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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혁명의 전개과정과 역사적의의
    4.19혁명과 민주 민족운동- 4.19혁명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Ⅰ. 서론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한국에 뿌리 내린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는 어느덧 정부수립을 한지 60년이 지났다. 4.19혁명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심어준 민주주의의 씨앗이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독재 정치에 최초로 항거한 혁명이다. 요즘의 학생들은 학생운동에 대해 소극적 자세와 관망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4.19혁명의 학생운동이 없었다면 이 땅의 민주화는 이루어 질수 있었을까? 사회문제로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요즘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힘을 냈던 4.19혁명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한다. 과연 내가 4월의 혁명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Ⅱ. 본론1. 4.19 혁명은 무엇인가?간단히 적어보자면 4.19혁명은 1960년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으로 4월 혁명 또는 4.19의거라고도 한다. 이승만 정권은 오랫동안 독재와 독점자본가 위주로 경제정책을 펼쳐 민중의 불만 또한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고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4.19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해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 선거였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이었다.2. 4.19 혁명의 원인(1) 정치파동(1952년 5월 26일)4.19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정치파동은 당시 대통령 선거가 국회에서 선거하는 간접선거 제도로 헌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대국회의 세력분포형편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피선될 가망이 전혀 없었다. 공산당과 결탁하여 정부 전복을 음모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잡아 가두는 것도 모자라 계엄령을 선포하고 관제민의를 조작하여 선거구민으로 하여금 반대하는 의원 소환 시위운동을 일으켰다 이 때 벌써 민선은 관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2) 한글파동(1952년 4월 27일~1955년 9월 19일)한글파동은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외국에서 오래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국내외 국어학이 장족의 진보를 이룸을 모르고 자기가 국내에 있을 때 쓰던 70년 전의 맞춤법으로 되돌아가게 현행 맞춤법을 뜯어 고치라고 백두진 국무총리 훈령 제8호(1953년 4월 27일)를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는 학술의 자유를 권력으로 침해하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지 통치를 받을 때 우리말과 글을 박멸하려는 악정 밑에서 생명과 재산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이를 지키고, 체계를 세운 우리말의 맞춤법을 무법으로 만들려는 무리한 일이었고, 또 일반국민은 20년 동안 써온 상식화 된 일이므로 각계각층의 비난은 파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학술계의 반대가 물 끓는 듯했던 것이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세를 살피다가 한글 문제는 다시 간섭하지 않고 자유에 맡기겠다(1959년 9월 19일)고 하여 이 파동은 중지되었다. 하지만 이 파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두 번째로 신망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3) 개헌파동(1954년 11월 27일)사사오입 개헌파동은 초대 대통령만을 종신제로 하자고 헌법을 고치자는 문제에서 발생하였다. 헌법의 개정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가표를 얻어야 개정되는 규정인데 3분의 2에 달하려면 136명의 표를 얻어야 통과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득표 결과는 135.33……표였고 이는 3분의 2가 못되는 것이므로 당시 사회하던 최순주 부의장이 부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이 결과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으로 통과될 수 있다고 무리하게 주장했다. 결국 최순주 부의장은 국회에서 와서 전의 부결 선언을 취소하고 가결선언을 하였다. 사사오입의 수학 상의 뜻은 나누기의 답이 소수점 이하 0.4 이하이면 버리고 0.5 이상이면 이를 정수 하나로 계산하여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35.3은 사사가 되어 135가 되는 것이요, 오입으로니 지방자치법 개정이니 기타 여러 법안을 여당끼리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는데 이 보안법은 언론의 자유를 막아 부정선거의 여론을 누르기로 한 내정이었다. 첫 번째로 희생된 것이 경향신문으로 곧 폐간(1959년 4월 30일) 되었고, 지방자치법은 그 지방 백성의 투표로 뽑는 시장, 면장, 동장들을 임명제로 고친 것이니 민주주의 역행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각 지방기관장이 만일 반대당에서 뽑힌다면 공무원에게 금지되어 되있는 정당관계의 일, 더욱이 불법한 일을 지시할 때에 잘 복종하지 않겠으므로 신임할만한 여당 인물을 임명하여 마음대로 협잡선거를 하려는 준비 공작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찰, 공무원, 군인은 다 자유당의 기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불순한 의도 또한 나쁘지만 야당을 마구 때리고 끌고 하여 십 수 명이 중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동정하고 위문하는 이까지 압력을 가하였다. 그때의 예로 어느 학교의 교장은 이 부상자들에게 사과 한 상자를 사가지고 가서 위로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하기도 하였다.(5) 특권층 및 여당본위 차별정치행정부나 군부의 특권계급은 엽관이나 이권운동을 위하여 그 권력에 아부하는 이들이 가져다 바치는 금품이 물밀듯했다. 또한 권력으로 잡은 이권으로 기업체를 가지게 되고 화려하고 광대한 저택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볼 때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는데 비영리 기관인 문교재단은 우선적으로 적산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계통인 어느 개인에게 수의 계약으로 빼앗겼고, 한글학회도 6.25사변으로 회관이 소실되어 적산 건물을 하나하나 맡으려고 후보건물을 택해 교섭했지만 번번이 거절되고 말았다. 또한 공무원의 부패로 경찰관이나 세리는 청원사건이나 인정과세 이외에도 뇌물이 없는 허가를 못 얻거나 과중한 세금을 물게 되었다.(6) 3.15 부정선거위의 원인들로 인해 쌓이고 쌓여 마치 겉으론 멀쩡하지만 곧 폭발하려는 화산과도 같았다.이때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자유당 정권은 196 미리 넣도록 할 것.2) 3일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에서 5인으로 팀을 짠 뒤 투표하고 조장에게 투표용지를 확인 후 자유당 선거위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3) 완장 부대 활용 : 자유당 측 유권자에게 ‘자유당’ 이라는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장 일대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하도록 할 것.4)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투표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땐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민주당에서 조병옥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장면 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나왔지만 갑작스러운 조병옥 의원의 급서로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에서 부전승으로 확정 되었지만,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해 준비한 부정선거를 실시하였다. 투표 결과 유권자 11,196,490명 가운데 투표율은 97%로서, 대통령 후보 이승만 9,633,376표(85%), 부통령 후보 이기붕 8,337,059(73%)를 각각 득표한 것으로 최종 집계 되었다. 투표도 마음대로, 개표도 마음대로, 이렇게 해서 영구집권의 기도가 완전 성공 했다고 자유당 정권이 기뻐하고 있을 때, 국민들의 분노는 크게 달해 있었다.3. 4.19 혁명의 전개과정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의 궐기에서 운동은 시작되었다. 이날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각 공립 고등학교 교장들은 일제히 학생들에게 등교를 명하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하나는 교육 공무원으로서 어느 정당에 가담하여 정치운동을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생을 속여서 등교하라는 것이었다. “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으면서 거리로 뛰어나가 시위운동을 한 것이다. 일파, 만파로 이는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3월 5일에는 서울과 대구에서, 3월 8일과 10일에는 수원에서, 3월 12일에는 부산과 청주에서, 3월 13일에는 서울과 오산에서, 3월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군이 시체로 해변에 발견되면서 또 다시 마산에서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 시위로 또 두 명이 경찰에게 총살당하게 되었다.4월 18일 서울에서 대학생으로서 처음으로 고려 대학생 3천명이 학교에서부터 국회의사당 앞까지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고 외치면서 시위하게 되었다. 이때 경찰관들의 제지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 깡패 60명가량이 벽돌과 갈고리, 돌멩이를 가지고 고려 대학생들을 습격하여 많은 부상자를 냈다. 일반민중은 이것을 경찰관의 계획적 만행이라고 분격하게 되었다. 이는 나중에 깡패대장 임화수와 유지광의 자백으로 드러났는데 경찰이 돈을 주고 깡패를 움직이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각 대학, 대학교의 학생들을 격분하게 했다. 4월 19일 이날은 서울, 연세, 동국, 성균, 중앙, 홍익 기타 각 대학생들 수만 명이 사방에서 조수같이 밀리어 들게 되었다. “이승만 정부 물러가라”, “3.15 선거는 불법이다”, “검거된 학생을 석방하라” 같은 구호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평화적 시위는 언론자유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이고, 또 요구가 빼앗긴 자유와 권리를 되돌리라는 정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무자비한 사격을 감행하여 백 수십 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4.19일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충격을 받고 질서를 회복한 뒤에 불평을 모조리 풀어주겠다고 발표하게 되었다(4월 21일). 이때부터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각 대학 교수들 258명의 시위로 시작된 시위의 새로운 물결, 미국으로부터의 압력, 경찰력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군으로부터의 지지결여 등에 직면하여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은 사임하고, 3.15선거는 많은 부정이 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하겠다. 또한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를 개헌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수십만 군중은 민주주의 만세를 부르며 울부짖었다.4. 4.19혁명의 역사적의의4 ·19혁명은 처음부터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한 투쟁이나, 어떤 정치이념을 구현하기 위다.
    인문/어학| 2013.11.25| 4페이지| 1,000원| 조회(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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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과 우리나라의 장례문화 비교
    세계문화의 이해 과제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인 나는 매번 수강신청 때 마다 수학,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많은 과목들 때문에 적잖게 당황했었다. 그러다가 눈에 반짝하고 들어 온 과목이 바로 세계문화의 이해이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국사나, 세계사에 대해서 배울 때만큼은 정말 어느 과목보다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배웠고 공부했기 때문에 꽤나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공대에서의 이 수업은 이해하고 계산하고 외운다고 지쳐 고단해하는 나의 머리를 잠시나마 생각하며 쉴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Ⅰ. 서론이번 세계문화의 이해 강의를 들으면서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설명하다보면 중국과의 관계 또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중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번 과제를 통해 중국 장례문화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조사해보고 궁금증을 풀어보려 한다.Ⅱ. 본론1. 우리나라 장례문화우리나라의 죽음에 대한 의미는 전통적인 무속 신앙에서는 사람의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단지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유체이탈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죽은 자의 영혼을 안식처로 잘 모시면 자손이 복을 받고, 죽은 사람의 시신 매장과 장례 절차를 잘 행하면, 조상의 영혼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다.이러한 죽음의 의미에 맞춰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죽음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고 특히 죽은 자의 마지막 떠나는 과정인 장례의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좋은 자리에 매장하여 후손 대대로 묘지를 관리하는 관습이 있다.장례의례는 오랜 조상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선사시대의 분묘 속에 고인들의 생활 도구를 함께 부장하는 것은 사후의 생활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었다.삼국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후장이 강조되고 꽃을 뿌리고 노래와 춤이 사용되었으며, 신라시대에는 순장의 풍속과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해서 꽃과 함께 뿌렸다.고려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장례식의 법제화가 이루어졌고, 왕족이나 상류층에서는 화장이 시행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순장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고인에 대한 예의가 중요시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유교의 통치 이념 하에 국가적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주자가례를 기본으로 하여 상례가 실행되었다.조선시대의 예서에 나타난 전통장례 의례 절차는 운명한 직후에 시작되는 초종에서부터 습, 소렴, 대렴, 성복, 조상, 문상, 치장, 천구, 발인, 하관, 반곡, 우제, 졸곡, 부제, 소상, 대상, 담제, 길제 등 19단계로 구성되어 있다.이 과정에서 염습은 특히 고인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시신의 마지막 모습을 단장시키는 의미로서, 원만한 장례가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련의 순차적인 과정이다.우리나라의 이러한 전통 장례문화는 고령사회화와 같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편의성과 경제성이 합쳐져 기존의 후손에게 부양을 떠맡기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개인적인 죽음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장례 절차나 행위에 있어서도 평소 겪지 못하는 장례에 있어서 예절에서부터 정보의 부재로 능동적이고 적극적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대행을 시키는 위탁 형태인 수동적 태도로 행위 주체가 객체로서 역할을 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양상에 의해 장례식장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장례식장이란 고객이 필요한 유형적인 시설과 무형적인 서비스를 혼합하여 서비스라는 독특한 상품을 창출해 내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현대적인 서비스가 편리의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행하는 서비스는 장례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장례서비스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사전 장례준비를 지원하는 활동인 사전 서비스와 사망 관련 행정 처리와 장묘 시설사용 허가, 매장 신고 및 화장신고, 운구, 안치, 빈소 차림, 입관(염습포함), 발인 등을 행하는 현장 서비스 그리고 장례 후 행정처리, 심리 상담 등을 포함하는 사후 관리 서비스가 있다. 이 중 염습을 포함하는 입관 과정에 속하는 현장 서비스인 장례 메이크업의 중요성이 최근 장례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직업과 용어로 파생되어 나타나고 있다.2. 중국의 장례문화중국 역사상 장례 의식은 화장, 매장, 수장, 천장, 수장, 탑장, 암장 등 다양한 형태들이 있었다. 한족은 매장을 가장 선호한다. ‘흙에 묻혀 안식한다’는 뜻에 따른 것이다. 매장은 절차가 복잡하여 부고(친지들에게 장례 일정을 알리는 것), 봉관(시신을 관에 넣고 봉하기), 경야(자녀들이 관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키는 것), 제사(친지들이 빈소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리는 의식), 희곡 부르기(극단을 초청하여 2~5일간 중국 희곡을 부름), 발인(관을 묘지에 모시기), 안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농촌에서는 지금도 대부분 매장을 고수한다. 시신을 7일간 집에 안치하며, 금은 장신구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품을 순장품으로 함께 묻기도 한다. 장례 이후에는 매년 제사를 지내고 종이로 만든 금은보화, 큰 수탉, 돈 등을 태우며 고인의 넋을 기린다.화장은 전통적으로 널리 행해지지는 않으나, 중국 정부가 농지를 보호하고 장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장려하면서 보편화되었다. 1997년 중국 정부는 을 제정하여 인구 밀도가 높고 농경지가 적으며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서는 화장 장식 이용을 명문화하고, 정부 관료들이 이를 위반하면 처분하기도 하였다.정부의 이런 노력 덕분에 2006년 기준으로 화장 방식의 비중이 53%를 넘어 섰고, 현재에는 6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이외에 티베트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선호하는 장례형태인 천장으로 시신을 하늘의 독수리나 까마귀 등의 조류에게 주는 장례 형식이고, 시신을 절벽이나 동굴 암반에 안치하는 암장이 있다. 암장은 이족과 장족의 장례 풍습이다. 지금은 암장 방식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며, 쓰촨성 무이산 현관, 산시성 석문현관 등은 모두 역사 유물로 분류되어 보호받고 있다.
    인문/어학| 2013.11.25| 3페이지| 1,000원| 조회(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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