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알렉산더 칼더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의 창시자이자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로, 20세기 조각사의 중요한 획을 그으며 현대미술의 특성을 더욱 확장시켰다. 칼더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미술가 집안에서 자란 영향으로 25세에 뉴욕의 아트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 후 주로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 미로, 아르프, 뒤샹 등 당시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만나며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조각가로서 칼더는 자신이 공학도로서 배웠던 기술을 적용하여 기계를 이용하여 초기의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모빌’이란 용어는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 마르셀 뒤샹이 붙여준 이름이다. 모빌은 크게 두 가지 형식을 가지는데 천장에 매다는 모빌과 바닥에 고정된 하부와 움직이는 구조물이 결합된 모빌이 그것이다. 또한 조각가 장 아르프가 칼더의 움직이지 않는 조각을 모빌과 대비시켜 ‘스테빌(stabile)'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완전히 고정된 구조물로서 여러 조각의 다른 형태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칼더는 1932년 검은색, 흰색, 원색의 둥근 금속판을 철사줄과 막대기로 매단 조각품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바람이 불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움직이면서 그 형상이 끊임없이 변하였기 때문에 칼더는 ’사차원적 소묘‘라고 불렀다. 이 후, 여러 전람회와 국제전에서 수상을 하며 움직이는 미술을 주류미술로 끌어올렸다.칼더에게 다른 예술가들로부터 얻어낸 영감이 없었다면 그의 재능은 그저 기술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감을 통해 또 다른 영감과 가치를 창출해 낸다는 것이 단순한 공예품과 예술 작품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점이지 않을까. 칼더의 작품에는 미로의 곡선이 있고, 몬드리안의 색이 있다. 그들의 평면적 작품을 입체로 끌어낸 칼더의 작품을 보면 그가 2차원의 작품 속에서 무한한 공간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뮤즈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일 것이다. 칼더는 그의 주변에 함께 했던 예술가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자극들을 자신만의 세계로 내면화 시켰고, 기술적 완성을 통한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그의 재능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창출시켰다. 또한 이미 새로운 시도들이 예술의 세계에 포함 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도 칼더의 작품이 반열에 오르게 된 발판이 되었던 것 같다. “구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성간의 차이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어떻게 다른 예술작품을 바라봤는지, 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예술작품을 바라봐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T REND TV 예능 프로그램 !◆ 목 차 1. 연구목적 2. 과거와 현재 예능프로그램 비교 3.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트렌드 4.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연구 목적 ‘ 무한도전’ , ‘1 박 2 일’ , ‘ 강심장’ ‘슈퍼스타 k’ 예능 프로그램은 연령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는 장점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으며 현재에는 좀 더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프로그램의 한 주체로서 자리매김 해가고 있다과거와 현재 예능프로그램 비교 단순히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대본과 일정한 틀 속에서 진행된다 재미와 감동 + 새로움 과 거 현 재 → 뻔한 → 펀 ( fun) 한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3 가지 트랜드 Competition Reality ProcessReality . 뚜렷한 목표 , 그를 향한 몰입과 진정성Process . 모두가 참여해 공동의 목표로 향하는 과정의 미학Competition . 공정한 경쟁 , 성장 그리고 드라마현재 예능 트랜드의 결론 시청자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또 그것을 풀 지혜를 촉진 . 공감대 를 형성하고 감동 을 주는 것에 성공 애초에 의도했던 것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함 단순한 시청률로 표현되지 않는 시청자의 충성도와 추천도도 끌어올림 드라마와 스토리 를 통해 우리에게 긍정 에너지를 제공 제작자 중심 , 스타 중심의 방송을 수용자 중심 , 일반인 중심 으로 바뀜→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 단순재미가 아닌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 남는 재미를 추구현재 예능 트랜드의 결론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 → 쌍방향 커뮤니케이션과 참여구도를 확대현재 예능 트랜드의 결론 프로그램의 획일성 → 다양성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현재 예능 트랜드의 결론 일시적인 영향력 행사 → 사회적 책임감 감수 .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제시 앞으로 예능프로그램의 향후 전망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B L A C K S W A N‘블랙 스완 (Black Swan)’은 한 발레리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주인공역을 따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그로인한 압박과 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정신적 고충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발레를 직업으로 하는 발레단의 경우에는 무대가 성공의 장소임과 동시에 실패의 장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마냥 아름답고 우아하기만 한 발레의 작품성 보다는 그러한 발레를 통해 인간 내부에 숨겨진 이중성과 자아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뉴욕 발레단의 니나는 순진하고, 청순한 발레리나다. 마치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이 감탄할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청순함과 달리 남자를 유혹할 만한 여성으로서의 관능미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니나가 이처럼 계속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엄마의 영향이 컸는데, 그녀의 엄마는 철저하게 딸을 감시하며 지금껏 치마폭에서 키워왔고 그로인해 니나 또한 단 한번도 일탈을 해보지 않고 평범하고 바르게 살아왔던 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발레단에서 오디션이 열리는데 이는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감독 토마스가 백조와 흑조를 1인 2역으로 소화해낼 주인공을 찾는 것이었다. 항상 주인공을 꿈꿔왔던 니나는 열심히 연습을 하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녀는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했지만 감독 토마스는 니나가 백조로는 완벽하지만 흑조를 연기하기에는 부족하다며 퇴짜를 놓는다. 좌절에 빠진 니나는 다음 날 다시 감독을 찾아가 안무를 완벽히 익혔다는 거짓말과 함께 부탁을 한다. 감독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놀랍게도 주인공에 발탁된 것은 니나였다. 그녀는 기쁨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예상치 못하게 주인공이 된 니나는 이때부터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언제나 모든 일에 간섭하던 엄마의 극성스런 사랑이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게 되고, 자신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라는 감독의 말에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녀가 금기되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타파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니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리고 그런 니나의 불안감 속에는 주인공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엄청난 부담감과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공존하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자신에게 없는 흑조의 관능적인 매력을 갖고 있던 릴리의 등장으로 인해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하던 니나는 자신이 롤 모델로 삼던 베스의 몰락으로 인해 자신도 언제 그런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토록 바라던 주인공 역할을 맡은 후로 니나의 삶은 점점 어둡고 피폐해져 갔다.백조연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여전히 흑조연기를 어떻게 소화해내야 할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니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그리고 이러한 니나의 모습에 감독 토마스는 실망을 하게 되고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궁지에 몰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불안한 와중에 릴리가 니나에게 접근하고, 니나는 자신에게 없는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릴리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릴리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니나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청순하고 얌전한 공주의 이미지라면 릴리는 검은 망사 드레스를 입은 섹시한 요부 같은 여자였다. 어쩌면 니나는 자신이 찾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릴리에게 이러한 이유로 더욱 끌렸을지 모른다. 어쨌든 니나는 릴리를 따라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탈을 시도한다. 엄마의 반대와 핀잔을 무시하고 릴리와 함께 밖에 나가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심지어는 마약을 시도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약에 흠뻑 취해 집에 들어와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뿌리치고, 엄마를 문 밖으로 떠밀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일탈의 재미에 빠진 니나는 릴리와 동성애 행각을 벌이며, 쾌락에 도취된다.밤새도록 정신없는 쾌락에 도취되어 잠에서 깼을 때 니나는 중요한 무대 연습에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연습장으로 향하지만 도착한 그 곳에서는 릴리가 이미 도착해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녀가 니나의 대역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자 니나는 릴리가 자신을 밀어내고 주인공에 뽑히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여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더군다나 감독과 릴리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어쩌면 이미 주인공은 릴리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이렇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니나는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악몽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혼미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공연을 포기하라고 말한다.니나가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길 누구보다 바라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엄마가 포기하도록 타일렀음에도 그녀는 예전의 착한 딸 니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엄마를 강하게 뿌리치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광기어린 모습으로 분장을 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어서도 니나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주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대기실에서 릴리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가 폭발한 니나는 릴리의 배를 깨진 거울조각으로 찔러 그녀를 살해하게 되고 시체를 숨겨둔다. 이제 공연외의 것은 안중에도 없던 니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공연을 생각하며 무대에 다시 오른다. 그리고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녀가 멋진 공연을 하고 중간에 내려와 대기실에서 쉬고 있자 릴리가 나타나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릴리를 죽였는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 니나는 뭔가 상황이 석연치 않음을 깨닫고 릴리의 시신을 찾는다. 하지만 릴리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었고, 자신의 배에만 깊은 상처가 있었다. 정신분열의 상태에서 릴리에게 찔렀던 거울조각은 사실은 자신에게 찔렀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니나는 초연한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가장 완벽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무대를 날아다녔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한 무대를 연기한 그녀에게 사람들은 축하의 인사를 하러 달려오지만, 그녀의 배에 난 상처에서는 흥건하게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니나는 “난 완벽했어.”라는 말을 되뇌게 된다.
비정상적이고 모호한 감정들로 뒤섞인 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화 《장화, 홍련》은 섬뜩하고 잔혹하며 공포스럽지만 일반적인 공포영화에서 그려지는 괴기스러움과는 다르다. 가족의 불행이라는 슬픈 구도 속에서 나오는 섬뜩함과 두려움, 그리고 안타까움 때문인데 이하로 이 영화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이를 나타내는지,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003년 영화사 ‘봄’에서 제작, 김지운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장화, 홍련》은 임수정, 문근영, 염정아, 김갑수 등이 출연했고, 두 자매와 계모 사이의 갈등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 공포드라마 영화이다.갑작스럽게 엄마를 잃은 수미, 수연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아버지 무현 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두 자매는 한 인적 드문 시골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에서 아버지와 오붓하게 살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집에는 이미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 은주가 있었고 두 자매는 실망하게 된다. 수미와 수연을 유난스럽게 반기는 은주에게 아버지의 재혼을 원치 않았던 수미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낸다.수미와 수연이 돌아온 날부터, 예민하고 차가운 성격의 은주와 두 자매는 부딪치고 대립한다. 그러나 아버지 무현은 세 사람의 불화를 말리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두 자매와 불화를 일으키던 예민한 은주는 급기야 집안에서 괴이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정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 분위기를 더욱 괴이하게 몰아간다. 수미는 정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은주로부터 자신과 동생 수연, 그리고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고 믿으며 안간힘을 쓰고, 끊임없이 대립하는 은주에게 자신과 수연이 있는 2층에는 올라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수미 역시, 은주처럼 집에서 이상한 환영을 보거나 악몽을 꾸며 두려움을 느끼고, 집안 곳곳에서는 계속해서 괴이한 일들이 벌어진다.《장화, 홍련》은 평의 엇갈림이 심했다. 특히 남녀 관객에 따른 평가에서 최하의 점수를 준 남자 관객들과 달리 여자관객들에게 상위권의 점수를 받았는데, 이는 소품이나 미술, 스타일에 공들인 것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또, 영화의 스타일과 이미지가 강해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 빼어난 통일성으로 탄성을 자아냈다는 평을 들으며 영화의 미적인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이런 좋은 반응과 달리 비판적인 평가를 살펴보면 혹평을 받은 이유로 아이러니 한 것은 “설명이 적고 모호하다”는 지적과 동시에 “내러티브 과잉(지나친 설명과 이야기에의 의존)으로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장화, 홍련》의 비판의 핵심은 주로 화술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영화의 장르 중 ‘고딕 호러’라는 장르가 있는데 18~19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문학작품들이 그 시작이라고 부른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음산한 분위기의 공포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악당을 사회 고위층이나 귀족의 일원으로 설정하거나, 그들의 그릇된 망상이 가지고 온 결과물로 설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갈등, 성적인 잠재의식 등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영화 《장화, 홍련》은 이 고딕 호러 라는 장르를 채택하였는데, 상당한 반전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식스센스’나 ‘디아더스’가 있다. 공포의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존재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준다.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며 영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장화, 홍련》에서의 첫 번째 반전은 수연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님을 아버지의 ‘수연이는 죽었잖아.’라는 말에 의해 밝혀지는데 여기서 관객들은 한번 놀라게 된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연이는 수미에 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반전은 마지막에 밝혀진다. 수미와 은주가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은주가 수미를 쓰러뜨리고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은주가 쇼파에 앉아있고 문이 열리면서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은주다. 두 명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두 사람 주변을 빙빙 돌다가 쇼파에 앉아있는 은주가 수미로 바뀌고 모든 상황은 수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러한 설정이 고딕 호러의 특징인데,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피 튀기는 끔찍한 장면이 없어도 관객들에게 충분하게 놀라움을 줄 수 있다.공포영화에서 소리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영화에 소리가 없으면 관객들에게 긴장감이나 놀라움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리가 있다고 해도 너무 크면 장면에 묻히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하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화, 홍련》에서 음향효과는 아주 도드라진다. 주변 환경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들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 낙엽소리, 풍경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마다 풍경이 등장하는데, 풍경소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조용한 분위기에서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소리다. 하지만, 밖에서 나는 풍경소리와는 달리 집 안에는 항상 불안한 일들만 생긴다. 이 소리로 인하여 관객들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이런 미세한 소리뿐만 아니라 무언가 긁는 듯 한 기괴하면서 거북한 소리도 등장하는데, 이는 귀신이 나오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소리다. 귀를 자극하며 스쳐 가는 날카로운 마찰음이나 귀신의 흐느낌 소리는 꽤나 공포스럽다.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왈츠 풍의 음악은 이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 이미지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음악은 클래식, 어쿠스틱 기타에서 피아노, 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스타일의 변주를 통해 극의 슬픈 정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더구나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오는 설정은 단순한 공포영화로 허무하게 끝나는 다른 영화와 달리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장화, 홍련》에는 시각적 표현이 강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먼저 계모와 아이들의 대면 장면인데, 두 자매를 너무 밝게 맞아주는 새 엄마의 모습이다. 영화 속 다른 분위기는 다 눌리고 가라앉은 분위기인데 새엄마의 목소리만 하이톤이다. 여기까지는 촬영의 호흡이 길게 가면서 어느 순간 빨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롱 샷으로 가다가 갑자기 클로즈업들이 인터컷처럼 들어간다. 그러나가 전체적인 리듬은 사건의 진행과 함께 빨라진다.다음으로 처음 집에 온 날 수미가 옷장을 열어보는데 똑같은 옷이 여러 벌 걸려져 있는 장면이다. 이는 수미가 다중인격 망상 증세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똑같은 옷, 똑같은 책 등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이며 누군가에게 특정혐의를 전이시키고 싶은 분열된 인격을 상징한다.세 번째로는 수연이가 첫 월경을 하는 장면인데, 흰 이불과 푸르스름한 새벽녘 색상이 깨끗하면서도 슬픈 느낌을 준다. 아이들과 계모가 동시에 생리를 한다는 설정은 여자들이 함께 오래 살면 생리주기가 유사해진다는 말에 의한 것이다. 이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상대가 계모가 되었을 때는 경멸과 혐오감을 느낄 수 있음을 드러낸다.마지막으로 수연이 죽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수미가 아버지에게 새엄마가 수연을 학대한다고 울며 말하는데 아버지는 여기서 ‘수연이는 이미 죽었잖아’라고 한다. 수연은 영화 내내 거의 하얀 옷을 입고 나오는데 이는 수연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수연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카메라가 마구 떨리고 수연은 소리를 지른다.이 영화는 공포영화인만큼 인물의 정신적 상태나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클로즈업 샷을 많이 사용한다.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전달해주기에 클로즈업 샷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등장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크게 잡는다. 귀신이 등장하는 부분이라든지 그것을 보고 놀라는 등장인물의 빅 클로즈업 샷이 많다.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인물들간의 관계를 보기보다는 특정인물의 표정이나 행동에 주목하기 때문에 이런 샷이 많이 사용된다. 그러면 관객들에게도 공포를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효과적이다.《장화, 홍련》의 카메라 앵글은 대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시선과 일치하지만, 특정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이 낮을 때가 있다. 카메라가 인물이나 사물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두 자매가 집에 도착한 후 두 번 나온다. 두 자매가 차에서 내려서 집을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동시에 카메라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앵글이 나오는데 이는 이 집이 보통 집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공포가 집에서 풍기는 분위기만으로 고조된다는 것을 보면 이런 카메라 앵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자매가 밖에서 놀다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카메라는 또 한 번 그들의 시선과 일치시키지 않고 낮은 앵글이다. 이것은 이 두 자매들이 나약하게 당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새엄마에 대해, 공포에 대해 끊임없이 대항하고 맞서려고 하는 것이 그 이유다.공포영화에서는 대체적으로 조명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영화 《장화, 홍련》의 배경은 집안이다. 이 안에서는 무언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암조광을 사용하여 조명이 거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집안에서는 불행한 일들만 일어나지만, 두 자매가 행복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집안보다는 환한 조명을 사용하는 밖에서의 장면이 많다.
이야기 속의 논리와 철학『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 -사사로운 출발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필연적인 바탕을 찾는 사고는 어떤 것일까? 철학 역시 이미 정해진 궤도처럼 우연성에 의존해야 한다. 어떤 궤도에도 의존하지 않는 파행적 구상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철학은 철학사라는 시공 가운데 흔한 철학자와 그의 우연한 문제에 발상을 의존해야 하는 보수적인 학문이었다.1960년대에 서양으로부터 온 기독교의 새로운 발전과 토착화의 방향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철학계에서는 서양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어떻게 비판되고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사회 역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철학의 결론을 마치 우리의 고유한 발상인 것처럼 그대로 재연한다. 플라톤이나 헤겔, 주자가 만들어 준 틀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 철학이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우연한 전제조건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라면, 철학자와 비철학자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세상에 벌어지는 갈등이나 모순관계가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지는 모든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논리와 현실의 긴장된 괴리는 서양 사람들의 역사에 나타난 사상과 체질에 고유한 것이다. 우리의 사상과 현실의 문제가 외래적인 것이라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서양인들은 문제의 상황을 인과적 설명이나 논리적 증거추리에 의해 접근한다.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은 숙명이나 운명에의 예속감을 의식하는 정도가 강한 반면, 서양인들은 자연과 운명에 대한 인간 이성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동양에서의 인사는 자연에의 적응과 조화에서 이루어지지만, 서양에서의 인간적 활동은 운명을 타개하고 자연을 조작이나 정복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적 사고방식 가운데는 자기 운명을 타개하는 힘으로서의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