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파리의 문화유적에 대해서프랑스 파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펠탑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탑이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프랑스 혁명은 무엇인지,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유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크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즉 혁명 전의 프랑스 사회인 구제도의 모순은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이다. 앙시앵이란 '오래된', '낡은'이라는 의미이며, 레짐은 '제도'또는 '체제'를 의미이다. 따라서 앙시앵 레짐은 근대 사회로 변모해 가는 당시 상황에서 이미 낡은 제도, 즉 봉건적 신분제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3개의 신분이 존재하였다.당시 소수의 특권층인 제1신분 성직자의 수는 총인구 2700만 명 중에서 극소수인 10만 명 정도였지만, 전국토의 1/10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영주로서 봉건지대를 받고 십일조를 징수하는 특권과 면세의 혜택을 누렸다. 제2신분인 귀족은 40만 명 정도로서 전 국토 1/5 정도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지대를 받았고, 교회·군대·행정의 고위직에 앉아 연금을 받았으며, 지세인 타이유(taille)와 도로부역에서 면제되는 등의 실질적인 특권을 누렸다. 그리고 칼을 찬다든지 하는 형식적인 명예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은 혈통귀족인 대검귀족과 법복귀족으로 나뉜다. 법복귀족은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관직을 매입하여 귀족이 되었고 법관직이 많았으며 재산관리에 능하였다.이들은 점차 혈통귀족과 거의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검귀족이 법복귀족을 경멸하였으나, 점차로 양자 간의 차이는 사라졌다. 귀족은 막대한 토지 소유, 교회·군대·정부요직 차지·면세 특혜를 향유하였다.특권신분인 제1신분과 제2신분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대다수는 제3신분에 속하였다. 그 요하였는데, 정부에서 파는 소금은 실제 시세의 10배였다.염세 때문에 매년 30,000명 이상이 투옥되고 5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 또한 염세를 정부 관리자가 징수하지 않고 개인이나 회사에 청부를 주어 징수하였으므로 청부업자들의 횡포가 심하였다. 제3신분 중 가장 중요한 계층은 시민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시민계급은 금융업자·상공업자·법률가·의사·문필가 등 자유업 종사자이다. 이들은 재력과 능력이 뛰어나 사회 발전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평민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특권귀족의 하위에 있었고, 정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으며, 경제면에서 봉건적 잔재 때문에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시민층은 소상인과 수공업자를 포함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할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제3신분은 불만을 가지고,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다음으로 프랑스의 경제적 상태 또한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18세기 초 절대왕정을 누리던 루이14세가 유럽 여러 나라와 불필요한 전쟁을 벌였는데 원하던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을 뿐더러 엄청난 국고의 손실을 초래하려 프랑스는 이후 100년 가까이 재정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1786년 영국과 맺은 자유 통상 조약(이든 조약)으로 영국의 값싼 상품이 유입되면서 프랑스 산업은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는 영국에 원료와 식량을 수출했는데 오히려 생필품 값만 올라 사회 불안이 점점 심해졌다. 당시 파리 노동 인구 가운데 실업자가 50%나 되었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왕실 재정의 위기는 혁명 발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루이 14세 이래 악화된 재정은 루이 15세 때 더욱 누적되었다. 이에 루이 16세는 1774년 중농주의 경제학자 튀르고를 등용하여 사태를 타개하려고 하였다. 튀르고는 면세특권 계급인 제1신분과 제2신분에게 면세 혜택을 박탈하고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일률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려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는 왕실 경비를 삭감하려다 왕려는 개혁사상이었으며, 현실적으로는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계몽사상의 대표적 인물로는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등이 있다. 제3신분 중에서 시민계급은 계몽사상으로 무장하여 그들이 소유한 교육·재능·야망에 어울리는 사회적 대우를 요구하여 봉건적 요소와 전제 정치를 타파하려 하였다.이처럼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게 된 배경에는 구제도의 모순과 국가의 재정상의 위기, 계몽사상의 영향이 있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에 앞서 미국에서 발생한 독립 혁명의 성공은 프랑스 시민에게 자극과 용기를 주었다.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과정은 첫째, 삼부회의 소집, 둘째, 혁명의 시작, 셋째, 혁명의 과격화, 넷째, 공포정치, 다섯째, 총재정부 이렇게 5단계로 나눌 수 있다.국가 재정상의 위기에 직면한 정부는 1781년 칼론느 개혁(모든 토지 소유자로부터 현물세를 징수하려고 왕실에 가까운 귀족과 성직자 대표자들로 명사회를 구성하여 협력을 얻으려함)을 실시하려 하였으나, 법복귀족의 아성인 고등 법원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고등법원은 새로운 세금의 부과는 오직 삼부회만의 권한이라고 하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의 이름 아래 삼부회의 소집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들의 속셈은 왕실 재정위기를 이용하여 과거에 상실했던 정치권력을 회복하고 절대왕권을 제약하여 귀족정치를 실시하려는 것이었다. 파산에 직면한 루이 16세는 1788년 여름, '사표를 던지는' 기분으로 1614년 이래 소집되지 않고 있던 삼부회를 다음 해 5월에 소집할 것을 선포하였다.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은 테니스 코트 서약과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다.1789년 5월 베르사이유에 소집된 삼부회에서는 제3신분대표들이 신분별 회의를 지양하고 국민의회를 선포하였다. 귀족들은 거부하였으나 성직자대표들 중 하위 성직자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평민대표들은 그들의 회의 장소가 수리한다는 이유로 폐쇄되자 실내 테니스코트에 모여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였는데, 이를 테니스코트의 서약이 탈출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끊이지 않는 반혁명의 기운 속에서 혁명은 점차 과격해 졌다.1791년 9월 국민 의회는 입헌 군주제를 규정하는 새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서 입법 의회가 소집되었다. 그러나 새 헌법 아래에서 참정권은 세금 납부에 따른 일부 시민에게만 부여하였으므로, 새로운 정치 체제는 유산계급 지배체제였다.이즈음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나라로 혁명 전파될 것을 두려워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간섭으로 혁명전쟁이 시작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의용군이 파리에 모여드는가 하면 8월에는 혁명에 고무된 파리 민중이 왕국을 습격하여 방화하였다. 이에 입법 의회는 왕권을 정지시키고 보통 선거에 의한 국민 공회 소집을 결의하였다.유산계급체제가 무너지고 수공업자와 소상점 주인 등의 소시민층 중심으로 한 혁명적 민중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국민 공회는 곧 공화정을 선포하고, 다음 해 1월 루이 16세를 처형시켰다. 이에 놀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이 제1차 대 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공격을 가해오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소시민과 민중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자코뱅파와 부르주아지를 세력기반으로 하는 지롱드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지방의 반란이 빈발하는 가운데 1973년 6월 자코뱅파는 지롱드파를 숙청하고 공안 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 정부를 수립하였다.이 때부터 자코뱅당파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는데 자코뱅당파는 모든 시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하였으나 국내외의 사정으로 그 실시는 보류되었다. 공안위원회는 혁명 정부의 사실상의 행정부로서, 혁명 재판소를 설치하여 반대파를 단두대에서 처형을 하였다. 한편 혁명정부는 공정 가격제 등의 통제 경제를 실시하고 봉건 공납의 폐지, 혁명력의 제정 등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강압적인 공포정치에 지쳐있던 민중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1794년 7월 공포정치를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는 국민 공회 내의 반대파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것을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의 전면적인 승리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자유주의 이념이 제창되었다.이러한 프랑스 혁명은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시민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평가된다. 이 혁명으로 프랑스 봉건제도는 막을 내렸으며,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의 성립이 가능해졌다. 또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전근대 사회의 낡은 사고방식이 이성에 의거한 계몽사상으로 대체되었다.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혁명의 구호로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이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인식되었으며,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각국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즉 프랑스 혁명은 모든 구별이나 차이를 넘어선 모든 사람의 자유를 뜻하는 자유, 법적인 평등에서 나아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평등을 포함하는 평등, 나아가 세계 평화의 이념인 박애의 이념을 내걸고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봉건적이고 귀족적인 구제도와 절대 왕정의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겠다.앞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런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문화유적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파리 에펠탑과 베르사유궁전, 콩코르드 광장, 튈르리 궁 등이 있다.파리의 에펠탑은 앞에서 말했듯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세워진 탑이다. 301m에 이르는 높이로 당시에 큰 화제를 낳았지만 우아한 파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철골 덩어리’라 하여 많은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의 모습이 보기 싫어 파리 시내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에펠탑은 파리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 중앙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물론 밖에서 바라보는 에펠탑도 아름답지만, 에펠탑 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파리 전경도 더할 나위 없이 멋지다.
경영학부 2011029111 신민기패키지 여행상품=맥도날드화?맥도날드화란 무엇인가? 이는 광범위한 과정의 주요 사례이자 일종의 '패러다임'이다. 또한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사회를 비롯해서 세계의 더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조지 리처, 2003 : 21-22p)맥도날드화는 고객과 종업원, 지배인 모두에게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자동화를 통한 통제를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어왔다. 첫째, 효율성은 어떤 것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계산 가능성은 판매되는 제품과 제공되는 서비스를 질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강조한다. 셋째, 예측가능성은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할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자동화를 통한 통제는 맥도날드의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제대상으로 하여 통제를 강화하고 무인기술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을 말한다. (조지 리처, 2003 : 37-41p)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 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가, 다이어트 등 사실상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된 여행부문 중에서도 패키지 여행상품의 등장으로 이 부문에서 어떻게 맥도날드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예로 들겠다.첫째, 패키지 여행상품에서 효율적인 측면을 볼 수 있다. 패키지 여행상품은 여행을 준비하는 것에 있어 교통, 숙박, 음식 등 소비자가 직접 하나하나 알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닌 여행사에서 여행의 출발에서부터 종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는 보다 효율적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다.둘째, 계산가능성은 패키지 여행상품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많은 양의 서비스를 받는 상품의 소비가 많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로 1+1 행사를 하여 두 가지의 패키지 여행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셋째, 여행사들은 패키지 여행상품을 통해 여행을 고도의 예측가능한 상품으로 바꾸어놓았다. (조지 리처, 2003 : 179p) 자신이 직접 계획해서 간 여행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언제 무엇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어떤 여행상품이 언제 무엇을 할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 따라 어떤 관광안내원이 있을지 등 예측이 불가능했던 부분에서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말 맥도날드화는 유토피아일까?'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이 책의 앞표지에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란 제목 아래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라는 문구가 있다. 난 이것을 보고 맥도날드화와 무슨 관련이 있지? 유토피아란 말은 왜 나올까? 하는 의문점이 생겼다. 난 이 책을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수업의 과제로 한번 접했던 책이기 때문에 약간 익숙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과제를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읽고 나니 지금 우리 사회에 점점 확산되고 있는 '맥도날드화'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맥도날드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패스트푸드점이며 대부분의 나라에 지점을 갖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때문에 처음 나도 이 책이 주로 맥도날드란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책의 저서인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를 단지 일종의 '패러다임'이라 했으며, '맥도날드화'를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를 비롯해서 세계의 더 많은 부문들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이라 정의하였다.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 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등 사실상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외식산업, 나아가 모든 형태의 프랜차이즈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사례들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맥도날드 모델이 최상급수준의 값비싼 식당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중 한 식당인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맥도날드화가 좀 더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어떠한 순서로 서비스를 해야 하는지, 음식이 몇 분 안에 나가야하는지 심지어 음식의 데코레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거의 모든 것을 매뉴얼대로 따라야 한다. 난 평소에 이러한 점들이 맥도날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놀랐다.맥도날드, 맥도날드화의 영향력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레이 크룩이 세운 최초의 맥도날드를 철거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일 때 사람들의 반대로 오히려 박물관이 된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맥도날드는 이미 미국의 상징이며 근대화의 상징, 세계의 상징이라 하여 전 세계에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렇듯 맥도날드, 맥도날드화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과 종업원, 지배인 모두에게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자동화를 통한 통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잠시 이 특징들을 보면 막스 베버가 주장하는 합리화의 4가지 특성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죽음의 대량생산이라 하는 유대인 대학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발전 등과 더불어 맥도날드화가 단순히 그냥 무에서 생긴 현상이 아닌 여러 가지 선례를 통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어서 맥도날드화의 이러한 특성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째, 효율성은 어떤 것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계산 가능성은 판매되는 제품과 제공되는 서비스를 질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강조한다. 셋째, 예측가능성은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할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자동화를 통한 통제는 맥도날드의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제대상으로 하여 통제를 강화하고 무인기술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을 말한다.이런 4가지 특성을 바탕으로 맥도날드화 과정이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이 맥도날드화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측면들도 있다. 조지 리처는 4가지 특성들을 비판하면서 맥도날드의 합리성에 있어서의 불합리성이 맥도날드의 다섯 번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나도 맥도날드화에 대해 조지 리처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인간소외 현상은 맥도날드화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전적으로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종업원들이 사고를 하지 않고 단지 기계적으로 단순한 작업만을 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은 인간소외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합리성의 불합리성은 즉, 합리화를 추구하는 맥도날드화가 반대로 비효율성, 예측불가능성, 계산 불가능성, 통제 불능 등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비효율성, 여러 형태의 환상, 마법의 상실, 비인간화, 동질화 등의 대가를 치러야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화는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넓혀 증식하고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출산과 죽음에 대한 것이다. 단순히 일상생활에만 증식하는 것이 아닌 삶의 시작과 끝인 출산과 죽음에서까지 그 영향이 있다니 정말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출산과정에서 보이는 맥도날드화와 패스트푸드점의 원리를 이용하여 죽음을 점점 통제해가는 병원 체인 및 호스피스 체인의 성장에서 드러나는 맥도날드화는 가히 두렵게도 만들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맥도날드화의 대안들이 나타나고 있다. 양보단 질을 중요시하며 차별성을 중시하는 포스트포드주의나 상품생산보다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두는 후기산업주의 등이 그 예이다. 물론 탈 맥도날드화를 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난 현실적으로 탈 맥도날드화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조지 리처도 맥도날드화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맥도날드화의 흐름을 저지하거나 그 흐름을 거슬러 탈 맥도날드화로 이끌 요소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영원한 것은 없듯이 맥도날드화도 계속 존재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맥도날드화 된 체계는 사회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 체계가 사회에 더 이상 적응을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은 단순한 주장이 아닌 맥도날드화가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예언과도 같다고 본다. 사회의 본질이 변하건 변하지 않건 미래에도 맥도날드화 되 체계가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녹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