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10년의 법칙- 형상화 표현 기법의 발전을 중심으로과목:성명:1. 생애와 시대상황2. 시작(詩作) 태도가. 구상 단계나. 퇴고 단계3. 작품 탄생가. 10년의 법칙나. 사물과 자신의 형상화4. 결론1. 생애와 시대상황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은 조선 시대 말엽부터 우리 민족이 건너가 집촌을 이루고 사는 작은 도시였다. 합일합방의 국가적 치욕이 일어난 1910년, 그의 할아버지 윤하현은 기독교에 입교하였고 그 몇 해 후에 윤하현과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은 명동교회의 실질적인 일을 이끌어가는 장로직을 맡게 되었다. 이리하여 동주의 집안은 유교적 가풍에서 기독교적 신앙으로 그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많은 기독교인들은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놓여 있을 때부터 국운을 염려하여 혁신 운동을 진행하여 왔다. 특히 독립 협회의 결성도 이러한 애국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이었으며, 그들이 표방하는 자주?자강의 기치도 그러한 활동의 범주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미국 기독교 연합회가 판단했을 만큼 한국 기독교는 한반도의 종교 가운데 항일의 주도적인 세력이었다.또한 항일 투쟁의 본거지였던 북간도에서 그는 일제에 대한 저항적인 기질과 독립이념을, 백절불굴의 인내심을 키울 수 있었으면 또 그 사나운 기후와 풍토가 그의 강인한 성격을 결정시켜 주었다. 집안의 이러한 기도교적 사상과 간도의 분위기는 그가 후일에 민족의식과 자유이념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윤동주는 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연희전문에 입학했다. 연전 교수진의 민족의식은 학생들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자극이 되었고, 이 의식은 연전의 학풍과 교풍이 민족적인 바탕으로 자리잡혀 가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연전 2학년 무렵까지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3학년 때부터 키에르케고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심취되어 기독교에 대한 심한 회의를 품다가, 4학년 2에는 다독이 아니라 정독이었다. 주로 문학과 철학, 역사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면서 그는 자기를 내면적으로 완성시키고 있었다. 산책은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았다. 호젓하고 조용한 데가 있으면 가지고 있던 책을 펴고 한참 동안 책을 읽는 때도 있었다. 산책길에서 책을 읽지 않을 때 그는 생각하고 있던 시상을 가다듬거나 손질하는 일을 했다. 그가 즐겨 다니던 산책길은 그의 작품 연습장과도 같은 곳이었다.연희전문 시절에 그가 읽은 책을 정리해 보면 약 8백 권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방학 때마다 이불짐 속에 한 아름씩 넣어 다녔던 책의 양이었다. 그가 읽은 책의 범위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까지 두루 산출하면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향했던 그의 독서습관을 감안해 보면, 우리는 윤동주가 1930년대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두루 읽었고 사상적인 내용에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상의 시를 읽고 평한 내용을 보면 시를 보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예술에 대한 세계에 미술적인 면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가 일경에 체포된 후 친구의 주선으로 보내온 책 짐 속에도 「고흐의 생애」, 「고흐의 서간집」 등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독서의 체험을 통해 그의 문학적 내면세계는 보다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내면세계로 접근해 간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나. 퇴고 단계윤동주는 시를 함부로 써서 원고지 위에 고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달, 몇 주일 동안을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다가 한 번 종이 위에 적혀지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를 손으로 쓰지 않고 마음으로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고에는 고친 자국이 별로 없다. 그 증거로 그의 시집을 보면 1941년 5월 31일 하루에 「또 태초의 아침」, 「십자가」, 「눈 감고 간다」의 세 편을 썼고, 이틀 후인 1941년 6월 2일에는 「바람이 불어」를 썼다. 윤동주와 같은 과작의 시인이 하루 세 편의 . 10년의 법칙10년의 법칙이란 한 영역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려면 약 10여 년의 연구와 훈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윤동주의 문학적 관심이 최초로 나타나나 것은 그가 12살 되는 명동소학교 4학년 무렵(1928년)이었다. 그때 고조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잡지 「어린이」, 「아이생활」을 정기적으로 구독하였다는 기록(「나라사랑」 제23집, 「윤동주 해적이」)을 보면 그의 문학적 관심이 이때부터 발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는 교내에서 연극 활동도 활발히 주도했으며 이듬해에는 송몽규 등의 급우와 함께 벽보 형식의 「새명동」이라는 등사판 문예지를 간행, 자작 동시와 동요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후 15세 때인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선물로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을 받고 대납자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이듬해 그는 은진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급우들과 함께 교내 문예지를 발간하여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였다.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윤동주의 최초의 작품은 34년 12월 24일이라고 부기된 「삶과 죽음」, 「초 한 대」, 「내일은 없다」 등이며, 이때부터 그는 작품 말미에 창작일자를 명기하였다. 이를 통해 윤동주가 작품활동을 한 시기인 34년 이후에서 42년까지만을 추산하더라도 약 8년 남짓하다. 이때까지는 그는 시 76편, 동시 35편, 수필 5편 등 총 116편의 문학작품을 남겨놓았다.이상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윤동주는 짧은 생애에 116편이라는 현존 문학작품을 남겼고 이들은 상당한 문학적 수준과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중에서도 초기시에서부터 최후작으로 보이는 「쉽게 씌어진 시」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적 변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시정신과 시적 수법에 있어 다양한 문학적 편력을 보여주고 있다.1) 습작기 작품(1934~1936년)윤동주의 습작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삶과 죽음」, 「초 한 대」, 「내일은 없다」 등 이 당시의 대부분의 작품은 전성기의 작품에 비해 시적 사고와 짜임새에서 미밀쳐여윈 나무그림자를 밟으며,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누가 있어만 싶던 묘지엔 아무도 없고,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푹 젖었다.「달밤」(1937.4.15.) 전문이 시의 시적 정서는 고독감과 죽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나 고독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심정적 차원을 벗어난다. 묘지의 암울한 분위기를 ‘흰 물결에 푹 젖었다’는 시각적 환상으로 끌어내 선명하게 들추어냄으로써 감상적 요소가 배제되고 죽음과 고독에 대한 지각적 인식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옷자락 물결속에서도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이밤을 더불어 말할이 없도다.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 수 없도다.그신듯이 냇가에 앉았으니사랑과 일을 거리에 매끼고가만히 가만히바다로 가자,바다로 가자.「산골물」(1939.9. 추정) 전문광명중학 시절(1937~1938년)의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의 언어의 상상력을 통한 체험적 사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의 형상화는 현실의 어두운 상황에 불안과 회의를 보여준다. 윤동주의 초기의 시들이 갖는 의미조직은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환경과 상활을 원천적 맥락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 독자의 체험과 연대성을 갖고 있다.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슬픈 족속」(1938.9.) 전문윤동주는 외부현실과의 대극에서 내면적 자아응시와 불안을 보이던 종전의 태도에서 탈피하여 사회적?민족적?역사적 자각을 보여준다. 습작기의 시기에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자전적 기록들을 형상화하던 그의 시가 이 시기에 들어와 여러 방향의 시적 모색과 삶의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윤동주가 습작기 시들의 관심을 확대?심화하면서 사회적?민족적 현실에 대한 뚜렷한 자각과 인식을 형성해 나갔음을 말해준다.3)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1941~1942년)이들은 윤동주의 대표작들로서 그의 념의 표상으로서 나타났다. 그러므로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바로 신념의 표현이며, 이 신념은 내면적 자아로 결속되기도 하고 외부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대결로도 확산되어 나타난다.윤동주의 최후작으로 남은 「쉽게 씌어진 시」에서도 부끄러움의 인식이 어떠한 신념으로 표상되었는가에 대해 뚜렷한 증거를 제시한다. 이는 바로 살기 어려운 시대에 처한 자아의 갈등이 ‘어둠’을 내모는 적극적 행동의지로 환원되어 극복되고, 이는 곧 저항의지의 한 표상으로 변형되고 있다. 따라서 「쉽게 씌어진 시」에서도 지적되는 부끄러움의 신념은 곧 저항 에너지로 바뀌어 식민지 치하의 억압받는 민족적 현실의 아픔과 어둠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나타난다.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씌어진 시」(1942.6.3.) 일부이와 같은 진술은 그가 습작기의 시에서부터 이끌어온 시정신의 탁월성을 절정으로 올려놓은 구절로 보여진다. 윤동주의 시가 지속하여 온 정신의 견고함은 투철한 자아성찰과 민족현실에 대한 자각, 그로 하여 얻어진 부끄러움의 극복과 항일정신에까지 도달하고 있다.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쉽게 씌어진 시」(1942.6.3.) 끝부분여기에서 부끄러움의 의식은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로 실체화되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지향키 위한 ‘저항’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저항의 자세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엄숙성을 보여주는 도덕적 태도로서 종래의 부끄러움이 심정적 차원에서 실천적 차원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천적 차원의 회복은 바로 부끄러움의 내면적 인간을 탈피하고 시대적 자아로의 전환을 뚜렷이 설정함을 뜻한다. 그리하여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로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로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신념을 통해 일어서고 있다. 이 신념의 표시는 시대현실을 향한 것이며, 그것은 ‘남의 나라’로 설정 한다.
내 생애 첫 발레 ‘지젤’일시성명체험 내용김연아 선수가 예전에 피겨 프로그램곡으로 ‘지젤’을 선택했다는 내용이 머릿기사로 실렸던 기억이 난다. 곧이어 각종 매스컴에서는 서방 세계에서의 ‘지젤’의 위상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고,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가 어떻게 지젤 연기를 소화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저 ‘김연아 선수가 어떤 곡에 맞추어 아름다운 연기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였다.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고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정확히 지젤이 어떤 사연의 여인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아무리 내가 예술 공연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발레계의 고전이라 불리는 지젤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은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지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시에 나는 좀 더 깊이 있게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중에 국립발레단이 지젤 발레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간에 기본도 되지 않는 문화생활을 한 것에 대한 후회도 있었고, 낭만 발레의 정수라 여겨지는 지젤을 죽기 전에는 꼭 보아야 할 것 같아 바로 지젤 공연을 보기로 했다.발레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미리 다른 발레단이 한 지젤 공연 영상을 여러 차례 보고 대강의 극 흐름도 숙지한 후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지젤은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은 시골마을의 처녀 지젤이 외부에서 온 청년 알브레이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가 그가 약혼녀가 있는 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아 죽게 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2막에서는 죽은 지젤이 윌리(사랑하는 남자의 배신으로 죽은 처녀의 영혼)가 되는데 윌리들은 남자를 무덤가로 유인하여 밤새 춤을 추다 죽게 만든다. 그래서 지젤을 잊지 못해 지젤의 무덤에 찾아 온 알브레히트도 윌리들에 의해 죽게 될 운명이 되지만, 지젤이 윌리들과 윌리들의 지도자 미르타에게 알브레히트를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알브레히트와 함께 밤새 같이 춤을 춰줌으로써 밤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새벽이 되고 알브레히트를 구한 지젤과 윌리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지젤 공연은 끝이 난다.발레는 대사가 없고 오직 춤으로만 감정을 전달하고 극을 진행하기 때문에 내용은 연극이나 뮤지컬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처음 발레를 접하는 내가 지젤을 이해하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1막에서의 지젤은 발랄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지만 2막의 지젤의 몸짓은 안타까움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지젤이 사랑에 대한 충격으로 죽었음에도 알브레히트가 윌리들에 의해 죽지 않도록 미르타에게 간청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백색의 로맨틱 튀튀를 입은 윌리들이 양쪽에 열을 맞추어 서서 총총 뛰며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정말 아름다워서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한참 동안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