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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과 이덕형의 외교활동으로 살펴 본 당시 국제관계의 흐름
    임진왜란의 전개와이덕형의 외교활동이덕형이라는 인물의 대외 활동을 통하여 살펴 본 전쟁과 국제관계 전반의 흐름제출일2012. 11. 07전공문헌정보학과과목인물로 본 역사학번201211284담당교수이승민 교수님이름이재은목 차1. 서론1.1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 ――――――――――――――― 32. 본론2.1 당시 한·중·일의 관계도 ―――――――――――――――― 32.2 전쟁의 전개와 이덕형의 외교 활동 ――――――――――- 43. 결론3.1 이덕형이라는 인물의 의의 ――――――――――――――- 73.2 맺음말 ―――――――――――――――――――――――- 74. 참고문헌 ―――――――――――――――――――― 81. 서론1.1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덕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한음'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문학에 통달하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 20세 때인 1580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선조 15년(1582년, 22세) 제술사의 신분으로 명나라 칙행 일행을 수행하였다. 이 때 왕경민은 '이덕형의 풍모와 기상이 여러 사람 가운데 빼어나고 도량과 재능이 온화하고 아름다워, 모름지기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글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덕형은 과거 급제 후 바로 외교적인 실무를 맡음으로써 외교적인 소임을 담당할 수 있는 자질의 초안을 이미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이후 그는 승진을 하여 성균관 직강에 임명되었으나 학문에 정진하고자 함을 이유로 들어 거절하고, 그 뒤로 7~8년을 학문 수양과 자기계발에 사용하였다. 이 시간은 이덕형이 실력 있는 외교관으로서 역사에 남은 것과는 별개로, 그를 뛰어난 문신·학자로도 역사에 남을 수 있게끔 해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선조 21년, 이덕형은 일본에서 사신들이 도착하자 이를 맞이할 문재로 발탁됨으로써 또 한 번 외교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 공로로 그는 홍문관 직제학에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승정원, 사간원, 성균관을 거쳐 이조참판 겸 대제학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인 선 임진왜란 당시의 외교 활동과, 그로 인해 일궈 낼 수 있었던 공적을 중심으로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 지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당시 한·중·일의 관계도임진왜란은 1592년~1598년 동안 총 2차에 걸쳐 일어난 일본의 조선 침략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단순한 침략 전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설로는 단순한 영토 확장 전쟁이라는 일차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한·중·일 사이의 보이지 않는 외교 전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당시 조선을 교두보로 삼아 명을 정복하고, 인도를 거쳐 마침내는 동아시아 제국을 세우겠다는 야욕을 이미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전쟁에 무방비했던 조선과 달리 전쟁에 대한 준비도 상당 부분 끝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일본이 강력히 내세운 주장은 할지론割地論이었다. 할지론은 한강 이남은 일본이, 이북은 명이 가져 조선을 나누어 갖자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 주장은 물론 조선의 입장을 배제한 주장이었음에도, 전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당시의 조선 내 상황과 명의 속국이라는 대외적 상황 탓에 회담의 주요한 의제가 되었다. 따라서 일본-명 사이에 있었던 강화회담을 통한 분할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또한 조선·일본·명 삼국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어 갔느냐에 따라 전쟁의 양상 또한 부분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당시 명은 자국이 조선의 종주국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일본의 회담 제안도 거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593년 5~6월 사이에 이루어진 명·일 강화교섭 같은 사례만 보아도 조선에 대한 명의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명은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했고, 조선이라는 국가의 운명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명확했다. 조선은 동아시아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일본이 명에 할지론을 제시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이루어졌다. 1592년(선조 25년) 6월 9일, 일본의 야나가와 시게노부·겐소는 대동강에서 이덕형에게 회담을 요구했다. 일본 측이 제시한 회담의 주요 논지는 ‘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선조는 일본과의 강화에 무척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이덕형 역시 “만약 중국만을 침범하려고 하였다면 어찌 절강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왔습니까. 이것은 실로 우리나라를 멸망시키려는 계책입니다. 명조는 바로 우리나라에 있어서 부모와 같은 나라이니, 죽어도 요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회담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미 일본은 조선의 이런 반응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과의 접촉시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뒤로는 명과 계속 접촉하여 강화 회담의 커다란 그림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려 가져가려 한 점이 사료 곳곳에서 확인된다.그러나 이덕형 역시 이 점을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나가와 시게노부, 겐소와의 회담이후 이덕형이 청원사로 파견되어 명으로 떠난 것은 6월 17일이었다. 회담이 있었던 날짜와 비교했을 때, 당시 연락이 오가던 속도를 생각하면 파격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는 회담의 내역을 조정에 보고하는 한편 선조를 정주까지 모시며 이항복과 함께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는 일본의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는 속셈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당시 정세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항복과 이덕형의 의견은 받아들여져 이덕형은 청원사의 자격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1592년 9월 명과 일본의 강화 회담은 상황을 더욱 급박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 침략의 이유를 “일본이 조선의 길을 빌려 봉공을 구하려 하는데 조선이 이를 가로막고 도리어 병사로서 항거하므로 이렇게 전쟁이 난 것이므로 이것은 왜의 죄가 아니라” 변명하였다. 또한 평양을 기준으로 하여 북은 명조가, 남은 일본이 갖는 본격적인 할지론을 제안하였는데, 명은 이런 봉공요구와 할지론을 조정에 알리는 데는 시일이 걸조공국인 조선의 할지를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명나라 총대장 이여송의 부대가 도착했을 때 그는 명 장수들의 접반사(접반관)이 되어 접대를 맡았다. 타국의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 익숙하고, 외교적 사교에 익숙해진 이덕형이었기에 맡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덕형은 제독 이여송의 접반사로 그와 함께 동행했으며, 따라서 이덕형은 임진왜란의 전반에 대한 최신 정보와 기밀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곧 그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덕형은 다른 대신들과 함께 명군이 전투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이여송의 전투 승패에 대한 정황, 병기 및 전술, 남군과 북군 병사의 불평불만, 군량 조달 상황 등을 수시로 조선 정부에 보고했다. 선조도 명군의 사정에 대해 알고자 할 경우에는 이덕형과 직접 문답하였다고 한다.이처럼 이덕형은 왜군과의 화의 교섭 대부분을 직접 맡아서 수행하였으며, 선조가 평양을 포기하고 피난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명나라의 원병 파병을 촉구하기 위해 청원사로 요동으로 들어가 명군의 파병을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여송의 접반사로 평양성 전투와 벽제관 전투를 목격하면서, 명군의 직접적인 진격을 촉구하고 전투 상황과 명군 및 왜군의 정황을 조선 정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덕형이 조선 파병에 성공한 구원병들은 평양 탈환 전투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벽제에서 패배함으로써 강화회담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나 할지론이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지는 분위기 자체를 근절시키지는 못하였다.1593년 5월에 이루어진 강화교섭은 아예 조선을 배제하고 이루어진 명과 왜 사이의 회담이었다. 강화회담에 있어 조선이 처음부터 배제된 것은 아니었으나, 강화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데다 처음부터 조선의 조정에서는 할지안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배제당했다고 조선의 조정에서 할지안에 대해 몰랐다고 보기는 힘이 드나, 실질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명-일 회담의 방결렬되었다. 이로 인해 일시적인 소강상태로 있던 전쟁이 다시 발발하였고, 이를 정유재란이라 부른다.이덕형은 재침을 예상하고 정유재란 발발 전 4년을 다음 전쟁을 위해 사용하였다. 훈련도감을 통한 군사훈련과 신병법의 적용, 대여진 정책이 그것이다. 훈련도감은 설치 초기와는 달리 1594년(선조 27년) 삼수병제의 편제로 개편되었다. 수도 방어의 핵심 군영 역할을 위해서였는데, 이 일은 유성룡과 이덕형이 담당하였다. 특히 이덕형은 명군과 함께 전장을 다니면서 명의 전법이나 신무기의 중요성에 대해 통감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덕형은 명군 중 신무기에 능한 가대재라는 장수를 조선에 남겨둘 것을 건의하면서, 훈련도감의 시설과 편제를 정비하고, 도성의 자체 방어 시설을 마련하는 방어책을 수립하는 등 다시 발발할 전쟁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명과 조선이 일본 견제에 신경을 쓰는 동안 세력을 키운 여진에 대해 전쟁터를 오가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북방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성과는 외교·군사적 차원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훈련도감의 상설 군영화나, 여진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의 자료는 조선 후기의 외교적, 군사적 국가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그러나 명이 지속적으로 일본과의 강화회담을 추진하려하자 조선에서는 강력한 반발이 일어났다. 유성룡과 김명원을 주축으로 한 조선군이 독자적으로 왜군과 교전하고자 했으나 명군은 회담을 위해 조선의 작전권과 외교권을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이덕형은 줄곧 명 조정에 조선의 입장은 주전론임을 피력하며 명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였다. 또한 이덕형은 선조와의 대담에서 수군이 상책이고 그 다음이 산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한 마디로 명과의 협력을 통한 수군 전투를 중점으로 둘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 명나라의 파병에 감사하는 표문을 쓴 것도 이덕형이었다.1597년(선조 30년) 이덕형은 명나라 장수인 경리 양호의 접반사가 되어 다시 전장으로 나가게 된다. 접반사는의의
    인문/어학| 2014.06.20| 8페이지| 2,000원| 조회(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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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의 역사> 독후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분류의 역사」감상문분류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오래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분류가 인류의 지적인 발달과 그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책은 그 증명을 위해 주니 족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고 있다. 주니 족은 동물, 자연요소, 초자연적인 힘, 사회적 책임감, 가족, 종족의 구성원 등 모든 것들을 방향에 따라 배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주니 족이 보여준 이런 초기 분류 방식은 집단 지성이라는 자산을 관리하는 방법의 한 해결책을 보여준다. 이런 분류방식은 현재에 들어서는 더욱 그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는데, 디지털 미디어가 급증하고 데이터가 폭주하면서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분류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존의 계층 구조와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공존하게 되면서, 정보를 분류하고 웹을 이해하는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인간에게만 굳이 한정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동물, 식물, 심지어는 아주 작은 세포들마저도 집단을 이루어 정보를 공유한다는 주장과 사례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생물학적인 초유기체는 네트워크이면서 계층 구조이다. 그리고 이런 초유기체들이 형태가 없는, 고차원적인 ‘정보’를 만들어 그것을 보존·계승·공유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점에서 이들과 구분되는가? 책은 그것이 “감정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영장류의 감정표현이 상징적 표현능력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증명된 최근 연구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이는 집단에 대해 어떤 심리적인 틀을 제공하고, 동시에 초기 분류시스템의 내재적인 구조를 제공한다. 또한 그런 상징적·감정적인 전달로 생겨난 특정한 집단적 경향을 “후성적 규칙”이라 한다.우리는 수만 년 동안 지리적으로 떨어져 발전한 문화들 사이에서 유사한 분류법이나 유사한 문화가 발달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을 지역적 차이에 따른 진화론적인 특징으로만 보기에 전 지구에서 나타나는 이 사례들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유사하다. 그러므로 분류는 적자생존의 법칙에인간의 경향이 좀 더 큰 주제에 대해 고찰할 때 분류의 구조 역시 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원형’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일컫는 말로 ‘유개념’, ‘실제 명칭’등의 다른 이름들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원형이론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지향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무의식적으로 행해 왔다. 로쉬의 연구는 이런 원형 이론에 의하여 우리가 카테고리를 만드는 성향과, 그 카테고리 내의 단계적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지·분류에 대한 경향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우리의 선천적 경향이 문화적인 발달과 만나 인간의 사회생활의 바탕을 형성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분류법과 인간 사회 구조는 연계해서 진화해왔다.이후 상징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등장했다. 상징은 다른 구조보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는데,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복잡화를 위한 조정 방법으로 나타났다. 상징이란 특정 상징물의 의미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기반을 둔 초보적인 사회적 계약을 형성하기 시작한 매개이다. 서로 동의하는 상징물들이 정착하면서 신뢰 네트워크가 확장되었고, 이로 인해 새로운 계층 구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사회조직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를 몰고 왔으며, 복잡화된 사회, 정치적인 계층구조를 형성했다. 또한 상징이 다른 도구와 차별화 되는 점은 그것이 정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감정 교환은 교류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모티콘, 아이콘 등의 상징을 통한 교류가 여전히 이루어지는 점을 미루어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상징은 단순한 의미의 표상 그 이상이며, 사회관계 결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생존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상징물은 인간 사회조직의 형태를 바꿔 놓았고, 이후 등장할 정보 전달 형식인 글쓰기에 서로 남기는 게 주 내용이었고, 이는 경제의 활성화에 비중 있는 요소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사회적인 유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탄생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계층 구조 역시 함께 등장했다. 결국은 더 큰 사회적 유기체가 만들어졌고 글쓰기의 기능은 상업뿐만 아니라 종교나 통치에까지 사용되기 이르렀다. 거기서 ‘목록’이 탄생했다. 목록의 탄생에서 이어진 다양한 텍스트는 현재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 텍스트들을 모아놓았던 것이 과거의(그리고 현재의) 도서관이다. 최초의 도서관이었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아시리아 제국 확장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것과, 중국의 진시황이 분서갱유 이후 도서관을 세웠던 것, 그리고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발견했던 아즈텍 문명,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같은 경우들로 미루어 볼 때, 예전부터 도서관은 단순한 텍스트의 총합물이 아니라 당시 필요했던 모든 실용적인 문화나 문명의 총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글쓰기는 당시 이런 텍스트들을 생산해내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또한 텍스트 생산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마저 신화적 사고에서 이론적 사고로 도약시키게 하는 역할을 했다. 고대 그리스에 도입되었던 알파벳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그리스는 글쓰기보다는 구술 전통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는데, 알파벳이 유입되면서 글쓰기의 대중화가 폭넓게 이루어졌다. 문맹률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며 사람들의 사고 역시 방향이 달라졌다. 신화적 사고에서는 볼 수 없던, 분석적으로 새로운 의미의 층위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객관성과 논리가 대두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새로운 분류법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가장 높은 신부터 가장 낮은 무기물까지 분류함으로써 “세계는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관점을 폈다. 이는 분류, 서지목록의 초기적 형태로서 후대의 도서관·학문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암흑기가 찾아온 이후 글쓰기는 잠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코덱스라는 새로운 매체 재료가 등장하면서 역설적으로 수도원 도필사본의 형식은 글과 이미지가 결합된 하이퍼텍스트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는 통일된 분류 틀을 제공하며 일관성과 정확성을 중시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카시오도루스이다. 그 결과로, 수도원은 과거의 봉건 체제로 회귀한 밖과 달리 퀄리티 높은 장서, 즉 고전 텍스트를 훌륭하게 보존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또한 이와 별개로 이슬람 도서관이 부흥했는데, 장서수도 많았고 일반인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하여 도서관이 번창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소실되었지만, 보존된 텍스트들은 후대의 학문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그리고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책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 당시에는 「동물우화집」이라는 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책에 대한 대중적 수요에 불을 붙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시장이 발달하면서, 예전의 메소포타미아와 같이 사람들의 읽고 쓰는 능력이 발달하였다. 자연스럽게 문서와 계약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고, 문서의 역할은 성서, 시, 동물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사실 역할을 하는 계약의 표현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또한 정보 검색·분류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새로운 글쓰기 기술과 인쇄술의 발달은 궁극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정부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문서 국가 아래서 책은 보편화되고 문맹률은 떨어졌다. 또한 학생, 학교, 교사 등 필사본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필사본에 대한 수도원의 독점은 막을 내리게 된다. 구텐베르크가 새로 개발한 인쇄 기술은 이런 몰락을 더욱 가속시켰다. 기존의 텍스트가 권위를 나타내는 토템의 역할을 했다면 구텐베르크의 기술은 이것을 양산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표준화된 활자 역시 문화 간 정보 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함께 했다. 덕분에 이전에는 교회나 군주에만 속했던 권위가 텍스트에 부여됐다.텍스트가 보편화 된 풍조 아래서 여러 가지 분류법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예전에 주목받던 기억술이라는 방법이 한 때 다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를 위한 세 가지 분류 도구로 기억, 이성, 상상력을 들었는데, 이는 후대 정보 과학자들에게 아직도 커다란 기준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월킨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범람하는 자료들을 모두 포괄할 만한 새로운 분류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분류법을 통하여 모든 것이 본성에 충실하게 설명하도록 보여주길 원했다.르네상스 이후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 이상의 고차원적인 가치를 생각하게 되고, 과학적 방법이 발달하게 되면서 출판업이 성행하였다. 이는 동시에 백과사전을 출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당시 출간되었던 헤이우드의 여성 백과는 이런 종합적 작품을 위한 대중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후 출간된 디드로의 백과사전 역시 이전에 출판된 학문을 단순하게 합쳐놓은 것이 아닌, 실용적인 정보들만을 모아 지식 요약서의 역할을 했다. 당시 그의 책은 특권 계층의 경계와 두려움을 일으켜 많은 논란을 빚었는데, 이전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면서 생길 정치적 결과에 대해 특권계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백과사전은 파괴적인 정보 기술로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백과사전은 현재 인증된 정보들을 유지하는 시스템의 능력으로서 과거에도, 그리고 아직까지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18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분류의 필요성이 증가한 시기였다. 새로 유입된 신문물들이 인쇄술의 발달과 맞물려 미친 듯이 정보가 폭주했다. 또한 18세기는 자연세계에 대한 실험과 발견이 팽창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린네는 그 시기에 간단하지만 강력한 생물 분류 체계를 만들어 냈다. 린네 분류법은 민속 분류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을 혼합했으며 과학적 연구를 분화하고 구조화하는 구실을 했다. 반면 뷔퐁은 이와는 다른 논지를 폈다. 그의 관점에서 세계는 생물 형태의 연속체 그 이상이었고, 고정된 카테고리는 인간의 마음이 불안정하게 투영된 것일 따름이었기 때문었다.
    독후감/창작| 2014.06.20| 5페이지| 3,000원| 조회(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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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 프라이머리 조사 보고서-미국·한국의 형태와 사례를 중심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관한자유 조사 보고서미국·한국 양국의 형태와 사례를 중심으로제출일전공과목학번담당교수이름목차1. 서론1.1 들어가는 말 ―――――――――――――――――――― 12. 본론2.1 오픈 프라이머리란? ―――――――――――――――― 12.2 미국 내 오픈 프라이머리의 형태 ―――――――――― 22.2 한국 내 오픈 프라이머리의 사례 ―――――――――― 33. 결론3.1 오픈 프라이머리의 국내 도입에 관한 결론4. 참고문헌1. 서론1.1 들어가는 말2012년 8월, 민주통합당은 제 18대 대통령 후보자 선거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처음 시행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로, 투표 당시 무려 70만명의 국민이 참가한 의미 있는 투표였다.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라는 3대 비전을 내세우고 이와 맞는 후보자의 선택을 국민들에게 직접 맡겼다. 이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투표 제도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으며, 당 내부의 투표임에도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처럼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선거라는 귀중한 정치 참여 행동을 흥미 위주로 경시한다는 이유로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모든 정치적 제도가 그렇듯 이 제도 역시 장점과 단점이 갈리지만 대한민국 내에서 이를 다루는 갈등은 유난히 골이 깊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제도는 어떤 제도일까?오픈 프라이머리,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완전 경선제로 불리는 제도는 애초에 그 바탕을 미국에 둔 제도이다. 당연히 한국의 토양에 바로 뿌리를 내리기엔 무리가 있는 제도이고, 그래서 아직은 평가받기보다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에 한해서라면 이 제도는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에 따라 정치적 효율이 타 국가와는 다르게 계산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당내 경선제의 한 방식으로, 대선후보 선출권을 소속 당원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국민으로 확대한다. 당의 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개방형 경선제' 또는 '국민형 경선제’로 불린다.원칙적으로 정당의 당원이 아닌 일반인도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이 때문에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라고 불린다. 실제로는 등록된 당원만 투표할 수 있는 폐쇄형, 당원 여부에 관계없이 등록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혼합형,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완전 개방형 등으로 운영된다. 미국에서는 흔히 대통령 후보자를 뽑는 선거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모든 주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27주 정도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일부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은 정당정치를 훼손시키고 막대한 선거비용을 유발할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가 안고 있는 단점으로서 첫째, 정당의 고유한 정강ㆍ정책의 강제력 약화로 인한 당 정체성 훼손을 든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정당의 정치활동이 일반 유권자의 유입으로 그 방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강ㆍ정책보다도 일반 국민의 선호에 맞추는 후보가 승리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역선택으로 인한 선거 결과 왜곡의 위험성과, 상대 당원들의 고의적인 후보선택 또한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인기 있는 후보자와 유능한 후보자 사이의 판별이 어렵다는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반면, 오픈 프라이머리가 갖고 있는 장점으로는 당 지도부와 거대 정파가 당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최고의 강점이 있다.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행보를 더욱 쉽게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정치에 있어 국민의 뜻을 최대로 반영한다는 오픈 프라이머리 특유의 최대 장점이다. 당 안의 파벌이 없는 무명의 후보자라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유력후보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와 반대로 유력후보라도 검증을 통해 조기에 퇴출있다. 후보선출 방식의 개방성 정도로 분류한 프라이머리와 코커스한편 이것은 또한 크게 개방형(open)과 폐쇄형(closed)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방형’은 유권자들이 사전 등록 없이 투표 당일 자신이 원하는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폐쇄형’은 예비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특정 정당에 등록해야 하거나, 투표 후에 당원으로서 활동을 해야하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 이와 같은 두 기준에 따라 미국의 예비선거를 구분하면 크게 4가지 유형이 도출된다.유권자 자격 요건 포괄성의 정도에 따른 미국 예비선거제도 유형미국의 예비선거는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은 워싱턴 D.C를 포함한 51개 주 중 14개 주가 코커스, 37개주(72%)가 프라이머리를 채택했다. 그 중 25개 주가 개방형(오픈) 프라이머리(49%)를, 12개 주가 폐쇄형(클로즈) 프라이머리를 채택했다. 반면 미국 공화당은 18개 주가 코커스, 33개주(64%)가 프라이머리를 채택했다. 그 중 22개 주(전체 43%)가 개방형 프라이머리를, 11개주가 폐쇄형 프라이머리를 채택했다.(2010 기준) 그 중 한국에서 실시했고 앞으로 들여오고자 하는 투표 제도와 가장 비슷한 형태는 위의 표 중 제 3유형, 개방형 프라이머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유형들이 특정 정당의 지지표명 또는 정당등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그러나 2008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예비선거의 유형에 따라서 투표참여 결정요인의 영향력도 다소 달라지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차이는 후보선택 결정요인과 관련해서 나타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요약하면, 폐쇄적 또는 수정형 예비선거와 비교했을 때 개방적 예비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의 후보선택에 있어서 이념, 혹은 정당과는 무관한 요인들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후보자 개인에 대한 감정적 호감도이건 인종에 따른 선호의 차이이건 간에, 개방적 예비선거(오픈 프라이머리-제 3유형로 나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이 당내 경선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는 경우 선거권이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전국적으로 같은 날에 동시에 경선을 실시하는 완전국민경선제를 포함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이 그 예 중 하나다.(2011년 4월)2011년도에 한나라당은 2012년 총선에서부터 적용할 것을 목표로 공천개혁안을 마련하였다. 개혁안의 핵심은 여야가 동시에 치르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것으로서,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의 1차 자격심사를 거친 3인 이내의 예비후보들을 대상으로 일반 당원과 국민으로 이루어진 선거인단 투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야의 합의가 선행되지 않을 때는, 한나라당만의 완전국민경선제는 유보하고 대의원 20%, 일반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로 구성된 제한적인 국민경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민주당도 비슷한 유사한 형태의 공천개혁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안에 따르면 내부 자격심사를 통해 압축된 2~4명의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한나라당식의 완전국민경선제를 치르는 방안, 또는 대안적으로 전문가 배심원단의 평가와 당원과 일반국민으로 이루어진 선거인단의 투표를 혼합한 형태를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2002년 경선 때 처음으로 도입한 ‘국민 참여 경선’은 원래 대의원이 선출하던 대선 후보를 대의원 20.3%, 당원 29.7%, 일반 유권자 50%로 개정해 일반인 몫을 절반으로 넓혔다. 2007년 경선 때는 당원과 일반 유권자를 구분하지 않고 선거인단을 모집해 선거인단 90%, 여론조사 10%의 반영비율을 정함으로써 일반 유권자의 비율을 더욱 확대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이름으로 올해 8월 치러진 이번 경선은 여론조사조차 없애고 선거인단에 신청한 유권자 100%로 치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말 그대로 선거인단에 신청한 투표권이 있는 모든 유권자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긴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와 인터넷 홈페이지, 오프라인에서의 홍보 등 갖가지 방 진화된 민주주의적 경선 방식을 채택하는 방법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임에도, 유감스럽게도 그 전개 양상만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의 여러 사건으로 인해 국민의 관심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다.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대대적인 당 차원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경선의 결과는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후보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거방식의 의의가 그렇다. 이번 민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의 파행 요인으로 지적받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다. 첫째, 일반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다 보니 당의 뿌리인 대의원과 당원의 영향력은 반강제적으로 축소되었다. 선거인단의 참여를 늘리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당원들의 입장으로서는 당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부 경선 캠프에서 당원을 푸대접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저조한 참여율이다. 전국 유권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민심을 반영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결국은 조직전 양상으로 진행되어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은 최소 150만명의 선거인단 참여를 기대했지만 108만명에 그쳤다. 선거인단 규모가 작을수록 조직력의 영향이 더 받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고, 당 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와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후보의 득표율이 달라지기 쉽다. 셋째, 가장 큰 문제점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행하기 위해 야심차게 도입한 모바일투표가 비문(비문재인) 후보 측에 의해 불공정한 경선처럼 취급받은 부분이다. 파벌 싸움을 넘어서서 경선 자체의 신뢰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모바일투표는 투표소투표의 낮은 투표율을 보완하고 투표율을 끌어올릴 회심의 카드로 여겨졌지만 세심한 준비 부족과 함께 시스템상 허점까지 드러내며 경선 갈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첫 경선인 제주 합동연설회를 하루 앞두고 모바일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암호프로그램의 에러로 개표값이 모두 0으로 나온 뒤 이를 바로잡은 것과, 모바일투표 안.
    사회과학| 2014.06.20| 8페이지| 3,000원| 조회(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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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도서관에 소설을 들일 시 기대되는 효과
    학교도서관 내 소설의 역할학교도서관에 소설을 들일 시에 기대되는 효과들에 관하여제출일전공과목학번담당교수이름목차1. 서론 ???????????????????????- 21.1 학교도서관의 현실 ???????????????? 22. 본론 ???????????????????????? 22.1 소설을 통한 교과연계지도 ????????????- 22.2 소설을 통한 독서지도 ???????????????? 33. 결론 ????????????????????????? 53.1 학교도서관에 소설이 필요한 이유 ????????? 53.2 장서선택기준 ??????????????????? 6Ⅳ. 참고문헌 ??????????????????????- 71. 서론1.1 학교도서관의 현실애석하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결코 도서관에 유리하지 않다. 흔히 ‘주입식 교육’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방침은 도서관에서 제시하는 열린 사고, 끝없는 상상력을 가진 인간상과는 극명하게 방향을 달리한다. 특히 학교도서관이 그렇다. 중학교, 고등학교일수록 도서관을 독서실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점수만을 중요시하는 정책 하에서 도서관은 형식에 불과해진다. 그 경향이 점점 초등학교까지, 더 낮은 연령대에까지 번진다는 것은 과연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의고사 등급, 시험 점수로 반이 갈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사서교사는, 학교도서관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맡아야 하는지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런 상황은 소설이 여타 장르보다 조금 더 특수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과도 겹쳐보인다. 실제로 도서관 내에서 소설의 입지는 좁은 편이 아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분류이기도 하고, 서점 판매량에서도 몇 년간의 베스트셀러 내역을 보면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하지만 도서관 외의 학교 환경에서 소설은 그다지 환영받는 편은 아니다. 현재 교육방침에서 학생들이 읽어야 하는 소설은 모의고사 지문과 언어영역 자습서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보편적인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애초에 주어진 지문 자체가 앞뒤가 잘려있는 한정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때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가장 빠른 방법으로 그 글의 전문을 제공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자료를 소유한 곳은 많겠지만, 학교 내의 시설이라는 거리적·심리적 이점이 학생들에게는 크게 작용하는 변수가 된다.서론에서는 예를 들어서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학교도서관에서 소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몹시 유기적이고 다양하다. 그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소설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학교도서관이기에 효과가 극대화되는 일이 있다. 다양한 각도로, 특히 교육적인 방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학교도서관에 소설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레포트는 학교도서관에서 소설을 통해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인지, 학교도서관에 소설을 들임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소설을 통한 교과연계지도우선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위에 언급했듯 교과에서 배우는 내용의 지문의 확장·연계학습이다. 만약 학교도서관이 교과서에서 인용된 소설을 보유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언어영역에 등장하는 소설의 전문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교육에 부가적인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학생들은 주어진 지문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앞 뒤 맥락을 수용하여 작품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사서교사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장서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과목 담당의 교사와의 연계를 통해 교육적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해당 수업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관련 작품이나, 심화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면 학교도서관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음과 동시에 더욱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학교라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빠른 피드백과 시스템 구축의 용이함에 있어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근본적인 목표가 교정에서 제대로 구현화되고 있는지는 차치한다.) 이와 같은 목표에 협조하기 위해 도서관은 필수적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소설이라는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소설은 여타 자료보다도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자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의 소설은 학생들로 하여금 포괄적인 독서력과 학생들의 문학적 창의력, 무엇보다도 글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결론적으로, 앞으로의 문학 교육과정은 다른 교과와 마찬가지로 더욱 궁극적인 교육 목표에 가까워질 것이고 그 과정에 발맞춰 학교도서관도 함께 필요한 자료를 수집·제공해야 할 것이다. 즉, 학생들이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소설의 도입은 학교도서관에 있어서 의무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2.2 소설을 통한 독서 지도이것은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는 대상의 주된 연령층과 관계가 있다. 학교도서관의 이용자 대부분은 그 학교의 학생들이며, 학생들에게는 그 나이에 따르는 많은 심적 고민과 감수성이 있다.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들은 이 나이대 학생들의 감수성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책은 ‘마음의 양식’이기 이전에 정보획득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일반화하여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책이라 함은 자습서나 문제집을 일컫는 말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높은 교육과정의 학교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그러나 이 나이대의 학생들에게는 감수성과 문학적 교양, 심적 안정감을 돋구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소설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해 가장 많은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부분이다.사춘기의 학생들에게 있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좋은 대응물이다. 아이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여 상상력과 만족감을 얻는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문학작품의 인물들을 통하여 희망을 가지고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 있다.이는 곧 독서교육의 본질과도 관련이 있다. 독서교육은 각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식하고 자신의 독서능력, 교육적인 활동이다. 소설문학은 독서교육의 대상자의 독서흥미를 발달시키는 데 있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은 황금숙(대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이 『학교도서관과 독서교육』(2003)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장과정에 맞춘 독서 흥미의 발달 단계를 정의한 자료의 인용이다.?동화기(8~10세) : 현실의 어린이들의 개인 생활을 상상으로 꾸며놓은 생활동화, 예술적인 감성과 시적인 정의감에 호소해 놓은 안델센 동화류, 창작동화류가 적합하며, 위인이나 초인적인 영웅의 행동·업적을 과장해서 꾸며 놓은 신화, 전설류나 아라비안 나이트, 걸리버 여행기, 닐스의 이상한 모험, 피터팬 등 가공 이야기 등도 적합하다.?이야기기(10~12세) : 친구 의존이 중심이 되는 시기로,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오히려 고의로 현실을 초월한 해리포터 등과 같은 가공이야기, 현실의 사회 생활에서 소년 소녀가 당면하는 문제를 그린 소년 소녀 문학, 행동의 장벽을 용기로서 타개하고, 지적인 통찰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험·탐험·탐정 소설, 건전한 비애 감정을 그린 감상 소설, 과학·발명·발견이야기나 공상 소설에 흥미를 갖는다.?전기기(12~14세) : 사춘기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외적인 관계형보다 내적인 심리를 추구하게 되는 시기이다. 위인의 인간적인 고민을 다룬 전기, 혹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규모가 웅대한 전기 소설이 적합하다. 아서왕,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이에 속한다. 사회적 배경의 추이를 중심으로 다룬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이야기, 한국사, 단군 기행 등의 역사 이야기도 좋다.?문학기(14세~) : 사회적 관심이 강하고 현실사회에 대한 참여를 바라는 시기이다. 자아에 대한 긍정이 강해져 외부 압력에 대한 부정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서적 동요를 스스로 조정하고, 화려한 것에 대하여 느끼는 흥미도 조정할 수 있도록 지도받는 것이 좋다. 이 시기의 여자아이들은 온화한 무드를 그린 연애소설 등 통속문학에 관심이 많다지적사고가 고정되는 시기이며,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개한다. 사상적 배경이 있는 문학, 정신적 안착을 구하는 종교적인 것 또는 장래의 진로를 정하기 위하여 전문서적에도 관심을 기울여 읽는다. 수필, 철학적 에세이, 사상서 등 사색서나 철학서의 방향에 흥미를 가진다.이처럼 문학은 아동·청소년기 전반적에 걸쳐 독서흥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요즘 말이 많은 판타지나 무협소설 같은 장르소설 역시도 독서흥미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는 좋은 지도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정신적인 양분이다. 아이들이 가지는 초기의 상상력은 비현실적인 환상을 중심으로 발달하다가 점차 그러한 환상적인 상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창조 과정의 상상력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독서습관이 소설 내 특정 장르, 혹은 소설에만 한정되어 고정되는 것을 막고, 소설 안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도록 돕는 것은 사서교사와 같은 독서교육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3. 결론3.1 학교도서관에 소설이 필요한 이유다음은 한국도서관협회(2003)에서 제시하는 중학교도서관의 주제별 장서 구성 비율이다.분야항목총류철학종교사회과학순수과학기술과학예술어학문학역사전기계비율*************71001000권환산 시권 수**************************00중학교 학교도서관의 주제별 장서구성 비율한국도서관협회(2003)에서 제시하는 학교도서관의 장서구성 비율은 총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주제분야별 분류로 한국십진분류법(KDC)에 따라 각 분야에 배정된 백분율을 기준으로 한다. 둘째는 이용목적에 따른 분류로 학습 및 수업에 필요한 교과연계도서, 교양을 위한 도서, 참고도서,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문학도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도서 등의 기준을 가진다. 셋째는 문학(소설, 시), 전기, 논픽션, 실용서 등 장르에 따른 분류다. 문학은 이 세 분류에 모두 독자적인 해당사항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소설은 다른 분야에 비해 독보치이다.
    인문/어학| 2014.06.20| 8페이지| 1,500원| 조회(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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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피노자의 '신'으로 본 종교철학에 관하여
    스피노자의 '신'으로 본종교철학에 관하여제출일전공과목학번담당교수이름1. 서론지성을 실천하는 삶이란 어렵다. 다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스피노자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냈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다. 내가 특히 흥미를 가졌던 것은 스피노자의 종교철학이다. 교차되는 여러 자유와 능력에서 출발하는 그의 철학은 당시 교회와 국가체제에 매우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생전에 과 단 두 권만을 출간했는데, 그마저도 후자는 익명으로 출간해야 했으며, 공화제에서 총독제로 정권이 바뀌면서는 그 책들 역시 금서로 지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스피노자의 다른 책들 역시 그의 죽음 이후에야 출간될 수 있었고, 그것들 역시 전부 익명으로 출간되었다.스피노자는 그의 유년시절을 유대 공동체가 설립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철학에 열중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배워왔던 유대신앙과 차츰 멀어지게 된다. 이후 그는 신앙의 독단적 형식들과 외형적 표현들을 최소화하고,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 속에서 전적으로 신앙을 찾으며, 관습의 순수성과 함께 하는 몇몇 기독교 종파와 가까워진다. 신의 인간화, 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협소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온 그였기에 포괄인 기독교적 신앙의 개념은 그로 하여금 내면적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유대교에 비해 우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결국 그는 그가 보였던 여러 반 유대교적인 행실들로 인해 파문당하게 된다.이후 스피노자는 대중들은 이성의 밖에 있다고 주장했고, 따라서 대중들은 고결한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단지 불안감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행동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존재들이라고 보았다. 종교적 신앙의 긍정적인 역할과 그 가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본질적으로 이성론자였다. 그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 것은 무분별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그는 이성에 의해 인정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실천과 신앙의 형태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난을 가했다. 그렇다면 그가 인정한 종교의 본질적 역할은 무엇인가?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기쁨, 즉 모든 슬픔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정신을 양육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바로 인간이 정열적으로 희구하고 모든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이성적 체계를 통해 행복과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스피노자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신에 대한 사랑이다. 종교가 이행하는 가장 유익한 임무는 준수해야 할 법으로서 신에 대한 사랑을 인간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비록 이성적인 인식 능력은 없더라도 많은 무지한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이 점에 주목하여 종교에 대해 이성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1. 다수가 주장했던 '신'의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2. 어떤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종교를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의 종교관/이성론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그 의의가 대단하다. 이 레포트에서는 스피노자의 종교관을 중심으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신’과 종교철학에 대해 미흡하나마 분석해보고자 한다.2. 본론(1)범신론그렇다면 스피노자가 생각했던 ‘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기독교의 몇몇 포괄적 교리들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가 주장했던 신인동형론에 대해서는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간으로부터 출발해서 신을 정의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보고, 이를 ‘최초의 가상’, 즉 무지라고 보았다. 어떤 사물들보다도 앞서야만 하는 신의 지성과 의지는 인간의 지성처럼 창조된 어떤 지성(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볼 경우)과는 유사한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또한 스피노자는 같은 이유로 스피노자는 철학과 신학의 분리를 주장하였다.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 신이 어떤 것을 욕망한다거나, 신이 악한 자들 때문에 진노한다거나, 선한 자들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하는 일이 일어나는 신학적 관점은 부조리한 것이 되어버린다.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성질들을 신에게 부여하는 것은 “코끼리나 당나귀의 고유한 속성들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 완전히 잘못된 일인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절대적이고 무한한 존재인 신은 어떠한 외부의 자극에도 변용될 수 없다. 애초에 스피노자의 ‘신’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외부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신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인간과 유사한 차원으로 신을 보는 것)은 철학적으로 부조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신은 ‘완벽하고’ ‘무한한’ 존재로 정의된다.그러나 인간들은 자기들이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자연도 자기들처럼 그렇게 유용성을 추구할 거라고 상상하고, 모든 사물들이나 세계 자체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 창조되었을 거라고 상상한다. 스피노자는 인간들은 그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절대자에게 투사하게 된다고 여겼다. 문제는 이들이 그 우월한 존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또 다시 자기들의 취향을 신에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자기의 고유한 기질에 따라서, 신에게 예배를 올리는 다양한 수단들을 발명해 냈다. 신이 다른 이들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시도록, 그래서 자연 전체를 자기들의 맹목적인 욕망과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위해 쓰게 해주시도록" 말이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렇게 각자가 자신이 선택받았으며 다른 이들은 버림받았을 때 '편견'이 "미신으로 변한다" 고 주장했다.어리석은 대중의 눈에는 이렇게 신의 역량과 자연의 역량이 서로 구분되는 두 개의 역량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짐승을 길들이는 것처럼, 신도 자연 질서를 자신의 능력으로 길들여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법칙은 신의 결단과 다른 것이 아니며, 영원하고,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 이 두 질서는 하나다. 스피노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자연 사물을 더 많이 인식할수록 우리는 신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된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신(자연)에 대한 지적 사랑을 강조하며, 기독교가 주장했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신과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강조하였다. 또한 철학과 신학을 구분하여 미신의 득세를 지양해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2)종교와 이성을 통한 구원그렇다면 성서는 온통 부조리의 연속이고, 예언자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인가? 종교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스피노자는 비록 종교라는 것이 일견 비이성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언이나 성서가 가지고 있는 비유나 상징 같은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그것에 가려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종교가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핵심(이를테면 정의나 이웃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은 중요하게 여겼다.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거쳐서 이러한 방식을 대중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핵심만큼은 인간의 이성에도 완벽하게 합치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신의 속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나 증명 없이 단지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신이 된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수학적 사고방식을 옹호했던 스피노자의 사고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신을 인격이 전혀 없는 ‘자연’이라고 여긴다면,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기쁨은 신을 ‘아는’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성이라는 전제가 수반된다. 인간의 행복과 자유에 있어서 이성은 필수적인 존재였다.스피노자가 생각했던 구원의 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신앙을 통한 구원, 둘째는 철학을 통한 구원이다. 스피노자는 신앙에 의해서도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이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대중을 위한 길이었다. 종교는 인간의 이성에 합치되는 어떠한 보편적 진리를 우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간접적 수단이다. 대중들은 그 진리를 증명할 능력도 없으며 또한 이해할 능력도 없다. 이를 위해 종교는 대중들의 감정과 상상력에 호소함으로써 진리를 설파한다. 스피노자는 철학을 통한 구원을 진정한 구원이라고 여겼지만, 신앙을 통한 구원 역시 하나의 구원의 길임은 인정하고 있었다.만약 인간이 모든 일을 확고한 분별에 따라 처리할 수 있었다면, 또는 운명이 인간에게 항상 우호적이었다면, 인간은 결코 어떠한 미신에도 종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확실한 선들을 무절제하게 욕망하는 자들이 온갖 종류의 미신에 가장 많이 종속되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자들을 신의 도움을 눈물로 애원하면서, 이성을 장님 취급하며, 헛된 것으로 취급하고는, 상상의 착란 안에서, 꿈 안에서, 어리석고 유치한 것들 안에서 신의 응답을 듣는다고 믿는 것이다.스피노자가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철학을 통한 구원이었다. 종교를 통한 구원에 있어 이성이 필수조건이었던 것처럼, 철학을 통한 구원에서도 이성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스피노자는 기독교 등 여타 종교에서 주장했던 인격적인 신의 개념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성을 통하여 정념을 억누르는 것을 중요시했다. 물론 자연주의를 주장했던 스피노자는 정념 역시도 우리의 일부라고 여겨 무조건적인 정념의 억압은 옳지 못하다고 보았지만, 그의 윤리학은 기본적으로 정념을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근본 조건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그 정념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영혼이 정념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념과 달리 이성은 우리의 본성에 반대되는 그 어떤 것도 명령하지 않는다. 이성은 언제나 합리적이며 그 자체로만 고려된 우리의 본성, 즉 자연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구원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며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고차원적인 도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14.06.20| 5페이지| 2,000원| 조회(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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