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목차영화 소개 및 줄거리영화 제작 배경영화 속 시대적 역사 배경연구동향영화 대 역사 (유사점, 차이점)결론※참고문헌영화 소개 및 줄거리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은 1964년 3월에 개봉된 미국 서사 영화이다. 안소니 만 감독이 제작하였고 역사학자인 윌 듀런트가 역사적 사실과 플롯에 관한 자문을 하였다. 시나리오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사적 고증이 잘 되어있고 윌 듀런트가 로마 제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있기도 하다. 당대 유명한 배우들인 소피아 로렌(루실라役), 스티븐 보이드(리비우스役), 알렉기네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役), 크리스토퍼 플러머(콤모두스役) 등이 출연하였다. 2,000만 달러의 큰 제작비가 들어간 웅장한 사극이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지만 비슷한 시대극 장르 중에서는 드물게 영리하고 용의주도한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 『글레디에이터』는 공식적인 리메이크작은 아니지만 『로마제국의 멸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영화는 제목과 달리 영화는 로마제국의 멸망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멸망의 시작까지를 담아냈다. 실제로 로마 제국은 영화에서 나타난 시기 이 후에도 몇 세기 동안은 사라지지 않았다.영화 속 시기는 AD180에서192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망부터 그의 아들 코모두스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다뉴브 강 일대에서 게르만의 침략에 대응하는 전쟁을 지휘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건강이 악화되자 가이우스 메텔루스 리비우스를 그의 후계자로 임명하기 위해 각 지방의 총독들을 그가 있는 곳으로 불러 모은다. 리비우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입양되어 왕족이나 다름없이 자란 인물이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전의 황제들도 입양된 아들들을 후계자로 임명해왔지만 리비우스는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이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딸 루실라를 아르마니아와의 평화 협정을 굳히기 위해 아르마니아의 왕 소헤이머스와 결혼하기를년 세계2차 대전 이 끝난 후 수립된 강세력들간의 평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쓰이지만 현재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치를 지칭하게 되었다. 반면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영화가 제작되던 60년대의 미국은 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이 전과 같지 않던 시기였다. 영화 가 묘사하는 AD180에서 192까지의 로마는 ‘팍스 로마나’가 저물어가는 주춤하는 시기로 당시의 미국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영화에는 허구적 사실이 많이 있긴 하지만 로마의 쇠퇴시점에 관해서는 꽤 적절한 맥락을 짚었음을 알 수 있다.1945년 이후 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은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였었다. 미국은 세계의 경제적으로 큰 팽창을 하였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1950년 중반부터 독일, 일본 그리고 다른 서양 각국들 역시 경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하며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 줄어들었다. 한때 세계 산업 생산량의 반을 책임지고, 세계의 금 80%를 보유하며 유일하게 원자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2차 대전은 공공시설, 자본 그리고 개인의 삶을 파괴했고 이는 제국의 힘을 소진시켰다. 1958년 미국의 국제수지는 적자가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1963년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을 완화시키고 중국과의 수교를 다시 추진하려던 케네디 대통령까지 암살을 당한다. 참고로 케네디 대통령은 연설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용어 사용하며 “미국은 전쟁무기로 세계를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들과 국가를 성장시키는 그런 평화”를 지향한다 말했지만 실제로는 대외정책에서 군사가 투입시키며 미국의 패권을 지키려고 하였다. 미국은 독재에 대한 우려를 빌미로 도미노 이론을 들먹여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며 인도 차이나 반도에 군사를 배치하였다.평화를 갈구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이후 로마와 같이 케네디가 죽은 후 미국도 희망의 시대에서 분노와 폭력의 시대로 변하였다. 많은 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속주들의 통합을 점점 더 공고히 했다. 평화로운 제국의 신민들은 부와 향락을 지나칠 정도로 마음껏 누렸다. 자유로운 공화정의 모습은 상당한 정도로 존중되어 유지되었다.현재 우리가 중세의 서유럽 문명이라고 부르는 문명은 로마 제국의 제도와 크라이스트 교회의 종교 그리고 로마인이 만족(barbarian)이라 부르던 여러 종족의 문화가 모두 혼합된 것이다. 로마제국은 서쪽과 동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는 야만적 서부에 로마의 문화를 옮겨 놓은 것이다. 라틴어를 주로 사용하며 로마의 생활을 동경하며 그 양식을 따라 한다. 반면 동쪽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따라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많은 로마 문화 전통이 동부에서 유래된 것이고 인구과 부도 지중해 동부 쪽에 집중되어있다. 로마와 동부의 도시들은 상업중심지이자 행정의 중심지였다. 로마 제국은 각자 자체적인 원로원과 독자적 수호신을 가지고 있는 행정 도시로 이루어진 속주들로 나뉘어 이루어져있다. 황제는 이 큰 영역을 전문적인 행정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통치 할 수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인보다 실용적인 분야 (기술 및 행정,법)에서는 더욱 뛰어났다.1세기에 로마는 변경 장성의 최적 방어선까지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 영토 확장은 하지 않았다. 로마는 헬레니즘 시대 이후 전혀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전쟁의 승리로 얻은 귀금속이나 노동력을 통해 소비만 하였다. 성벽 내에 있는 로마인들은 밖에서 생산품을 조달하였고 로마의 경제는 약탈로 의해 운영되었다. 로마는 현상을 유지하기만 하였을 뿐 혁신을 하지 않았다. 전쟁을 하여도 방어 위주의 전쟁 이었을 뿐이었다. ‘개혁은 미연에 방지되었고, 국가의 의미는 제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있었다. 2세기 후반에는 이런 보수주의가 위기를 맞게 된다. 로마 사회는 노예제 사회였는데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이 없자 노예 조달이 어려워졌고 노동력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게 되었다. 또한 제국의 변경을 지키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문화 교류사적 통찰을 다룬다. 그는 문명간의 만남에 의해 생기는 사회적 통합을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 째는 자발적 제휴로 엘리트 계층이 외부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이용한 사회 전체의 변환으로 사회, 경제 혹은 정치적 압력으로 인한 융합이다. 마지막으로는 동화의 유형으로 소수가 다수의 문화에 통합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는 때로 절충주의라고도 하는데 현지 문화를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타협하여 혼합하는 경우이다.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의 3세기 위기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로마는 제국은 공통된 법률과 관습에 의해 통치 되었는데 이것이 공통된 문화를 확산하여 통합을 이루는데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공통된 문화라는 것은 소수 지식층에게만 영향을 끼쳤을 뿐 이집트 농민, 킬트족 병사 그리고 그리스인 상인들과 같은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언어, 종교 등을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이해 관계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제국에 충성을 할 요인이 없었고 병역의 의무를 열심히 이행할 유대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초기 로마는 상업망으로 인해 속주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고 요교역이 발전되었으나 2세기 중반부터 서부쪽 속주들은 자체적 수공업을 발전시켜 자급자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규모 교역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3세기에 들어서서는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통화위기가 발생하였다. 어떤 사회에든 부의 분배가 균등하지는 않았기에 이것이 문제 되지는 않았다. 로마는 노예의 노동력에 큰 의존을 하고 있었는데 1세기 말 정복 사업이 끝을 맞이 하며 새로운 노동력 공급이 중단되자 노예 노동이 비싸진 것이다. 그렇다고 풍력이나 수력 심지어 가축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물질적 제화의 비효율적 생산이 문제가 된 것이다. 즉 변경을 방어할 군사력이 부족했고 중앙정부 유지에 필요한 관료제가 비효율적이고 부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덧붙이자면 당시 로마 황제는 세습도 선출도 . 하드리아누스에게 개인적으로 애정이나 친근감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계승 계획에 대하여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의무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다만, 루시우스 베루스에게 동등한 힘이 주어질 것을 요구 하며 취임을 거부하자 상원들은 이를 허락하였고 이로써 로마는 169년 루시우스 베루스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최초로 두 명의 황제에 의해 지배되었다. 둘의 통치기간에는 전쟁과 질병으로 가득했다. 마르쿠스 와 루시우스는 160년 대 동쪽 땅의 지도권을 놓고 전쟁을 했고 이 후 로마로 돌아오는 병사들과 함께 질병이 들어와 몇 년 동안 로마의 인구를 감소시켰다. 파르티안과의 전쟁이 끝난 후 160년 대 말 두 형제는 다뉴브 강을 건너 로마를 침략한 게르만 족과 싸워야했다.169년 루시우스 베루스가 사망한 후 콤모두스는 홀로 게르만족에 맞서야 했다. 175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병으로 쇠약하다는 소문이 돌자 Avidius Cassius가 황제직을 요구했고 마르쿠스는 다시 동쪽 지역을 순회하며 자신의 권력을 다졌고 Cassius를 자신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166년 caesar로 임명하였던 아들 콤모두스를 177년 co-emperor(공동 통치자)로 만든다. 이로써 로마 황제직의 입양 계승 방식은 끝이 났다. 당시 황제들이 입양 계승을 하던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황제들이 노화하거나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황제직을 계승할 친자가 없었기 때문인데 마르쿠스의 경우 친자가 있었기에 콤모두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80년 다뉴브(Danube) 강 일대에서 야만족의 침입을 저지하다 사망했다. 1921년 이미 콤모두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살아있을 당시 co-emperor였기에 콤모두스의 측근들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죽기 이틀 전 친구들을 불러 아들콤모두스의 비열함과 잔인함에 대한 우려와 근심을 나타냈다고 한다.영화내에서 콤모두스는 악의 존재로 아버지의 정책에 반대,
『장미의 이름』영화 감상문영화『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초 기독교가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권위에 도전을 받고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베네딕트교 수도원에는 기독교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수도사들은 책을 따르며 책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수도사들은 지식이라는 것을 위험하게 여기며 소수의 사서들을 제외하고는 미로 같은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한다. 이곳의 도서관에는 이교도, 유대인 그리고 아랍인이 쓴 책들도 있기 때문이다. 엄선된 책들만을 수도사들에 허용하고 “위험한” 책의 경우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자에게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점 때문에 수도사들은 더욱 갈망하고 궁금하게 여긴다. 이 수도원에는 토론이 열리기로 되어 있어 주인공 아드조와 그의 스승 윌리엄이 수도원에 도착하고 그 둘은 수도원내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신앙적 믿음, 기독교 교회, 이단, 진실, 지식 등 여러 질문을 던진다.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각자의 입장”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에 따라 논리를 펼치거나 행동한다. 음식을 위해 몸을 팔던 소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책에 독을 바른 호르헤, 사건 해결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이단으로 몰고 화형 시키는 베르나르 기,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 교단 등 모두 자신만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사실과 진리는 입장들 사이에 파묻혀 버린다. 그리고 되려 교회에서 말썽을 일으킨 전적이 있는, 단 한 명의 이성적 존재 윌리엄 수사에 의해 사실이 밝혀지고 교리가 되었든 시스템이 되었든 옳은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도록 생각을 건드린다.왜 지식을 위험하다고 여겼을까? 지식은 그들의, 즉, 권위를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 혹은 현재의 상태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위험한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을 통해 지배층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바가 정말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혁명의 불씨가 되고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고 지배층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시 성경이라는 고대 책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인 만큼 베네딕트교의 지배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철학을 담은 책의 영향의 위험성을 아주 잘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의무가 고대의 지식을 보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과 책의 지식이 다를 까봐 호르헤는 책을 비밀로 한 것이다. 따라서 호르헤는 설교 중 수도원의 임무는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이라고 적극 강조한다. 14세기는 이성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아마 영화에서 『시학』의 의미는 서사를 이끌고 나가는 사물적 모티프이기도 하지만 신앙이 전부였던 시대의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새로운 이성의 시대의 대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기도 한 것 같다.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버팀목을 되어줄 자신만의 철학을 갖는다거나(무신론자라면) 종교적인 가치?를 따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기능은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고 내면의 불안함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중세의 교회나 지금의 교회나 권력, 부패, 부조리함이 있는 것은 여전하다고 느꼈다. 교회 내 목사, 집사와 같은 “직책”들 간의 일종의 권력 싸움이나 예산들 둘러싼 비리 등과 같은 교회라는 공간과 전혀 이질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카드사 마냥 교인을 모집하고, 비기독교인에게 전도를 한다는 목적 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폭력성 그리고 현실과 변화는 무시한 채 몇 천년 전에 쓰인 책을 지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호르헤처럼 자신만의 진리에 맞게 사실을 왜곡하며 소외자들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중세의 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진다. 당시와 같이 마녀사냥을 하여 공개적으로 처형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회 내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이나 핍박이 있고 교회 내의 그리고 밖과 연루된 비리와 부패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카톨릭 교회 신부들은 여전히 아동(특히 어린 남자아이들) 성범죄자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결론적으론 영화를 통해 기독교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개혁하는 시스템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더 메시지(1977)』영화 감상문영화 『더 메세지』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생애를 다루지만 마호메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철저한 고증으로인해 허구가 거의 없고 본래(?) 이슬람 교리 혹은 정신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영화이다. 마호메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시선처리라던가 혼잣말하는 것 같은 어색함이 느껴지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수업시간에 편집된 영화를 보고 난 후 주말에 원본의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이슬람 신자와의 접촉이 흔하지 않기에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계기로 이슬람 혹은 종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더 메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슬람의 교리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신은 하나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하지 않아야 하며 고리대금이나 도박과 같은 행동은 금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폭력이나 살생은 용납되지 않으나 자신을 지키는 방어적 공격은 가능하다 등 매우 합리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모든 종교가 그러하다. 모든 종교의 초기 정신은 합리적이고 교화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선하다. 하지만 모든 단체가 그렇듯 많은 사람이 모이면 체계가 필요하고 이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발전이 되다 보면 결국 그 종교 내의 그리고 외부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기득권층 혹은 소수에 의해 틀어지고 왜곡되거나 부패하게 된다. 따라서 이따금씩 새로운 분파?가 파생되거나 개혁이 되거나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기독교/천주교나 불교와 달리 이슬람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이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중학생 때 이슬람 친구를 통해 일부 접해보고 알고 있는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스스로가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몇 년간 뉴스와 영화를 통해 테러나 불합리적인 부정적 이미지만을 접했던 것이 한 몫 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이슬람교 사람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속 그런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있는 반면에 교회에는 출석만 하는 수준의 신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친구는 시간마다 기도도 하지 않았고 라마단 기간도 잘 지키지 않았으며 세일러문을 매우 좋아하고 의미 없이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당시 친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난 현재 나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는 서양적(혹은 미국) 시각의 미디어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내의 문제도 있긴 하다. 영화에서 마호메트가 주장한 초기 이슬람의 정신은 좋았으나 현재 이슬람에서 만인은 평등하지 않으며 원리주의자들은 매우 폭력적이며 보복적이라는 것이다.영화를 통해 이슬람 초기 교리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부정적인 편견들을 조금이나마 버려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초기 교리를 현재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보단 퇴보된 부분이나 이루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텐데 그런 것은 쏙 뺀 것이 안타깝다. 종교는 예민한 소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소재로 한 그 어떤 창작물 제작을 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은폐하고 조작된 모습만을 보이기 보다 있는 오히려 드러내고 정면돌파하며 『로마제국의 멸망』에서도 그랬듯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중학생 때 코란의 내용인지 마호메트의 이야기인지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기로 성경과 이야기가 매우 유사했다. 뿌리가 같은 종교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매번 생각해도 놀랍다. 『더 메세지』를 계기로 이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어느 종교가 되었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대착오적인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단 융통성 있게 변화하며 지역의 문화(생활방식?)와 종교의 가치/정신은 분리하여 전파되어야 된다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영화 감상문『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1565년 툴루즈의 재판관이었던 Jean de Coras가 인상적이었던 사건을 기록하여 출판한 책에 실린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마르탱 게르는 16세기 프랑스의 농민이었다. 그는 어느 날 떠나버렸고 몇 년이 지나서야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마을로 돌아왔다. 가짜 마르탱 게르는 3 년 동안이나 마르탱 게르의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았고 점차 가짜라는 의심을 받기 시작하며 재판을 받게 되었고 결국 Arnaud de Tilh이라는 자로 밝혀졌다. 진짜 마르탱 게르는 재판 중 돌아왔다고 한다. 영화도 이런 사건의 내용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성을 더하여 만들어졌다. 영화는 1982년 다니엘 빈 감독에 의해 재현되었고 뮤지컬이나 책 등 다양하게 재현되거나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다.이 영화는 『장미의 이름』이나 『노틀담의 곱추』와 달리 조금 더 이성적인 혹은 합리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짜고짜 이교도 혹은 마술을 부리는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으로 매도하거나 고문을 통해 강제로 자백을 받아내지 않고 재판을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명의 주변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해내는 확인 단계를 거치기도 하고 마르탱 게르와 작은아버지 피에르 게르가 번갈아서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현재의 재판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전과 달리 형식적이기만 한 재판이 아닌 미숙하게나마 실직적인 재판의 과정이 이루어진 후 판결이 나는 체계가 잡히게 된 것이다. 유죄 무죄 여부를 떠나 정당하게 변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후 이를 바탕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은 개개인들이 그나마 개별적으로 존중 받을 필요가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지지 시작한 것으로 본다. 오래 전 법의학 및 수사학 관련 책에서 범죄자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고 지문을 대조하는 등의 기초적인 criminology가 프랑스 경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며 당시 중세의 다른 지역들도 그랬겠지만 역시 프랑스인가 라는 감탄을 짧게나마 해보았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점은 결말이다. 모든 영화의 결말이 그러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미국영화 특유의 희망적 결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짜 마르탱 게르가 처형을 당하는 것이 씁쓸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베르트랑드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가짜 마르탱 게르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아쉬움이 결말이 다가올수록 느껴졌다. 베르트랑드가 자신의 딸이 사생아가 될까 두려워 가짜 마르탱 게르를 진짜라고 주장했다는 말을 했을 때 법적 체계는 마련되어 있을 지 몰라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는 각박한 시대였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혼, 출산, 종교, 단체 생활 등 어느 하나 완벽하게 개인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불행한 개개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마지막으로 전쟁에 참여 하였다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마을을 넘어선 넓은 세상을 보고 온 마르탱 게르(가짜)는 땅을 팔고 더 나은 농업을 하여 돈을 벌려고 한다. 그는 상업적인 농경을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보며 전쟁은 안타까운 비극이지만 전쟁을 통해 이동이 일어나며 교역과 발전이 생긴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두 명의 역사학자가 고증을 해서 인지 다양한 미술 작품에서 보았던 익숙한 중세의 모습을 보며 반가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유머러스한 영화였다.
『노틈담의 꼽추』영화 감상문『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작품인 『파리의 노트르담』을 영화화한 영화 『노틈담의 꼽추』는 집시 에스메랄다를 향한 노트르담에 사는 꼽추 콰지모도의사랑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노틈담의 꼽추』는 1939년, 1956년, 1982년 그리고 1996년에 여러 번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1956년에 개봉된 버전은 12월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개봉되었다. 비평가들에게는 미지근한 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거두었다. 주인공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연기한 두 배우,앤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모습은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이 남아있다. 영화를 함께 본 어머니께서도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앤소니 킌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하셨다. 영화는 주인공들 외에도 중세 프랑스 도시 모습을 잘 재현해 화면에 담아냈다.1482년 프랑스 파리에 노틀담 성당의 주교미녀서 연금술가인 프롤로는 성당 앞 광장에서 춤을 추는 집시 에스메랄다에게 강한 욕정을 느낀다. 그는 꼽추에 약간 어리석은 성당의 종치기인 콰지모도에게 그녀를 납치해오도록 시킨다. 명령대로 그녀를 데려가려던 콰지모도는 잘생긴 기사 피버스에게 저지당하고 체포당하고 만다. 콰지모도는 결국 납치 죄로 광장에서 태형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구경하며 콰지모도를 조롱하지만 에스메랄다는 그에게 친절을 베푼다. 자신을 구해준 기사 피버스와 사랑에 빠지고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버스 역시 에스메랄다를 마음에 품어 여인숙에서 밀회를 가진다. 이를 목격한 프롤로는 질투심에 휩싸이고 피버슬 칼로 찌른다. 에스메랄다는 피버스를 살해하려한 혐의로 붙잡히게 되고 재판원 중 하나인 프롤로에 의해 마녀라는 비난을 받는다. 고문을 견디지 못한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정하고 그녀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콰지모더가 그녀를 납치해 성역인 성당안으로 피신시킨다. 성당의 위해서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의 신임을 사며 서로를 알아갈 때 프롤로는 성당의 성역을 거두어 군인이 들어 갈수 있도록 하려 노력하고 백성들은 무리를 이루어 성당에 침입하고자 한다.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중세의 단골 주제인 마녀사냥이 등장한다. 이교도 그리고 마녀 심문은 『장미의 이름』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여인숙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혐의를 벗고자 거짓 증언을 하면서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몰고 간다. 재판관들은 동전이 나뭇잎으로 변했다던가 염소가 악마리던가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고도 에스메랄다를 마녀도 몰아 사형을 선고한다. 이 영화에서는 마녀재판 외에도 연금술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수많은 에스메ㄷ랄다가 존재하였을 것이다. 바로 사회적 최약자들 및 소수자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권력자들에 의해 “scapegoat”가 되기 쉬운 여성, 이방인, 빈민, 콰지모도와 같은 사회부적응자들 말이다. 현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도 마련되고 그들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중세와 같은 대상과 형태로는 아니지만 여전히 또 다른 형태의 약자들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세와 현재의 시대는 생각보다 유사한 점이 많을 수도 있다. 모순적인 것은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몰았던 프롤로 역시 연금술이라는 이단을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라는 점이다. 그는 운이 좋게도 남성과 주교라는 지위 덕분에 무고한 시민을 마녀로 몰수 있었다. 성직자로써 금욕을 실천하고 자신의 욕망을 다스렸어야 하는 프롤로보다 오히려 추악하고 사회의 약자인 콰지모도가 더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며 종교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sanctuary”를 외치며 에스메랄다를 성당을 피신시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성직자보다 순수하고 기산보다 기사다운 행동을 보여준 실직적인 ‘성인’인 것 같다.영화를 보며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상층민과 하층민이라는 신분의 아이러니함을 재미있게 보았다. 귀족들이 오히려 악의가 가득하고 위선적이고 욕망에 휩싸인 사람들인 반면 소외된 자들은 오히려 용서하고 친절을 베풀 줄 아는 덕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이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