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는 실질적인중국 지도자의 권력(權力)을 가졌었는가?1. 서론중국 공산당 제 18차 전국대표대회가 2012년 11월 14일 폐막했다.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가 퇴진하고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제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한다. 사실 후진타오를 잇는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지명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이나 파벌간의 권력투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시진핑은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직을 맡게 되었다. 이런 의문점으로부터 시작되어 후진타오가 물러난 이 시점에서 후진타오가 과연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었는가?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는 과거의 지도자를 분석함으로서 앞으로 중국의 차기 지도자 또는 지도부의 권력을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실질이란 실제로 있는 본바탕을 의미하며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즉 실질적인 권력이란 실제로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지칭한다.사실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후진타오는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처럼의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지도자였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과거 중국지도자가 가졌던 실질적인 권력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세부적으로는 알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과거 중국 지도자가 가진 권력을 대표하는 가장 큰 공통점을 찾음으로서 후진타오와 비교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생각한 과거 중국의 지도자의 권력을 간략하게 분석하고 후진타오의 권력을 개인적 속성의 영향, 당내외의 세력 그리고 중앙군사위주석직 역임과 차기 지도자 임명 혹은 지명을 바탕으로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겠다.2. 마오쩌둥의 실질적인 권력처음으로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의 권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강했다. 1949년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 9월까지 마오쩌둥은 중국을 지배했었다. 그는 중국 혁명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중국을 지배했었다. 1949년 이후의 그의 평가는 그가 허락하는 만큼만 이루어졌고, 심지어 그의 가장 친한 측근들 또는 파벌 또는 관료들조차 마오쩌둥이 행하는 것에 반대할 수 없었다. 어떠한 공산당원들도 황제와 같은 마오쩌둥의 권력으로 어떠한 합법적이고 행정적인 장애물도 마오쩌둥의 권력을 제한할 수 없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권력을 총구에서 나온다며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가지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후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화궈평을 지목했다. 물론 화궈펑은 실권을 잃게 된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화궈펑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제도화가 되지 않았다는 시대적상황과 더불어 마오쩌둥의 권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3. 덩샤오핑의 실질적인 권력이후 화궈펑을 몰아낸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 역시 혁명에 참여하고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이다 덩샤오핑은 포옹력이 있었고 당내에 덩샤오핑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오랜 정치 경력을 거치며 권력을 다졌다. 그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마오쩌둥 시기와 비슷하게 현재 중국의 비해 상대적으로 제도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도자의 힘은 관료에 비해 월등히 강했다. 또한 1981년부터 1989년 11월 9일까지 중앙군사위주석을 맡고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실용주의노선에 입각한 과감한 개혁조치들을 단행하였다. 그는 또한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장쩌민을 지목하여 그를 3세대 지도자로 만들었고 또한 장쩌민 이후 차기 지도자 후진타오를 지목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장쩌민이 지도자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군사위주석직을 약 반 년간 더 역임하고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4. 장쩌민의 실질적인 권력그 다음으로 3세대 지도자 장쩌민은 덩샤오핑에 이어 모나지 않은 인간관계가 큰 이유로 작용하여 1989년 06월부터 당과 정부의 전권을 장악하였고,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하자 중국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장쩌민은 정권 출범이후 원로 세력들이 약해짐과 함께 보수와 개혁과 같은 계파보다는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등과 같은 비공식적 집단으로 나뉘어 정책 대결을 펼쳤다. 장쩌민은 1989년 11월 9일일부터 2004년 9월 19일 중앙군사위주석직을 역임하였다 비록 집단지도체제의 변화로 중국지도자의 권력은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보다는 비교적 약해졌으나 장쩌민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하기위해 강력한 정치군인의 출현의 기회를 줄임으로써 장쩌민의 군권을 강화하였고 동시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의 권한을 강화했다. 또한 그의 자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차오스를 은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력한 정적들을 부정 부패혐의로 제거함으로써 이들의 권력기반을 파괴함과 동시에 인민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중국의 권력 투쟁사2 김정계 246p)즉 장쩌민은 계속해서 확고한 군권 장악 및 자신의 세력 확장 또는 권력 공고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공했다. 나아가 장쩌민 퇴임 이후 권력의 중심인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2년이나 더 역임했다. 이는 장쩌민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최근 시진핑을 중국의 5세대 지도자로 선출하는데 큰 역할을 할 정도로 장쩌민의 권력은 아직까지 현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5. 과거 중국지도자가 가졌던 실질적인 권력이를 종합해본결과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까지의 공통점이 보인다. 마오쩌둥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어떠한 공산당원으로부터 권력을 제제 받지 않았고 덩샤오핑도 마찬가지로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고 포옹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내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장쩌민시대에 상대적으로 집단지도체제의 속성이 강해졌지만 장쩌민은 확고한 군권 장악 및 권력 공고화에 성공하였다. 또한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여 지도자로 만들었고, 덩샤오핑도 역시 자신의 차기 지도자로 장쩌민의 지명하여 장쩌민을 중국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장쩌민은 후진타오를 직접 지목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차기 지도자를 덩샤오핑과의 약조 또는 후진타오의 속성 등이 후진타오를 4세대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내 장쩌민의 계속 되는 영향력이 5세대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큰 역할이 되었다. 또한 마오쩌둥은 중앙군사위주석직을 죽을 때 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덩샤오핑도 역시 퇴임 후 약 반년동안 역임하고 장쩌민은 약 2년이나 역임 하였다.6. 과거 중국지도자의 권력과 후진타오의 권력 비교하지만 중국공산당 16차 대회를 끝으로 제 4세대 후진타오 지도부가 출범 하면서 최고지도층의 인사를 보면 비록 후진타오가 총서기에 선임됨으로서 정권을 승계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인 인사는 장쩌민의 영향에 의해 좌우된 것으로 나타났다. 후진타오의 개인적 성향으로 베이징의 정치 분석가는 “후진타오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에 지나침이 없다.” 라고 평가 했고 고향 친척들과 친구들은 후진타오가 “말을 많이 할수록 잃는 게 많다”라는 말을 여겼다고 한다. 또한 후진타오 자신은 “언론이 나를 선전함으로써 나를 망치길 원하지 않는다.” 라며 언론사에게 자제를 요청을 할 정도였다. 즉 후진타오는 저자세의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저자세가 후진타오 자신에게 중국의 지도자라는 자리로 있게끔 해주었지만 반대로 그가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 강한 권력을 행사하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또한 중국의 최고지도체제는 장쩌민의 친위세력으로 이뤄진다. 16차 대회 최고지도층의 인사를 보게 되면 정치국 상무위원을 교체함으로써 리펑 리루이환 등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은 장쩌민의 오른팔 쩡칭훙 우방궈 등 이 포진되어있다. 즉 권력의 중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 장쩌민 계열로 절반 이상이 이뤄졌다. 즉 장쩌민의 세력들이 많이 포진되었다는 것은 후진타오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군의 경우 후진타오는 2년 동안이나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3명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및 7명의 위원은 대부분 장쩌민이 집권한 후 진급하거나 요직에 발탁된 인사들이고, 장쩌민이 배양해온 인사들이기 때문에 장쩌민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 후 2004년 9월 19일 후진타오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역임했다. 명목상으로는 후진타오는 당 정 군을 장악한 중국최고지도자였다. 그러나 장쩌민 사임 이후 군부 지도체제는 더욱 연소화 되고 고학력화 되었다. 즉 이전 세대와는 달리 전문화된 군인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 외에서의 정치경험이 없고 정치파벌에 의해 생사를 건 권력투쟁에 자동적으로 끌려들 동기도 없다. (중국의 권력 투쟁사2 김정계 385p) 즉 후진타오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맡았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중국군이 가지는 정치적 영향력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후 차기지도자를 선출 할 때도 후진타오의 권력이 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적 정황상 투표를 통해 진행되는 제 18차 전국대표대회의 차세대 지도부로 후진타오는 중국의 5세대 지도자로 리커창을 지목했지만 장쩌민의 세력 쩡칭훙은 후진타오를 견제하기위해 시진핑을 차기 주석으로 하는 중재안을 내놓았고 결국 후진타오가 지목한 리커창은 떨어지고 시진핑이 5세대 차기 주석으로 확정 되었다.