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과학교육과 20121625 정승원1)공리주의19세기 초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농촌에 남아도는 인력들이 도시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때의 임노동자들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였고 부당한 노동시간을 강요받았다. 특히 어린이들과 부녀자들까지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공장의 주인들만 돈을 벌고 임노동자들은 동물보다도 못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 당시 철학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가 고착되기 전에 사회의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했다. 이러한 조류중의 하나가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근대의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실증적 자연과학을 사회과학에 적용하였다. 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을 행위의 목적과 선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사상적 기조로 하여 공리 또는 최대의 행복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다. 올바른 행위의 기준은 행위의 유용성에 따라 최대의 쾌락을 산출하는 것이다. 즉, 무언가를 얻기 위해 행위를 하고, 좋은 결과를 얻는 행위가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좋음이 옮음을 규정한다는 입장이다.벤담의 사회철학의 출발점은 인간 개개인과 그들의 감정이어야 하며 사회제도와 국가는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때에만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모든 인간의 행동은 행복을 성취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오로지 행복이나 아니면 고통이냐 하는 감정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벤담의 관점에서는 신의 소명이나, 천부인권. 혹은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추론된 의무 등이 설자리가 전혀 없다. 행위는 단지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벤담은 인간을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로 보고 국가 권력이란 인간의 쾌락의 총합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다.벤담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고통은 유일한 악이고, 쾌락은 유일한 선이라는 것이다. 공리성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고려되는 당사자 전체의 행복의 증진에 관련되어 있는데 벤담은 어떤 행위가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감소시키는 경향보다 클 때 그 행위는 공리성에 합당하다고 말한다. 벤담은 쾌락의 계산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쾌락의 크기는 강력성, 지속성, 확실성 등을 고려하여 측정할 수 있고, 이러한 쾌락측정방법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적용하여 산출한 후 합산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쾌락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벤담은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과 고통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는 동일하며 단지 양적으로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벤담의 공리주의는 사람들이 쾌락추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생각만을 강조함으로써 최초의 조건이나 기회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을 간과하고 말았다. 또한 그는 윤리의 기본 개념이라고 생각한 것을 정의하는 데 힘을 쏟았으나, 그 정의는 지나치게 단순, 모호했으며, 특히 행복의 양을 계산하는 방법인 ‘행복 산술법’은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인간의 행동을 묘사 설명하는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너무 단순하게 처리해버렸다. 심지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개념도 그 의미가 분명치 않다고 비판받는다.밀은 공리주의를 변형함으로써 공리주의를 옹호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변형의 이론적 기반은 쾌락의 높고 낮은 형태를 상대적으로 구별하는 것이었다.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였다. 어떤 종류의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고상하다는 것이다. 소량의 고급쾌락이 다량의 저급쾌락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밀은 약한 강도의 정신적인 쾌락이라도 강한 강도의 육체적 쾌락보다 낫다고 했다. 이와 같은 쾌락의 구별을 통해 밀은 모든 사람이 더 높은 차원의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의 사회 철학은 때때로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불린다. 그 까닭은 그가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정치적 권리와 인격발달 및 만인의 자유에 대한 관심과 결합시켰던 것 때문이다. 밀에 따르면 국가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도모하도록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유로운 자기 발전에 대한 개인의 권리는 효율성보다 중요한 것이며 그러한 권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침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 행복이 바람직하다는 것의 증거는 각자가 자기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밀은 “각 사람의 행복이 그에게 선이므로 일반적 행복은 모든 사람들의 집합에게 선이다”라고 주장하였다.하지만 그는 쾌락의 질적 우위를 결정하는 기준에 관해서 지극히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밀은 “제대로 자라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쾌락의 우열에 관하여 공통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판단의 차이와 견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데 에서 오는 문제점이라고 하겠다. 또 쾌락의 양적 차이와 질적 차이를 비교할 제3의 기준, 이를테면 환산의 원리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철인정치, 현대에 끼친 영향1) 플라톤의 이데아플라톤은 변화하는 것은 참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영원불변한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존재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또 그는 같은 이유에서 감각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이 참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 존재와 참 지식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플라톤은 이런 변화하지 않는 영원불변한 진리가 이데아라고 주장했다.그가 말하는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적이며 절대적으로 참 된 개념이다. 그것은 정의, 사람 등과 같은 개념들을 정의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적인 성질을 뜻하는 것이다. 이데아는 단순한 관념이나 정신적 실재물이 아니라 실재적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실재한 것이고 이것은 신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하였다.플라톤에 말에 따르면 이데아들은 각종을 대표하는 것들끼리 서열과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데아를 선의 이데아라 하고 이 선의 이데아는 모든 이데아들의 지향하는 이데아로서 그 근원으로 비유될 수 있다고 하였다.플라톤은 이원론적인 구분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의 눈앞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감각적인 세계와 이러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또 하나의 세계로서 원형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를 구분지어 이야기 한다. 현상에 대한 실재로서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은 이데아라 한다. 이데아는 모든 사물에 발현되어 있으며 그 개개의 사물의 본질과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데아가 개개의 사물 가운데 발현되지 않으면 현상의 세계란 것은 의미 없는 사물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그 사물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물이 이데아에 참여하게 될 때 그 이데아의 성질을 나누어 가지게 되고 그럴 때만이 그 사물은 존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물이 이데아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데아가 그 사물 가운데 발현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물과 이데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개별자가 이데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현재보다 훌륭한 상태로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2) 철인정치플라톤은 사람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철학자, 용기 있는 사람은 군인, 절제의 덕을 갖춰야 하는 사람은 생산자로 보고 이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들이 모두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낼 때 정의로운 국가가 된다고 믿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은 정의와 그로부터 오게 될 평화였다. 그래서 권력은 능력이 탁월하고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만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철인통치다. 즉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정한 학문이며 인생지도의 지침, 인간형성의 힘으로써의 철학으로 국가지배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욕구로부터 비롯된 정치권력의 폐단을 인간 이성을 통해 통제할 때 비로소 권력을 무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리고 현실적 대안으로 플라톤이 제시한 것은 이성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오직 이성을 추구하는 철학자만이 진정한 통치술을 알 수 있고, 알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통치자는 법률과 관행을 수호해야 할 임무가 있다. 그러려면 그것의 본질을 잘 아는 사람이 적합할 것이다. 철학자들은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통치자가 되기에 적합하다. 또한 철학자들은 거짓은 미워하고 진실만을 좋아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지혜의 추구이다. 이들은 영혼의 즐거움에만 관여할 뿐, 육체의 만족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인간의 탁월함을 추구하며 저속함에 관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이 통치자가 된다면 그들은 스스로 타인의 모범을 보여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절제된 생활을 할 것이다.플라톤은 생산자 계급 즉 대중은 통치에 필요한 지성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대중은 신체적 갈망과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대중은 선동가에 의해 자신의 의견보다 남의 의견에 쉽게 좌지우지 된다. 따라서 대중은 통치자가 되기에 알맞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한 것을 보면서 사회는 지성적인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3) 현대에 끼친 영향플라톤은 모든 대상들이 이데아에 근거해 이데아를 그 존재원인으로서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다시 이데아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가 그 존재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그 최종, 최고의 세계 존재 이유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후세에 항상 반복되었으며 특히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많이 이용되었다. 신의 세계의 존재이유인 동시에 신을 세계의 의미라고 보는 해석이 플라톤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그리하여 선의 이데아에서 이데아론 그리고 다시 사물들과 그림자로 이어지는 존재의 전개는 곧 신이 세계에 전개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었다.정치적인 면에서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후세 사람들에게 그것을 실현해 보려는 유혹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절대 왕정이나 이루, 세계 각지에 존재했던 독재에 의한 정부는 플라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들에게 결코 평화를 안겨주지 못하였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만을 부추겼다. 특히 소수에 의한 국가 통치에선 그 누구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고 오로지 그들이 교육 과정에서 갖추게 된 도덕상만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었다.그리고 교육적인 면에서 플라톤은 인간 개인과 국가 전체가 교육을 통하여 완전히 실현되는 이상국가론을 제시함으로써 서양교육사에서 국민교육의 제창자로서, 국가교육학 이론의 정립자로서 인정되고 있다. 또한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는 대학의 원형으로서 서구철학을 창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또한 플라톤은 공화국을 위한 계획에 있어 검역과 정치적 선전을 위한 정부 기관에 대한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다. 공화국에 있어서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검열의 요구는 바람직한 신념과 인생태도를 존립시키기 위해 중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최근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여러 폭력물, 성인물 등을 검열하는 데 정당성을 제공한다.[참고 자료]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00123sally4) 느낀점플라톤이 무엇이 참된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무엇이 좋고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답하고자 한 시도는 상당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단지 이론 성립에 끝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실 속에서 실천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또한 상당히 의미가 깊다. 하지만 ‘절대적’ 이라는 것은 많은 위험요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절대적으로 옳고 선한 것이고 이데아 중에서도 선의 이데아가 있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원칙이나 윤리적 규범도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살인은 물론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을 때 일어난 살인은 정당방위로 처리되듯 절대적으로 판단내리는 선과 악은 많은 위험요소를 담고 있다.
REPORT소크라테스의 도덕혁명Ⅰ. 4가지 질문에 답하기0.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도망함으로써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제시한 논거 세 가지는 무엇인가?정의와 부정이 관련되어 있는 부분은 매우 존귀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무어라 여기는 평판에 대해 유의하기 보다는 올바른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진 한 사람과 그 진리 자체가 말하는 바에 유의하는 것이 옳다.부정한 짓을 한다는 것은 그 자에게 나쁘고 수치스러운 것인데 부정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앙갚음으로 부정한 짓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시민들의 합의 없이 감옥에서 도망치는 행위는 해쳐서는 안 될 사람들을 해치는 행위로서 부정한 일이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어쩌면 부정한 짓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다른 사람과 합의한 것이 옳을 경우 그것을 이행하여야만 한다. 어떤 사회에서 재판하는 실태와 정치 실태를 보고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국법에 따르기로 사실상 합의가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와 그 국법을 마음에 들어 했고, 이에 따라 그 사람은 시민으로 살기로 계약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도망가는 행위는 자신이 맺은 계약과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다. 그 계약과 합의를 어기고 도망한다면, 개인이 국법을 무효화하고 무력화시킴으로 나라를 전복시킬 수 있고, 나라의 존속이 가능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들은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국 등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지만 조국에 머물러 있는 한 국가가 명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며 국민의 복종의 의무를 설득한다. 특히 자신이 사형 대신 국외추방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 자체가 스스로 사형판결을 받아들인 것이므로 파렴치하게 탈출하여 국법을 파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탈옥을 해서 국법의 파괴자로 비난받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비굴하게 여생을 보낼 수는 없으며 악을 행한 자로서가 아니라 고난을 당한 자로서, 법률의 희생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희생물로서 순결하게 죽는 길을 택하겠노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식이나 목숨, 그 어떤 것도 정의보다 소중히 여겨서는 안 된다며, 국법 준수의 정의실천을 통해 내세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2. “악법도 법이다”라는 주장과 소크라테스의 논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법이 명확하게 잘못되었지만 법이기 때문에 따라야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는 주장을 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논지와 같은 관점이라고 하기는 약간의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이 망명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독배를 마신 것은 다른 이유이기 보다는 자신의 철학적인 관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인 것 같다. 평소 참된 지식을 통찰하고 인간다운 품성을 실천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관념으로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철학적인 관념에 비추어 보면 망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스스로 순응하여 시민으로 살기로 합의한 것은 실제 행동하기로 한 것이지 말로만 그러기로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국가와 우리 자신과 맺은 계약과 합의를 파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단지 국민의 합의한 일이 옳은 경우에 그것은 꼭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다.3. 소크라테스와 같은 도덕적 추론이 자기 이익과 배치될 때 어떤 결정이 바람직한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정당하게 내려진 도덕적 추론이 자기이익과 배치될 경우, 당연히 도덕적 추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모든 개인이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도덕적 추론 결과를 무시해 버린다면 그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주가 자신의 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수처리 하지 않고 그냥 버린다면 그는 정수처리 하는 데에 필요한 돈을 쓰지 않아서 이익을 얻겠지만 사회 전체는 그런 오염물질들로 인해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추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기를 포함한 모두의 이익을 위한 길이라고 볼 수 있다.4. 공동체의 법률과 개인의 윤리 원칙은 어떠한 관계가 바람직한가? 이와 함께 시민 불복종의 문제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공동체의 법률은 우리 생활을 규율하는 것으로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있어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은 한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윤리 원칙과 맞지 않는 법이 있더라도 그 법률이 존재하며 다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시민불복종이란 특정의 법률이나 정책이 올바르지 않다는 판단에 서서 정부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이것은 소수파가 다수파의 정의 감각에 호소하고 비폭력 수단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시민불복종이라는 행동자체를 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으로 그 법은 다수의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어떠한 규범이 기본권을 침해 한다면 우리는 시민 불복종과 같은 행동을 하여 법질서나 정의감각의 갱신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Ⅱ.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고 알려진 사람들로 공통되게 진리를 주장하였다. 소피스트들은 진리를 출세하기 위한 도구로써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소크라테스는 그 진리라는 것을 통하여 영혼을 완성하는 일은 가르쳤다.소피스트들은 그리스 사회에서 처음으로 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의 학원강사의 시발점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이 팔았던 지혜는 현실의 삶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때에 잘 산다는 것은 바로 변론을 잘하는, 오늘날로 치자면 변호사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나 보다. 소피스트들이 주로 하던 가르침이 바로 변론이나 웅변술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라는 것이 말의 그럴 듯 함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객관적인 진리는 없으며 오직 있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상대주의를 펼쳤다.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하는 것이 소피스트들의 입장이었다.그러나 그들이 주장하였던, 그들이 지혜라 여겼던 것들의 끝은 결국 공허이며 빈껍데기 일 뿐이다. 모든 것에는 객관적 정의가 없다는 것, 모든 것은 상대적이란 것은 우리들의 삶 자체가 불안정하며 우리의 존재 자체의 의미를 낮게 평가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본질적이며 보이지 않아 그 필요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크라테스였다.소피스트가 부와 명예 등 세속적인 가치를 중시했던데 반해, 소크라테스는 선하게 사는 것과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알면서도 악을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악을 행하며,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게는 앎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 앎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영혼의 수련을 통해서 얻어진 깨달음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진리를 추구해 나갈 것을 역설하였다.소크라테스 이전의 윤리적 사고 중에는 신들의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결정과 눈앞의 성공을 추구하는 소피스트가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고들에 대하여 반발하였다. 인간의 운명이 올림포스 산에 사는 신들의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소피스트들의 입장을 진정한 도덕이 아닌 것을 만들어 냄으로써 진정한 도덕을 훼손시켜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영혼의 완성은 그들에게 있어 쓸데없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있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영혼을 중시하는 주장은 신성모독이란 죄목으로 소크라테스에게 돌아오게 된다. 결국 이런 논쟁의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당하게 되고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많은 사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독배를 마시고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교육과정 통합의 기초’를 읽고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에 다니고 있으면서 사실 아직까지는 내가 후에 가르치게 될 교육내용이나 과정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이상 전이니 당연히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런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초등교육을 생각할 때 내가 경험했던 시절을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교사, 아이들을 잘 지도하는 교사가 되려면 초등교육과정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통합교과교육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나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어떻게 통합되어 왔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육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 고등학교의 교육은 아무래도 대학진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학문적 내용 중심이지만, 초등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목표로 삼아 아이들이 더 쉽고 즐겁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수잔 드레이크가 집필한 ‘교육과정 통합의 기초’의 내용은 사실 주교재인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통합교과 교육론’의 내용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둘 다 교육과정이 변해온 역사라든지 통합교육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우리 주교재가 더 자세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사실 ‘초등학교 교육이 왜 통합적이여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누군가 한다면 그 답은 매우 간단하다. 통합적인 교육내용이 교육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초등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아동들은 학동기에 있다. 이 시기는 인성발달 단계로는 잠재기, 인지발달 단계로는 구체적 조작기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있는 아동들에게는 인성의 제 측면인 지적,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 각각을 도모하는 일과 그것들을 학생 개인 안에서 효과적으로 일치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 교육과정이 아이들 주변의 실제 일상생활에서 근거해서 통합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다.이런 통합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다학문적 통합, 간학문적, 통합, 그리고 탈학문적 통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다학문적 통합은 학문 영역 간의 연계를 통해 통합적 경험을 생산하기 위한 협력적 노력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교수자들이 자기의 전공 영역에 대한 강좌나 과목들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 영역에 맞게 수장하여 통합적 경험을 이루도록 한다. 대학교육에서 실시되고 있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은 사실 통합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 중등 교육에서는 교육의 대상인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는 4차 교육과정이 이때에 해당한다. 교과서 통합에 해당하는데 한편으로는 기존의 학교 교과 교육의 질서를 인정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고, 다른 한편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오랫 동안 요청해 온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8개의 교과를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3개 교과로 줄였다. 물론 처음 시도한 통합이었기 때문에 결국 아동들에게는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첫 통합의 시작이라는 의의가 있는 것 같다.간학문적 통합은 몇 개의 교과들을 가로지르는 공통 개념을 주제로 하여 각 교과들의 횡적 연계를 갖고 통합하는 유형인데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경험한 초등학교 시절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7차 교육과정에 해당하니까 탈학문적 통합에 해당하는데 느끼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간학문적 통합은 우리 나라에서 5차, 6차 교육과정에 해당하며 교과와 생활의 통합인 통합의 2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통합교과를 ‘생활’을 전제로 학교 생활 및 학습 습관 형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용들, 모든 교과에 해당하는 내용을 선정하기 시작함으로써 교육내용의 적합성에 부응하게 되었다.탈학문적 통합은 아동의 홍미, 실생활의 문제와 이슈를 중심으로 교과의 구분 없이 광범위한 학습 내용들을 연계하는 유형이다.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가장 적합한 통합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7차 교육과정이 완전한 탈학문적 통합이 아니라 부분적인 탈학문적 통합이어서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완전한 탈학문적 통합이 이루어져 아동들이 더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에서는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이에 해당하며 주제 중심의 통합에 해당한다. 이때는 초등 통합교육과정 내용 선정을 위한 포괄적인 기준을 찾는데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기준은 학생들의 흥미를 반영하고, 그들에게 친숙한 일상생활에서 하는 활동이 되는 주제가 된다. 이 내용을 조금씩 아동들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개정해 나아간다.통합 교육과정의 효과는 아동의 학습을 순조롭게 하고 인성 발달에 도움을 준다. 또 학급에 민주적이고 긍정적인 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기능도 있으며 교사와 사 간, 교사와 아동간, 아동과 아동 간의 협동적인 활동과 경험의 나눔을 활성화한다. 교육과정의 내용은 아동의 생활에서 근거하는 것이며 아동의 흥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특히 교과서가 바뀌게 되어 교사와 학생들이 예전보다 더 자주적으로 학습 순서나 내용을 자유롭게 협동하며 선정할 수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식도 물론 전달해 준다. 특히 지식의 변화에 대응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아동들의 능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사실 초등교육을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의 하위 교육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초등교육은 단지 중등교육에서 다루는 교과 내용 중에서 쉬운 내용을 선정하여 가르치면 되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또 그에 따라 초등교사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초등교사의 전문성이 중등교사의 전문성보다 낮다고 말한다. 하지만 초등교육은 다른 교육과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초등교사의 전문성의 전문성은 그 정체성을 구현하는 능력에 있고 그것은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중등교사의 전문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등 교육은 교육을 도구로서의 교육으로 본다. 교육을 수단과 목표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는 것이다. 학생 개인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가 우선권을 가져, 좋은 성적을 결과로 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특히 우리나라 교육 특성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의 과정 속에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학생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이 더 좋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것 같다.초등교육은 지식, 기능, 태도 등의 기초적 자질을 기른다는 면에서 기초성을, 모두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의무성이, 특수 전문 분야가 아닌 공통적인 일반 교양을 습득한다는 면에서 보통성을, 인간이 가지는 모든 잠재 가능성의 발전과 전인적 성장을 지향 한다는 면에서 전인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활과 통합한 주제중심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통합성을 띠고 있다.
‘국화와 칼’을 읽고국화와 칼이라는 책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갈 때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일본이란 나라와 국민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미국 정부가 루스 베네딕트라는 인류학자에게 일본인에 대해 의뢰한 조사 결과 나온 책이다.전쟁 중이라 작가가 일본에 가지 못해서 일본에 대한 자료와 미국에 사는 일본인 면담만을 통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즉 단 한 번도 직접 일본을 경험하지 못한 채 일본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이다.난 이것이 상당히 비판할 만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남의 말만 듣고 어떻게 일본에 대해 책을 낼 수 있을까. 어떤 박사도 논문을 쓸 때 직접 실험해보지 않고는 쓰지 않을 것이다.또 다른 아시아의 나라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일본에 대해서만 공부한 뒤 책을 집필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예를 들어 충, 효, 불교식 수양 등을 말하면서 그것을 굉장히 이색적인 것으로 묘사했는데 나는 이것을 보고,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을 서양인의 눈으로 너무 지나치게 과장시켰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베네딕트는 이것이 일본인의 특유한 속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이것들이 일본인의 특유한 속성일까? 내가 역사나 문화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불교, 유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저자가 동양문화를 알고 있었다면 이러한 문화들이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며 옳고 그름은 말하고 있지 않은데 그 점은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서양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양인을 그들보다 낮게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동양인들이 한갓 야만인에 불과하게 보였을 것이다. 특히 미국은 그 중에서도 2차 세계 대전 후로는 세계 최대 강국으로 부상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상이 옳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사회 분위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인류학자의 신념을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려도 했다는 점은 대단한 것 같다.그리고 ‘국화와 칼’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일본이라고 하면 벚꽃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황실의 꽃 국화 역시 일본의 상징이라고 한다. 또 무사의 나라라고도 불렸던 일본은 칼과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일본의 양면성을 잘 표현한 제목인 것 같다.이 책을 읽으며 평상시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굉장히 널리 보급되어 있는데 일본은 각각의 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 신기했었다. 이것은 '죄'문화가 아닌 '수치'의 문화로서 뚜렷한 '죄'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 교리가 잘 스며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리고 일본은 성에 대해 열려있는 분위기인데 평상시 놀랍기도 하면서 같은 유교와 불교의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왜 유독 일본인들은 성에 대해서 관대한 자세를 취하는지 궁금했었다. 이것은 오감(五感)의 즐거움을 좋은 것으로 보는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면인 것 같다.일본인들의 ‘온’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받은 ‘온’은 약간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갚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깎게 되고 결국 수치심을 유발하여 명예를 잃는 결과를 낳아 개인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항상 ‘온’을 갚기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신세를 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빚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정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여 서로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또 일본인은 자신의 결론이 도출되어 시도해서 실패로 끝났을 경우 그 문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지고 난 후 미국군을 환영하는 일본 주민의 모습을 미국인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합리적 사고의 행동은 오히려 성장과 미래지향 적인 모습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인들이 왜 우리나라에게는 합리적인 사고로 잘못을 사과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책을 읽으며 나는 나와 저자의 기본적인 마음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승전국의 입장에서 패전국을 마치 동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 같은 태도로 책을 썼다. 즉 일본에 대해 분노할 것이 전혀 없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일본의 쓰라린 식민지 경험이 있었던 민족의 자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인의 모든 행동이 좋든 나쁘든지 간에 일괄적으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이것은 단지 문화적 차이일 뿐 선악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특히 일본인이 선악에 대한 뚜렷한 분리된 개념이 없다는 설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일본인의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자신에게 적합한 지위'를 얻기 위해 이웃나라를 침범하고 중국의 한 도시에서 수십만 명을 도살했단 말인가? ‘자신에게 적합한 지위’를 얻기 위해 수십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짓을 한 것은 문화적 차이라는 말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