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mes House(1949)-Charles Eames, Ray Eames1. Space Ray Eames,(1912~1988) - 보기 좋은 것 보다 기능이 좋은 것이 더 가치 있다 .- 집이라는 것은 생활을 집어 넣을 수 있는 간소한 상자이다 이 공간에서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거주민의 다양한 행위들이 느껴졌으며 이로 인해 공간이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집이라는 것을 단순한 구조를 만들고 넓은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 이 공간 안에 가구나 조명 , 조경 등 다양한 인테리어적 요소로 인해 거주자의 다양한 행위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 Surface 단순한 재료와 마감들 - 요소를 위한 도화지 - 마감재에 공통점은 따른 현란한 패턴이나 무늬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인테리어적 소품들로 인해 복잡해 질 수 있는 곳을 단순하게 표면을 처리 함으로서 공간을 인테리어적 요소들을 위한 갤러리로서 조화롭게 만든 것 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나무라는 소재의 따뜻함과 대리석의 깔끔함 이미지를 통해 변 화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집의 마감재는 크게 3 가지이다 첫 번째는 사이딩 나무 패널 두 번째는 흰색 몰탈 마감 세 번째는 대리석 바닥 마감 1 2 33. Environment 노출 및 구조를 통한 넓은 공간의 확보 천장 전체를 노출하여 안에 배선들을 노출하여 관리가 편하게끔 하였으며 내부공간이 더욱 커보이도록 하였다 - 철골구조를 활용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 - 단순한 구조로 인해 가변적인 공간 가능 쉽게 집안의 구조를 변경 할 수 있다 철골구조에 외 , 내부 단열재를 둘 다 사용하여 에너지 보온성을 높였다 - 측창과 기존에 있는 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기 순환이 일어 나도록 - 하였다 최대한 자연광을 집안 깊숙히 들어오도록 고려 하였다4. Element 이 공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창 - 주변의 자연을 위한 프레임으로 다양한 비율로 풍경을 보여준다 외부에서는 몬드리안의 느낌의 입면의 요소로 사용됨 다양한 가구와 민속 공예품 , 장난감등 세밀한 인테리어를 통해 다양한 행위들을 느낄 수 있으며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임스 부부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이 있어 하나의 갤러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nameOfApplication=Show}
서양건축론 리포트목차서론-한옥이란본론1. 현재의 한옥2. 한옥의 투명성2-1 전이공간2-2 채 나눔2-3 한옥의 투명성3. 서양 건축에서의 큐비니즘결론현대에 한옥 투명성 활용출처서론-한옥이란?한국 전통 건축 중에서 우리가 살았던 짐을 한옥이라고 한옥은 과거에서부터 우리나라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살아온 주거 유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옥은 기후나 지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계급에 따라 주거의 유형들이 정해져 손쉽게 그 집을 살았던 사람들의 배경이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옥은 근대화에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그림 1 전주 한옥마을한옥은 한마디로 말하면 모호한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옥 안에는 단순히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마루나 툇마루 공간들로 인해 공간의 성격이 모호한 회색공간이라고 불리는 공간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한옥의 투과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방이라는 인간 스케일의 공간을 나가면 손쉽게 외부공간으로 나갈수 있다 이러한 한옥의 투명성은 서양 건축물과 비교되어 불편한 요소 여겨지게 되어 지금의 한옥들은 한옥의 껍데기를 가지면서 안에는 서양 건물로 되어있는 기이한 주거 공간이 생겨났다.본론1. 현재의 한옥한옥은 앞서 말했듯이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매우 불편하고 비과학적이며 재래적인 주거 양식으로 비판받았다. 또한 한옥은 기존의 아파트랑 달리 토지효율과 시공성에서 비난 받았는데 아파트는 정해진 타입의 형태로 계속 쌓아 올라가는 데 반하여 한옥은 주변의 상황과 대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지어져 땅의 효율성 및 공간의 기능성이 떨어진다고 받아 들여졌다. 또한 한옥은 나무로 짓기 때문에 화재 발생 시 위험이 높고 겨울에 춥고 프라이버시 보호가 되지 못하였다. 결국 한옥은 서양식 공간들에 밀려났다 그러나 현재에 들어와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한옥에 대한 재해석과 사람들의 요구가 강해지면서 전주의 한옥마을이나 서촌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시 재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그림 2 현대식 한옥의 내부그림 3 양동마을 관가정2. 한옥의 투명성과 채나눔2-1한옥의 전이 공간한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바로 내부와 외부공간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방 사이의 거리가 짧고 이동이 간단한 서구식 주택에 비해서 한옥은 같은 집안에서도 부엌에서 안방까지 가기위해서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한옥의 이러한 공간 구성은 사람이 살기에는 불편하다 그러나 그자체가 하나의 한국 건축의 특징이다.겨울에 춥다라는 말은 그만큼 외기가 내통이 잘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된다는 말은 그 만큼 간접 의사 소통이 잘 된다라고 말 할수 있다. 이처럼 한옥의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반대로 생각해버리면 장점인 경우가 많다.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 공간도 외부공간도 아닌 애매한 성격의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건축 전문용어로는 전이 공간이라구 부르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대청과 툇마루가 있다 대청마루와 툇마루는 기존의 한옥의 다른 공간과 달리 지붕만 있고 벽이 없기 때문에 외기에 완전히 노출되어있다 이러한 점에서 분명히 외부공간이라 고 볼수 있지만 대청마루와 툇마루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행동은 내부공간의 성격을 가진다. 한마디로 대청마루와 툇마루는 외부도 아니고 내부도 아닌 중간적인 성격의 공간을 가진다그림 4 한옥의 대청마루그림 5 정여창 고택의 툇마루그림 6 제사 모습또한 이러한 전이 공간들은 단순히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행사나 집안의 다양한 이벤트들을 수용하는 공간으로서 사용된다. 대청마루의 경우 제사나 집안에 경사가 있는 날에는 가족끼리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명절에는 같이 음식을 만들거나 날씨가 안 좋은 날에 노는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툇마루는 다른 기능을 하는데 방안으로 들어오기 어려운 손님이 왔을 때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서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툇마루는 협소하지만 비를 맞지 않고 집안을 이동할 수 있는 길로서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전이 공간들은 사람의 삶의 다양한 기능들을 수용하고 있다.이러한 한옥의 내외부의 확장가능성을 만들어주는 전이 공간은 한옥의 투명성을 위한 장치들이라고 말 할 수 있다2-2한옥의 켜(채나눔)한옥의 그 다음 특징은 켜라는 레이어이다 이것은 한옥을 말할 때 중첩이라고 부르는 요소 중 하나로서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아시아의 건축물 중에서 한옥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의 켜란 한 집 안에 공간이 서양 건축물처럼 다 이어져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정과 마당에 의해서 분리된 형태로 말할 수 있다.그림 7 한옥의 마당이러한 한옥의 켜는 한국식 유교사상에 배경을 두고 있으며 남녀를 분리하고 계급에 차이를 위해서 한옥의 켜는 만들어 졌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켜로 인해 한옥은 외기그림 8 일본과 중국의 주거 유형과 한옥의 켜에 접하는 부분이 많아 졌으며 이로 인해 외부공간에서 내부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이 공간들이 생겨 났다한옥의 켜 또한 한옥의 투명성을 위한 장치로서 답답할 수 있는 주거 공간에 마당과 중정이라는 요소로서 주거의 쾌적성과 삶의 질을 높였다한옥의 투명성이란?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 사이의 구별이 ‘모호하다’ 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이쪽 방에서 다른 방 까지 단절되어 보지 않고 개방적 연속으로 볼수 있다 실재로 아래의 도면을 보듯이 한옥의 공간에서는 문을 열면 공간이 연속된다. 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한옥의 투명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한옥은 켜로 인해 다양한 외부 공간을 접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한옥의 내부공간에 손쉽게 외부로 가거나 외부에서 내부로 갈수 있다 이는 한옥의 또 다른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서양식 주거 유형의 아파트는 한옥과 달리 패쇄적인 공간으로서 소음 문제, 커뮤니티 결여 등 다양한 주민간의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한옥의 투명성은 최근 들어 이러한 인간성 결여를 나타내는 우리의 삶에서 좋은 해결방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한옥의 투명성은 툇마루와 같이 전이 공간을 활용하여 외부인들과의 커뮤니티 일어 날수 있는 공간을 확보 할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한옥 공모전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로서 제안되고 있다.이처럼 한옥의 단점이라고 생각 하는 것들은 한옥의 투명성으로서 많은 가능성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한옥의 투명성은 서양의 건축 발전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보이고 있다그림 9 한옥의 평면-문을 열면 커다란 방이 된다3. 서양 건축에서의 모더니즘 건축흔히 로마와 그리스의 서양의 고전 건축은 불투명하고 패쇄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 건축에서도 초기 기독교 양식의 교회와 고딕양식의 차이는 밝은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외부에 플라이 버트레스를 사용하여 많은 창을 내게 된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이로인해 서양 건축가들은 고전 전통 건축의 패쇄적 특징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패쇄된 공간은 외부와의 공기 순환이 안되 다양한 질병들을 유발하였다 20세기 현대 건축은 이러한 것들 해결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건설방식을 이용하여 고전 건축의 패쇄적인 공간을 벗어나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할수 있다
봉정사 ( 鳳停寺 ) 답사기01 개요 02 배치 04 공간 구성 및 건축적 장치 CONTENTS 05 건축적 새로운 가치 03 단면과 레벨의 이용한 단봉정사 ( 鳳停寺 ) 개요 건축가 : 능인 대덕 창건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연혁 : 신라 문무왕 12 년 (672) 능인 대덕 창건 – 상량문 의상대사 – 양법당 증축 고려 공민왕 12 년 (1363) – 옥개부 증축 조선 인조 3 년 (1625) – 두 번째 증축 조선 철종 14 년 (1863) – 보수 조선 고종 19 년 (1882) – 극락전 현판 개채 신라의 삼국시대 통일 직후인 682 년에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극락전이 유명한 절이라고 볼 수 있다 . 극락전은 고려말의 양식인 주심포 , 대웅전은 조선의 양식인 다포계로 되어있다 . 또한 주심포와 익공이 혼재 되어있는 화엄강당 , 고금당이 있고 후기 다포계와 익공계의 덕휘루 , 무량해회가 있어 각시대별의 다양한 구조 양식을 볼 수 있는 ‘ 목구조의 박물관 ’ 이라 할 수 있다 .봉정사 ( 鳳停寺 ) 개요 창건 설화 봉정사가 위치한 산은 원래 대망산이었는데 능인대덕이 이 산에 올라 바위굴에 9 서 10 년간 도를 닦자 하늘에서 등이 내려와 밝혀주었다 . 그리하여 이 산을 ‘ 천등산 ( 天燈山 ) 이라 부르게 되었다 . 수도를 마친 능인대사가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리자 종이 봉황이 학가산을 거쳐 다시 날라와 지금의 봉정사 대웅전 자리에 머물렀다 . 이에 능인대사는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봉황이 머물렀다고 하여 ‘ 봉정사 ( 鳳停寺 )’ 라고 이름지었다 .봉정사 ( 鳳停寺 ) 배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에 천등산을 등지고 있고 기존에 등산로와 연계되어 있다 또한 한국의 전형적인 산지형 사찰의 모습을 띠고 있다봉정사 ( 鳳停寺 ) 배치 봉정사는 크게 극락전이 있는 봉정사와 스님들의 공부하는 지조암과 스님들이 수행을 갈고 닦는 암자형 사찰인 영산암과 중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봉정사 ( 鳳기 형태 증축된 부분봉정사 ( 鳳停寺 ) 건물의 배치 극락전 대웅전 화엄 강당 만세루 ( 덕휘루 ) 고금당 무량해회 ( 요사채 ) 봉정사는 특히하게 두 개의 주불전을 가지고 있다 극락전 , 대웅전이 그 것이다 이로 인해 축이 존재하기 보다는 두 개의 중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중심성이 하나에 치중하기 보다는 각 각의 중심성을 가지고 동등한 위계에 있는 것이 특이 하다 극락전 대웅전단면과 레벨을 이용한 단 봉정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봉정사의 부지는 경계가 명확하여 사방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 뒤쪽은 산으로 , 앞은 담으로 막혀 있다 . 거기에다 담 앞쪽에 제법 급한 경사가 있고 긴 계단이 놓여 있다 . 전체적으로 보면 봉정사는 꼼짝없이 막힌 공간이 된다 . 이처럼 경내가 막힌 만큼 , 봉정사가 앉아 있는 땅은 독립되어 있으며 , 봉정사는 독립된 한 개의 부지에 놓여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 또한 봉정사의 경우 레벨사용을 정말 잘했다고 할 수 있는데 앞부분의 긴계단을 통하여 절으로서 가는 속세에서 벗어난 불국의 세계로 간다는 것을 공간적으로 나타 내었고 산의 레벨을 이용하여 2 개의 단을 만들었다 첫 번째 단은 하나의 단으로서 불국세계와 속세와의 매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두번째 단은 각 건물의 오픈스페이스 임과 동시에 각 공간을 분리 시키고 있다 이러한 각 단은 나누어 졌다 모아졌다하는 동선 채계를 가지며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주요 건축물과 건축적 장치 대웅전 대웅전은 주불전으로써 주변의 다른건물과 다르게 팔작지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른 주변 건물의 위계보다 높은 것을 나타내며 단먼적으로도 가장 윗 단에 있음으로써 우러러보게 만든다 또한 대웅전 입면에 부처의 일생의 그림을 둘러서 그때 당시에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교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시키며 옆면의 의장성 또한 확보한것으로 보인다 건축적 장치 - 툇마루 봉정사 대웅전의 특이한 점 바로 툇마루이다 다른 절의 대웅전은 그냥 계단을 올라가 막바로 신발을 벗어 들어가는 것락전과 마당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또한 주심포계 건물로써 모더니즘 적인 입면을 통해 단순하며서도 간결한 입면을 보여 주고 있다 맛배지붕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적 장치 - 탑과 마당 앞에서 말했듯이 봉정사는 두개의 주불전을 가지고 있다 또한 두개의 중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두개의 중심성 중 어느하나 치우쳐서 중요한 것 없이 두개다 같은 위계를 가진다 그러나 사실 극락전은 작은 마당과 주심포계 건물로써 단순하여 오히려 중심성이 대웅전에 비해 약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성을 가질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탑이라는 오브제 이다 마당이라는 빈 공간 속 탑이라는 오브제를 둠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대웅전의 마당에 비해 좀더 강한 중심성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중심성을 가지는 방법을 우리도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오브제를 이용한 공간의 이용을 보여준다무량해회 와 요사체 무량해회는 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처마와 무량해회의 처마가 부딧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무량해회의 지붕은 낮춰져 어떻게 보면 어색한 모습을 보인다 . 승방으로써 쓰이다가 현재에는 템플스테이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사체는 절에서 스님들의 부엌으로써 ‘ ㄷ ’ 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부 사람들이 많이 오는 절 안에서 건물로서 절의 부엌의 모습을 가리고 있다 건축적 장치 - 마루의 다용도 무량해회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마루이다 어떻게 보면 고택의 모습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넓은 마루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마루가 앞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감쌈으로써 뒤의 요사체와 분리 되어 있으며 이어진 모습을 보인다 또한 기능적으로는 마루자체가 브릿지가 되어 뒤의 요사체를 연결하여 동선의 편리를 보여주며 마루와 레벨차이를 이용하여 루의 기능 또한 하고 있다 공간 적으로는 외부 공간과의 매개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휴식공간과 외부공간과 연계된 다양한 행위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마루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입구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특이하게 옆면을 구획함으로써 장식성을 만들어 낸 것 이 인상 깊었다 63. 봉정사 초입 ( 조경을 통한 가려짐과 레벨을 이용한 인지 ) 봉정사 초입에 들어 서면 차를 위한 주차공간이 있으며 조경적인 요소 ( 나무 ) 로 인해 절의 부분이 가려져 있다 그러나 레벨을 이용하여 만세루의 일부분을 멀리서 보여 줌으로써 그곳에 절이 있음을 각인 시킨다 또한 진입로를 틀어 접근 함으로써 절의 추녀선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한옥의 가장 멋스러운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4. 봉정사 입구와 계단 ( 계단을 이용한 불국의 스토리 와 그 속의 레벨을 이용한 자연적인 조경 ) 봉정사의 입구 부분은 엄청난 경사를 가진 계단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계단은 봉정사의 레벨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부분으로서 거기에 계단이라는 건축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불국을 들어가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느끼게 한다 또한 레벨로 인해 비어진 공간들 안에 계획하여 넣은 조경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자연젹 모습을 가짐으로써 봉정사의 담과 함께 여기가 속세와 다른 세계임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5. 만세루로의 진입 ( 루하진입을 통한 긴장감 조성 ) 만세루를 통한 루하 진입은 루라는 공간과 레벨차이로 인해 우리를 굽히도록 만들고 그 안에 그늘이라는 요소를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엄숙함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루라는 공간을 통해 입구성을 만들어 줌으로써 불국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간을 좁혀 줌으로써 그 다음에 보인 대웅전의 공간을 위해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다 6. 마당과 대웅전 ( 마당의 활용한 전이 공간과 단을 이용한 공간의 위계 ) 처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대웅전과 첫 번쨰 마당으로 들어 오게 된다 첫 번째 마당은 단을 이용한 공간으로 이 공간 속에서 대웅전을 우러러보게 만들고 절 안에서 방금 들어온 사람과 대웅전 간에 공간적 위계를 만들어 대웅전 앞 마당과 함께 부처와 나의 위계를 만들어 만들어주고 그 것들로 인해 사찰들이 더욱 인상 깊어지고 감동을 받는 것이다물을 이용한 청각적 효과와 다양한 조경 방법 물을 이용한 청각적 방법은 안도 다다오가 많이 쓰는 방법이다 물은 크게 흐르게 하는것 , 정적인 물 이렇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흐르는 물 정적인 공간 속에 물을 흐려 보냄으로써 그 안에 물의 청각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밖의 건축물의 밖의 공간과 안에 공간을 나눠주고 들어간다는 것을 암시함 정적인 물 정적인 수공간은 물의 잔잔한 표면을 보여줌으로써 정적이거나 엄숙한 공간을 만들 때 사용한다 ( 지이어그로사이 ) ( 지중미술관 )돌을 이용한 질감적인 요소와 돌의 청각적인 소리 돌을 이용한 조경 방식은 일본의 현대적 건물에서 볼 수 있다 돌의 질감적인 요소 돌의 질감적인 요소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거나 빛을 떨어 뜨림으로서 돌의 거친 것을 통해 자연적인 거침을 보여줌 청각 요소로서 돌 자갈 등을 이용하여 돌을 밟는 소리들을 통해 사람들이 엄숙한 공간이나 무언가 들어 가는 것을 나태내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 ( 지니어스로사이 ) ( 이우환미술관 )오늘 날 앞으로의 외부공간의 설계 한국의 절들의 주변의 자연젹인 요소를 이용하여 각 영역별 사이공간에 둠으로써 각 공간에 극적인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 이러한 사찰의 외부공간의 디자인처럼 우리의 건축에서도 이러한 외부공간을 디자인 하고 자한다 . 외부 공간을 잘 기획한다면 사람들이 오는 동선을 잘 만들어 짐으로써 밖의 외부공간과 나의 건물을 잘 이어주며 공간적으로도 이어져 내 건물을 잘 이해 하도록 하지 않을까 ? 외부 공간의 디자인적이 요소 ( 화계 ) ( 수공간 ) ( 담장 )참고 문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vj24601 logNo=175953537 parentCategoryNo= categoryNo= viewDate= isShowPopularPosts=false from=postView http://blog.daum.net/p7777877/how}
서양 건축론 Report-건축의 개념-1.건축에서 사조란? 무엇일까?최근 한 잡지에서 현재 진행되는 건축적 사조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평을 구독하였다. 건축은 과거부터 르네상스, 국제주의, 등 다양한 사조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러한 사조들은 단순히 건축적 영향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건축은 모더니즘의 등장 이후 벗어나기 위해 포스트 모더니즘을 외치고 있다.과연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현재의 건축에서 건축적 사고라는 것이 과연 존재 하여야되는 것일까? 다원화 되고 다양화 된 사회에서 건축의 사조라는 것이 존재여부가 과연 중요한가? 라는 내용이 었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라는 이름은 건축의 흐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국제주의 양식이 빈번한 시대에 그것들을 부정하며 과연 건축의 본질이 무엇일까?라는 본질적 의미를 가지며 서양 건축의 뿌리인 이탈리아 건축을 통해 건축적 본질을 깨달으면서 국제주의 양식에 종지부를 찍고 더욱 견고한 모더니즘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칸은 현재의 건축적 흐름에서 건축의 본질에 대해 고심하고 새로운 것을 찾은 좋은 예의 건축가라고 생각되어 정하게 되었다.2.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그림 1 루이스 칸)20세기 건축계의 전반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꼬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바 알토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건축가들은 모두 이 거장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하였다 그 중 루이스 칸처럼 성공한 사람은 없다 루이스 칸은 1901년 에스토니아의 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1906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가난한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건축 교육을 받았으며 50세가 넘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된 첫 작품을 남긴 대기만성형 건축가이다 그는 뒤늦게 건축에서 인정받아 노년에 아주 왕성하게 활동 하였으나 경제적인 관념이 부족해서 사무실은 항상 적자였다품 활동을 했을 초기에는 그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앤팅 에게 영향을 받아 작은 유닛을 반복해서 구축하는 메타볼리즘 스타일에 빠졌으나 그가 로마로 여행을 갔다 오게 되면서 그의 작품을 완성하기 시작한다. 이 여행은 칸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 것이다. 칸은 로마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사무소 직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이탈리아 건축이 앞으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데 근원이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네. 이제 해야 될 일은 이탈리아 건축을 우리 건물에 대한 지식이나 필요성과 관련을 갖도록 해석하는 것 일세”라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 건축에서 그가 찾던 건축의 초월적 의미를 찾은 것이다그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국제주의 양식에서 나타나는 유니버셜 스페이스라는 것이 인간의 삶의 담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자신도 슬로건처럼 외쳤던 기능주의나 건축의 공업화가 얼마나 천박한 일인지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모더니즘이 거부 했던 과거들을 통해 건축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서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현대의 재료(유리와 콘크리트)나 구법으로 재해석 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건축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서양 전통건축에서 보이는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들을 습득하여 이후 건물들에 사용하게 된다.루이스 칸은 이 여행이후 크게 두 가지의 건축설계 방법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나는 서번트 스페이스와 서브드 스페이스 이다 서번트 스페이스는 해석하면 봉사받는 공간-봉사하는 공간이라고 지칭 될 수 있다 봉사 받는 공간은 거실과 침실 전시공간과 같이 그 건축물의 주요기능이 이루어지는 공간인데 반해 봉사하는 공간은 계단실,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과 같이 보조적 기능을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의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형태를 가진다 이러한 개념은 당시 국제주의 양식의 경향인 균질적으로 확장되는 특성 없는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으로 건축 공간이란 그 곳에서 일어나는 특정행늘어서 있는 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위학 부 부지 중 하나이다.그는 먼저 연구소의 중심기능인 연구실 배치에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실은 일반적인 프로그램들과 다르게 굉장히 다양한 기계들이 필요하며 그에 따라 구조와 실에 의해 다양한 모듈들이 존재하고 있다(그림 4 리처드 연구소 평면) 그는 우선 연구실을 화가가 작업하는 아틀리에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아틀리에를 자신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연구실 또한 연구자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확실하게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연구자들 위해 적당한 스케일로 이루어진 완결된 방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따로 복도를 만들지 않고 한충에 원룸의 연구실을 설계하고 그것을 입체적으로 배치하여 독립된 연구실 동으로 정리하여 연구실의 집합을 만들었다. 이러한 평면이 가능하게 된 것은 칸이 주장하였던 서번트 스페이스와 서브드 스페이스라는 개념 때문이다이 개념을 이용하여 평면적으로 공간의 배치를 분리 함으로써 기존의 건물 계단과 화장실 엘리 베이터 등 공간을 분리하여 배치하여 유연한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이를 위해 루이스 칸은 당시 최첨단 기술로서 주목 받기 시작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에 의한 포스트텐션 공법을 사용하여 골조타워를 만들고 각 층의 슬라브를 매달았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비어있는 슬러브와 벽을 만들어 설비적인 것들을 그 안으로 넣음으로써 공간은 유연해 지며 공기의 환기와 연구실에 필요한 다양한 설비적인 것들을 해결하였다.(그림 5 구조 및 설비 모형)200m^2의 작은 연구실들은 모여서 탑을 이루어 집합주택 같은 인상을 받는다. 개별성이 분명히 존중되는 실험실은 한 채 한 채 고유의 표정을 가지며 그 집합들의 배치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소속해 있다. 라는 느낌을 들수 있도록 유도하였다.그러나 방들의 집합의 개념으로 접근한 이연구소는 실제 운영적 측면에서 다소 불편함을 주었다 연구실은 보통 몇 달 몇 년 단위로 팀으로 재구성되는 경우에는 팀의 규모에 것은 좋았지만 예산부족으로 인해 단열성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최악의 실내 환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건물에서 창을 단지 빛을 받아들이는 요소로 생각하여 빛의 양이나 눈부심을 제어하는 차양이 없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유리창의 일부에 파란 필름을 붙여 눈부심 현상을 차단하고 있다.그림 6 리차드 의학 연구동(입면)4.리처드 의학연구소의 의의리처드 연구소는 기존에 연구소에 대한 개념을 방 즉 개별적 공간들의 집합으로 풀어 새로운 종류의 연구소를 파격적으로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칸이 생각해낸 서브드 스페이스 서번트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준 건물로서 과거 서양전통 건축물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여러 가지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 공간에서는 필요한 스케일 있다. 라는 것 개념은 단순히 건축에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그 당시에 최신으로 나온 프리케스트 콘크리트을 이용하여 성공함으로서 서양 건축사에서 콘크리트라는를 재료에서 더욱 발전한 공법들의 사용을 촉진화 시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또한 칸에 건축의 본질적 측면에서 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심하게 되게는 기회였으며 건물의 다양한 문제점들은 칸이 새롭게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림 7 솔크 연구소 일몰)5.솔크 생물학 연구소캘리포니아 주 라호야에 위치한 작지만 높은 구름위에 있는 이곳은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며 멀리 크레멘토 섬의 풍경이 보이다 칸은 소아 백신의 발명자로 잘 알려진 저명한 솔크 박사로부터 의뢰 받아 연구소 설계를 시작하게 된다. 칸과 솔크는 친구이자 협력자였다 처음 솔크는 루이스 칸의 리처드 의학연구소를 방문한 후 칸에게 자신의 연구소를 의뢰했다고 한다. 솔크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정의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건물이 자신이 원하는 연구소의 연구소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었다고 한다.자신이 생각하는 연구소는 사색의 공간으로서 수도원의 중정처럼 엄숙하고 사색적인 공간이 어울에 두고 양쪽에 대칭적으로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동서축 방향으로 안쪽에서부터 차례로 연구원의 개별 연구동과 실험실이 배치되었다 또한 실험실 부분은 한 층마다 인간이 거주하는 실험실(서브드 스페이스)과 그곳을 둘러싼 개방된 발코니층, 2.7m의 층고를 가져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파이프 실험실이라고 칭해지는 배관설비용 방과 서비스 복도 층이 서로 번갈아 가며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계단실과 브릿지를 통해 실험실로 연결되는 개별 연구실 영역은 층고가 낮은 개별 설비층과 같은 레벨에 배치된다 또한 개별 연구실에 적당한 그스케일을 가지게 된다 연구실의 아래 공간들은 중정을 내려다 보면서 연구원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또한 리처드 연구동에서 하지 못했던 공동작업을 하는 실험실과 연구원들이 늘 머물려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개별 연구실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연구원의 프라이버시와 정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질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또한 실험실 중앙에 배관과 설비 부분에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 주어 실험실에 상쾌하고 통합된 공간을 만들어 평면상의 가변성을 추구하였다.그 다음은 새로운 개구부 처리이다. 그 이전까지 칸은 단순히 창이라는 것은 빛을 받기 위한 것으로 인지하여 리처드 의학연구소에서 보여지 듯이 건물의 사는 사람들의 눈부심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번 솔트 연구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개구부를 설계하였다. 바닷바람에 면해 있는 방향을 고려하여 개인 연구실에는 배의 갑판 재료를 사용하였다 또한 콘크리트 틀에 목재창을 끼워 자연환기가 가능하도록 ㄷ만들었다 콘크리트로부터 독립된 벽면에는 유리문과 목재 스크린, 목재 루버를 구성하여 연구원이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그림 10 창문 디테일 및 창의 다이어그램그리고 딱딱할 수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목재창으로 처리하여 중정에 살벌한 느낌을 주지 않고 생기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한 칸은 콘크리트가 만들어 진 과정들을 그대로 남겨 둠으로써 재료의 본질을 보여줄려고 노력하였다.그림 11 건물의 입면그 다음 중정
- 관영건축의 분석과 잠재력 - ( 덕수궁 - 정관헌 ) 덕수궁 정관헌 : 보물 제 82 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대 : 1900 년대로 추정덕수궁 - 위치 - 개요 및 시대적 배경 - 사진 덕수궁 정관헌 1. 역사적 배경 , 개요 - 위치 - 양식 - 기능 2. 배치 - 배치 3. 평면적 분석 - 평면 - 공간 4. 입 . 단면적 분석 - 입면 - 한국식으로 해석한 입면 및 부재 5. 관영건축의 재발견 및 건축적 가능성 목차덕수궁 위치 광 화 문 광 장 덕수궁 시청 경복궁 덕수궁은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61,500m*2 를 가지고 있다 현재 덕수궁의 주변에는 건축가 유걸이 최근에 지은 서울시청사와 서울시청 광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우리가 손쉽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시청 서울 시청 광장덕수궁 개요 및 시대적 배경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었다 그러나 1907 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한 뒤 이곳에 살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현재 덕수궁의 자리는 볼래 세조의 큰 아들인 도원군의 큰아들 , 즉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지왜란으로 의주로 피신했던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온 뒤 임시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쇠퇴되다가 다시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아관파천이후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며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제 124 호 지정일 : 1963 년 01 월 18 일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정동 5-1) 시대 : 조선 종류 / 분류 : 궁궐터 크기 : 면적 61,500㎡덕수궁 주요건물 및 경관 ( 석조전 ) ( 중화전 ) ( 즉조당 ) ( 함녕전 )1. 역사적 배경 , 개요 - 개요 및 시대적 배경 1900 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 건축물이다 . 궁 내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 정면 7 칸 측면 5 칸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 정면과 좌 · 우측 발코니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벽면이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는 등 화려하고 이색적인 모습이다 . 다양한 건축재를 사용하여 지은 건축물로 서양풍의 건축 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모습이다 . 한때 태조 · 고종 · 순종의 영정과 어진을 모시기도 한 곳이다 . ' 정관헌 ' 이란 솔밭과 어우러진 함녕전 ( 咸寧殿 ) 등의 고 건축물을 고요하게 ( 靜 ) 내다보는 ( 觀 ) 곳이라는 뜻이다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5-1 번지에 있다 . 기능 : 덕수궁 휴게공간 양식 : 로마네스크 덕수궁 정관헌2. 배치 배치 및 위치 정관헌 정관헌은 덕수궁 안에 존재하며 현재 함념전과 덕흥전의 뒤인 덕수궁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지형의 레벨을 이용하여 경사지 제일 위쪽에 위치함으로서 한국의 계단식 정원인 화계와 함께 어울려 화려한 외관과 함께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덕수궁 정관헌 기능의 변화 1900 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 건축물이다 심지어 마지막 조선왕조의 사적인 일들을 행해지는 건물로써 소정이 순종과 더불어 커피나 차를 마시는 등 휴식을 취했다 그래서 현재에도 그러한 생활들을 증명해줄 수 있는 악기라든지 탁자들을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덕수궁 속의 중화전이나 함녕전등에 비해 궁궐 속에서 위계가 낮은 궁궐로서 덜 중요하게 여겨지며 근대에 와서는 덕수궁의 다른 중요한 전각들에 대한 주변 건물로서 여겨져서 차를 마시는 휴식처로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근래에 와서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현재에는 넓은 유연한 공간을 이용하여 ‘ 명사와 대화를 ’ 같은 문화적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활용되고 있다평면 정관헌은 정면 7 칸 측면 5 칸의 직사각형의 평면 구성을 가지며 전면의 큰 중앙홀과 4 개의 부속실을 가지고 있다 . 배면을 제외한 삼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 삼면을 툇간이 에워싸고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건물의 규모는 단층 건물로 되어 있고 , 지하층을 가지고 있다 (1 층 평면도 ) 중앙홀과 배면 쪽의 4 개의 부속실들과는 각기 벽을 두어 나누어 구획하였으며 , 진입 및 동선 처리 역시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였다 . 중앙홀의 진입은 정면과 좌 . 우측면에 각가 1 개씩의 계단을 두어 진입 할 수 있다 3. 평면적 분석덕수궁 정관헌 평면 (1 층 평면도 ) ( 중앙홀 ) 중앙홀은 정관헌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면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3.6m 의 층고를 가지고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둥 ( 내진주 ) 로 둘러 쌓여 있다 또한 그때 당시에 서양의 기술이 들어오면서 천장에는 등이 달려있다 ( 부속실 ) 4 개로 이루어진 부속실은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그러나 아마 중앙홀의 다양한 이벤트를 서포트 해주기 위한 창고나 여러 기능을 담당했을거로 예상된다입면 정관헌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건축 양식들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절충주의 양식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개 보수를 통하여 그때 당시의 디자인 요소들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단순히 치장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으로 해석되어 부재들이 혼합되어 절충주의 속에 한국적인 미가 느껴진다 4. 입 . 단면적 분석덕수궁 정관헌 한국식으로 해석된 서양의 부재 - 기둥 ( 안에 기둥 )- 전형적인 서양의 로마네스크식 기둥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안에 공간은 천장과 함께 굉장히 심플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 - 뒷면의 모습 - 뒷면의 경우 전형적인 서양의 조적조의 입면을 가지며 창 또한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며 앞면과 상당히 상반된 느낌이 들었다덕수궁 정관헌 한국식으로 해석된 서양의 부재 - 난관 - 외부기둥 모습은 서양의 콤포지트 양식의 주두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여러 꽃들이 주두 부분에 조각되어 있다 이 꽃은 대한제국의 국화인 이화 문양으로 왕실을 상징하며 서양식 기둥에 한국적 재해석이 눈에 띄였다 난관은 정면과 측면에 감싸고 있는데 각각의 난관들은 박쥐나 사슴이 뛰어 노는 모습과 같이 한국적인 문양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을 통해 주번의 청동의 요소들과 더불어 한국에 색인 단청의 느낌이 느껴진다 - 외부 기둥 - - 낙양 - 낙양은 기둥의 위쪽 특면과 상인방 , 창방 따위의 밑에 돌려 붙은 장식을 뜻 한다 정관헌의 낙양은 상당히 유명한다 각 낙양들은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나 박쥐와 같이 여러가지 전통문양들이 되어있어 정관헌의 한국적 미를 더욱 가미시켜준다 서양의 각 부재의 한국적 해석들이 하나의 서양식 건물에 한국적인 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5. 관영건축의 재발견 및 건축적 가능성 최초에 서양식으로 지어진 관영 건축 그러나 이러한 모습 속에 서양적인 무조건 적으로 좋다고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식으로 해석함 서양식 건물 속에서 우리나라의 한국적 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재 지어지는 관공서들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는가 모더니즘 ? 한국적 건축 ? 어떠한 분류에서 들어 가지 못하는 이상한 건축물로 지어진다 만약 각 지역에 있는 시청이 한국적인 입면과 한국적인 요소로 해석된 것으로 이루어 진다면 도시의 새로운 경관을 보여주지 않을까 ?잘못된 관공서 건물의 대표적인 예 – 전주 시청 - 한국 청자의 곡선적인 미를 살리고 한옥의 아름다움을 표시 살릴려고 하였다 - ( 전주시청 건축컨셉 ) 과연 이것은 어떠한 양식의 건축물인가 ? 단순히 한옥을 나타내기 위하여 한옥의 일부분인 지붕부분을 가져다가 넣고 성문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그 뒤에 기능을 위하여 지어진 건물 단순히 형태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를 재해석하여 그것을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한국적 미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앞으로의 관영 즉 관공서들이 나아가는 방향 - 가온재 가온재는 개인 주택으로서 이로재에서 설계하였다 그러나 가온재의 특징은 한국적인 요소들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관영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 지붕의 처마선 곡선을 이용한 한국적인 미학 한국적으로 해석한 마루와 안마당 주택의 기능적인 편리성을 가지고 가면서 한국적인 요소들을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한국적인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관공서에 이용함으로써 도시의 경관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참고문헌 -http://blog.naver.com/tiumgreen?Redirect=Log logNo=130186927017 -http://cafe.naver.com/iamgenius/550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63669 cid=40942 categoryId=33691 - 덕수궁 정관헌 기록화 조사 보고서 ( 논문 ) -http://www.deoksugung.go.kr/data/opi/ 덕수궁 _ 한국어 -2.jpg{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