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한문단편의 세계11/25고전문학사 - 김진균 교수님Ⅰ. 서론Ⅱ. 본론ⅰ. 한문단편의 기원과 형성경로ⅱ. 한문단편의 작품세계ⅲ. 한문단편의 작품과 작가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 전쟁으로 인해 지배질서가 붕괴되면서 말미암아 봉건사회 해체가 촉진되었고 17세기 후반부터는 일반적인 사회 현실로 고착화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기 이후 화폐사용이 일반화되어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사회도 상품 화폐경제권으로 포섭되었으며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로 서울과 지방 도시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경제사적 변화는 상인층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의 가치관과 인식 태도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켰고 이에 종전의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설화 장르의 이야기로는 도저히 그 변화된 인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러한 현실 인식의 욕구를 채워주면서 동시에 흥미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 장르가 이전과는 달리 절실히 요청되었고 당대의 일상 현실에 관한 적극적 관심이 표명된 소설적 이야기들, 즉 한문단편소설이 이 시대에 이르러 대거 발생하고 유포된다.한문단편은 이조 후기의 신흥 장르로 18, 19세기 시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식자층이 한문으로 옮겨놓은 비교적 짤막하고 소박한 형태의 단편소설을 의미한다. 여기서 단편이란 근대시민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된 근대 단편소설과 차이가 있어 한문단편은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이행기에 성립된 우리 나름의 전통적 단편소설형식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문으로 씌어진 단편소설을 열전계(列傳系), 전기계(傳奇系), 야담계(野談系)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에서 야담계의 소설들 중 문장표현까지 잘 가다듬은 명편은 한문단편소설이라고 일컬어지고 한문단편이라고 약칭된다.열전계와 전기계 소설이 사대부의 필요성에 따라 사대부적 세계관에 대응되어 사대부에 의해 성립된 것이라면 야담계 소설은 당대 민중의 필요성에 따라 민중적 세계관에 대응되어 민중들에 의해 발생 발달한 이야기들이아다니는 이야기나 뜬소문을 듣고 기록한 것으로 흥미 위주이며 대표작으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들 수 있다. 이 두 작품집에 실린 것들은 대개 내용에 따라 야승(野乘), 시화(詩話), 소화(笑話)로 구분하는데, 이 중 야승과 소화가 특히 조선후기 한문단편의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또한 조선조 후기에 성립되고 통용된 야담계 소설과 달리 열전계소설과 전기계 소설은 대체로 조선조 초 중기에 성립되었다. 이 소설들이 조선 후기에 공존하면서 당대 시정의 소설적 이야기들이 야담계 한문단편소설로 쓰여지는 과정에서 선행 양식들, 즉 열전계와 전기계 소설의 양식들이 약하게나마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작품에 따라서 열전계 소설 형식의 영향이 다소 엿보이기도 하고 또 전기적 색채가 엿보이는 것도 없지않아 있다. 이렇게 한문단편이 부분적으로 선행되고 있던 양식들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만 야담계 소설은 근본적으로 사회토대의 변화 및 그에 따른 새로운 필요성에 부응하여 발생한 것이기에 여타의 단형서사와는 엄격히 구분되는 전혀 새로운 장르이며 양식적 특징도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2. 한문단편의 형성경로한문단편의 형성경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담(講談)에 의한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대 문헌의 수용에 의한 것이다. 강담에 의한 형성은 1차적으로는 구연화 과정을, 2차적으로는 작가의 손을 작품화된 것을 가리킨다. 구연화 단계에서는 이야기꾼의 한 부류인 강담사가 개입하여 자신이 보고들은 사실을 이야기로 만들고, 기록화 단계에서는 작가가 개입하여 이야기에 문식을 보태어 문학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한문단편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강담사는 시전이나 사랑방 같은 곳에서 담화조로 하는 일반 ‘이야기꾼’ 흔히 ‘이야기장이’, ‘이야기 주머니’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로 그들에 의해 구전된 이야기가 한문단편의 전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민중성향의 비판적인 인식과 함께 사대부적인 인식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데 구연화 과정에서 민중의 는 것처럼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즉 한문단편은 이 시기 역사의 파장을 여러 빛깔로 나누어 면밀히 보여주는 프리즘 같은 역할을 하였다.한문단편에 속하는 작품들은 내용상 크게 치부, 애정, 신분동향, 세태, 민중기질 등으로 나눌 수 있다.1. 치부, 새 가치의 발견과 부를 향한 질주인간의 모든 활동은 경제활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생활은 경제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찌감치 사마천은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여 『화식열전(貨殖列傳)』을 지었으나 문을 숭상하고 사농공상의 계층을 수직적으로 인식하던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상층계급인 양반이 직접 경제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천시하였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兩班傳)을 살펴보면, ‘손에 돈을 만지지 않고’ ‘쌀값을 물어보지 않으며’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는 조선후기 사회가 양반이 경제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양반이라면 으레 과거공부를 하여 관직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사회 통념이었고, 치부는 중인 이하 계층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로 인식되었다.하지만 이 시기 몰락해가던 양반층 일부는 양반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직접 치부활동에 뛰어들기도 한다. 「고향(故鄕)」(원제 以鴻毛報泰山) 의 주인공 최생은 여러차례 과거에 낙방했다. 그 사이 집안살림은 탕진되고, 부모님은 늙었으며,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돌봐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최생은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즉 희망없는 고답적 선비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하여 종래의 농업경영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대토지를 경영한다. 이뿐만 아니라 농지를 팔아 곡물을 매입, 곡가 변동을 이용하여 큰 이익을 얻는다. 자신이 꿈꾸던 선비의 길을 버렸지만 그 대신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이다. 최생에게는 부모와 처자식을 거느리고 현실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릴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안락에 빠져들지 않고, 기근이 들어 굶주리는 이웃들을 아낌없이 도와주어 그들로부터 생불(生佛)이라들은 그 사실을 관가에 알려 그녀에게 정려문을 내려주도록 하지만 그녀는 기녀의 신분이기에 정절을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고, 양자를 얻은 것은 4년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원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열녀로 칭송하지 말라 한다. 그리고는 원의 삼년상이 끝나자 화장을 하고 화사한 옷을 입고는 자신은 아직 젊으니 다른 이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한다. 자기 삶에 대한 그녀의 주체적 결단과 실행은 거침이 없으며 어떤 이념도 그녀를 막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후기 사회가 봉건적 도덕률에 얽매여 규범과 체면만 중시하기보다는 서서히 인간의 본원적 욕망인 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3. 신분동향, 일부 양반의 몰락과 하층민의 신분상승당시 사회변화의 물살은 기존 신분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양반들 중에 관직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사람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어 비참하게 살아갔다. 반면 농사나 상행위를 통해 부를 축적한 중인과 상민, 그리고 노비계층의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인간형으로 떠올랐다. 「금령(金令)」(원제 結芳緣二八娘子)은 무력해진 양반층과 합리성과 적극성으로 무장한 중인층이 갈등을 빚는 이야기이고 「구복막동(舊僕莫同)」(원제 宋班窮途遇舊僕)에서는 주인집의 몰락을 예견한 종 막동이 도망하여 재산을 모은 다음, 사족(士族)의 칭호를 얻고 승지의 벼슬을 얻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세심한 배려가 생생히 그려져있다. 막동은 자신을 찾아온 옛 주인에게 현재 지위를 그대로 인정해준 댓가로 만냥을 주어 주인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이것을 불의라 규정하고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대들던 주인의 집안아우에게는 미친놈으로 몰아 응징하고는 결국 그마저도 자신에게 굴복하게 만든다. 이는 천민이라도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양반처럼 벼슬할 수 있다는 내용에서 계층을 수평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엿보이고, 공고하던 신분질서가 와해, 재편되면서 서서히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4. 시정주변,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이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이옥은 그곳에서 사기를 일삼던 간악한 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렇듯 시정이란 공간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했고, 그렇기에 작품의 소재로는 매력 넘치는 공간이었다.5. 민중기질, 모순된 봉건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갈수록 심화되던 삼정의 문란은 민중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빠뜨렸고, 이데 참다못한 민중들은 저항에 나선다. 「월출도(月出島)」에는 민중들이 대장의 지휘 아래 신출귀몰한 전술을 써서 대부호의 재물을 빼앗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 여간 흥미롭지 않다. 작품에 보이는 대부호는 농민들의 피땀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호화롭기 그지없는 생활을 해오던 자였고, 게다가 늘 서울의 권문세가에 줄을 대어 출세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월출도 대장은 대부호에게 ‘재물은 천하에 공번된 것이다. 한 사람이 독점할 것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300~400필의 말에 대부호의 집에서 나온 억만금의 재물을 나누어 싣는다. 그리고 벌열층과의 교제가 부질없음을 따끔히 충고하고 떠난다. 여기서 월출도 대장은 민중 군도를 이끌어 부패한 탐관오리나 부도덕한 부자들만을 약탈하여 부조리한 세상에 경종을 울린 조선후기의 민중영웅이었다. 민중들의 저항은 풍자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했는데, 민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탐관오리나 도덕군자인 척하는 양반들의 형태를 그저 소극적으로 지켜보지만 않고 그들 특유의 감각으로 일격을 가하기도 했다.ⅲ. 한문단편의 작품과 작가한문단편의 작가는 곧 한문단편이 실린 야담집의 편찬자들이다. 한문단편 연구의 초창기에는 한문단편의 작가들이 주로 비판의식을 지닌 몰락한 선비계층이라고 보았으나 한문단편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어 각 야담집의 편찬자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실상이 좀 달라졌다. 한미하고 비판적인 선비계층뿐만 아니라, 명문 사대부집안 사람들도 야담집 편찬에 참여했던 것이다.한문단편을 연구할 때 야담집 편찬자의 계층이 중시되는 이유는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에 따라 의식세계가 달라지고, 이것이 야담집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