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가 당선되고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당선되면서 김유정은 한국 단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핵심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김유정’ 하면 떠오르는 것은 우선 작품에 드러나는 남다른 문체와 농촌의 현실과 사실적 인물 묘사,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성을 들 수 있다. 그의 문학작품들은 그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당시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1935년 카프의 해체와 함께 나타난다. 20년대와 30년대 초의 주도를 이루었던 카프의 해체는 우리 문학이 종래의 투쟁적이고 계급주의적인 목적의식에서 벗어나 문학 자체의 문학 즉 무목적성의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김유정 역시 구인회의 일원으로 세태소설로의 순수문학을 지향했다.그의 문학적 성향을 살펴보면 첫째, 사실적 소설 구성을 들 수 있다. 김유정의 여러 소설이 그의 고향인 실레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고, 소설에 나타나는 등장인물도 실제 마을 주민을 모델로 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으로 궁핍한 때인 만큼 대다수의 작품이 가난과 관련을 맺고 있다.둘째는 한자어가 아니라 토착어와 비속어의 사용이다. 그의 소설에서 사용되는 문장은 표준어가 아닌 구어체에 가까운 그 지방 특색의 언어를 사용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일제치하의 농촌의 궁핍과 생활상을 향토적 정서와 함께 김유정 특유의 언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구어체 문장과 함께 비속어나 지역적 방언을 적절히 구사하여 인물의 성격과 공간적 배경의 특색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농촌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전해 준다.셋째는 그의 대부분의 소설에 나타나는 해학성과 풍자성이다. 당대의 식민지적 수탈 로 암울한 농촌의 모습을 익살스럽고 품위 있는 유머와 풍자로 시대적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김유정 특유의 문학적 개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김유정에게 있어서 소설은 단순한 문학적 가치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처해진 상황과 당시 시대적 배경, 사랑의 아픔 그리고 투병생활 등 인간의 생존적 욕구를 해소하려 한다. 「금 따는 콩밭」에서 금을 캐내기 위해 콩밭을 밀어버리고 땅을 파내는 모습과 금을 몰래 빼내오기 위해 자신의 발을 내리찍은 「금」의 덕만이의 행위는 금을 찾아 횡재를 누리려는 욕망의 모습이지만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군상을 여실히 그려 냈다.시체는 금점이 판을 잡았다. 섣부르게 농사만 짓고 있다간 결국 비렁뱅이밖에는 더 못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다 금장이 손에 구멍이 뚫리고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때는 뭘 파먹고 사나. )그의 소설은 1930년대의 어둡고 삭막한 농민들의 삶을 때로는 희화적으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농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의 저변)을 꾸밈없이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암울한 현실 속에서 끈질기게 삶에 집착하는 강한 생존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의 ‘강한 생존 본능’은 김유정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이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폐결핵으로 쇠약해진 그는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필사적으로 투쟁한다. 형 유근의 술과 난봉질, 도박으로 인해 그 많던 선대의 가산을 거의 다 날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또 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있는 걸로 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병을 위하야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으로는 점순이는 마름의 딸이고 '나'는 소작인의 아들인 것에 있다. 이미 어머니가 주의를 시켜준 것과 같이 점순이와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마름집 딸과 소작인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점순이가 구운 감자를 나에게 주면서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말하며 생색내는 것이 못마땅하였고 그래서 안 먹는다며 밀쳐낸 것이다.이런 '나'의 행동에 점순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지고 눈에 독을 올리게 되면서 결국은 닭싸움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에는 닭싸움으로 시작된 점순과 나의 대립은 약이 오른 '나'가 닭을 죽임으로 해서 화해를 시도하게 된다.닭싸움으로 인해 갈등이 고조된 두 남녀는 절정에 이르러 닭의 죽음으로 노란 동백꽃이라는 자연공간 속에서 화합하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중략 -"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이 화합은 ‘점순’은 산아래로 ‘나’는 산위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삶의 현실인 마름집 딸과 소작인의 아들이라는 사회 계층속에서 깨어질 수밖에 없음이 결말 부분의 점순과 나의 행동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닭싸움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의 순진하고 무지함에 대한 닭의 공격성에 비유되는 점순이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프로포즈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프로포즈했다가 거절당한 김유정 자신의 정신적 피해를 여성으로 하여금 프로포즈하게 함으로써 보상받고자 한 문학을 통한 갈고 하여 아무짝에도 못 쓸 것이다. 그나마 들고 나서려면 아내의 눈을 기워야 할 터인데 맞은쪽에 뻔히 앉았으니 꼼짝할 수 없다.하지만 오늘도 밸을 좀 긁어놓으면 성이 뻗쳐서 제물로 부르르 나가버리리라......-중략-"아까 낮에 누가 왔다갔어?""면서기밖에 누가 왔다갔지유......""볼 일이 있으면 날 부러대든지 할 게지 왜 그놈을 방으루 불러들이고 이 야단이야.""헐 말이 있으면 문밖에서 허든지, 방으로까지 끌어들이는 건 다 뭐야?""남의 속 모르는 소리 작작하게유. 자기 때문에 말막음하느라구 욕본 생각은 못하구.""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 물건을 다 들어낸담!""뭐! 집안 물건을 누가 들어내?""누가 그런 소리를 해. 벼락을 맞을라구?""재숙 어머니지 누군 누구야.""뭐래, 뭐라구?""보두 못 허구 앰한 소릴 해 그래, 눈깔들이 멀라구?""자기는 뭔데 대낮에 사내놈을 방으로 불러 들이구, 대관절 둘이 뭣 했더람?"눈 위를 밟는 아내의 발자취 소리가 멀리 사라짐을 알자 그는 비로소 맘이 놓였다. 방문을 열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근식은 매함지박을 가져가기 위해 아내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고 아내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일례를 눈치채고 있던 아내가 속지 않자 터무니없는 억측으로 아내를 내보내는데 성공한다. 아내가 자기가 물건을 밖으로 내돌린걸 모르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다.함지박을 가지고 계숙에게 가는데 오늘이 농민회 총회임을 알고 참석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니 '또 경쳤구나'하며 망설이지만 이내 농민회가 청년들을 말끔히 쓸어간 것을 고마워하며 오늘밤에는 술집에서 저 혼자 들병이를 차지하고 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뭇사람의 품으로 옮겨 안기며 애쓱거리는 들병이가 말은 천하다 할 망정 힘 안들이고 먹으니 얼마나 부러운가. 침들을 게게 흘리고 덤벼드는 뭇놈을 이손 저손으로 맘대로 후물르니 그 호감이 바이 고귀하다 할지라.)당시는 궁핍으로 인해 굶는 사람들이 허다 했다. 그런데 힘 안들이고 먹으니 들병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근식도 그런」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상식으로 보면 이런 아이가 제대로 명을 부지할 것 같지 않다마는 들병이의 자식인만치 무병하고 죽음과 인연이 멀은 아이는 다시 없을 것이다. 한 7일만 겨우 지나면 눈보라에 떨쳐 업고 방랑의 길로 나선다. 들병이가 유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대개 하나씩은 그 품에 붙어 다닌다. 고생스런 노동에도 불구하고 자식만은 극진히 보육하는 것이다.)김유정은 마을에 나타난 들병이와 어울려 다니며 현실의 괴로움을 잊고자 했고 어머니에 대한 모성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이제는 이름도 모르는 들병이, 그녀는 돌쟁이 아이가 있어 틈틈이 젖을 빨렸으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노름쟁이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치마와 몸에서 풍기는 젖내가 그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向念을 일으키게 한 것을 보면 박모 기생 다음으로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어느 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던 그는 담배 연기에 숨이 답답해서 눈을 떴습니다.-중략-그는 필연적으로 복수의 행동이 있으리라고 믿고 경계해 마지 않았습니다만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그가 눈 뜬 것을 발견하자"일찍두 않는데 가보지...." 하며 그에게는 아랑곳없다는 듯 계집 등 뒤에 붙어 자는 어린아이를 끌어당기며 중얼대는 것이었습니다.)위 글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솥」은 거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화한 것이고 들병이 여인의 몸에서 풍기는 젖내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향념을 일으켰다는 것과 모성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비록 생활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술을 팔고 몸을 파기는 하지만 김유정은 이것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매춘을 하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많은 책임감과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이유에서 이다.3. 일확천금의 욕망에 나타난 「금 따는 콩밭」금을 소재로한 김유정의 작품들은 30년대 초반에 광업소에서 현장 감독으로 근무한적이 있는데 그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다지」, 「금」, 「금 따는 콩밭」을 작품화 하였다. 이는 당시 일제에 의해 .
Ⅰ. 머리말가정소설은 대체적으로 가정생활을 주로 표현한 작품으로 가정안에서의 모순과 갈등, 비극 등을 표현한 작품을 말한다. 가정소설이 처음 발생되었던 때는 17세기 말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가부장 중심 사회에 따른 가족제도의 모순과 불합리한 문제점 등을 비판적이며 사실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이다가 18세기에 와서는 처첩간의 갈등을 둘러싼 정치적인 갈등양상을 보이며 포괄적인 가정사를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가정소설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자는 계모형 가정소설이고 후자는 쟁총형 가정이라고 한다.계모형 가정소설에는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김인향전」, 「정을선전」, 「창선감의록」, 「김전전」 「황월선전」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장화홍련전」은 한국 소설사에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계모형 가정소설들 중 「장화홍련전」만큼 작품구조의 치밀한 짜임새나 시대적인 문제의 반영과 계모 허씨 등의 독특한 인물의 성격묘사와 내용의 독창성은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장화와 홍련이 물에 뛰어드는 것을 전후로 나누어 전반부는 계모 허씨와 장화홍련을 중심으로 계모가 전처 자식을 박해하거나 모함하는 ‘계모형 소설’의 구조를, 후반부는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혼이 나타나 그들에게 씌여진 누명을 벗기고 악은 벌을 받는 권선징악 형태의 ‘공안류 소설’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장화홍련전」은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 전하는 실화의 이야기가 소설화되었다는 점, 조선조의 양반 계층의 부녀자계층에게 가장 인기 있던 소설이라는 점을 문학사적으로 확고한 작품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이런 문학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장화홍련전」이 북한문학에서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가치와 평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현 우리 남한과 북한의 당면의 문제인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Ⅱ. 북한문학사에 기술된 가치와 평가1. 장화홍련전의 창작시기와 국문본?한문본 선행설「장화홍련전」은 조선조에 창작된 계모형 가정소설로 창작 시기와 한문본 선행설과 국문본 선행설을 둘러싼 논쟁이 많고 창작 시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어 많은 논란을 가져온 작품이다.한문본 선행설은 한 실화를 한문으로 옮긴 것을 다시 한글로 부연한 것이라고 추측한 통설이다. [國文學史]에서는 ‘「장화홍련전은 확실히 박경수의 손으로 한문본이 먼저 되고 그것이 국문으로 된 것은 훨씬 후대인 것이다.’ 라고 나타나 있는 것처럼 한문본 선행설을 주장하고 있다.국문본 선행설은 전동흘이 별세한 후, 그의 6대손 전만택이 한 소설을 가지고 와서 박인수(朴仁壽)에게 한문으로 써 줄 것을 부탁하기에 한문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으로 국문본을 근거로 하여 한문본이 쓰여 졌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초기 학자들이 제기한 한문본 선행설이 최근에 올수록 국문본 선행설로 바뀌는 추세이다.북한문학사에서는 장화홍련전의 박경수가 지은 한문본이 선행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는 민중들에 의해 유포된 구전설화에 바탕했다고 했듯이 국문본이 먼저 창작되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한문본을 선행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라 할 수 있다.「장화홍련전」의 창작 시기에 대해서는 17세기 말, 18세기 중엽, 18세기 말 등의 많은 학설이 제기 되고 있다. [조선문학통사]에서는 「장화홍련전」을 18세기 문학을 다루는 항목에서 언급하고 있으나 아주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고, [조선문학사(1)]에서는 17세기 중엽에 활동한 전동흘의 [가재집]에 박경수라는 사람이 창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문본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초엽에 창작되고 국문본은 한문본을 기초하여 18세기 중엽 이후에 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문학사(2)]에서는 박경수의 생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전동흘이 1651년에 벼슬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아마도 1651년 이후의 무인년인 1698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 설화를 토대로 하여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에 국문본이 창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남한에서의 「장화홍련전」 창작시기를 살펴보면 한글본 선행설이 제기된 이후 한글본은 17세기 말에 창작되었을 것이고 한문본이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창작된 것으로 보는 것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다.2. 「장화홍련전」의 인물의 특징과 사상적 경향「장화홍련전」은 배좌수의 딸 장화와 홍련, 그리고 흉악한 계모 허씨와의 대립적인 관계를 통하여 당시 시대의 봉건적 가부장 중심의 사회제도가 낳은 가정 안에서의 비극을 보여주고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다.작품의 인물을 살펴보자면 4분류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장화와 홍련은 긍정적인 여성이며 권선징악적인 요소에서 보자면 ‘선’에 해당하고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모성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화와 홍련은 계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더욱더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되고 이런 둘의 모습으로 인해 계모를 자극해 더욱더 갈등은 깊어지게 된다. [조선문학사(1)]에서는 장화와 홍련은 아름답고 마음씨가 착한 인물로 그리고 있고 성격의 적극성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계모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지만 죽어서 자기들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어버리고 계모에게 원수를 갚고야 마는 것은 이들 모습에서 민중적 감정이 체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계모 허씨는 열등감의 소유자로 ‘악’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외모나 인격에서 풍기는 추악하고 기형화된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나친 열등감에 빠져 있는 계모 허씨는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전처의 자식에게 학대를 하게 된다.장화와 홍련의 아버지인 배좌수는 중간적 존재이며 우유부단한 존재 무기력한 존재로 표현 할 수 있다. 중립적 존재이면서도 장화와 홍련, 그리고 계모의 화해를 시키지 못하고 계모의 모함과 장화를 죽여 없애자는 말에 결국 사랑하는 딸을 죽게 만들고 만다. 배좌수는 딸의 생명보다도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우선적이고 유교교리에 더욱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마지막으로 전부사는 공명심이 높고 유교적 윤리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장화와 홍련의 원귀로 인해 폐읍이 된 마을에 자원할 만큼 담대하고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후반부에 나타나 장화와 홍련의 원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맞고 있다. 북한문학사에서 주창하고 있는 선행설인 한문본은 계모 허씨의 죄상을 밝히고 원혼의 한을 풀어준 부사의 ‘현명성’을 찬양하고 있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장화홍련전에서는 꽃과 파랑새등 동식물이 상징적인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데 [조선문학사(1)]에서는 이런 파랑새와 연꽃과 같은 동식물은 사실주의적 진실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나 장화와 홍련의 편에 서서 인민들의 지지와 동정을 표현해 주며 작품에 동화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이런 인물들에 이야기로 엮어진 장화홍련전에 나타나는 사상적 특성은 바로 봉건 사회에 대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문학사(1)]에서는 죽음의 길에 나서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말에 거역하지 않고 복종해야 한다는 유교윤리에 중독된 데에서 생긴 사상적 약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18~19세기에 와서 양반들의 물욕이 증대되었던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고 경제적 관계가 사람들의 사회생활, 도덕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문학사(2)]에서도 봉건 사회에서는 인간적 관계가 사랑이나 동지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명예, 권세 등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배좌수가 사랑하는 딸보다 가문의 명예를 더욱 우선시 한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장화홍련전은 소재의 세속화 현상과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데에서 더욱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3. 「장화홍련전」에 나타난 제한성북한 문학사는 「장화홍련전」을 전반적으로 작품성 높게 평가하고 있다. 가정윤리적 문제를 취급하면서 봉건사회와 가정의 비극을 잘 보여주었고, 인간의 물욕에 대한 것과 양반들의 무능함을 비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전반적으로 작품성 있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문학사(1)]에서는 「장화홍련전」이 봉건사회의 모순을 바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전부사의 어진 정사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게 하는 것은 봉건 사회의 모순을 개별적 관료의 힘으로 해결한 것은 작사의 사상적 제한성의 표현이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장화와 홍련이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산다는 것으로 끝맺는 것은 소설의 구성이 일반적인 고진감래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문학사(2)]에서도 예술적 형상화의 면에서 볼 때는 현실생활에 기초한 사실주의적 소설이긴 하나 역시 아직 전세기 소설들의 제한성을 많이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김일성대학교수인 김춘택은 「장화홍련전」이 봉건적 가족제도에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권선징악적인 도덕관념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 장화와 홍련은 당대 사회의 악에 대하여 항거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름으로써 희생된 것은 바로 그들의 성격에 구현된 유교 도덕관념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로 인해 봉건적 가족제도의 불합리성을 철저히 폭로 비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Ⅰ. 서론구토지설(龜兎之說)은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인도의 佛經인 ‘본생경(本生經)’에 실려 있다. 이 說話는 자라와 토끼의 행동과 모습을 통하여 보여주는 토끼의 지혜와 꾀를 드러내고 있다. 자라에게 속아 龍宮에 가지만 토끼의 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거짓말로 肝을 두고 왔다는 꾀를 내어 龍宮을 탈출한 것과 같이 위기에 처해도 지혜와 꾀를 사용해 위기를 탈출하는 토끼의 臨機應變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다른 측면으로는 龍王에 대한 자라의 忠誠心을 보여주기도 한다. 토끼에게 속은 자라는 빈손으로 돌아가느니 自決을 하려고 하는데 이때 자라의 정성에 感服한 도사가 나타나 용왕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주어 용왕의 병을 고치게 된다.이외에도 용궁에서의 어전 싸움만하고 있는 水宮 대신들과 주색에 빠져 병들고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용왕에게서는 당시 정치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이 설화가 처음 거론된 것은 신라 善德女王 11년 때이다. 김춘수가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갔다가 고구려왕의 옛 고구려 땅을 돌려달라는 무리한 부탁 때문에 옥에 갖히게 된다. 이 때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에게서 들은 토끼와 거북이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김춘수는 선도해의 이야기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고구려왕에게 거짓으로 귀국하면 임금께 청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주겠다 말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인도의 佛經說話가 당시의 事理에 맞게 수정되어 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구토지설(龜兎之說)은 문헌이나 설화로 전해져 오다가 寓話的 諷刺的 성격이 더욱 짙어지게 되었고, 익살스런 諧謔性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17~18세기에 이르러 판소리의 사설(辭說)이 되었고 이것이 더 나아가 소설로 전해지게 되었다.Ⅱ. 구토지설(龜兎之說)의 연원1. 인도의 佛經 ‘본생경(本生經)’의 용원 설화본생경(本生經)은 본생담(本生譚)이라고 하는 말과 함께 산스크리트어와 파리어(巴利語) 자타카(jataka)의 한역(漢譯)이다. 이 말은 본래 마누법전(Manu 法典) 에 의하면 「태어나다」,「태어난 자」의 뜻이었으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태어난 그 때의 일」이란 뜻으로 바뀌고 그것이 불교에서는 「이승에 태어나기까지의 전생(前生)이야기」라는 독특한 뜻으로 쓰이고 있고,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가리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승에서 와서 성도(成道)하기 전, 전생에서 보살(菩薩)로서 구도생활(求道生活)을 한 이야기를 말한다. 즉, 부처님이 석가족(釋迦族)의 왕자로 이승에 태어나기 전, 보살로서 수많은 생을 거듭하는 사이에 천인(天人)으로서, 또는 국왕·대신(大臣)·장자(長者)·서민(庶民)으로서, 심지어는 도둑으로서, 혹은 코끼리·원숭이·공작·토끼·물고기 등 여러 가지 동물의 생을 받아 여러 가지 선행(善行)과 공덕을 쌓은 이야기를 자타카라고 하고 역시 그러한 이야기를 모은 것을 말하며 그러한 이야기들을 흔히 본생경(本生經)류(本生經類)라고 통틀어 부른다.본생경(本生經)류에 속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한역경전(漢譯經典)의 많은 경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고 산스크리트어·파리어·한역장경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547편의 이야기를 집대성하고 있는 본생경(本生經)이다.본생경(本生經)의 여러 이야기 중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끼와 거북이 또는 구토설화의 原流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용과 원숭이’라는 용원설화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되는 동물과 내용부분에서 조금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같다. 용원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바닷속에 龍王이 살았는데, 그의 王妃가 孕胎하여 원숭이의 염통(=心臟)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염통을 구하기 위하여 육지로 나와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먹고 있는 원숭이를 만났다. 용왕은,"그대가 사는 이곳은 좋지 못하니 아름다운 樹木이 있고 먹을 열매가 많은 바닷속으로 안내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솔깃한 원숭이는 기뻐하며 용왕의 등에 업혀 물속으로 갔다. 途中에 용왕은 그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원숭이는,"염통을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왔으니 다시 가지러 가자."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말을 곧이듣고 다시 陸地로 업고 나왔다. 원숭이는 육지에 나오자마자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용왕을 보고 嘲笑만 하였다.[용과 원숭이]2. 우리나라 구토지설(龜兎之說)의 초시 (김춘수와 선도해의 暗示的 이야기)구토지설(龜兎之說)이 한국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에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잡혔을 때에 이 고지(故智)를 이용하였다는 설화이다. 백제군에게 報復하기 위해 고구려로 請兵하러 떠난 김춘추가 엉뚱하게도 諜者로 오인되어 옥에 투옥되었을 때 고구려 신하 선도해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그가 탈출의 暗示로 들려 준 탈신지계의 설화이다. 대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신라 선덕 여왕 11년 김춘추의 딸의 사위 품석이 백제군에 죽임을 당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고구려로 請兵하러 갔다. 고구려 보장왕寶藏王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극진히 맞아들였다. 그런데 한 신하가 김춘수는 고구려를 염탐하러 왔으니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보장왕은 그 말을 듣고 무리한 부탁을 해서 困辱스럽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마목현痲木峴과 죽령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이에 김춘추가 대답하였다.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命令을 따를 수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었다. 김춘수는 靑布 삼백 보를 고구려 총신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이에 선도해는 술과 음식을 가져와 함께 마시며 술에 취하자 김춘수에게 농담으로 말했다.“그대는 일찍이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선도해가 김춘수에게 해준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옛날에 東海 龍王의 딸이 심장병이 들어서 앓았는데, 의사의 말이 토끼의 肝을 얻어서 약을 지어 써야만 가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으나 바다 가운데는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이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이르기를 '제가 능히 토끼의 肝을 얻어 올 것입니다'하고, 드디어는 육지로 올라가서 토끼를 만나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는데 샘물이 맑고 돌도 깨끗하고 숲도 무성하고 좋은 果實도 많이 열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매나 독수리와 같은 것들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그곳으로 갈 것 같으면 가히 便安하게 살 수 있어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다. 하고 꾀어 드디어는 토끼를 등 뒤에 업고 바다에 떠서 한 2,3리쯤 가다가 거북은 토끼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따님이 병이 들어 앓는데 꼭 토끼의 肝을 약으로 써야만 낫겠다고 하는 까닭에 내가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하니, 토끼는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아아, 그런가. 나는 신명의 後裔이므로 능히 오장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거지고 이를 다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에 마음이 좀 沓沓하여서 드디어 肝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서 잠시 동안 바위 밑에 놓아두었는데, 네가 좋다는 말만 듣고 오느라고 그만 肝을 그대로 두고 왔구나. 내 肝은 아직 그곳에 있는데 다시 돌아가서 肝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어찌 네가 구하려는 肝을 가지고 갈 수가 있겠는가?나는 비록 肝이 없어도 살 수가 있으니, 그러면 어찌 둘이 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하니 거북은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토끼를 업고 도로 돌아서서 陸地로 올라오니,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하기를 '거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찌 肝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하니, 거북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들은 김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歸國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은 그 때서야 기뻐하며, 김춘추를 후한 예로 대우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고구려 國境을 벗어나자 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다. “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軍士를 要請하였으나,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謀免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구토지설(龜兎之說)에서는 용왕의 딸이 병들어 토끼의 肝이 필요해 거북이가 육지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인도 본생경(本生經)의 용원설화에는 왕비가 잉태하여 원숭이의 염통이 먹고 싶다고 한다는 부분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살펴보면 등장하는 동물만 바뀌었을 뿐 중심적인 이야기는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나라로 傳承되는 과정에서 설화의 원숭이보다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토끼로 바꾸고 왕이 직접가기보다는 충직한 신하를 보내 충성스러움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이 설화는 후에 , 등의 근원적 모태가 되었다.Ⅲ. 판소리 수궁가(水宮歌)와 소설 별주부전(鼈主簿傳)수궁가(水宮歌)는 신라 때부터 전하는 구토지설(龜兎之說)에 판소리 특유의 재미있는 익살을 곁들인 내용으로 판소리 여섯 마당가운데 하나이다.龍王이 병이 들자 약에 쓸 토끼의 肝을 구하기 위하여 자라가 세상에 나와 토끼를 꼬드겨 龍宮으로 데리고 肝다. 그러나 토끼는 꾀를 내어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은 것이다.판소리는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향유한 예술 양식이었다. 그래서 판소리 창자는 聽衆의 취향에 맞는 사설을 선택해 권력층이나 사대부 앞에서는 비교적 典雅하고 점잖은 내용으로 그리고 고단한 삶에 찌든 평민들을 위해서는 세상을 비난하고 매우 滑稽的인 이야기로 엮어 갔기 때문에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많은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현재 전하는 창본은 신재효본(申在孝本) 외에 여럿이 있는데, 선동옥(宣東玉)은 박봉술본(朴奉述本)을 전수하고 있다.박봉술본의 줄거리를 장면별로 보면, 허두(虛頭)·용왕 득병을 한탄·선관진병(仙官診病)·수궁조회(水宮朝會)· 가족과의 이별·수궁 출발·모족회의(毛族會議)·주부와 호랑이·산신제
Ⅰ. 서 론1904년 11월 0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1925년 『오몽녀』가 《조선문단》에 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3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수문학 친목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한다.‘구인회’는 이름 그대로 9명의 문인이 모여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써서 같이 발표하고 토론하려는 의도에서 결성된 친목 문학단체였다.당대의 이념중심의 문학론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개성적인 글쓰기를 하고자 했던 사람들로 그 시대 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이론을 지지하면서 문학을 사상과 연결지어 현실을 반영하며 변혁적 이념을 강조한 작품을 썼던 프롤레타리아 문학가들과는 반대하여 순수 예술을 지향했다. 그 중 이태준은 ‘구인회’의 주도적 인물이었고, 이로 인해 월북 후에 숙청당하는 계기가 된다.이러한 특성은 첫 작품인 『오몽녀』에서도 성격이 잘 드러난다. 사회나 시대의 문제 거론보다는 단지 욕망에 사로잡힌 한 여인의 집요한 성격만이 주목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작가의 성격은 문학의 사회적 요소보다는 작가의 개성과 형식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할 수 있으며, 그것이 개성과 문체에 대한 집요한 관심으로 드러나게 된다.30년대 후반에는 종합 문예지 《문장》을 주재하였으며, 신세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였다.광복 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하였고, 1956년 노동당 평양시 위원회 산하 문학예술출판부 열성자회의에서 과거 ‘구인회’활동과 반동성, 사상성의 불철저를 이유로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상허 이태준은 우리 근대 문학의 전개과정으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했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이와 같이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그의 작품에서는 불우한 인물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작품들 중 39년에 발표된 『영월영감』을 통해 근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성향을 살펴보기로 하겠다.Ⅱ. 영월영감의 물질주의와 상익의 관조주의『영월 영감』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영월 영감은 젊은 시절 군수를 지냈고, 키가 훤칠하며, 이글이글 타는 눈방울을 가진 음성이 찌렁 찌렁 울릴 정도의 다부진 사람이었다.영월 영감, 그는 옥사 생활을 거친 후로 심경의 큰 변화를 일으켜 가대와 종중(宗中)의 위토(位土)까지 잡혀 쓰면서 소식이 끊긴지 십오여 년 이었다. 그런 그가 누루퉁퉁한 지우산과 검은 지까다비 한 켤레를 신고 조카인 상익 앞에 나타나 돈을 마련해 달라고 한다.고려자기 찻종 하나와 단계석 벼루 하나를 팔아 만든 성익으로부터 돈의 일부를 건네받은 영월영감은 또 다시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 후 영월 영감은 사고로 입원하게 되고, 그 동안에 몰두했던 것이 금광 개발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그는 성익에게 “금력은 어디 물력 뿐이냐? 정신력도 금력이 필요한 거다. ” 라고 말하고, ‘일모도원’ 이란 말과 성익의 나이를 ‘호랑이 같은 때’ 로 나이가 기울어져 가는데 아직 갈 길은 멀어 자신의 남은 생명이 짧음을 한탄한다.성익은 패혈증으로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어느 광산 사무소에 찾아가 금 한 덩어리를 억지 구입한다. 그리고 광산에서 나온 것인 양 그에게 가져가 보여준다. 그는 기뻐하며 눈을 감는다.성익은 ‘호랭이 같은......’ 이란 말을 중얼거린다.이 작품의 핵심적 소재라고 하면 ‘금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여 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지까다비’를 신고 나타난 것’은 이 소설의 후에 등장하는 금광에 대한 복선으로 보인다. 여기서 ‘지까다비’는 그 동안에 금광 사업에 몰두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영월 영감은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소외된 노인이지만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로 모습을 일부 보여주고 있고,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운 국면을 헤쳐 나가려는 뜻을 보여주고 있다.“힘 없이 무슨 일을 허나? 홍경래두 돈을 만들어 뿌리지 않았어? 금 같은 힘이 어딨냐?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 홍경래를 언급하면서 금력이 필요한 이유를 거듭 설명하고 있다.그는 또한 ‘서양인은 자연으로 동양인은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은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동양인은 너무 자연에만 몰두한다’)고 생각한다.“자연으루 돌아와야 할 건 서양 사람들이지. 우린 반대야. 문명으루, 도회지루, 역사가 만들어지는 데루 자꾸 나가야 돼......”)결국 그는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위해 금광사업을 손을 댄다. 물질문명은 영월 영감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중심적인 것으로 이해된다.)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면모로써의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영월 영감은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금광을 얻으려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노려 그것으로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시대적 상황으로 보자면 벼슬을 한다는 것은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일제에게 고개를 숙이는 치욕적인 일이다. 그래서 영월 영감은 일제에 대항할 만한 힘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대대로 내려온 논과 밭을 팔고 금광에 매달린 것이다.당시 자기 토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부지기수였고,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빌려 쓰고, 수확을 한다 해도 빌린 빚을 갚고 나면 먹을 양식도 없을 만큼 땅은 귀중한 것이 토지였다. 그런 토지를 팔아버리고 십오여 년 동안 금광을 찾기 위해 가족을 등지고 소식을 끊은 것은 어찌 보면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소외된 노인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금력은 어디 물력 뿐이냐? 정신력도 금력이 필요한 거다.”)위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금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금은 곧 힘이며 단순한 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력까지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언급하고 있고, 그만큼 금광산업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토로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상적인 힘이 아닌 금력으로 자신의 이상을 이루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이런 영월 영감과는 달리 성익은 ‘무리를 해서라도 옛것을 구해 소장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처사 취미)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으로 짐작하건데 젊은층으로써 이 시대에 앞장서는 적극적인 인물이 아닌 과거를 회상하는 소극적인 삶을 사는 인물로 할 수 있다.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의지를 갖지 않고 현실과 적당히 손잡고 살아가는 현실 순응주의자로 보이거나 과거 지향적 인물로 묘사된다.“서른! 서른 둘! 호랭이 같은......”)하지만 마지막 중얼거림으로 알 수 있듯이 성익은 아저씨로부터 무언가 일깨움을 받고 현실의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각성의 모습을 보여준다.영월 영감은 문명에 대한 적극수용론을 보이는 강인한 모습으로 상익에게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성익의 마지막 말은 이 소설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변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영월 영감이 금력을 얻게 되면 하려고 했던 일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야기 구성상 영월 영감은 눈을 감으면서 자신의 임무를 성익에게 전해주고 있다.Ⅲ. 결 론위에서 알아본 것과 같이 『영월 영감』은 금력을 가지고 역사를 되돌리려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문명으로 뛰어 든 영월 영감의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Ⅰ. 서 론현대 사회에서 TV, 라디오, 신문, 잡지, 인터넷 등 수많은 매체를 통해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데 미디어만큼 우리 사회언어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 주는 것은 없다.그 중에서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그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활의 사건이나 사고, 그리고 다른 나라의 이야기 등 사회, 경제, 스포츠, 국제면 까지 폭넓게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이에 친숙한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요즘 신문은 TV나 라디오 방송, 인터넷 전자신문 등에 밀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장점들도 가지고 있다. 첫째, 신문은 방송 매체에 비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많다. 시간을 정해둔 방송매체의 뉴스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둘째, 신문은 대충 훑어보면서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용이하고 셋째, 보관하고 반복해서 볼 수 있고 원하는 내용을 선별해서 순서대로 보기도 편하다.이런 신문 기사는 보도를 전제로 한 것으로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을 전제로 해야 하고, 특정한 양식에 따라 표제, 전문, 본문으로 이루어진다. 표제는 ‘헤드라인’이라고도 하고, 신문에서 기사의 핵심 내용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큰 글씨의 제목 부분이다.전문은 기사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문장으로 제일 중요한 기사의 사실을 간결하게 언급하는데 그 목적이 있고, 본문은 기사 내용이 세부적으로 기술된 부분이고, 전문에 이어 그 취지를 고증하는 단락을 말한다.세 가지 양식 중 기사를 훑어보며 관심 가는 기사를 찾는 독자를 겨냥하는 표제는 독자의 눈을 끌기 위해 쓰기 때문에 표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표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기사가 독자에게 읽힐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본론에서는 기사의 유형 중 기본이 되고 독자의 눈을 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표제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고, 표제어의 형식과 신문의 기사에서 나타나는 표제어의 쓰임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Ⅱ. 표제어의 특징과 세부 구성에 따른 언어적 형태1. 신문기사의 표제의 특징표제는 기사 서두에 놓이는 것으로 독자가 여러 표제들을 대략적으로 훑어보고, 관심 가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의 핵심부분을 짧고 간결하게 줄여서, 표제만 보아도 대략적인 기사 내용을 추측할 수 있도록 축소하고 간추린 압축의 형태로 나타난다. 표제는 본문에 나타나는 전체적인 기사 내용을 짤막한 형식 안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전문이나 본문과는 형식적으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표제의 특징을 살펴보면,첫째, 표제는 본문의 내용을 압축해서 표현해야 한다.둘째, 표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셋째, 표제는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넷째, 표제는 정확하고 명료하고 간결해야 한다.다섯째, 표제는 독자가 한눈에 훑어보고 그 기사의 중심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여섯째, 표제는 준말이나 약자 사용시 어렵지 않고 생소하지 않은 널리 알려진 쉬운 것을 선택해야 한다.위 특징을 살펴보면 표제는 기사의 본문 내용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핵심적 의미의 단어를 모아 간추린 문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정확해야 하며, 명료하고 간결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 요소들이 많이 생략된다. 이런 간결한 문장을 위해 사용되는 요소들로는 조사나 연결어미, 서술어, 접사 등을 생략하는 것과 준말이나 약어를 사용하는 것이다.하지만 기사의 본분은 정확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뚜렷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특징 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벗어나는 표제는 피해야 하고, 구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준말이나 전문적인 용어, 추상적인 단어들은 쓰지 않아야 한다.다시 말하면 표제는 최소의 언어만을 사용해서 재구성 되어지고, 내용의 핵심을 전달하는 최대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세부구성에 따른 표제어의 언어의 형태독자가 기사의 핵심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장이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결성을 첨부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사나 어미, 접사, 서술어가 생략되어 나타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표제 끝에 오는 품사가 명사이거나 연결어미‘-고’,‘-어’,‘~듯’등으로 끝나거나 부사의 어근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부사격 조사‘로’, 목적격 조사‘을’등의 격조사로 끝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의문문과 그에 대한 대답, 또는 선택의문문등을 사용하기도 하다. 아래에서 그에 해당하는 예를 살펴 보겠다.다음은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된 것들로 문장 안을 살펴보게 되면 문장성분인 조사나 어미 등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장성분을 생략하거나 줄여 씀으로써 간결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하고 있다.ex) 신안 갯벌, 유네스코 ‘생물보전 지정’ 추진한다. (한겨레신문, 2008, 02, 23, 10면)오바마-힐러리 ‘끝장토론’ 없었다. (한겨레신문, 2008, 02, 23, 23면)두 야당 ‘거대연정’ 출범 무샤라프 축출 성공할까 (한겨레신문, 2008, 02, 23, 23면)민주 ‘경선 공천’45곳 오늘 뚜껑 열린다. (동아일보, 2008, 03,17, 8면)아프리카 해님 달님 이야기 아니? (한겨레신문, 2008, 02, 23, 17면)이에 비해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만 아니라 불완전한 표제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연결어미 ‘-고’나 ‘-어’로 끝나고, ‘-ㄹ 듯’의 형태로 종결된 표제도 있다.ex)설익은 정책 남발 ‘과속’ 논란 빚어 (한겨레신문, 2008, 02, 23, 06면)화성에 경찰서 조기 설치될듯 (동아일보, 2008,03, 17, 16면)다음처럼 서술어가 생략된 목적격 조사‘을’이 붙은 구성이나 부사격 조사‘로’가 붙은 형태의 구성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서술어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본문을 어느 정도 읽어야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ex)인권위 ‘집회 제한 ? 금지 폐지 권고키로 (한겨레신문, 2008, 02, 23, 09면)中 무력진압 중단- 평화적 해결을 (동아일보, 2008,03, 17, 17면)다음의 예는 의문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구성되어 다소 변형된 형태의 표제를 보여 주고 있다.ex)배고픔 없는 다이어트? 먼저 네 몸을 알라! (한겨레신문, 2008, 02, 23, 16면)‘훨훨’이나 ‘후끈’처럼 의태부사나 의성부사가 쓰여 종결된 예도 찾아 볼 수 있다.ex)김연아 다시 훨훨 (한겨레신문, 2008, 02, 23, 26면)총출동! 전주 ? 창원 ? 원주 주말 코트 후끈 (한겨레신문, 2008, 02, 23, 27면)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구성은 보통 동작이나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명사의 뒤에 ‘이다’나 ‘하다’, ‘되다’ 등이 생략되어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간결하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