을 벌일 수 없었다.고구려는 3세기 말까지 대내적인 체제정비에 주력하는 한편 위?진의 간헐적 침략을 방어하고, 서천왕 21년경부터 선비 모용부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책을 수립하여 3세기 후반 새로운 집권적 국가체제의 단초를 열고 이를 기반으로 5호16국시대라는 국제적 여건을 적극 활용하면서 강력한 대외활동을 전개하였다.고구려의 전성기고구려의 전성기는 4세기 말부터 6세기까지에 걸쳐서 이루어 졌는데, 위의 성장과 발전처럼 두 가지의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첫 번째로 국가체제의 정비 면에서 보면4세기에 접어들어 고구려는 그동안의 사회발전으로 집권적 국가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회분으로 율령반포를 통해서 국가체제를 정비했고 이후 불교의 수용이나 태학의 설립으로 국가의 전반적인 의식을 통일시키는데 기여를 했다.두 번째로 영토의 확장 면에서 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앞선 국가체제의 정비에서 힘을 기른 고구려는 중국이 5호 16국시대의 혼란기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대외정복활동을 전개했다. 먼저 313년(미천왕 14년)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하여 하반도 안에서 중국 군현세력을 완전히 축출하였다. 비옥한 농경지대인 이 지역의 확보는 고구려의 국가발전에 중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어 고구려는 요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선비족의 모용씨가 세운 전연과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는 2차례에 전연의 침입을 받아, 342년(고국원왕 12년)에는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요동진출이 용이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고구려는 남쪽으로 정복활동의 방향을 돌렸으나 새롭게 성장하는 백제와 대결하다가 371년에는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큰 타격을 입었다.미천왕이후 대외팽창이 좌절되자 고구려는 국가체제의 정비와 새로운 지배질서 구축을 위한 일련의 개혁을 추진했다. 소수림왕 때의 율령반포, 태학설립, 불교 수용등이 그것이다. 불교의 공인은 보편적인 정신세계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며, 율령의 반포는 일원적인 지배질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다. 또 태학의 설립은 관료체제의 확립에 기여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보다 안정되고 강력한 집권적 지배체제를 세울 수 있었다. 광개토왕, 장수왕대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가능하였다.광개토왕 때 고구려는 서쪽으로 후연을 제압하여 요동을 장악했고. 동북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정복하여 남만주 일대를 차지했다. 남으로는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 일대까지 세력을 뻗쳤다. 이어 장수왕 때 평양으로 천도하고 본격적인 남진책을 추구하여 한반도 중부일대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광대한 영토를 개척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면서 고구려의 국력은 강대해져 동북아시아의 일대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