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의 정의와 그것의 개괄적 사례분식회계의 분식이란 실제보다 (기업의) 현황을 좋게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꾸미는 것을 의미하는데, 분식결산이라고도 한다. 특히 불황기에 회사의 대외 신용도 확보와 기업의 투자자금을 용이하게 조달받기 위해 형성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회사 내 재무상태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투자자나 채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어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분식결산은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계상(계산하여 올림)함으로써 재무상태나 경영성과, 그리고 재무상태의 변동을 고의로 조작하여 기업을 실과 다르게 건전하고 튼실한 기업으로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일부는 분식을 오류와 부정으로 나누어 정의 내리기도 하는데, 오류란 고의성이 개입되지 않은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계자료의 계산착오 및 사무적인 실수, 사실의 간과나 부주의 등으로 인한 기업회계작성의 오류에 해당된다. 이와 다르게 부정은 고의가 개입된 것으로 회계 관계자 및 경영자, 일부 제3자에 의한 재무제표에 사실과 다르게 표시, 기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에 관한 담론 기억이란 경우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기억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비단 그 기억을 재생해내는 주체가 ‘누구’임이 아닌, 환경과 상황에 따라 특정 기억이 거론되기도 하며, 왜 그들이 거론하였는지에 따라서도 그러하다. 여기서, 과거 병자호란을 기억하는 주체와 또 그것을 제언하는 과정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역사가 사뭇 새로운 관점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가령 호란의 발발 원인을 비롯하여 전란 초기의 미흡한 대응과 강화도의 함락, 그리고 마침내 굴욕적인 항복으로 끝난, 병자호란의 모든 책임이 척화신들에게 있다고 믿고 있는 인조의 기억은,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그가 기억하고 싶은 기억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강도몽유록>에서는 호란 당시 강도에서 순절한 여인들의 입을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가 하면, 호란 이후 문명의 대제국으로서 알고 싶은 대상이 된 청의 수도 연경을 가면서 지은 연행록 속에서는 ‘병자호란’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 지도 새롭게 보여진다. 병자호란이 있은 지 수세기에 걸쳐서도 여전히 기억되고 거론되는 그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남한산성, 분단의 표식 인조14년 (1636년) 12월에 청군에 의해 일어난 병자호란은 그 다음해인 1637년 1월 30일에 끝났다. 난리가 나자 피신할 곳을 찾던 인조는 강화도를 선택했으나 이미 청군에 의해 들어가는 길이 막히자 할 수 없이 찾은 곳이 남한산성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40여일 항전을 하다가 추운 날씨와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병사가 늘어나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된 임금은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나와 40여리 쯤 될 삼전도까지 걸어가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리면서 항복을 했다고 한다. 이 역사의 기점인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의 이면(裏面)을 드러다 보자. 남한산성의 지명에서는 치욕의 역사에 대한 비애와 동시에 이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던 조상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산성 로타리로부터 조금만 올라가면 문이 하나 보이니, 북문인 ‘全勝門’이 버티어 서 있다. 전승문은 병자호란 당시 이 문에서 나와 청군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