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더니즘의 유래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모던(modern)’이라는 의미소에서 유래한다. 이 모던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기원후 5세기 말 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용어는 중세 라틴어 ‘모데르누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최근, 지금, 방금’등의 의미로 쓰였다. 이것이 12세기에 들어 심미학의 문제에 쓰이기 시작했고 모던이냐 아니냐를 놓고 신구논쟁이 계속되게 되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 것은 5세기 후인 17세기부터이며, 이 때부터 신구논쟁은 문학적 성과와 탁월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신구논쟁은 계속되었다.이 신구논쟁과 더불어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종교계, 특히 로마 가톨릭계에 종교적 모더니즘이 일어났다.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 모더니즘은 19세기와 20세기가 이룬 과학적 발견을 역사적 기독교와 화해시켜 보려는 가톨릭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교회가 갖고 있던 권위와 봉건성에 대항하고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며 예술상의 모더니즘도 이 때 시작되었다.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모더니즘은 전쟁 동안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 더욱 활기를 띠고 발전하게 되었다. 인류의 문명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모든 기성의 가치관이나 도덕을 붕괴시킨 1차 세계 대전은 오히려 모더니즘이 성장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화적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19세기 말엽부터 싹트기 시작한 모더니즘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비로소 활짝 꽃피게 되었다.회화 - 기존의 회화는 객관적 합리성과 원근법에 따른 구도 및 명암을 통해 형태를 표현하며 아름다움과 역사적 사실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사진기의 발명 등의 영향으로 ‘무엇을 보는가’보다는‘어떻게 보는가’를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표현 양식이 아니라, 그 구조와 기능 면에서 근본적 변혁을 hf고 왔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따른 모든 전통적 가치와 형태를 해체·왜곡싴 고정된 일상적 현실로부터 단절된 비정상성을 일깨울 수 있는 꿈·환각·무의식의 세계에 젖극 다가선 초현실주의, 정신적 가치와 질서를 색채와 선 등 순수한 형태로 나타낸 추상주의 등을 통해 극대화 되었다.건축 - 기존의 건축은 왕실과 귀족 중심의 자유분방함과 화려함을 거부하고 신고전주의와 여러 중세 양식을 절충하며 자유로운 감성적 색채를 추구한 낭만주의로 대변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철·시멘트 등의 신소재를 활용하여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적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하며 붕괴되었다. 따라서 기능주의에 입각해 부합하지 않는 장식이나 구조는 과감하게 제거되었고, 이제 건축은 외양보다 그 건물의 목적에 적합한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기능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추구하였다.문학 - 기존의 문학은 독자가 작가 자신과 동일한 현실을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독자들의 감수성에 일정한 도덕성과 가치관을 계몽하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예술은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상상력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라는 흐름에 따라, 객관적 사회 현실과 외적 행동의 묘사보다 주관적 개인의 내적 심리를 분석하였다. 또한 현실에 접근하는 기법도 의식의 흐름 속에서 무질서하게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순서와 일인칭 화법으로 아이러니와 인위적 변형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기존세계 이외에도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려 하였다.2. 비트켄슈타인의 전기사상과 후기사상비트켄슈타인의 전기사상은 ‘언어’를 철학적 관심의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런 까닭에 논리적 탐구는 철학적 탐구의 가장 기본적 작업이 되어 왔고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기본문제로 삼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는 그의 전기사상을 대표하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사고의 한계를 밝히기 위해 ‘언어’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것을 이 책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그에 따르면 모든 철학은 학설이 아니라 언어 비판 활동이며 언어 비판은 참과 거짓이 밝혀질 수 있는 유의미한 명제와 그렇지 않은 무의미한 명제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는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을 접했을 때 우리는 문장을 그 의미가 설명됨이 없이 이해한다는 점을 근거로 ‘의미의 그림 이론’ 을 주장한다. 명제의 그림이론은 동시에 사고의 본성에 관한 설명이다. 사고는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고, 사고의 구성요소는 단어들이 아니라 단어들에 대응하는 실재의 요소들이다. 요컨대 비트켄슈타인은 언어와 실재 세계가 논리적 구조상 동일하다고 보았다. 즉 유의미한 명제는 마치 악보와 레코드판의 홈들이 연주되듯 실재세계를 그림과 같이 묘사하는 경우다. 그래서 그는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주장하였다.애매한 명제들이 복잡하게 결합된 주장 전체의 진위를 그 요소명제들의 진리치에서부터 낱낱이 밝히려는 그의 작업은 전근대적 사고 체계와 봉건적 가치 규범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다양하게 시도하였던 모더니즘의 특징을 철학의 영역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과거의 전통적 형이상학적 저술에 쓰인 언어는 그런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닌 경우가 꽤나 많다고 진단해 그는 자연 과학적인 영역 밖에서 논의되고 있는 분야, 즉 형이상학과 윤리학 및 미학에 있어서의 모든 명제들은 참된 명제가 아니고 사이비 명제라고 말하게 된다. 그와 같은 문제들은 이 세계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바깥에서 비로소 논의 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 속에서 말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로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그의 사상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세계라는 용어를 일의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지시되는 대상이 없는 언어라 하더라도 무의미하다 할 수 없다는 점, 다양한 어감을 띤 일상 언어가 기계적으로 획일화될 수 없다는 점, 진리 함수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점 등이 있는데 특히 언어의 상이한 층을 부정해서 언어와 세계의 논리적 구조가 왜 반드시 같은지를 밝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와 세계의 논리적 구조가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 언어의 의미 분석을 통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하나의 형이상학이며, 언어의 유의미성이 타당하려면 세계의 구조와 같아야 한다는 순환 논증이 되는 것이다.후기에서는 전기사상에서 비판받은 문제점들로 인해 논고의 논리적 원자론과 그림 이론을 포기하고 의미가 아닌 용법을 중시하는 화용론을 통해 언어 비판이라는 주제를 유지하였다. 전기사상이 실재론적 객관주의를 지향했다면 후기사상은 논의의 중심을 인간으로 옮겼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지시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쓰이는 구체적 생활형식, 즉 언어가 문화공동체 속에서 의사소통 되고 있는 용법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사적언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언어는 문화공동체 속의 복잡한 사회 제도로서 무계획 적이다. 즉 언어는 공동체의 생활 방식인 수많은 말놀이로 구성되어 있지만 절대적 규칙은 없고 단지 가족유사성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선 그 언어와 상관된 원초적 삶의 양식, 다시 말하면 모든 역사적 또는 문화적 삶의 양식을 이해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의 그림이론에서는 말할 수 없는 윤리적, 미학적 또는 형이상학적 명제들도 일상적인 삶의 양식 속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의 문제는 언어가 생활 형식에서 사용되는 용법을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철학의 문제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일상 언어의 기능을 파악하고 정리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즉 언어는 그 구성 요소인 단어들의 명확하게 고정된 의미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체 문장의 맥락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생각하지 말고 보아라”며 현실을 떠난 논리적 분석에서 탈피하고 구체적 삶을 파고들 것을 강조한 비트켄슈타인의 후기사상은 공동체 사회의 문화적 실재인 생활형식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웠다. 그리고 철학이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후기사상 역시 문제점이 있었다. 그가 중요시한 생활형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조건과 한계는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그의 시도가 언어현상의 이해였지, 언어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3. 전기사상과 후기사상의 관계비트켄슈타인의 전기사상은 애매한 명제들이 복잡하게 결합된 주장 전체의 진위를 그 요소명제들의 진리치에서부터 낱낱이 밝히려는 전근대적 사고 체계와 봉건적 가치 규범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다양하게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에 영향을 주었다. 반면 현실을 떠난 논리적 분석에서 탈피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파고들 것을 강조한 후기사상은 기존의 합리적 이성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전기사상과 후기사상 간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모더니즘은 이전의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며 이성의 합리성과 과학의 정확성을 추구하며 나타난 계몽운동이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합리주의 이성론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발생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 이다. 즉 기존의 가치관에 반하여 나타난 것이 모더니즘 이고 그 모더니즘의 권위적이고 이중적 모습에 회의와 반성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인 것이다.그의 전기사상은 과거의 전통적 형이상학적·윤리학적·미학적 저술에 쓰인 언어는 그런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닌 경우가 꽤나 많다고 진단해 자연 과학적인 영역 밖에서 논의되고 있는 분야, 즉 형이상학과 윤리학 및 미학에 있어서의 모든 명제들은 참된 명제가 아니고 사이비 명제라고 말하며 권위있는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거부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칸트의 철학이승언1. 칸트 인식론의 내용과 의의칸트는 독단적 합리론과 회의적 경험론을, 그리고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자연과학의 필연적 법칙이 경험론에 의해 우연적 확률로 해석되는 문제를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고 인식비판을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을 찾고, 사유의 근본원리와 이성을 훈련하는 방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축한 비판철학으로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을 비판하며 인식문제와 윤리문제, 예술문제를 해명하려 노력하였다.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문제해결을 위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논리학으로 돌아갔다. 모든 지식은 명제의 형태를 취한다. 이성의 진리는 주어의 개념을 술어가 설명하는 분석판단이다. 즉 술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주어의 내용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분석판단은 경험을 통한 확인이 없어도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반면 사실의 진리는 새로운 지식을 확장해주는 종합판단이다. 여기서 술어의 내용은 직접 경험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새로운 지식으로, 실제로 경험해봐야 하며 따라서 경험할 때마다 달라지는 우연적인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칸트는 경험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프리오리(필연)한 종합판단이 가능한 가에 대한 탐구를 하였다. 예를 들어 ‘두 점 사이의 직선은 최단거리다.’ 라는 명제는 주어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지만, 이는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평면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성립되므로 현대 철학에서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인식’에 대해 칸트는 대상이 드러나는 현상 그 배후에 있는 ‘물 자체’는 우리가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하는데, 경험하는 의식은 인간 모두에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의식 일반’이다. 의식 일반은 감성과 오성 그리고 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성은 물 자체에 의해 일어난 감각이 외적 감각의 조건인 ‘공간’과 모든 감각의 조건인 ‘시간’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감성에서 받아들인 내용은 오성에서 12범주를 통해 질서 지어지며 능동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비로소 경험으로 인식된다. 이를 바로 ‘인식 구성설‘ 이라 한다. 직관된 감각들은 처음에는 그저 총괄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전표상을 구상력을 통해 재생산해 현재표상과 통일시키고, 직관된 표상과 재생산된 표상의 동일성을 재인식함으로써 이것들이 종합되고 비로소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은 오성의 작용을 규제하는 이념들인데, 신·세계·영혼의 불명의 대상을 다룬다. 이것들은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가상이다.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은 경험의 사실이 아닌 경험을 가능케 하는 근거에 대한 것으로서 경험 이전에 주어진 공간·범주·구상력에 관한 탐구이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와 능력을 비판함으로써, 이성의 계몽주의를 통해 궁극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독단론을 극복하였다. 기존의 인식론은 대상이 주관에 반영된다는 점에 반해, 칸트의 인식론은 주관이 대상을 구성함으로써 인식된다고 주장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같은 혁명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 인식은 합리론에서는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경험론에서는 객관적 세계로부터, 칸트에서는 감성과 오성 즉 경험론과 합리론의 조화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칸트는 오성의 기능을 더 강조하고 독단적 형이상학을 거부하면서도 진정한 형이상학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합리론의 전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칸트는 감각의 근거인 물 자체를 애매하게 규정하고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현상계와 물 자체를 구별한 그의 이원론은 계속해서 논쟁이 되고 있다. 실존철학 역시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 실존철학은 공간과 시간을 사물의 속성이 아닌 현상의 주관적 조건으로 파악하고 특히 그중에서 시간의 근원적 성격을 강조한 칸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독일의 관념론은 칸트가 오성과 이성을 구별하고 이성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이성능력의 비판 자체가 이성에 의한 인식이라고 하며 이성의 인식이 가능하다고 반박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에 따르면 의식일반은 과거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고 동일하다. 하지만 사물을 보고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고 실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2. 칸트 윤리학의 내용과 의의칸트의 윤리학은 도덕법칙이나 선의지, 양심으로도 불리는 ‘실천이성’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여기서 실천이성은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거나 타율적 경험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의무이고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자율적 순수의지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 선의지에 따르는 의지의 자유는 경험의 영역이 아니므로 인식될 수 없다. 따라서 칸트는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을 증명함으로써 의지의 자유를 밝혀내었다. 이 법칙들은 마음 속에 있는 자아가 행위 하는 자아에게 절대적으로 명령하는데,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는 것과, 모든 인격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것,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단체의 이익을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취한 행동은 내일도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해야만 하고,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닌 양심의 무조건적인 명령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도 안 되고, 사회적 비난과 법적 책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은 금지된다.그런데 크리스트교는 이미 자살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칸트의 주장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일까? 자살을 금지하는 것은 같지만, 칸트는 그 근거를 기존의 성경의 근거가 아닌, 인간의 실천이성에서 근거를 찾는다는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또한 그는 자율적 동기를 중시하는 ‘목적의 왕국’을 주장하였다. 어떠한 행동은 그 결과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한 의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남을 돕는 행위를 하였을 때, 그 행동을 한 근거가 양심에 의한 자율적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들에게 잘 보여 지기 위하여 한 것이라면 이는 옳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옳지 못한 것은 아니다.칸트의 목적의 왕국을 위해서는 영혼의 불멸·세계의 자유·신의 존재가 필요한데, 이것들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성에 의해 요청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이성보다 실천이성이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좋았으나 그가 말했던 ‘신’은 계시적인, 종교적인 신이 아니라 철학적 절대자일 뿐이었다. 따라서 칸트의 주장은 무신론으로 간주되었고 그 결과 크리스트교로부터 배척받았다.하지만 그는 윤리를 종교로부터 독립시키고, 이성을 통한 존엄성·도덕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계몽주의를 극대화시켰다. 이는 인간이 한 행동은 신에 의한 것이어서 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인간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칸트의 윤리학은 중세 즉 교회로부터 벗어난 최초의 근대인적인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칸트의 윤리학은 자유의지의 한계가 모호하고, 양심을 의식해도 그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나 갈등을 통한 역사의식 발전을 도외시한 설교에 불과하며, 구체적 내용이 빈약한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칸트가 말하는 윤리의 기준은 너무 좁다. 따라서 동기가 어떠하든 그 행동의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드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또한 실증적 자연과학을 토대로 사실과 가치를 분리하려는 사람들은 칸트의 핵심인 ‘양심이 인간에게 미리 주어져 있다’는 주장을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을 혼동한 오류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비판과 또한 누구나 똑같은 양심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학은 현대에 지속되기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최후의 근대인적인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