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적 공감론이중학교 도덕 교육에 주는 함의목 차Ⅰ. 서론 ………………………………………………………………………………………… 31. 연구 목적 ………………………………………………………………………‥……‥… 32. 연구 방법 …………………………………………………………………………‥…‥… 3Ⅱ. 흄과 셸러의 공감론 …………………………………………………………………… 41. 공감의 의미 ………………………………………………………………………‥……… 42. 공감이 작용하는 방식 …………………………………………………………‥……… 8Ⅲ. 윤리학적 공감론의 중학교 도덕 교육적 함의 ……………………………… 111.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타나 있는 공감적 모방 교육 ………………‥……… 112. 공감 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역할 ……………………………………………‥…‥‥ 12Ⅳ. 결론 ………………………………………………………………………………………… 14참고 문헌 ………………………………………………………………………………………………… 15Ⅰ. 서론1. 연구 목적우리의 도덕성 형성에 있어 도덕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적 본성을 깨닫고 도덕적 가치관과 신념, 태도를 모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활동과 동시에 타인과의 도덕성 발달을 위하여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형성할 수 있는 원리와 방법을 도덕 교육을 통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도덕적 사고와 행위의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도덕성은 지식과 규범의 이해로부터 판단되는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정서적 판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정서의 발달과 작용에 의해 도덕성은 인간은 내면에서부터 도덕적 행위의 실천 동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서적 판단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과 교육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본 연구는 도.흄에 의하면 이성이란 오직 참이나 거짓을 발견하는 작용만 하는 것이며 만일 이러한 이성이 인간의 도덕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목표 또는 주어진 상황에서 발견된 가치에 대하여 아무런 호감을 가지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면 이성은 우리의 도덕적 행동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다시 말하자면 이성에 의하여 이것이 옳고 저것은 옳지 않다는 도덕적 판단이 우리의 도덕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옳은 것이며 나는 이것이 좋다는 감정과 저것이 옳지 않으며 나는 저것이 좋지 않다는 감정 작용의 개입이 있어야 도덕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흄은 이성이란 결코 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도덕적 신념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흄은 “도덕적 선악은 이성을 통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통해 구별되는 것이 확실하다.” David Hume, 이준호 역, 『인간본성에 대한 논고 제3권 : 도덕에 관하여』 경기 : 서광사, 1998.말함으로써 이성이 도덕적 행동의 원천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결론적으로 흄은 그의 저서인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 도덕에 관하여』에서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이성이 도덕적 행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첫째, 인간의 정신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철학은 크게 사변 철학의 영역과 실천 철학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이때 이성은 명확한 사변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실천 철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떠한 행동과 관련된 도덕을 논의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둘째, 흄이 파악하고 있는 이성의 본질은 참과 거짓을 발견하는 것이다. 도덕적 행동은 참과 거짓, 즉 일치와 불일치의 문제가 아닌 어떠한 행동이 만족감을 주는지 거북함을 주는지에 관한 문제가 된다.이성은 어떤 행동에 대하여 부인하거나 시인함으로써 직접 그 행동을 중단시키거나 유발할 수 없으므로 그 행동을 중단하 놓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이성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넣어 본래 풍선보다 크게 부풀려 놓았던 것을 풍선 속의 바람을 모두 빼고 본래 풍선의 모습과 크기 그대로 존재하게 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흄과 셸러의 이성에 대한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주장들 속에는 도덕적 신념으로서의 이성이 과대평가 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도덕적 신념의 근원으로서의 이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위험하다고 생각 한다. 비록 이성이라는 부풀려진 풍선에서 바람을 모두 빼고 본래의 풍선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하더라도 풍선이라는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따라서 흄과 셸러의 이성에 대한 도덕적 신념의 형성과 관련한 비판적인 관점은 도덕적 신념의 근원을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수용되기 보다는 인간의 도덕적 신념의 근원을 탐구함에 있어서 이성 우위의 관점의 시대적 사상에서만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분명히 존재할만한 도덕적 신념의 다른 어떤 근원을 간과하지 말고 충분히 탐구하는데 있어서 편견을 가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두 번째로 도덕적 신념의 근원이 이성이라는 주장의 현실적 한계는 도덕적 행동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대다수의 인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주어진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필평가에서 쉽게 만점을 성취하여 매우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현실 상황에서는 지필평가에서 제시된 동일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접하게 되는 경우 정의롭게 행동하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다는 부인할 수 없는 모순이 현재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이다.이러한 현실적인 한계에 대하여 도덕적 신념의 근원을 이성에서 찾는 학자들은 사람들이 정의를 알기는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안에 생성된 이미지에 일치하게 되는 작용이 공감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Hume, David, 이준호 역, 『인간본성에 관한 논고 제2권 : 정념에 관하여』, 경기 : 서광사,1996.여기에서 관념이란 인간의 일체의 정신 작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관념이 인상으로 전환된다고 하는 것은 마치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순간적으로 그 느낌을 직관에 의해 강력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두 번째로 흄은 공감 속에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내가 그와 공감한 것은 나의 평탄한 사고 흐름을 교란시키지 못할 정도로 약한 경우도 드물거니와, 나의 호감을 사게 된 그의 의견에 권위를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경우도 드물다. … 그리고 그의 소감으로 인하여 나는 그가 그 자신을 생각할 때와 동일한 입장에서 그를 고려한다. … 다른 사람의 소감은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의 소감으로 되어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Hume, David, 이준호 역, 『인간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 도덕에 관하여』, 경기 : 서광사,1998.위에서 나타난 흄의 공감 작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소감으로부터 발생된 공감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감자의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공감은 반드시 타인과 공감자의 소감, 즉 감정을 매개로 발생한다. 셋째, 공감은 곧 타인과 공감자의 유사한 감정 상태 및 관점을 형성하게 한다.위의 예에서 흄은 공감 작용의 과정에서 타인이 타인 자신을 고려할 때와 동일한 입장으로 공감하는 작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공감이 감정이입이나 감정 합일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흄이 공감 작용을 설명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현악기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현들이 똑같이 울릴 때, 한 현의 운동이 다른 현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모든 감정들은 타인으로부터 공감자로 쉽게 옮겨 가며 모분리된 것으로서 명백히 다른 작용이다. Scheler, Max, 이을상 역, 『공감의 본질과 형식』, 서울 :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셸러는 ‘뒤따라 느낌’만 작용하고 공감이 작용되지 않은 경우를 설명하면서 ‘잔인함’을 언급하고 있다. 타인의 괴로움 통하여 타인과 같은 괴로움을 뒤따라 그대로 느끼게 된 경우 공감의 작용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공감자에게는 타인의 고통이 원인이 된 안도감이 발생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타인의 고통을 오히려 즐기게 되는데 까지 이르게 되는 잔인함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까지 살펴본 흄과 셸러의 공감의 작용에 대한 설명을 종합해 보자면 첫째, 공감은 사람의 감정을 바탕으로 작용하게 된다. 흄이 말한 바와 같이 공감은 감정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강력한 소통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 되므로 감정은 공감의 작용에서 필수 요소 또는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둘째, 공감의 작용에 있어서 타인의 감정과 공감자의 공감 상태는 서로 다른 주체와 객체의 감정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이와 관련하여 흄은 이와 관련하여 현의 울림의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한 바 있고 셸러는 A의 고통과 B의 원초적인 괴로움의 예를 통하여 잘 설명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셋째, 흄이 말하고 있는 공감 작용에 있어서 인상의 관념으로의 전환 작용과 마음의 미러링(mirroring)작용은 셸러의 추감지 작용에 상응하는 작용이 된다. 흄과 셸러가 타인의 감정을 공감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과정에 관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 동일한 목적에 따른 결과들이 인상의 관념으로의 전환작용과 마음의 미러링(mirroring)작용은 셸러의 추감지 작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공감의 작용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에 관한 탐구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관점보다는 공감의 작용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에 대하여 경험론적으로 탐구하여 인상의 관념으로의 전환 작용과 마음의 미러링(mirroring)작용이라는 특성을 발견하였으며 현상학적으로 탐구하여 추감지.
에서의 교육실습을 마치고자기 평가 보고서OO학과 OOO# 어색하기만 했던 교육실습 첫 주교육실습 첫 주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는 것도, 아직 익숙지 않은 정장을 입는 것도, 정해진 틀에 맞춰 생활을 하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모교가 아니었기에 건물 구조나 학교의 운영, 그리고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낯설었다. 특히 교생실습 첫 날 종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이들은 내가 신기한 듯이 마냥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의 시선에 무언가로 응답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아 어찌해야할지를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과의 첫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전달 사항을 전달하고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교생실습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로운 학교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반 학생들의 얼굴도,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것도,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미 3월 한 달 동안 서로 친해진 학생들의 틈 사이로 내가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처럼 느껴졌고, 학생들이 도리어 나의 존재를 불편하게 느끼진 않을까 조심스러워졌다. 학생들도 교생에 대한 궁금함과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님에 대한 어색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2주째가 되면서 이런 고민들은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학생들의 얼굴도 눈에 익기 시작했고, 조회·종례와 청소지도를 하면서 학생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학생들은 마치 예전의 나처럼 눈을 비비고 학교에 왔고, 내가 앉았던 것과 같은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고, 4교시가 끝날 때쯤엔 몇 분이라도 일찍 밥을 먹기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방과 후 교실 청소는 대충대충 끝냈다. 마치 내가 그랬듯이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했다.# 학생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상담시간실제로 학생들과 많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상담을 통해서였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상담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학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주로 나에게 물었던 것은 공부 방법과 진로탐색에 대한 것이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요즘 학생들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가 뚜렷한 희망 진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재학할 때만 하더라도 추상적인 목표 아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 상담을 하면서 구체적인 직업에 대해 묻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했다.또한 상담을 하면서 학생들과의 유대감 형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수업 진행에 있어서도 원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 수업 참관2주 동안 실제 수업을 참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담당 과목인 OO뿐만 아니라 여러 과목의 수업을 골고루 참관해보았는데 각 과목의 특성에 따른 교수 방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학 같은 과목은 과목의 특성상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특성을 감안하는 동시에 학생들을 수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시키는 방법을 보고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재학 중에는 미처 몰랐었던 선생님들의 수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이지 놀라웠던 것은 중학교 학생들은 상당히 활동적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잠시라도 틈을 주면 다른 짓을 하곤 했다. 심지어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계신데도 맨 뒤에 학생들은 뒤에서 참관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아직까지 중학교 1학년의 티를 벗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보였다.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들도 이렇게 힘들어하시는데 과연 내가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커져만 갔다.# 첫 수업드디어 말로만 듣던 첫 수업이 내게 다가왔다. 교육봉사를 하며 수업을 진행해본 적은 있지만, 공교육기관에서 정규 수업을 진행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참관이 아닌 처음으로 하는 수업이 주는 그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업 시간에 따른 수업 진도의 조절, 아이들의 참여도와 이해력 고려, 적절한 수업 분위기 유지, 돌발 질문에 따른 대처 등등 생각해야할게 너무도 많았다. 실제수업을 참관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고민해보기도 하고 한 주 내내 수업 자료와 지도안을 준비해왔었는데, 그 모든 것을 1시간이란 시간에 펼쳐 보이려니 힘들었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경어를 사용하여 수업하는 것이 너무 어색했고 같은 톤의 같은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해버렸다. 여러모로 부족한 수업이었다.그 다음날 있었던 두 번째 수업에서는 첫 수업의 실패를 거울삼아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섰다. 수업 자료를 조금 수정하여 한 시간 분량으로 맞추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학생의 수업 참여도를 조절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업에서는 농담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고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비록 1차시 분량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겨우 1차시 분량의 수업을 준비하는 데도 많이 힘들었다. 물론 내가 처음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매일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교재 연구로 보내실지 생각하며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항상 끊임없이 발전이 필요한 직업이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역할과 의미교육실습 기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본 것 중 하나가 ‘교사의 의미’이다. 요즘 공교육 붕괴다 뭐다 해서 말이 많다. 실제로 우리 반 학생들도 90% 정도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선생님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듯 했다. 사교육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공교육에서는 무엇을 교육하는 것인지, 교사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학원의 강사가 더 능숙하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원 강사들은 출제확률이 큰 요점들만 뽑아서 가르치게 된다. 시험점수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상 그런 족집게 학원 강사들이 교사보다 더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강사가 아닌 ‘교사’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인생 선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의미 있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학교 교사의 역할인 것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활용한 인성교육 방법교 과 목 :담당 교수님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Ⅰ. 성학십도의 체계와 구조성학십도에서는 성인이 되는 것을 성학의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에 따라 인성교육의 목적을 인간이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회복하여 인륜과 도덕의 원리를 밝히는 성인이 되는 것에 두었다. 또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수양을 해야 하는데, 경(敬)은 수양의 목적이자 방법이며 아울러 성학십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이며 인성교육의 큰 틀이다. 성학십도의 구성 체계, 10개의 도설을 나누는 구조적 형식, 성학십도에 담긴 유교적 내용 등은 실제 인성교육에 적용해 볼 수 있는 함의를 갖고 있다.퇴계의 성학십도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끊임없는 자기수양을 통해 본연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기본 습관들은 바른 인성을 갖기 위한 기초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법으로서의 경(敬)사상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핵심이다. 퇴계의 성학십도는 한국 유교 사상을 특징적으로 가장 잘 담고 있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현재의 인성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1. 인성교육의 목표로서의 성학(聖學)유학에서 말하는 인성교육의 기본 원리는 내 안에서 나의 주체를 구현하고 그 주체를 실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다. 나의 주체가 구현된 사람이 성인이고, 여기서 말하는 성인(聖人)이란 바른 인성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교육이 바로 성학(聖學)이었다. 성학을 통해 바른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 교육하고자 한 것은 오늘날의 인성교육이 추구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성학십도(聖學十圖)는 글자 그대로 성학에 대한 열 가지 그림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성학(聖學)은 보통 ‘성인이 설한 학문’이나 ‘성인의 도를 닦는 학문’의 뜻으로 쓰인다. 성학십도에서 말하는 ‘성학’이란 유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 인격자 혹은 이상적 통치자가 되기 위한 학문의 내용이다. 이상적인 인격자란 전통적 개념을 빌자면 내적으로 도덕의 하는 인간상은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하고 남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다.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의 성학은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성왕의 학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유교의 덕치주의 전통에 근거하여 학문과 덕성을 쌓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고 있으므로 성인의 학문이라는 뜻까지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성인의 덕을 갖춘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반인인가 혹은 왕인가를 불문하고 학문의 목적이나 방법에 있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결국 성학십도는 일반적인 의미로 성인이 되는 학문의 내용을 유학 속에서 정리한 것이다. 실제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성인의 학문’이니 ‘성인이 되려면’과 같은 말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된다’는 뜻은 수양과 실천, 노력과 공부를 동반하는 실천적 경지의 언설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개인으로 볼 때는 수기의 ‘수(修)’에 사회 국가의 공인으로 볼 때는 치인의 ‘치(治)’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퇴계의 성학십도는 유학적 전통의 충실한 계승선상에 있다. 따라서 성학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퇴계의 성학십도는 인성교육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성학십도를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오늘날의 인성교육에 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계가 성학을 통해 독자에게 주지시키려고 하는 가장 큰 주제는 무엇일까? 성학의 목적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우리는 인성교육의 목표로 추구해야 하는 바를 찾을 수 있다.인성교육이란 학생들이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좋은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인성교육의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목표는 인성교육을 통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를 알려주는 지표와 같은 중요한 것이다. 인성교육과 성학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점이 같다. 그러므로 성학의 목적을 인성교육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데 퇴계에 있어 성학의 목표는 성인을 본받고 또 성인이 되는데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학에서 지향의 궁극적 목표요 성인은 곧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이상적 인간상임을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성인상은 모든 방면에 걸쳐 빼어나고 조화롭고 높은 경지의 이상적인 인격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성인을 군자, 현자, 인자보다도 우위에 두었으며, 맹자는 사람의 품격을 여섯 단계로 나누고 성인을 상위에 두고 있다.인간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욕망을 갖는데, 이 욕망을 잘 조절해야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학문이요 수양이다. 이러한 것을 퇴계는 ‘존천리 거인욕(存天理 去人慾)’이라고 했다. 즉, ‘만물을 만들어 내는 천리를 보존하고 인간의 욕망을 없앤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순수하게 선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욕심에 의해서도 움직여지기 쉬우니 경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천리를 마음에 보존하는 노력과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성학십도가 가진 다양한 교육적 함의 중에서 성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인성교육의 목적으로 삼아 보았다. 인성교육이란 본래는 우주 속에서 선한 기운을 타고난 인간이 세상의 물욕에 빠져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본연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사람은 수양에 힘써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성교육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집중하여야 한다. 인성교육을 통해서 학생이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이후에 그러한 마음을 타인, 동식물, 자연, 우주, 그 외의 모든 것들에게까지 확대하도록 한다.인성교육의 목표를 성학에서 추구하는 성인으로 삼아서 많은 학생들을 순수한 마음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사랑의 마음을 확대하려는 사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도덕적 추락의 문제뿐만 아니라 보다 질 높고 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기 위한 교육은 현재 인성교육는 하나의 사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敬)사상이다. 경 사상으로 성학십도가 일관되어져 있음은 성학십도의 여러 부분에서 알 수 있다.경(敬)은 위에서부터 끝까지 통하는 것이니, 공부를 하여 효과를 거두는 데 있어 모두 종사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이 그와 같으니, 지금 이 열 가지 그림도 모두 경으로써 주를 삼았습니다.(내가 들으니) ‘경(敬)’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주자가 말하길) 대개 이 마음이 이미 확립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물을 연구하여 앎을 지극히 해서 사물의 이치를 다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말미암는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인하여 집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것이 이른바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공손함을 독실히 하여 천하를 화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루라도 경(敬)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니, 경이라는 한 글자가 어찌 성학(聖學)의 시종이 되는 요긴한 것이 아니겠는가!(주자가 말하길) 대개 마음이란 몸의 주재요 경은 또 마음의 주재이니, 배우는 이들이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설(說)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 및 그 마음을 수렴하라든가 항상 깨어 있어라는 설들을 익히 궁구하면, 그 공부가 극진하여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주자가 말하길) 둘로 마음을 두 갈래로 내지 말며 셋으로 마음을 세 갈래로 내지 말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피라. 여기에 종사하는 것을 경(敬)을 지킨다고 하니, 동(動)할 때나 정(靜)할 때나 어김이 없이 표리(表裏)를 바르게 하라.(주자가 말하길) 경(敬)은 반드시 하나를 주장해야 한다. 처음에 한 개의 일이 있는데 또 한 개를 더하면 곧 둘이어서 두 개를 이루고, 본래 한 개가 하였습니다.이것이 이와 같이 명백하고 가지런하게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으니, 항상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고 생각하는 사이에 몸소 음미하고 깨닫고 살펴서 얻음이 있다면, 경이 성학의 시종이 된다고 하는 것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성학십도에는 경(敬) 사상을 핵심으로 하여 모든 도설에서 경이 수양의 목표이자 방법으로 드러나 있다. 경사상은 성학십도의 집필 의도와 목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상이다. 성학십도를 통해 퇴계는 경을 항상 주지하고 언제 어디서나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퇴계는 성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유학에서는 인격의 완성이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을 터득하고 실천하여 성인이 되는 것도,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것도 모두 인간 주체성의 중심이 되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경은 곧 ‘마음(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과 세계의 존재 방식과 모습은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남을 돕고 돕지 않는 그러한 마음에 의해, 또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마음이 있고 없고 등등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퇴계의 철학은 ‘경의 철학’이고 또한 ‘경의 철학’은 ‘심학’ 즉 마음의 철학이다.심학도를 보면 마음(心)이라고 쓰인 글자 바로 밑에 일신주재(一身主宰)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마음이 우리 인간의 몸을 주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뜻이다.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생각함이다. 생각함은 또한 배움에 의해 그 능력을 보완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마음으로서 활동하고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작용은 생각함과 배움이라는 두 축이다. 학(學)이란 학문을 지칭하지만 배우고 익히는 실천적 의미가 강하고 사(思)는 생각하고 궁리하는 일을 말한다. 퇴계는 성인이 되기 위한 성학공부의 방법으로 학(學)과 사(思)의 병행과 실천을 강조했다. 생각함과 배움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통해 본 학문의 과정교 과 목 :담당 교수님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Ⅰ. 율곡 이이 철학 사상의 일반적 특성16세기 전반에는 성리학에 대한 연구 결과로 이기론(理氣論),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 이기(理氣)·심성(心性)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이를 둘러싼 논쟁과 학문적 심화 과정을 통해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었다.율곡의 경우 이(理)와 기(氣)는 논리적으로는 구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물에 있어 이(理)는 기(氣)의 주재(主宰)역할을 하고 기(氣)는 이(理)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양자를 불리(不離)의 관계에서 파악하고,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이들의 관계를 이기지묘(理氣之妙)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사상을 갖게 된 현실적 배경을 살펴보면, 정권 담당 층이 훈구에서 사림으로 교체되는 등 개선된 정치 여건 속에서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현실에 적극 참여하고 개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의리(義理)와 실사(實事)가 결합되고 이(理)와 기(氣)가 통합된 일원론적 사고방식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은 다양한 현상(氣)속에 보편적 원리(理)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이(理)가 현실 속에서는 구체적 기(氣)에 의해 규정되고 따라서 보편적 이(理)는 구체적인 변화상을 떠나서는 추구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율곡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변화하고 제한적인 기(氣局) 속에는 항상 보편적 이(理通)가 존재한다는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제시하였다. 이를 서경덕의 주기론(主氣論)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서경덕의 주기론(主氣論)에 대해 이이는 그가 기(氣)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기불리(理氣不離)를 주장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서경덕이 궁극적 존재를 기(氣), 즉 태허지기(太虛之氣)로 인식한데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여 궁극적 존재는 태허지기(太虛之氣)가 아니라 바로 이(理), 즉 태극지리(太極之理)라고 주장하여 이 어리석음을 몰아내고자 하는 책이 추상적인 용어나 사태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Ⅲ. 학문의 과정1. 학문의 방법1) 뜻을 세움(立志)학문을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뜻을 세워야한다고 본다. 뜻을 세우는데(立志) 대한 율곡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서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기약을 하는 것으로 뜻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율곡이 이러한 입지론(立地論)을 주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마음의 특성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예쁘게 만들 수 없으며, 체력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오직 마음과 뜻(心志)만은 어리석은 것을 바꾸어 슬기롭게 할 수 있으며,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한 지각능력은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던 율곡은 ‘인간의 신체나 용모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성(性)과 정(情)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음은 누구나 뜻을 바르게 세우고 정진하기만 하면 지혜롭게도 하고 어질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심성(心性)을 알고 있었기에 아예 성인(聖人)으로서의 뜻을 세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학문을 하는데 있어 뜻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은 다음의 구절에서도 드러난다.입지를 중시하는 까닭은 곧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해서 항상 공부할 것을 생각하여 물러서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이 구절에 따를 때 율곡은 뜻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는 사람이라면 학문을 성취하여 인간다운 인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즉 처음머리는 곧게 세우고, 숨쉬기는 조용하게 하고,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하고,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요. 이른바 구사라는 것은, 볼 때에는 분명하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은 신중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이 나면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분할 때에는 환난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다.구용(九容)과 구사(九思)의 구체적인 실천은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용 생활 속에서는 옷을 입을 때에는 추위를 막을 정도로 입어서 사치하지 않으며, 음식을 먹을 때에도 굶주림을 면할 정도이며, 사는 집을 평안하고 태평하게 하기 보다는 병들지 않을 정도의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극기(克己)는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즉, 내 마음이 여색(色), 이익(利), 명예, 벼슬, 안일함, 진귀한 보배 등을 좋아하는가를 감찰하여,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의리와 일치하게 하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극기(克己)가 이루어질 때 저절로 잡다한 염려들이 없어지게 되고 사람을 대할 때도 말이 간략해지고 신중하여서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있게 된다.마지막으로 학문하는 사람은 날마다 혁구습(革舊習), 구용(九容), 구사(九思), 극기(克己) 등에서 그러한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자주 점검하여야 한다. 이들에 대한 점검항목으로는 다음의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매일 자주 스스로 점검하되 마음을 보존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학문이 진전되지나 않음이 있었던가, 행실을 힘쓰지 않음이 있었던가 반성하여,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없으면 더 힘써서, 부지런히 힘써서 게을리 하지 말아서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다.학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항상 보존하고, 학문을 진전시키며, 행실을 독실하게 한다면 학문의 목적에 어울리는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대전(朱子大全)』, 『어류(語類)』 및 기타 성리설(性理說) 같은 책을 읽도록 권장한다.『소학(小學)』을 통해서는 사친(事親), 경형(敬兄), 충군(忠君), 제장(弟長), 융사(隆師), 친우(親友)의 도(道)를 익혀 힘써 행하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 『대학(大學)』을 통해서는 궁리정심(窮理正心),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방법을 익히며, 『논어(論語)』,를 통해서는 인을 찾고(求仁), 위기(爲己)를 배운다. 『맹자(孟子)』에서는 명변의리(明辯義理), 알인욕(人慾), 존천리(存天理)의 이치를 배우고, 『중용(中庸)』에서는 특히 성정(性情)의 덕에 대해 공부한다. 『시경(詩經)』에서는 인간의 성정(性情)의 사악함과 바름을 배우고, 『예경(禮敬)』에서는 천리(天理)의 예절을 익힌다. 『서경(書經)』에서는 과거 선왕들의 치리하던 법을 배우고, 『역경(易經)』에서는 길흉(吉凶), 존망(存亡), 진퇴(進退), 소장(消長)의 기미에 대하여 연구한다. 『춘추(春秋)』를 통해서는 성인이 어떻게 선에 대하여 상을 주고, 악에 대하여는 벌을 주었는지를 배운다. 이러한 경전들을 반복하여 익히고 그 외에 다양한 성리설(性理說)들을 읽어서 이단의 학설에 유혹되지 않는 것을 배운다.독서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 마음에서 의리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현이나 경전의 의리를 바탕으로 옛날과 오늘의 모든 사태에 관통하고 현재 변화의 일들에 통달하기 위해서다.…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속에 젖어들어 어느 때고 끊어짐이 없도록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고금의 사변을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이상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일단 소학(小學)을 공부하여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며, 형제나 친구와 바르게 생활하는 방도를 배워야 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수신(修身)에 치중하는 일이다. 대학(大學) 등의 경전을 읽어서 보다 형이상학적인 사태를 익혀야 하는 것은 수신(修身)의 일인 동시에 치인(治人)의 일을 알 수 있다.2. 학문의 내용1) 효행(孝行)학문의 실천은 무엇보다도 부모에 대한 효행(孝行)으로 나타난다. 효행(孝行)은 살아계실 때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돌아가시고 난 후로 구분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율곡이 들고 있는 효행(孝行)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성명과 혈육이 모두 어버이가 남겨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요, 바로 부모께서 남겨주신 기운이다.내가 숨 쉬고 호흡하는 데에는 부모님의 기운이 남아 있고, 나의 몸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이기에 부모와 나의 일체감에서 부모가 원하는 바를 행해 드려야 한다.효행(孝行)은 무엇보다도 부모의 일에 관심을 두는 데서부터 시작되며,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부모와 상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자세히 아뢰어 다시 허락을 받는다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좀 더 시간을 두어서 서서히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의 명(命)이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고, 의리(義理)에 해로운 것일 때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간하거나 반복하여 말씀드려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몸가짐을 삼가지 않거나 말을 법도에 맞지 않게 함부로 하며, 장난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부모를 잊은 자의 소치일 뿐이니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일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는 가능한 한 상례를 따라 모시는 것으로 효를 실천한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돌아가심을 애통해 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서 정성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식이 자신의 생명을 손상할 정도로 상례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슬퍼하거나 자신의 몸을 훼손하기를 지나치게 해서 생명을 잃어버릴 지경까지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상제(喪祭)라 하더라도 몸을 훼손하고 수척하게 하여 생명을 상하게 하는 것은 불효가 되기 때문이다.모든 효.
동영상 감상문Ⅰ. 프롤로그(수업 전 나의 의견)Ⅱ. 동영상 감상문1. ‘생명의 탄생’ 동영상 감상문; 를 보고2. ‘임신중절’ 동영상 감상문; 을 보고3. ‘생식보조기술, 즉 시험관 아기와 대리모’ 동영상 감상문; 을 보고4. ‘뇌사와 장기이식’ 동영상 감상문; 을 보고5. ‘안락사’ 동영상 감상문; , 을 보고에 나오는 환자들이나 승영이를 보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것이 의미 있고 계속해나갈 정도의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지 정말로 산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살아있어도 산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본인에게 직접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안락사 문제는 사형제 존폐와 함께 죽음의 문제에 대해 많은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이제 우리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윤리학적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를허용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 시점에서 우리의 중요한 물음은 ‘안락사가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가’의 물음이 아니라 오히려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안락사 기준이 무엇이냐’의 물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극히 일부 사례만 인정되었으며,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극히 드물다는 것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논쟁 중이기때문에 우리는무조건 적으로 안락사에 관련하여 찬성하는 옹호론자 반대하는 반대론자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찬성하는 입장의 논리와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를 살펴보고 그 안에 윤리학적으로 어떤 주제가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6. ‘유전자 조작과 게놈 프로젝트’ 동영상 감상문; 을 보고지난 3년 동안 인도의 목장에서 수만 마리의 양이 폐사되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유전자조작 면화를 심었던 밭에서 방목한 양들이었다. 쥐에게 유전자 조작 감자를 먹이자 거의 모든 장기의 중량이 감소하였고, 90일을 먹은 쥐는 간 기능과 면역 기능이 저하되었다. 그러나 곧 실험 설계가 잘못됐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현재까지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유해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퍼듀 대학에서는 일반 물고기 6만 마리 속에 유전자 조작물고기 60마리를 넣어 보았다. 그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급속한 장악으로 기존 생태계는 완전히 초토화되고 불과 40세대 만에 종이 전멸했다. 그리고 한 연구소에서는 성장 호르몬을 계속 분비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여 성장 속도가 4배 이상 빠르고 크기도 10~30배나 되는 슈퍼연어를 개발했다. 하지만 30배 이상 키우자 머리와 장기 등에서 심한 기형이 나타났다. 유전자조작 생명체에 의한 생태계 교란, 특별한 관리가 요구된다. 세계 종자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몬산토 사는 제초제저항성 콩, BT옥수수와 BT면화 등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제초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 잡초가 탄생하고, 인간 유전자를 넣은 돼지는 근육이 뭉쳐 서질 못한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유전자가 토양을 오염시키고 먹거리를 담당한다. 그러나 이윤을 위한 그들의 유전자 조작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 보였다.예전부터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왔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 논란이 컸을 때 그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기 때문에 여러 차례 들어본 기억이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인 GMO는 후에 인간에게 어떠한 피해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FTA가 체결되고 이에 대한 논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잠잠해질 때쯤 나의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우려 또한 눈 녹듯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들었던 것보다 영상으로 GMO에 대한 문제점을 보고 나니 훨씬 이해하기 수월했다. 특히 동물들을 유전자 조작한 것을 봤을 때 너무 징그럽고 충격적이었다. ‘저렇게 까지 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위험한 동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상을 보면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안전을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 절차는 기업에서 제출하는 서류가 전부라고 했다. 게다가 그 서류들은 제대로 된 테스트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다. 그러한 서류로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해 안전하다, 안전하지 못 하다라고 결정짓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절대로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 위험을 단정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을 하면서, 이러한 유전자 변형 식품의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의 FTA가 협상됨에 따라 미국의 유전자 변형식품들이 수없이 국내에 수입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인간이 가장 예민한 부분은 식료품일텐데, 이러한 식료품을 가지고 장난 아닌 장난을 쳤다는 자체가 화가 났다. 식료품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신들 기업 또는 국가의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자체도 너무나 화가 났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GMO표시제가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유전자 변형에 대한 문제점들은 자연환경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전자 변형 목화씨를 먹고 양떼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일주일 정도면 죽고 말았다. ‘유전자 조작 물고기들이 생태계로 유입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시뮬레이션 또한 절망적이었다. 동식물들에게 유해한 것은 인간에게도 유해할 것이다. 지구는 이러한 이상 현상으로 인간들에게 사전에 위험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우리는 유전자 변형식품으로부터 안전할까? 지금 당장은 이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몇 대에 걸쳐서 이상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서 선택할 권리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정부는 유전자 변형식품을 사용하는 업체를 단속하고 이를 꼭 표기하도록 해서 소비자가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